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7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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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연사(괴산)
신라 법흥왕 때에 유일대사가 현재의 충북 괴산군 칠성면 쌍곡리 근처에 터를 잡고 절을 지으려 했다. 재목 다듬는 공사를 하는데, 까마귀 떼가 날아들어 쉬지 않고 대팻밥과 나무 부스러기를 물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유일대사는 이 모습을 기이하게 여겨 까마귀들을 따라가 보았다. 현재의 각연사 터 연못에 대팻밥이 떨어져 있어 들여다보니 연못 안에 돌부처님 한 분이 계시고, 그 부처님 몸에선 광채가 퍼져 나왔다. 부처님을 뵙고 유일대사는 크게 깨달은 바가 있어 못을 메우고 그 자리에 절을 세웠다. 연못 속의 돌부처님을 보고 깨침을 얻었다 하여 깨달을 각(覺), 연못 연(淵) 자를 써 각연사라고 이름을 지었다. 절 주변은 우뚝 솟은 산들이 마치 연꽃이 피어있는 듯 둘러싸여 있다. 각연사에는 비로자나불좌상, 통일대사탑비, 비로전, 대웅전, 통일대사부도 등 많은 문화재가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칠성면 각연길 451
봉강재
봉강재는 포항시 북구에 있는 파평 윤씨의 시조의 사당이다. 1572년 파평 윤씨의 시조인 태사공 윤신달의 묘소를 관리하기 위하여 창건한 사당이다. 윤신달은 어려서부터 학문과 무예가 남달리 뛰어났던 인물로, 고려 태조 왕건의 막료가 되어 고려의 건국에 큰 공을 세우고 국기를 다지는 일에 많은 공헌을 하였다. 봉강재는 정면 6칸, 측면 4칸의 ㄱ자형 팔작지붕 겹처마 집으로,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잘 보존한 건축물이다. 치목(목재를 깎고 다듬어 재목으로 만드는 것) 수법이 우수하며, 평면 구성에서 독특한 점이 있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 기남길253번길 74
포항 달전재사와 하학재
달전재사는 조선 중기 문신 이언적의 위패를 모신 재사(묘소나 사묘 옆에 지은 집)이다. 1402년 경에 창건한 건물이라고 구전될 뿐 확실한 근거자료는 없다. 이언적은 1514년 문과에 급제한 인물로 1530년 사간원 사간에 임명되었는데, 김안로의 재등용을 반대하다 관직에서 쫓겨나 귀향하였다. 1547년 을사사화의 여파인 양재역벽서 사건이 일어나 사람들이 다시 축출될 때 그도 연루되어 강제로 유배되었다. 이 재사는 ‘ㅁ’자형 팔작 기와지붕으로 정면 6칸, 측면 6칸으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배치 형태가 다른 재사 건축에서는 보기 드문 특이한 배치 수법으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하학재는 포항시 남구에 있는 조선시대의 재실(제사를 위한 공간)이다. 조선 중종 때 월성군에 봉해진 우재 손중돈의 묘 재사이다. 손중돈은 양동 마을 입향조인 손소의 둘째 아들로 1489년 문과에 급제한 후 벼슬길에 올랐으나, 김해도부사 때 간언하다 파직되었으나 중종 즉위 후 상주목사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었다. 그 후로도 여러 벼슬을 하며 지내다가 한성에서 별세하였다. 하학재는 후손인 손종하가 1663년 건립하였고 1873년 대대적으로 중수하였다. 재사는 깬 돌로 쌓은 2중 기단 위에 자연석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평면 구성은 정면 5칸, 측면 1.5칸의 일자형 집이며 우물마루를 깐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양쪽에 1칸씩 온돌방이 있다. 재사 내의 건물로는 하학재 이외에 제수청, 주사가 있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연일읍 새마을로766번길 59

포항 분옥정
포항 분옥정은 돈옹(遯翁) 김계영(金啓榮, 1660~1729)의 덕업을 기리기 위해 1820년(순조 20년)에 건립된 정자 건축이다. 분옥정은 정면 3칸의 누마루와 배면으로 직교한 온돌방 2칸을 배치한 丁자의 평면이다. 丁자형 정자의 일반적인 특징은 丁자의 아랫부분에 큰 마루를 두고 위에 방을 배치하는데, 분옥정은 계류의 조망을 고려하여 丁자의 위쪽에 누마루를, 아래쪽에 방을 배치하고, 지붕은 진입부의 위계를 고려하여 온돌방은 팔작지붕, 누마루는 맞배지붕으로 하면서 지붕의 용마루와 처마의 높이를 같게 하는 등 주변 경관을 고려한 세련된 평면구성과 배치는 타 정자에서 보기 어려운 분옥정 만의 건축적 특징이다. 분옥정의 정면에는 용계천 계곡과 노거수가 위치하고, 주변은 산천과 함께 굽어볼 수 있는 경승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이러한 입지성향은 김노경의 『화수정(花樹亭)』과『용계정사(龍溪精舍)』, 김정희의 『분옥정(噴玉亭)』과 『청류헌(聽流軒)』등의 현판과 편액, 그리고 이름난 여러 명사들이 남긴 시판과 『화수정기(花樹亭記)』와 『돈옹정기(遯翁亭記)』등의 과거 문헌에서도 해당 내용이 확인되는 등 분옥정 관련 기록이 잘 남아 있어 학술적 가치가 매우 뛰어나다고 할 수 있다. 분옥정은 건립시기와 목적이 명확하고 김정희 등 문인이 남긴 현판 및 편액을 포함하여 관련 기록 등이 잘 남아 있으며, 건물이 위치하고 있는 그 일대 산세와 수세가 뛰어날 뿐 아니라 전통 경관에 어울리는 정자의 미적 가치를 잘 표현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기계면 봉계길 146

장기향교
장기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에 처음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지자, 선조 33년(1600)에 다시 지었다. 정조 9년(1785)에 마현동으로 옮겨 지었고, 1931년 군수 김영수가 읍성 내에 있던 구객관을 수리하고 위패를 모셔 지금의 향교로 전해오고 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서방경·서극인·이대임·이눌 등 향교에 모시고 있던 위패를 용암석굴에 옮겨 놓아 위패만은 무사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향교를 옮겨지었을 때 덕계 임재화가 대대로 살던 자기 집터를 내놓아 향교 재건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제사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 내삼문, 외삼문 등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들과 중국, 우리나라의 성현들을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성길 92

포은정몽주유허비
유허비란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혀 후세에 알리고자 세우는 비로, 이 비는 포은 정몽주 선생의 효행을 기리고 있다. 포은 정몽주의 본관은 영일, 호는 포은으로 그의 출생지로 알려진 곳에 세워졌다. 평소 정몽주는 효성이 지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부모상에 각각 3년씩의 여묘를 지낸 것이 효성이 조정에 보고되자 조정의 명으로 당시 영천군수 정유가 공양왕 원년(1389) 그의 출생지로 알려진 이곳에 ‘효자리(孝子里)’라고 각인한 비석을 건립하였다. 조선 성종 18년(1487) 경상감사 손순효(1427~1497)가 영천을 순력(관찰사나 고을의 수령 등이 관할 지역을 순시하던 일)하던 중 한 노인이 나타나 “내가 땅 속에 묻혀있으니 꺼내 달라.”는 현몽을 꾼 후, 다음 날 그동안 잃어버렸던 포은의 유허비를 찾아 다시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선조 40년(1607)에 비각을 중수한 후 최근에 다시 중건하였으며, 1992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우항리 1044-5

금골산
금골산(해발 193m)은 ‘진도의 금강’이라고 불리는 명산으로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진 산에 세 개의 굴이 있고 5층석탑(보물)과 산 중턱의 굴에 마애여래좌상(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문화재자료)이 음각되어 있으며 해언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1498년 정언벼슬을 지낸 이주(李胄)가 무오사화 때 이곳에 유배되어 금골산의 아름다움에 감탄, 「금골산록」을 지어 서거정의 동문선에 실려 오늘에 전해오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군내면 금골길

진도 고니류 도래지
매년 12월부터 이듬해 2월 사이의 겨울철이면 진도읍 수유리, 군내면 덕병리 해안일대와 둔전리 둔전저수지에 백조(고니와 큰고니, 천연기념물) 떼가 몰려와 장관을 이룬다. 이곳은 한국 남해안 지역에서 월동하는 고니류 집단의 일부에 불과하나, 한국의 서남부에 위치한 유일한 월동 둥지이며 또한 한반도 서남부해안을 거쳐 이동하는 고니 집단의 평화로운 휴식처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무분별한 간척 사업 등으로 습지가 사라지면서 매년 철새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는 실정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진도읍

쌍계사(진도)
진도군 첨찰산에 자리하고 있으며 신라 때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는 이 절은 절 양편으로 계곡이 흐른다 고 하여 쌍계사라 이름하였다. 쌍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2 교구 본사 대흥사의 말사이다. 쌍계사 대웅전의 건립 연대는 1982년 대웅전을 해체하여 보수할 때 발견된 상량문의 연대가 강희 36년, 즉 숙종 23년이란 기록이 나와 정확히 1697년에 건립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쌍계사 일주문을 들어서면 길 양쪽으로 서 있는 은행나무길과 돌담을 따라 절에 들어서게 된다. 쌍계사는 첨찰산 기슭에 자리 잡아 주요 건축물들은 석축을 쌓고 그 위에 지어졌으며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사찰 뒷계곡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면 천연기념물 50여 수종의 상록수림이 우거져 있다. 쌍계사는 진도에서 가장 오래된 고찰로 문화적인 가치뿐만 아니라 주변 환경 보전이 잘 되어 있어 휴식 공간으로도 빼어난 도량이며, 쌍계사가 위치한 첨찰산도 볼거리이다. 쌍계사와 바로 인접해 있는 운림산방이 있는 곳은 서해랑길 진도 8코스 중의 하나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299-30

첨찰산
첨찰산(해발 485m)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 내 최고봉이다. 쌍계사와 운림산방을 품에 안고 있으며 봉화대가 있는 정상에 오르면 다도해가 한눈에 굽어 보인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첨찰산 상록수림 사이의 골짜기를 따라 삼림욕을 하면서 등산하기 좋은 장소이다. 생명의숲국민운동본부, 유한킴벌리, 산림청이 주관하는 제7회 아름다운숲 전국대회 공모전에서 천년의 숲 부분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공모진행은 2007년 6월부터 신청받아 2007년 10월 6일 발표 하였고 천연기념물 상록수림과 숲의 역사, 문화적가치에서 높은 점수를 받아 우수상을 수상하였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의신면 사천리

상만리오층석탑
상만리 5층석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유산)은 임회면 상만리에 있는 상만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현재는 구암사라는 사찰이 있다. 탑의 조성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974년 4월에 새로이 절을 지으면서 정지작업을 하던중 고려자기 2점이 출토된 것으로 보아 고려후기로 추정된다. 또한, 상만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비자나무가 있는데, 이 나무는높이 25m에 둘레가 6m이며 사방으로 7∼8m 가량의 가지가 뻗어나 있는 500년 이상의 수령을 지닌 거목이다. 고령으로 어려운 여건을 겪으면서 고사위기에 처했으나 수차례의 수간 주사 등으로 다시 살아나 매년 많은 양의 비자를 수확하고 있다. 주목과에 속하는 난대성 상록침엽수로 부근에는 모기가 서식하지 않으며 나무에서 떨어져도 다치지 않는다는 신비스런 나무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임회면 상만길 58
지례예술촌
※ 25년 3월 산불로 인해 주요 건물과 시설이 일부가 전소되어 숙박 운영이 전면 중단되었습니다. 방문 전 공식 홈페이지 참고 부탁드립니다..text202503{ COLOR: #FF0000; } 예술창작마을로 유명한 지례예술촌은 안동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생긴 마을이다. 안동시 임동면 지례리가 수몰될 처지에 놓이자, 현 지례예술촌의 촌장인 김원길 씨가 1986년부터 수몰지에 있던 의성 김 씨 지촌파의 종택과 서당, 제청 등 건물 10채를 마을 뒷산자락에 옮겨지었다. 이 마을은 1990년에 문화부로부터 예술창작마을로 지정받아 예술인들의 창작과 연수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국내에 다목적댐이 건설된 곳이 많지만 개인의 아이디어와 노력으로 문화재도 보존하고 문화 공간도 만들어 낸 경우는 이곳이 처음이다. 무엇보다도 서양의 창작촌이 공장이나 축사를 개조하거나 방갈로 형식의 건물인데 비해 지례예술촌은 품격 높은 건축 문화재로 조성되어 있어서 한결 돋보인다. 밤이면 별들이 유난히 커 보이고 반딧불이 날아다니는 곳이다. 들리는 것이라곤 풀벌레와 바람소리뿐, 아침이면 물안개 피는 호수가 신비로움을 더해준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어느 계절이나 색다른 감흥을 안겨준다. 나물 캐기, 고기 잡기, 과일 따기, 버섯 따기를 해볼 수도 있고, 안동지방의 전통반가 음식을 맛볼 수 있다. 경상북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된 삼백오십년된 목조 고건물의 온돌방에서 고향의 정취를 한껏 느껴볼 수 있다. 대청마루, 돌계단, 삐걱거리며 매 달린 문, 마당에 놓인 장독대 등에서 옛 모습을 그대로 보고 느낄 수 있다. 또한 지례예술촌은 학예술인들의 집필과 연수공간이 주된 기능이지만 외국인들의 한국문화체험 장소로, 또는 일반인들의 전통생활 체험장소로도 쓰이고 있다. 태양열을 이용한 목욕시설과 인터넷 통신 설비가 갖춰져 있어서 여자들이나 외국인들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연간 5천여 명이 이용하고 있다. 지례예술촌에서는 생활 문화 체험, 의례 문화 체험, 자연 체험, 학습 문화 체험, 예술 문화 체험, 정신문화 체험 등 다양한 고택 체험을 할 수 있다. 생활 문화 체험으로는 한복 입어 보기, 한식 먹어 보기, 한옥에서 잠자기가 있다. 의례 문화 체험으로는 설·추석 등 명절 체험과 제례 체험, 세시풍속 체험, 예절 교육 등이 마련되어 있다. 자연 체험으로는 물놀이, 고기 잡기, 곤충 채집, 식물 채집, 밤하늘 관측, 야생동물 관측 등이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지례예술촌길 427

여수 충민사
충민사는 마래산(385.2m)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데, 선조 34년(1601) 체찰사 이항복(1556~1618)이 왕명을 받아 임진왜란이 끝난 뒤의 민심을 살펴본 후 통제사 이시언에게 명하여 건립한 것이다. 충민사를 세우자 우부승지 김상용이 임금께 이 사우의 이름을 지어달라고 간청하여 선조가 직접 이름을 짓고 그것을 새긴 현판을 받음으로써 이충무공과 관련된 최초의 사당이 되었는데, 함께 충무공을 기리는 통영의 충열사보다는 62년, 숙종 30년(1704)에 세워진 아산의 현충사보다는 103년 전의 일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을 여러 사람들 가운데 가장 먼저 제사를 모시는 분으로 하고 의민공 이억기, 충현공 안홍국이 좌우로 배향되었다. 그 후 숙종 35년 충민공 이봉상을 신묘로 모시고 석천제를 창설하였으며, 영조 8년(1732)에 사우를 중수하였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충민단만 남기고 모두 철거되었으나, 고종 10년(1873) 지역 유림들의 진정으로 건물을 다시 세우고 판서 윤용구가 쓴 충민사 현판을 걸었다. 1919년에 일제에 의해 강제 철거된 후, 1947년 2칸 집으로 명맥을 유지해 오다가 지역 주민의 노력으로 다시 세워 1993년 6월 1일 국가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바로 옆에 수호사찰 석천사가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 충민사길 52-23
가라산
거제의 최남단 해변에 위치한 가라산은 거제에서 제일 높은 산으로 높이는 585m이고, 노자산과 같은 준령에 있는데, 학동 뒷산은 노자산이고 다대 뒷산은 가라산이다. 숲이 울창하고 단풍나무가 많아 거제도 산 중에 단풍이 제일 좋으며, 사계절 산세의 변화가 뚜렷하여 비단같이 아름답다는 뜻의 가라산(加羅山)으로 불린다. 산 정상에는 가라산 봉수대가 있으며, 이 정상을 기점으로 남부면 탑포리와 다대리, 그리고 동부면의 학동리로 구분한다.
경남 거제시 남부면 탑포리 산60-28

옥포대첩기념공원
1592년 옥포승첩을 기념하고 충무공 정신을 후세에 길이 계승하기 위해 유서 깊은 옥포만에서 1991년 12월에 기공식을 가지고 높이 30m의 기념탑과, 참배단, 옥포루, 팔각정, 전시관 등을 건립하여 1996년 6월에 옥포대첩기념공원을 준공하였다. 이중 ‘충(忠)’ 자를 형상화한 참배단에는 이순신 장군의 영정이 있다. 전시관은 옥포해전 당시의 해전도 등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유물을 전시하고 있으며, 옥포루는 전망대를 겸하고 있는 팔각 정자이다. 공원에서는 매년 이순신 장군의 제례행사가 열리며, 6월 16일을 전후하여 약 3일간 옥포대첩기념제전이 열린다.
경상남도 거제시 팔랑포2길 87 (옥포동)
옥녀봉(거제)
장승포 아주동과 일운면 옥림리 뒷산인 옥녀봉은 명산으로 옛날 하늘의 옥황상제 딸인 옥녀가 죄를 지어 인간으로 환생하여 옥녀봉에 내려왔는데 어느 날 현세의 아버지가 딸 옥녀에게 나쁜 마음을 품고 딸에게 달려들자 딸인 옥녀가 그의 아버지를 보고 옥림에서 소 울음소리를 내며 올라오면 말을 듣겠다고 하니 옥녀의 아버지는 옥림에서 옷을 벗고 음메음메하며 소 울음소리를 내며 엉금엉금 기어 올라 왔다고 하는데 이때 하늘에서 벼락이 떨어져 그 아버지는 죽고 옥녀는 하늘로 올라갔다는 전설이 있는 산이다. 그 중턱에는 이진암이 있고 산 정상에는 옥녀봉 통신대가 있으며 해발 554.7m이다.
경상남도 거제시 아주동
앵산
고현만의 북쪽에 우뚝 솟아 있는 앵산은 하청면과 연초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산모양이 꾀꼬리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형상을 하고 있다고 하여 앵산이라고 한다. 연초면 한내리 쪽은 가파른 암벽 지역인 데 비하여, 하청면 유계리 방향은 새의 가슴처럼 산세가 절묘하고 나무가 무성하며 덜 가파르다. 앵산은 세 개의 봉우리가 높이 솟아 있으며, 중간 봉우리를 기준으로 좌우로 새 날갯죽지같이 생겼고, 우측은 덕곡리 뒤로 길게 뻗어 있고, 좌측은 오비리 뒤로 뻗어 있어, 새가 날개를 펴고 훨훨 비상하는 모습으로 북쪽을 향해 날아가는 형국이다. 앵산 북쪽 중턱에는 신라시대 하청 북사의 절터가 있고, 그 밑에는 조선시대 정주사 절터와 물레방아 터, 부도탑과 약수터가 있으며, 지금은 그 자리에는 광청사라는 사찰이 있다.
경상남도 거제시 하청면 석포리

북병산
동부면 망골과 망치고개를 경계로 하여, 삼거동에 주맥을 내려 뻗어 문동과 아주골 옥녀봉 줄기와 연결되어 있다. 이 산은 북쪽으로 병풍처럼 가리고 있다고 하여 북병산이라 하고, 높이는 465.4m이다. 망치고개에 고려시대에 축성했다는 성지가 산 중간에서 마을까지 길게 뻗어 있다. 문동계곡 상류에는 문동폭포가 있고, 삼거리에는 신라시대에 있었다는 은적사 절터가 있다. 장승포, 일운, 동부에서 고현으로 다니던 세 갈래길이 협곡에 있는 삼거리 마을은 교통의 중심지였다. 계룡산과 북병산이 만나는 지점이 삼거리다. 여기서 동부, 거제, 해금강으로 가는 길과 신현으로 가는 길, 북병산 고개를 넘어 일운 소동과 지세포로 갈 수 있는 삼거리 길이다. 협곡을 따라가면 심원사가 있다. 이 일대는 표고버섯 재배를 하는 곳이다. 북병산은 구천계곡에서 발원하는 물이 구천댐에 모인다. 등산길은 망치고개에서 달뜬 바위 옆을 지나는 길, 삼거리 반송치 앞산으로 오르는 길, 삼거리 다리 골재에서 오른쪽 길, 심원사 뒷길 등이 있다.
경상남도 거제시 동부면
국사봉(거제)
국사봉은 거제시 고현 수양동과 옥포동 뒷산으로 옥포만을 굽어보고 있는 산은 2개의 봉우리로 형성되어 있는데, 우리나라 국토와 같이 생겼다. 장가들기 위한 상관의 관례를 하고 사모를 쓴 신랑이 북쪽 서울의 국왕에게 국궁하고 절을 하려는 형상이며, 나라의 선비들이 즐겨 찾았다 하여 국사봉이라 불린다. 국사봉의 정상에는 평평한 반석이 있는데 이를 가리켜 장군의 망대였다 하여 장관대라 부르며, 임진왜란 때 망대 역할을 하였고, 옛날 삼신할머니가 일본을 건너가기 위해 계룡산에서 축지법으로 장관대까지 한 발짝에 뛴 곳에 왼쪽 발자국의 흔적이 있다고 한다. 1700년 초 옥범좌수가 살았던 범좌수골과 범자수보가 있으며, 거제 반씨의 시조 반부의 묘가 있고, 정상에 서면 거제의 대형 조선소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부산광역시가 보인다. 국사봉은 수월 계곡 맑은 물과 봄에는 철쭉꽃으로 장관을 이루며, 산두릅, 산딸기, 산어름, 표고버섯 등 희귀한 산채가 많다. 계룡산, 대금산, 앵산, 옥녀봉이 이 산을 감싸고 있는 듯 곁에 있고,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아름다운 풍경은 절경을 이루고 있다.
경상남도 거제시 수월동

옥산성지
거제 옥산성지는 거제 계룡산 자락의 수정봉(해발 143m) 정상 부분을 타원형으로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으로, 동쪽은 폭이 넓고 서쪽은 폭이 좁은 표주박 형태로 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수정봉성이라 하였는데 지금은 서쪽 성문 입구에 있는 바위에 새겨진 옥산금성이라는 문구를 따라 옥산성이라 부른다. 옥산성이 자리한 거제면 일대는 현종 4년(1663)에 거제의 읍치를 고현 지역에서 이곳 거제면으로 옮겨 조선시대 말기까지 거제현 관아가 위치한 곳이었다. 거제 옥산성이 만들어진 시기는 성 안에 설치되어 있는 축성비의 내용에 따라 고종 10년(1873)에 거제 백성들이 힘을 모아 축조한 것으로 되어 있어, 우리나라 산성 중 가장 늦게 축조된 산성으로 알려져 왔으나, 2017년 성내 집수지 및 2020년 건물지 발굴 당시 7세기의 유물이 출토됨에 따라, 옥산성의 최초 축조 시기는 통일신라시대인 7세기 이전임이 확인되었다. 성을 쌓기 위한 돌은 가까운 계룡산 자락과 인근 야산에서 구해온 것으로 크지 않은 막돌을 사용하였고, 현재 성곽은 원상태로 잘 보존되어 있다. 문지는 서문지와 동문지 2개가 있는데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성문 입구를 사각형 이중 성곽의 내옹성으로 만들어 성문을 보호하고 돌계단을 두어 성안으로 출입하게 하였다. 성 안에는 다수의 건물지와 집수지, 투석용 몽돌 저장시설 등이 남아있다.
경상남도 거제시 삼동동

고현성
거제 고현성은 축조당시 사등성의 인구가 늘어나자 문종 1년(1451)부터 쌓기 시작하여 2년 뒤인 단종 1년(1453) 완공한 읍성이며, 성의 둘레는 921m, 높이 4m이며, 동·서·남쪽 세 방향에 성문을 설치하였다. 성문 앞에는 반원형의 옹성을 만들어 적으로부터 성문을 완전히 보호하였으며, 성을 둘러싼 물길인 해자를 설치하여 방어를 강화한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읍성의 형태이다. 고현성은 임진왜란으로 함락되어 현종 4년(1663) 거제면으로 읍치를 옮길 때까지 210년간 읍성으로 사용되었다. 한국전쟁 이전까지 성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으나, 고현지역에 포로수용소가 설치되면서 성의 대부분이 파괴되어 지금은 600m 정도의 성벽만 남아있다.
경상남도 거제시 고현동
거제향교
거제향교의 건물배치는 교육 공간을 앞쪽에, 제례 공간을 뒤쪽에 두는 향교 건물배치의 일반적 형태인 전학후묘 형식이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로, 대성전만으로는 경남에서 사천 향교와 함께 가장 건물이 큰 편이다. 거제향교는 평지에 세워져 대성전의 지붕을 다른 건물에 비해 높게 설치하였으며, 훼손 방지와 제례 영역의 신성함을 유지하기 위해 대성전 뒤편에 인공 숲을 만들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초하루·보름에 분향을 올리고 있으며, 전교 1명과 장의 수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기성로7길 10

가배량진성
거제 가배량진성은 성종 21년(1490)에 쌓은 성으로서 조선시대 전기 서부 경남 해안을 방어하였던 경상우수영의 본영으로 사용하였으며, 거제 수군 7진 중의 하나이다. 이 지역은 한산도를 중앙에 두고 통영과 거제로 갈라지는 두 갈래 바닷길 중 거제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하여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으로, 세종 7년(1425)부터 선조 24년(1601)까지 경상우수영 및 삼도수군통제영으로 이용되어 역사적인 의미가 큰 곳이다. 선조 16년(1593)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된 후 한산도에 삼도수군통제영 본영을 구축하고 이곳에는 기존보다 큰 규모로 연장 개축했다는 기록이 있다. 임진왜란 이후 이곳 거제의 경상우수영성으로 삼도수군통제영을 옮겼다가, 선조 24년(1601) 다시 거제에서 고성으로 옮겼으며, 3년 뒤 현재의 통영으로 옮겨졌다. 이때 고성에 있던 ‘가배량진’이 이곳으로 옮겨 오면서부터 ‘가배량진성’이라 불렀으며, 고종 31년(1894) 갑오개혁의 과정에서 진이 없어질 때까지 해안 방어의 요충지로 역할을 하였다. 성의 바깥은 돌로 쌓고 안쪽은 흙으로 둑을 쌓아 만들었는데, 기록에 따르면 성의 둘레는 794m, 높이는 4m이며, 현재 남아있는 성의 둘레는 146m이다. 성을 둘러싼 물길인 해자의 흔적과 남쪽에는 조망할 수 있는 망대 터가 확인되었다.
경상남도 거제시 동부면 가배리
청담근린공원
청담근린공원은 지극히 도시적인 청담동에 위치한 작고 아담한 공원이다. 대부분의 근린공원이 평지에 조성된 것과 달리 야산의 원형을 훼손하지 않고 산책길과 쉼터 등 인공 설치물과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도록 조성되었다. 낮은 산책로를 따라 올라가면 간단한 운동기구가 비치된 놀이터가 있는데 아침이면 운동하는 사람들로 제법 붐비는 곳이기도 하다. 공원에는 체육시설, 배드민턴장, 농구장, 산책로, 정자, 실개천, 약수터 등이 있으며, 공원 지역에 청소년수련관과 청담지구대도 있다. 청담근린공원은 빽빽이 들어선 나무들로 도시에서는 드물게 맑은 공기를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청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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