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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74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74페이지입니다.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잣봉(영월)

잣봉은 강원도 영월군에 있는 해발 537m의 산으로 동강에서 가장 신비로운 경치를 자랑하는 어라연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전망대 역할을 하는 산이다. 어라연은 동강의 물줄기가 C자로 물돌이 치는 부분에 있는 삼선암이라는 바위가 햇빛에 반짝이는 곳이다. 어라연은 ‘고기가 비단결 같이 떠오르는 연못’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영월에서 가장 아름답고 신비로운 어라연계곡은 옛날 선인들이 내려와 놀던 곳이라 하여 정자암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강의 상부, 중부, 하부에 3개의 소가 형성되어 있고 그 소의 중앙에 암반이 물속으로부터 솟아있고 옥순봉과 기암괴석들이 총총히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사람이나 불상 또는 짐승같기도 하여 볼 때마다 새로움을 자아낸다. 잣봉은 해발 537m로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고 절벽에 자라는 노송이 굽어지는 동강과 어울려 아름다운 풍광을 보여주는 산으로 짧은 등산로와 동강변을 거니는 트레킹을 할 수 있다. 잣봉 등산은 거운분교 앞에서 잣봉-어라연 등산로를 따라 쭉 올라간 삼거리에서 시작된다. 잣봉 산행은 잣봉 정상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보통은 어라연을 탐방할 목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아 어라연 이정표를 보고 능선을 따라 산행이 진행된다. 어라연 전망대에서 되돌아 나오면 절벽 옆으로 강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이고 강변을 따라 내려가면 등반 시작점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 동강 어라연을 보는 방법에는 세가지가 있다. 잣봉 등산이나 강변트래킹, 마지막으로 상류 문산리, 문산나루터에서 래프팅으로 내려오면서 어라연을 볼 수 있다. 래프팅은 유속이 빠르지 않아 초보자나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을 정도로 안전하다. 이외에 문산 나루터 근처에서 낚시도 할 수 있어 동강에서 다양한 방법으로 즐길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어라연길 4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완택산

완택산은 영월군 연하리와 삼옥리 사이에 위치한 해발 916m의 산이다. 주능선을 경계로 동쪽 연하리 방면은 급경사에 절벽이 많고 서쪽 동강 방면은 완만한 동고서저의 산세를 이룬다. 이와 같은 산세 탓에 산자락 곳곳에 산성을 쌓은 흔적이 남아있다. 완택산은 수직 절벽이 자연 성곽을 이루고 있으며 이러한 지형적 특성 덕분에 예로부터 천혜의 요새로 불리어 왔다. 또한, 전란기에 영월군민들의 피난처로 사용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완택산은 산림청에서 선정한 200대 명산에 속해있다. 완택산과 비슷한 높이의 고고산(853m)을 함께 등반하는 등산객도 있으며. 주로 완택산에서 시작해 고고산으로 이어지는 산행을 즐긴다. 완택산은 산불 조심 기간에는 입산이 통제되므로 봄철과 겨울철 통제 기간을 확인하고 등반하는 것이 좋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뒷골길 154

구룡산(강원)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구룡산(강원)

구룡산은 수주면에 있는 해발 955m의 산이다. 강원도와 경상북도에 걸쳐있는 구룡산은 태백산맥에서 소백산맥이 갈라져 나가는 곳에 있다.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는 치악산이 보이고, 북쪽으로는 백덕산과 사자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남쪽으로는 비산 넘어 용두산이 보여 전망이 좋은 산이다. 구룡산의 산세는 평범하고 부드러운 편이며, 헬기장으로 되어있는 정상에서의 조망은 사방이 시원하게 트였다. 구룡산 등산코스로는 두산약수, 운학사, 섬안리 코스가 있다. 두산약수 코스는 가장 짧은 코스로, 두산약수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차두덕골, 능선갈림길을 거쳐 구룡산 정상까지 약 1.6km를 걷는 것으로 소요 시간은 약 2시간이다. 운학사 코스는 운학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운학천을 따라 올라가다가 북릉을 거쳐 구룡산 정상에 오르는 코스로 소요 시간은 약 3시간이다. 섬안리 코스는 섬안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섬안이강을 따라 올라가다가 소재를 거쳐 구룡산 정상에 도착하는 약 4시간 코스이다. 깊은 산세와 굽이치는 강물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구룡산은 가을이 되면 더 많은 등산객이 단풍을 보러 찾는 산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무릉도원면 운학리 1111-5

목우산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목우산

목우산은 해발 1,066m로 중동면 녹전리와 하동면 내리 사이에 인접한 산이다. 목우산은 산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다른 이름으로 불린다. 산솔면 녹전리에서는 소를 많이 방목하여 목우산이라고 부르고 김삿갓면 내리에서는 암봉의 모습이 상여와 비슷하여 상여봉이라고 부른다. 상여봉은 영월군 지방 방언으로 생애봉이라고도 한다. 북쪽으로 옥동천이 흐르고 남쪽으로는 내리천이 흐르는데 옥동천과 내리천이 목우산 서쪽에서 합류한다. 워낙 오지여서 해방 후에는 빨치산의 은거지이기도 하였고 1960년대에는 울진삼척 무장 공비가 이 산에 숨어들어 민간인을 학살했던 집터 및 은신 아지트가 등산로에 있다. 정상에서는 태화산과 태백산, 그리고 녹전리 및 내리계곡의 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또한 다양한 난이도의 암벽등반 코스가 있어 암벽등반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인기 있는 곳이기도 하다. 남쪽 자락에 있는 내리계곡에는 상당히 큰 규모의 캠핑장이 여러 군데 운영되고 있어 캠핑을 하며 목우산의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즐길 수 있다. 목우산 등반코스는 두 군데가 있는데 하나는 산솔면 녹전리이고 다른 하나는 김삿갓면 내리이다. 녹전리 코스는 영월과 태백을 잇는 국도 제31호선이 지나는 산솔면 녹전리 응현동을 기점으로 하여 목우사를 거쳐 주 능선으로 올라 정상에 오르는 길이다. 정상에서는 오른쪽 길로 내려와 갈림길에서 절골로 내려간다. 현재는 녹전리 코스가 일반적이다. 김삿갓면 내리 코스는 소야치에서 출발하여 정상으로 오른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산솔면 응고개길 169-2

선바위산(영월)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선바위산(영월)

선바위산은 해발 1,042m로 백두대간의 함백산 서쪽에 위치한 산이다. 기암절벽과 울창한 노송 군락이 어우러진 모습이 병풍을 펼쳐놓은 듯한 바위산으로, 높이 50여 미터로 서있는 바위가 있어 선 바위산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산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선바위는 이곳 주민들이 집안의 대소사가 있을때 치성을 드리는 바위로 마을에서는 신성시 되고 있다. 선바위산을 오르는 산행 코스는 크게 두 가지로, 들머리가 다른 두 곳에서 시작한다. 두산 약수 코스는 약수공원에서 시작하는 가장 짧은 코스로, 두산약수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차두덕골, 능선갈림길을 거쳐 선바위산 정상까지 약 1.6km를 걷는다. 소요 시간은 약 2시간이다. 운학사 코스는 운학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운학천을 따라 올라가다가 북릉을 거쳐 선바위산 정상에 도착하는 코스로 소요 시간은 약 3시간 정도이다. 이외에 섬안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섬안이강을 따라 올라가다가 소재를 거쳐 선바위산 정상에 도착하는 코스도 있다. 선바위산은 등산뿐만 아니라 트레킹, MTB, 암벽등반 등 다양한 레저 활동을 즐길 수 있다. 주변에 고려시대 축조된 석성인 왕검성, 정조의 태를 봉안한 정조대왕태실비등이 있어 영월의 문화와 역사를 함께 살펴볼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상동읍 선바위길 246

단풍산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단풍산

해발 1,150m의 영월 단풍산은 함백산이 서쪽으로 뻗은 능선 상의 백운산을 거쳐 서남쪽으로 향하는 직동천과 옥동천 인근에 있는 산이다. 남쪽은 절벽으로 이뤄져 있어 조망이 매우 뛰어나고 아름다운 절경을 감상해 볼 수 있는 곳이라 할 수 있다. 단풍산에서는 각종 야생화를 감상해 볼 수 있으며, 여름에는 꼬리진달래와 회목나무, 털중나리 등의 꽃이 곳곳에 피어있음을 알 수 있다. 단풍산을 지나는 코스로는 솔고개 명품송과 매봉산을 거칠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산솔면 녹전리

망원정 터
역사관광서울특별시

망원정 터

합정동에 자리 잡고있는 정자로서 서울시 기념물로 1989년 10월 복원되어 관리하고 있다. 세종 6년(1424년)에 효령대군이 별서를 지었는데 이듬해 세종이 서교에 농정을 살피러 왔다가 정자에 들렀을 때 단비가 내리어 '희우정'으로 이름 지었다고 하며, 성종 15년(1484년)에 월산대군이 정자를 크게 고치고, 망원정으로 이름했다. 연산군 12년 7월 1천여 명이 앉을 수 있게 확장하고 수려정으로 고쳤으나, 그해 9월 중종반정으로, 다시 망원정으로 변경하였다. 1925년 을축대홍수과 한강개발로 자취를 감추었던 것을 한강변 문화 유적 복원 계획의 일환으로 1988년 6월에 기공하여 1989년 10월 준공하였다. 근처의 망원동은 바로 이 정자에서 딴 동네 이름이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8안길 23 (합정동)

정몽주 동상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정몽주 동상

정몽주동상은 1970년 10월 16일 건립되었으며 합정동 양화대교 입구 녹지대에 있다. 포은 정몽주는 고려 말 문신 학자(1337~1392)로 1360년 문과에 장원하였고 우문관 대제학을 지냈다. 명나라와 일본과의 외교에 능했고 왜구, 여진족 토벌 등 공로가 혁혁하였을 뿐 아니라 의창을 세워 빈민을 구제하고 유학을 보급했으며 성리학에 밝았다. 사회윤리와 도덕의 합리화를 기하며 고려에 충성했으나 국운이 다하고 국가를 이끌 신흥 세력이 등장함에 따라 희생되었다. 단심가 외 많은 한시가 전하며, 서화에도 출중하여 고려 3 은의 한 사람으로 태종 1년(1401)에 영의정에 추증되고 익양부원군에 추봉 되고 중종 때 문묘에 배향되었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합정동

금산공원(납읍난대림지대)
자연관광제주특별자치도

금산공원(납읍난대림지대)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마을에 인접하여 약 일 만평에 이르는 넓은 면적에 속칭 ‘금산공원’이라 불리는 곳에 울창한 상록수림이 있다. 이곳은 자연림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표본지역으로 원식생 연구에 기초적인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때문에 학술 자원으로서 가치가 높고, 문화재보호법에서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는 납읍난대림지대이다. 이곳은 제주시의 서부 지구에서 평지에 남아있는 유일한 상록수림으로 상록교목 및 60여종의 난대성 식물이 자라고 있으며, 원시적 경관이 그대로 보존되고 있어 수목가지의 절취, 식물 채취 행위 및 야생 동물의 포획 등 자연을 손상시키는 행위가 일체 금지되고 있다. 납읍리는 예로부터 반촌[班村: 양반이 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마을]으로 유명하다. 이곳의 난대림지대는 예로부터 이 마을의 문인들이 시를 짓거나 담소를 나누는 휴양지로서 이용되었기 때문에 경작지와 인가가 주위에 있으며 보존이 잘 되었다고 한다. 이곳의 식생은 주로 후박나무, 생달나무, 종가시나무 등이 상층목을 이루고, 하층에는 자금우, 마삭줄 등이 전면을 덮고 있으며, 송악이 상층목의 수관[樹冠]을 감아 올라가고 있다. 나무의 종류는 비교적 단순하나, 전형적인 난대림상을 이루고 있다. (출처 : 제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애월읍 납읍리

갈음이해수욕장
자연관광충청남도

갈음이해수욕장

갈음이해수욕장은 천혜의 자연을 보존하고 있는 곳이다. 1970년도 후반에 군사지역으로 지정되어 민간인 출입이 통제되었다가 1990년대 중반에 군사보호지역으로부터 해제됨으로써 비로소 일반인 출입이 가능해졌다. 해변의 모래가 아주 곱고 희며, 천연의 사구가 발달되어 있어 어린이들의 생태학습에도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울창한 자연 송림이 가까이 있어 야영하기 좋아 가족단위의 피서지로 적당하다. 특히, 이곳은 , , , 등 드라마 및 영화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충청남도 태안군 근흥면 정죽리

청양 다락골 줄무덤 성지
역사관광충청남도

청양 다락골 줄무덤 성지

줄무덤은 한 무덤에 여러 사람을 함께 묻었다고 하여 붙인 이름으로 줄묘라고도 부른다. 흥선대원군이 천주교들을 탄압할 때 홍주감옥에서 순교한 교도들이 매장되어 있다. 총 37기가 있으며, 주로 가족 단위로 매장되어 있다. 주위에 없어진 10개의 인가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천주교 탄압 때 마을 전체가 화를 당한 것으로 추정한다. 청양 다락골 성지는 땀의 순교자 최양업 신부와 그의 부친인 최경환 성인이 탄생한 유서 깊은 교우촌이자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이 줄지어 자리한 곳이다. 마을 뒷산 양지바른 산등성이에 무명 순교자들의 묘소와 묘비들이 여러 줄로 서 있는데 누구의 무덤인지는 알 수 없다. 다만 1866년 병인박해 당시 홍주 감영에서 순교한 교우들의 시신을 밤을 틈타 엄중한 감시를 뚫고 빼내어 최씨 종산인 이곳에 안장했다고 구전을 통해 전해지고 있다.

충청남도 청양군 화성면 다락골길 78-6

정혜사(청양)
역사관광충청남도

정혜사(청양)

칠갑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는 절로, 신라 문성왕 3년(841)에 혜조국사가 지었다고 전한다. 이후, 517년경 전각이 모두 불타고 삼존불상만 화를 면했다. 16년 후 마곡사의 인명선사가 다시 짓고 여러 차례 보수·중건하였다. 1907년 큰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1908년 월파스님이 다시 지었다. 현재 절 안에는 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과 산신각, 석굴암, 중암, 서암 등 암자가 있다. 정혜사의 현판은 3·1 운동의 33인 중 한 분인 오세창 선생이 직접 쓴 것이다. 이 정혜사는 대사원으로 소속 암자도 많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도 혜림암, 석굴암, 서전암 등이 남아있다. 대웅전은 자연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자연석으로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웠다. 정면 5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 건물로, 앞뒤에 툇간이 있다. 가운데 3칸은 뒤쪽 툇간까지 방을 넓혀 불전으로 사용하고, 동쪽 방은 승방, 서쪽 1칸은 부엌이다. 불전과 승방 앞에는 툇마루를 깔았다. 대웅전 안에는 목조로 된 석가여래불좌상·아미타여래불좌상·약사여래불좌상의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는데, 조선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충청남도 청양군 장평면 상지길 165-10

냉천골
자연관광충청남도

냉천골

냉천골은 칠갑산 산자락 마을인 마치 2리에 있는 계곡이다. 골이 좁고 깊어 여름철에도 발이 시릴 정도로 시원하고 맑은 물이 흐른다. 나무가 계곡을 뒤덮어 터널을 이루어 햇빛을 보기 어려울 정도다. 여름철에는 많은 피서객이 모여들며 모텔과 여관, 식당 등 편의시설이 확충되는 등 피서지로 활기를 띠고 있다. 냉천골이 위치한 마치리는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에 있는 마을로 칠갑산 동쪽에 위치하며, 전형적인 중산간 지역으로 동쪽에는 잉화달천이 남류한다. 냉천골 초입에 칠갑산냉천골캠핑장이 있어 시원한 계곡 피서와 캠핑을 동시에 즐길 수 있다. 서해안 고속도로가 뚫리고, 36번 국도변에 위치해 있어서 쉽게 찾아올 수 있다.

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 칠갑산로

칠갑산 장승공원
자연관광충청남도

칠갑산 장승공원

장승공원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장승문화가 변형, 왜곡되어 가고 있음을 안타까워해 오던 중 사라져 가는 전통문화를 계승하고 최고의 장승문화 보존지역으로 지켜나가기 위해 1999년 5월 ‘칠갑산장승축제’를 개최하면서 조성된 테마공원이다. 민속학습장으로도 좋고 가족 나들이 공간으로 좋다. 칠갑산 대장군의 전체적인 의미는 평화, 안녕, 생산 그리고 새롭게 도약하려는 청양군의 미래와 청양인의 정신을 표현한다. 장승은 고대 솟대와 선돌에서 유래되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 장승이라고 불려졌다고 전해진다. 청양에 있는 장승들은 마을에서 실제로 제를 드리는 장승을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음력 정월 대보름을 전후하여 여전히 장승제가 치러진다. 이곳에는 높이 11.5m의 칠갑산 대장군과 칠갑산 여장군이 있고 전국의 장승이 재현되어 있다. 민속학습장으로도 좋고 가족 나들이 공간으로 좋다.

충청남도 청양군 대치면 장곡리

자연관광충청남도

효자도

대천항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효자도는 원래 이름은 소자미였으나 예부터 효자가 많이 나왔다고 하여 현재는 효자도라고 부른다. 서쪽에 좁은 수로를 끼고 원산도가 있고, 북쪽으로 안면도 영목 포구가 있다. 섬 주변의 조류가 빨라 파도에 씻긴 몽돌이 해안선을 따라 길쭉하고 둥글둥글하게 깔려있는 자갈밭 해변이 있으며, 몽돌 해변 뒤쪽으로는 울창한 송림이 둘러싸여 있어 야영을 즐길 수 있다. 주민들의 주 소득원은 가두리양식업이며, 특산물로는 우럭이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효자도리

자연관광충청남도

고대도

고대도는 보령시 원산도와 태안군 안면도 사이에 위치한 섬으로 태안해안국립공원에 속한다. 옛부터 일찍이 사람이 정착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던 섬으로 조그만 섬이지만 풍부한 어자원과 어장으로 일찍이 생활 수준이 발달하였다. 마을에서 가까운 당산 너머에는 기암괴석과 금사홍송으로 둘러싸인 당산 해수욕장, 섬의 남쪽 끝머리에는 자갈 해수욕장이 있어 피서지로 방문하기에도 좋다. 이 섬은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기독교 선교가 이루어진 섬으로 일컬어진다. 고대도 교회는 조선에 배를 타고 들어온 최초의 선교사 칼 귀츨라프 선교사를 기념하는 교회이다. 멋진 풍경 뿐 아니라 이러한 역사까지 갖고 있는 고대도는 안면도 영목항에서 여객선을 타고 들어갈 수 있다. 주변에는 안면도, 원산도뿐만 아니라 장고도, 삽시도 등의 섬도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고대도1길 1

자연관광충청남도

녹도

보령시 서쪽 약 25km 해상에 있는 이 섬은 고개는 서쪽으로 뿔은 동쪽으로 두고 드러누워 있는 사슴과 같이 생겼다라고 하여 녹도라고 불린다. 전형적인 어촌 마을이기도 하다. 녹도의 마을은 바다를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 오밀조밀하게 형성되어 있어 불이 켜진 한 여름밤에 바다 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서구의 옛 성을 연상케 하는 그림 같은 섬이다. 녹도는 그리 크지 않아 외부인의 발길이 적고, 주로 낚시 애호가가 찾아오는 조용하고 깨끗한 섬이다. 하지만 녹도를 한 바퀴 돌아보면 고요한 청정미를 느끼며 마을 언덕에서 방파제를 바라보는 풍경도 그림과같이 아름다워서 관광지로도 손색이 없는 곳이다.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녹도2길 33-2

환벽당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환벽당

환벽당은 광주호 상류 창계천가의 충효동 쪽 언덕 위에 있는 정자로, 나주목사를 지낸 김윤제(1501∼1572)가 낙향하여 창건하고 육영에 힘쓰던 곳이다. 환벽(環璧)이란 뜻 그대로 푸르름이 고리를 두르듯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이룬다라는 의미이다. 환벽당은 시가문학과 관련된 국문학사적인 인문학적 가치가 매우 큰 곳이며, 별서 원림으로서 가치가 우수한 호남의 대표적인 누정문화를 보여주는 곳이다. 당호(堂號)는 영천자 신잠이 지었으며, 벽간당이라고도 불렀음이 고경명의 유서석록에 기록되어 있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이다. 가운데 2칸을 방으로 하여 앞쪽과 오른쪽을 마루로 깐 변형된 형식이다. 원래는 전통적 누정 형식이었으나 후대에 증축하면서 현재의 모습으로 바뀐 것으로 생각된다. 이곳에는 우암 송시열이 쓴 제액이 걸려있고, 석천 임억령과 조자이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환벽당에 관한 시는 정철이 지은 2수가 있는데, 송강속집과 광주목지에 실려 있다. 환벽당에는 정철에 얽힌 일화가 전한다. 어느 날 김윤제가 이곳에서 낮잠을 자다가 조대 앞에서 한 마리의 용이 승천하는 꿈을 꾸었다. 꿈에서 깨어난 김윤제가 이상히 여겨 급히 그곳에 내려가보니 미역을 감고 있는 한 소년이 있었다. 그는 그 소년의 비범한 용모에 매혹되어 외손녀를 이 소년에게 시집보냈는데, 이 소년이 뒤에 정치가로서 또한 문호로서 이름을 날린 정철이었다 한다. 환벽당 아래는 김윤제와 정철이 처음 만난 곳이라는 전설이 깃든 조대와 용소가 있다. 창계천 동북쪽으로 250m쯤 떨어진 곳에는 식영정이 있으며, 환벽당 바로 곁에는 취가정이 있다. 인근에는 독수정과 소쇄원이 자리 잡고 있어 바로 이 일대가 조선시대 원림 문화의 중심 지역임을 알 수 있다. * 사촌 김윤제 김윤제(1501~1572)는 본관이 광산으로, 충효리에서 태어났다. 1528년 진사가 되고, 1532년 문과에 급제하여 승문교리 겸 춘추관으로 벼슬길에 나아간 뒤 홍문관교리, 나주 목사 등 13개 고을의 지방관을 역임하였다. 관직을 떠난 뒤 고향으로 돌아와 환벽당을 짓고 후학 양성에 힘을 썼는데, 송강 정철과 서하당 김서원 등이 대표적인 제자이다. 임진왜란 때의 의병장 김덕령과 김덕보형제는 그의 종손으로 역시 학문의 영향을 받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환벽당길 10

광주 충효동 요지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주 충효동 요지

무등산 북쪽 충효동에 자리 잡은 가마터로 고려 후기에서 조선 전기까지 상감청자·분청사기·백자를 굽던 곳이다. 가마의 구조는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시설·도자기를 집어넣는 번조실·굴뚝실로 이루어져 있으며 둥근 무덤 형태가 연결된 모양으로 되어 있다. 『세종실록지리지』의 기록과 출토유물의 연도를 통해 1430년을 전후해 만들어지기 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그 후 약 70∼80년간 자기 제작이 지속되다가 16세기 초에 중단되었던 것으로 짐작된다. 초기에는 분청사기만 만들다가 백자가 생산되기 시작하면서 같이 제작했으나 분청사기의 무늬가 조잡해지면서 생산량이 줄어들었다. 반면 백자를 본격적으로 제작하기 시작하면서 질이 좋아지고 생산량도 늘어 분청사기가마에서 백자가마로 성격이 바뀌었다. 백자는 크기가 작은 것이 주를 이루는 데 비해 분청사기는 크고 작은 것 모두 있고 종류도 접시·종지·잔·병·항아리·벼루·제기 등으로 매우 다양하다. 분청사기에 주로 사용된 무늬는 국화·나비·물고기·게·구름무늬 등이며 여러 무늬를 조합하여 그리기도 했다. 고려 말에서 조선 초까지 운영되었던 곳으로 청자부터 분청사기를 거쳐 백자로 넘어가는 과정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유적이다. (출처 :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문화관광홈페이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풍암제길 14

충효동 정려비각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충효동 정려비각

충효동 정려비각은 충장공 김덕령(1568~1596) 장군과 그의 부인 흥양 이 씨, 그 형 덕홍과 동생 덕진 일가족의 충·효·열을 기리기 위해 충효리 마을 앞에 세운 비각이다. 이것이 여느 문과 다른 것은 이 비각 앞의 현판에 새겨 있는 내용에서 ‘1788년 정조가 윤음으로서, 표리비를 세우라’ 이르고 충효 지리(忠孝之里)라는 마을 이름을 지어 하사한 점이다. 비는 1789년(정조 13년)에 세운 것으로 전면에는 비명이 3행으로 새겨져 있다. 비의 크기는 총 높이 220㎝, 기단 높이 110㎝, 비신 높이 171㎝, 비신 너비 68㎝이며 비갓이 얹혀 있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이며 삼문과 담장으로 둘러져 있다. 비각의 건립 연대는 1792년이며, 그 뒤 수차례의 중수를 거쳤다. 비각 전면에는 전주 부윤 한용구가 쓴 정조어제윤음(正祖御製倫音)이란 현판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충효샘길 7 (충효동)

광주 충효동 왕버들 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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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충효동 왕버들 군

광주호 동쪽 호안(湖岸)과 충효동 마을 사이의 도로변에 위치한 왕버들나무는 버들과의 딸린 갈잎 큰 키나무이다. 암수 나무가 딴 그루를 이루며, 4월에 꽃이 피고 열매는 5월에 익는다. 우리나라 경기도 이남 지역과 일부 중부 이남 지역, 중국 중부 지역에 분포하며 풍치림(風致林)과 정자목(亭子木)으로 널리 사랑을 받고 있다. 물가나 들에서 자라며, 목재는 가구와 땔감 등으로 쓰인다. 충효동의 왕버들 3그루는 모두 광주시 나무로 지정되어 있는데 원래는 일송·일매·오류(一松·一梅·五柳)라 하여 마을의 상징 조경수였다고 한다. 그러나 매화와 왕버들 1그루는 말라죽었으며, 또 1그루의 왕버들과 소나무는 마을 앞 도로를 확·포장하면서 잘라 버려 지금은 왕버들 3그루만 남아 있다. 마을에서는 다시 왕버들 2그루를 식목하였으며, 소나무와 매화도 계속 식목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 충효동의 역사는 분명치 않으나 예부터 성이 있어 성안 또는 석저촌(石低村)이라 불려 왔다. 이 일대는 임진왜란 이전에 이미 양산보(梁山甫)의 소쇄원(瀟灑苑)을 비롯하여 김윤제(金允悌)의 환벽당(環璧堂), 김성원(金成遠)의 식영정(息影亭)과 누하당(樓霞堂) 등의 원림(苑林) 정각(亭閣)이 많이 있어, 주변 조경에 많은 영향을 주었던 곳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충효샘길 7

금곡동 제철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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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곡동 제철유적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금곡동제철유적은 금곡[金谷]이라는 지명이 쇳골을 의미하고 있으며, 유적 주위에 건물지의 기단부와 수많은 철재가 남아 있어 일찍부터 유적이 나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었다. 금곡동제철유적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 김덕령(1567~1596)의 의병 활동과 관련한 무기 제조창으로 알려졌다. 금곡동제철유적 일대는 산화철이 포함된 미문상 화강암이 넓게 분포하고 있어, 이 암석을 모암으로 생성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철을 채취할 수 있는 지역이다. 또한, 무등산 내에서 제철 연료용의 목탄도 풍부하게 확보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 작업장 내에서 제철, 정련, 단조 철기 제작의 전 공정을 보여 주는 유구가 일괄 확인되어 15~16세기 제철 및 철기 제조에 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준다. 또한, 금곡동제철유적의 발굴을 통해 김덕령의 의병 활동 과정에서 무기 제조 장소로 활용된 역사적 사건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유적지에 이르려면 무등산 의병길을 따라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금곡동

순천만 화포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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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만 화포포구

화포는 옛날 지명이 쇠리로 시골스러움과 한적한 포구의 느낌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순천만의 고즈넉한 갯벌이 오롯이 보존된 곳이다. 봄이면 진달래 개나리를 비롯한 개꽃들이 동산의 소나무와 대나무 사이를 촘촘하게 메운다고 해서 화등이라 부르고 그 아래 자리한 포구라고 해서 화포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이곳은 유네스코 생물권보전지역으로 건너 와온해변에서 시작하는 남도 삼백 리 길 가운데 2번째 코스이자 남파랑 일부이기도 하고 예로부터 꼬막과 낙지, 짱뚱어 등의 중요한 어족자원들이 풍부한 어촌마을이다. 뻘이 깨끗한 이곳에서 잡히는 낙지는 대표적인 세발낙지로 명성이 자자하다. 또한 이곳은 순천만으로 날아드는 철새는 황새, 흑두루미, 저어새, 검은머리갈매기 등 70여 종에 달해 생태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화포마을 뒤편의 봉화산(235.9m)은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감상할 수 있으며 순천만의 경관이 한눈에 보이는 정상에는 고흥 마복산에서 타오른 봉화를 순천에 전하던 봉화터가 아직 그대로 남아있다. 바다 너머로 보이는 동쪽 땅은 여수반도, 서쪽은 고흥반도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별량면 학산리

목포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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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시사

유달산정문에서 조각공원 쪽으로 약 2㎞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목포시사는 본래 1890년에 하정 여규형 등이 건립한 조선시대 건축물이다. 초기에는 유산정이라 부르며 문인들에게 시문을 가르치고 백일장 등을 주도하던 곳이었다. 이후 1920년에 무정 정만조가 재확장하여 유산사로 개명하고 1932년에 중수하였으며 1937년 목포시사를 발족하였다. 목포시사는 40.49㎡(12.25평) 크기의 목조 기와로 되어 있다. 측면과 뒷면의 중방은 습기를 방지하기 위하여 벽돌로 쌓았으나 1979년과 1984년 2회에 걸쳐 벽돌을 제거하고 보수하였다. 시사란 문사들이 서로 시문을 독려하고 자연과 시를 노래했던 풍류의 장소로 시인들의 단순한 모임을 넘어 망국의 한과 우국충정을 토로하는 유림의 문학 결사 단체였다. 특히 한말의 유학자 정만조는 이곳에 머물며 퇴폐한 유풍을 바로잡고 학풍을 진작시킨 것으로 유명하다. 한시의 명맥을 이어온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시사로 무정문집과 구한말의 전적, 창사이래 개최된 백일장에서의 입선작, 문인들의 원고를 모두 보존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목포시 유달로 1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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