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4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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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 남산 미륵곡 석조여래좌상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태화루
울산광역시 중구 태화로 300

경주 재매정
경상북도 경주시 교동

경주 동방동 와요지
경주 동방동 와요지는 1977년 택지 조성공사 도중에 우연히 발견된 가마터로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발굴조사하여 9기의 도자기와 기와를 굽던 가마터를 발굴하였다. 그중 1기를 조사한 결과 가마의 전체 길이는 10.5m, 넓이 1.72m인 구릉 경사면을 이용하여 만든 굴가마(등요)로 밝혀졌다. 도자기를 굽던 곳의 천장 부분 벽 일부가 남아있으며, 도자기를 빚던 곳과 굽던 방 사이에는 높은 벽이 있다. 출토된 기왓조각은 고려시대에 성행한 새 깃털 모양 무늬와 연꽃무늬의 장식 기와, 그리고 조선시대에 제작된 기와류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가마바닥에서 출토된 건륭이 새겨진 암막새는 가마터가 없어질 당시의 것으로 생각되며, 가마터의 제작시기를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 후기까지로 추정하게 한다. 가마를 운영하기 위해서는 토기와 기와를 만들 수 있는 양질의 흙과 물, 그리고 구워내기 위한 연료가 필요한데 이곳 동방동 일대는 조건을 모두 갖추고 있으며 서쪽으로는 교통로가 있어 운반도 용이하였기에 오랜 시간 도자기 생산을 담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동방동

경주 골굴암 마애여래좌상
골굴암의 높은 암벽에 있는 자연굴을 이용하여 만든 12개의 석굴 중 가장 윗부분에 있는 마애여래좌상이다. 조선시대 겸재 정선이 그린 ‘골굴석굴’에는 목조전실이 묘사되었으나 지금은 바위에 흔적만 남아있다. 민머리 위에는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높이 솟아있고, 윤곽이 뚜렷한 얼굴은 가늘어진 눈, 작은 입, 좁고 긴 코 등의 표현에서 이전보다 형식화가 진전된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입체감이 두드러진 얼굴에 비해 평면적인 신체는 어깨가 거의 수평을 이루면서 넓게 표현되었는데, 목과 가슴 윗부분은 손상되었다. 옷주름은 규칙적인 평행선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겨드랑이 사이에는 팔과 몸의 굴곡을 표시한 V자형 무늬가 있다. 암벽에 그대로 새긴 광배는 연꽃무늬가 새겨진 머리광배와 불상 둘레의 율동적인 불꽃무늬를 통해 흔적을 살필 수 있다. 평면적인 신체와 얇게 빚은 듯한 계단식의 옷주름, 겨드랑이 사이의 U자형 옷주름 등이 867년에 조성된 봉화 축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및 목조광배와 유사한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기림로 101-5

경주 능지탑지
이곳은 예로부터 능시탑 또는 연화탑으로 불렸던 능지탑이 있던 자리이다. 무너진 채 버려져 있던 탑을 신라삼산조사단이 1969년부터 수차례 조사하여 1979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정비하였다. 능지탑은 원래 기단의 네 면에 십이지신상을 세워 넣고 연꽃 모양의 무늬를 새긴 돌을 쌓아 탑신을 만든 5층탑으로 추정된다. 또한 발굴 중에 소조불상의 파편과 많은 양의 기와 조각들이 출토된 점으로 보아 탑의 네 면에 감실을 만들어 불상을 모셨던 것으로 보인다. 탑의 기단부는 돌을 다듬어 쌓고 윗면은 흙을 덮어 잔디를 심었다. 기단부 둘레에는 십이지신상 중 9구를 방위에 맞게 안기둥처럼 세웠다. 이중 8구는 낭산 동쪽 황복사 터 앞에 있던 미완성된 왕릉 터에서 옮겨온 것이다. 기단부 위쪽의 탑신부는 기단부와 같은 형태로 돌을 다듬어 쌓았는데, 위쪽에 굄돌을 한 단 더 올린 점이 기단부와는 다르다. 탑의 꼭대기는 사모지붕 모양으로 흙을 쌓아 마감하였다. 현재 탑 주변에는 정비하면서 사용하고 남은 연꽃 모양을 새긴 돌 36개가 쌓여 있고, 그 옆에 성격이 밝혀지지 않은 토단의 흔적이 남아 있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은 자신이 죽으면 10일 내에 왕궁 바깥뜰에서 검소하게 화장하라고 유언하였다. 그런데 실제로 탑에서 가까운 사천왕사지에서 문무왕릉비 조각이 발견되어 경주 능지탑지에서 문무왕을 화장한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능지탑이 능시탑으로 불렸던 것으로 보인다.
경상북도 경주시 배반동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
경주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은 경주 굴불사터에 있는 통일신라시대 바위 불상으로 약 높이 3미터의 바위 네 면에 불상이 조각되어 있어서 사면석불이라 부른다. 이 사면불의 서쪽은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삼존불, 동쪽은 유리광세계의 약사여래불, 북쪽은 미륵불, 남쪽은 석가모니불을 각각 새긴 사방불의 형태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신라 경덕왕이 백률사를 찾았을 때 땅속에서 염불 소리가 들려왔다고 한다. 땅을 파보니 이 바위가 나와서 바위의 사방에 불상을 새기고 절을 지어 굴불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이 기록만으로는 분명하지 않지만, 여러 가지 여건으로 보아 이때쯤 불상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굴불사지 석조사면불상은 불상조각에 있어 입체의 표현, 음각과 양각의 표현, 좌상과 입상의 표현 등을 변화 있게 배치해 매우 특색이 있으며 풍만하고 부드러우면서 생기를 잃지 않은 솜씨를 볼 때 통일신라 초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산업로 4214-76

경주 율동 마애여래삼존입상
경상북도 경주시 두대안길 69 (율동)

경주 금척리 고분군
경주 근교 금척리 평지에 있는 신라의 무덤들로, 크고 작은 30 여기의 무덤이 모여 있다. 이곳은 신라의 시조 박혁거세가 하늘에서 받은 금으로 만든 자(금자)를 숨기기 위해서 40여 개의 가짜무덤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곳으로 지금도 이 무덤들 속에 묻혀 있을 것이라 전한다. 본격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1952년에 파괴된 무덤 2기를 조사하였다. 무덤 내부는 직사각형의 구덩이를 파고 덧널(곽)을 설치한 신라 특유의 돌무지덧널무덤(적석목곽분)이다. 유물은 금귀고리와 굽은 옥 등이 수습되었다. 이곳의 무덤들은 모두 경주시내의 평지 무덤들보다 규모가 작아 신라의 낮은 귀족들의 무덤으로 짐작된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경주시 건천읍 금척리
단양 금굴 구석기유적지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도담리

영암 장천리 선사주거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서호면 선사주거로 308

경주 인왕동 사지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

만석보지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하송리
말목장터와 감나무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이평면 두자리
홍천 풍암리 동학혁명군전적지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서석면 풍암리
영월 청령포 관음송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자규루 및 관풍헌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중앙로 61

민충사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금강공원길 136
영모전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영모전길 148

숙모전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동학사1로 462

충절사·상의재
경상북도 문경시 산양면 위만사당길 20-4

아산 이충무공 유허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126

표충사(해남)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충주 임충민공 충렬사
충청북도 충주시 충열1길 6 임충민공충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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