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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85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85페이지입니다.

신어산
자연관광경상남도

신어산

경남 김해시 삼방동에 위치한 신어산은 능선에서 김해시가지를 바라보면서 산행할 수 있어 올라가는 재미가 있고, 기암절벽 사이로는 구름다리가 있어 산행을 더욱 즐겁해 한다. 북동쪽으로는 낙동강이 감돌아 흐르고 남쪽에는 광활한 김해평야가 펼쳐져 있다. 가락국의 시조 김수로왕 탄강지로 전해오는 구지봉은 이 산맥의 서쪽 끝부분에 있다. 정상에서 서쪽 주능선길을 따라 630봉까지 가는 도중에는 군데군데 암봉이 있고, 김해평야의 경관이 아름답다. 남쪽 능선을 따라 암봉에 올라서서 신어산을 바라보면 경치에 감탄하게 된다.

경상남도 김해시 상동면 묵방리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향교

세종 16년(1434)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정유재란 때 회신 된 것을 광해군 3년(1611) 현감 이인부가 중수하였다. 인조 25년(1647) 현감 홍명하가 중수하고 헌종 14년(1848)과 1917, 1976년에 보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칸의 대성전을 비롯하여 동무, 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 고직사 등과 유생들의 하기 강학처와 향시 장으로 쓰인 호남 유일의 향교 누각인 만화루가 있다. 건축 형태는 전면에 명륜당을, 후면에 대성전을 둔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은 ‘2023년 향교, 서원 문화유산 활용사업’에 선정되어 ‘화순지학 향교지학’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문화유산청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이 후원하고 화순향교와 대동문화재단이 주최 주관하여 화순향교를 배경으로 선비정신을 느낄 수 있는 유생체험, 인문학 강의, 문화강좌, 화순 지역 답사 등의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지역주민이나 학생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화순읍 교동2길 14

대청댐
문화관광대전광역시

대청댐

비단처럼 아름다운 강이라하여 이름 붙여진 금강에 위치한 대청댐은 대전광역시 대덕구와 충청북도 청주시 사이에 위치해 있는 다목적댐이다. 댐 건설로 생긴 대청호는 저수용량이 14억 9천만 톤에 이르러 중부권에서는 충주호 다음으로 큰 호수이다. 1980년 댐의 완공으로 댐 하류지역의 홍수피해를 경감시키는 한편, 하류지역 농경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고, 대전광역시, 청주시, 전주시, 군산시 등 충청과 호남지역에 생활용수 및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있다. 국내 최장의 다목적 인공호수인 대청댐은 산간 계곡과 어울려 빼어난 경관을 이루고 있다. 대청호의 끝없이 이어지는 잔잔한 물결과 호반 위에 섬처럼 떠 있는 산봉우리들이 이른 아침에는 하얀 물안개로 가려지고 낮에는 쪽빛 하늘과 흰 구름으로 장식된다. 호수 주변에는 20년 만에 개방된 청남대를 비롯해 현암사, 문의향교 등 많은 문화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다. 물길을 따라 이어지다가 사이사이 울창한 숲을 지나는 호반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 알려져 있다. 대청호 드라이브 코스는 청주와 신탄진을 잇는 호수 북쪽 코스와 보은과 옥천으로 이어지는 남쪽 코스가 있다. 특히 북쪽의 청주시 문의면과 현도면 오가리 사이의 경관이 빼어나다.

대전광역시 대덕구 대청로 618-136 (미호동)

최참판댁
역사관광경상남도

최참판댁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악양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몸에 받은 땅이다. 평사리 논길을 따라 들어가면 들판 가운데에 소나무 두 그루가 우뚝 서서 정겹게 맞이하고 지리산 자락에는 초가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그 중턱에 고래등 같은 기와집이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이 된 최참판댁이다.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우리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이곳 평사리에 소설 속의 최참판댁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되어 있으며, 조선 후기 우리 민족의 생활 모습을 재현해 놓은 드라마 세트장도 조성되어 있다. 매년 가을이면 전국 문인들의 문학축제인 토지문학제가 이곳에서 개최되고 있으며 문학마을로서 자리매김하고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길 66-7

평사리공원
문화관광경상남도

평사리공원

평사리공원은 하동읍과 구례읍의 중간 지점에 위치해 있으며, 하동 그린 꽃 가꾸기 사업으로 조성한 공원으로 주변에 조선 시대에 축성한 고소성과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 『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최참판댁, 1급수를 자랑하는 섬진강을 끼고 있는 수려한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지역이다. 화개장터와 쌍계사 등을 찾는 관광객에게 충분한 휴식과 볼거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평사리공원에는 야영장, 농구장, 족구장 등 시설 등이 있으며, 재첩잡이 체험도 할 수 있어 어린이들의 학습 체험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쌍계사차나무시배지
역사관광경상남도

쌍계사차나무시배지

신라 흥덕왕 3년(828년) 당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이 차나무의 종자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인 이곳에 처음 심었으며, 흥덕왕 5년에 진감선사가 차를 번식시켰다고 전한다. 지금도 화개장터 입구에서 쌍계사를 지나 신흥에 이르는 양쪽 산기슭에는 야생의 차나무밭이 뻗어 있다. 지방기념물로 지정되었고, 대렴공 차시배 추원비가 세워졌으며, 2008년 7월 공식적인 차시배지로 등록되었다. 쌍계사 차는 대나무의 이슬을 먹고 자란 잎을 따서 만들었다 하여 죽로차 또는 작설차라고 하며, 1년생 가지는 흰색으로 잔털이 많고, 2년생 가지는 회갈색이며 잔털이 없다. 잎은 뾰족한 긴 타원형으로 표면은 녹색이고 뒷면은 회녹색이다. 꽃은 10월~11월에 피고, 차는 곡우부터 차엽을 따서 만들기 시작하며, 약 한 달가량 계속되며, 차엽을 따는 시기에 따라서 품질이 다르다.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쌍계사길 59

정족산
자연관광인천광역시

정족산

정족산은 산의 생김새가 세 발 달린 가마솥을 닮아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220m의 산으로, 강화도에서 가장 큰 사찰인 전등사와 정족산성 등 여러 유적을 간직하고 있다. 정족산성은 삼랑성이라고도 불리며, 단군이 세 아들에게 쌓게 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석성이다. 이곳에는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사고 터도 남아 있다. 산행은 전등사 뒤편 길로 시작해 약 2시간이면 정상에 오를 수 있으며, 정상에서는 전등사 풍경과 마리산, 인천 앞바다의 섬들을 조망할 수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 온수리

삼수령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삼수령

강원도 태백시 화전동에 위치한 삼수령은 비가 내리면 물줄기가 한강, 낙동강, 오십천으로 갈라져 흐르는 분수령이다. 백두대간이 태백 중심부에 이르러 방향을 틀며 동남쪽으로 낙동정맥을 갈라놓으면서 이러한 지형이 형성되었다. 서쪽 경사지로 흐른 빗물은 한강, 남쪽은 낙동강, 동쪽은 오십천으로 흘러 각기 다른 바다로 향한다. 해발 약 935m 높이에 위치한 삼수령 정상 부근은 절벽과 탁 트인 풍경으로 감탄을 자아낸다. 이곳은 ‘피해 오는 고개’라는 의미의 ‘피재’로도 불리며 과거 삼척 사람들이 황지지역으로 피난하던 길이라는 전설이 전해진다.

강원특별자치도 태백시 된각길 81 (적각동)

부석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찰경상북도

부석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부석사는 신라 문무왕 16년(676) 해동 화엄종의 종조인 의상대사가 왕명으로 창건한 화엄종의 수사찰이다. 대사가 당(唐)나라에 유학하고 있을 때 당 고종의 신라 침략 소식을 듣고 이를 왕에게 알리고, 그가 닦은 화엄의 도리로 국론을 통일하여 내외의 시련을 극복하게 하고자 귀국하여 이 절을 창건하였으며, 우리나라 화엄사상의 발원지가 되었다. 부석사라 이름하게 됨은 불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아래의 바위와 서로 붙지 않고 떠 있어 뜬 돌이라 한 데서 연유하였다 한다. 고려 시대에는 선달사(善達寺) 혹은 흥교사(興敎寺)라 불렸다. 1916년 해체보수 시 발견된 묵서명에 의하면 고려 초기에 무량수전 등을 중창하였으나 공민왕 7년(1358) 적의 병화를 당하여 우왕 2년(1376) 무량수전이 재건되고, 우왕 3년 (1377) 조사당이 재건되었다. 경내에는 통일신라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앞 석등, 석조여래좌상, 삼층석탑, 당간지주, 석조 기단 등이 있고, 고려 시대 유물인 무량수전, 조사당, 소조여래좌상, 조사당 벽화, 고려 각판, 원융국사비 등이 있다. 특히 무량수전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목조 건물 중 하나이며, 조사당 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현재 유물관 안에 보관되어 있다. 무량수전 안에 봉안된 여래 좌상은 국내에 전래하는 최고의 소상(塑像)이다. 무량수전 서쪽에 있는 우물은 의상대사의 호법룡(護法龍)이 살았다는 우물이라 전한다.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부석사로 345

소백산국립공원(경북)
자연관광경상북도

소백산국립공원(경북)

소백산국립공원은 1987년 18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면적은 322.011㎢로 경북지역에 168.407㎢, 충북지역에 153.604㎢가 분포되어 있다. 한반도의 등뼈 같은 백두대간 줄기가 강원도, 충청도,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로지르는 중심에 우뚝 선 소백산국립공원은 영주분지를 병풍처럼 두르고 있으며 행정구역상으로는 충청북도 단양군 1개읍·3개면, 경상북도 영주시 1개읍·4개면과 봉화군 1개 면에 속해있다. 비로봉(1,439m), 국망봉(1,421m), 제1 연화봉(1,394m), 제2 연화봉(1,357m), 도솔봉(1,314m), 신선봉(1,389m), 형제봉(1,177m), 묘적봉(1,148m)등의 많은 영봉들이 어울려 웅장하면서도 부드러운 산세로 수려한 경관을 보여 주고 있다. 소백산은 소백이라는 이름 때문에 작은 산이라 생각되지만 실제로는 소백산은 큰 명산이다. 주봉인 비로봉은 수많은 야생화의 보고로 희귀 식물인 왜솜다리(에델바이스)가 자생하고 있는 지역으로 봄이면 철쭉이 만개하여 그 은은한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천연기념물인 주목군락과 함께 잘 어우러져 있어 그 고고한 자태와 함께 능선의 부드러운 멋, 우아한 곡선미와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국망봉에서 시작되는 죽계구곡은 고려 경기체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알려진 죽계별곡의 배경이며, 연화봉에서 이어진 희방계곡은 높이 28m의 웅장한 희방폭포와 더불어 뛰어난 경관을 보여 주고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소백로 1794

신흥사(설악산)
역사관광강원특별자치도

신흥사(설악산)

신흥사는 신라 진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창건했으며 초기에는 향성사라고 불렸다. 처음에는 켄싱턴호텔 자리에 세워졌으나 몇 차례 화재로 소실된 것을 조선 인조 때 지금의 자리에 중창했다. 중창 당시 영서, 혜원, 연옥 세 명의 스님들이 백발신인이 나타나 절 터를 점지해 준 똑같은 꿈을 꾸고 옛 터의 아래쪽에 다시 절을 세우고 신흥사라 이름 지었다는 일화가 전해 내려온다. 원래 신흥사(神興寺)는 신이 점지해 주어 흥하게 되었다는 뜻을 담고 있었으나 1995년 영동 지역 불교를 새로 부흥시킨다는 염원을 담아 한자를 새 신[新]자로 바꾸었다. 신흥사는 불교의 전통과 문화를 느끼고 배우는 템플스테이도 운영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설악산로 1137 (설악동)

월출산국립공원
자연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월출산국립공원

월출산은 ‘달 뜨는 산’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름다운 경관과 유수한 문화자원, 남도의 향토적 정서가 조화를 이룬 한반도 최남단의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천황봉(810.7m)을 중심으로 기암괴석이 병풍처럼 펼쳐져 있어 '수석의 전시장’이라 불리며, '호남의 소금강산'이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이곳은 백제 왕인 박사와 신라 말 도선 국사의 탄생지로도 유명하다. 천황봉 남쪽에는 무위사가, 서쪽에는 도갑사가 자리하고 있다. 도갑사 해탈문(국보), 무위사 극락전(국보), 마애여래좌상(국보) 등 귀중한 문화유산이 산 곳곳에 산재해 있다. 특히 도갑사를 지나 5㎞ 정도 오르면 9개의 단지 모양 구멍에 항상 물이 고여 있어 용이 살았다는 구정봉에 이르며, 그 아래로 500m쯤 내려가면 거대한 마애여래좌상을 만날 수 있다. 월출산의 명물인 구름다리는 지상 120m 높이에 건설되어 아찔한 스릴을 선사한다. 또한 칠치폭포의 장관과 가을이면 미왕재에 펼쳐지는 은빛 갈대밭은 월출산의 빼놓을 수 없는 절경이다. 서해를 배경으로 붉게 물드는 일몰 풍경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남쪽 계곡의 금릉경포대 부근에는 월남사지와 모전석탑 등 고즈넉한 유적이 남아 있어 역사의 숨결을 느끼게 한다. 월출산은 봄의 철쭉부터 겨울의 설경까지 사시사철 독특한 매력을 자랑하며 관광객의 발길을 이끌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영암읍 천황사로 280-43

대둔산도립공원(전북)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대둔산도립공원(전북)

사계절이 모두 아름다운 대둔산은 완주의 자랑이자 보물이다. 금남정맥 줄기가 만경평야를 굽어보면서 솟구쳐 절경을 이루고 있다. 곳곳에 드러난 화강암 암반이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고, 빼곡한 숲이 첩첩으로 쌓여 있어 예로부터 호남의 금강산으로 불려 온 곳이다. 특히, 정상 부근에 있는 대둔산구름다리는 대둔산의 백미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놓쳐서는 안 되는 명소이다. 대둔산구름다리를 건너면 약수정이 나오고 여기서 삼선계단을 타면 왕관바위로 간다. 봉우리마다 한 폭의 산수화로 그 장관을 뽐내는 대둔산은 낙조대와 태고사, 그리고 금강폭포, 동심바위, 금강계곡, 삼선약수터, 옥계동 계곡 등 신의 조화로 이룬 만물상을 보는 듯 황홀하기만 하다. 해발 878m 우뚝 솟은 최고봉 마천대 아래로 끝없이 펼쳐진 바위 봉우리들의 자태가 수려하다. 독특한 형상의 기암괴석들은 잘 다듬어진 조각품이다. 분재의 군락이다. 차라리 수석의 보고다. 눈 가는 곳 어디든 아름답고 웅장하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운주면 대둔산공원길 23

사찰경기도

보광사(파주)

광탄면 영장리 고령산 자락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의 말사이다. 894년(진성여왕 8)에 어명에 의해서 도선이 창건하였고 1388년(우왕 14)에 무학이 중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전소된 것을 1622년(광해군 4)에 설미와 덕인이 법당과 승당을 복원하였다. 1631년(인조 9)에는 도원이 범종을 만들기 위하여 모연을 시작하였는데 3년 동안 청동 80근을 모은 뒤 죽게 되자 신관이 그 뒤를 이어 1634년에 300근의 범종을 완성하였다. 1740년(영조 16)에 부근에 있던 영조의 생모 숙빈최씨의 묘소인 소령원의 기복사가 되어 대웅보전, 관음전을 중수하고 만세루를 창건하였다. 또한 소령원의 기복사로 정해지면서 사찰 내에 숙빈최씨의 위패를 모실 어실각이 지어졌고 그 앞쪽에는 영조가 어머니를 그리워하며 직접 심었다는 300년 된 향나무가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원통전, 어실각, 지장전, 웅진전, 산신각, 만세루, 승당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1215년에 만든 목조비로자나삼존불과 문수·보현보살상이 봉안되어 있고, 나한전에는 1863년에 조성한 삼세불과 나반존자 16나한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쌍세전에는 1863년에 조성한 지장보살상과 시왕상 등이 봉안되어 있다. 이 밖에도 영조의 친필 편액과 김정희의 친필 편액, 부도 1좌가 있다. 보광사 주변은 숲과 계곡, 호수가 어우러져 자연 관광지로도 각광 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마장호수 흔들다리를 비롯해 장흥자색수목원 등 같이 둘러보아도 의미가 있겠다.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보광로474번길 87

와우정사(용인)
사찰경기도

와우정사(용인)

와우정사(臥牛精舍)는 경기 용인시 해곡동 연화산의 48개 봉우리가 마치 병풍처럼 둘러쳐진 곳에 위치한 사찰로 1970년 실향민인 해월삼장법사 (속명 김해근)가 부처님의 공덕을 빌어 민족화합을 이루기 위해 세운 호국사찰이며 대한불교 열반종의 본산으로 3천여 점의 불상이 봉안되어 있다. 여러 불상 중 절 입구에 세워진 불두(佛頭)와 산중턱에 있는 와불(臥佛)이 유명하다. 높이가 8m 인 불두는 초대형이며, 와불(누워있는 불상)은 높이 3m, 길이 12m에 이르는 것으로 인도네시아에서 들여온 향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다. 경내에 있는 거대한 불두와 황동 10만 근으로 10년간 만든 장육오존불, 무게가 12톤에 이르는 통일의 종(88 서울올림픽 때 타종), 그리고 우리나라 최대의 청동미륵반가사유상이 있으며, 석조약사여래불 등이 있다. 세계최대이며, 유일한 석가모니 불고행상(佛苦行像)도 와우정사의 자랑거리이다. 이 불고행상의 본체는 백옥, 좌대는 청옥으로 구성되어 있다. 열반 전에 이르는 계단옆의 통일의 돌탑은 세계각국 성지에서 가져온 돌 한 개 한 개를 모아 쌓아가고 있다. 와우정사에는 인도·미얀마·스리랑카·중국·태국 등에서 모셔온 불상 3천 여점이 전시되어 있어 세계 각국의 불교문화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이 세계만불전(萬佛殿)은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뜻을 담고 있다. 와우정사는 삼보(三寶)를 다 봉안하고 있다. 인도·스리랑카·미얀마에서 들여온 석가모니 불진신사리(佛眞身舍利), 파리어 대장경과 산스크리스트어 장경(藏經) 등이 봉안되어 있다.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해곡로 25-15

무량사(부여)
역사관광충청남도

무량사(부여)

충남 부여군 외산면에 자리한 천년고찰 ‘무량사’는 만수산 자락에 둥지를 틀었다. 신라 문무왕 때 범일국사가 창건한 사찰로 몇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국내 제일의 아미타 기도 도량으로 사천왕문을 지나면 정면에 보물로 지정된 무량사 극락전이 보인다. 사천왕문은 무량사의 멋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위치로, 층 구분이 없는 2층 극락전과 오 층 석탑(보물), 석등(보물)이 일렬로 늘어서서 장관을 이룬다. 극락전 소조 아미타여래삼존좌상(보물)도 위용을 자랑한다. 무량사는 생육신 매월당 김시습이 입적한 곳이다. 경내에 그의 부도와 초상화가 있다. 행정구역 상 부여군에 속하지만 보령 시내에서 더 가깝다.

충청남도 부여군 무량로 203

구인사(단양)
역사관광충청북도

구인사(단양)

구인사는 대한불교 천태종의 총본산 사찰로서, 전국에 140개나 되는 절을 관장하고 있다. 1945년에 건립되었으며, 1966년 현대식 콘크리트조로 지은 이색적인 건물이다. 소백산 국망봉을 중심으로 장엄하게 늘어선 봉우리 가운데 하나인 연화봉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상월원각 스님이 1945년에 이곳에 손수 칡덩굴을 얽어 삼간초암을 짓고 정진 끝에 대도를 성취하여 구인사를 창건하게 되었다. 구인사는 현대식 건물의 대가람 (총 건축면적 15,014㎡)으로 절 안에는 5층 대법당을 비롯하여 삼보당, 설선당, 총무원, 인광당, 장문실, 향적당, 도향당 등 50여 동의 건물들이 경내를 꽉 메우고 있으며 만여 명이 취사할 수 있는 현대식 시설도 갖추어져 있다. 구인사를 방문할 때 두 가지 볼거리를 빼놓으면 안 되는데, 이는 바로 국내 최대 규모의 대법당과 법어비이다. 대법당은 1980년 4월 29일 준공된 5층 건물로 국내 최대 규모의 법당이다. 5층의 대법당은 상월원각 대조사가 삼간초암을 얽어 처음 구인사를 창건하고 수행하 시던 그 자리에 세워져 있다. 이는 남대충 대종사께서 대조사님의 생전 유지를 받들어 전통양식과 현대적 공법으로 5천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초대형 대법당을 지은 것이다. 상월원각 대조사 법어비는 상월원각 대조사님께서 일생동안 종도들에게 가르쳐 오신 모든 법문을 총 집약시켜 간략하고 명료하게 요약하여 설법하신 법어를 새겨놓은 비석이다. 이 법어 안에는 부처님 팔만대장경의 모든 진리가 다 포함되어 있으며 넓고 미묘한 불법의 이치를 담고 있다. 구인사에서는 나를 들여다보는 재미있는 체험, 단주, 연등 만들기 체험, 당일형부터 숙박형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의 템플스테이도 진행하고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구인사길 73

역사관광경기도

파주 삼릉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주삼릉은 공릉(장순왕후)과 순릉(공혜왕후), 영릉(효장세자와 효순왕후)으로 구성되어 있다. 공릉은 조선 8대 예종의 첫 번째 왕비 장순왕후 한씨의 능이다. 공릉은 1461년(세조 7) 장순왕후가 왕세자빈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 1462년(세조 8)에 파주 보시동(普施洞)인 현재의 자리에 왕세자빈의 묘로 조성하여 장순빈묘(章順嬪墓)라 불렀다. 이후 1470년(성종 1) 장순왕후로 추존하고 능의 이름을 공릉이라 하였다.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석양과 석호 각 1쌍만 배치하여 간략하게 조성되었다. 홍살문에서 정자각까지 이어진 향로와 어로는 지형에 맞게 조성하여 한 번 꺾여있다. 순릉은 조선 9대 성종의 첫 번째 왕비 공혜왕후 한씨의 능이다. 순릉은 1475년(성종 5) 공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언니 장순왕후의 공릉이 있는 현재의 자리에 조성되었다. 순릉은 파주 삼릉에 있는 3기의 능 중에서 유일하게 왕릉의 형식으로 조성되었는데, 이는 공혜왕후가 중전의 신분에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능침 봉분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둘렀고, 왕릉의 형식에 맞게 문석인, 무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2쌍을 배치하였다. 석상을 받치는 고석(鼓石)의 귀면 무늬가 넓게 조각된 것이 특이하다.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수라간, 수복방 등이 있고, 비각 안에는 ‘조선국 공혜왕후 순릉(朝鮮國 恭惠王后 順陵)’이라고 새겨져 있는 표석이 있다. 영릉은 황제로 추존된 진종과 효순황후 조씨의 능이다. 영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진종, 오른쪽(동쪽)이 효순황후의 능이다. 1728년(영조 4) 진종이 왕세자(효장세자)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1729년(영조 5)에 파주 순릉 왼쪽 언덕인 현재의 자리에 묘를 조성하였다. 이후 1751년(영조 27) 효순황후가 왕세자빈(현빈)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1752년(영조 28) 효장세자묘 동쪽에 묘를 조성하였다. 1776년 영조가 세상을 떠나고 정조가 왕위에 오르자 정조의 계승상 아버지가 되는 효장세자가 진종으로 추존되면서 능의 이름을 영릉이라 하였다. 영릉은 왕세자의 묘로 조성되었기 때문에 간소한 모습이다.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 각 1쌍을 배치하였다. 능침 아래에는 2개의 비각 안에 3개의 표석이 있다. 1비는 효장세자와 효순현빈의 표석, 2비는 진종대왕과 효순왕후의 표석, 3비는 진종소황제와 효순소황후의 표석이다. 이는 진종이 추존될 때마다 표석을 새로 세웠기 때문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삼릉로 89

역사관광경기도

황희선생유적지·반구정

이곳은 조선시대 초기 명재상이며 청백리의 귀감인 방촌 황희(1369~1452) 선생의 유적지이다.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다 조선 조정의 요청으로 관직에 나오게 되었다. 선생은 고려 말기부터 조선 초기의 여러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문물과 제도의 정비에 노력했고, 세종연간에는 19년간 의정부 최고의 관직인 영의정에 재직하면서 세종성세에 가장 큰 업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문종 2년(1452)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자 탄현면 금승리 선영에 예장하고 세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유적지 내에는 선생의 유업을 기리기 위해 세조 1년(1455) 후손들에 의해 건립된 황희선생 영당과 선생이 관직에서 물러난 후 여생을 보낸 반구정이 위치하고 있다. 본래 영당의 건물은 6·25전쟁 때 전부 불탔으나, 1962년 후손들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초익공양식의 맞배집으로 복원하였고, 영당 내부 중앙에 별도의 감실을 두고 선생의 영정을 모셨다. 반구정은 임진강이 내려다 보이는 기암절벽 위에 위치하는데 예로부터 갈매기가 많이 모여들어 ‘갈매기를 벗 삼는 정자’라는 뜻에서 이름을 지었다. 정자 내부에는 미수 허목의 「반구정기」와 여러 개의 중수기 편액이 있다. 이외에도 월헌공 황맹헌 선생 부조묘, 앙지대, 경모재, 방촌 황희 선생 동상 등이 있으며, 입구에는 황희 선생의 업적과 유품을 전시한 방촌기념관이 있다.

경기도 파주시 문산읍 반구정로85번길 3

파평용연
역사관광경기도

파평용연

파평을 본관으로 하는 파평 윤씨의 시조 윤신달의 탄생 설화와 관련된 연못이다. 윤신달은 통일신라 말 고려 초의 인물로 이곳 용연에서 태어나 파평 윤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고려 왕조를 세운 태조 왕건을 도와 삼한 통일의 공을 세워 개국공신 2등을 받았다. 이후 태자를 교육하는 삼중대광태사의 벼슬에 올랐으며, 태조가 죽고 혜종이 즉위하자 서라벌의 동경대도호부 대도독으로 임명되었다 용연은 태곳적부터 지하수가 솟아나는 천연의 연못으로 윤신달의 탄생 설화는 다음과 같다. 신라 진성왕 7년(893) 음력 8월 15일에 운무가 자욱한 용연에 금궤가 떠올라 근처에 사는 윤온 할머니가 건져서 열어보니 옥동자가 들어 있었다. 아이는 옥색털로 싸여 있고 양어깨는 붉은 점이 있었으며, 양쪽 겨드랑이에는 비늘이 81개, 발바닥에는 북두칠성 모양으로 흑점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아이는 자라서 높은 벼슬을 지냈는데 그가 바로 파평 윤씨의 시조인 윤신달이었다. 용연은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연못으로 전체 면적은 약 8.366㎡이다. 1920년에 세운 파평 윤씨 용연비와 1972년에 세운 파평 윤씨 발상지비가 근처에 있다.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눌노리

구봉산(대전)
자연관광대전광역시

구봉산(대전)

구봉산의 유래는 봉우리 9개가 솟아있다 하여 구봉산이라 한다. 대전광역시 서구 관저동, 가수원동, 괴곡동, 흑석동, 봉곡동에 둘러싸여 있다. 대전역을 출발점으로 하여 시내버스 1번, 201번, 202번을 이용하여 서대전 IC에서 하차, 길 건너 관저골 입구로 진입 후, 관저골에서 구봉농장 주차장까지 직진하면 구봉산에 들어설 수가 있다. 산행코스는 구봉농장 주차장에서 왼쪽 등산로를 따라 구봉정 방향으로 진행하여 구봉정에서 성애양로원방향으로 하산할 수 있다. 구봉정을 올라가는 길에 나무 구름다리와 철다리는 꼭 체험한 후 구봉정 꼭대기의 팔각정에 올라 아래를 내려다보면 대전 시내가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출처 : 대전 문화관광 홈페이지)

대전광역시 서구 상보안윗길 160

한려해상국립공원(사천)
자연관광경상남도

한려해상국립공원(사천)

한려해상국립공원은 경상남도 사천시, 거제시, 통영시, 하동군, 남해군 및 전라남도 여수시에 걸쳐 있는 국립공원이며 해양과 도서, 육지가 빚어내는 아기자기한 지형경관이 뛰어나 매년 100만 명 이상의 탐방객이 찾고 있는 곳이다. 1968년 우리나라에서 4번째 이자 해상공원으로는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경남 거제시 지심도에서 전남 여수시 오동도까지 300리 뱃길을 따라 크고 작은 섬들과 천혜의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해양생태계의 보고이다. 상주, 금산지구, 남해대교지구, 사천지구, 통영, 한산지구, 거제, 해금강지구, 여수, 오동도 지구의 전체 면적은 535.676㎢이며 76%가 해상 면적이다. 가장 아름다운 바닷길로 이름난 한려수도는 71개의 무인도와 29개의 유인도가 있다.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대밭담로 5-9

중원폭포
자연관광경기도

중원폭포

용문산 동쪽 지척에 솟아있는 중원산(799.8m)은 서쪽으로는 조계, 용계골, 동으로는 중원계곡 등 수려한 골짜기와 계곡을 끼고 있어 여름철이면 많은 피서객들이 찾아들어 가족 산행지로 인기가 높다. 중원계곡 주차장에서 15분 정도 계곡길을 걸으면 우렁찬 물소리를 내는 3단의 중원폭포를 만난다. 높이가 10m도 채 안되지만 병풍을 두른 듯한 기암절벽에 에워싸여 절경을 이룬다. 수줍은 처녀의 댕기같은 물줄기 아래로 넓고 깊은 못이 드리워져 있다. 폭포를 지나 짙은 숲 터널 아래로 이어지는 오솔길을 걸으면 마치 구슬을 쏟아 붓듯이 물소리가 요란한 치마폭포에 도달한다. 입구에서 첫번째 폭포가 계곡을 대표하는 중원폭포로서 높이 약 10m의 3단 폭포가 기암절벽에 둘러싸여 경관이 빼어나다. 울창한 숲길 아래의 치마폭포는 물줄기가 바위에 부딪치면서 생기는 하얀 포말이 치마를 펼친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폭포 아래에 맑은 소가 천연 수영장을 이루고 있다. 용문사로 가는 길~용문산 시외버스터미널에서 중원리행 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리거나, 승용차로 양평에서 용문 방면 6번 국도를 타고 10㎞ 가량 가면 용문산관광단지 표지판이 나오고 용문사 입구 길목에서 덕촌삼거리 오른쪽 조현리 방면 4번 군도로 6㎞를 더 가면 계곡 입구가 나온다. 주차는 중원계곡주차장을 이용하면 된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연수리

사나사(양평)
역사관광경기도

사나사(양평)

양평군 옥천면에 위치한 사나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인 봉선사(奉先寺)에 속해 있다. 용문산의 주봉인 백운봉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사나사는 신라 경명왕 7년 (923)에 고승인 대경대사가 제자 용문과 함께 창건하고, 5층 석탑과 노사나 불상을 조성하여 봉안하고 절 이름을 사나사로 하였다. 고려 공민왕 16년(1367)에 태고 왕사 보우가 140여 칸 규모로 중건하였으며, 고려 우왕 8년(1382) 12월 24일 보우 스님이 용문산 소설암에서 입적하였는데, 이듬 해인 1383년에 문인 달심이 태고의 부도와 비를 사나사에 세웠다. 선조 25년(1592)에 일어난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사찰이 불타버린 것을 선조 41년(1608)에 단월 한방손이 재건하였다. 영조 51년(1773)에 양평군 내 유지들이 뜻을 모아 당산계를 조직하고 향답을 사찰에 시주하여 불광담을 마련하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경내에 비를 세웠다. 순종 원년(1907)에 일제의 침략에 항거하는 의병들의 근거지라 하여 사찰을 모두 불태웠다. 그 2년 뒤인 1909년에 계헌이 큰방 15칸을 복구하였으며, 1937년에 주지 맹현우 화상이 대웅전 15칸을 재건하고 조사전 5칸을 지었다. 1950년에 일어난 6·25전쟁으로 인해 사찰이 전소된 것을 1956년에 주지 김두준과 함문성이 협력하여 대웅전 산신각 큰 방을 재건하고 함씨각을 지었다. 1993년에 주지 한영상이 대웅전과 지장전을 재건하였고 현 주지 화암 스님이 주석하면서 포교와 교육, 기도 도량으로 일신하였다. 경내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원증국사탑과 원증국사석종비가 있다.

경기도 양평군 옥천면 사나사길 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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