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4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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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창 창충사
거창 창충사는 신극종, 신석현, 신덕현, 신치근, 신광세 등 다섯 충신(오충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일명 오충사라고도 불린다. 1788년에 건립되었으며, 오충신은 거창현의 향리로 1728년 이인좌의 난 당시 의병을 일으켜 반군을 격퇴하는 데 공을 세웠다. 난이 평정된 뒤 공조좌랑에 추증되었으며, 사액을 받고 사우가 건립되었다. 1917년에는 거창 객사의 문루를 옮겨와 창충사의 문루로 사용하고 있다. 창충사는 동천변의 평야 지대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정면에는 내삼문인 오의문이 있고 경내 동쪽에는 누문인 앙진루, 서쪽에는 성암서당이 자리하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창동로 167-11
거창 원천정
거창 원천정은 원천 전팔고 선생이 후진 양성에 힘쓰기 위해 1587년에 세운 정자로, 임진왜란 당시에는 의병들의 회합 장소로 활용되었다. 처음에는 양쪽에 방 1칸씩과 가운데 마루 2칸을 둔 4칸 규모의 목조 기와집이었으며, 1684년에 후손들이 중수하면서 현재의 구조로 바꾸었다. 전팔고 선생은 남명 조식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당시 거창의 의병을 도왔으며, 명나라 군대가 가조에 주둔했을 때 적극 협력한 공으로 명나라로부터 첨지 벼슬을 받았다. 이후 조선 선조가 대사헌에 제수하였으나 이를 사양하였다. 원천정은 가조분지 중앙을 흐르는 가천천 왼쪽 평야 지대에 남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정면 4칸·측면 1칸 규모의 홑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부는 마루 2칸과 온돌방 2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후면에는 사당이 건립되어 현재 용천서원을 이루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원천1길 80
거창 김숙자 사당
거창 김숙자 사당은 강호산인 김숙자 선생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1706년에 세운 사당으로, 1949년에 추원당을 중건하였다. 김숙자 선생은 점필재 김종직의 아버지이자 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이다. 1414년 생원시에 합격한 뒤 고령현감과 성균관 사예 등을 지냈으며, 효성이 지극하고 실천을 중시하는 학문으로 후학 양성에 힘썼다. 또한 야은 길재의 학문을 아들 김종직에게 계승하도록 하여 영남 유학의 계보를 잇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사당은 북쪽 산기슭에 북향으로 자리하고 있으며, 정면에는 내삼문이 있고 추원당과 대문인 명성문이 중심축을 따라 배치되어 있다. 동쪽 황강 인근에는 김숙자 선생을 기리기 위해 세운 일원정이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한산1길 132-7
거창 무릉리 정씨고가
거창 무릉리 정씨고가는 숙종 12년(1686)에 장사랑을 지낸 산수정 정형초가 건립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1924년에 중수하였다. 건물 구성은 안채, 사랑채, 대문채 등으로 되어 있고, 안사랑채는 헐리고 일부 변경된 구조로 남아있다. 건물 배치는 경사지에 기단을 높게 축조하여 대지의 안쪽 높은 곳에 안채, 바깥쪽 낮은 곳에 사랑채를 배치하였다. 안채는 우리나라 남부지역에서는 보기 드문 ㄷ자형 평면의 3량 구조 맞배지붕의 홑처마이며, 정면 4칸, 측면 2칸의 ㅡ자형 평면에 양끝 협칸을 앞으로 돌출시켜 ㄷ자형 평면 외부에 마루를 두르고 계자난간을 설치하였다. 사랑채를 정형초의 호를 따서 ‘산수정’이라고 부른다. 대문은 정면 3칸의 맞배지붕 솟을대문으로 대문의 좌우에 방과 광을 1칸씩 두었다. 현재 후손이 기거하면서 관리, 보존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3길 19-16
거창 삼우당
거창 삼우당은 조선 중기 학자였던 동래 정씨 3형제인 금천 정시수, 처사 정시웅, 충의위 정시승 선생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1913년에 건립하였다. 정시수는 조선 중기의 학자로 병자호란 때 의병을 모아 싸우다가 강화가 성립되자 시국을 개탄하고, 여생을 초야에 묻혀 시를 읊으며 보냈다. 지금 있는 건물은 합천댐건설로 수몰 지역에 있던 것을 1987년에 옮겨 세운 것이다. 삼우당은 감투산 남사면부 끝자락에 남향하여 있으며, 경사면의 높은 곳에 삼우당을 두고, 낮은 곳에 화수정이 배치되어 있고, 동쪽에 대문채가 배치되어 있다. 삼우당은 팔작지붕이며, 평면은 좌측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2칸을 두고, 우측에는 마루 2칸을 둔 형식이다. 공포는 소로수장집이며, 상부 가구는 도리가 다섯 개인 5량가이다. 화수정은 몸채뿐만 아니라 좌우측에 사방 1칸 크기의 익사(건물의 부속채)를 두어 입면은 밀양 영남루와 비슷하다. 좌측은 온돌방이며, 우측은 마루방 겸 출입 계단으로 사용하고 있다. 몸채는 중층 홑처마 팔작지붕이고, 공포는 소로수장집이며, 상부 가구는 도리가 다섯 개인 5량가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영서로 485
거창 일원정
거창 일원정은 1905년에 강호산인 김숙자를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선산 김씨 후손들이 유림 학자들과 함께 건립한 정자로, 개인의 인격 수양뿐만 아니라 인재를 양성하는 서원의 역할도 수행하였다. 정자의 기능과 함께 정몽주, 길재,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등 성리학의 연원을 같이하는 7현을 향사하는 서원의 기능도 병행하고 있다. 일원정 길 건너에는 김숙자 신도비가 있다. 본채인 일원정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정면에는 툇마루를 두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평면 바닥 높이를 높게 하여 마치 중층 누각처럼 보이며, 좌측 앞쪽에는 2칸 규모의 대문채가, 우측에는 5칸 규모의 아래채가 있다. 일원정에서는 정몽주, 길재, 김숙자, 김종직, 김굉필, 정여창, 조광조 등 성리학의 뿌리를 같이하는 7현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남상면 밤티재로 863

거창만월당
거창 만월당은 만월당 정종주를 기리기 위해 1666년에 건립한 양반가 주택이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었으며, 1786년에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으며, 건립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거창 지역의 대표적인 문인들과 연관을 맺고 있는 곳이며,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킨 분들의 정신이 살아 있는 역사적인 장소이다. 정면에 완월당이라는 편액 옆에 팔완당이라는 편액이 있는데, 팔완당은 첨정을 역임한 정몽서를 기리기 위한 건물이다. 팔완당은 북상면 농산리 204번지에 있었는데 이 건물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어 만월당에 통합, 복원되었다. 만월당은 소정천의 곡저평야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정면 네 칸, 측면 한 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평면은 중앙에 마루 두 칸을 두고 좌우에 온돌방을 한 칸 배치한 형식이며, 정면과 배면에 쪽마루를 설치하였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덕유월성로 2279-10

거창 농산리 석조여래입상
거창 농산리의 낮은 야산 기슭에 있는 이 석불은 전형적인 통일신라 시대 불상 양식을 보여준다. 자연석을 다듬어 윗면에 두 발을 새긴 받침돌과 광배를 함께 조성한 불상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 개의 돌을 결합한 형태이다. 신체에 비해 머리 부분이 다소 크고 얼굴 일부는 손상되었지만, 전체적으로 온화하고 후덕한 인상을 준다. 양어깨를 감싼 옷은 허리 부분부터 양쪽으로 갈라져 대칭적인 옷주름을 이루는 특징을 보인다. 이러한 양식은 통일신라 700년 전후로 추정되는 국립경주박물관 소장 사암제불입상과 719년 명문이 있는 감산사상, 경주 굴불사지 사면석불 남면 불입상 등 8세기 이후 불상에서도 나타나며, 이 불상의 조성 시기를 추정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농산리
모리재
거창 모리재는 동계 정온(1569~1641)선생을 기리기 위한 재실이다. 정온은 남명 조식의 학맥을 계승하고 한강 정구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610년(광해군 2)에 진사로서 문과에 급제하였다. 1614년에 부사직으로 재임하던 중 영창대군의 처형은 부당하다고 상소하고, 가해자인 강화부사 정항의 참수를 주장하다가 광해군의 노여움을 사 제주도 대정에서 10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모리재는 동계 정온이 사망한 뒤 선생의 덕과 애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역의 유림들이 지은 건물이다. 정문으로 사용된 화엽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2층 누각으로, 자연석을 둥글게 다듬은 기둥을 세웠다. 화려한 팔작지붕의 처마가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사방 처마 끝에는 받침기둥을 세워 지붕을 떠받쳤다. 본당인 모리재는 자연석 초석 위에 정면 6칸, 측면 2칸의 일자로 된 팔작지붕의 건물로, 지역의 유림들이 모여 선생의 학문을 추모하며 공부하였던 곳이다. 모리재는 재실로서 특이하게 남부 지방의 민가 형식을 띠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규모도 매우 큰 편이라 할 수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21년에 중수한 것이며, 유생들의 생활공간이었지만 지금은 관리사로 쓰는 서무와 사당 등의 건물이 남아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강선대길 96-326
용암정(거창)
용암정은 조선 순조 1년(1801)에 용암 임석형(1751∼1816) 선생이 바위 위에 지은 정자이다. 임석형이 지은 『용암정 창건기』와 이휘준의 『중수기』에 기록된 내용을 보면 고종 1년(1864)에 보수 공사한 것으로 되어 있다. 정자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중앙에 방 1칸을 만들어 마루 아래에서 불을 땔 수 있게 하였고, 둘레에 난간을 설치하였다. 아름다운 풍경과 더불어 고결한 선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정자 안에는 ‘용암정(龍巖亭)’, ‘반선헌(伴仙軒)’, ‘청원문(聽猿門)’, ‘환학란(喚鶴欄)’이라고 쓴 액자가 걸려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용문들길 103-21
영빈서원
거창 영빈서원은 1744년에 창건한 서원으로 동래정씨 정구, 정종, 정표, 정응두, 정시수, 정영진 선생 6위를 제향 하던 영천사에서 출발하였다. 서원철폐령에 따라 1864년에 훼철되었다가, 일제 강점기에 절의, 충효, 성경 정신을 일깨우고자 사림과 후손들이 1919년에 다시 세우고 영빈서원으로 개칭하였다. 강당의 마당에는 1951년에 다시 세운 육현묘정비가 있다. 영빈서원은 1991년에 중건되었으나, 평면의 형식이나 가구의 기법은 조선 후기 이전의 것으로 1744년에 창건되었던 영천사의 모습이나 건축 기법을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 보인다. 영빈서원은 일산봉의 서사면 끝자락에 서향 하여 자리 잡고 있는데, 높은 곳에 사당 영역을, 낮은 곳에 강당 영역을 동서축선상에 배치하였다. 사당인 구인사는 정면 3칸, 측면 1.5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평면은 정면에 툇간을 두고 배면에 통칸 마루방을 둔 형식이다. 공포는 다포식으로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사당 정면에는 3칸 규모의 내삼문이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좌측부터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2칸, 마루 2칸, 툇마루가 딸린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포 양식은 소로수장집이며 상부 가구는 도리가 다섯 개인 5량 구조이다. 대문채는 광재문으로 정면 3칸의 솟을대문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남하면 무릉2길 34
거창 갈계리 임씨고가
거창 갈계리 임씨고가는 갈천 임훈 선생이 살던 집으로 부친인 임득번이 1507년에 건립한 주택이다. 임훈선생은 생원시에 합격하여 광주목사를 역임하였고 장례원 판결사에 임명되었으나 사퇴 후 낙향하여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효행으로 정려를 받았다. 부역제도와 군정의 폐단을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등 백성을 사랑하는 목민관으로서 추앙받았다. 가옥의 구조는 솟을대문채, 사랑채, 안채, 장판각,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문채에는 정려가 걸려 있고, 홍문의 초석이 거북머리로 되어 있는데 작품성이 뛰어나다. 안채는 선생의 호를 따 자이당이라 부르며, 정면 5칸, 측면 2칸에 맞배지붕이다. 안채 옆에 갈천 선생과 동생 임운 선생의 문집책판을 보관한 장판각과 사당이 있다. 고가는 솟을삼문을 한 대문채, 사랑채, 안채가 각각 독립적인 일자형 건물을 이루어, 전체적으로 三자형으로 배치되었다. 이러한 배치는 경남 지방의 옛 주택에서 자주 나타나는 독특한 방식이다. 안채와 장판각, 사당 등의 건물은 최근에 신축되었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샘골길 6
서간소루
거창 서간소루는 첨모당 임운 선생이 살던 고택의 사랑채로, 그의 아들 서간 임승신이 학문을 닦던 공간이기도 하다. 창건 연대는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으나, 1596년 동계 정온이 남긴 기문을 통해 임진왜란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안채는 한국전쟁 당시 소실되었다. 임운은 정여창의 학문을 이어받아 수양하였으며, 형 임훈과 함께 효행으로 정려를 받았다. 서간소루는 은진 임씨 집성촌인 갈계리에 자리한 전통 건축물로, 정면 4칸·측면 1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을 갖추고 있다. 대문채와 사당 등도 함께 남아 있어 조선시대 사대부 가옥의 공간 구성을 살펴볼 수 있으며, 인근에는 갈계숲과 갈천서당, 거창 갈계리 임씨고가 등이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샘골길 6

거창 거기리 성황단
성황단(서낭당)은 마을 입구나 고갯마루에 원뿔꼴으로 쌓아놓은 돌무더기로, 마을을 지키는 수호신적인 기능을 한다. 거창 거기리 성황단은 거기천이 형성한 곡저평야의 평지에 조성되었는데, 높이 4.6m, 아래 둘레 24.3m로, 수많은 돌로 층층이 쌓아 올린 적석총 형태로 500년 전에 깃대봉의 용마가 아이와 함께 말 무덤으로 만든 것이라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성황단은 경계의 표시이거나 위급할 때 무기로 쓰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설도 있지만, 종교적인 의미가 강했다. 돌무더기 옆에는 보통 신성시되는 나무나 장승이 함께 세워지는 경우가 많다. 서낭신을 모신 성황단은 신성한 영역이자 신앙의 장소였다. 그래서 그곳을 왕래하는 사람은 돌, 나무, 오색천 등 무엇이든지 놓고 지나갔다. 거창 거기리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대보름날이면 성황단에서 마을에서 공동으로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거기리
거창 내오리 지석묘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 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뚜껑돌을 덮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거창 내오리 지석묘는 구릉지대에 3기의 고인돌이 있다. 이 가운데 제일 남쪽에 있는 것은 탁자식으로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2.86m, 너비 2.50m이다. 북쪽으로 약 5m 지점에 있는 것은 현재 덮개돌만 땅 위에 드러나 있는데 탁자식 고인돌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덮개돌의 크기는 길이 2.70m, 너비 2.40m이다. 나머지 1기는 수년 전 파괴되어 지금은 그 흔적만 남아 있는데, 하부구조가 일부 남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고인돌 내부에서는 민무늬토기, 돌칼, 돌화살촉 등이 출토되었다. 이들 고인돌은 영남 지방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탁자식 고인돌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 고인돌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경상남도 거창군 주상면

거창 요수정
요수정은 요수 신권 선생이 풍류를 즐기며 제자를 가르치던 곳으로, 1542년 구연재와 남쪽 척수대 사이에 처음 건립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고, 1805년 후손들이 수승대 건너편 현 위치로 이건하였다. 상량문에 1800년대 후반에 수리한 기록이 있다. 요수정은 수승대 건너편 솔숲에 부속건물 없이 홀로 세워진 중층의 정자이며, 평면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정면 어칸의 배면에 1칸의 방을 들이고, 나머지는 모두 마루로 구성하였다. 요수정은 자연 암반 위에 바로 세운 건물로 초석을 사용하지 않았으며, 특별히 기단을 조성하지는 않았고, 배면 쪽에 경계의 표시와 굴뚝을 겸하는 낮은 돌담을 쌓았다. 수승대의 경치를 감상하고, 시회와 교육 등을 위해 솔 숲에 만들어진 전형적인 전통정자 건물로 형태가 매우 아름답다. 산간지역의 기후를 고려하여 정자의 내부에 방을 들이고 있어 이 지역의 건축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은하리길 100
구연서원
구연서원은 1540년 요수 신권 선생이 세운 구연재에서 시작되었으며, 1694년 신권 선생과 석곡 성팽년 선생을 배향하는 서원으로 발전하였다. 1808년에는 황고 신수이 선생을 함께 배향하였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사당은 훼철되었으나, 문루인 관수루와 강당은 현재까지 남아 있다. 경내에는 신권 선생의 사적비와 산고수장비, 열녀비, 효자비 등이 있으며, 관수루는 서원의 문루 역할을 하고 있다. 관수루는 위천변에 자리한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중층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바위와 작은 나무다리를 통해 출입할 수 있다. 인근에는 요수정과 수승대가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은하리길 100
거창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
거창 가섭암지 마애여래삼존입상은 금원산 북쪽 골짜기 큰 바위굴에 새겨져 있는 마애삼존불이다. 뒤의 돌계단을 오르면 바위굴이 있고, 안쪽 남향 바위에 삼존불이 새겨져 있다. 삼존불의 부분을 삼각선으로 그어 구획하고, 가운데는 보주형으로 다듬어 세 분의 부처를 새겼다. 중앙의 부처가 두 보살을 좌우로 거느린 모양이다. 중앙은 아미타여래, 오른쪽은 관음보살, 왼쪽은 지장보살로 보인다. 연꽃 수미단 대좌 위의 본존불은 얼굴인 넓적하며, 얼굴에 비해 작은 눈, 코, 입, 크지만 밋밋한 귀가 토속적 인상을 준다. 좌우 보살의 얼굴도 비슷한데 화려한 옷자락은 조금은 번잡한 느낌이다. 삼존불 모두 도드라지게 새겼으나, 전체적으로는 납작하게 표현되었다. 본존불의 각진 어깨, 밋밋한 가슴, 부자연스럽게 가슴에 모은 팔, 막대 같은 다리, 좌우로 벌린 발등 표현은 고려시대 부처상의 특징이다. 오른쪽에 새긴 글에는 1111년에 제작한 것으로 되어 있고, 바위굴 아래의 가섭암 자리는 1770년 대까지 절이 있었다고 하며, 당시의 것으로 보이는 몇 개의 석재가 남아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거창 강남사지 석조여래입상
거창 강남사지 석조여래입상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강남사지에 남아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조여래입상이다. 높이 3.65m, 너비 1.5m에 이르는 대형 석불로, 부처의 몸에서 발하는 빛을 상징하는 광배를 갖추고 있어 ‘강남불 석불’이라고도 불린다. 이 불상에서 유래하여 마을 이름이 ‘강남불’ 또는 ‘부처지이’로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얼굴은 마모가 심하지만 목에는 세 줄의 주름인 삼도(三道)가 뚜렷하게 표현되어 있으며, 양어깨를 감싼 법의의 형태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허리 아래 부분은 훼손되었으며, 보수 과정에서 일부 원형이 손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상천리

천간사
천간사는 1960년 창건되었으며, 2009년 재개발로 인해 현재의 위치에 재건축되었다. 경내에는 부처님 진신사리탑을 비롯해 창건주 스님의 부도탑과 육영수 여사의 추모공덕비 등 다양한 석조 유물이 조성되어 있다. 재건축된 사찰은 전통 한옥 양식을 현대적으로 구현한 건축물로, 2011 대한민국 한옥공모전에서 '한옥상'을 수상하였다. 북한산 자락과 북한산 둘레길 인근에 위치해 사찰을 둘러본 뒤 자연 경관과 함께 산책을 즐기기에도 좋으며, 도심 속에서 전통 한옥의 아름다움과 고즈넉한 분위기를 함께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특별시 은평구 불광로10길 20-8 (불광동)
거창 감악사지 승탑
거창 감악사지 승탑은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에 있는 고려시대 승탑으로, 승려의 사리나 유골을 모시기 위해 세운 불교 석조문화유산이다. 원래 감악사 절터에 있었으나 198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승탑은 3단의 받침돌 위에 팔각의 탑신을 올린 형태로, 받침돌에는 구름과 용, 연꽃무늬 등을 섬세하게 새겼으며 지붕돌의 귀퉁이에도 꽃 장식을 표현하였다. 꼭대기 장식 일부는 없어졌지만 전체적인 보존 상태가 양호하며, 고려시대 승탑의 조형미와 조각 기법을 잘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신원면
거창 포충사
거창 포충사는 조선 후기 무신인 화촌 이술원 장군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1737년에 창건되어 포충사라는 사액을 받았다. 처음에는 거창읍 대동리에 세워졌으나 1777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이술원 장군은 1728년 거창현 좌수로 재임하던 중 이인좌의 난이 일어나자 거창현감 신정모의 명을 받아 반란군에 맞서 싸우다 정희량에게 붙잡혀 순절하였다. 이후 이조판서와 사헌부 대사헌에 추증되었으며, 충강공의 시호를 받았다. 포충사는 계수천 인근에 자리한 동향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정면에는 내삼문이 있고 앞쪽에는 경의당과 자전루가 배치되어 있다. 양사당과 고직사도 함께 갖추고 있어 서원과 유사한 건물 배치를 이루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노현리

거창 동호리 이씨고가
거창 동호리 이씨고가는 1810년에 이진악 선생이 지은 주택으로, 조부인 이지유의 호를 따서 동호재라 하였다. 동호마을의 안쪽에 완만한 경사지에 남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안쪽 높은 곳에 안채 영역을 두고 낮은 곳에 사랑채 영역을 직렬로 배치하였다. 안채 영역은 서향한 안채가 있고, 우측 방앗간 채와 안채의 맞은편에는 곳간채를 튼[ㄷ] 자형으로 배치하고 있고, 안채의 좌측에는 별도의 텃밭을 두었다. 안채는 정면 5칸, 측면 1.5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좌측부터 정지, 툇마루가 딸린 안방 마루 2칸,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랑채 영역은 큰 사랑채와 중사랑채가 나란하게 남향하고 있으며, 사랑채 맞은편에는 대문채가 배치되어 있다. 큰 사랑채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중앙에 툇마루가 딸린 온돌방을 두고 좌우에 마루 1칸과 온돌방 1칸으로 구성된 실을 배치해 평면에서 보면 중앙의 온돌방이 돌출된 것처럼 보인다. 좌측 온돌방은 위패를 봉안한 가묘 방이며, 우측 온돌방은 상례 시에 빈소 방으로 사용한다고 한다.
경상남도 거창군 웅양면 동호1길 217
거창 반구헌
거창 반구헌은 조선 헌종과 철종 때 영양 현감을 지낸 야옹 정기필 선생이 기거하던 주택이다. 야옹 선생은 목민관 재임 시 청렴한 인품과 덕행으로 명성이 높았으며, 관직을 사직하고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재산과 거처가 없자, 당시 안의 현감의 도움으로 반구헌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반구헌이란 이름은 스스로 자신을 뒤돌아보고 반성한다는 뜻이 있다. 반구헌은 대문채와 사랑채만 남아 있는데, 사랑채에 남아 있는 상량문으로 볼 때 1870년에 중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반구헌이라고 불리는 사랑채는 팔작기와지붕에 정면 5칸, 측면 5칸 규모로 비교적 큰 건물이다. 이 건물의 가장 큰 특징은 대청이 1칸이며 중앙에 있지 않으며, 방은 3칸이라는 점이다. 측면 1칸에 난간을 두른 누마루를 가지고 있다. 따라서 건물 후면 중앙에 아궁이를 설치하여 방 2개를 한 곳에서 난방하도록 평면을 구성하였다. 구조는 단순 소박하지만, 전체적으로 사대부가의 품격을 풍기는 중요한 건축물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강천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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