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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64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64페이지입니다.

광제정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광제정

임실군 삼계면에 있는 조선시대 누각이다. 광제정은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기록이 없으나, 양돈 선생이 생전에 지은 것으로 추정하며, 양돈의 호는 광제정이다. 양돈은 세조 7년(1461년)에 출생하여 중종 7년(1512년)에 70세로 세상을 떠났다. 성종 9년(1498년)에 사마시에 합격하였고 무오사화 때 아산방(현재의 봉현리)에서 은거했는데 문장과 덕행이 뛰어나 다른 사람의 모범이 되었다. 그 후 선생은 남효온의 천거로 조정에서 불렀으나, 벼슬 하기를 거부하고 여생을 조용하게 보내다 세상을 떠났다. 원래 정자는 삼계면 후천리 광제 마을에 있던 것을 고종 9년(1872)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광제정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정자 한가운데에 온돌방이 하나 있는 점이 특징이다. 3단 계단식 축대 위에 정자가 있으며, 한가운데에 계단식 통로가 있다. 정자로서는 드물게 단청이 되어 있다. 광제정은 후손들이 관리해 오고 있으며, 선생의 별세 후 주민들이 아계사[阿溪詞]를 짓고 해마다 봄, 가을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삼계면 세심길 82

운서정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운서정

운서정(雲棲亭)은 승지 김양근(金瀁根, 1858∼1926)의 아들 김승희(金昇熙, 1892∼1958)가 부친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하여 1928년 당시 쌀 3백 석을 들여 지은 누정이다. 남쪽으로 완만한 경사면을 따라 축대를 쌓아 단을 만들고 단 위에 건축물을 배치하였다. 솟을 대문에 누마루를 갖춘 가정문(嘉貞門)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계단을 오르면 좌우로 동재와 서재를 배치하였고, 다시 축대를 쌓은 위에 운서정이 세워져 있다. 운서정은 정면 4칸, 측면 3칸의 주심포양식으로 20개의 주춧돌기둥이 나무기둥을 받치고 있으며 팔작지붕의 네 귀퉁이에 추녀를 활주(活柱)가 받치고 있고 이 활주를 다시 화려한 활주석대(活柱石臺)가 받치고 있다. 정자의 전면에 두 마리 용을 운서정 현판의 좌우에 배치하여 바깥을 향하도록 하였으며, 대청의 대들보에도 용 두 마리가 몸통을 걸치고 마주 보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관촌면 관진로 61-20

와룡암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와룡암

와룡암은 조선 후기의 정자로 주천면 사무소 동쪽 천변의 와룡 바위 위에 있다. 긍구당 김중정이 서울에서 이주하여 진안군 주천면에 은거하던 1654년(효종 5)에 유생들을 위하여 건립하였다. 250여 년 동안 많은 문인 학사를 배출하였으며, 바로 옆에 있는 주천서원의 강당 같은 성격을 지니기도 한다. 그가 세운 원래의 와룡암은 원래 주자천 건너편에 있었는데 물 때문에 오고 가기가 불편하였으므로 1827년(순조 27)에 김상원이 지금 자리로 옮겨지었다고 한다. 건물은 도리 기둥에 난간을 갖추고 팔작지붕에 기와를 얹은 앞면 3칸, 옆면 3칸의 누각이다. 중앙에 전후퇴 형식의 방이 있고, 나머지는 마루이며, 방에는 4합문이 달려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주천면 금평1길 10-8

영모정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영모정

진안군 백운면 노촌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정자이다. 백운면 원노촌마을과 하미마을로 갈라지는 갈림길 옆에 신의연의 효자각이 있으며, 영모정은 효자각 앞 냇가에 세워져 있다. 영모정은 효자 신의연의 효행을 기리고 본받기 위해서 고종 6년(1869년)에 세워졌다. 정면 4칸의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으며, 너와를 사용한 것이 특이하다. 누각 아래 사면의 각 기둥은 거북이 머리 모양의 원형 초석을 사용하고 있으며 그 외에는 단순 가공한 원형 초석을 이용하였다. 정면에 있는 4개의 기둥은 자연 지형을 이용한 까닭에 다른 것보다 1m 정도 더 내려와 있다. 누정 남쪽 내부의 중앙에는 그 이름인 영모정과는 달리 영벽루라 쓰이 현판과 가선대부 이조참판을 지낸 윤성진이 지은 상량문이 걸려 있다. 영모정 아래로는 영모정 하천숲이 흐르고 정자에서 내려다보는 물이 맑고 아담하여 정겹다. 이곳에는 참새가 많은데, 참새도 효심을 아는지 영모정에는 똥을 싸는 일이 있어도 효자각에는 똥을 싸지 않는 것을 보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더욱 경탄하고 있다 한다. 영모정 주변으로 노촌호, 성수산, 쌍계정, 만취정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백운면 평노길 109

수선루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수선루

천변 암굴에 위치한 누정 수선루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진안군 월운마을 앞으로 흐르는 섬진강을 따라 올라간 곳에 있다. 바위틈에 절묘하게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 숙종 12년에 연안송씨 진유, 명유, 철유, 서유 네 형제가 선대의 덕을 추모하고 도의를 연마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정자 2층에서 내려다보면 섬진강 줄기가 눈에 들어오며, 아늑한 자연에 감싸인 수선루는 위층과 아래층이 엇비스듬하게 맞물린 모습이다. 이 누각은 보물로 지정되었는데 푸른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절벽을 흘러내리는 물이 비단 폭 같으며, 특히 봄에는 봄바람이 좋고 전망이 좋아 만물이 생동하는 것을 빠짐없이 볼 수 있다.

전북 진안군 마령면 강정리 산57

등억온천단지
테마파크울산광역시

등억온천단지

등억온천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등억리 영남의 알프스인 신불산 자락에 있는 대규모 온천단지이다. 정식 명칭은 등억온천원보호지구이며 신불산온천이라고도 불린다. 온천수 수질은 지하 600~800m에서 용출된 알칼리성 중조천으로 칼슘을 함유하고 있으며 각종 피부염과 신경통 소화기질환, 기관지염, 고혈압, 피부 미용에 효과가 있고, 특히 음용수로 마실 수 있는 광천수의 역할도 하고 있다. 주위에 있는 자수정 동굴나라, 작천정, 신라 사찰 석남사, 통도사 등의 관광지를 비롯하여 영축산, 가지산, 재약산과 연계되어 산행과 휴식의 즐거움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온천단지 앞 큰길은 실제로는 내리막길인데, 눈의 착시현상으로 오르막길로 보이는 도깨비 도로이다. START 표지판이 있는 지점에서 기어를 중립으로 두고 차를 세워두면, 차가 미끄러지듯 이 오르막길을 올라가는 현상이 생긴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알프스온천로 197

안동 유일재 종택
역사관광경상북도

안동 유일재 종택

안동 유일재 종택은 광산김씨 유일재공파의 종택이다. 선대는 풍천면 구담리에 있었으나 와룡면 이계로 옮겼으며, 유일재 김언기가 만년에 가야로 다시 옮겼다. 1700년대 말 그의 9대손인 김도상이 이 집을 구입하여 살았다 한다. 건립연대는 1600년대 말로 추정한다. 유일재는 퇴계의 문인으로 명종 22년(1567)에 생원시에 합격하고 여강서원 창건을 주도하는 등 교육활동에 힘써 안동의 문학 융성에 크게 기여하였다. 안동 유일재 종택은 마을 뒷산 중턱에 남향으로 자리 잡았다. ㅁ자형 정침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사당은 정침의 왼편 뒤 약간 높은 언덕 위에 있다. 정침은 중문을 중심으로 왼편과 오른편에 사랑채와 행랑채가 늘어서 ㅡ자형을 이루고, 이들 각각이 양익사로 안채와 연결되어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중문의 왼편 사랑채는 앞면에 툇마루를 설치한 사랑방과 왼편에 돌출한 마루방으로 되어 있다. 안채는 앞면이 개방된 6칸 대청을 중심으로 왼편과 오른편에 행랑채를 연결하였다. 민도리집으로 홑처마이며, 양익사보다 약간 높게 구성하였다.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선돌길 113-16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역사관광서울특별시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은 친교의 신앙으로 선교하는 제자공동체이다. 이 건물은 대한성공회 서울교구 주교좌성당으로서 조선 성공회 3대 주교인 마크트롤로프 주교가 영국인 아더 딕슨의 설계대로 착공하여 헌당식을 했다. 이후 1993년에 원 설계도를 영국의 한 도서관에서 찾게 되어 본래 모습대로 1996년에 완공하였다. 이 성당 건물은 로마네스크 양식에 한국 전통 건축 기법을 조화시킨 아름다운 건물이다. 외형은 십자가 형태로서 다양한 선이 조화를 이루고 있고 성당 내부에는 좌우로 12사도를 상징하는 돌기둥이 서 있고 전면 반원형 벽면에 예수 그리스도의 모자이크상이 새겨져 있으며 지하 성당에는 트롤로프 주교의 유해가 안치된 동판이 새겨져 있다. 수도권 지하철 1, 2호선 시청역 3번 출구에서 200m에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세종대로21길 15 (정동)

옛 용산신학교와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역사관광서울특별시

옛 용산신학교와 원효로 예수성심성당

용산신학교는 1892년, 원효로 예수성심성당은 1902년에 세워졌으며, 두 건물 모두 프랑스인 코스트 신부가 설계, 감독했다. 용산신학교는 반지하 1층, 지상 2층의 벽돌 건물로서 한국 최초의 신학교 건물이며, 중앙에 현관과 지하층 출입구를 두고 좌우에 1층 현관에 이르는 계단을 설치했다. 신학교는 오늘날의 혜화동으로 이전하였고, 현재 존재하는 건물은 성모병원분원으로 사용하다가, 성심수녀회에서 1956년에 인수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본래의 건물 일부에 증축이 이루어졌으나 대부분 본래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원효로 예수성심성당은 언덕을 이용하여 지었기 때문에, 남쪽 언덕 아래는 3층이고 반대편 북쪽은 2층이 된다. 주로 이용하는 출입구가 중앙이 아니라 한쪽으로 치우쳐있어 비대칭의 모습을 이루었다. 건물의 내부는 제단과 신자석만 있는 단순한 교회 형식이지만, 뾰족아치로 된 창문이나 지붕 위의 작은 뾰족탑은 전체적으로 약식화된 고딕풍의 모습을 이루고 있다. 특히 성당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중앙의 스테인드글라스(유리화)가 보이는데, 예수성심의 사랑이 만방에 퍼져나가는 매우 아름답고 장엄한 모습으로, 성당 미술 작품 순례에 있어서도 필수 코스로 꼽힌다. 또한 10여 년 전에 유리화 화가이신 마르코 수사님(프랑스)이 좌우 측면과 2층 후면에도 은은한 유리화 작품을 새기면서 성당 전체가 해의 이동에 따라 시간마다 색깔이 달라지는 신비로운 광경이 펼쳐진다. 무엇보다도 두 건물은 모두 가톨릭 교회의 성지로 등록되어 있다. 김대건신부님의 유해가 50여 년 동안 모셔져 있었고, 또 사제들의 양성을 위한 소신학교로 있었던 자리이기에 해마다 많은 순례객들이 이곳을 찾고 있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원효로19길 49 (원효로4가)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역사관광경기도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은 1919년 3·1운동 당시 일제의 잔혹한 탄압으로 희생된 순국선열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역사 유적이다. 개신교는 3·1운동에서 지도적인 역할을 했으며 제암리 교회는 만세운동을 주도한 지역 교회 가운데 하나였다. 1919년 4월 15일 일본 경찰은 교회에 신자들을 모아 문을 잠근 뒤 불을 지르고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학살을 자행했으며 이는 4월 5일 제암리 만세운동에 대한 보복이었다. 1905년 안종후의 주도로 세워진 제암리 교회는 주민들의 강한 결속력을 바탕으로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을 했던 곳이다. 사건 이후 희생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1959년에는 3·1운동 순국기념탑이 세워졌고 1970년에는 일본 기독교인과 사회단체의 속죄 성금으로 새 교회와 유족 회관이 건립되었다. 1982년에는 정부 주도로 유해 발굴이 이루어져 교회 옆 묘소에 안장되었으며, 이듬해에는 기념관과 새로운 기념탑이 조성되었다. 오늘날 화성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은 3·1운동의 역사와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기억하고 순국선열의 희생정신을 되새기는 역사교육의 현장으로 자리하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만세구 향남읍 제암길 50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묘
역사관광경기도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묘

순교자 황사영 알렉시오 묘는 일명 황사영 백서사건으로 유명한 조선 후기의 천주교 순교자 황사영의 묘이다. 가마골이라 불리는 흥복산 자락의 황씨 문종 선산에 묘가 있어 가마골 황사영의 묘라고도 한다. 황사영(1775~1801, 알렉시오)은 남인이었던 창원(昌原) 황씨(黃氏) 판윤공파(判尹公派) 가문에서 황석범(黃錫範)과 이윤혜(李允惠)의 유복자로 서울 아현에서 태어났다. 그는 정명련(일명 난주) 마리아와 혼인하였다. 이는 그가 천주교를 접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며, 같은 해에 처삼촌들과 처고모부 이승훈(李承薰) 베드로 등에게서 천주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다. 입교 이후 황사영은 임금이 약속했던 관직도 버리고 밤낮으로 교리를 연구하였으며, 정약종, 홍낙민(洪樂敏) 등과 함께 토론하면서 신앙을 키워나갔다. 1795년, 20세가 된 황사영은 최인길(崔仁吉)의 집에서 주문모 신부를 만나 신앙을 고백하고 알렉시오라는 세례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세례를 받은 이후 황사영은 있는 힘을 다하여 주문모 신부의 성직 수행과 다른 온갖 일들을 도왔다. 그는 자신의 삶을 온전히 진리의 증거를 위해 투신하며 교회를 위해 어떠한 위험도 무릅쓰고 사제와 신자들을 돌보았다. 주문모 신부와 정약종, 최창현, 홍낙민 등 교회 지도자들이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선 땅의 신앙의 빛을 이어가겠다는 마지막 일념으로 토굴에서 『백서』를 작성하였다. 1801년 12월 10일에 당시 26세에 대역부도(大逆不道)의 판결을 받고 서소문 밖에서 능지처사형으로 순교하였다. 황사영 묘는 제주도, 추자도에 있는 그의 처, 아들의 묘와 함께 천주교 성지로 많은 순례자가 찾는다. 황사영 묘 앞에 있는 외벽이 특이하게 돌로 건축된 3층 식당 건물을 사들여 찾기 쉽도록 크게 황사영 순교자의 묘라고 현수막을 달아 놓았다. 그 건물 오른쪽 뒤편에 바로 황사영의 묘가 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창절사
역사관광강원특별자치도

창절사

창절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김삿갓면에 위치한 서원으로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순절하거나 처형된 충신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본래 단종의 능인 장릉 인근에 육신사가 있었으나 1685년(숙종 11년) 강원도 관찰사 홍만종과 영월군수 조이한이 3칸 규모의 사우를 세우며 창건되었다. 1698년(숙종 24년) 단종이 복위되자 왕릉 근처에 신하들의 사당을 둘 수 없다는 규정에 따라 1705년 영월읍 영흥리로 이전되었다. 이후 1709년 영월 유생들의 청원으로 사당 이름을 창절사로 바꾸고, 박팽년, 성삼문, 하위지, 이개, 유성원, 유응부 등 사육신을 비롯한 충신들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또한 권완, 권절, 김시습, 남효온, 박심문, 엄흥도 등 생육신과 충신 10인의 위패도 함께 모셔져 있다. 매년 10월 9일에는 이들을 기리는 의식 행사가 열린다. 창절사는 강원도 내 현존하는 서원 및 사당 중 가장 규모가 크고 건립 당시의 구조와 형태를 잘 보존하고 있다. 조선 후기 충절의 상징이자 단종과 신하들의 충의를 기억하는 역사 교육의 장소로 의미가 크다. 정갈한 배치와 고건축 양식이 어우러져 유서 깊은 분위기를 자아낸다. 인근에는 장릉, 김유정 문학관 등 주요 관광지가 있어 함께 둘러보기에 적합하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60

삼화사
사찰강원특별자치도

삼화사

두타산과 청옥산에 둘러싸인 삼화사는 조계종 월정사의 말사이다. 642년 지장율사가 ‘흑련대’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여 864년 범일 국사가 ‘상공암’이라고 개명하였는데, 고려태조 왕건이 이 사찰에서 후삼국의 통일을 간절히 발원하여 20년 만에 대업을 달성한 역사를 갖고 있다. 그 후 삼국에 얽힌 갈등과 증오의 감정을 소통과 화합의 장으로 이끌어내고자 상공암을 ‘삼화사’라고 이름을 바꾸게 되었다. 삼화사에서는 삼화사 템플스테이 산사체험을 즐길 수 있다. 계곡과 산, 바다를 한꺼번에 체험할 수 있는 천혜의 풍광이 삼화사 템플스테이의 자랑이다. 사찰에서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대중공양 시간과 취침시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시간을 자율적으로 개인의 의지에 따라 편안하게 참여할 수 있다. 스님과 차 한잔을 놓고 담화를 나누거나 두타산 계곡의 물소리로 귀를 적시고 산사의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로 하루를 느끼며 자연과 교감하면서 자신의 내면을 보려는 수행 속에 얽매임 없는 여유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삼화로 584

자인사(포천)
역사관광경기도

자인사(포천)

자인사는 김상수(법명 해공)가 서울특별시 종로구 명륜동에 창건하였다가 1964년 현 위치인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리 71번지에 약 5.4m(18척)의 석고 미륵불을 조성하면서 이전한 절이다. 산정 호수 뒷산인 명성산에 자리한 자인사는 명당의 상징이자 궁예와 왕건의 전설이 깃든 잿터 바위를 경내에 두고 있다. 자인사라는 이름은 궁예의 미륵 세계를 상징하는 ‘자’와 영계에서나마 궁예와 왕건의 화해를 기원하는 ‘인’을 합친 것이라고 한다. 승려인 정영도가 1993년 극락보전을, 1998년 미륵 좌불을 조성하여 현재에 이른다. 명성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일주문을 지나면 현대식 건물의 큰 요사채가 보이고, 극락보전 뒤로 책을 펼쳐놓은 것처럼 보이는 책바위가 장관을 이룬다. 전각으로는 약사전, 관음전, 삼성각, 종각 그리고 극락보전이 있다. 입구쪽에는 잿터바위가 놓여있는데 이는 서기 905년 완건이 태봉국 궁예왕의 수하로 있을 때 궁예왕의 명으로 후백제의 금성(나주)를 공격하러 가기 전에 이 바위에서 산제를 지낸 후 현몽을 받아 승전하였다고 전해진다. 후삼국을 통일한 후에도 태조 왕건은 국가의 태평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할 때 이 바위를 찾았으며, 지금도 재를 올린터, 잿터바위라 하여 이곳에서 기도를 하면 소원을 이루게 된다고 한다. 또한 경내에서 솟아나는 샘물은 맛좋기로 소문나 있다.

경기도 포천시 영북면 산정호수로 808

삼막사
역사관광경기도

삼막사

삼막사는 신라 문무왕 때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세 분이 암자를 짓고 수도한 것에서 기원하여 창건된 사찰이다. 기록에 의하면 원효대사가 창건하고 신라 말에 도선국사가 중건하여 관음사라 칭하였다가 고려 태조가 중수하여 다시 삼막사라 고쳐 불렀다고 한다. 삼막사는 유서 깊은 사찰로 고려시대에 조성된 삼막사 삼층석탑, 조선시대에 조성된 삼막사 마애삼존불, 삼막사 사적비 등 가장 많은 국가유산이 소재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건 자연이 만든 두 개의 암석인 ‘남녀근석’이다. 풍화된 두 개의 암석이 남녀의 성기 모양을 닮아 이름 지어진 이 바위를 만지면 출산과 번영, 무병과 장수에 효과가 있다고 전해지는데, 구전의 힘은 의외로 커서 꼭 찾아 만지고 싶어진다. 삼막사 주변은 등산은 물론 자전거로 돌기에도 좋은 코스가 꽤 많다. 삼막사 계곡은 여름철 물놀이 명소로 널리 알려져 있다. (출처 : 안양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경기도 안양시 만안구 삼막로 478 (석수동)

연주암
역사관광경기도

연주암

관악산을 즐겨 찾는 이들에게는 이미 잘 알려져 있는 사찰인 연주암은 해발 629m의 기암절벽 정상에 위치한 연주대와 함께 관악산의 명소로 손꼽힌다. 정상에 이웃한 연주대는 관악산의 대명사처럼 되어 있는 절경으로 이곳에 오르면,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연주암은 677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당시 관악사로 불리던 오늘날의 연주암은 1411년 태종의 첫째, 둘째 왕자인 양녕대군과 효령대군이 현재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한다. 아슬아슬한 벼랑 위에 자리 잡고 있는 연주암은 관악산의 모든 등산로가 집결하는 곳이다. 남쪽 능선을 계속 따라가면 장군바위에 다다르게 되고, 북쪽 능선을 따라가면 마당바위를 만나게 된다. 또 왼편으로는 무너미 고개를 지나 삼성산에 닿게 되며, 오른쪽으로는 자하동천이 펼쳐져 있다. 연주암에서 자하동천 계곡을 따라 과천시로 내려가기까지 1시간 정도 걸린다.

경기도 과천시 자하동길 63 (중앙동)

보덕사(영월)
역사관광강원특별자치도

보덕사(영월)

보덕사는 신라 문무왕 8년(668) 의상조사가 ‘지덕사’라는 이름으로 세운 절이다. 1161년(의종 15)에 운허가 중창하였고, 그 뒤 원경국사가 극락보전, 염불당, 고법당, 침운루 등을 중건하였다. 1457년(세조 3)에 단종이 노산군으로 강봉, 유배되자 사찰 명을 ‘노릉사(魯陵寺)’로 개칭했다. 1705년(숙종 31)에는 한의와 천밀이 대금당을 건립하였다. 그 뒤 단종의 능인 장릉(사적)의 원찰로 지정되면서 영조 2년(1726)에 보덕사로 이름이 바뀌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퇴락한 대현전, 목우실, 산신각 · 심검당, 칠성각, 사성각, 객방 등이 있다. 이중 극락보전은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지금 있는 극락보전은 조선 후기의 양식을 갖추고 있는 건축물이다. 이 극락보전 안에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영월 보덕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본존 아미타불상의 좌우에 관음, 대세지보살상을 협시로 삼존상을 이루고 있는데, 복장에서 발견된 조성원문을 통해서 조선 숙종 13년인 강희 26년(1687)에 탁밀비구가 수화승을 맡아 조성한 불상임이 밝혀졌다. 보덕사의 해우소는 여느 화장실과 다르다. 해우소는 ‘근심을 해결하는 장소’라는 뜻의 사찰에서 화장실을 이르는 말이다. 전통적 형식을 지닌 보덕사 해우소는 앞뒤 2열로 나누어 각각 6칸씩의 대변소를 배치하여 남녀의 사용을 구분하면서 12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지혜를 엿볼 수 있는 건물이다. 상량문을 통해 조선 고종 19년(1882)에 세운 건물임을 알 수 있는 이 해우소는 세워진 지 오래되었음에도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보덕사길 34

죽산성지(이진터성지)
역사관광경기도

죽산성지(이진터성지)

1866년 병인박해 당시 수많은 교우들이 처형되고 심문과 고문을 하던 곳이다. 충청·전라·경상도로 갈라지는 주요 길목인 죽산은 지리적 조건 때문에 조선 시대에 도호부가 설치되었던 곳이다. 현재 죽산면사무소 자리에서 천주교인들이 참담한 고문 끝에 처형되었다. 여기에서 치명한 순교자들은 「치명일기」와 「증언록」에 그 이름이 밝혀진 이만해도 25명에 이른다. 하지만 척화비를 세우고 오가작통(五家作統)으로 사학 죄인을 색출, 무차별하게 천주교인들을 끌어다가 처형하던 당시 상황으로 보아 순교자들이 더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이곳의 원래 이름은 이진(夷陳) 터다. 고려 때 몽고군이 쳐들어와 죽주산성(竹州山城)을 공략하기 위해 진을 쳤던 자리이다. 그래서 오랑캐가 진을 친 곳이라 하여 이런 이름으로 불려 왔던 것이다. 하지만 병인박해를 지나면서 이진터는 “거기로 끌려가면 죽은 사람이니 잊으라” 하여 ‘잊은 터’로 불리게 됐다는 것이다. 죽산에는 또 두들기라는 곳이 있다. 죽산 읍내에서 15리쯤 지금은 삼죽면 소재지로 80여 호가 사는 큰 마을이지만 옛날에는 인가가 드문 작은 주막거리였다고 한다. 이 주막거리는 용인, 안성, 원삼 등지에 사는 교우들이 포졸에게 잡혀 가는 호송길에 잠시 쉬어 가는 곳이 되곤 했다.

경기도 안성시 일죽면 종배길 115

망월사(경기)
역사관광경기도

망월사(경기)

망월사는 자운봉, 만장봉, 선인봉, 주봉 등의 암봉이 수려하고 빼어난 도봉산에 자리 잡고 있다. 망월사로 오르는 길은 매표소에서 대원사, 원효사, 광법사를 차례로 돌아서 가는 코스가 있고 원도봉계곡을 따라가는 코스가 있는데 망월사에서는 두 갈래 등산로 중 어느 쪽으로 오르든 포대능선에 이르게 된다. 망월사는 신라 제27대 선덕여왕 8년(639년)에 해호스님이 여왕의 명에 의해 왕실의 융성을 기리고자 창건하였다. 당시 서라벌 월성(月城)을 향해 기원하는 뜻에서 망월사라 이름하였다. 이곳에는 예로부터 운수 납자의 대선사들이 많이 거쳐갔는데 고려시대의 혜거, 영소대사와 조선시대의 천봉, 영월, 도암 등 많은 명승들이 지냈고 근대의 도인이라 불리우는 만공, 한암, 성월 등 선지식들이 지내던 곳이다. 망월사 큰 법당에서 남서쪽으로 언덕을 들어가면 혜거국사부도(경기도 유형문화유산)가 있다. 지금도 많은 수도승들이 참선하고 있다. 망월사 큰 법당에서 남서쪽으로 언덕을 넘어가면 혜거국사 부도가 있다. 부도란 이름난 스님의 사리나 유골을 안치해 두는 돌탑을 말하는데, 대개 절 근처에 세운다. 혜거국사의 사리를 봉안한 이 부도는 팔각원당형이다. 전체의 높이는 3.4m이고 탑의 몸통 둘레는 3.1m이다. 탑모양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기단 부위에 구형 탑신을 안치하고 옥개석과 상륜부로 구성돼 있다. 기단부는 지대석과 대석으로 구성돼 있는데 지대석은 팔각형 삼단의 일석으로 조성되고 높이가 80㎝이다. 그리고 그 위에 괴임대를 놓았다. 탑 몸통은 공 모양으로 조성되고, 괴임대 윗쪽과 옥개석 아래쪽에 홈을 파서 탑 전체의 안정감을 꾀했다. 옥개석은 복발과 보주까지 한 개의 돌로 만들었는데, 낙수면은 목조건물의 지붕모양을 나타내고 있으며, 귀꽃은 모두 8개이다. 상륜부는 옥개석과 일석이며 복발면에 연꽃무늬를 새긴 것이 특징이다. 부도의 주인공인 혜거국사는 속성이 노씨이며, 자가 홍소로서 고려시대 국사를 지냈다. 그러나 행장은 세상에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경기도 의정부시 망월로28번길 211-500

장경사(경기)
역사관광경기도

장경사(경기)

장경사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남한산성 내에 자리하고 있는 사찰이다. 남한산성이 만들어지던 때 같이 세워졌다. 임진왜란 때 크게 활약한 승군[僧軍 ; 전쟁과 같은 나라의 위기 때 만들어지는 승려로 구성된 군대]은 전쟁 후에도 국가의 필요에 따라 여러 일을 맡았다. 남한산성 역시 당시 북쪽에서 새롭게 힘을 키우던 후금[後金]을 대비하여 벽암 각성스님을 책임자로 하여 승군을 동원해 서울의 남쪽에 새로 쌓은 대규모 산성이다. 이때 전국에서 올라온 승군이 머무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이전부터 있던 망월사와 옥정사 외에 산성 안에 7개의 사찰을 함께 세우게 되는데, 장경사도 이 중 하나이다. 승군은 공사가 끝난 후에도 산성을 관리하고 지키는 역할을 맡게 되어 9개 사찰에 머물면서 승려이자 군인으로 생활하였다. 1907년 일제에 의해 대한제국의 군대가 해산될 때 남한산성의 군사시설과 함께 승군의 주둔지인 사찰도 대부분 파괴되었지만, 장경사는 이를 피한 유일한 사찰이었다. 1975년 화재로 큰 피해를 입었지만 복구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다. 장경사는 남한산성 동문인 좌익문에서 북쪽방향 망월봉 중간쯤 되는 곳에 위치하여, 산성의 제1암문을 통해서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었다. 이 사찰에는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을 중심으로 승려가 머무르며 생활하는 공간인 요사와 문루인 진남루, 작은 불전인 칠성각이 남아 있다. 승군이 주둔하였던 곳이기에 예불을 드리는 불전보다 요사의 규모가 큰 것이 특징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남한산성로 676

무주 구천동 33경
자연관광전북특별자치도

무주 구천동 33경

무주 구천동 33경은 무주군을 대표하는 경승지로 나제통문에서 백련사까지 이어지는 구간에 있는 경승지 33곳을 지정한 곳이다. 구천동 33경의 명소들이 계곡을 따라 여름철의 무성한 수풀과 맑은 물은 삼복더위를 잊게 해 주며, 온 산을 붉게 물들이는 가을철의 단풍과 겨울철 설경 등 사시사철 아름다운 경치를 볼 수 있다. 무주 구천동 33경으로는 제1경 라제통문(羅濟通門), 제2경 은구암(隱龜岩), 제3경 청금대(聽琴臺), 제4경 와룡담(臥龍潭), 제5경 학소대(鶴巢臺), 제6경 일사대(一士臺), 제7경 함벽소(涵碧沼), 제8경 가의암(可意岩), 제9경 추월담(秋月潭), 제10경 만조탄(晩釣灘), 제11경 파회(巴洄), 제12경 수심대(水心臺), 제13경 세심대(洗心臺), 제14경 수경대(水鏡臺), 제15경 월하탄(月下灘), 제16경 인월담(印月潭), 제17경 사자담(獅子潭), 제18경 청류동(淸流洞), 제19경 비파담(琵琶潭), 제20경 다연대(茶煙臺), 제21경 구월담(九月潭), 제22경 금포탄(琴浦灘), 제23경 호탄암(虎嘆岩), 제24경 청류계(淸流溪), 제25경 안심대(安心臺), 제26경 신양담(新陽潭), 제27경 명경담(明鏡潭), 제28경 구천폭포(九千瀑布), 제29경 백련담(白蓮潭), 제30경 연화폭(蓮花瀑), 제31경 이속대(離俗臺), 제32경 백련사(白蓮寺), 제33경 향적봉(香積峰)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백련사길 580

문의문화유산단지
역사관광충청북도

문의문화유산단지

문의문화유산단지는 인류문명의 발달과 급속한 산업화에 따라 사라져 가고 있는 우리의 고유 전통문화를 재현하여, 조상들의 삶과 얼을 되살리고 배우기 위해 설립되었다. 4만여 평의 규모의 부지 위에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인 문산관이 이전 복원되었으며 낭성면 광정리와 문의면 노현리, 부강면 부강리에서 민가가 이전되었으며 서길덕 효자각, 김선복 충신각 및 문의지역에 있던 옛 비석도 이전되어 있다. 문의문화유산단지에 있는 2004년 준공된 대청호미술관에서는 대청호반 위에 있어 좋은 경치와 함께 그림이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대청호반로 721

화순 복조리마을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 복조리마을

복조리마을은 화순군 북면 송단리에 있다. 현재는 20여 호로 농사를 주업으로 하면서 복조리는 농한기를 이용한 마을 특산물로 제작한다. 1960~ 90년대 까지는 마을에 인접한 백아산과 인근의 산에서 채취하기 쉬운 조릿대를 수요가 많을 때는 추석 지낸 후부터 1980년대에는 초겨울부터 베어와 가가호호 복조리 만들기에 바빴다. 숙련된 사람은 2 지리 (1 지리=50개)까지 생산할 수 있었으나 한 사람이 보통 하루에 1 지리씩은 만들었다. 가정 단위로 만들어진 복조리의 위탁 판매는 주로 담양의 죽물상들이 대행하였다. 그러나 1990년대 후반에 들면서 식생활의 변화와 플라스틱 제품의 공급으로 인하여 조릿대로 만든 복조리 수요가 현저하게 줄면서 판로까지 막혀 생산이 중단되었다. 현재도 마을 내 15호 정도가 복조리를 직접 만들었던 경험이 있는 분들로서, 연령 분포는 60대에서 80대에 이른다. 이제는 삶의 수단으로써의 복조리보다는 민속상의 의미만 남아 명맥을 유지하고 있지만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자원을 적극 발굴한다는 차원에서 향토사적 의미는 크다. (출처 : 화순군청 문화관광)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백아면 복조리길 27

봉화닭실마을
역사관광경상북도

봉화닭실마을

닭실마을은 풍수설에 의하면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으로 금계포란형이라 하여 닭실마을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곳은 충재가 은거했던 곳으로 후손들이 500년간 집성촌을 이루고 있고, 그와 관련된 청암정, 삼계서원, 충재일기, 근사록, 전적, 고문서 등 보물이 충재유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주변의 산세와 울창한 소나무 숲, 넓은 바위와 깨끗한 물이 가족피서로 최적지이며, 조선 중기 실학자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우리나라의 손꼽히는 경승지로 칭송한 곳이다. 석천계곡에는 충재 권벌의 장자인 청암 권동보가 부친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지은 석천정사가 있고, 석천계곡에서 닭실마을로 올라가면 충재 권벌선생의 유적이 있어 이 일대가 사적 및 명승 제3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봉화군청)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충재길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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