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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152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152페이지입니다.

천양정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천양정

천양정은 조선시대 한량들이 활쏘기 연습을 위해 활터에 세운 것이다. 숙종 38년(1712)에 다가천 서쪽 냇가에 세웠으나 얼마 후 홍수로 떠내려 가버렸다. 그 뒤 경종 2년(1722)에 다가산 밑에 다가정(多佳亭)이란 정자를 짓고 활터로 사용했다. 순조 30년(1830)에는 이곳에 또 다른 정자를 세우고 옛 이름을 따서 천양정이라 했다. 이후 북향인 다가정은 젊은 한량들 전용으로, 아늑한 골짜기에 남향으로 자리 잡은 천양정은 주로 노인층이 사용하게 되었다. ‘천양(穿楊)’이란 뜻은 버들잎을 화살로 꿰뚫는다는 것으로, 신묘한 활 솜씨로 이름 높았던 조선 태조 이성계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전주천서로 237

예종대왕 태실 및 비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예종대왕 태실 및 비

예종대왕태실 및 비는 조선 8대 임금인 예종의 태(胎)를 봉안한 태실과 태실비이다. 왕이나 왕실의 자손이 태어났을 때 탯줄을 모셔두는 곳을 태실이라 하며, 완주군 구이면 원덕리 태실 마을 뒷산에 있던 것을 오늘날의 위치로 옮겼다. 조선시대 왕실의 태실과 태실비의 대표적인 사례로, 조선왕실의 제왕문화와 태실문화를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유산이다. 이 태실은 팔각형 돌난간 안에 기단석을 놓고 그 위에 둥근 돌을 얹은 다음 지붕돌로 덮었다. 비석은 태실과 함께 옮긴 것으로, 예종의 태실임을 알리는 글과 비석의 건립 연대를 앞, 뒷면에 각각 새겼는데, 건립연대는 선조 11년(1578)이다. 잘 보존된 거북 모양의 받침돌과 뿔 없는 용의 모습을 새긴 머리 돌이 돋보이는 비석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태조로 44 (풍남동3가)

전주전통한지원
문화관광전북특별자치도

전주전통한지원

전통 한지 제조 기법이 오롯이 재현되는 전주전통한지원은 천년 정신이 담긴 순수 우리 한지만을 생산하는 곳이다. 이곳에서 생산되는 한지의 80% 이상이 일본에 수출되고 나머지는 국내에서 소비되고 있다. 한지는 다른 종이들과는 달리 조상들의 장인정신이 배어있는 소중한 유산으로 한지 자체가 하나의 예술품이다. 이곳에서는 한지 뜨기, 무늬 넣기, 말리기 등의 한지 제작 과정을 배워볼 수 있다. 도보 5분 이내에 전주한옥마을역사관, 전주자수박물관, 전주부채문화관이 있어 전주전통한지원과 같이 방문하기 용이하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한지길 100-10 (풍남동3가)

전주목판서화체험관
문화관광전북특별자치도

전주목판서화체험관

전주목판서화체험관은 전주한옥마을에 위치해 한국 목판 인쇄 문화의 맥을 이어가고 그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복원 사업, 전시, 체험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최초의 한글 문화유산인 용비어천가의 목판과 간행본 복원, 초조대장경 권자본 복원 사업을 수행하고 있으며 한글 고전소설인 완판본을 목판으로 복원하여 출판하고 있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목판화 한지 벽걸이 채색 체험, 먹으로 찍은 목판화에 색을 칠하는 목판화 엽서 봉투 체험, 옛책 만들기, 연필꽂이에 색한지를 붙여 와당 문양으로 장식하는 와당 연필꽂이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전주천동로 46 (교동)

장현식고택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장현식고택

장현식 선생은 전북 김제에서 만석군의 아들로 태어나 항일 독립운동을 재정적으로 지원한 독립운동가로 1942년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제2대 전북도지사(1949.8.17~12.14)를 역임하였다. 장현식 고택은 일찍이 여관과 호텔이 없었던 조선시대에 남원 호음실의 박씨 집과 함께 여행객들이 부담 없이 여장을 풀고 쉬어 가는 만석꾼 부잣집이었다. 거의 사흘마다 소 한 마리를 잡아서 과객 접대에 힘써 그들 사이에서 ‘노자돈 떨어지면 서도 장씨 집에 간다’는 말이 유행할 정도였다고 한다. 장현식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 등 4동을 전통방식으로 지었는데 근대 한옥의 변화를 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건축물이다. 목재 가공의 수준이 아주 정교해 전통한옥으로서 건축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119-6 (교동)

남천교 청연루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남천교 청연루

전주시 교동 한옥마을과 서학동을 잇는 남천교, 그리고 남천교 위에 세워진 팔작지붕을 한 청연루가 ‘전주 남천교 명품화사업’을 통하여 한옥마을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남천교(길이 82.5m, 폭 25m)는 이 자리에 있던 옛 홍예교의 이미지를 살려 아치형 교량 구조를 하고 있다. 다리 위에 세워진 청연루는 전주 8경 중 하나인 한벽청연인 한벽당과 대칭적 의미로 붙여진 이름이다. 청연루에 올라 앉아 동쪽을 바라보면 멀리 기린봉 자락에 자리 잡은 동고사가 아스라이 보인다. 남천교 위에 기와로 지붕을 얹고 목재로 기둥을 세워 청연루를 만들어 놓았는데, 그 모습이 천년고도다운 격조가 있고 고풍이 완연하다. 완산팔경 가운데 하나가 ‘한벽청연’이다. ‘한벽’과 ‘청연’을 대구로 사용해서 다리 위쪽으로 한벽루가 있으니, 그 아래쪽에다가 청연루를 지은 것이다. 다리 위에 이런 정자가 있으니 여름엔 아주 시원할 듯하다. 무지개 모양의 교각과 한옥 모양의 다리가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천경로 40

황강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황강서원

1603년(선조 36)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문정[李文挺], 이백유[李伯由], 이경동[李瓊仝], 이목[李穆]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황강서원은 원래 곤지산 아래에 있었으나 임진왜란 때 병화로 부서진 뒤 중건하였는데 고종 6년(1869) 철폐되었다가 1898년 3월에 다시 전주 서쪽 황방산 아래에 있는 황강선생 유허지에 중건하였다. 복원과 동시에 유분[柳坋]과 이덕린[李德隣]을 추가 배향하고, 그 뒤 강해우[姜海遇]를 추가 배향하였다. 매년 3월 초정[初丁 : 첫 번째 丁日]에 향사를 지낸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황강서원5길 8-7 (효자동3가)

화산서원비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화산서원비

화산서원은 전라북도에서는 가장 오래 된 서원으로 조선 선조 11년(1578)에 전주 사림들이 건립하였으며, 중종 때 전주부윤과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이언적, 송인수 등을 봉사하였다. 전북지방에서는 가장 오래된 서원이었으나, 대원군이 많은 서원을 철폐하고 정비한 까닭에 서원 자리에는 비를 세워 그 흔적을 후세인에게 전하고 있다. 다시 말해 화산서원이 있었던 터에 남아 있는 비로, 서원의 흔적을 전하고자 세운 것이다. 규모 1기에 이르는 화산서원비는 1984년 4월 1일에 전라북도 지방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우고 머릿돌을 올려둔 모습이다. 납작하게 표현된 거북은 독특하게도 옆을 향하고 있으며, 머릿돌에는 구름 속을 거니는 용의 무늬가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다. 비몸에 새긴 비문은 송시열이 지은 것이다. 또 이 자리에는 전주향교가 139년 동안 있었으나 현재는 교동으로 이전을 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중화산동2가

동고산성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동고산성

동고산성은 통일신라시대에 쌓은 산성으로 조선 순조 때 건너편 산성을 ‘남고산성’이라 부르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둘레는 1,712m이며, 동서방향으로 314m, 남북방향으로 256m에 이르는 비교적 대규모의 산성이다. 성벽은 포곡식 산성 방식으로 만들어졌으며, 예로부터 후백제를 세운 견훤왕이 도읍으로 삼았던 완산주의 궁성으로 추정되고 있다. 1990년 발굴조사에서 전면 22칸, 측면 3칸으로 총 66칸 넓이의 건물 터가 조사되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발굴 조사된 단일 건물로 가장 큰 규모로, 이곳이 견훤왕의 궁성이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대성동

고산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고산

대산면, 성송면에 걸쳐 있는 고산은 해발 527m의 산이다. 고산은 높지는 않지만 주변 평야에 솟아 있어서 1,000m 높이의 다른 산들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을 정도이다. 산 정상에선 주변 경치를 한눈에 바라 볼 수 있고 울창한 송림과 여러 기암괴석이 산행하는 이의 눈을 즐겁게 한다. 고산에는 용추굴, 각시봉, 깃대봉, 매바위, 용두암, 거북바위, 촛대봉, 치마바위 등의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고 복분자 산딸기 평전과 늪지대 등 자연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고산에는 선사시대의 고인돌이 수백여기 있으며, 후삼국시대에 쌓은 고산산성이 자리잡고 있다. 고산산성의 길이는 약 5,000m 정도이고 높이 5m인데 지형에 따라 다르며 자연을 이용한 토석 혼축성이다. 축성 양식은 포곡형이고 석축의 공법은 내탁법을 써서 외면은 석축으로 쌓고 내면은 흙과 잡석으로 다져서 축성 하였다. 외면은 자연석을 수직 혹은 물림 쌓기로 아랫돌에 비해 윗돌을 5~6㎝씩 안으로 물려 쌓은 방식을 썼다. 성문은 남문과 북문의 형태가 남아 있으나 동문과 서문은 찾아볼 수 없다. 문헌에는 산성의 둘레가 8,100척이고 내유3천이라는 기록이 있으며, 성내에는 용지와 서봉사, 수고암등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현재 산성의 형태는 600m 정도가 남아 있고 거의 도태된 상태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성송면 산수리

고창향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고창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들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고창향교는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월곡리에 있던 학당사을 옮겨온 것으로, 조선 중종 7년(1512)에 다시 지었다. 대성전은 선조 38년(1605)에 수리하였고, 1974년에 기와를 보수하였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고창향교는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필요한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향교길 27-3

김기서강학당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김기서강학당

조산저수지 가는 길의 축령산 자락이 이어진 마을에 위치한 조선 전기 강학당으로, 김기서 강학당은 광산김씨 사당인 노산사 안에 있다. 김기서는 광산인으로, 자는 시견, 호는 돈목재이다. 성균관 직강으로 통정대부까지 오른 매산 김석원의 조카로, 효성이 지극하여 1508년 중종으로부터 광릉 참봉에 제수되고 장려도 받았다고 한다. 이후 조광조 문하에 들어가 매형 양팽손 등과 강론하다 1519년(중종 14)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조광조와 신진사림들이 대거 숙청당하자 상평리에 은거하면서 두문불출하였다. 조광조의 학문에 심취하여 후진 양성에 전념하고자 김기서 강학당을 세웠다. 원래 이 자리에는 전불사의 불당이 있었다. 1548년(명종 3)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기와지붕이고, 내부는 베갯마루 대청의 중당 2칸, 좌협실 2칸, 우협실 1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조선 초기의 소박한 공청건물이다. 광산김씨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수면 사동길 40-160

김정회고가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김정회고가

조선 개국공신 김사형의 후손으로 학자이며 예술가인 보정 김정회(1903∼1970)의 생가로 김정회의 고조 때부터 살던 곳이다. 고가가 위치한 도산마을은 안동김씨와 청도김씨의 세거지로서, 다른 곳에 비해 고가가 많이 남아 있는데, 김정회고가는 그중에서도 가장 오래된 고가이다. 현재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 사랑채, 사당, 곳간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앞면 6칸·옆면 3칸의 안채는 지붕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며, 후대에 양쪽에 각각 1칸씩 덧붙였다. 안마당보다 높이 자리 잡고 있는 안채의 양식은 다른 집에 비하여 특이하다. 안채의 앞쪽에 위치한 사랑채는 앞면 4칸·옆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안채와 사랑채에 비해 훨씬 뒤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 행랑채는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 옆면이 사람 인자 모양인 간결한 맞배지붕이다. 안채의 양쪽으로 곳간채가 1동씩 있으며, 뒤로는 사당이 있다. 조선 후기에 지은 전형적인 상류계층의 가옥으로 현재 후손이 거주하고 있다. 외부관람은 가능하며 내부관람 여부는 사전에 방문 가능 여부를 문의해야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도산1길 16

선운산 낙조대
문화관광전북특별자치도

선운산 낙조대

낙조대는 선운산도립공원 내에 위치한 곳이다. 낙조대는 해발 335m 밖에 안되지만 눈앞의 도천저수지와 칠산 앞바다와 곰소만 등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선운산의 낙조대는 접근하기가 쉬워 온 가족이 함께 서해로 떨어지는 장엄한 낙조의 장관을 만끽할 수 있다. 선운산 낙조대에서 보는 일몰은 주변의 저수지와 능선이 어울려 일대 장관이다. 하늘과 바다가 한 빛으로 붉게 물들어 태양이 바닷물 속으로 빠져드는 황홀한 경치를 볼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158-6

고창 분청사기요지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고창 분청사기요지

전북 고창군 수동리에 있는 분청사기 가마터로, 구릉 위 작은 저수지의 경사진 언덕에 자리하고 있으며, 가마벽 부분·도자기 만들던 도구·분청사기 조각들이 널려있다. 그릇은 대접·접시·잔·항아리·큰 사발 조각이 주류를 이루며, 유약의 색은 회청색을 띠고 그릇을 빚던 흙에는 이물질이 많이 섞여 있다. 문양은 연꽃무늬, 물고기 무늬, 모란무늬들이 대범하게 그려져 있다. 특히 일부 그릇에 ‘내섬(內贍)’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전라도지방의 분청사기 가마터에서 널리 발견되는 것으로 관청용 분청사기도 제작하였음을 추정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부안면 수동리

선운사 백파율사비
문화관광전북특별자치도

선운사 백파율사비

백파율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조성한 이 비석은 선운사 입구로 들어서서 오른쪽 숲 속의 부도 밭에 세워져 있다. 조선 철종 9년(1858)에 건립한 것으로 비명(碑銘)은 조선시대의 대명필가인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필적이다. 조선조의 억불정책에도 불구하고 오랜 침체기를 헤치며 조선후기 불교의 참신한 종풍(宗風)을 일으킨 화엄종주(華嚴宗主) 백파율사의 업적이 적혀 있는 이 비석은, 네모난 받침 위에 몸통을 세우고 지붕돌을 씌운 모습으로 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신림저수지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신림저수지

신림저수지는 신림면의 자포리와 송용리, 반룡리, 세곡리에 걸쳐 있으며, 신림면과 부안면, 흥덕면 일대에 관개용수를 공급하기 위하여 건립된 저수지이다. 1952년 착공하여 1956년에 준공되었으며 고창의 33개 저수지 중 가장 규모가 크다. 신림저수지는 방장산(734m)에서 발원하는 갈곡천 상류를 막아 만든 평지형 저수지로 방장산에서 발원한 맑은 물이 흘러들어 수원이 좋고 수심이 깊어 안정된 좋은 낚시터가 형성되어 있다. 주로 대형 붕어와 잉어가 잡힌다. 신림저수지로 흘러드는 소하천으로는 세곡천, 유점천, 반룡천, 덕화천, 월평천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 왕림로 130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용문굴

선운사 창건설화에 등장하는 굴로 아산면 삼인리 선운산의 도솔암을 지나 자리하고 있다. 이 굴에는 예전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백제 위덕왕 24년(577) 검단선사가 절을 세울 목적으로 선운산을 찾았다고 한다. 그런데 와서 보니 선운사 자리의 연못에 이미 용이 한 마리 살고 있었다. 그 용은 검단선사에 의해 쫓겨났고, 급히 도망치다가 바위에 부딪히며 굴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용문굴이다. 해발 336m의 선운산에는 용문굴 외에 신라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이 있다. 약 3시간 정도 소요되는 진흥굴, 도솔암, 용문굴, 낙조대, 천마봉 산행은 그리 힘들지 않게 둘러볼 수 있는 코스이다. 오전에 천마봉에 오르면 도솔암 마애불에 해가 들기 시작하는데, 앙다문 부처의 입이 빛을 받아 미소 짓는 것처럼 보인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용추폭포(고창)

용추폭포은 구가평교를 건너 거창신씨 재실이 있는 용추동을 지나 방장산(734m) 등산로로 들어서 용추골로 내려가면 바로 나온다. 높이가 약 20여 척에 달하고 폭포수가 떨어지는 곳엔 둘레가 20여 척에 달하는 용소라고 하는 맑은 못이 있다. 폭포수가 쏟아져 내리는 바위가 마치 선녀가 목욕하던 원형 욕조처럼 보인다. 물은 한 여름에도 냉기가 흘러 발을 담그고 2-3분을 넘기기 힘들 정도로 차가우며, 주위는 온통 바위와 숲으로 우거져 있어 밖에서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이다. 그 경치가 말할 수 없이 좋아 사시사철 이곳을 찾는 이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용추폭포에는 전설이 담겨 있다. 하늘로 오르던 용이 아낙네와 눈이 마주치고, 그만 용소로 떨어져 큰 지네로 변하고 말았다. 이 용이 떨어진 곳에 깊은 웅덩이가 생기고 평지가 깊이 파이면서 20여 척의 절벽이 생겨 지금의 폭포가 되었다고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리

전봉준 장군 생가터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전봉준 장군 생가터

동학농민혁명의 핵심 인물이자 지도자였던 전봉준 장군은 1855년 12월 3일 이곳 고창읍 죽림리 63번지 당촌 마을에서 서당 훈장을 하던 전장혁의 아들로 태어나 13세 무렵까지 살았던 곳이다. 당시에는 서당, 안채, 사랑채 등이 있었으나 동학농민혁명 기간 중 모두 소실되었다. 오척 단신의 작은 체구 때문에 녹두라는 별명을 얻어 일명 녹두장군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전봉준 장군이 주도한 동학농민혁명은 봉건적 지배세력에 의한 수탈과 억압에 반대한 민족운동이며 제국주의적 외세 침략에 맞선 국권수호운동으로 갑오개혁의 도하선이 되었으며 보국안민의 기치를 높이 세운 최초의 민중항쟁이었다. 전봉준 생가터는 한국 역사상 최대의 혁명적 사건인 동학농민혁명을 도모하고 이끈 최고 지도자가 태어나고 유년기를 보낸 상징적인 장소로 가치를 인정받아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됐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당촌길 41-8

진흥굴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진흥굴

신라 제24대 진흥왕은 어린 시절부터 불교에 뜻을 두었다가 말년, 왕위를 물려주고 선운사로 와서 승려가 되었는데, 진흥왕이 맨 먼저 찾아온 곳은 지금 선운산의 사자암 앞에 있는 석굴로서 좌변굴이라 불리는 곳이었다. 후세에 이 굴의 명칭을 진흥굴이라 고친 것은 진흥왕이 친히 거처하며 수도하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흥왕은 승려가 된 후 이름을 법운자라 칭하고 사랑하는 공주 중애를 위하여 중애암, 왕비의 별호인 도솔의 이름을 따서 도솔암을 건립하고 이곳에서 일생을 마쳤다고 한다. 진흥굴 바로 앞에는 삼인리의 장사송이 있다. 나무의 나이는 약 600살 정도로 추정되며, 나무 높이는 23m이다. 고창 사람들은 이 나무를 ‘장사송’ 또는, ‘진흥송’이라고 하는데, 장사송은 이 지역의 옛 이름이 장사현이었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며, 진흥송은 옛날 진흥왕이 수도했다는 진흥굴 앞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나무의 모양이 아름답고 생육상태가 양호하며 보기 드물게 오래된 소나무로써 보존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선운사로 250

천마봉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천마봉

아산면 삼인리에 있는 선운산 천마봉은 도솔암 남쪽에 자리 잡은 봉우리이다. 기상이 준엄하여 장군봉이라고도 한다. 진흥굴을 지나 도솔암 입구에 도착하면 하늘을 찌를 듯한 절벽이 나오는데 이곳이 바로 천마봉이다. 천마봉에 서면 서해바다가 한눈에 들어오고 도솔천의 비경이 발아래 내려다보이며 선운사 안쪽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또한, 이곳은 아름다운 일몰을 감상할 수도 있는 곳이기도 하다. 천마봉은 말이 하늘을 뛰어오르는 형상을 지녔다고 해서 나온 말로 인접한 낙조대와 함께 가장 많이 다녀가는 관광명소 중 하나이다. 천마봉은 수리봉과 함께 선운산의 유명한 산행 코스로 길이는 10km가 넘는다. 거리가 꽤 긴 산행코스이지만 고도가 높지 않고 경사도 가파르지 않아 어렵지 않게 완주할 수 있는 코스이기도 하다. 산운사 원점 회귀 기준으로 천마봉와 낙조대를 둘러보는 것은 선운산과 천마봉이 선사하는 비경을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경험이 될 것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삼인리

황윤석 생가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황윤석 생가

조선 후기 실학파 언어학자였던 이재 황윤석(1729~1791)의 생가이다. 그의 선친인 황전이 건립하였다. 이재 황윤석은 당시 학자가 탐구할 수 있는 모든 분야에 걸쳐 연구한 학자였고 유학자이기도 했다. 높이 80㎝의 잡석기단 위에 세워진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초가집으로서 그 규모가 매우 큰 건물로 전형적인 남부 지방의 가옥 형태를 취하고 있다. 동쪽 맨 끝 칸은 마루로 되어 있고 나머지는 방 한 칸, 대청 두 칸, 부엌 한 칸의 순서로 지어졌는데 대청 북쪽 벽 위에 평해황씨 선조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원래 안채 뒤편에 사당이 있었으나 터만 남아 있고 사랑채, 문간채는 소실되었던 것을 1909년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고택의 지붕은 초가지붕인데 중산층 가옥이라 충분히 기와를 얹을 수 있었는데 기와를 덮으면 혈이 눌려서 집안이 좋지 않다는 풍문 때문에 초가를 얹었다고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성내면 조동길 33

흥성동헌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흥성동헌

흥성동헌은 선운산IC 인근 고창 흥덕면 소재지에 위치한 조선시대 관아 건물이다. 이 건물은 본래 흥덕객사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1983년 해체보수하는 과정에 상량문이 발견되어, 이를 통해 동헌이었음이 밝혀졌다. 상량문에는 흥성읍성의 동헌을 1807년(순조 7)에 이전하였다고 적혀 있다. 흥성은 흥덕의 옛 지명인데, 1914년에 무장면과 함께 고창군에 통폐합되었다. 흥성동헌은 홑처마지붕을 얹은 정면 5칸, 측면 3칸으로 그 규모가 아담하다. 건물의 양쪽 끝에는 온돌방, 정면 세 칸은 마루를 깔았다. 보통 국왕의 위패를 봉안하고 국왕이 있는 수도를 향해 예를 갖추는 정당과 함께 좌우에 여러 물품을 보관하는 익실을 따로 두는데 흥성동헌은 한 건물 안에서 모든 업무를 해결하였다. 1976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전라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주변에는 서해 줄포만, 동림저수지, 선운산, 선운사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흥덕면 동헌길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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