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6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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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법사지
흥법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된 사찰이었으나 지금은 없어졌고 사지에는 흥법사지 삼층석탑과 진공대사탑비의 귀부와 이수가 남아 있을 뿐이며, 사찰터 주변 일대는 농경지로 변했다. 고려사 세가 태조 23년조에 ‘왕사충잠사수탑우원주영봉산흥법사친제비문’이라는 기록이 있다. 충잠은 진공대사의 속명으로 신라대 사람인데 당나라에 가서 수도하고 돌아와 고려 건국 후 태조의 왕사가 되었다. 태조 23년(940)에 입적하자 태조가 비문을 친찬 하였다고 하였으나, 고려 초기에 이미 이곳에 흥법사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흥법사지에는 국보 흥법사 염거화상탑, 진공대사탑 및 보물 부석관, 보물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 보물 흥법사지 삼층석탑이 있었으나, 이 중에서 국보 흥법사 염거화상탑, 진공대사탑 및 보물 부석관은 1931년 일본인들에 의해 강제로 일본에 반출되었다가 경복궁 경내로 옮겨졌으며,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이 개소되면서 경내에 보관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흥법사지 삼층석탑과 진공대사탑비 귀부 및 이수만이 옛 자리를 지키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지정면 안창리

타루각
1678년(선조 숙종 4년) 장수현감 조종면이 말을 타고 전주 감영을 가는 길에 천천면 장판리 장척의 비탈길을 지날 무렵 말이 꿩 소리에 놀라는 바람에 현감이 말과 함께 소[沼]에 떨어져 죽었다. 이에 수행하였던 통인[通引] 백씨[白氏]는 손가락을 깨물어 벼랑 위의 바위에다 피로 말과 꿩을 그린 다음, 타루[墮淚]라는 글자를 써 놓고, 현감을 따라 투신 순절하였다. 이러한 통인의 의리에 감동하여, 장수 현감 최수형이 1802년에 그 자리에 비석과 비각을 세워 타루비[墮淚碑]라 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천천면 장자울로 4
장수양악탑
장수군 계북면에 있는 석탑이다. 양악리에서 물을 따라 계곡으로 오르면 토옥동 입구에 계단식으로 된 논이 있는데, 원래 석탑은 논 가운데 있었다. 높이가 2m로 소규모이며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현재 토옥동 입구의 용연정 옆으로 옮겨졌다. 규모가 크지 않은 점으로 보아 불교가 들어오던 초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몇 차례 옮겨 재건하는 과정에서 탑재가 손실되고 파손도 심하지만 원형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탑의 구조는 방형의 지대석 위에 그보다 폭이 좁은 방형대석을 올려놓고 다시 그 위에 방형의 탑신과 옥개석을 놓아 3층으로 처리하였다. 현재 탑의 상륜부는 대부분 유실되어 남아 있지 않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계북면 양악길 156-12

죽림정사
백용성 조사의 호국·호법 정신을 기리고자 조성한 국가 현충 시설이다. 백용성 조사는 1919년 3월 1일 독립운동 선언 민족 대표 33인 중 한 분이며 불교계 대표로서 1864년 5월 8일 장수군 번암면 죽림리 252번지에서 출생하였다. 용성 조사는 선종 교당 대각사를 세우고 불교의 대중화를 꾀하였으며, 화과원을 조성, 선봉불교를 일으켰다. 또한, 독립운동 민족 대표로서 평생을 독립운동과 전통불교 전승에 앞장섰다. 백용성 조사 탄생 성지 죽림정사는 백용성 조사 생가지로서 생가, 대웅보전, 용성 교육관, 용성기념관, 요사채, 누각, 유물전시관 등이 있다. 죽림정사 내에는 대웅보전이 자리 잡고 있으며 가장 큰 건물인 용성교육관에는 7여래 탱화와 삼처전심, 69조사, 7대사 탱화를 비롯 내외포벽 104존자, 조사, 법사, 국사, 율사도 그리고 외벽에는 용성조사 일대기가 그려져 있다. 용성기념관은 용성조사의 저술도서 등 유품을 전시하고 있으며 죽림정사 가장 안쪽에 용성 조사의 생가가 복원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죽림2길 31 죽림정사

신광사(장수)
신광사는 830년(신라 흥덕왕 5년)에 충남 보령 성주사에서 구산선문의 하나인 성주산문을 세워 학도들을 지도하던 무염대사가 이 지방에는 그럴만한 절이 없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새로운 인재가 항상 자라 나라는 뜻의 신광사를 짓게 되었다. 신광사가 창건된 지 733년이 되는 정유재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51년이 지난 1549년(인조 27)에 전해선사에 의하여 중건되었다. 다시 헌종 15년(1849) 당시 장수현감 조능하의 시주에 의해 중창되었다. 신광사 대웅전은 지방유형문화재로 전면 3칸, 측면 2칸 목조 맞배집으로 지붕은 너새라는 돌로 이어져 있으며 싸리나무 기둥으로 만든 명주전, 성수당, 요사채, 산령각, 객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는 비구니 스님의 도량이다. 바로 앞에는 와룡호가 있고 인근에는 와룡자연휴양림이 자리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천천면 신광길 31

논개생가
임진왜란 때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뛰어들어 함께 죽은 논개를 기리기 위해 조성한 곳이다. 논개는 선조 7년에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훈장 주달문과 밀양박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천품이 영리하고 자태가 아름다웠으며, 임진왜란 당시 나라가 위태롭자 19세의 꽃다운 나이로 자진하여 기적에 이름을 올렸다. 나라와 부군 최경회의 원수 왜장 게야무라 로꾸스께를 껴안고 진주 남강에 투신 순절한 의암 주논개의 충절 정신을 기리고자 20,000여 평의 부지에 50억 원을 투자한 논개생가 복원사업이 2000년 9월 완료되어 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논개생가 주변에는 생가뿐 아니라 논개기념관과 단아정, 의랑루 등의 건물과 주논개비, 최경회비, 주논개부모묘 등이 있고 민속놀이마당과 인공폭포등이 조성되어 있다. 논개생가가 있는 지역은 덕유산, 오동제 등 주변경관이 수려하고 장안산 군립공원과 지지계곡, 동화댐을 연계한 등산 코스가 열려있어 논개생가와 연계한 관광코스로 손색이 없으며, 연중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들이 찾는 곳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계면 의암로 558

한우산
한우산은 자굴산으로부터 이어지는 맥으로 산세가 웅장하고 골이 깊어 곳곳에 기암괴석이 연출하는 절승이 즐비하며 가운데 계곡이 시원스럽게 흐르고 있다. 이 계곡은 여름에도 찬비가 내린다 하여 찰비계곡이라고도 부른다. 곳곳에 전설이 서려 있는 농소와 각시소 등이 운치를 더하는 가운데 봄이면 진달래가 흐드러지게 피고 여름에는 싱그러운 숲이 울창함을 더하고 가을이면 단풍이 절정을 이룬다. 겨울이면 계곡 따라 즐비한 바위 틈새에서 고드름이 주렁주렁 열려 겨울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또한 영화 아름다운 시절에서 한우산을 내려오는 장면을 촬영했던 곳이다. 우마차를 끌고 산자락을 굽이굽이 내려오는 인생의 역경을 상징화한 마지막 장면이 이곳 풍경을 빌린 것이다. 봄철에는 철쭉이 군락으로 피어나 산 전체가 벌겋게 물들어 가족 단위의 등산객들이 등반 코스로 즐기며 패러글라이딩 동호인들이 상공에서 연출하는 오색의 패러글라이더도 장관이다.
경상남도 의령군 대의면 신전리

은하사(김해)
김해시 삼방동의 신어산 중턱에 자리한 산지형 사찰로, 신어산의 옛 이름인 은하산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진다. 은하사는 가락국 시조 수로왕의 왕후 허황옥의 오빠인 장유화상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며, 원래는 서림사라 불렀다고 한다. 조선 중기 이전까지 있던 건물은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1629년(인조 7)에 대웅전을 중수한 이후 1649년(효종 1), 1801년(순조 1) 두 차례에 걸쳐 보수되었다.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은하사의 대웅전 수미단에는 허황옥과 관련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쌍어 문양이 있으며, 단층 맞배지붕의 다포계 양식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축물의 정면과 측면의 길이가 비슷하여 정사각형의 형태를 취하고 있어 다른 건축물과 다른 특이한 형태이다. 외부 쇠서받침의 윗몸에는 연꽃을 조각하였고 내외 살미로는 용과 봉황새의 머리를 새겨 화려하게 장식하였다. 건물 내부는 불상 위에 9개의 보개(寶蓋)를 설치하였으며, 삼세불, 나한상 등 32점의 벽화가 있는데 이 벽화는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은하사는 영화 〈달마야 놀자〉의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신어산길 167

김해 대성동 고분군
김해 대성동 고분군 유적지는 가야의 건국설화가 깃든 구지봉과 김해패총으로 유명한 회현리 패총의 한가운데에 위치하며, 동쪽으로는 김수로왕릉이 인접해 있다. 이곳은 밭을 갈다가 유구 일부가 노출됨으로써 발굴되기 시작했으며 경성대학교 박물관에서 1990년부터 발굴 조사를 진행한 결과, 4세기 말부터 5세기 초의 금관가야 왕급 무덤 2기를 비롯해 3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에 이르는 다수의 왕후묘 등 37기의 각종 분묘가 발견됐다. 입지 조건이 좋은 구릉의 능선부에는 왕 묘와 이에 상응하는 지배계층의 무덤이, 경사면에는 신분이 낮은 평민들의 무덤들이 형성되어 있다. 대성동 고분군은 총 200여기가 넘는 목곽묘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의길 126

김해 봉황동 유적
봉황동 유적은 가야시대의 대표적인 조개무덤으로, 1907년 우리나라 최초로 고고학적 조사가 이루어졌던 회현리 패총과 금관가야 최대의 생활 유적지인 봉황대를 합쳐 2001년 2월 김해 봉황동 유적으로 확대 지정되었다. 회현리 패총에서는 김해식 토기와 각종 철기, 골각기 등과 함께 중국의 화천이라는 동전이 출토되어 당시의 교역 상황을 나타내 주고 있으며, 우리나라 최초로 불에 탄 쌀이 출토되어 쌀농사의 기원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되었다. 봉황대는 조선시대 김해 부사를 지낸 정현석이 언덕의 모양이 봉황의 날개를 편 모습과 같다 하여 대를 쌓고 봉황대라 부른 것에서 유래되었다. 구릉 위에는 황세장군과 여의낭자 전설에 관련된 여의각, 황세바위 등이 남아있으며, 봉황대 서쪽에는 가야시대 토성과 대규모 창고형 건물터가 발견되었고, 가야시대 고상가옥, 주거지 등이 발굴되기도 하였다. 봉황동 유적지의 주요 시설물에는 금관가야 기마무사상, 고상가옥(창고), 가야의 배, 망루, 황세바위, 여의각, 가야주거군, 패총 전시관 등 유적지가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63번길 50

운제산
운제산( 478m)은 원효대사가 원효암과 자장암을 명명하고 수도 포교할 때 계곡을 사이에 두고 두 암자가 기암절벽에 있어서 내왕이 어려워 구름다리로 서로 오가고 했다 하여 붙인 이름이라고도 하며, 신라 제2대 남해왕비 운제부인의 성모단이 있어서 붙인 이름이라고도 한다. 과거에 자장, 원효, 혜공 등 고승들이 이산에서 수도하였다고 전해진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대송면 대각리

호미곶 해맞이광장
호미곶은 한반도의 최동단에 위치, 한반도 지형상 호랑이 꼬리에 해당하는 곳이다. 또한, 가장 먼저 해가 뜨는 곳으로 두 차례에 걸쳐 국가지정 해맞이 축전이 개최되었으며 해마다 한민족 해맞이 축전이 열리고 있다. 이곳에 조성된 해맞이 광장에는 영원의 불로 간직하고 있는 영원의 불씨함이 있으며 바다와 육지에 각각 오른손과 왼손의 형상을 하고 화합과 상생을 뜻하고 있는 대형 청동 조형물 상생의 손과 삼국유사에 전해 내려오는 이 지방 설화의 주인공 연오랑세오녀상이 있다. 상생의 손은 국가행사인 호미곶 해맞이 축전을 기리는 상징물이다. 육지에선 왼손, 바다에선 오른손인 상생의 손은 새천년을 맞아 모든 국민이 서로를 도우며 살자는 뜻에서 만든 조형물인 상생의 손은 두 손이 상생을 의미한다. 성화대의 화반은 해의 이미지이며, 두 개의 원형고리는 화합을 의미한다.
경북 포항시 남구 호미곶면 대보리

법광사(포항)
법광사는 포항시 비학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었던 사찰이다. 신라 진평왕 때 원효대사가 왕명을 받고 창건했다고 전하나 원효는 648년 진덕여왕 2년에 출가했으므로 신빙성이 없다. 원래는 규모가 525칸에 이르는 큰 사찰이었으나 1863년 화재로 인해 대부분의 건물이 모두 불타 없어지고 현재의 건물은 1952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법광사의 터에는 석축 위에 자리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원통전을 중심으로 산령각과 요사, 종무소를 배치되어 있다. 건물 뒤쪽에 있는 옛 절터는 현재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삼층석탑과 불상연화대좌, 쌍귀부 등의 유물이 남아있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신광면 상읍길 290

국화도
국화도는 경기도 화성시 우정읍에 위치한 아름다운 섬이다. 이 섬은 청정 자연과 맑은 바다가 어우러져 방문객들에게 평화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제공하는 명소이다. 국화도는 특히 가을철에 피어나는 아름다운 국화꽃으로 유명하며, 이 시기에는 국화꽃을 즐기기 위해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온다. 섬 내에는 아름다운 해변과 산책로가 마련되어 있어 자연을 만끽하며 산책을 할 수 있다. 또한, 국화도는 다양한 해양 생물들이 서식하는 곳으로, 바다낚시와 해양 스포츠를 즐기기에 좋은 장소로 알려져 있다. 섬 주변의 맑은 바다와 풍경은 특히 일몰 시간에 더욱 아름다워, 많은 사람들이 해넘이를 감상하기 위해 방문한다. 국화도는 자연과 함께 힐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일상에서 벗어나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기에 적합한 장소이다.
경기도 화성시 만세구 우정읍 국화길 8
법수치계곡
법수치계곡은 강릉과 양양 남북으로 길게 굽이쳐 동해로 흘러드는 곳이다. 황어, 은어, 연어가 올라오는 남대천 최상류, 어성전계곡을 따라가면 오대산 북쪽의 법수치계곡을 만난다. 계곡물이 마치 불가의 법수(인간 세상의 번뇌를 씻어주는 말)처럼 맑게 뿜어져 나와 남대천 본줄기의 시초가 되었다 하여 법수치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 문화재로 지정된 곳에 가야 볼 수 있는 화전민가옥인 굴피집도 이곳에서 그 흔적이 있을 정도로 사람의 발길이 드물었던 곳이다. 기암절벽과 투명한 계곡물을 따라 20여 리를 넘게 상류로 오르면, 어성천 법수치마을이 나온다. 법수치계곡에는 대승폭포가 있는데 이곳에서 김시습이 잠시 머물렀던 곳이라고 한다. 싸리꽃, 개망초, 데이지 등 법수치계곡에서는 아름다운 꽃들을 볼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현북면 법수치리
원산도
대천항에서 배로 40분 거리인 원산도는 충청도에 딸린 섬으로는 안면도 다음으로 큰 섬이다. 옛날에는 고란도라 불리다가 1914년 원산도라고 이름 지어졌다. 멧돼지 형상을 닮았다고도 하고 뫼 산(山) 자 모양 같기도 하다. 배를 타고 섬을 일주하면 모래밭의 흰색 띠가 섬 전체를 휘감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데, 그 하얀 띠의 길이는 70리를 넘는다. 원산도의 해수욕장으로는 섬 남쪽해안에 오봉산해수욕장, 원산도해수욕장, 저두해수욕장이 서쪽에서부터 동쪽으로 줄지어 늘어서 있다. 특히 원산도 해수욕장은 고운 모래질과 완만한 경사도, 그리고 깨끗한 수질과 적당한 수온으로 한번 찾은 이들이 두고두고 되찾는 곳이다.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원산도리

월성계곡
월성계곡은 남덕유산 동쪽 자락의 월성천을 따라 형성된 계곡이다. 계곡의 폭은 넓지 않지만 주변 산세가 워낙 웅장하여 수량이 풍부하다. 계곡 물놀이와 더불어 쉴 수 있는 바위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고, 계곡물은 바위 사이를 헤집으며 작은 폭포도 만들고 여울도 만들면서 갈계리의 위천계곡과 수승대계곡으로 흘러내려간다. 상류로 올라가면 장군바위쉼터 등이 나타나고 월성 1교에 이르기까지 계곡 물놀이를 즐기기에 좋은 장소들이 많다. 산수마을 입구에서 마학동계곡을 따라 올라가는 좁은 길로 우회전해서 올라가면 하늘과 맞닿아 있는 산수리 언덕의 절경을 감상하며 병곡리로 내려올 수 있는 산책코스도 좋은 관광지이다. 월성계곡은 남덕유산 등산 기점인 황점매표소에서 계곡이 끝나며, 매표소 앞을 지나 포장된 도로를 따라 올라가면 남령재 고개를 넘어 덕유산 종주 기점인 함양군 서상면 영각사로 이어지는데 산세가 아름다워 드라이브 코스로 좋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월성리
수하계곡(평창)
수하계곡은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에 있는 계곡이다. 해발 1,255m의 청옥산(육백마지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미탄면 소재지를 지나 동강과 합류하기 직전 약 8㎞ 가량의 기암괴석과 협곡으로 이루어진 수하계곡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이 동강 래프팅 출발점이 되는 곳이다. 이곳에서 동쪽으로 5㎞ 가량 강변을 따라 걸으면 한국의 대표적인 오지 마을인 문희마을이 있다. 동강이 래프팅의 성지가 되면서 유명세를 치르게 된 곳이기도 하다. 마을관리 휴양지로 운영되고 있는 수하계곡은 자연경관이 아름답고 여러 종류의 민물고기가 서식하는 일급 수로 낚시를 하기에도 좋다. 미탄면 한탄리부터 기화리, 마하리에 이르기까지 3개 리에 걸쳐 있으며, 근처에 백룡동굴이 있어 함께 방문해 볼 것을 추천한다. 가족과 함께 래프팅도 겸할 수 있고 넓은 자갈톱이 깔려 있어 캠핑을 하기에도 좋다.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미탄면 평안한치길 43-13

장전계곡
평창과 정선에 걸쳐 날개를 펴고 있는 가리왕산은 해발 1,561m의 고봉이다. 높은 만큼 덩치도 큰 가리왕산은 깊은 골짜기도 여럿 거느리고 있는데, 그중에서 북쪽 기슭으로 흐르는 장전계곡과 남쪽으로 굽이쳐 흐르는 회동계곡이 가장 대표적인 계곡이다. 진부에서 정선으로 내려가다 보면, 갈림길에서 막동리로 꺾어지면 바로 막동계곡으로 이어지고 장전리로 꺾어지면 바로 장전계곡을 찾을 수 있다. 진부면 장전리에 있는 장전계곡은 오대천의 지계곡으로 빼어난 자태를 곳곳에 펼쳐놓고 있다. 계곡미에 비해 알려지지 않은 편이어서 호젓한 피서를 겸할 수 있어 더없이 좋다.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장전길 435-2

막동계곡
나물산으로 알려진 백석산 허리에서 흘러내리는 막동계곡은 오대천으로 흘러드는 여러 계곡 중에서 단임골계곡, 장전계곡과 함께 경치가 뛰어난 계곡으로 꼽힌다. 계곡위 1.5㎞지점의 널찍한 부분에 민가가 몇 있을 뿐그외 다른 오염원이 없어 물빛이 맑고 계곡의 암반 풍치가 좋으며 기암괴석과 짙은 숲이 파노라마를 이루며 비경을 빚어 놓고 있다. 계곡 입구에는 3단 폭포가 있는데 5m 정도의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모습이 도로변에서도 보여 차량으로 스치는 것만으로도 한여름의 더위를 식혀주는 듯하다. 막동계곡 주변은 산채가 유명하다. 곤드레, 딱주기, 곰취, 나물취, 잔대, 고사리, 더덕, 도라지, 드릅, 산미나리, 원추리 등의 산채와 당귀, 세신, 철남생이, 반하, 인동, 칡 등 약초류가 풍부해서 봄철이면 지역의 부락민과 외지의 산행객이 찾아든다. 산채가 군락을 이루고 있어 이곳에서는 참나물밭, 참나물비탈, 참나물골 등과 같은 지역명으로 불리우고 그 위치에 따라 동편밭, 서편밭골 등으로 구분한다.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천로
용암산
용암산은 화순군 한천면과 춘양면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산 정상 지역이 험준하고 경사가 급한 암벽으로 구성되어 있다. 용암산은 금오산과 남북으로 붙어 있어 하나의 산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산등성이에는 고려 때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다는 금오산 성지가 있다. 정상을 비롯한 3개의 봉우리는 날카로운 바위 봉으로 되어 있어 등산하는데 약간의 위험도 따른다. 그러나 오히려 아기자기한 바위 봉은 긴장감도 만끽할 수 있어 등산의 묘미가 있는 산이다. 용암산은 원래 금오산이라 불렸는데 언제부터인가 산세가 솟은 바위가 용처럼 높이 솟아 있다고 하여 용암산으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계절에 따라 봄에는 용암산을 중심으로, 온통 진달래꽃이 온 산에 만개하여 녹색과 조화를 이룬 진분홍 꽃 천국이 환상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산 입구에는 용암사가 있고 영벽정, 한천 삼림욕장, 금전 저수지, 송석정, 죽수서원 등 주변에 둘러볼 만한 곳이 많다. 용암산이 위치한 화순군 한천면은 예부터 물이 좋기로 이름난 지역으로 어떤 곳을 파든 맑고 시원한 샘물이 솟는 곳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한천면 오음
유마사
유마사는 시원 계곡과 울창한 수림에 둘러싸여 있다. 유마사는 당나라에서 건너온 유마운과 그의 딸 보안이 창건했다. 유마사의 단풍과 해련부도 주변의 풍광은 특히 가을에 아름답다. 해련부도는 고려 초기 부도의 전형적인 모습을 담고 있다. 중석 받침의 복련은 각각의 모서리마다 귀꽃을 조각하여 장식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사평면 유마로 603

만연사(화순)
대한불교조계종 제21 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인 만연사는 고려 희종 4년(1208)에 만연선사에 의해 만연산(나한산) 아래에 창건되었다고 전한다. 만연선사가 무등산 원효사에서 수도를 마치고 조계산 송광사로 돌아가는 도중에 만연산 중턱에 이르러 피곤한 몸을 잠시 쉬어가고자 언뜻 잠이 들어 꿈꾸었는데, 십육나한(부처에게 위임받은 제자들)이 석가모니불을 모실 역사(토목이나 건축)를 하고 있는 꿈이었다. 잠에서 깨서 사방을 둘러보니 눈이 내려 주위가 온통 백색인데 신기하게도 선사가 누운 자리 주변만 녹아 김이 모락모락 올라가고 있었다. 그 길로 이곳에 토굴을 짓고 수도를 하다가 만연사를 세웠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나한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부속 암자로는 선정암과 성주암이 있다. 유물로는 고려 말기 작품으로 추정되는 향나무 원목의 삼존불과 오랜 연륜을 자랑하는 범종 등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화순읍 진각로 367

개천사
화순 개천사는 통일신라 헌덕왕 말기(809-825년) 도의선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통일 신라 말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있다. 하지만 모두 후대의 기록이라 확인하기 어렵다. 조선시대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소실되었다가 복구되었으며 일제강점기에는 용화사로 불렸다. 천불전이 있었는데 1950년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가 1963년에 주지 김태봉이 주민들의 협조로 대웅전과 요사를 중건하였다. 1987년에는 당시 주지였던 희안이 주변에 흩어져 있던 다섯 개의 부도를 모아 비자나무 숲 아래에 부도 밭을 조성하였다. 사찰의 전각으로는 대웅전, 천불전, 침수루, 요사채 등이 있으며 청련암, 백련암 등의 세 암자를 거느리고 있다. 대웅전에는 석가여래가 독존으로 모셔져 있다. 천불전에는 200여 분의 부처가 봉안되어 있으며 1,000불을 봉안하기 위한 불사가 진행되고 있다. 인근에 위치한 개천사 비자림은 천 그루의 비자나무가 군락을 이루고 있고 산 정상을 향해 오르고 있는 형상을 한 거북바위의 전설을 품고 있는 화순의 숨은 명소다. 비자림 관광 자원화와 장소 활용을 위해 왕복 3.8km 구간의 탐방로를 조성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춘양면 변천길 3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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