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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7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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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비계곡
자연관광경상남도

찰비계곡

자굴산으로부터 이어지는 맥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어 곳곳에 기암괴석이 연출하는 절경이 즐비한데 한우산을 끼고 흐르는 계곡이 찰비계곡이다. 이 계곡의 골짜기에는 천연의 요새처럼 석벽이 들러있어 그 모양이 성벽을 방불케 하여 이름 지어진 한우산성이 있다. 찰비계곡은 사시사철 맑은 물이 굽이치고 흘러서 폭포를 만들어 일대장관을 이루는 천하의 절경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흐르는 폭포수는 곳곳에 소를 만들어 놓았는데 각시소와 농소, 아소 등이 유명하고 여기에 얽힌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러한 폭포수와 웅덩이의 물이 너무 맑아 주위에 아름다운 숲들이 물에 비쳐서 선경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여름철과 가을철에 많은 관광객이 찰비계곡을 찾고 있다. 지금은 계곡아래쪽에 있는 벽계관광지와 벽계저수지 등으로 인해 종합 관광지로 발돋움하고 있어 야영객과 낚시꾼 등 많은 관광객들이 이곳을 찾아온다.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탑바위
자연관광경상남도

탑바위

의령읍에서 동쪽으로 떨어진 정곡면 죽전리 남강변의 깎아지른 벼랑 위에는 흡사 탑 모양을 닮은 층층바위 하나가 우뚝 서 있는데, 이것이 바로 탑바위이다. 이 바위는 20톤가량의 커다란 바위가 아랫부분을 받치고 있으며, 그 위로 높이 8m가량의 작은 바위가 마치 탑층을 이루듯이 천연으로 층을 이루고 있는데 자연의 조화치고도 매우 신기한 형상이다. 탑바위 아래로는 남강의 맑은 물이 굽이쳐 흐르고, 강 건너편은 끝없이 넓은 들판이 활짝 펼쳐져 있어서 절경이다. 이곳 주변은 임진왜란 당시 망우당 곽재우 장군의 전승지로도 널리 알려진 곳이며, 의령군에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들의 전승지가 여러 군데 있다. 탑바위는 홍의장군 곽재우의 의병들이 거점으로 삼았던 유곡면 세간리와 가깝고, 남강변에 촘촘히 복병을 매복해 두었다가 왜군의 내습에 대비했던 기록들도 남아있다.

경상남도 의령군 정곡면 죽전리 252

환벽당 ·조대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환벽당 ·조대

담양 가사문화권역에 있는 환벽당은 광주호 상류 충효 동쪽 높다란 언덕 위에 자리하고 있다. 나주목사(羅州牧使)를 지낸 김윤제(金允悌:1501∼1572)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育英)에 힘쓰던 곳이다. 당호(堂號)는 영천자 신잠(靈川子 申潛)이 지었으며, 벽간당(碧澗堂)이라고도 불렀음이 고경명(高敬命)의 유서석록(遺書石綠)에 기록되어 있다. 환벽당은 홍문관 교리, 나주 목사 등 13개 고을의 성주를 역임한 후 고향으로 돌아온 사촌 김윤제(1501~1572)가 창건하고 육영에 힘쓰던 곳인데, 송강 정철, 사하당 김성원 등이 대표적인 제자다. 환벽당 인근에 위치한 용소는 창계천의 깊은 물 웅덩이를 말한다. 이곳은 송강 정철에 대한 전설이 얽힌 곳이기도 하다. 전설에 의하면 환벽당에서 사촌이 낮잠을 자는데 꿈에 환벽 당 앞 용소에서 청룡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이었다. 꿈에서 깨어나 이를 괴이히 여겨 하인을 시켜 살펴보라 하였는데 어린 동자가 목욕을 하고 있었다. 이 동자가 바로 집안이 역적으로 몰려 피신하는 길에 잠시 쉬고 있던 송강 정철이다. 사촌이 송강을 불러 문답하는 중에 그 영특함에 놀라 자기 슬하에 두고 학문을 닦게 하여 송 강 나이 17세에 그를 외손녀 사위로 삼고 정철의 뒷바라지를 했다. 용소 옆에는 송강이 이곳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고기를 잡았다는 조대가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환벽당길 10

김포 덕포진
역사관광경기도

김포 덕포진

김포 덕포진은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에 자리한 조선시대의 전략적 요충지로, 소규모 군사기지인 돈대와 포대, 파수청이 있었다. 돈대는 주변 관측이 용이하도록 높은 땅에 설치한 기지이다. 포대의 경우엔 아군의 포격에 편리하도록 구축된 축성물이며, 파수청은 탄약고와 포대에 사용하기 위한 불씨를 보관하고 포병을 지휘하던 곳이다. 강화해협을 통해 수도 한성으로 진입하려는 외세의 침공을 방어하기 위해 설치된 곳으로, 처음 세워진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679년 강화의 광성보, 덕진진과 함께 축성되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격전지로써, 덕포진 앞의 해협이 매우 좁고 물살이 빨라 손돌목이라 부르기도 하였다. 1980년에 행한 발굴조사 결과 7개의 포탄과 2개의 상평통보 등이 출토되었고 주춧돌과 화덕자리를 발견하였다.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덕포진로103번길 130

김포 수안산성
역사관광경기도

김포 수안산성

김포 수안산성은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수안산 정상(147m)에 위치해 있다. 이곳은 김포의 서북부지역이며, 산 정상부에서는 인천, 강화, 서울지역이 넓게 조망된다. 수안산성의 평면 형태는 남북으로 긴 타원형이다. 현존하는 성벽의 둘레는 685m인데, 군사시설이 설치되면서 훼손이 심한 상태다. 성벽은 석축이며 방형이나 장방형으로 가공된 성돌을 바른층쌓기하여 정교하게 쌓아 올렸다. 도로 개설로 인하여 절단된 구간에서 확인되는 성벽 단면을 보면 내벽과 외벽, 적심부를 모두 돌로 쌓은 편축공법으로 구축되었음이 확인된다. 축성법이나 성내에서 출토된 유물을 고려할 때 수안산성은 6세기 후반 신라에 의하여 축성된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지리지에 의하면 이 지역은 고구려 수이홀(首尒忽)이었다. 신라가 점유하고 경덕왕대에 수성현(戍城縣)으로 개칭될 때까지 수이홀현으로 불리었다. 이후 고려 때 수안현으로 바뀌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수안산성은 신라 수이홀현의 치소성으로 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수안산성의 원 명칭은 ‘수이홀성’ 으로 불리다가 ‘수성’으로 개칭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수안산성 정상부에는 조선시대의 수안산봉수터가 남아있다. 수안산봉수는 강화 대모산성에서 정보를 받아 김포 백석산으로 전달했다. 봉수터는 대부분 훼손되어 5개의 봉돈 중 1개만 남아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기도 김포시 대곶면 율생리

영주 순흥 어숙묘
역사관광경상북도

영주 순흥 어숙묘

비봉산 서남 남사면에 있는 신라의 벽화무덤으로, 1971년 이화여자대학교 박물관에서 조사하였다. 흙을 쌓아 올린 원형 봉토무덤으로, 지름은 16m이며, 파손이 심하여 높이는 확인할 수 없다. 봉토 아래쪽에는 자연석을 이용하여 둘레돌을 돌렸다. 내부는 널방(현실)과 널길(연도)이 있는 굴식돌방무덤(횡혈식석실묘)이다. 현실의 4곳의 벽과 천장 표면에는 석회를 바르고 벽화를 그렸으며, 바닥에는 널을 올려놓는 넓은 널받침을 설치하였다. 서쪽 벽 위에는 도굴로 인해 흙이 밑에 쌓여 있었고, 유물은 남은 것이 하나도 없었다. 널방은 돌로 문짝을 세워 닫았으며, 널길 입구에는 막돌을 쌓아 막았다. 그림은 무덤 전반에 걸쳐 그려졌으나 자연적인 습기 등으로 파괴되고 널길천장과 문짝에만 벽화가 남아있는데 모두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렸다. 천장에는 대형 연꽃무늬 1개가 그려져 있는데 붉은색 한 가지로만 연꽃을 그린 것이 특색이다. 돌로 만든 문짝의 바깥쪽에는 인물상으로 보이는 그림이 전면에 그려 있으나 거의 형체를 알아볼 수 없으며, 문짝의 안쪽에는 ‘을묘년어숙지술간’이란 글을 새겼다. 을묘년은 연꽃무늬로 보아 법흥왕 불교 공인 이후인 6세기말의 진평왕 17년(595)년으로 추정되며, 어숙은 사람 이름으로 고구려계이다. 술간은 신라의 관직명으로 6세기경 이 지방이 고구려와 신라의 경계지역이라는 독특한 상황에서 나타난 것으로 보인다. 순흥 벽화무덤과 함께 신라 영역에서 발견된 벽화무덤이라는 점과 이름이 있는 신라 유일의 무덤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자료가 된다. 특히 연꽃무늬와 어숙이라는 사람 이름이 고구려계로 추측되어, 이 지역이 고구려와 신라의 통로였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태장리

흑석사(영주)
역사관광경상북도

흑석사(영주)

영주시 이산면 석포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소속 사찰인 흑석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에 소실되어 폐찰로 내려오다가 8·15 광복 후 승려 김상호가 소백산 초암사의 목재를 옮겨와 중창한 것이라 한다. 절 이름은 절 가까운 마을 이름이 흑석이고, 그 마을의 뒤편에 거대한 검은 바위가 있어 사찰 이름을 ‘흑석사’라 했다고 한다. 또 다른 유래에 의하면 흑석사 부근 바위 빛깔이 대개 검어 이름이 흑석사가 되었다 한다. 흑석사의 가람 구조는 극락전, 보궁, 승방, 심검당, 환희전, 종무소, 요사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극락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식 맞배지붕 구조로 국보인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을 주불로 하는 삼존불을 봉안하고 있다. 목조아미타불좌상은 본래 정암산 법천사에 있던 걸로 6·25 때 옮겨온 것으로 불상의 복장에서 복장기와 보권문, 전적 4종과 직물, 기타 복장 유물이 수년 전 발견되어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 밖에도 자연 상태 바위에 새긴 흑석사 마애삼존불상이 소장되어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이산로 390-40

전곡리 유적 토층
자연관광경기도

전곡리 유적 토층

전곡리 유적은 연천군 전곡읍 전곡리 한탄강 일대에 위치하며 우리나라 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이다. 이 유적은 1977년 한탄강 유원지에 놀러 왔던 한 미군 병사에 의해 지표에서 석기가 발견되면서 주목받게 되었다. 전곡리 토층은 고기후와 고환경을 연구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으며, 인류의 발달에 대한 기록을 가지고 있는 지질명소에 해당한다. 점토층에서는 토양쐐기 구조라 불리는 건조균열현상이 관찰되는데, 빙하기에 형성되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있고 고기후를 연구하는데 있어 중요한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또한, 일본에서 바람에 의해 날려온 화산재가 토층에서 발견되어 상부층이 약 2만년에서 10만년전에 쌓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렇듯 전곡리 토층은 고고학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지질학적으로 고기후를 연구하는데 있어 매우 중요한 지질명소에 해당한다. (출처 : 한탄강지질공원 홈페이지)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양연로 1510

역사관광경기도

1.21 무장공비 침투로

고랑포에서 서남쪽으로 3.5km지점에 위치한 무장공비침투로는 1968년 1월 17일 23시 북한군 제124군 소속 김신조 외 30명이 남방 한계선을 넘어 침투한 곳이다. 북한은 당시 김신조 외 30명의 무장공비를 1968년 1월 21일 서울로 잠입시켜 대통령 관저(청와대) 폭파와 요인 암살 및 주요 기관 시설을 파괴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968년 1월 19일 21시경 파주시 법원리에 거주하는 나무꾼이 신고하여 군·경 합동으로 무장공비 소탕작전이 1968년 1월 20일부터 1월 30일까지 전개되어 사상자 29명, 도주 1명, 체포 1명(김신조)의 전과가 있었으나 우리 군·경의 피해도 적지 않았다. 현재 무장공비침투로에는 그 당시 이곳에 주둔한 미군 제2사단 방책선 경계부대에서 설치한 경계 철책과 철조망을 뚫고 침투한 무장공비의 모형물을 만들어 전시하고 있다. 관할 군부대에서는 1999년 10월 1일자로 민통선 북방 지역 출입 통제를 일부 완화하여 사전 신청에 의한 견학이 가능하다.

경기도 연천군 장남면 반정리 294

예천 천향리 석송령
자연관광경상북도

예천 천향리 석송령

석평마을의 마을회관 앞에서 자라고 있는 예천 천향리 석송령은 나이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나무 높이 9.2m, 가슴높이 둘레 4.2m이다. 나무는 밑동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갈라져 있어 전체적으로 우산모양을 하고 있으며, 곁가지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곳곳에 돌로 된 기둥을 세워 놓았다. 전하는 이야기에 의하면 약 600년 전 풍기지방에 큰 홍수가 났을 때 석간천을 따라 떠내려오던 소나무를 지나가던 사람이 건져서 이 자리에 심은 것이라고 한다. 그 뒤 이 마을에 살던 이수목(李秀睦)이라는 사람이 ‘석평마을에 사는 영감이 있는 소나무’라는 뜻으로 ‘석송령’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고, 자신의 토지 6,600㎡를 물려주고 등기까지 내주어 재산을 가진 나무가 되었다. 또한 고 박정희 대통령이 500만원을 하사한 일도 있다. 마을에서는 석송령의 재산으로 장학금을 조성하여 학생들에게 주고 있으며 매년 정월 대보름에 마을의 평화를 비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예천 천향리 석송령은 마치 사람처럼 재산을 가지고 세금과 장학금을 내는 등 세계적으로 그 예를 찾기 어려운 나무로 우리 민족의 나무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문화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매우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천향리

상주동학교당
역사관광경상북도

상주동학교당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의 평지마을에 있는 동학의 교당이다. 현 소유자의 부친 김주희(1860∼1940)가 1915년에 이곳에 본거를 정하고 민족 고유의 종교인 동학의 포교와 교세확장을 위하여 활동하다가 1924년에 지었다고 한다. 동·서·남·북재 4동의 건물이 사방에 배치되었고 곳간채는 왼쪽 뒤편에 있다. 중심 건물인 북재는 성화실, 사랑채인 동재는 접주실, 안사랑채인 서재는 남녀교도가 각각 반씩 사용하였으며, 행랑채인 남재는 남교도가 사용하였다. 원래는 모든 건물이 초가였으나, 후에 슬레트로 지붕을 고쳤다. 동학의 본부 건물이라는 특수한 예로 주목된다.

경상북도 상주시 은척면 우기1길 64

팔공산국립공원(파계사지구)
자연관광대구광역시

팔공산국립공원(파계사지구)

팔공산은 공산, 부악, 중악, 천왕봉이라고도 부른다. 팔공산이 하나의 맥을 이루므로 이 자체를 팔공산맥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대구분지의 북쪽을 동서 방향으로 가로지르고 있으며, 남동쪽의 초례봉(635.7m)에서 시작하여 환성산(672.1m), 노적봉(886.9m)을 지나 팔공산, 북서부 쪽의 가산을 연결하면서 팔공산맥을 이룬다. 팔공산의 최고봉인 비로봉과 동봉(1,168m), 서봉(1,150m)은 양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한 형상을 보여 주고 있다. 팔공산의 서쪽 자락에 파계봉, 파계재가 있고 파계재의 남쪽 방면에 파계사를 중심으로 형성된 곳을 팔공산자연공원 파계사지구라 하여 특히 울창한 숲과 맑은 계곡이 선경을 이루고 있다. 팔공산의 자연을 그대로 즐기기에 더욱 알맞은 장소이며 주변에는 파계사를 비롯하여 수태골 등 계곡과 오토캠핑장인 파계야영장이 있다. 파계사는 신라애장왕 때 심지왕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파계란 호칭은 절 주변으로 흐르는 9개의 물줄기를 모은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고 하며 영조임금의 도포를 비롯한 원통전등 문화재를 여러 점 보존하고 있다. 영조 때 왕실의 원찰이기도 하여 영조와의 설화를 뒷 받침하는 문화재가 발견된 바 있는 곳이기도 하다. 팔공산자연공원 내 파계사지구에서는 팔공산의 진매력을 더욱 가까이 느낄 수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

연평도
자연관광인천광역시

연평도

연평도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에 위치한 섬으로, 대연평도와 소연평도로 이루어져 있다. 대연평도는 연평도의 주된 섬으로, 면적이 넓고 주요 주민들이 거주하는 곳이다. 이곳은 자연경관이 뛰어나며, 특히 해안선이 아름답고, 다양한 해양 생물들을 관찰할 수 있는 곳이다. 대연평도는 바다와 산이 어우러져 있어 하이킹과 산책을 즐기기에도 적합하다. 소연평도는 대연평도에서 가까운 작은 섬으로, 조용하고 한적한 분위기를 자랑한다. 소연평도는 자연 그대로의 풍경을 유지하고 있어, 편안한 휴식과 자연 탐방을 원하는 이들에게 이상적인 장소이다. 두 섬 모두 해양 스포츠와 갯벌 체험 등 다양한 액티비티를 즐길 수 있으며, 일출과 일몰이 아름다워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한다. 연평도는 자연과 평화로운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최적의 여행지이다.

인천광역시 옹진군 연평면 연평중앙로24번길 3

고포마을
문화관광강원특별자치도

고포마을

고포마을은 경상도의 가장 북쪽 마을이자 강원도 동해안의 가장 남쪽 마을이기도 하다. 전체 20여 가구밖에 되지 않는 동네 하나가 두 개의 도에 걸쳐 있는 것이다. 즉, 동네의 한복판을 흐르는 작은 개울을 경계로 해서 북쪽은 강원도 삼척시 원덕읍 월천 2리이고, 남쪽은 경북 울진군 북면 나곡 6리이다. 그러나 주민들 간에는 같은 마을 사람이라는 유대감과 공동체 의식을 갖고 있다. 예컨대 월천 2리에 하나뿐인 포구를 나곡 6리 주민들도 아무 거리낌 없이 이용하고, 월천 2리에 사는 사람들의 농토는 대부분 나곡 6리에 몰려 있다. 서로 말씨나 풍속도 똑같을 뿐만 아니라 마을 잔치를 열거나 미역을 채취하는 따위의 공동작업도 도(道)의 구분 없이 전체 주민들이 함께 참여한다. 이곳은 원래 돌미역의 생산지로 유명하다. 고포미역은 임금께도 진상했던 명품이다. 이곳 바다는 수심이 얕고 물빛이 맑아서 햇빛이 물속 깊숙이 비춘다. 게다가 동해안에서는 조류가 가장 빨라서 양질의 돌미역이 자랄 수 있는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다는 것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원덕읍 고포월천길 87

이원반도
자연관광충청남도

이원반도

이원반도는 태안 북쪽으로 올라가면서 툭 튀어나온 모양을 하고 있는 지형이다. 태안의 땅끝마을로 불리기도 한다. 최북단에 만대포구가 있는데 가로림만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는 서산 벌천포와 마주 보고 있고, 거리가 가까워서 벌천포와 대산산업단지, 독곶리 황금산 등이 보이기도 한다. 이원반도 내에서 가족단위로 찾아가기 좋은 해수욕장은 내리 1구의 사목해수욕장이다. 모래밭의 길이가 1km에 달하며 폭은 100m 정도이다. 대로변에서 700m가량 서쪽 바다로 들어가면 해변이 나타난다. 솔숲동산이 해변 가운데 있고, 그 양편으로 백사장이 뻗어 있다. 화려하진 않아도 인파에 시달리지 않고 조용히 해변 정경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충청남도 태안군 이원면 내리

심향사(나주)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심향사(나주)

심향사는 금성산 자락에 있는 사찰이며 통일신라시대에 원효가 창건하였다고 하며 창건 당시의 이름은 미륵원이었다고 하는데, 그 뒤 고려 시대인 951년에 신왕사로 고쳤다가 신황사로 바뀌었다. 심향사가 유명한 것은 고려 시대에는 현종 2년 거란군이 침입하자 현종이 이곳 나주로 몽진하였는데, 이때 나라의 평안을 위해 기도를 올렸다고 전해 온다. 신황사로 불렸던 점을 고려해 보면 그 이름에서 암시하듯이 고려 현종의 나주 몽진 때 이 절에서 나라의 안녕을 기도하는 대법회에 임금이 참여했을 가능성이 있다. 신황사는 이후 지금의 심향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심향사는 1976년 8월에 장마로 인해 대웅전인 ‘미륵전’이 무너져 내려 1977년 10월에 복원되었다. 복원 작업을 하면서 1789년 작성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이 상량문에 '신황사용화전'이라고 적혀 있어 당시 절 이름이 신황사였고, 또한 미륵전도 용화전으로 불리었음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1982년에는 대웅전을 중건하면서 ‘극락보전’으로 불전 이름을 바꾸었다. 심향사에는 북망문 밖 3층석탑, 미륵전에 봉안되어 있는 건칠아미타여래좌상 등이 있다. 심향사는 나주공업고등학교와 금성중학교의 뒤편에 위치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건재로 41-1 (대호동)

고령 장기리 암각화
역사관광경상북도

고령 장기리 암각화

양전동 암각화는 높이 3m, 너비 5.5m의 직사각형 암벽에 새긴 그림으로, 1971년에 발견되었다. 암각화는 선사시대의 신앙과 생활상을 생생하게 표현한 그림으로, 주로 풍요로운 다산을 기원하는 주술적인 내용을 바위나 성스러운 장소에 새긴 것을 말한다. 양전동 암각화의 내용은 겹둥근무늬(동심원)와 십자무늬, 탈모양(가면형) 등이 조각되어 있다. 세 겹의 동심원은 4점으로 해와 달을 상징하고, 십자형은 부족사회의 생활권을 표시한 것으로 추정되며, 가면형은 모두 17점으로 사람의 얼굴 형태를 하고 있다.양전동 암각화 유적은 당시 주민들의 농경의식이나 제사 때 사용했던 장소로 추정되며, 이곳에 새겨진 각종 문양들은 우리나라 선사문화 연구의 귀중한 자료로 간주된다. 또한, 고령의 알터에 암각화가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유사(三國遺事)》 등에 나오는 난생설화(卵生說話)의 근원을 찾아볼 수 있으며, 6가야의 중심지가 김해가 아니라 고령으로 추측하는 가설도 나오고 있다.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아래알터길 15-5

반룡사(고령)
사찰경상북도

반룡사(고령)

반룡사는 대가야의 후손들이 신령스러운 용의 기운이 서려 있는 곳에 세웠다고 해서 반룡사(盤龍寺)라 이름 지어진 절이다. 신라 애장왕(802년)에 해인사와 같은 시기에 건립하였다고 전하며, 고려 중기 보조국사가 중건하고 고려 말 나옹선사가 다시 중건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교종에 속한 사찰이었으며 임진왜란으로 소진된 것을 사명대사가 중건하였다고 한다. 이 절과 관련된 고승의 면면만 보더라도 과거 이 사찰이 얼마나 이름나 있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그 뒤 화재로 인해 대웅전을 비롯한 6당과 요사가 전소되었으나 영조 때에 현감 윤심협이 다시 중건, 1930년 이봉조가 다시 중수했고, 최근 법당건물이 새로 들어섰다. 반룡사에는 반룡사 다층석탑과 반룡사 동종이 남아있었으나 현재는 도난과 훼손의 우려로 인해 대가야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반룡사길 87

고령 지산리 당간지주
역사관광경상북도

고령 지산리 당간지주

지산리 당간지주는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지산동 민가 안에 있는데, 그 일대가 부락으로 변하여 옛 절터를 찾아볼 수 없으나, 원위치에 원상태로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을 미루어 당시 이 일대가 대사찰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외면의 모서리를 죽이고 종문를 조각하여 매우 장식적이고 화려한 의장 수법을 보이고 있다. 지주의 정상부는 뾰족하고 바깥으로 내려오면서 3단의 굴곡을 활 모양의 선으로 처리하였으며, 지주의 안쪽에는 간공 두 개가 있는데 이들은 장방형의 형태로 구멍을 뚫어 간을 끼우도록 하였다. 지산동 당간지주는 상·하부의 크기가 거의 같아서 약간 둔중한 인상을 주지만 지주의 바깥둘레 각 면의 조각장식 수법으로 보아 가작(佳作)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전체적으로 화려하고 단아한 조각이나 솜씨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조각기법과 다듬은 돌 등을 보아 통일신라시대 중기에 건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고령군 대가야읍 지산리

허심청
문화관광부산광역시

허심청

허심청은 편안하고 즐거운 온천욕과 휴식 및 체력단련을 통한 건강증진을 추구하는 새로운 유형의 도시형 온천 건강랜드로, 1991년 10월 부산시 도심 재개발 사업으로 탄생했다. 허심청의 온천탕은 전체 4,297.54m²로 3,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동양 최대 규모의 온천시설이다. 대온천탕에서는 장수탕, 회목탕, 청자탕, 동굴탕, 노천탕 등 40여 종의 효능별 욕탕과 계절에 따라 천연재료와 한방약재를 달리한 이벤트탕을 운영하며, 개인별 체질과 연령에 따라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다양한 입욕코스를 갖추고 있다. 확 트인 초대형 온천탕과 자연채광이 가능한 천장, 예술적 조형미를 갖춘 아름다운 실내 전경으로 허심청만의 특별한 휴식을 경험할 수 있으며, 찜질방 및 부대시설에서는 가족과 함께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장로107번길 32 (온천동)

서원계곡
자연관광충청북도

서원계곡

금강 발원지 중 하나인 삼가저수지를 중심으로 상류의 만수리에 만수계곡, 하류 서원리에 서원계곡이 위치한다. 아름다운 산수와 어울려 한 폭의 산수화를 방불케 할 정도로 아름다워 제2의 화양계곡이라 불리기도 한다. 산중형인 만수계곡은 하천폭이 좁은 반면 나무 그늘이 시원하고 평지형인 서원계곡은 그늘은 적지만 하천폭이 넓어서 찾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다. 특히 삼가저수지에서 시작된 서원계곡 물길이 서원리 소나무 앞을 지나면서 급히 북쪽으로 방향을 트는 곳. 황해동 1교와 2교, 정부인송 앞 강변, 서원골가든 앞은 서원계곡 제일의 물놀이 장소이다. 서원계곡 옆 505번 지방도를 따라 5㎞를 달리면 서원리 소나무가 나온다. 보은의 명산 구병산이 계곡을 만나면서 5㎞에 걸쳐 그 세를 다한다. 명산이 물길을 만나면 그냥 잦아들지 않는다. 그래서 이 계곡은 산수도 몇 폭 나올만한 경치 좋은 장소를 곳곳에 품고 있는 명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계곡이다 서원계곡은 인근에는 다른 볼거리가 풍부하다. 서원계곡과 서원리라는 마을 이름이 비롯된 상현서원 있으며 상현서원은 우암 송시열 선생을 비롯해 성제원, 조헌, 그리고 춘암 김정선생을 모시고 있는 서원이다. 또한 서원리에는 수령은 6백∼7백 년 정도로 추정되는 정부인송 소나무가 있다. 속리산말티재휴양림과 선병국가옥도 함께 둘러볼 만하다.

충청북도 보은군 장안면 장안로 491-4

석남사계곡
자연관광울산광역시

석남사계곡

석남사 계곡은 울주군에 위치한 석남사를 끼고 있는 계곡이다. 가지산 동쪽 자락에 있는 석남사는 능동천이 흐르는 물 맑은 계곡의 해발 360m 지점 언덕에 세워진 비구니들의 수도 사찰로 알려진 고찰이다. 석남사 위쪽 운문령이나 능동천, 덕현천에서 언양읍을 향해 흘러내려가는 물은 매우 맑은 편으로 계곡길이가 불과 1km 정도로 짧지만 크고 작은 너럭바위들은 피서객들의 훌륭한 쉼터로 발을 담고 더위를 식히기 좋다. 바위와 바위 사이로는 자그마한 폭포와 그리 깊지 않은 소가 형성되어 있고 계곡 옆쪽으로 울창한 숲이 있어서 여름 한낮 땡볕을 피할 수 있다. 절의 일주문을 지나 석남사 가는 길목의 오른쪽 나무숲 사이로 계곡의 흐르는 물을 즐기며 더 올라가면 석남사 사찰 건물들이 보이고 석남사 계곡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즈음에서 도로가 아닌 보행로를 이용하여 다리를 넘으면 석남사 경내로 들어가게 된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이천리 642-7

가마골계곡
자연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가마골계곡

담양군 용면 용연리에 소재한 용추봉(523m)을 중심으로 사방 4㎞에 걸쳐 형성되어 있는 계곡이다. 그다지 산이 높다고는 할 수 없으나 총 311,000㎡의 넓은 규모에 울창한 숲 사이의 계곡과 맑은 물, 기암괴석이 수려한 경관을 이루고 있다. 입구에서부터 계곡을 따라 올라가면 크고 작은 폭포와 연못이 곳곳에 있어 걸음을 멈추게 한다. 수림도 잘 형성되어 풍부한 그늘을 만들고 있으며 중간중간 쉬기 좋은 쉼터가 잘 조성되어 있다. 계곡의 도로를 따라 안쪽으로 더 깊이 들어가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 가마골 생태공원이 나온다. 가마골 생태정원은 계곡 입수가 불가하지만 하류쪽 가마골 계곡은 물놀이가 가능하다. 자연미는 덜하지만 길이 잘 닦여있고 계곡 주변으로 캠핑장, 펜션, 식당 등이 위치해있어 야영과 물놀이와 함께 숙식이 가능하다. 가마골 계곡이 합류하는 담양호가 인접해 있으며 차량 이동 20분, 약 16㎞ 지점에 담양리조트, 차량 이동 24분 거리에 담양읍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용면 용소길 261

독립문
역사관광서울특별시

독립문

서대문독립공원에 있는 독립문은 갑오개혁 이후 자주독립의 의지를 다짐하기 위해 중국 사신을 영접하던 영은문을 헐고 세운 기념물이다. 갑오개혁은 내정개혁과 제도개혁을 추진하였던 개혁운동이다. 그러나 외국세력의 간섭으로 성공하지 못하였고 나라의 자주독립 또한 이루지 못하였다. 이에 국민들은 민족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서는 어떠한 간섭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중국사신을 맞이하던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독립문을 세우게 되었다. 화강석을 쌓아 만든 이 문의 중앙에는 무지개 모양의 홍예문이 있고 왼쪽 내부에는 정상으로 통하는 돌층계가 있다. 정상에는 돌난간이 둘러져 있으며, 홍예문의 가운데 이맛돌에는 조선왕조의 상징인 오얏꽃무늬가 새겨져 있다. 그 위의 앞뒤에는 한글과 한자로 ‘독립문’이라는 글씨와 그 양옆에 태극기가 새겨져 있다. 바로 인근에는 서대문형무소가 있어 독립문과 더불어 민주주의와 자유의지에 대한 갈망을 되새겨 보는 역사 여행을 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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