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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153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153페이지입니다.

월명공원
문화관광전북특별자치도

월명공원

월명공원은 군산시 중심에 위치한 시민의 안식처이자 관광지로, 봄에는 벚꽃과 동백꽃, 가을에는 단풍으로 많은 이들을 끌어들인다. 1906년 해망정 인근 9,907평을 각국공원이라 명명한 것이 시작이다. 1910년 한일합방 후 각국 조계지역 법이 폐지되면서 ‘군산공원’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1933년에는 수시탑이 있는 산 일대 6,088평을 추가 매입해 공원 면적을 확장했다. 광복과 한국전쟁을 거치며 삼림이 훼손되자, 1972년부터 수시탑에서 군산대 뒷산까지를 개발제한구역이자 공원지역으로 지정했다. 이와 함께 ‘군산공원’이라는 명칭은 ‘월명공원’으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월명공원1길 26

관응사(김제)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관응사(김제)

관응사는 김제에서 전주로 가는 길에 있는 금천호수 인근의 대한불교 관음종 소속 사찰이다. 속칭 각시골이라 불리는 관응사 절터에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전설이 있는데 첩첩산중으로 한 각시가 들어가 이를 기이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이 뒤를 따라가 보니 현재의 절터에서 사라져 이곳에 절을 짓게 되었다고 전한다. 또 이곳의 관음보살에게 치성을 드리면 소원을 이룰 수 있다고 전하며 이 관응사 터를 각시골이라고도 한다. 지금도 이러한 전설이 전해져 많은 불자들이 찾고 있다. 1936년 조그만 암자로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창건주는 미상이다. 1985년경 진성 정공진이 주지로 부임해 대웅전과 요사, 삼성각, 미륵불을 봉안하고 사찰의 면모를 일신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선비로 1354-42

금구향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금구향교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금구향교는 1390년에 창건되어 1404년에 중창하고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1635년에 중건하였다가 1675년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그 뒤 6.25 전쟁 등을 거치면서 소장 전적 등이 대부분 유실되며 쇠락하였으나, 1954년에 지역 유림이 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여 지방 청소년들의 교육기관으로 활용하였다. 명륜당은 정면 네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만화루는 2층 누각 형식의 건물로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대성전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규모이며 맞배지붕이다. 주변에는 남강정사, 선암저수지, 대율저수지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금구3길 12

김제향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김제향교

향교는 공자와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1404년(태종 4)에 창건되었다가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고 1635년(인조 13)에 중건하였으며, 그 뒤 몇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동재, 서재, 만화루, 교직사, 내삼문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향교길 89-3

낙양사(김제)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낙양사(김제)

낙양사는 김제시 금구면 청운리 여산송씨 집성촌인 불로마을에 있는 송정기, 송정구, 송정모 삼형제를 모신 사당이다. 죽계 송정기는 인자하고 효성스러우며 지조가 단결하여 1797년(정조 21) 정려를 받았다. 벽계 송정구는 송정기의 가운데 동생으로 형을 엄부와 같이 섬기며 효로 집안을 다스리고 예로 가르치니 향인이 흠모하여 송정기와 함께 육송사에 배향하다가 정조 때 정려를 받았다. 송정모는 송정기의 막내 동생으로 나서부터 성품이 순화하고 학문에 힘썼으며, 송시열이 덕원으로 귀양 가자 항소한 뒤로는 두문분출하고 과정에 나아갈 뜻을 끊음에 향리 사람들이 감복하여 사림들이 사당에 배향하였다. 1675년(숙종 1) 금구현 동도면 상학리(현재의 금구면 금구리)에 학천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나, 화재로 소실되어 금구현 수류면 거야(현재의 금구면 삼봉리 거야마을)에 있는 육송사로 옮겨 모셨다. 그런데 1869년(고종 6) 육송사가 철폐됨에 따라 1910년(순조 4) 지금의 자리에 사당을 세우고 낙양사라 하여 송정기 삼형제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청운4길 87-3

금평저수지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금평저수지

금산면 금산리에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로 모악산에서 내려오는 수량으로 인해 마르지 않는 저수지로 알려져 있다. 김제시 금산면 소재지에서 금산사 방향으로 가는 길에 위치한다. 오리알터로 불리는 금평저수지 일대는 야생화 단지와 산책코스가 잘 조성되어 있다. 오리알터는 신라말엽 풍수지리에 밝았던 도선이 장차 오리가 알을 낳을 곳이 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금평저수지는 모악산 명산 만들기 사업의 일환으로 금평곁길탐방로 등을 조성하여 볼거리는 물론 휴식 공간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총 3.5㎞의 금평곁길탐방로는 1구간, 2구간, 3구간 세 코스와 제방길로 구성되어 있으며 총 탐방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소요된다. 1구간은 1㎞의 수변데크로드와 수변생태숲, 2구간은 0.8㎞의 수변데크로드, 3구간은 1.2㎞의 수변데크로드와 자연숲길이다. 제방길은 0.5㎞의 콘크리트 노면길이다. 무성한 나무 그늘아래 탐방로를 산책하다가 잠시 땀을 식히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정자도 수변에 세워져 있다. 금평저수지는 주변에 오염원이 적어 수질이 깨끗하고, 겨울철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리

대제복구비
문화관광전북특별자치도

대제복구비

김제시 연정동에 위치한 대제복구비는 1848년(헌종 14) 7월에 세운 것으로 김제군 내에서 가장 컸다는 대제저수지를 복구한 사람들에 대한 공적비이다. 비의 앞면에는 대제를 복구할 당시의 총위사, 전라도관찰사, 어사 그리고 김제군수 등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영세불망비(永世不忘碑)를 건립했다는 연유가 새겨져 있다. 이 비석에는 전해 내려오는 설화가 있다. ‘피 흘리는 비’는 대제복구비가 피를 흘린다는 비석전설이다. 1848년(헌종 14) 7월 대제를 복구하는 일이 있었을 때 대제복구비가 서 있던 뒤쪽에는 허름한 초가 한 채가 있었는데, 어느 해 이 초가집의 주인이 집을 고치게 되었다. 그때 자기 땅에 서 있던 대제복구비를 울안에 넣고 담을 둘러쳤다. 그런데 담을 치며 마지막 벽돌을 올려놓는 순간에 천둥이 치고 비가 내리더니 대제복구비에서 피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집 안에 있는 우물에서도 핏빛과 같은 녹물이 흘러나왔다고 한다. 이 소문은 삽시간에 마을로 퍼졌으며, 사람들은 대제복구비 근처에 가기를 꺼려하게 되었다. 그 후로도 이상한 일들이 계속 일어났는데, 대제복구비가 서 있는 앞 도로에서 원인 모를 교통사고가 자주 일어나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고 한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집주인은 대제복구비가 저주를 내린 것이라 생각하고 도로 담을 헐었다. 그 후로는 비에서 흐르던 피도 멎게 되었고, 우물에서 나오던 녹물도 나오지 않게 되었다. 그런데 요즈음도 가끔 피를 흘릴 때가 있는데, 비에서 피가 흐르면 으레 비 앞 도로에서 교통사고가 일어난다고 한다. 왜 이 비석이 피를 흘리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아무런 사연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후신길 4-27

김제동헌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김제동헌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교동에 있는 조선시대의 관아로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이다. 현종 8년(1667)에 외아와 함께 지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숙종 25년(1699)에 수리한 것으로 전해진다. 여러 차례의 수리와 개축을 거쳐 최근 원형에 가깝게 복원되었다. 원래는 안채, 안행랑채, 안측간 등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안채만이 복원되어 있다. ㄷ자형의 평면으로 조선시대 일반적인 중, 상류 계층의 주택건축과 거의 차이가 없다. 다만 대청마루 등에 굵은 두리기둥을 사용하고 있는 점이 일반 민가보다는 격식을 차리고 있는 점으로 두드러진다. 한단의 낮은 기단 위에 자연석 주초를 놓고, 네모기둥과 두리기둥을 섞어서 세웠으며 홑처마의 소로수장집이다. 거의 모든 주간(柱間)에 두 짝의 세살문을 달았다. 전체적으로 간결한 외관을 갖추었으며, 동헌의 내아 건물로는 얼마 남아 있지 않은 유구 중의 하나이다. 내아의 바로 앞 남쪽에 외아가 있다. 앞면 7칸, 옆면 4칸 규모이며,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가운데의 오른쪽 6칸에 대청이 있고 왼쪽 4칸은 온돌방이다. 외벽은 사방 전체에 같은 형태의 문이 달려있으며, 앞면 가운데 1칸과 뒷면 왼쪽에 출입문을 달았다.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도 앞면을 7칸으로 꾸며 위엄 있는 건축형태를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관아건축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동헌4길 46-1 (교동)

두곡서원(김제)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두곡서원(김제)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립 교육 기관이다. 두곡서원은 1634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몽주, 강원기, 함부림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2년에 훼철되었다. 1901년 유림에 의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향사를 지내오다가 1970년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세 칸의 사우, 신문, 네 칸의 영모재, 숭의문 등이 있으며, 사우에는 정몽주와 강원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영모재는 강당으로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된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9길 31

만경향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만경향교

향교는 공자와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1894년 갑오개혁으로 근대 교육이 본격화되면서 교육적 기능은 폐지되었다. 만경향교는 1407년(태종 7)에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620년(광해군 12)에 화재로 말미암아 소실되었으며, 1637년에 현재의 동문 내리에 이전 건립하여 여러 차례 중건과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명륜당은 1637년에 창건한 것으로 현재는 노휴재로 사용하고 있는데, 1975년 보수하였다. 이곳에는 설총, 안향, 최치원, 정몽주 등을 배향하고 있다. 만경향교 안에는 대성전, 명륜당 그리고 동재, 서재가 위치하고, 충효관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되어 있고 동재와 서재는 각각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만경읍 두내산1길 25-10

모덕사(벽제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모덕사(벽제서원)

모덕사는 벽제서원이라고도 하며, 토헌 박초(1367~1454)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67년에 세워졌다. 이곳은 조선초기에 이름을 떨쳤던 선비 박초의 학식을 본받고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세웠다. 박초는 어려서 포은 정몽주의 문하에서 학문을 익혔다. 그는 15살에 문과에 급제할 정도로 재능을 보였고 여러 요직을 두루 거쳤다. 조선 개국 직후에는 전라도 수군도절제사를 지내기도 했다. 당시 무엇보다 벽골제를 중수하여 고향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1421년(세종 3)에는 전라도 관찰사 장윤화가 벽골제를 없애고 그것을 토지로 돌려 농사를 지으면 어떻겠냐고 강력히 주장했지만, 박초에 의해 무산되었다. 벽골제 사적비문 역시 박초가 지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형태로 지어졌으며, 강당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입석동

백산저수지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백산저수지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익산시 쪽으로 6㎞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 농업 관개용 저수지다. 백산저수지는 다른 저수지와는 달리 주변에서 집수된 물이 아닌 섬진강 수계인 운암호의 물을 간선 수로로 이동하여 펌프로 퍼 올려 저장하는 저수지이다. 호남 야산 개발과 함께 축조된 저수지로서 1969년 착공하여 그해 12월 준공되었으며 현재 한국농어촌공사 동진지사가 관리하고 있다. 백산저수지에서는 붕어, 잉어, 향어 등 대어들이 많이 나와 낚시꾼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으며, 아름다운 서해의 낙조와 자연 농원지구, 금만경평야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백산면 하정로 163-73

백석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백석서원

백석서원은 조선 효종 3년(1652년) 승반산에 세워졌던 하나의 사당이다. 유집(柳楫)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고종 5년(1868년)에 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고, 1902년 지금의 자리에 앞면 3칸, 옆면 2칸 맞배지붕으로 된 한식 목조기와집을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범득골길 187-22 (갈공동)

벽성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벽성서원

벽성서원은 1965년 김해 김씨 종친들에 의해서 세워졌다. 건물의 구성은 외삼문인 어덕문, 정면 네 칸과 측면 세 칸 규모의 팔작지붕 구조의 강당, 내삼문인 경의문, 정면 세 칸과 측면 한 칸의 맞배지붕 구조인 사당 충인묘로 구성되어 있다. 벽성서원에서는 봄과 가을 두 차례 제사를 지낸다. 이곳에는 신라 김유신을 중심으로 고운 최치원, 죽강 김보, 도산 김선, 모암 김극일, 숙재 허주, 점필재 김종직, 안경공 김영정, 탁영 김일손, 갑봉 김우항 등 기묘명현들과 신진 사류들을 모시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향교길 89-16

봉황사(김제)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봉황사(김제)

1968년 창건된 대한 불교 태고종 소속의 사찰이다. 김제시 금구면 오봉리 봉황산에 자리하고 있다. 김제에서 전주 방향으로 가다 보면 금천 호수가 나온다. 호수를 지나면 오른쪽으로 봉황사 가는 길이 나온다. 봉황사는 규모만으로 따지면 사찰이라기보다 암자에 가깝다. 당우로 대웅전, 삼성각, 요사가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의 목조건물로 일반 주택 형태를 띠고 있다. 요사 옆에는 1991년 조각한 석조 미륵불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오봉2길 474

부용사(김제)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부용사(김제)

부용사는 1936년 창건된 대한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이곳은 단청 기능보유자인 국가무형문화재 승려 김일섭이 1936년에 창건하였다. 당시 지금의 요사채인 초가 8칸을 구입하여 불상을 봉안해 오다가 1961년 대웅전을 신축한 데 이어 산신각, 칠성각, 요사 2동을 건립하여 사찰의 면모를 갖추었다. 1968년에 명부전 4칸을 신축하고 미륵불을 봉안하였으며 칠층석탑을 세웠다. 대웅전에 아미타불 좌우로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을 협시로 배치하였다. 이 아미타불은 김일섭이 손수 제작한 것이며, 좌우 협시불인 관세음보살과 대세지보살도 석고상으로 만들어 불교미술전람회에 출품했던 작품이라고 한다. 절 마당에는 칠층석탑과 미륵불, 사사자오층석탑 등이 있다. 부용사의 미륵부처가 영험한 것으로 알려져 약사여래불상 앞에 엎드려 불공을 드리면 반드시 효과를 본다는 신기한 전설이 전한다. 부용사에는 백련지가 있는데, 여름이면 연꽃이 만발해 장관을 이루며 그윽한 향기를 뿜어낸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백구면 황토로 1074-30

사현사(김제)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사현사(김제)

김제시 산동리의 사현사는 1934년 당시 이곳에 거주하던 봉성 온(溫)씨 문중의 집안 사당으로 대율리에 세워진 것이다. 사현사는 1934년 세워진 봉성온씨 문중 사당이다. 당시에는 대율리에 세워졌으나 1967년 대율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수몰되기에 이르러 김제시 금구면 산동리 지금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이 사당은 온신을 중심으로 온림, 온윤, 온후를 모시고 있다. 특히, 온달 장군과 온군해 장군의 단이 설치되어 있다. 온달 장군과 온군해 장군의 후손인 온신이 고려시대 공민왕 때 좌우길시랑으로 요승 신돈의 농정을 아뢰다가 왕의 노여움을 사서 봉성(현재의 금구면)에 귀양살이 한 것이 인연이 되어 그 후손들이 금구면 산동리 등 각처에서 살게 되었다. 이에 1934년에 이 지방 유림들이 장군들의 업적을 오래도록 추모키 위해 사현사를 세웠으며, 매년 음력 9월 15일에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사현사 경내에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의 사당과 강당 건물이 하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선비로 1017-27

삼불암(김제)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삼불암(김제)

삼불암은 김제시 죽산면 불당마을에 있는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오래전부터 불당마을에는 고기를 잡으러 나갈때 마다 공양을 드리는 석불상이 있었다고 한다. 어느 날 큰 해일이 일어 이 불상이 어디론가 묻혀버렸다. 그 후 어느 해 방목리에 사는 정진섭이 술에 취한 채 마을 앞 연못가에서 잠이 들었는데 꿈속에서 부처님이 나타나 말하기를 ‘연못의 물을 퍼내면 3위의 불상이 나올 것이니 연못 남쪽에 있는 빈터에 불당을 세우고 이를 안치하면 소원 성취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러한 꿈이 연 이틀간이나 나타나자 아들이 없던 정진섭은 마을 사람들을 모아서 그 연못의 물을 퍼냈다. 그러자 과연 3위의 불상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불당을 짓고 3위의 불상을 모시게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전설이 있어서인지 지금도 아기 낳기를 기원하는 사람들이 삼불암을 많이 찾고 있으며, 해마다 삼월 삼짇날 동진강 하구에서 지내는 수륙재도 이곳에서 준비한다. 지금 있는 불당 건물은 1959년에 새로 지었으며 삼불암에는 요사, 종각, 석탑, 동자상, 중창비, 천마상 등이 있다. 삼불암에 안치되어 있는 3위의 석불은 조각하여 만든 것이 아니라 긴 자연석 대석 위에 불상 형태의 돌을 올려놓은 것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죽산면 서포4길 443

서강사(김제)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서강사(김제)

김제IC 인근에 있는 서강사는 대한제국의 문신이자 애국지사인 장태수(1841~1910)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1935년에 건립되었다. 장태수는 철종 12년(1861)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다 1895년(고종 32) 단발령이 내려졌을 때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스스로 남강거사라 부르며 일제 침략에 항거했다. 1910년에 경술국치로 일제 강점이 시작되자 나라에 불충하고 조상에 불효했다며 단식에 들어가 24일 만에 순국하였다. 서강사에는 방선재, 존경재 등 부속 건물 7동, 고직사가 있다. 건물은 조선 후기의 목조 건축 양식을 잘 계승한 짜임새 있는 건물로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주변에는 남강정사, 금구향교, 선암저수지, 대율저수지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구면 양시로 125-27

성산공원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성산공원

성산공원은 김제시 도심 속 성산에 조성된 근린공원으로, 김제 시민을 위한 쉼터이자 관광명소로 사랑받고 있는 곳이다. 공원 안의 교동 성산성지는 누가 언제 어떻게 쌓았는지 자세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백제 시대 김제의 주성이었던 곳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남·서·북쪽에 토성으로 쌓은 흔적만 남아 있다. 성산공원에는 등산로와 쉼터, 지압보도블록이 잘 정비되어 있다. 더불어 모래씨름판, 온몸 노젓기, 하늘 걷기, 철봉대, 배드민턴 코트 등 다채로운 체육 시설이 설치되어 건강한 운동을 즐기기 좋다. 성산타워 1층에는 매점과 휴식 공간이 있고, 2층은 김제 지역 문화와 역사를 알 수 있는 문화 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3층은 과거에는 레스토랑이었지만 현재는 전망대로 이용되고 있다. 성산공원 곳곳에는 충혼탑, 반공희생자 위령비, 이상운 학생 순의비, 서해안 방조제 순직비, 반공투사 고(故) 최주일 추모비 등 다양한 기념비들이 세워져 있다. 또한 최학규 선생 및 우란회 시비가 세워져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향교길 89-16

승방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승방원

김제 시가지에서 북쪽으로 자동차 기준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승방원은 승방서원이라고도 한다. 이곳은 1856년 동래정씨가 세운 사당이다. 승방원에서는 김제 출신인 양헌 정인, 풍천 정수홍 등 동래정씨들을 모시고 있다. 그 외에도 국촌 최철, 벽성 박요 등 정 씨뿐만 아니라 그 넋을 기리고 본받을 만한 여러 선현도 배향하고 있다. 정인은 고려 말기 무신으로 여진과 왜구를 격퇴한 인물이다. 정수홍은 조선 초 태종 때 대사간과 세종 때 이조판서를 지냈다. 최철은 고려 말기 사람으로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초야로 숨어 절개를 지켰다. 박요는 조선 중기 중종 때 사람으로 성리학의 번성을 위해 노력했다. 건물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지붕 형태의 사당과 서원의 기능을 담당하는 강당이 있다. 주변에는 지평선생태수목공원, 백산저수지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흥사동

심포항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심포항

김제시의 서북방향 15㎞ 지점에 위치한 심포항은 크고 작은 어선들이 드나들던 아담한 어항이다. 만경강과 동진강이 서해와 만나는 지점에 조성된 포구다. 예전에는 그 규모가 꽤 컸던 포구였으나 현재는 새만금간척지조성사업으로 겨우 명맥을 유지해오고 있다. 심포항에는 횟집단지가 조성되어 싱싱하고 물 좋은 생선회를 즐기려는 사람들과 바다낚시를 즐기려는 사람들로 휴일이면 차를 댈 수 없을 정도이다. 특히 서남쪽으로 끝없이 펼쳐진 갯벌에는 대나무처럼 생긴 죽합과 임금님 수라상에 진상되었다는 자연산 대합이 많이 자라고 있어 이 조개를 즐기려는 식도락가들이 많이 찾는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

영천사(김제)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영천사(김제)

영천사는 김제 봉황산의 남쪽 기슭 오탁수 계곡에 자리 잡은 태고종의 사찰이다. 이곳은 옛날부터 아주 영험한 약수가 있어 오탁수골이라 불리어 왔다. 전해오는 말에 따르면 약 200여 년 전에 봉황산 기슭에 까마귀 떼가 날아들어 부리로 바위를 쪼았는데 신기하게도 거기에서 약수가 솟아올랐다고 한다. 이 이야기가 전해지자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했고, 특히 5월 단오와 8월 추석날에는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붐볐다고 한다. 서상월이라는 불교 신자가 그 약수터 위에 식당을 열었고, 이 영천사는 1920년경 지금 정읍 화엄사에 계시는 경산스님이 이 약수터 위에 절을 창건했다. 그 후 1960년경 선우스님이 대웅전을 개축하고 산신각과 종각을 신축했으며 2동의 요사도 새로 마련하여 사찰의 규모를 갖추었다. 영천사 위쪽 30m 지점에 문수사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황산5길 106-28

월명사(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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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명사(김제)

김제의 월명사는 1957년 승려 이영기가 창건한 한국불교 태고종 소속 사찰이다. 사찰은 금산사 입구 제비산 중턱에 자리하여 산세가 수려하고 앞으로는 금산저수지가 있어 주위 경관이 아름다운 곳으로 유명하다. 제비산 중턱 경사진 자리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 용화전이 있으며, 양 옆에 선방과 산신각이 자리하고 있다. 가파른 경사 아래에 염불당이 있고, 그 옆에 새로 지은 양옥 요사채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7길 12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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