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7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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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천온천
예천군 감천면 관현, 천향리 일대는 예천, 감천, 온수곡 등 물과 관련된 지명이 많아 예부터 온천수가 있었다는 유래가 있다. 조선왕조 실록 1599년(선조 32) 9월 22일 편에 보면 임금이 몸이 좋지 않아 평산에 갈 것을 희망하면서 온양이나 예천에 갔다는 기록이 있듯이 예천온천은 그 역사가 깊다. 2000년 개장하였고 2012년에 기존 온천시설에 남·여탕에 각 100㎡ 규모의 노천탕을 증축하여 시설로는 실내탕, 온탕, 열탕이 있는 노천탕, 사우나실, 휴게실 등이 있다. 온천수의 PH(수소이온농도)가 9.52~10.25의 알칼리성으로 지하 800m 이상에서 용출되는 원천수를 100% 사용하는 우수한 온천수로 수질이 부드러워 인체 표피 지방분을 제거하여 청량감을 주고 피부를 윤택하게 한다. 또한 중탄산나트륨과 염소·규산·칼슘 등 인체에 유익한 성분을 다량 함유하고 있어 욕수로 적합하다. 특히 피부미용과 피부병에 탁월한 효과를 보이며 피로회복과 혈액순환, 항진작용, 진정작용, 신진대사, 노화 방지에도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찾는 이들이 많다.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온천길 27

봉화 대현리 열목어 서식지
열목어는 연어과에 속하며 20℃ 이하의 차가운 물에서 사는 민물고기이다. 몸의 바탕색은 황갈색이며 머리·몸통·등에는 자갈색의 무늬가 불규칙하게 흩어져 있고 배 쪽은 흰색에 가깝다. 알을 낳을 때는 온몸이 짙은 홍색으로 변하며, 등지느러미와 가슴지느러미 부분에는 무지개 빛의 광택을 내어 아름답다. 물속에 사는 곤충이나 작은 물고기를 먹고 산다. 우리나라에서는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한강, 낙동강 상류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여름에는 하천에서 가장 상류의 시원한 곳에서 살고, 겨울에는 중류지역까지 내려와서 겨울을 넘긴다. 봉화 석포면의 열목어서식지는 세계에서 열목어가 살고 있는 가장 남쪽지역이며, 숲이 잘 발달하여 열목어가 살 수 있는 가장 좋은 환경을 지닌 지역의 하나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봉화군 석포면 대현리
통영유람선
통영은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심장부에 있으며 수많은 섬으로 이루어져 있어 장사도, 연화도, 비진도 등 천혜의 아름다운 한려수도 관광의 최적지이다. 통영유람선은 한려해상국립공원과 장사도 해상공원을 관광하는 코스, 한산대첩 승전지코스, 충무공크루즈 선상관광코스 3가지로 운행 중이다. 통영유람선협회는 500여명이 한 번에 승선할 수 있는 대형 크루즈 유람선과 일반 유람선 12척을 운항하는 국내 최대 유람선사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과 장사도 해상공원 코스는 한산도를 지나 추도, 죽도, 용호도, 비진도 등 한려해상국립공원 일원을 관광하며 장사도 해상공원에 상륙하여 장사도 관광을 할 수 있다. 장사도는 20여개의 코스별 주제 정원과 1,000여종의 다양한 식물, 10만그루의 동백나무가 심어져 있어, 사계절 다채로운 관광을 즐길 수 있고 특히 동백꽃이 필 때면 섬 전체가 불타는 듯한 장관을 연출하는 유명 관광지이다. 한산대첩 승전 코스는 아름다운 한려해상국립공원과 이순신 장군의 임진왜란 격전지를 함께 관광하는 코스이다. 한산대첩은 이순신 장군이 학익진을 처음으로 펼친 전투로 한국사 3대 대첩으로 꼽히는 전투이다. 한산대첩이 일어난 한산도 앞바다를 둘러보고 이순신 장군이 부하들과 작전을 세우고 일했던 제승당을 방문해 한국인의 자부심과 긍지를 느낄 수 있다.
경상남도 통영시 도남로 269-38

삼천포유람선
사천 삼천포항 인근에 위치한 삼천포 유람선은 유람선을 타고 섬과 섬 사이의 수평선을 넘어 떠오르는 태양을 선상에서 즐기며 관광할 수 있다. 천혜의 비경 한려수도의 중심부인 삼천포 앞바다에 펼쳐져 있는 자연의 경이로움을 관광객들에게 편안하고 안전하게 보여주는 유람선은 삼천포의 관광 명물이다. 삼천포 유람선은 2006년 3월부터 450톤 급 700명 정원의 대형 유람선을 선착장에서 사량도의 수우도(동백섬)를 돌아오는 코스가 개발되어 운항 중이며, 코섬, 대방진굴항, 삼천포대교, 신수도 등 다양한 절경지를 약 1시간 30분 동안 선상에서 관람을 할 수 있다. 삼천포 앞바다는 호수같이 맑은 물에 물결 또한 잔잔할 뿐만 아니라 해안 경관마저 아름답기 때문에 쾌속 유람선을 타고 바다를 항해하는 기분은 상쾌하기 이를 데가 없는 관광여행이다. 사천에는 유람선 관광 외에도 공룡발자국으로 유명한 고성 상족암, 병풍바위, 코끼리 바위 등 자연이 이루어 놓은 걸작품들도 직접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경상남도 사천시 유람선길 70 (대방동)
도장포유람선
도장포유람선은 도장포 마을 주민이 공동 지분으로 출자해서 만든 국내 유일의 법인회사로, 마을의 단합된 모습과 좋은 인심이 어우러진 거제지역의 새로운 관광상품이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거제 해금강과 외도, 매물도를 연결하는 삼각지역을 중심으로 아름다운 해안절경을 따라 신선대, 돌팀, 함목과 여차 몽돌해수욕장, 명사 모래해수욕장 등 거제의 낭만이 깃든 명소들을 둘러볼 수 있다. 도장포유람선에서 바라보는 해금강의 일출과 매물도의 석양이 특히 장관이다. 도장포는 신선대, 함목, 돌팀 등 천혜의 비경이 기암괴석의 암반과 섬들과 어우러져 해안선과 몽돌해수욕장을 따라서 늘어서 있으며 도장포에서 유람선을 타고 해금강, 외도, 매물도, 대·소병대도, 갈매기의 낙원 홍도까지 유람선 관광을 즐길 수 있다. 도장포 망릉잔디공원(바람의 언덕)과 신선대 일원은 가족단위 및 단체여행객들이 오붓하게 바다를 바라보며 낭만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해상의 기상 변화에 따라 운항 여부가 결정되며 유람선 발권 및 승선 시 본인 신분증 지참 필수이다.
경상남도 거제시 남부면 도장포1길 55
고려궁지
고려가 몽골군의 침략에 대항하기 위해 고종 19년(1232)에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고 1234년에 세운 궁궐과 관아건물이다. 정궁 이외에도 행궁·이궁·가궐을 비롯하여 많은 궁궐이 있었다. 정문은 승평문이었고 양쪽에 삼층루의 문이 두 개가 있었으며 동쪽에 광화문이 있었다. 39년 동안 사용되었고 1270년 강화조약이 맺어져 다시 수도를 옮기면서 허물어졌다. 조선시대에도 전쟁이 일어나면 강화도를 피난지로 정했다. 조선 인조 9년에 옛 고려 궁터에 행궁을 지었으나 병자호란 때 청군에게 함락되었다. 그 후 다시 강화유수부의 건물을 지었으나 병인양요 때 프랑스군에 의해 거의 불타 없어져 지금은 동헌과 이방청만이 남아있다. 이곳은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에 저항한 우리 민족의 자주정신과 국난 극복의 역사적 교훈을 안겨주는 곳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인천광역시 강화군 강화읍 북문길 42
강화 덕진진
고려시대에 강화해협을 지키던 외성의 요충지이다. 병자호란 뒤 강화도를 보호하기 위한 방법으로 내성·외성·돈대·진보 등의 12 진보를 만들었는데 그중의 하나이다. 현종 7년(1666) 국방력 강화를 위해 해군주둔지(수영)에 속해 있던 덕진진을 덕포로 옮겼으며, 숙종 5년(1679)에 용두돈대와 덕진돈대를 거느리고 덕진포대와 남장포대를 관할함으로써 강화해협에서 가장 강력한 포대로 알려져 있었고, 강화 12 진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곳을 지키고 있었다. 1866년 병인양요 때는 양헌수의 군대가 덕진진을 거쳐 정족산성으로 들어가 프랑스 군대를 격파하였으며, 1871년 신미양요 때는 미국 함대와 가장 치열한 포격전을 벌인 곳이다. 그러나 초지진에 상륙한 미국군대에 의하여 점령당하였다. 이때 건물에 몸을 숨겨서 적과 싸울 수 있도록 쌓았던 낮은 담은 모두 파괴되었다. 1976년 성곽과 돈대를 고치고 남장포대도 고쳐 쌓았으며, 앞면 3칸·옆면 2칸의 문의 누각도 다시 세웠고, 당시의 대포를 복원하여 설치하였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인천광역시 강화군 불은면 덕진로 31-9
만연폭포
화순읍에서 만연산 동쪽 기슭 수만리로 넘어가는 고개 아래에 만연폭포가 있다. 10m 높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는 예부터 신경통 환자들이 자주 찾아 병을 치유했다고 한다. 만연폭포엔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옛날 만석이와 연순이는 사랑하는 사이였으나 만석이가 전쟁터에 나가게 되어 서로 헤어지게 되었다. 연순이는 돌아오지 않는 만석이를 기다리다가 부모의 강압에 못 이겨 다른 이와 혼인하던 날 그 자리에서 몰골이 상한 만석이를 보게 되었다. 연순이는 신방을 뛰쳐나와 만석이를 몰래 만나 여기 폭포에 이르게 되었고 이승에서 못다 한 사랑 저승에서 해보자며 폭포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그 뒤로 이 폭포를 만연폭포라 이름하였다고 한다. 주변 관광지로는 운주사, 화순향교, 화순고인돌군 등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화순읍 유천리

화순 정암 조광조 선생 적려 유허비
조선 중기 성리학자이며 개혁주의자였던 정암 조광조 선생이 1519년 기묘사화로 인해 능성에 귀양을 와 사약을 받았던 곳으로, 조광조 선생을 추모코자 세운 것이 적려유허비이다. 적려란 유배되어 간 곳을 이르며, 유허비는 한 인물의 옛 자취를 밝히어 후세에 알리고자 세워 두는 비를 말한다. 이 적려유허비는 능성현 당시 북문이 있었던 곳 부근 도로변에 자리하고 있는데 귀부와 비신, 이수를 갖추고 있다. 귀부는 자연석에 가까운 암석으로 거북의 형태만 갖추었고 귀부도 형상만 다듬었다. 이곳에 유배당한 조광조 선생의 자취를 기록한 비문은 의정부 우찬 겸 성균관제주세자이사 송시열이 짓고 전서는 충청도 관찰사 겸 수군절도사 순찰사 민유중이, 글씨는 의정부 좌참찬 송준길이 썼으며 현종 8년(1667년) 4월에 능주목사 민여로가 건립하였다. 정암 조광조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정각과 유배하러 와서 살았던 초가집이 함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능주면 정암길 30
![화순 고인돌군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https://tong.visitkorea.or.kr/cms/resource/35/3534435_image2_1.jpg)
화순 고인돌군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화순 고인돌군은 도곡면 효산리와 춘양면 대신리를 잇는 고개의 양계곡 일대에 분포하고 있다. 도곡면 효산리 일대에 분포한 총 980 여개의 석재 중 135기가 고인돌로 추정되며, 현재 상석의 하부가 매몰되어 있거나 도괴된 것 중 상석의 형태를 보이는 석재가 100여 기 이상이 남아 있다. 효산리 고인돌은 노출되어 확실한 고인돌이거나 고인돌을 축조하기 위해 채석하여 옮겨온 것을 포함하면 적어도 250여 기 이상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춘양면 대신리 일대에 분포한 총 3,309 개의 석재 중 124기가 고인돌로 추정된다. 하부가 묻힌 석재나 상석의 형태를 보이는 것이 적어도 200여 기 이상이어서 원래 고인돌이거나 고인돌 상석으로 사용하기 위한 것은 300여 기 이상이었을 것으로 본다. 조사된 지석묘 중 지석이 있는 기반식 고인돌은 23기이다. 화순 고인돌군의 대표적인 특징은 좁은 지역 안에 596여 기가 밀집되어 있고, 국내 최대 크기(무게)의 상석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춘양 대신리에 있는 길이 7.3m, 폭 5.0m, 두께 4.0m의 지석묘는 무게가 280여 톤에 이르며 도곡 효산리의 가장 큰 고인돌은 길이 5.3m, 폭 3.6m, 두께 3.0m로 100여 톤 이상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주변에서 발견된 석실과 상석 하에 노출된 석실 등이 있는 고인돌군이 있어 고인돌의 덮개돌 채석 과정을 알 수 있고, 채석장 아래에 지석이 고인 기반식 지석묘, 석실이 노출된 지석묘, 덮개돌이 없는 석실 등을 통해 고인돌의 축조 과정을 한곳에서 볼 수 있다. 2000년 12월 2일 유네스코에서 고창, 강화 고인돌과 함께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어 국제적인 관광지로 부상하였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 64

화순 서유리 공룡발자국 화석산지
화순 공룡발자국 화석지는 1999년 5월 15일 화순온천지구를 답사하던 중 발견되었다. 공룡발자국화석은 주로 해남, 보성 등의 해안지역에서 발견 되었고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내륙에서 발견되기는 이곳이 처음이다. 화순 서유리 공룡발자국 화석지에는 중생대 백악기(1억년전)의 육식공룡(수각류)의 발자국이 많은데 최소한 5마리 이상의 활동흔적이 관찰될 뿐만 아니라 육식공룡이 일정한 간격으로 걸어간 흔적이 단일지역 안에서 매우 길고도 집중적으로 나타나있다. 또한 1마리의 보행렬이 40m거리로 규칙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이는 세계 최대 규모의 것이다. 이곳에서 공룡들의 활동이 가장 활발했던 시기는 중생대 백악기 후반기(약 1억년전)로 추정되며 공룡의 종류는 발자국의 크기가 20~22㎝, 보폭 90㎝ 로 키가 4~5m로 추정되는 코알라시우루스로 추정하고 있다. 그 밖에도 초식 공룡 발자국 흔적도 12개가 발견되었고 규화목(나무화석), 식물화석, 다른 종류의 생흔화석이 다수 확인되기도 했다. 이는 당시 강가 (하안)의 식생연구에 중요 단서로 제공되며 초식공룡의 먹이사슬을 연구하는 데에도 큰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된다. 그리고 연흔(물결이 만들어 낸 흔적), 건열(거북등 구조흔적. 높은 온도로 인해 갈라진 점토질의 균열에 모래가 쌓여 형성됨)등 퇴적구조도 확인되었다. 이곳의 화석은 3개층에서 발자국이 발견되며 건열도 3개층으로 구분돼 있어 그 형성시기가 오래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백아면 백아로 2080
양산 북정리 고분군
오봉산의 중심이 되는 산등성이 일대에 있는 무덤들이다. 대형무덤은 산의 윗부분에 퍼져 있고 소형무덤은 비탈진 곳이나 산의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와 같은 무덤의 위치는 시기적인 차이에 따라 무덤의 위치가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무덤들 가운데 부부총과 금조총은 1920년에 조사되었고, 1990년에 내부구조 확인을 위한 발굴조사가 있었다. 조사 결과, 이 지역의 무덤들은 모두 관을 보관하는 돌방(석실)의 앞면이 트인 앞트기식굴방무덤 (횡구식석실분)임이 밝혀졌다. 부부총과 금조총은 앞트기식굴방무덤인데, 부부총은 산 위쪽에 자리 잡은 대형무덤으로 돌방내부의 벽면과 천장을 흰색으로 칠하여 장식하였다. 반면 금조총은 산의 비탈진 곳에 자리 잡은 소형무덤인데 무덤들이 자리 잡은 위치와 형태가 다른 것은 무덤 주인들의 신분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무덤에서 출토된 금동관, 금제장식품을 비롯한 화려한 유물은 경주지방의 대형무덤에서 나오는 유물과 비슷하다. 부부총의 경우는 추가장으로 남편이 5세기 중반 이후에 먼저 사망하여 무덤을 만들고, 5세기 후반에 부인이 사망하여 함께 묻힌 것으로 보인다. 금조총의 주인은 5세기 후반이나 6세기 전반에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출토유물로 볼 때, 무덤의 주인공은 신라의 중앙정부와 깊은 관련이 있는 사람이거나 또는 그 친족에 해당하는 인물로 추측된다.
경상남도 양산시 북정동

신흥사(양산)
신흥사는 영축산 기슭에 위치해있다. 창건 당시에 건물이 110동이나 되었다고 한다. 중종대까지의 연혁은 알 수 없으며, 1582년 성순(性淳)이 중창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승군(僧軍)의 거점이 되어 왜군과 격전을 치르면서 대광전(大光殿)을 제외한 대부분의 건물이 불에 탔다. 이후 1757년에서 1765년 사이에 제작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신흥사는 군의 서쪽 육십 리 이천산에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영조대에 존속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흥사의 창건설화에 의하면, 만어사에서 기도를 하던 가야국 수로왕에게 말하기를 양주 땅에 옥지가 있는데 그곳에 독룡(毒龍)이 살고 있으므로 이를 쫓아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라 하였다. 수로왕이 정성을 다하여 기도를 함에 부처가 육신통의 주술을 발휘하니 만어사에 있던 돌들이 모두 고기로 변하여 옥지에 있는 독룡을 동해로 쫓아버렸다고 한다. 지금도 신흥사에 있는 돌들을 두드리면 쇳소리가 나는데 그때 이후부터라고 한다. 그곳에 절을 지었는데 이것이 지금의 신흥사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원동면 원동로 2282-111

이익선생묘
이익선생묘는 실학의 대가 성호 이익 선생이 평생을 거주하며 학문의 커다란 업적을 남긴 첨성총에 위치해 있다. 1985년 우리나라의 민족 문화를 빛낸 선현 중 사상분과 10인의 선현으로 이익 선생이 선정됨에 따라 묘역이 정비되었고, 1988에는 사당(조상의 신주를 모셔놓은 집) 첨성사와 재실(무덤 옆에 제사를 지내기 위해 지은 집) 경호재의 준공이 이루어졌다. 아울러 2002년에는 선생의 묘역 건너편에 성호박물관을 건립함으로써 선생의 실학사상을 기리고 있다. 이익 선생의 묘는 언덕 위에 소나무 숲으로 둘러싸인 양지바른 곳에 두 분의 부인과 합장릉으로 조성되어 있으며 망주석과 상석, 향로석이 있다. 사당은 평일에는 개방되며 삼문을 통해 들어가면 경호제가 위치하고 뒤쪽으로는 이익 선생의 영정을 모신 전면 3칸인 첨성사가 자리하고 있다. 도심 주택가 사이에 자리한 소박한 이익선생묘는 은행나무와 소나무의 아름다움이 어우러진 아담한 정원 같은 곳이다.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일동

안산식물원
2001년 개관된 안산식물원에는 3개의 전시관이 있으며 제1전시관인 열대식물원에서는 야자나무 등 100여 종에 이르는 열대식물을 만날 수 있다. 제2전시관인 중부식물원에서는 진경산수, 붓꽃 등 우리나라 중부지방의 야생화 11류 177종을 볼 수 있다. 제3전시관인 남부식물원에서는 습지식물, 식용식물 등을 접하게 된다. 야외식물원에는 장미원 4종과 유실수원, 야생식물원, 식물천이원, 연못 등이 있어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안산식물원은 외국 유명 식물원의 온실에 버금가는 피라미드형 유리 온실을 갖추고 있다. 덕분에 이곳 식물들은 사계절 가리지 않고 푸른 숨을 쉴 수 있다. 안산식물원은 도심지와 가까운 성호공원 내에 있어 접근성도 좋다. 주변에는 노적봉공원, 단원조각공원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보는 것도 추천한다. (출처 : 안산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경기도 안산시 상록구 성호로 113 (이동)

일산호수공원
일산호수공원은 일산신도시 택지개발사업과 연계하여 조성한 근린공원이다.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를 만들어 도시인이 접할 수 없는 자연생태계를 재현하고 다양한 주변경관 및 호수를 이용한 레크레이션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특히 호수를 중심으로 한 4.7㎞의 자전거도로와 메타세쿼이아길 등 9.1㎞의 산책로는 시민들이 특별히 좋아하는 장소이다. 이외에도 생태자연학습장, 조형예술품, 선인장전시관 등이 다양한 생태문화시설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매년 고양국제꽃박람회, 가을꽃축제, 호수예술축제 등이 개최되는 등 국내는 물론 세계적인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공원이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도시인들이 접하기 어려운 자연을 인공적으로 만든 공원으로 동양 최대의 인공 호수, 인공섬, 잔디광장 등을 비롯해 100여 종의 야생화와 20만여 그루의 수목이 있어 휴식을 취하기 좋다. 고아인이 복잡한 마음을 가라앉히며 산책하다 정재훈을 만나 기운을 차린 곳이다.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호수로 595 (장항동)

상주 임란북천전적지
상주 임란북천전적지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의 중앙군과 향군이 왜군의 주력부대와 회전하여 900여 명이 순국한 호국의 성지이다. 1592년 왜군이 부산에 상륙하자, 이를 막기 위해 조선의 중앙군 약 60여 명이 남하하였다. 이들과 상주 판관 권길, 박걸이 밤새워 소집한 장정 800여 명 등 900여 명이 17,000여 명의 왜병과 분전하여 전원이 순국한 곳이다. 그 애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충렬사를 건립하였고 그 당시 순국한 윤섬, 권길, 김종무, 이경류, 박호, 김준신, 김일, 박걸, 무명 열사의 위패를 배향하였다. 원래 상주 지역에 이를 기록한 비속(사의비)만 남아 있던 것을 1990년에 사당과 전시관을 세우고 옛 상주관아 부속 건물들을 이건하여 공원화하였다. 상주동헌의 문루였던 태평루와 조정의 사신이 사용하던 객사 상산관, 조선시대 1577년(선조 10년)에 상주목사 정곤수가 상주읍성 남문 밖에 건립하고 연당이라 이름 지어 선비들의 휴식처나 글 짓는 곳으로 사용하던 관정 침천정이 있다. 매년 양력 6월 4일 제향 행사를 거행하여 그분들의 넋을 기리고, 후세들에게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된다.
경상북도 상주시 경상대로 3123

광덕산
광덕산은 해발고도 699m로 아산에서 가장 높은 산이다. 아산시 송악면과 천안시 광덕면을 경계에 솟아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호두를 최초로 재배한 곳이기도 하다. 차령산맥에 속한 명산으로 부드럽고 유연한 산세가 특징이며 깨끗하고 맑은 강당골계곡이 흐른다. 예로부터 산이 크고 넉넉하여 덕이 있는 산이라 하였으며 나라에 전란이 일어나거나 불길한 일이 있으면 산이 운다는 전설이 전해져 오고 있다. 아산시 관내에서의 등산로는 강당골계곡에서 시작하는 코스와 북쪽 멀리 설화산(447.5m) 방면에서 올라오는 코스가 있는데, 임도가 개설되어 있어 산중턱까지 올라갈 수 있으며 등산로도 잘 정비되어 있다. 또한 산악자전거를 탈 수 있는 코스도 있어 산악자전거를 즐기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주요 코스이기도 하다. 또한 울창한 숲과 노목들이 둘러싸여 있어 심산유곡의 정취를 만끽할 수 있으며, 정상에 오르면 차령산맥의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겹겹이 펼쳐지고 송악저수지, 광덕사 등을 조망할 수 있다. 인근에는 강당골계곡, 송악저수지, 광덕사 외에도 외암민속마을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광덕사길 30
성거산
천안 시가지를 중심으로 남쪽에 광덕산(699.3m)이 있다면 동북쪽에는 성거산(579.1m)이라는 명산이 자리 잡고 있다. 성거산은 고려 태조 왕건이 삼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분주할 때 직산면 산헐원을 지나다 동쪽의 산을 보고 신령이 있다 하여 제사를 지내게 하고 ‘성거산’이라 부르게 하였다는 산이다. 정상에 오르면 천안의 특산물인 성환배, 성거, 입장 거봉 포도의 주산지가 한눈에 들어오는 곳으로 능선을 따라 북쪽으로 진행하면 백제 도읍지였던 위례산성에 도달된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송전1길 98

어승생
정상에는 둘레 약 250m가량의 원형 화구호(火口湖)가 있으나 늘 물이 고여있지는 않다. 남서쪽에는 외도천 상류, 동쪽에는 도근천 상류를 끼고 있다. 오름 정상에는 일제시대 일본군이 설치했던 화포 시설 잔해가 남아 있으며, 남사면 중턱에는 샘이 있다. ‘어승생오름’ 북쪽 기슭에 한밝저수지가 있는데, 명마의 산지로 이름났던 어승생에서 발원하는 물이 계곡을 타서 이곳에 모인다. 현재는 중산간 지대의 수원인 어승생저수지로 사용되고 있다. 민간에서는 어스승이, 어스싱이라고 한다. 어승생(御乘生)은 한자의 뜻 그대로 임금이 타는 말(御乘馬)이 낳기 때문에 붙인 것이라면 음독자로 어승생의 표기라 할 수 있는데, 민간의 어스승이, 어스싱이 등을 고려하면 음가자의 결합 표기라 할 수 있다. (출처 : 제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해안동

용문사(남해)
남해읍 이동면의 호구산 기슭에 자리 잡은 고찰로 남해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인 용문사는 신라 애장왕 때 창건된 절로 열두명의 고승을 배출한 남해 사찰이다. 원효대사가 금산을 찾아와 보광사를 짓고 산명도 보광산이라 한 이후 호구산 첨성각을 세우고 금산에 있었던 보광사를 이곳으로 옮겼다고 전한다. 용문사는 보광사의 후신으로 등장하는 사찰인 셈이다. 다른 설화에 따르면 조선시대 현종 때 남해현의 남해향교와 이 절의 입구가 맞닿아있으니 다른 곳으로 옮기라는 요구가 있었다. 그러자 백월당 대사가 남쪽에 있는 용소마을 위에 터를 정하고 용문이라 하였다는 이야기도 있다. 용문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당의 뜻을 받들어 승려들이 용감하게 싸운 호국사찰이기도 하다. 용문사에 보관 중인 삼혈표라는 대포, 그리고 숙종이 호국사찰임을 표시하기 위해 내린 수국사 금패가 증거이다. 조선 숙종은 용문사를 수국사로 지정하고 왕실에 용문사 경내에 축원당을 건립하고, 위패를 비롯하여 연옥등, 촉대, 번 등을 하사했으나 연옥등, 촉대 등은 일본 강점기에 없어지고 지금은 번과 수국사 금패만 보존되어 있다.
경상남도 남해군 이동면 용문사길 166-11
장성 입암산성
예로부터 방어하는데 중요한 곳으로 노령산맥에 이어져 전라북도 정읍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산성이다. 해발 626m 입암산의 계곡 능선을 따라 만든 포곡식 산성으로 약 3.2㎞ 정도 남아 있다. 입암산성의 축성 시기는 기록이 없으나 삼한시대의 성으로 추측되고 있다. 후백제 시대 나주를 왕건에게 점령당한 견훤의 중요한 요새이기도 했던 이곳은 1256년 몽골 6차 침입 때의 격전지였음이 고려사절요에 기록되어 있다. 성의 밑부분은 백제의 양식이며 상부는 조선시대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태종 9년(1409)에 고쳐 쌓고 이후 성의 폭을 넓히고 낮은 곳을 높이 쌓았다. 남문과 북문은 옛 모습 그대로 남아있다. 성벽은 수직에 가까우며 물을 막아 충분한 양의 물을 준비해 오랜 시간 성을 지킬 수 있도록 한, 조선 후기 방어시설의 대표적인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성군 북하면 신성리 산 20
뾰족산(보죽산)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에 딸린 보길도는 ‘동풍이 건듯 부니 물결이 고이 인다’로 시작하는 고산 윤선도의 『어부사시사』가 만들어진 무대이다. 윤선도의 유적지가 많은 보길도 남서쪽 끝의 보옥리에는 뾰족산 또는 보죽산(195m)이라는 이름의 봉우리가 솟아있다. 마을 사람들은 마치 소뿔을 잘라 놓은 것 같다 해서 뾰족산이라 부르는데 뾰족한 산의 형세를 제대로 보려면 보옥리로 들어서기 전 망끝전망대에서 바라보아야 한다. 뾰족산은 보는 위치에 따라 모습이 달라서 신비스럽기까지 하며 산정상에 오르면 눈앞에 펼쳐진 수평선과 멀리 제주도와 추자도가 아스라이 보이는 모습이 비경을 이룬다. 뾰족산은 키가 큰 동백숲이 빼곡하게 자라고 있고 산의 정상에서는 맑은 날이면 한라산까지도 보인다. 보길도 10경 중 보옥 첨괴암으로 불린다. 인근 보옥리 해변에는 공룡알처럼 둥근 모양의 갯돌이 모래사장을 대신한 아름다운 보옥리 공룡알해변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보길면 부황리
적자봉(격자봉)
적자봉(433m)은 보길도의 주봉으로 산 이름은 고산 윤선도가 명명하였다. 원래 이름은 격자봉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적자봉으로 변하였다. 보길도의 진산이며 산에는 600~700여 종의 수림이 무성한 자연 보호림과 동백숲이 있다. 산 자체가 상록활엽수로 이루어져 해가 비치면 나뭇잎이 햇볕을 반사해 산이 붉은색으로 변한다 하여 지명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적자봉을 중심으로 광대봉, 망월봉이 둥근 원을 그리듯 펼쳐져 있고 안쪽으로 고산 윤선도의 적거지였던 부용동이 있다. 낙서재 원점회귀 산행으로 적자봉을 종주할 경우 산길의 경사는 완만하나 대낮에도 어두울 만치 울창한 숲이 답답한 느낌이 들지만 능선에 올라서면 다도해가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맑은 날이면 추자도, 제주도를 조망할 수 있다. 한편 적자산에는 황칠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기도 하다. 해발 433m의 정상에서 제주도, 땅끝, 진도, 거문도, 추자도, 다도해, 남은사, 부용, 부황 마을, 주변의 작은 섬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정상까지 부용리 곡수당에서 출발하면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며 중간중간에 조망할 수 있는 명소들이 있고 황칠나무, 붉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가막살나무 등 난대성 수종들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경치에 남해의 짙푸른 바다가 발아래 조화를 더하니 윤선도는 ‘선계인가 불계인가 인간이 아니로다.’라고 표현한 바 있다. 적자봉(433m)은 보길도의 주봉으로 산 이름은 고산 윤선도가 명명하였다. 원래 이름은 격자봉이었으나 언제부터인가 적자봉으로 변하였다. 완만한 등산코스에 습지인 듯 칙칙한 느낌이 들지만 능선에 올라서면 다도해가 시원스럽게 펼쳐지고 맑은 날이면 추자도, 제주도를 조망할 수 있다. 한편 적자산에는 황칠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기도 하다. 보길도의 주산이며 해발 433m의 정상으로 큰기미계곡, 작은기미계곡, 부용리 마을에 접해 있으며 정상에서 제주도, 땅끝, 진도, 거문도, 추자도, 다도해, 남은사, 부용, 부황 마을, 주변의 작은 섬들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정상까지 부용리 곡수당에서 출발하면 약 2시간 정도 소요되며, 중간중간에 조망할 수 있는 명소들이 있으며 황칠나무, 붉가시나무, 구실잣밤나무, 후박나무, 가막살나무 등 난대성 수종들이 기암괴석과 어우러진 경치에 남해의 짙푸른 바다가 발아래 조화를 더하니 윤선도는 ‘선계인가 불계인가 인간이 아니로다.’라고 표현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보길면 부용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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