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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7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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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사(의령)
사찰경상남도

수도사(의령)

의령에 있는 수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통도사의 말사이다. 신덕산 중턱에 자리잡고 있는 전통 사찰이다. 절의 규모는 작지만 오솔길을 따라 걸어가면 고즈넉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 이승의 고통을 잊게 해준다. 면 소재지에서 신덕산이 있는 북쪽을 향해 약 5km가량 가다보면 오른편에 이목저수지가 나온다. 이 저수지를 끼고 1km쯤 더 들어가면 멀리 산 아래 몇 채의 마을이 바라 보이는 지점에서 같은 두 갈래로 갈라진다. 절의 경내에는 대웅전 대신에 극락전이 있으며 그 뒤에 칠성각과 동서양편에 요사체가 있다. 또 축대의 계단위에는 높다랗게 누각을 올려서 만세루라 이름 지어 놓았다. 극락전 앞뜰의 5층 석탑은 하부기단이 무너진 채 위태로운 형상으로 서있는데 이 석탑의 원위치는 그 자리가 아닌 듯 보인다. 절 입구에 극락교라는 석교가 남아 있다. 또 수도사는 동쪽 산기슭에 모두 8기의 부도군이 서 있는바 이것들을 미루어 옛날에는 이 절의 규모가 제법 컷을 것이라는 주지의 말이다. 한편 이절이 있는 신덕산은 합천의 황매산으로부터 뻗어온 줄기로 산세가 매우 웅장할 뿐만 아니라 우거진 잡목림에 경관이 또한 뛰어나기 때문에 여름철에는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를 않는다. 수도사는 지금부터 약 1300여 년전, 신라의 30대 문무왕 2년 (662년)에 고승 원효대사에 의해 창건된 것이라고는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며,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김수로왕 7왕자가 의령 수도산에서 수행했다는 기록이 있다. 전해지는 말로는 절의 뒷산에 흡사 병풍처럼 둘러싼 바위가 있어서 사람들은 이 바위를 병풍바위라 하는데 당시 원효대사는 이곳에서 백여명의 불제자와 함께 수도를 하였다고 하며 이 때문에 절의 이름을 수도사[修道寺]로 부르게 된 것이라고 한다. 1420년(조선 세종 2) 국률[國律]과 정암[鼎巖]·유곡[柳谷] 등이 중창하였고,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불에 탄 것을 유정[惟政]이 중건하였다.

경상남도 의령군 용덕면 덕암로 581-137

유학사(의령)
역사관광경상남도

유학사(의령)

미타산(彌陀山, 높이 662m)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이다. 약 1300여 년 전 통일신라시대에 창건되었다고 전하는 고찰(古刹)이다. 조선 개국 직후 왕사를 지낸 무학대사 자초(自超 1327~1405)가 1399년(정종 1년) 창건하였다. 무학대사는 660년 원효대사가 창건한 미타사(彌陀寺)로부터 조금 떨어진 지금의 유학사 자리에 사찰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남향으로 자리 잡은 극락전을 중심으로 맞은편에 만세루, 극락전 왼쪽에 종각, 극락전 오른쪽으로 요사 두 동이 아래·위로 배치되어 있다. 칠성각은 요사 뒤쪽의 계단 위쪽에 있다. 주법당인 극락전은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집으로 내부 불단에 금동 아미타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다. 원래 오동나무로 만든 목조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었다가 1980년대에 어디론가 이운되었다 한다. 그때 삼존불 중 주존불을 본떠 석고상으로 남겨 두었는데 2002년 새로 조성한 현재의 주존불은 그 석고상과 같은 모습으로 만들어진 것이라 한다. 만세루(萬歲樓)는 루(樓)의 입지 즉 사찰의 정문에 해당하는 자리에 있지만 실제 누각 형식의 건물이 아니다. 단층 건물인 데다 누문도 없으며, 툇마루가 달린 요사채 형태를 취하고 있다. 건물 뒤편에 걸려 있는 편액도 유학사(留鶴寺)라고 되어 있지만 사찰에서는 만세루라고 부른다. 이 건물에는 1900년 이태현(李泰鉉)이 지은 ‘법당중수기’ 등 유학사의 연혁을 알려주는 현판들이 보관되어 있다. * 무학대사와 유학사의 이야기 * 원래 유학사는 미타산의 8부 능선에 자리 잡고 있었으나 조선 초기 때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를 지낸 무학대사가 이 유학사에 들려 사찰이 앉은 위치가 풍수지리에 맞지 않다고 하여 지금의 위치에 절을 옮겨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지고 있다. 무학대사는 풍수지리에 무척 밝았기 때문에 당시 이성계를 도와서 조선 개국과 함께 한양에 도읍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는 일화는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니, 유학사의 전설 또한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닐 것으로 믿어진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이 부근의 형세가 마치 날아가 학의 형상을 닮았다고 하고, 예전에 유학사가 있던 자리는 그 학의 머리 부분에 해당하였다 하니 학의 머리에 절이 앉아서는 아니 되고 지금의 위치에 사찰이 있어야만 학이 마치 절을 품고 있는 형상이 되어서 좋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찰의 이름도『학이 절을 품은 채 머무른다』는 뜻으로 유학사라 하였다고 한다. 이때가 조선 초기 정종 2년(1399년)이라 알려지고 있으며 그 뒤 무학대사는 오랫동안 이 유학사에 머물고 있다가 세상을 떠난 것으로 알려지고 있으나 이 말은 지금에 와서 상고할 길이 없고, 다만 그러한 전설이 구전되고 있다는 사실만 기록할 따름이다.

경상남도 의령군 부림면 여배로5길 2

양주향교
역사관광경기도

양주향교

양주향교는 조선 태종 원년(1410)에 건립된 후 많은 유학자를 양성 배출하던 지방의 교육기관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전소되었고, 1610년에 재건하였으나 1950년 한국전쟁으로 다시 소실되었다. 전쟁 후 유림들의 뜻을 모아 대성전을 먼저 복원하고, 1984년에 명륜당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양주향교는 고대 중국오성과 송대 2현을 비롯 신라, 고려, 조선조의 18선현들의 위패를 봉안하고 유덕을 추모하고 있다.

경기도 양주시 부흥로1423번길 50

신석정 고택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신석정 고택

신석정 고택은 한국시단의 거목인 신석정(1907-1974) 선생이 살았던 곳이다. 신석정 선생은 전북특별자치도 부안 출신으로 17세에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하면서 등단하였다. 1931년 『시문학』지에 시 「선물」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전개하였다. 1930년대 최초의 모더니스트라 불릴 만큼 서구의 낭만시와 한국적인 면을 가미한 문단의 거인으로 성장하였다. 선생은 조국을 빼앗겼던 일제의 억압 속에서도 질긴 시혼으로 민족혼의 배양토 구실을 했다. 저서로는 시집 「촛불」과 「슬픈 목가」가 있다. 가옥은 초가 3칸의 집이었으나 지금은 수리하여 4칸 규모로 되어 있다. 신석정 고택은 선생이 태어난 곳은 아니지만 1931년 이후 낙향하여 시작(詩作)에 전념한 곳으로 1952년 전주로 이사할 때까지 살았던 곳이다. 선생은 이곳에서 왕성한 문학활동을 하여 당시 많은 시민들이 드나들던 집이기도 하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부안읍 석정로 63

경상북도수목원
자연관광경상북도

경상북도수목원

경상북도수목원은 경북 포항시 내연산 자락(평균 해발 650m)에 위치하며, 아름다운 사계 경관과 전국 수목원 중에서 두 번째로 큰 규모(2,926ha)를 자랑하는 경상북도의 대표 수목원이다. 경상북도 향토 고유 수종 및 국가 식물 유전 자원의 보전 및 연구, 도민의 정서 함양을 위한 자연친화적 생태교육 체험장 조성, 동해안권 관광지, 주변 식물원과 연계한 산림 생태 문화권 형성을 위하여 조성되었다. 독특한 생태를 가진 울릉도 식생을 재현한 울릉도 식물원과 고산식물원, 침엽수원 등 26개 분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숲해설전시관, 숲체험학습관, 생태탐방로 등의 체험시설과 자연체험학습장이 있다. 가족, 친구, 연인 등과 함께 예쁘고 아름다운 식물을 관찰하며 산책할 수 있고, 영춘정(전망대)에 오르면 포항의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근처 보경사나 내연산 향로봉으로 이어지는 등산 코스도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방문할 수 있는 수목원이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죽장면 수목원로 647

강원특별자치도립화목원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강원특별자치도립화목원

강원특별자치도립화목원은 강원특별자치도에서 운영하는 공립수목원으로 도심 속 산림 휴양과 자연학습 공간을 제공할 목적으로 1999년에 개원했다. 식물유전자원 수집·증식·보존을 위한 연구 등 현지 외 보전기능 강화와 대국민 자연체험학습장 및 휴식공간 제공으로 자연에 대한 소중한 가치체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총 1,827종류 8만 5천여 본의 식물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 중 산솜다리, 모데미풀, 노랑만병초, 홍월귤 등 희귀 식물이 129종류, 모데미풀, 금강봄맞이, 금강초롱꽃, 개느삼 등의 특산식물이 49종류, 두메닥나무, 제비동자꽃, 등대시호, 금꿩의다리 등 기후변화 취약식물 보존원이 136종류가 있다. 계절별로 다채로운 꽃이 피고 지면서 색다른 풍경과 재미를 선사한다. 봄에는 벚나무길과 철쭉원에서 꽃놀이를 즐기고, 여름에는 분수광장과 메타세쿼이아 숲에서 시원한 한때를 보낸다. 가을에는 국화전시회를 감상하고 겨울에도 따뜻한 유리온실에서 푸릇한 기운을 느낄 수 있다. 화목원 내에선 산림박물관도 운영한다. 산림박물관은 강원특별자치도의 동식물, 산촌생활 등 강원특별자치도 산림을 주제로 한 상설전시관을 비롯해 기획전시관, 3D영상관 등을 갖추었다. 연못, 인공폭포, 정자가 어우러지는 수생식물원과 어린이들을 위한 자연 놀이터인 어린이정원도 화목원의 놓칠 수 없는 포인트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화목원길 24 (사농동)

마구령·고치령
자연관광경상북도

마구령·고치령

마구령과 고치령은 소백산의 대표적인 고갯길로, 백두대간에서 소백산 사이에 있는 험준한 고개다. 두 고개는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를 거치면서 사람과 물자가 오가던 길로, 보부상들의 애환도 함께 안고 있는 영남 지방의 옛길이다. 마구령은 소백산 국립공원 경계 지역 가장 동쪽에 자리한 고개로 영주시 부석면 남대리와 암곡리를 이어주는 고개이다. 장사꾼들이 말을 타고 다녔던 고개라 하여 마구령이라 전해지며, 경사가 심하여 논을 매는 것처럼 힘들다 하여 매기재라고도 불린다. 충청북도 단양군의 의풍계곡에서 백성들이 부석장에 나가기 위해 마구령을 넘어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 고치령은 영주시 단산면의 마락리와 좌석리를 잇는 고개로, 과거에는 북쪽의 관동 및 호서지방으로 통하는 교통로였다. 신라시대에 고개 아래에 대궐을 짓기 위해 터를 잡은 일이 있는데, 이때에는 옛고개라 하였던 것이 변형되어 지금은 [고치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소백산 산지와 태백산 산지가 만나는 고개로 고개의 서쪽으로 형제봉과 국망봉, 비로봉으로 연결되는 소백산맥이 이어진다.

경상북도 영주시 단산면 영단로

익산 쌍릉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익산 쌍릉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에 있는 무덤으로, 남북으로 2기의 무덤이 나란히 자리 잡고 있어 쌍릉이라고 부른다. 무덤 안의 구조는 백제 후기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이며, 무덤의 봉분과 돌방의 크기가 큰 북쪽의 것을 대왕묘라 하고, 남쪽의 작은 것을 소왕묘라고 부른다. 크기는 약간 차이가 있지만 2기 모두 원형의 봉토무덤으로 흙을 높이 쌓아 만든 봉분 이외에 별다른 장식이 없다. 1917년 조사할 당시 무덤은 이미 도굴이 되어 유물이 남아 있지 않았다. 다행히 대왕묘 안에서 나무로 만든 관이 일부 발견되어 원래의 모습대로 복원할 수 있었다. 그 결과 나무관은 바닥면보다 위쪽 면이 약간 넓고, 뚜껑의 윗면이 둥근 모양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관고리에는 8쪽의 꽃잎을 가진 연꽃무늬가 있었던 것도 확인되었다. 이들 두 고분은 1917년 일본인 학자 야쓰이 세이이쓰에 의해 발굴된 바 있으나, 정확한 정보를 남기지 않아 고분의 구조나 성격을 밝히기 위한 학술발굴조사가 2018년(대왕릉)과 2019년(소왕릉)에 실시되었다. 학술발굴조사 결과, 대왕릉의 경우는 사비기 백제왕릉급 무덤으로서 판축 기법을 사용한 봉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석실 끝부분에서는 여태까지 그 존재가 알려진 바 없던 인골 조각이 발견하였는데 이에 대한 정밀분석 결과 인골추정 나이가 무왕의 사망 나이와 비슷함에 따라 무왕의 무덤임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소왕릉의 경우에는 적극적인 자료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무왕릉과 마찬가지로 석실의 규모와 품격에 있어 왕릉급임을 확인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쌍능길 65 (석왕동)

석불사(익산)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석불사(익산)

석불사는 한국 불교 화엄종 본산으로 종교 단체에 등록되어 있다. 이 사찰에는 보물로 지정된 백제시대의 석불좌상과 광배가 있는데, 조성시기는 600년경으로 여겨지며, 삼국시대 환조불로서 국내 최대의 것이고, 광배 또한 최대 규모이다. 창건연대는 백제무왕 7세기 전반에 미륵사지 창건에 앞서서 건축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 석불좌상은 백제시대에 조성된 매우 귀중한 불상이다. 높이가 156㎝나 되는 거구의 여래좌상은 당당한 자세로 얇게 표현된 통견의 법의를 결과부좌한 무릎 위로 흘러 덮었다. 그리고 거대한 주형광배는 7개의 화불과 불꽃 무늬를 조각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삼기면 진북로 273

나바위 성당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나바위 성당

나바위 성당은 조선 헌종 11년(1845년) 김대건 신부가 중국에서 사제서품을 받고 페레올 주교 다불뤼 신부와 함께 황산 나루터에 상륙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하였다. 초대주임이었던 베르모넬(장약슬, 요셉) 신부가 중심으로 1906년 건물을 시공하여 1907년 완공하였다. 성당설계는 명동성당 포아넬 신부가 도왔고 공사는 중국인들이 맡았다. 나바위 성당은 우리나라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성인이 처음으로 전도하던 곳이어서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지로 지정한 곳이며, 이 건물은 천주교의 한국 유입과 그 발전과정을 볼 때 서구식 성당 건축양식과 우리나라 건축양식을 잘 절충시켜 조화를 이루고 있는 초기 성당 건물이다. 1916~1917년까지 흙벽을 벽돌조로 바꾸고 고딕식 벽돌조 종각을 증축하였다. 한국문화의 특성에 맞게 한옥목조건물에 기와를 얹은 나바위 성당건물은 특히 회랑이 있어서 한국적인 미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채광을 위한 팔각형 창문은 밤이면 더할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소나무와 어울려 조화를 이룬다. 원래 이름은 화산 천주교회이었지만 현재 ‘나바위 성당’으로 개명하였다. 나바위 성당은 국내 천주교의 성지답게 그에 따른 볼거리를 갖추고 있다. 첫 번째 볼거리로는 김대건 신부 순교비를 들 수 있다. 김대건 신부 순교비는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에 세워졌다. 두 번째 볼거리로는 망금정을 들 수 있다. 망금정이란 ‘아름다움을 바란다’라는 뜻으로 1915년 베로모렐 신부가 초대 대구교구장이신 드망즈 주교의 피정을 돕기 위해서 지은 정자이다. 이 정자는 화산의 끝자락에 있는 넓은 바위인 나바위에 위치하고 있는 데 주변의 경관과 어우러져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그리고 망금정이 있는 너럭바위 아래 바위벽면에 마애삼존불이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망성면 나바위1길 146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문화관광전북특별자치도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익산 왕궁리 오층 석탑은 마한 시대 도읍지로 알려진 전라북도 익산시 왕궁면에서 남쪽으로 2㎞쯤 떨어진 곳에 있는 석탑이다. 1단의 기단 위로 5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으로, 기단부가 파묻혀 있던 것을 1965년 해체·수리하여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했다. 탑의 기단은 네 모서리에 8각으로 깎은 주춧돌을 기둥 삼아 놓고, 기둥과 기둥 사이에는 길고 큰 네모난 돌을 지그재그로 맞물리게 여러 층 쌓아 올려놓아 목조탑의 형식을 석탑에서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이 팔각기둥과 네모난 돌들 사이는 흙을 다져서 메웠는데 이 속에서 백제시대의 기와조각이 발견되기도 하였다. 발굴 중에 기단 각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 조각을 새긴 것이 드러났으며, 탑의 1층 지붕돌 가운데와 탑의 중심기둥을 받치는 주춧돌에서 사리장치가 발견되었다. 1층부터 5층까지 탑신부 몸돌의 네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겼으며, 1층 몸돌에는 다시 면의 가운데에 2개씩 기둥 모양을 조각했다. 지붕돌은 얇고 밑은 반듯하나, 네 귀퉁이에서 가볍게 위로 치켜져 있으며, 방울을 달았던 구멍이 뚫려 있다. 각 층 지붕돌의 윗면에는 몸돌을 받치기 위해 다른 돌을 끼워놓았다. 5층 지붕돌 위에는 탑머리 장식이 남아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왕궁면 왕궁리

숭림사(익산)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숭림사(익산)

숭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경덕왕 때 진표가 창건하였다. 일설에는 1345년(고려 충목왕 1)에 창건했다고도 하며, 절 이름은 달마가 숭산 소림사에서 9년 동안 벽을 바라보며 좌선한 것을 기리는 뜻에서 숭산의 ‘숭’, 소림사의 ‘림’ 자를 따서 지은 것이라고 한다. 1697년(숙종 23)에는 영원전을 건립하였고, 1819년(순조 19)과 1882년(고종 19)에 숭림사 보광전과 주변 건물을 중수하였다. 1885년(고종 22)에는 우화루를 중건하였고, 1912년에 법당 중수, 1923년에 주지 황성렬이 나한전과 영원전을 새로 지었으며, 1957년 고광만의 시주로 시왕전과 나한전을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또한, 숭림사에는 보물과 전라북도 유형문화재가 많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웅포면 백제로 495-57

비슬산 유가사
역사관광대구광역시

비슬산 유가사

비슬산 서쪽 기슭에 위치한 유가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 신라 흥덕왕 2년인 827년에 도성이 창건하였고, 고려 3대 종파 가운데 하나였던 유가종의 중심 도량이기도 했다. 유가종의 총본산격인 사찰로 전성기에는 3,000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으며, 일연스님도 한때 이곳에 기거하였다. 이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1976년에 대웅전과 용화전을 중창하는 등 대대적인 불사를 일으켜 오늘에 이른다. 2008년 비슬산을 사랑하는 시민, 문인 등의 뜻이 모인 시비와 2011년 중창불사를 하면서 나온 108기의 돌탑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을 비롯하여 용화전, 시방루, 나한전, 산령각, 범종루, 천왕문 등이 있다. 특히 유가사 대웅전에 모셔진 삼존불상은 경주 일대에서 나는 경주 옥석으로 조성되었는데 불석이라 불리는 경주 옥석으로 석가모니 부처님은 물론 협시보살인 문수보살, 보현보살까지 조성하였다. 2003년, 대구광역시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유가사 석조여래좌상을 비롯한 괘불, 삼층석탑, 16기의 부도 등이 있다. 이 중 괘불은 주변의 마을 주민들이 가뭄이나 질병, 적군의 침입 등으로 어려움을 당할 때마다 봉안하고 소원을 빌었다 한다. 특히, 가뭄이 심할 때에는 괘불에 소원을 빌고 대견사터에서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내렸다고 한다. 1993년에 대웅전에 모셔져 있던 불화 3점을 도난당하여, 괘불을 볼 수 없는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괘불함만 보는 것으로 만족하여야 했으나 2023년 7월 25일, 30년 만에 회수하여 고불식을 하고 친견할 수 있게 되었다. 삼층석탑은 높이 364㎝이며, 아래쪽에 있었던 원각사터에서 1920년에 옮겨온 고려시대 양식을 띤 작품이다. 또, 이곳에 있는 16기의 석종형 부도는 도굴의 화를 입지 않아 온전히 보존되어 있으며, 부속암자로는 비구니들의 수도처인 수도암과 경상북도의 3대 기도처 중의 하나인 도성암이 있다. 비슬산 중턱에 위치하여 비슬산 내 다양한 관광지와 더불어 함께 즐기면 즐기기에 좋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유가읍 유가사길 161

옥계계곡
자연관광경상북도

옥계계곡

태백산 줄기의 끝자락인 달산면 옥계계곡은 천연림으로 뒤덮인 팔각산과 동대산의 기암절벽이 이루어낸 깊은 계곡이다. 인적이 없는 바위 틈 사이를 지나 오십천으로 흘러내리는 옥같이 맑고 투명한 물은 그 이름에 전혀 손색이 없을 만큼 맑고 깨끗하다. 또한 기암괴석과 어우러져 하얀 물보라를 일으키며 돌아드는 풍경은 장관을 이루어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맑은 계곡과 등산로를 갖춘 이곳은 주말마다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고 야영을 하기에 좋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옥계리

백운산 동곡계곡
자연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백운산 동곡계곡

옥룡면 동곡리에 위치한 동곡계곡은 백운산의 4개 계곡 중 가장 크고 길며 교통이 편리하여 가족 단위 피서지로 인기가 높다. 길이 약 10㎞의 동곡계곡의 물줄기는 광양읍 동천을 거쳐 광양만으로 흘러든다. 동곡계곡에는 학사대, 용소, 장수바위, 선유대 등의 비경이 있어 가을철이면 단풍과 어울려 경치가 아름답다. 원시림이 우거진 백운산은 한라산 다음으로 식생이 다양하고 보존이 잘 되어 있어 자연생태계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기도 하다. 현재 980여 종이 자라고 있는데 백운산에서만 자생하는 것으로 알려진 희귀식물은 백운란, 백운쇠물푸레, 백운기름나무, 나도승마, 털노박덩굴 등이고 특히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고로쇠 나무의 수액은 백운산의 자랑이기도 하다. 주변에 억불봉 코스의 등산로와 백운사를 경위하는 등산로 등 백운산의 주 등산로가 있으며, 차량 이동 10분 이내 거리에 서울대학교 남부학술림 추산시험장 수목 관찰원이있다. 학술림 안에는 누구에게나 개방된 자연 휴양림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옥룡면 약수제단길 154

송석정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송석정

화순읍에서 19㎞남쪽에 위치한 입교(갓다리)를 건너서 냇둑을 따라 북쪽으로 가면 500m 지점에 바위군과 소나무가 어우러진 모습이 보이며 그 뒤편으로 소나무 숲 사이에 송석정이 있다.강가에 튀어나온 기암괴석과 소나무, 대나무에 가려져 있는 송석정은 조선조 선조 때 훈련원첨정(종4품)을 지낸 양인용이 광해군 때 당쟁으로 정계가 혼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홀연히 고향으로 돌아와 이곳에서 시문으로 벗들과 담소하며 유연자약한 여생을 즐긴 곳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이양면 강정길 68

정기룡장군유적지(충의사)
역사관광경상북도

정기룡장군유적지(충의사)

충의사는 조선 선조 때 무장으로 임진왜란시 육전의 명장으로 큰 공을 세우신 정기룡장군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정기룡 장군은 1562년 (명종17년) 경남 하동군 금남면에서 출생하여, 20세 때 상주로 천거, 25세에 무과에 급제하여 왕명에 의해 기룡으로 개명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적은 군사로 크고 작은 60여회의 싸움에서 많은 왜병을 물리쳤으며 상주판관으로 있을 당시 격전 끝에 상주성을 탈환하였다. 이후 경상우도병마절도사, 경상도방어사, 3도통제사 겸 경상우도수군절도사로 재직하다가 병사하였다. 시호는 충의(忠毅)이다. 신도비, 장군 묘소와 같이 1974년 지방문화재 기념물로 지정되었고 1978년 호국유적 정화 사업으로 당초 16.5㎡ 정도의 사당을 약 13,223㎡의 부지에 사당, 전시관, 관리사무소 등으로 확장 정비한 호국사상의 성지이다. 전시관에는 보물호인 5점(교서 2점, 교지, 신패, 옥대 각 1점)과 동산문화재(교지 19점, 매헌실기 판목 58판)를 전시하고 있다. 또한 매년 10월 무렵 지역 주민이 임진왜란 당시 상주성을 탈환하던 장면을 재현하여 장군의 호국사상을 홍보, 계승하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국면 충의로 230

금강공원
문화관광부산광역시

금강공원

일본 상인이 금정산자락의 일부를 자신의 개인 정원으로 꾸며 만든 이곳이 광복 후 공원으로 지정되면서 ‘금강공원’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금강’이라는 이름은 금정산의 수려함이 금강산에 버금간다 하여 ‘소금강’이라고 불렸는데, 여기서 따온 이름이다. 도심 속에 위치해 있어 사계절 인적이 끊이지 않는 공원으로, 누구나 즐길 수 있는 휴식처로 사랑을 받고 있다. 공원 내에는 다양한 문화시설이 있다. 동래지역이 가진 전통민속예술의 발굴과 계승, 보급을 위해 1974년 9월에 개관한 부산민속예술관,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 해양자연사 전문 박물관인 부산해양자연사박물관이 자리하고 있다. 금강공원 케이블카도 빼놓을 수 없는 명물이다. 1966년 만들어진 케이블카는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빨갛고 노란 옛날 느낌 그대로 운행하고 있다. 이외에도 체육시설, 지방문화재기념물 제13호인 임진동래의총, 7개의 기념비도 볼 수 있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우장춘로 155

성흥사
역사관광경상남도

성흥사

성흥사는 신라흥덕왕 8년(833년)에 무염국사가 왜구를 물리친 것을 기념하여 지은 대사찰이었다. 당시에 승려 500여명이 머물렀던 큰 규모의 절이었으나 1109년 무렵 화재로 소실된 뒤에 대장동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1668년 화재로 다시 절을 구천동으로 옮겼다가 1789년에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다. 고종 27년(1890년) 화주스님이 그린 섬세한 필치의 무염국사의 영정과 대불상, 나한상, 나한종관상, 제석상 등과 당간지주가 있고 사찰의 서남쪽 지점에는 조선시대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도군 등이 있다. 성흥사 옆으로 우거진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에 맑은 물이 흘러 여름 피서객들에게 시원한 휴식처가 되고 있으며 계곡 입구에는 넓은 주차공간과 토속음식점들이 있어 계곡을 찾는 사람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대장로 273

화성 융릉(장조·헌경황후)과 건릉(정조·효의황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역사관광경기도

화성 융릉(장조·헌경황후)과 건릉(정조·효의황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융릉은 황제로 추존된 장조와 헌경황후 홍씨의 능이다. 융릉은 한 봉분 안에 황제와 황후를 같이 모신 합장릉(合葬陵)의 형식이다. 1762년(영조 38) 장조(사도세자)가 아버지 영조의 명으로 뒤주에 갇혀 세상을 떠나자, 현 서울 동대문구 배봉산에 묘를 조성하였고, 이후 무덤을 수은묘(垂恩墓)라 불렀다. 1776년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 아버지에게 장헌세자(莊獻世子)라는 존호(尊號)를 올렸고, 묘를 원으로 높여 이름을 영우원(永祐園)이라 하였다. 이는 장헌세자가 왕세자의 신분도 있었지만, 왕의 생부이기 때문에 무덤의 이름을 원으로 정한 것이다. 이후 정조는 배봉산에 있던 영우원을 1789년(정조 13) 수원 화산인 현재의 자리로 옮기면서 원의 이름을 현륭원(顯隆園)으로 바꾸었다. 1815년(순조 15) 헌경황후(혜경궁)가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현륭원에 합장되었고, 대한제국 선포 후 1899년(광무 3) 장헌세자가 장종으로 추존되자 원을 능으로 높여 융릉이라 하였다. 건릉은 조선 22대 정조와 효의황후 김씨의 능이다. 건릉은 한 봉분 안에 황제와 황후를 같이 모신 합장릉(合葬陵)의 형식이다. 건릉은 1800년(정조 24)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장조의 융릉(당시 사도세자의 현륭원) 동쪽 언덕에 조성하였다. 그러나 풍수상 불길하다는 논의가 있어 1821년(순조 21) 효의황후가 세상을 떠난 후 건릉을 옮기는 것으로 결정하였다. 능 자리는 융릉 서쪽 언덕인 현재의 자리로 정하고 정조를 먼저 모신 다음에 효의황후를 합장하였다. (출처 : 국가유산청 궁능유적본부)

경기도 화성시 효행로481번길 21 (안녕동)

약사사(인천)
역사관광인천광역시

약사사(인천)

1932년 금강산 유점사에서 수행하던 보월스님이 우연히 이곳 만월산을 지나게 되었다.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동서남북이 한눈에 다 보이고, 산세가 팔을 뻗어 시가지를 감싸 안은 듯한 모양이 예사롭지 않아 그 이듬해 이곳에 작은 암자를 짓게 하고 약사암이라 명명하였다. 지금의 약사사보다 조금 더 산 위쪽이었는데, 일반 대중에게 부처님의 설법이 좀 더 쉽게 다가가려는 의도였던 것 같다. 보월스님은 그 뒤 금강산으로 돌아갔고, 그를 이어 인천 해광사에서 수도 중이던 한능해 스님이 이곳을 지켰다. 그는 1960년대 들어 지금 위치에 대웅전 등을 짓고, 약사암을 약사사로 높여 오늘날에 이르렀다. 현재 약사사에는 대웅보전, 극락전, 약사전, 칠성각, 산신각, 미륵불, 독성각, 용국각, 조사당, 일주문 등이 있다.

인천광역시 남동구 풀무로 48

진부령 흘리마을
문화관광강원특별자치도

진부령 흘리마을

인제군에서 고성군으로 넘어가려면 미시령(767m)을 넘거나 진부령 (529m)을 넘어야 한다. 인제군 용대삼거리에서 46번 국도를 타고 용대 자연휴양림 입구를 지나 북으로 올라가면 알프스리조트 입구와 진부령고개가 나온다. 진부령 마을 관리 휴양지는 46호선 국도변에 있다. 향로봉 산맥인 칠절봉과 둥글봉에서 발원한 오염되지 않은 맑은 물이 흐르는 계곡으로 관광객을 사로잡고 있다. 여행객들은 이곳 마을에서 생산되는 산채, 옥수수, 감자, 약초, 토종꿀 등을 산지에서 직접 구매할 수 있으며 토종닭을 비롯한 토속 음식이 관광객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한 피망 생산 단지로 향, 맛, 품질로 비교가 안 되는 전국 제일의 피망 산지이며 또한 고랭지 채소와 치커리 재배로 고소득 마을이다.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간성읍 흘리길 185

영원사(원주)
사찰강원특별자치도

영원사(원주)

영원사는 강원도 원주시 판부면 치악산에 위치한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이다. 신라시대 문무왕 16년(676)에 의상대사가 영원산성의 수호 사찰로 창건하여 영원사[永遠寺]라고 하였다가 조선시대 1664년(현종 5)에 인환이 중건하면서 영원사[領願寺]로 바꾸었다. 그 뒤 한때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39년에 이계호가 중건하였고, 오랜 풍우로 붕괴 우려가 있었던 법당을 주지 김병준이 중수하였으며 1990년 무이 스님이 주지로 부임하여 폐허 직전의 영원사를 중창하여 이어오고 있다. 현존 건물로는 대웅전과 산신각, 종루, 요사채 2동이 있으며, 1988년 5월28일 전통사찰로 지정되었으며 절 뒤쪽 600m거리에 약 4km에 걸쳐 영원산성의 흔적이 남아 있다. 치악산국립공원 금대분소에서 영원사까지 거리는 2.4km로 금대계곡길을 따라 오르면된다. 단풍이 한창인 가을, 영원사에 오르는 길에는 온통 울긋불긋한 숲의 모습이 산책의 운치를 더하곤 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판부면 영원산성길 685

석남사(안성)
역사관광경기도

석남사(안성)

석남사는 서운산 기슭에 자리한 작은 사찰로, 통일신라의 승려 석선이 창건한 곳이다. 고려 초기에 혜거국사가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고 그 후 화덕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영산전과 산신각, 요사채 등이 있고 문화재로는 석탑재와 마애불 등이 있다. 대웅전 안에는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으며, 마애불은 높이 7m 정도의 자연암벽에 양각된 입상으로, 얼굴은 암벽의 균열로 인해 마멸이 심하다.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 상촌새말길 3-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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