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75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75페이지입니다.

노적봉
노적봉(露積峯)은 해발 60m의 바위산에 불과하지만 왜적을 물리친 이순신 장군의 호국혼이 담겨있다. 정유재란 때 12척의 배로 불가능해 보였던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끌고 전열을 재정비하는 동안 조선의 군사와 군량미는 턱없이 부족하여 바로 왜적이 쳐들어온다면 함락될 수밖에 없는 위기에 놓여 있었다. 이때의 노적봉은 아주 큰 역할을 하였다. 유달산 앞바다에 왜적의 배가 진을 치고 조선군의 정세를 살피고 있을 때 이순신 장군은 노적봉을 이용하여 위장전술을 펼쳤다. 노적봉 바위를 이엉(볏짚)으로 덮어 마치 군량미가 산처럼 많이 보이게 하고 새벽에 바닷물에 백토를 풀어 밥 짓는 쌀뜨물처럼 보이게 하여 왜군들이 군사가 많은 줄 알고 스스로 물러나게 하였다. 이러한 일이 있는 후로 이 봉우리를 노적봉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순신 장군이 호령하고 있는 듯한 모습의 큰 바위 얼굴은 맞은편 이순신 장군 동상과 함께 서남해안의 관문인 목포를 수호하고 있다. 노적봉의 기를 받으면 건강에도 좋다고 하여 다산목과 함께 소원을 빌기 위해 찾는 사람들에게 인기가 높아 새로운 관광명소가 되고 있다. (출처 : 목포 문화관광 홈페이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목포시 노적봉길 45 (측후동)

목포오포대
오포대는 유달산 입구 이순신 동상 남서쪽에 시민들에게 정오를 알리기 위해 1909년 포대를 설치하였다. 당시의 오포대는 현재 유달산공원의 전망대로 사용되고 있으며, 오포는 주변에 모형으로 복원하여 전시하고 있다. 1913년 신식 대포로 일본 오사카 포병 공장에서 구매하여 대체했고, 그전에 있는 구식 대포는 송도 신사에 보관하던 중 일본 강점기 후기에 오포대의 대포와 함께 일본 정부가 가져갔다고 한다. 당시 오포대 담당 직원이 정오에 맞춰 현재의 이충무공 동상 뒤에 있는 오포대에 올라가서 포탄 없이 포구에 화약과 신문지를 넣고 쏘아 굉음과 함께 목포 상공에 휴지가 흩어지면, 시민들에게는 점심 먹자라는 신호가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일제 말기 일본이 전쟁 수행을 위한 공출로 오포를 걷어가 버렸다고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목포시 유달로 180
유달산 달성공원
목포시는 우리나라 최서남단의 항구도시로 유달산과 호남 옥토를 가로질러 흐른 영산강, 다도해가 어우러진 고장이다. 유달산은 예로부터 영혼이 거쳐 가는 곳이라 하여 영달산이라고도 불렀다. 유달산 자락의 달성공원은 선조들의 얼과 풍류가 깃든 시민들의 쉼터로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와 시가지 전망의 기능을 가진 공원이다. 유달산과 달성공원은 딱히 구분이 정해져 있지 않고 유달산 둘레길과 산책로, 등산로가 같이 이어져 있다. 샘으로 유명한 절인 보광사와 산 정상의 소요정에서는 목포 시내와 우리나라에서 제일 긴 케이블카인 목포 해상 케이블카와 영산강의 하굿둑도 보인다. 달성공원과 이어진 유달산 둘레길을 걷다 보면 유리온실로 된 특정자생식물원을 방문할 수 있다. 또한 목포의 눈물 노래비와 유달산 조각공원, 달성사를 연계 방문할 수 있고, 목재 문화체험장에서 목재 관련 체험 활동을 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목포시 유달로 180 (죽교동)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
목포 근대역사문화공간은 대한제국 개항기에 ‘목포 해관’설치에 따른 근대기 통상 항만의 역사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해방 이후까지의 생활사적 모습을 동시에 보여주는 장소로서 근현대를 관통하는 목포의 역사문화와 생활의 변천사를 알 수 있는 보존과 활용할 가치가 우수한 지역이다. 일제의 수탈에 맞선 저항 흔적이 남아있는 근대 거리로 2018년 전국 최초 공간 단위의 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목포시 중앙동2가

우도
우도는 소가 누워있는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일찍부터 소섬 또는 쉐섬으로 불렸다. 완만한 경사와 옥토, 풍부한 어장, 우도팔경 등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춘 관광지로써 한 해 약 2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제주의 대표적인 부속섬이다. 성산항과 종달항에서 우도 가는 배를 탈 수 있는데 어디서 출발하든 15분 정도 소요된다. 섬의 길이는 3.8㎞, 둘레는 17㎞이며, 쉬지 않고 걸으면 3~4시간 걸리는 거리지만, 대부분의 관광객은 버스나 자전거, 미니 전기차를 타고 유명한 관광지 위주로 돌아볼 수 있다. 여유 있게 우도를 즐기고 싶다면 오전 아침배를 타고 들어가 오후 배를 타고 나와 하루 종일 우도에 머물러 보는 것도 좋다. 단, 기상에 따라 배 운항여부가 달라질 수 있으니 우도 여행일정을 짜는 데는 기상조건을 필히 확인해야 한다. (출처 : 제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삼양고수물길 1
당진 필경사
당진 필경사는 송악읍 서해대교 근처에 보존된 심훈 작가의 집이다. 건물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고 바로 앞에는 상록수문화관 건물이 들어서 있다. 필경사는 ‘붓으로 밭을 일군다’라는 뜻을 담고 있다. 심훈은 1933년경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부친이 살고 있는 당진으로 이주하여 『영원의 미소』, 『직녀성』 등을 집필하였다. 그리고 1934년 독립하면서 직접 설계하고 지은 집이 바로 필경사이다. 심훈은 1935년 이 집에서 대표적 농촌소설인 『상록수』를 집필했다. 필경사는 한 때 그의 장조카인 고 심재영옹이 관리하다가 당진시에 기부한 이후 군에서 관리하고 있다. 심훈의 시 『그날이 오면』이 새겨진 마당의 시비는 1996년 한국문인협회가 세운 것이다. 당진 필경사는 국도 38호선, 지방도 619호선에서 상록수길을 따라 방문할 수 있으며 서해안고속도로 송악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서해대교, 행담도, 송악산 등이 있다.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상록수길 97

안동민속촌
안동댐의 보조댐 부근에서 강 건너편을 바라보면 언덕배기에 초가집이 드문드문 들어앉아 있다. 이곳이 바로 안동댐을 조성하면서 수몰된 지역의 가옥 몇 채를 옮겨와 야외박물관으로 만든 민속 경관지이다. 안동민속촌의 야외박물관입구에는 두 개의 장승이 반기고 있고 이어서 이 고장이 낳은 문인 이육사 선생의 시비 앞으로 발걸음이 옮겨진다. 시비에는 그의 대표작 ‘광야’가 새겨져 있다. 육사시비 앞에는 그의 일생을 간략히 기술한 안내문이 세워져 있다. 안동댐 주변에는 안동 민속촌과 안동 민속박물관, 이육사 시비, 드라마 태조 왕건 촬영장, 안동호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보기 좋다.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옹성산
화산 활동으로 형성된 산지로 커다란 옹기를 엎어 놓은 모양의 바위산으로 옹성산이라 불리며, 화순군 이서면, 북면, 동복면의 경계에 있고 인근에 있는 백아산의 흰색과 대비되는 검은색을 띠고 있다. 백아산 능선에서 뻗어 나와 있지만 그 산세는 백아산을 닮지 않고 있다. 옹성산에는 고려시대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성한 철옹산성이 정상 산자락에 있는데 입암산성, 금성산성과 함께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역의 3대 산성으로 불리기도 한다. 임진왜란 때 이 고을 현감을 지내고 진주성에서 순국한 황진 장군이 군사를 훈련한 곳이라 한다. 담양 화순간 15번 국도 상의 독재에서 능선을 따라 오르는 길이 있으며 안성리 신성마을이나 몽성암 부근에서도 오를 수 있다. 옹성산 바로 아래는 동복호가 자리 잡고 있다. 주변에는 백아산 자연 휴양림, 화순 서유리 공룡 발자국 화석지, 물염정, 화순적벽 등 방문할 만한 곳이 많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이서면

송석정유원지
화순읍 남쪽, 이양면 지석천 강가에 자리한 송석정은 조선조 선조 때 훈련원첨정을 지낸 양인용이 광해군 때 당쟁으로 정계가 혼란해지자 벼슬을 버리고 홀연히 고향으로 돌아와 시문으로 벗들과 담소하며 유연자약한 여생을 즐긴 곳이다. 정자와 강물,바위와 산이 조화를 이루는 호젓하고 고요한 풍광을 보여주고 있다. 한편 송석정 주위 강성마을의 하천변은 봄, 여름, 가을이면 원색이 난무하는 유원지로 변하며 특히 수박, 참외를 재배하여 여름철피서객들의 좋은 먹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지석천 강물은수심이 깊지 않아 물고기가 많으며 여름철 피서지겸 가족나들이 코스로 적당한 곳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청풍면 풍암리
물염정
중종 명종대에 성균관 전적 및 구례, 풍기군수를 역임한 홍주 송씨 물염 송정순이 16세기 중엽에 건립한 정자이다. 후에 외손 금성 나씨 나무송, 나무춘 형제에게 물려주었고, 그 후 수차례 중수와 함께 1966년, 1981년에 중수하였다. [물염]은 세속에 물들지 말라는 뜻이다. 화순적벽에서 3km 상류에 위치한 물염정은 방랑 시인 김삿갓이 경치에 반해 자주 찾았던 정자로, 정자 옆에는 난고 김병연의 시비와 동상이 있다. 병풍처럼 둘러친 물염적벽의 기암절벽과 소나무 숲의 운치, 그리고 깊은 계곡과 단애의 풍치를 정자 위에서 바라보고 있노라면 마치 신선이 노닐던 선경 속으로 빠져들게 할 만큼 멋진 절경을 연출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이서면 물염로 161

환산정
환산정(環山亭)은 1637년 백천(百泉) 류함(柳涵 1576~1661) 선생이 창건한 정자(亭子)로, 방 1칸의 소박한 죽정(竹亭)이었는데, 1896년 1차 중건, 1935년 1차 중수(重修), 1958년 보수(補修), 2010년 2차 중수(重修)하고, 2025년 화순 제11경으로 지정되었다. 환산정은 화순군 서성저수지 안에 위치해 있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주변 풍경이 산수가 뛰어나고, 앞쪽에 펼쳐진 서암산의 적벽이 장관을 이루고 있다. 1965년 서성저수지가 축조되면서 상류 한가운데 섬처럼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서성저수지가 만조에 가까울수록 환산정의 비경은 빛을 발한다고 한다. 환산정은 백천 류함이 17세기 전반에 축조한 누정이다. 병자호란이 발생하자 류함은 1637년 의병을 일으켜 청주까지 진격해 갔다. 그런데 인조가 강화를 체결했다는 소식을 듣고, 의병을 해산한 후, 이곳으로 내려와 환산정을 짓고 은거하였다고 한다. 17세기 처음 정자가 지어질 때는 방 한 칸의 초가였다. 이후 퇴락한 것을 1896년 후손들이 중건하였다. 또한, 원래 서성저수지가 만들어지기 전에는 담장을 치고 솟을대문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서성서수지로 물이 잠기면서 담장을 없어지고 솟을대문도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환산정 현판이 안쪽 창방에 걸려 있으며, 원운 15개의 편액도 함께 걸려 있다. 조선시대 이 지역 정자의 전형을 충실하게 보여주는 건물이다. 환산정(環山亭) 편액은 원교(園嶠) 이광사(李匡師 1702~1777)선생의 갈필(渴筆) 글씨이며,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광취명당(廣聚明堂)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동면 백천로 236-1

규봉암(화순)
대한불교조계종 제21 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작은절 이다. 신라시대 의상이 창건하고 신라 애장왕 때 당나라에서 귀국한 순응 대사가 중창했다고 전해온다. 조선시대 상당한 사세를 갖추고 있던 규봉암은 17~18세기에 폐사되었다가 1729년 연경에 의해 다시 세우게 되었고, 6·25 전쟁으로 방치되었다가 1959년 대웅전과 함께 당우 3동을 지으며 현재에 이른다. 유네스코에서 ‘세계 지질공원’으로 지정된 무등산의 서석대, 입석대와 더불어 무등산 3대 주상절리대 중 가장 규모가 크고 아름다운 광석대 돌기둥 아래에 규봉암이 자리 잡고 있다. 예로부터 ‘규봉암을 보지 않고 무등산에 올랐다 말하지 마라’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그 풍광이 빼어난 절경 중 한 곳이다. 광석대와 규봉암은 사계절 아름답지만, 울긋불긋 단풍이 물드는 늦가을은 그 아름다움이 절정을 이룬다. 규봉암 주변으로 광석대를 포함 설법대, 은신대, 풍혈대, 삼존석, 송하대 등의 바위들이 사찰을 둘러싸고 있어 그 경관이 신비롭기 그지없다. 규봉암에 가는 길은 화순군 이서면 영평리에서 오르는 탐방로와 주로 이용되는 증심사 코스, 그 반대편의 원효사 지구에서 오르는 3개의 코스가 있다. 영평리 도원 탐방센터에서 규봉암까지는 약 한 시간쯤 산길과 계단을 올라야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이서면 도원길 40-28

최경회사당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장렬히 순절한 최경회 장군의 위패를 모신 재각이다. 원래는 순조 35년(1833)에 한천면 금전리에 세워졌으나 이곳이 저수지 공사로 수몰되자 1963년 3월 현 위치로 이건 하였다. 건물의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최경회 장군은 자가 선우이고 호는 삼계 또는 일휴당으로 화순 출신이다. 명종 66년(1561) 진사가 되고, 선조원년(1567) 문과에 급제하여 장수, 무장현의 현감과 영해부사 등을 거친 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왜적의 침략을 막기 위해 의병을 규합하여 금산, 무주, 창원, 성주 등지에서 대첩을 거두고, 진주성에서 왜병과 싸우다 순국하였다. 동면 백룡리에 최경희 장군의 뜻을 기리는 사당인 충의사가 지어져 있으며, 또한 능주면 잠정리의 삼충각 한편에도 장군을 추모하기 위해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화순읍 다지리

화순능주삼충각
삼충각은 조선 선조 26년(1593)에 진주성에서 왜적과 싸우다가 장렬히 순절한 충의공 최경회와 지평 문홍헌 장군, 명종 10년(1555) 을묘왜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지방에 침입한 왜적과 싸우다 전사한 조현장군 등 세 충신의 애국충정을 추모하기 위하여 숙종 11년(1685) 능주향교 유림이 세운 정려각이다. 정려는 조선 시대 유교적 윤리를 기본으로 전국적으로 많이 건립되었는데 특히 임진왜란 무렵의 충신들이 많이 정려를 받았다. 화순능주삼충각은 지역 유림이 주체가 되어 능주면 잠정리 지석강 상류 천변의 높은 절벽 위에 3개의 동으로 건립하였다. 3명을 동시에 봉안할 때 흔히 1개 동에 함께 모시는데 삼충각은 별도의 재각에 각각 봉안한 것이 다른 정려각과 구분된다. 전면을 향해 왼쪽 건물이 최경회 정려이고, 가운데 건물이 조현의 정려, 오른쪽 건물이 문홍헌의 정려이다. 삼층각이 세워진 절벽에는 화순 성화명 도로수축시주목록 암각기문이 새겨져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능주면
대리 칠충각
대리 칠충각은 1634년 병자호란 때 화순에서 의거한 평택 임씨 칠종 형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876년 건립한 정려각이다. 정려는 효자나 열녀, 충신 등의 행적을 높이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던 집 앞에 문을 세우거나 마을 입구에 작은 정각을 세워 기념하는 것을 말한다. 문이 아닌 건물을 세우는 것이 정려각이다. 7형제의 이름은 임시계, 임시태, 임시민, 임시운, 임시준, 임시익, 임시약으로 이들은 화순 의병들과 함께 청주까지 진군하였으나 인조 임금이 청의 태종에게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에 내려와 은거하면서 마지막까지 임금에 충성을 다하였다. 이들 모두에게는 정려 당시 예조 참의(임시계, 임시민), 좌승지(임시태), 호조 참의(임시운) 등의 벼슬을 추증하였다. 건립 후 이건이나 소실 등 큰 변화는 없었다. 자연석 쌓기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원형기둥을 세웠으며, 정면 7칸과 측면 1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지붕에는 굴도리(단면이 둥근 들보에 직각 방향으로 걸어 처마 지붕을 꾸미는 가로대)를 사용하고 4면 모두는 벽체 없이 홍살(대문이나 중문 위에 만들어 올린 창살)을 꽂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화순읍 한고을길 16
능주향교
능주향교는 태조 1년(1392)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능주의 서쪽에 창건되었다. 그 뒤 임진왜란으로 전소되었다가 1600년에 현령 하응도가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였다. 그 뒤로 수차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봄,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능주향교는 기본적인 향교가 갖추고 있는 전각들과 함께 능성예절교육관, 충효교육관, 고직사, 전사청 등이 있어 문화재는 문화재대로 지키며 향교의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다. 기존 명륜당의 교육의 공간과 기능을 대신할 충효교육관을 건립하여 지역민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향교의 교육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또한, 능성예절도서관에서는 장서 수 1,500여 권과 좌석을 비치하여 지역민을 대상으로 열람 및 대출을 통해 지역 어린이들에게 독서의 즐거움을 전하고 있으며 어르신 스마트 폰 교육과 교류를 할 수 있는 프로그램 등 향교의 공간을 문화 체험 관광 자원화로 개발하여 유교문화를 친숙하게 배우고 느낄 수 있도록 공간과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능주면 교촌길 36
동복향교
동복향교는 화순 월송마을 뒤편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 교육기관이다.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 조선시대의 국립 교육기관이다. 1444년 동복현감 하강지가 현 위치에 처음 건립하였다. 이후 1568년 현재의 위치에서 교촌마을로 이건하였으며, 1655년에 객사에 불이 나 전패(고을의 객사에 봉안되었던 국왕을 상징하는 위패)가 소실되자 동복현이 폐현 되면서 향교도 폐하였으나 1664년 복현 되면서 향교도 복교되었다. 1713년 현의 남쪽으로 향교를 이건하였다가 1756년에 현재 위치인 월송마을 뒤 구릉으로 이건하였다. 동복향교는 명륜당, 경모재, 양사재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다. 명륜당, 경모재, 양사대 모두 맞배지붕 건물이다. 내삼문은 대성전의 정문으로 솟을대문이며, 막돌 초석 위에 방주(사각기둥)를 세우고 납도리(들보에 직각 방향으로 걸어 처마 지붕을 꾸미는 것)를 이용한 판장문(널빤지로 된 문)이며 위로는 홍살을 꽂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동복면 월송길 62-30
해망서원
1508년(중종 3)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병화로 향사가 중단되었다가 1931년 유림에 의하여 제단을 복원하고 김일손(金馹孫)과 정여해(鄭汝諧)를 추가 배향하였으며, 1934년에 제단을 사당으로 개조하였다. 1979년에 중수하고 해망서원으로 불렀으며, 1984년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숭의사(崇義祠), 내삼문(內三門), 4칸의 구인당(求仁堂), 외삼문(外三門), 고직사(庫直舍) 등이 있다. 사우인 숭의사에는 김종직을 주벽(主壁)으로 좌우에 김굉필·정여창·김일손·정여해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인 구인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매년 9월 1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4변(籩) 4두(豆)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춘양면 섶메길 37-1
도원서원
도원서원은 동복 고을과 연고를 맺고 유학 진흥에 크게 이바지한 최산두, 임억령, 정구, 안방준을 모신 서원으로 현종 9년(1668) 지역 유림이 뜻을 모아 창건하였다. 숙종 14년(1688) 도원이란 사액을 받으면서 도원서원으로 불렸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으나, 최산두의 후손들에 의해 1975년 유허비가 세워졌으며 1977년 사당, 1978년 동서재가 복원되었다. 경내의 구성은 크게 4위를 배향하는 사당과 강학을 위한 동재인 숭의재와 서재인 집성재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바깥출입을 위한 외삼문인 건공문과 사당으로 연결되는 내삼문인 발일문이 있는데, 두 문 모두 맞배지붕 솟을대문이다. 해마다 음력 3월 10일이면 춘향대제를 지낸다. 서원과 직접 관련된 유적과 유물은 전해지지 않지만, 중종이 최산두에게 하사한 옥대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방 유형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도원서원에서, 차량으로 20분 거리에 화순적벽, 물염정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연곡길 137 도원서원

남산공원(화순)
화순읍 남산공원은 1970년 10월 조성된 근린공원으로 화순읍 중심에 있다. 화순읍 한가운데 있는 나지막한 동산으로 누구나 쉽게 찾을 수 있는 남산공원은 접근성이 좋고 숲도 조성이 잘되어있어 오랫동안 화순 군민들의 좋은 휴식처 역할을 하는 곳이다. 봄부터 가을까지 남산공원의 산책길은 유채꽃과 양귀비꽃, 해바라기, 코스모스, 핑크뮬리 등 제철에 피는 꽃들로 아름다운 꽃 향연을 볼 수 있다. 그 외에도 잔디언덕, 전망산책정원, 사계정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남산공원 중앙에는 군민회관, 양한묵 선생 추모비와 충혼탑, 서양정이 자리 잡고 있으며 게이트볼장, 화순 시네마 등의 체육, 문화 시설이 있어 편의성이 좋다. 화순군민회관 옆으로 한국의 독립운동가이며 3.1 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양한묵 선생 추모비와 화순읍 지역 주민의 궁도 활동을 도모하고자 마련된 궁도장인 서양정이 있다.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화순군이 주관한 마을 미술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성안벽화마을이 남산공원과 인접하여 있으므로 함께 둘러보며 산책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화순읍 진각로 93

너릿재공원
너릿재공원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와 화순 경계선에 있는 공원으로 너릿재 옛길과 유아숲이 함께 있는 곳이다. 너릿재 옛길은 1971년 너릿재 터널이 뚫리기 전까지 아주 오래전부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와 화순을 잇는 연결도로로 2011년 4월부터 벚꽃길 조성, 배수로 정비, 사면정비, 차량통제, 순환산책로 조성, 편의시설 설치 등 환경을 훼손하지 않고 쾌적한 너릿재 명품숲길로 2012년 7월 재탄생하였다. 벚꽃과 수목이 울창한 치유의 숲으로 가족이 산책하기에 적합한 휴식공간이다. 또한 너릿재 유아숲은 도시의 어린이들이 계절별 자연의 변화를 몸소 체험하고 숲 교육을 통해 정신적, 신체적으로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열린 체험 공간을 조성한 곳으로 숲 속 연못, 곤충 관찰대, 외줄 타기 체험장, 트리하우스 등 다양한 체험 시설과 휴식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남문로 48-8
월강사
월강사는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전라도 동북방면의 방어임무를 맡은, 전 장수현감 최경회 장군이 창의소(暢義所)를 만들고 의병을 모아 병사를 훈련시키면서 장대(將臺)를 세운 곳이다. 장대란 높이 쌓은 대로 지휘하는 장수가 올라서서 명령하던 곳이다. 최경회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전라남도 능주에서 태어났다. 명종 16년(1561)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1567년에는 과거에 급제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일본군과 벌인 전투에서 큰 공을 세웠으나, 진주성이 함락되자 남강에 투신하여 절개를 지켰다. 이곳은 순조 28년(1828)에 예조에 인가를 얻어 사당을 세웠으며 고종 5년(1868)에 철거되었다가 광복 후 다시 지었다. 안쪽에는 정신재 백장, 퇴휴재 송현산, 손재 김남택, 일휴당 최경회 등 이 지방에서 영향력이 있던 네 분의 위패를 모셨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계면 도장골길 37-6

의사전해산 추모비
의사전해산추모비는 전해산 호남의병장의 애국정신을 고양하기 위하여 장수군 향교유림들이 1972년 11월 17일 번암초등학교 앞에 건립하였다. 이후 2014년 6월 16일에 전해산기념관이 준공되면서 의사전해산 추모비는 이전되었다. 전해산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이에 분기하여 해산한 군인과 포수들을 모아 의병부대인 대동 의병단을 조직했다. 이후 심남일, 김영엽, 오성술 등과 호남 의병의 연합조직을 결성하였으며 1908년 겨울 호남동의단을 탄생시켰고 대장으로 추대됐다. 당시 전라도에서 활동하던 11개 의병부대가 참여한 큰 규모의 부대였다. 순창, 고창, 정읍 함평, 영광 등 전남 서부지역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하였고 71회 전투에서 수 백 명의 일본군을 살상하였다. 일시 귀향 중 왜병에 체포되어 대구형무소에서 1910년 7월 19일 31세의 나이로 옥사하였으며, 그 해 9월 8일 시신이 번암면 원촌마을 생가로 운구되자 부인 김해김씨도 자결했다. 전해산기념관에는 추모비는 물론 전해상 의병장의 영정을 모시는 산해재도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번암면 성암길 92

대곡사(의성)
대곡사는 비봉산(579m) 동쪽 자락에 위치한 고려시대 사찰이다. 고려 공민왕 17년(1368년)에 왕사인 지공선사와 나옹선사가 창건했다. 창건 당시에는 대국사(大國寺)라 하였는데, 이는 지공이 중국 원(元)과 고려 두 나라를 다니면서 불법을 편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그러나 1960년 대곡사 탑 밭에서 출토된 통일신라시대의 보살상을 볼 때 그 이전에 이미 창건되어 있었다고 보아야 할 듯하다. 더군다나 고려 말의 이규보가 대곡사를 탐방하고 지은 시문 제목에 ‘대곡사’라 되어 있어 13세기 초중반에 이미 절이 있었고, 이름이 대곡사였음을 알 수 있다. 비봉산 일대에 본원을 비롯한 아홉 개의 암자를 지어 불교를 융성하게 하였으며, 또한 호국불교 정신으로 많은 불제자를 배출한 대찰이다.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과 범종루가 있다. 대웅전 앞에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다층석탑도 볼 수 있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세종(1418~1450) 때 교종(敎宗)에 속하였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으로 불에 탄 것을 1605년(선조 38) 탄우(坦祐)가 중창하면서 대웅전과 범종루·요사 등을 새로 지었다.
경상북도 의성군 다인면 대곡사길 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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