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51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151페이지입니다.

삼세오충렬사
삼세오충열사는 전북 익산시 용안면 중신리에 위치하고 있으며 1982년 8월 30일에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삼세오충열사는 3대에 걸쳐 나라를 위해 순절한 해주오씨(海州吳氏) 오충신(五忠臣)의 유적이 모여 있는 곳이다. 원래는 오응정(吳應鼎)과 그의 아들 욱(稶)과 직(稷), 그리고 직의 아들 방언(邦彦)을 배향하여 사충사(四忠祠)라 하였으나 근년에 오응정의 아들 동량(東亮)을 추향하여 오충열사(五忠烈祠)라 부르고 있다. 오응정(1548∼1597)은 전라도 용안현 출신으로 자는 문중(文中), 호는 완월당(翫月堂)이다. 조선 선조 7년(1574년) 무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에서 치적(治積)을 쌓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순천부사 겸 총 병부 문안사(順天府使兼總兵府問安使) 전라도 우방어사(全羅道右防禦使)가 되어 어모장군(禦侮將軍) 욱, 동량과 더불어 남원성(南原城) 전투에 참전하여 분전하였으나 중과부적으로 패하게 되자 화약더미 속에서 세 부자가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오응정의 차남 오직(1574∼1619)은 광해군 때 도원수(都元帥) 강홍립(康弘立) 막하의 우영천총(右營千摠)으로 요동심하 전투에 출전하였으나 강홍립이 후금군에 항복하자 격분하여 부차(富車)에서 적과 싸우다 온 몸에 화살을 맞고 전사하였다. 그의 아들 방언(1588∼1637)은 병자호란 때 남한산성에서 적과 싸우다 인조대에 삼전도 굴욕을 당하자 남한강에 투신자살하였다. 이를 기리기 위해 조선 숙종 7년(1681)에 충열사를 세웠다. 해주오씨(海州吳氏) 오충신(五忠臣)의 유적 관리 사무소를 지나면 광장입구에는 정문인 충신문이 있다. 충신문을 지나 올림픽기념 숲을 걷다보면 외삼문인 복절문에 이르고 복절문 좌측에는 기념관인 영국관이 있다. 내삼문인 장의문을 지나면 본사우인 삼세오충열사에 이른다. 여기에는 중앙에 오응정, 좌측에 동량과 욱, 우측에 직과 방언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삼세오충열사의 현판은 여산 권갑석 선생이 쓰셨다. 삼세오충열사를 나와 우측으로 가면 신도비와 오응정의 묘가 있고 정려각이 있다. 최근에는 모충제를 건립하였다. 충신문의 우측으로 가면 오충신의 묘와 오응운, 오응태, 오하몽, 오석근, 오식 등 직계선조의 묘가 있고 오영우, 오사고, 오희, 오사만, 오영수 등을 모신 삼신단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안면 현내로 468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
익산 춘포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은 1940년대에 농장 안에 지은 2층 건물로 건축면적 106.78㎡, 연면적 139.83㎡로 나무판자를 잇대어 지은 건물이다. 1층은 정방형에 가까운 평면으로 ㄱ자형의 복도를 따라 방들을 배열하였고 2층에는 외부의 전경을 감상할 수 있는 발코니가 돌출되어 있어 독특한 외관을 이루고 있다. 건물 지붕은 팔작지붕 위에 일식기와를 올렸으며 외벽은 비늘벽으로 처리하였다. 1층 내부는 다다미방이 온돌로 바뀌고 칸막이벽을 없애는 등 대부분 개조되어 있다. 그러나 2층은 넓은 방에 다다미가 깔려 있고 반침과 도코노마가 그대로 남아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춘포면 춘포4길 48
3.1동산
3.1 동산은 오수면 오수리 보통학교 학생들에 의하여 3월 10일 만세 시위가 시작된 임실 지역의 3.1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동산이다. 오수의 3.1 독립만세운동은 유교, 불교, 천도교, 기독교 등 모든 종교인과 교육자, 학생, 민중들이 다 함께 일치단결한 항일항쟁이었다. 동산 내 부대시설은 기념비 외에도 독립 선언 비와 팔각정, 3.1문 등이 있다. 동산 내의 3.1 운동 기념비는 기미년의 숭고한 3.1 독립만세운동의 정신을 이어받고 임실 지역의 뜨거운 자주독립 정신을 기리며 희생당하신 순국선열들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동산을 둘러본 후에 가까운 곳에 죽림암, 귀래정, 순창남계리석장승 외에도 많은 관광지가 있어 함께 들러보면 좋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운수사(임실)
전라북도 고덕산에 있는 사찰로 한국불교태고종에 소속되어 있다. 18세기 후반에 창건되었다. 당시 이 자리에는 백제 때의 석불이 있었으며, 이 석불을 모시기 위해 절을 세웠다고 한다. 창건 당시에는 운수암이라고 했는데, 절 이름은 근처의 지명 운수골에서 따온 것이다. 이후의 연혁이 전하지 않아 자세한 절의 역사는 알 수 없다. 최근에 주지로 부임한 법진이 절 이름을 운수사로 바꾸었다. 건물로는 법당과 미륵당, 요사채가 있고, 유물로는 미륵석불이 전한다. 미륵석불은 조성 기법으로 볼 때 삼국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는 2m에 이른다. 이 석불에는 전설이 하나 전한다. 옛날 화적떼가 임실읍의 부잣집만 골라 재산을 훔쳐 달아났다. 이들은 밤새도록 도망 다녔으나 계속 읍내만 맴돌다가 붙잡혔는데, 이는 미륵석불의 영험 때문이었다고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봉황10길 109

덕재산
덕재산은 해발 484m의 낮은 산이지만 소리 없이 등산객들 사이에서 유명해진 산이다. 지리산이나 설악산처럼 웅장하진 않지만 덕재봉, 옥녀봉, 매봉을 거쳐 아침재로 이어지는 종주코스는 아기자기한 산행의 묘미를 느끼기에 충분하다. 정상에서는 팔공산부터 오수면까지 시야가 확 트인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낮은 산에서는 보기 드문 조망을 자랑한다. 산행은 지사면 안하마을 주차장에서 출발해 세 갈래의 코스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능선을 따라 난 임도는 트레킹이나 자전거 라이딩을 즐기기에도 좋은 코스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성수면 봉강리

용추계곡
용추계곡은 임실의 명산 백련산에서 발원한 구고천 상류 두복저수지 밑에 있는 층암 괴석 사이를 흐르는 물이 모여서 형성한 계곡이다. 저수지인 용추제와 용추2제의 중간에 위치한 용추계곡은 저수지가 축조되기 이전에는 용추폭포와 용소, 그리고 용이 승천할 때 앉아있던 발자국이 있었다 하여 관광명소로 손꼽혔다. 용추제가 축조된 후로는 흐르는 물이 적어 용소가 메워져 옛날과 같지 않지만 비가 내리면 위에서부터 내리쏟아지는 용추폭포의 물줄기가 지금도 장관을 이룬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청웅면 두복리

김복규·김기종 효자 정려비 및 정판
임실의 효충서원 안에는 김복규, 김기종 부자의 효행을 기리는 정려비가 있다. 정려비란 충신·효자·열녀 등의 언행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세우는 비이다. 효충서원 경내에는 김복규, 김기종 부자의 정려비 2기가 서 있고 정려각이 세워져 있다. 이것은 조선 철종 6년(1885)에 세운 것으로, 이조참판 서유훈이 왕의 명을 받들어 건립하였다. 김복규는 효심이 지극한 이로 16세에 부친상을 당하였으나, 묘지를 정하지 못한 채 밤낮으로 슬픔을 이기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꿈에 나타난 도사가 일러준 대로 약을 구해 아버지께 다려드리니 다시 깨어나 천수를 누리게 되었다. 이러한 그의 효행을 듣고 나라에서는 공조참판 동지의금부사의 벼슬을 내려주었다. 그의 아들 기종 역시 아버지에 대한 효가 지극하여 부모상을 당하자 3년간을 묘 옆에 초막을 짓고 살며 애통해하였다. 그때의 울음소리가 마치 호랑이의 울음소리 같았다 하여 마을 이름을 호동[虎洞]으로 바꾸어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비는 낮은 사각받침돌 위로 비몸을 세운 간결한 모습으로, 앞면에는 각각 비의 제목을 세로로 새겼는데, 추사 김정희가 쓴 글씨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임삼로 1590-20
주암서원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주암서원은 임실군 방계리에 있는 서원으로 1714년에 남원부 지사방 주암촌에 사우로 창건되었는데 연촌 최덕지를 주벽으로 암계 최연손을 배향하였다. 그 뒤 1787년 율계 장급, 사촌 장경세를 추배 하였다. 1871년 조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59년 복설 되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이다. 매년 음력 3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방계3길 46-1
영천서원
조선 중종(재위 1506∼1544) 때 기묘사화로 희생된 안처순을 중심으로 정환·정황·이대병 등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안처순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지방학교를 발전시키고자 노력한 사람이다. 영천서원은 광해군 11년(1619)에 세웠으며, 숙종 12년(1686)에 나라에서 현판을 내려 사액서원이 되었다. 고종 5년(1868)에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에 후손들이 다시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공부하는 장소인 강당 역시 맞배지붕으로 꾸몄으며,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되어 있다. 이 서원은 근처에 있는 30여 개 서원 중에서 유일한 사액서원으로 권위가 높아 뛰어난 학자들이 멀리서까지 몰려왔다고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영천3길 33
국립임실호국원
국립임실호국원은 임실 읍내에서 순창, 강진 방면으로 약 12㎞ 지점, 백련리에 있다. 국립임실호국원은 6.25 전쟁 시 조국 수호를 위해 신명을 바치셨던 참전용사와 자유우방을 돕기 위해 월남에 참전했던 월남참전용사 그리고 국가유공자들의 고귀한 업적과 공적을 기리며 이분들의 위훈을 추모하기 위하여 설립되었다. 국립임실호국원은 현충탑, 현충문, 충렬관, 현충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충탑/현충문은 유가족과 참배객을 위한 시설로서 호국영령들의 위훈을 영구히 추앙하고자 중앙에 높이 26m의 탑이 세워져 있고 좌우 측에 호국영령의 승천을 기원하는 비천상과 자유와 평화를 기리는 군상 부조가 있다. 현충관은 호국영령들의 안장식을 거행하는 행사장으로 1층은 168석의 합동안장식 행사장과 임시 봉안실이 마련되어 있고, 2층은 호국안보전시관으로 우리 민족의 전쟁 역사를 한눈으로 볼 수 있으며, 호국용사들의 유품도 전시되어 있다. 충렬관은 2001년 1월 1일 이전에 사망하신 호국영령들을 안치하는 곳으로 지하 1층과 지상 2층에 총 3만 기를 안치할 수 있으며, 1층에는 안치전 가정의례를 지낼 수 있는 16개의 제단이 마련되어 있어 삼우제나 참배 시 이용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강진면 호국로 420

오송제
도심의 생태공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전북 전주 오송제는 산소공장으로 불리는 오리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또 이곳에서는 청정지역에서 서식하는 각종 곤충들도 서식하고 있어 도심 속 생태의 ‘보고(寶庫)’로 남겨진 생태습지이다. 오송제는 만수면적이 3.5㏊, 총저수량 4만 7,200㎥, 유효저수량은 4만 5,400㎥로 주변에 과수원과 논이 인접하고 있으며 상류지역에는 산림청의 희귀 및 멸종위기식물종인 ‘낙지다리’가 군락을 이루고 있다. 특히 오송제에는 청정지역에서 서식하는 밀잠자리와 노란잠자리, 깃동잠자리, 모메뚜기, 게아제비, 풍뎅이, 네팔나비, 부처나비, 소금쟁이 등 육상곤충상이 유일하게 서식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건지산에 둘러싸여 있는 오송제 주변에는 이산화탄소(CO₂)의 흡수역할을 하고 산소(O₂)가 생산되는 오리나무가 군락지 숲속을 이루고 있다. 이와 함께 부들과 갈대, 말즘 등 다양한 수생식물과 붕어, 잉어, 송사리, 동자개 등 4목 5과 8종이 서식하면서 황새와 기러기, 딱따구리, 두루미, 쇠오리, 기러기 등 철새들이 둥지를 틀고 잠을 자는 등 생태호수로 조건을 두루 갖추고 있다. 봄이면 생명의 시작을 알리고 여름이면 그늘을 제공하고 가을이면 오색단풍으로 물들며 겨울이 되면 멋스러운 하얀 옷을 입은 오송제가 찾는 이들을 반긴다. 올렛길이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며 대한민국에 걷기열풍을 몰고 왔다. 걷기가 사랑받는 이유는 남녀노소 누구나 특별한 장비나 경제적인 투자 없이도 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유산소성 운동이며 가족이나 친구, 연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 경관까지 즐길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오송제는 걸으면서 건강도 찾고 자연과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다. 가족, 연인, 친구와 함께 산새가 노래하고 자연이 함께하는 오송제를 찾아 걸어보자! 건강은 물론 맑은 심신은 덤으로 찾아올 것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덕진구 송천동1가

왜가리서식지
임실읍에서 순창 가는 봉황로에서 50m 정도 떨어진 임실읍 성가리 조그마한 야산에는 해마다 왜가리와 백로 천여 마리가 날아들어 장관을 이룬다. 왜가리와 백로들은 매년 봄이 되면 떼 지어 이곳에 날아들어 둥지를 틀고 서식하다가 가을이면 남쪽으로 되돌아가고 있다. 이때 5천 여 평 되는 소나무 숲에 둥지를 틀고 내려앉은 모습이 마치 선경(仙境)을 방불케 하여 각양각지에서 내국인은 물론 외국인들까지도 이 장관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 찾아오기도 한다. 이곳에 백로들이 날아들기 시작한 것은 구한말, 이 지방의 거부 진재황이 여기에 별장을 짓고 백송 42주와 느티나무를 심어 숲을 이루면서부터이다. 지금은 별장은 없어지고 마을이 형성되어 있으며 10여 년 전만 해도 4천여 마리에 달하던 백로가 해마다 그 수가 줄어 근래에는 5백여 마리 지나지 않지만 주민들의 따뜻한 보살핌과 군의 노력으로 철새 도래지로 자리 잡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성가리

대정저수지
대정저수지는 조용하고, 고즈넉한 분위기로 인해 사람들이 알음알음 찾아오는 곳이다. 사람들이 찾는 이유는 희귀 식물로 지정된 가시연꽃이 자생하고 있다. 가시연꽃은 세계적으로 1속 1종 밖에 없는 한해살이 물풀로 연꽃의 잎은 뿌리줄기에서 나와 물 위에 뜨고 잎의 앞면은 주름지고 가시가 있으며 뒷면은 흑자색, 꽃은 자줏빛으로 주로 10월에 피는데, 연잎과 꽃받침에도 가시가 돋아나 흡사 선인장에 꽃이 피어있는 모습을 보는 것 같다. 대말방죽 숲은 전주에서 남원으로 가는 국도변에 자리 잡고 있으며, 주변에는 아름드리 노송과 왕버드나무가 긴 세월 자리 잡고 있어 아늑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오수면 대정리

오수의견공원
임실 오수의견공원은 지역에 내려오는 의로운 개 이야기와 보은정신에서 착안해 조성한 테마파크이다. 넓고 푸른 잔디밭과 반려견 전용 캠핑시설이 있으며 오수의견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4월 의견문화제를 열고 반려견과 반려견의 주인들을 위한 다채로운 행사를 연다. 주인을 구하기 위해 제 목숨을 다한 오수개 이야기는 고려시대 문인 최자의 ‘보한집’에 기록되어 있으며 현행 교과서에도 실릴 만큼 유명하다. 김 개인이란 사람이 집에서 키우던 개와 외출해 술을 먹고 돌아가다가 숲에서 잠들었다. 갑자기 들불이 번져 주인이 위태로워지자, 개가 근처 냇가를 수백 번 왕복하며 몸에 적신 물로 불길을 막았다고 한다. 잠에서 깬 김 개인이 이 사실을 알고 몹시 슬퍼하며 죽은 개를 땅에 묻고, 갖고 있던 지팡이를 꽂았다. 이 지팡이가 나중에 커다란 나무가 됐고, 개 오(獒)와 나무 수(樹)를 합한 지명 ‘오수’가 여기서 유래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오수면 충효로 2096-16

오수리석불
오수리 석불은 전라북도 관월마을에 있는 고려시대 석불로 화강석으로 되어있다. 하체 부분이 땅에 묻혀 있던 것을 발굴하여 복원을 통해 입상을 완연하게 감상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석불은 광배와 불상이 하나의 돌로 되어있는데, 주형거신광배를 2줄 선으로 표시하고 안쪽에는 연꽃무늬를 바깥쪽에는 불꽃무늬, 맨 위에는 화불을 새겼다. 미륵불의 머리는 나발에 작은 상투 같은 육계가 있고, 둥근 얼굴이다. 귀는 길게 표현되었으며 목에는 3줄의 삼도가 있으며, 어깨는 좁고 체구는 다소 평편하다. 300여 년 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뒷산에서 집채만 한 바윗덩이가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본 아낙네 하나가 큰소리를 치자 바위가 그 자리에 우뚝 서 버렸으며 그것이 석불인 것을 알게 된 동네 사람들이 그때부터 불공을 드리고 정성을 다해 돌보고 있다고 한다. 그 뒤에 동네 사람 최경태가 움막 같은 집을 만들어 주었고 1910년경에 진안 마이산의 처사 이갑룡이 꿈에 ‘내가 옷을 벗고 있으니 집을 지어 달라 ’는 이 석불의 부탁을 받고, 개축하여 현재에 이른 것이라고 한다. 또 관리인 박양례에 의하면 이 석불은 난리 때마다 엄청나게 많은 땀을 흘리고 있다고 전하기도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오수면 오수10길 24-22

신안서원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신안서원은 1588년(선조 21) 한호겸의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그의 제자가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고 오랫동안 유지만 남아 있다가 1669년(현종 10)에 중건하였다. 1819년에는 함평의 자양서원에 있던 주자의 영정을 이곳으로 옮겨와 주벽으로 봉안하고 [신안]이라는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그 후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1936년에 단을 마련하여 제사를 지내오다가 1958년 10월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른다. 처음에는 이서와 한호겸만을 봉안하였으나, 1788년(정조 12)에 사림들의 결의에 따라 송경원, 한필성, 한명유, 송시태를 추가하고, 다시 김수, 강백진을 추가, 모두 9현을 배향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신안1길 8-19

이웅재고가
임실군 오수면 둔덕리에 소재한 이웅재 고가는 ‘전주 이씨 효령대군파 춘성정 종가’로 효령대군의 증손 춘성정 이담손이 낙향해 세운 것으로 이후 17대 종손이 거주하고 있는 약 460여 년 된 종가이다. 동촌마을은 전체가 완만한 경사지에 자리한 마을인데, 이웅재 고가는 그곳에서도 종가답게 산 쪽으로 물려 지으면서 마을 아래 길에서 보면 아래에서 위를 보는 것 같아 그 당당함이 눈에 띈다. 조선 중기 종가의 규범을 지키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위엄을 갖추었으면서도 드러내지 않는 품위를 갖추고 있다. 이곳은 사당, 안채, 사랑채, 행랑채, 대문채, 사당 등으로 구성되었다. 안채는 1909년 중수된 것으로 동서 양쪽에 날개를 달았으며, 큰 방의 오른쪽에 머릿방 대신 도장방이 있고, 그 남쪽에 머릿방을 두었다. 안채 앞쪽에는 안행랑채가 안채를 감싸고 있으며, 안행랑채는 방아실, 안변소, 안광, 책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안행랑채의 동쪽에는 一자형으로 각 2칸씩의 방을 갖추고 있다. 대문채는 솟을대문이며, ‘효자 증통정대부 이조참의 이문주 정려‘가 걸려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오수면 둔덕2길 59-10
학정리석불
삼계면 학정리 성문안 마을에 위치한 석불입상(石佛立像)이다. 세련미보다 둔중한 느낌을 주는 고려시대의 석불로 추정된다. 석불이 알려진 것은 성문안 마을 밭 가운데에 하반신이 땅에 묻혀있는 상태였으며, 대좌와 광배가 따로따로 떨어져 있었다. 2002년 석불의 발굴조사를 실시하여 석불의 크기는 높이 245㎝, 너비 98.8㎝, 두께 35.4㎝의 석불입상임이 밝혀졌다. 2003년부터 석불의 보호를 위하여 인근 성문사 법당으로 석불을 옮겨 임시 보존하고 있었는데 2014년부터 석불의 원래 위치로 환원할 것을 요구하는 민원이 제기됨에 따라 2016년 학정리 석불 이전계획을 수립하고 2017년 학정리 석불의 원래 위치였을 것으로 추정되는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2018년 시굴조사 결과에 따라 2019년 6월 원래 대좌가 있었던 곳으로 이전 설치하였다. 2022년 도지정문화재보수정비사업의 일환으로 보호각을 지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삼계면 학정2길 117-8

오괴정
임실군 삼계면 삼은리에 있는 오괴정은 뇌계리의 해주오씨 입향조인 돈암 오양손이 지은 정자이다. 높은 언덕에 자리하고 커다란 느티나무와 참나무숲에 둘러싸여 주변 경관이 수려하다. 정자는 잘 다듬은 화강암 주춧돌 위에 짧은 누하주를 받치고 두리기둥을 세워 지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기와로 된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며, 가운데에 방을 두고 사방에 퇴를 두른 전형적인 호남지방의 정자이다. 방에는 사방에 들어 열개문을 달아 필요할 때 주변의 경관을 감상할 수 있게 하였고 마루 주위에는 사방으로 계자각 난간을 둘렀다. 참봉 돈암 오양손은 한훤당 김굉필(1454-1504)의 제자이다.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 때 수원으로 피신하였다가 1521년(중종 16)에 남원 말천방 목기촌으로 옮겨 숨어 살던 중 이 정자를 지었는데 ‘오괴’라는 이름은 정자 옆에 심은 다섯 그루의 괴목(회화나무)에서 비롯되었다 한다. 이것은 옛날 중국의 왕진이 세 그루의 괴목을 심은 고사를 본 딴 것이다. 그 후로 이 정자는 그의 후손이나 이웃의 사림들이 모여 향음례를 행하기로 하였고, 글을 읽고 시를 짓기도 한 장소로 쓰여 오다가 불에 탄 것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삼계면 삼은2길 22-31

노동환가옥
전라북도 임실군 삼계면 후천마을에 있는 노동환 가옥은 조선시대의 향반 가옥 중 하나이다.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이 집은 제비가 알을 품는 형상의 명당 지에 위치하나 집을 바라보고 있는 앞산이 뱀의 머리혈인 사두혈이기에 이 집안에 부자나 인재가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사두의 기운을 누르고자 산머리에 강정이라는 정자를 세웠다는 전설이 있다. 노동환 가옥은 20여평의 부지 위에 건립되었고, 상량문에 [숭정기원후 경인삼월초육일인시견주 경인삼월십육일유시상량(崇禎紀元後庚寅三月初六日寅時堅柱庚寅三月十六日酉時上樑)]이 적혀있어 효종(1650)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일자형의 안채와 사랑채, 행랑채,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어 단출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돌로 낮게 쌓은 기단부 위에 사각형의 자연석을 다듬어 주춧돌로 놓고, 그 위에 네모나게 깎은 나무기둥을 세우고 홑처마에 팔작기와지붕을 얹었다. 이곳은 1986년 전라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으며, 현재 노동환 님께서 직접 생활하고 있는 가옥 이므로 내부 개방하지 않으며, 관람할 때에도 주의해야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삼계면 후천1길 19-20

효충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효충서원은 임실군 임실읍에 있는 서원으로 김복규, 김기종 부자의 효행을 기리는 서원이다. 조선 철종 6년(1885)에 세운 것으로, 이조참판 서유훈이 왕의 명을 받들어 건립하였다. 서원 안에는 강당과 효충묘, 고직사와 김복규, 김기종 부자의 정려비 2기가 있다. 정려비란 충신·효자·열녀 등의 언행과 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그들이 살던 마을 입구에 세우는 비이다. 이 정려비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에 지정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임삼로 1590-20

국사봉전망대
국사봉은 임실군 운암면에 위치한 해발 475m의 낮은 산이지만 주변에 높은 산이 없어 하늘과 가까운 느낌을 주는 산이다. 이 산의 가장 큰 매력은 정상에서 옥정호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는 점이며 일교차가 큰 날 새벽에는 운해가 장관을 이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옥정호는 임실읍에서 약 16㎞ 떨어진 섬진강 상류에 위치한 다목적댐으로 낚시는 제한되지만 벼락바위, 운암대교, 댐 주변 경관 등이 뛰어나 사계절 내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특히 봄·가을에 물안개가 피어오르는 아침 풍경은 사진작가들에게 인기 있는 촬영 장소로 손꼽힌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운암면 국사봉로 512
임실 오수망루
1940년경 붉은 벽돌을 이용하여 원기둥 모양으로 지은 높이 12m, 하부 지름 2.4m의 망루이다. 전국에 남아 있는 망루 가운데 가장 높으며 면소재지 한복판의 임실경찰서 오수지구대 앞마당에 서 있다. 주변 지역의 화재를 감시하고 빨치산 경계 등 비상 상황이나 야간 통행금지를 알리는 데 사용되었다. 도심지역에 위치하여 이 지역의 랜드마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원형으로 된 망루 위에 육각형의 망대가 올라앉아 있다. 육각의 각 면에는 구멍을 내어 사방을 둘러볼 수 있게 하였다. 그리고 이곳에 사이렌을 울리던 스피커 2개가 걸려 있다. 지름 65㎝의 망루 내부에는 벽을 따라 철제 계단이 놓여 있고 망루 1층에 작은 문이 달려 있다. (출처: 임실군 문화관광)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오수면 오수로 146

다가공원
전주시를 남에서 북서로 반월형으로 휘감고 도는 전주천을 따라가다 보면 바위벼랑이 냇물에 불쑥 내민 곳이 많다. 그중 수목이 울창하고 물에 비치는 바위의 절경이 볼 만하여 일찍부터 전주팔경인 곳, 5월이면 벼랑에는 하얀 꽃송이가 피어나는 이팝나무 군락으로 유명한 다가공원이 있다. 다가공원 내에는 천년 전주를 상징하는 듯이 300년이 넘은 고목들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또한, 다가공원에는 전주의 오랜 역사를 볼 수 있는 26기의 불망비와 선정비가 줄지어 서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전주천서로 231 (중화산동1가)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