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국 관광지 63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63페이지입니다.

임대정원림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임대정원림

임대정원림은 조선 후기 철종 때에 병조참판을 지낸 사애 민주현이 관직을 그만두고 귀향하여 건립한 임대정과 임대정을 둘러싼 원림을 말한다. 임대정이란 이름은 봉정산에서 흘러내리는 물이 사평천과 합쳐지는 곳에 정자가 위치하였다 하여 [물가에서 산을 대한다]는 중국 송나라 주돈이의 시구를 딴 것이다. 임대정원림은 1500년대 말에 남언기가 조성한 고반원 옛터에 민주현이 3칸 팔작지붕의 정자를 건립한 것이다. 전통적인 한국 정원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는 임대정원림은 대상부와 대하부로 나누어져 있다. 대상부에는 정자를 중심으로 중도가 있는 방지와 소나무, 대나무, 매화나무, 살구나무, 배롱나무, 은행나무 등이 심어진 숲으로 구성되어 있다. 또 절벽 아래의 계단을 내려가면 위와 아래에 2개의 연못이 있다. 위쪽의 연못은 정자로 가는 길옆에 길게 늘어진 형태로 있고 가운데 2개의 섬이 있다. 아래쪽 연못은 중도가 하나인데 위쪽의 연못에 비해 좀 큰 편이며, 주위에 배롱나무가 있다. 두 연못 사이는 수구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 지난 날 이 정자에는 많은 문인이 찾아와 시를 읊었고, 충효 예절을 가르치는 서당으로 활용되었다고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사평면 상사1길 48

영벽정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벽정

영벽정이란 계절따라 변모되는 연주산의 경치를 맑은 지석강물에 투영되어 운치있게 바라볼 수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연주산 아래 지석강의 상류 영벽강변에 있다. 주변 경관이 아름다운 경승지에 있기 때문에 행락객들이 널리 이용하고 있다. 2층 팔작지붕에 기와를 얹은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누각형이다. 건립 연대는 확실치 않으나 양팽손 등이 쓴 제영으로 보아 조선 명종때나 선조때(16세기 후반)인 것 같다. 건립자는 능 주목(군), 즉 관청이 건립의 주체였었다고 생각된다. 인조의 모후인 인헌왕후의 고향이라 하여 목사골이 되고 목사 정윤이 아전들의 휴식처로 정자를 개수하였다고 한다. 후일 고종 9년(1872)에 화재로 인해 소실됨에 따라 다음 해인 1873년 계유에 능주목사인 한치조가 중건하였고, 1920년 군민의 출연으로 중수하였다.정자 안에는 9개의 현판이 있다. 기단위에 주춧돌을 넣고 원형기둥으로 세웠다. 이 기둥 위에 마루를 깔아 중층 누각형 정자를 만들었다. 마루의 사방에는 계자 난간을 돌려 장식하였고 처마밑에는 활주를 세웠다. 누 위의 기둥머리에는 익공형식의 공포를 하였고 천정은 연등천정이나 중앙부는 우물천장을 설치하였다. 지붕을 3겹으로 한 것은 아주 보기드문 예로 주목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능주면 학포로 1922-53

고흥 존심당 및 아문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 존심당 및 아문

고흥 존심당 및 아문은 옥하리에 있는 옛 지방 관아 건축인 존심당과 그 정문인 아문이다. 팔작지붕 건물로 1974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존심당은 나주에 있는 금성관과 함께 조선시대 지방 관아의 건축양식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존심당과 아문의 건립 시기는 영조 41년(1765)으로 추정된다. 일제 강점기부터 1985년 까지 군청사로 사용하다가 새로운 청사가 완공되 후 오늘날까지 보존하게 되면서 다소 원형을 잃었던 모습이 1987년 6월에 완전 해체 복원 과정을 거쳐 원형을 되찾았다. 고흥군청은 2023년 고흥 존심당 역사 문화 공원을 준공하면서 구 군청사 건물을 철거하고 그 부지에 역사문화공원을 조성하여 존심당과 아문의 역사적 가치를 재정립하고 주민들의 휴식 공간을 마련하였다. 정문인 아문은 가운데 칸의 지붕이 양쪽 칸의 지붕보다 높으며 널판장문을 달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흥양길 40

여민루
역사관광충청남도

여민루

조선 시대의 아산군 관아 입구에 세워졌던 문루인데, 동향한 낮은 기단 위에 4 각형의 주형 초석을 배열하고 그 위에 둥근기둥을 세워서 루마루를 설치하였다. 하층은 정면 3칸에 각각 문을 달아 통로로 사용하였으며, 좌우 협간의 문미(門楣) 상부에는 홍살을 설치하였고 측면의 2칸은 판벽으로 막았다. 공포는 2익 공인데 외출목은 없으며 처마 밑의 기둥 사이에는 간략화된 화반형의 초화반을 중앙문에 3개, 그 이외의 문에는 모두 2 개식을 배치하였다. 지붕 가구는 앞뒤 기둥 위에 대들보를 걸었는데 대들보 위에 소로를 두고 그 위에 뜬 창방을, 다시 이 뜬 창방 위에 주두를 놓아 종량을 받치도록 하였다. 종량 위에 있는 대공은 파연대공(波蓮臺工)의 형태를 이루고 있는데, 이대공과 결구된 뜬 창방은 그 위에 있는 마루 도리와의 사이에 간단하게 장식된 초각반 3개를 배치하여 중간 부분을 보강하고 있다. 천장은 연등천장이며 모도 단청으로 채색되어 있고 이 칸 정면이 ‘여민루’란 현판이 걸려 있다.

충청남도 아산시 영인면 여민루길 20

천안 노은정
역사관광충청남도

천안 노은정

노은정은 노은 김상기가 학문 연마와 후배양성을 위해 숙종 15년(1689)에 지은 정자이다. 건물 이름은 선생의 호에서 유래하였으며, 철종 4년(1853)에 처음 고친 후 여러 차례 보수하였다. 건물은 화강암 위에 앞면·옆면 2칸 규모로 세웠고 마루는 우물마루를 깔았다. 정자의 각 기둥에는 수침을 막는 돌기 등을 사용해 안전을 도모했다. 노은정은 천안시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이며, 300년 전 우리나라의 전통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건물로서 주위경관 또한 아름다워 ‘도원 8경’의 하나로 전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병천면 도원리

화성 당성
역사관광경기도

화성 당성

산의 정상을 중심으로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인 1차성과 계곡을 둘러 쌓은 포곡식 산성인 2차성으로 이루어져 있다. 현재는 동문지, 서문지, 북문지와 우물지, 팔각건물지를 비롯한 방형과 장방형의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당성이 소재하는 남양지역은 지금은 화성시이지만 신라 경덕왕 때는 당은군으로서, 중국과의 교통로로서 중요한 구실을 하였으며, 흥덕왕 때인 829년 당성진이 설치하면서 청해진과 함께 신라 해군의 근거지로 중요시되었던 곳이다. 이곳은 당항성과 관련되는 가장 중요한 유적의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당(唐)’이 새겨진 기와편인데 이는 당성군(唐城郡)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장대추정지에서 출토된 토제마(土製馬)는 화성 당성에서 제의가 있었음을 증명하며 중국 형요한 백자완의 출토는 화성 당성이 대외 교역 창구로서의 역할을 하였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상안리

영남루(천안)
역사관광충청남도

영남루(천안)

이 누각은 조선 선조 35년(1602)에 창건한 화축관의 문루(문간재)로 추정된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집에 12주의 돌기둥으로 가구 되었는데, 당시 임금이 온천에 거동할 때 행궁으로 사용했던 건물이다. 본래는 중앙초등학교 정문에 자리 잡고 있던 것을 1959년 이곳으로 이전하였는데, 그 내부에는 우암 송시열이 지은 기문이 남아 있다. 천안삼거리를 관광지로 조성하기 위해 호숫가에 화축관의 문루이던 영남루를 옮기어 수중에 세웠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충절로 410

파주 오두산성
역사관광경기도

파주 오두산성

파주 오두산성은 파주시 탄현면에 있는 오두산의 정상을 둘러싼 길이 620m의 백제성이다. 이곳은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는 지점으로, 정상부에서 남서쪽으로는 김포 일대, 서북쪽으로는 북한의 개풍군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전략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사면이 가파르고 서쪽은 임진강, 남쪽은 한강과 면하고 동쪽은 농경지로 북쪽은 산록으로 연결되고 있다. 산 정상에는 성벽용 석재가 흩어져 있으며 삼국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계속 수축된 것으로 보인다. 1990~1991년 사이의 발굴조사에서 토기, 백자, 기와, 철촉 등이 다수 발견되었다.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리적 요건을 갖추고 있으며, 통일 전망대가 들어서면서 원형을 찾기가 어렵지만 이 유적 일원에 대한 현지 조사 결과, 임진강과 한강의 합류 지점인 서안 쪽에 당시의 성벽이 정연하게 남아 있음이 확인되었다. 축조 방법은 기초석 위에 지대석(5~15cm)을 들여쌓기 하여 내측은 전부 돌로만 채운 뒤채움석 형식이다. 큰 암반을 채석으로 이용하고 그 단면을 성벽으로 이용한 성곽 형태를 갖추고 있어 백제시대 성곽 연구에 중요한 유적이다. 파주오두산성 일부 지역은 군사지역으로 출입이 통제된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필승로 369

양주 대모산성
역사관광경기도

양주 대모산성

양주별산대놀이마당 부근에 있는 대모산성은 양주시 유양동과 백석읍 방성리에 연접하여 있는 대모산(해발 212m) 정상의 산꼭대기를 원형으로 돌아가며 쌓은 테뫼식 석축산성이다. 이 산성은 675년(신라 문무왕 15)에 당나라 대군을 쳐부수고 대승을 거둬 삼국통일을 완수하는 계기가 된 매초성으로 추정되며, 임진강과 한강 유역을 연결하는 길목에 자리한 교통의 요지로 여러 지역을 방어하는 전략적 요충지이자 행정치소로서의 역할을 했던 유적이다. 타원형을 이룬 성벽의 둘레는 약 1.4㎞, 높이는 4~5m 안팎으로 북문지 좌우측과 동편 등 3개소에 약 70~80m의 성벽은 잘 남아있지만 다른 곳은 대부분 무너졌다. 성문은 3개소가 확인되며 성 내부에는 건물지로 추정되는 평지가 여러 곳 있고 우물이 5곳 확인된다. 유물은 건물터 내부와 성문터 주변에서 출토되었으며, 삼국시대 유물로는 백제와 신라계 유물이 주류이며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 조선 시대의 유물이 고루 분포하고 있다. 현재 성벽은 신라에 의해 쌓아 진 후 고려~조선 시대까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나 북문 터 북쪽에서 백제계 토기가 많이 출토되어 성벽이 축조되기 이전에도 토루나 목책 등의 방어시설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경기도 양주시 백석읍 방성리

공주상신리 당간지주
역사관광충청남도

공주상신리 당간지주

당간지주는 사찰 입구에 설치하는 것으로, 절에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면 당이라는 깃발을 달아 두는데, 이 당을 꽂아두는 기다란 장대를 당간이라 하고, 당간의 양쪽에 서서 이를 지탱시켜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 한다. 드물게 당간이 있으나 대부분 두 기둥만 남아있다. 이 당간지주는 마을 입구의 민가 뒷돌담에 서 있다. 남아있는 상태가 그리 좋지 않아서 한쪽 기둥은 잘린 채 떨어져 있고, 다른 한쪽도 파손이 심하다. 기둥의 받침대는 여러 개의 돌로 조립되어 있으며, 옆면에 연꽃무늬를 새겨 놓았다. 마주 보는 면에는 아래위 두 곳에 당간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을 파놓았다. 바깥면의 가운데에는 넓은 띠를 도드라지게 새겨놓았고, 앞뒷면은 가장자리에 테두리선을 넓게 둘러놓았다. 기둥사이에는 당간을 받치던 받침돌이 놓여 있는데, 그 윗면에 동그란 홈을 두어 당간을 꽂아두도록 하였다. 돌을 다듬은 솜씨나 각 부분의 꾸밈새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보인다.

충청남도 공주시 반포면

고산정
역사관광경상북도

고산정

안동 고산정 일원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고산[孤山]의 빼어난 경관이 기록되어 있으며, 고산의 북쪽에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가 1564년(명종 19년)에 세운 고산정[孤山亭]이 들어서 있다. 고산정은 퇴계 이황과 금난수 등 조선시대 유학자들이 교류하며 풍류와 학문을 나눈 장소로, 역사문화적 가치가 높은 공간이며 퇴계가 유람했던 예던길과 농암종택이 인접한 가송협의 하천변 단애 아래에 위치해 있다. 낙동강을 중심으로 한 물길과 바위, 숲과 고산정이 어우러진 조망구조를 잘 보여주며, 사계절 변화에 따라 다양한 풍광을 감상할 수 있고 자연과 인간의 조화를 이룬 경관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고애신과 유진초이의 러브는 달콤하지만 그들의 사랑은 처음부터 끝까지 쉽지 않았다. 우연한 만남에서부터 노를 저어 나아가고, 함께 낚시하며 손을 잡다가, 얼음 위에서 서로의 신분 차이를 깨닫고 좌절할 때까지 그들 곁에는 낙동강과 고산정이 있었다. 청량산의 기암절벽과 그 옆 아담한 정자는 복잡한 현실을 잊게 해주고 강가에 서면 드라마 속 주막과 나루터는 없어도 애신과 유진의 대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고산정으로 들어가려면 나룻배를 타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건너가야 한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177-42

광풍정
역사관광경상북도

광풍정

광풍정은 1630년대에 장흥효(1564∼1633) 선생이 지은 정자로 300여 문인이 학문을 익히던 곳이다. 선생은 일찍부터 관직에 뜻을 두지 않고 고향에 은거하면서 학문 연구에 몰두하여 영남학파 발전과 후배양성에 힘썼다. 현재 정자의 모습은 헌종 4년(1838)에 이 지역의 유림들이 고쳐 지은 것이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광풍정은 대각선으로 대칭된 공간 배치를 하여 특이한 평면구조를 이루며, 지형적인 환경 요인뿐 아니라 기후 요인까지 적절히 받아들인 건축물로 건축사적 의의가 크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풍산태사로 2885-23

역사관광경상북도

용암정(안동)

안동 용암정은 동강변의 바위 위에 있던 정자로, 1913년에 신태봉이 세우고 영락정이라 이름하였다. 1940년 신응인이 인수하여 용암정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75년 안동댐 건설공사로 인하여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이며,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

낙암정
역사관광경상북도

낙암정

낙암정은 조선시대의 문신 배환을 기리기 위해 문종 1년(1451) 흥해 배씨 후손들이 지은 정자이다. 선조 8년(1575)과 순조 13년(1813)에 다시 지었고, 고종 18년(1881)과 1955년에 고쳐 지었다. 배환은 흥해 배씨 중 안동 지역에 처음으로 정착한 배상지의 둘째 아들이다. 지금의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지역에서 태어났으며, 태종 1년(1401) 문과에 급제한 후 여러 관직을 거쳐 황해·충청·전라도 관찰사를 지냈다 낙암정은 낙동강 옆 절벽에 세워져 낙동강과 강 건너 넓은 계평 들판의 아름다운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왼쪽에 마루가 있고 오른쪽에 온돌방이 있으며, 앞면에는 난간을 두른 툇마루가 있다. 일반적인 정자에 비해서 누마루 아래 기둥이 짧다. 낙암정의 자리는 도깨비가 정해 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하루는 배환이 선비들과 술을 마시다가 거나하게 취해 낙동강 옆 백사장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마침 지나가던 도깨비들이 배환이 죽은 줄로 알고 좋은 묫자리를 찾아 묻어 주기로 하였다. 도깨비들은 배환을 메고 강가의 가파른 절벽을 오르다가 지금의 낙암정 자리에 배환을 묻어 주고자 하였다. 배환은 그제야 잠에서 깼으나 계속 죽은 체하면서 듣고 있었다. 그때 한 도깨비가 이곳은 묫자리보다는 정자를 지을 터라고 하며 다른 곳을 찾자고 하였다. 도깨비들이 한눈을 파는 사이, 배환이 “네 이놈들! 내가 죽긴 왜 죽느냐!” 하고 크게 호통을 치며 일어났다. 놀란 도깨비들은 사라지고, 그 소동에 절벽 위에 있던 큰 바위가 굴러 떨어져 정자를 짓기 좋은 터가 만들어졌다. ‘낙암정’이라는 이름은 이 이야기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풍산단호로 895

안동 삼산정
역사관광경상북도

안동 삼산정

조선 영조 26년(1750) 경에 유정원(1702∼1761)이 지어 학문을 연마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정자이다. 지금은 그 후손들이 선생의 덕행을 기리며 자손들을 가르치는 곳으로 쓰고 있다. 유정원은 영조 때의 문신으로 홍문관수찬·사간원교리 등을 거쳐 대사간에 이르렀다. 영조의 총애와 채제공의 추천으로 장헌세자에게 강의하기도 하였다. 한편 지방관으로 있을 때에는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풀어 정약용의『목민심서』에서 그 치적을 다루기도 하였다.‘역해참고’등 많은 책을 남겼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의 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삼산길 12

백운정
역사관광경상북도

백운정

※ 25년 3월 산불로 인해 개호송 숲 출입이 불가함으로 방문 전 참고 부탁드립니다..text202503{ COLOR: #FF0000; } 백운정은 귀봉 김수일(1528∼1583)이 그의 부친인 청계 김진(1500∼1580)으로부터 부지를 받아 선조 1년(1568)에 지은 정자이다. 김수일은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고향에 남아 자연과 더불어 학문 연구와 후진양성에 힘썼다. 정자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현판의 글씨는 허목(1595∼1682)이 직접 쓴 것인데, 분실의 우려가 있어 별도로 보관하기 때문에 현재는 아무것도 걸려있지 않다.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경동로 1850-97

만휴정
역사관광경상북도

만휴정

만휴정은 보백당 김계행공의 정자이다.1500년(연산군 6)에 건립하였다. 현재의 건물은 중수를 거치면서 변형된 모습을 보이고 있어, 일부만 조선후기 양식을 보이고 있다. 김계행은 조선 초의 문신으로 여러 관직을 역임하였다. 하지만 연산군 폭정을 만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땅으로 낙향했다. 그 후 설못(현 소산2리)가에 조그마한 정자를 지었으나 길 옆인 관계로 더욱 조용한 장소를 찾아 이 정자를 건립하였다. 길안면 묵계서원에서 개울건너 산곡 간에 들어서면 웅장한 계곡에 반석위로 폭포를 동반한 곡간수(谷澗水)가 흐르는 절경을 이루는 곳에 동남향으로 자리잡고 있다. 조선시대 품위가 느끼져는 만휴정의 구조를 살펴보면 홑처마 팔작지붕집으로 처마 앙곡과 안허리가 매우 날카로워 정자의 맛을 더욱 살리고 있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이다. 전면쪽 3칸은 삼면이 개방된 누마루형식으로 누각 주위 삼면에는 계자각난간을 돌렸다. 뒤쪽 3칸은 어칸이 마루로 전면의 누마루와 연접되어 있으며 후벽의 문하부는 궁판이 높직하게 끼워져 있다.양 퇴칸은 온돌방을 들였는데 방의 앞부분은 일반적인 쌍여닫이 세살문을 달았으나 마루쪽으로는 띠살무늬의 세짝 들어열개문이 설치되어 있다. 전면쪽을 고스란히 개방하여 툇마루로 구성한 예는 흔하지 않으며 약계정과 유사한 평면형식을 보이고 있다. 기둥 상부에는 연봉장식이 가미된 2익공양식의 촛가지가 돌출되어 있어 조선후기 작품으로 간주되지만 말기의 번잡한 양식과는 달리 품위를 유지하고 있다. 창방위에는 연꽃을 새긴 화반을 놓았는데 비교적 공을 들여 조각하였다. 상부는 5량가로 대량 위에 동자주를 세워 종량을 놓았으며 그 위에 제형판대공을 올렸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예능 예능 16기에 등장하는 안동의 명소다. 한적한 숲에서 찾아올 이를 기다리는 만휴정과 유일한 길인 외나무다리가 꼭 출연진의 마음을 대변하는 듯하다.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묵계하리길 42

이태원 관광특구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이태원 관광특구

이태원은 1997년에 서울시에서 최초로 지정된 관광특구로 2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다국적·다문화 지역이다. 1980년대 들어 각종 국제회의를 비롯해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서울에서 개최되면서 이름이 알려지게 되어 관광객들의 명소가 되었다. 특히 가죽 제품과 독특한 디자인의 보세 의류, 소품들이 유명하며 외국인들의 쇼핑 투어에 꼭 포함되는 쇼핑과 유흥의 거리다. 구두, 의류, 가방 등을 파는 쇼핑 상가는 물론 호텔을 비롯한 숙박 시설, 각종 음식점, 유흥 오락 시설과 여행사 등의 상가가 골목골목에 밀집해 있다. 또한 외국인이 직접 운영하는 음식점이 모여 조성된 세계음식거리에서는 이국 문화와 음식 체험이 가능하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 150

역사관광경기도

제3땅굴

1974년 9월 5일 북한에서 귀순한 김부성이 ‘자신은 남측 땅굴을 측량한 측량기사인데 비무장지대 안에 땅굴이 있다’고 제보하면서 발굴 작업이 시작되었다. 이후 별다른 땅굴 징후를 발견하고 있지 못하다가 3년이 지난 1978년 6월 10일 한 시추공에서 폭발음과 함께 물이 솟아오르는 것을 포착하게 되었다. 아군에게 발견된 제3땅굴은 문산까지의 거리가 12㎞, 서울까지의 거리는 52㎞지점에 있다. 폭 2m, 높이 2m, 총길이는 1,635m로 1시간당 3만 명의 병력이동이 가능하다. 하루 5번 운행하는 셔틀승강기를 설치하여 모노레일을 타고 땅굴 속까지 걸어가지 않아도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DMZ 영상관에서는 분단의 역사와 자연생태계를 담은 입체영상물을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상징조형물, 기념품판매장등의 시설이 설치되어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출처 : 파주 DMZ 평화관광)

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제3땅굴로 210-358

통일공원(파주)
역사관광경기도

통일공원(파주)

파주 통일공원은 육군 제1사단 장병들의 호국정신을 기리고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1973년에 조성되었다. 1953년 휴전회담 당시에 유엔종군기자센터가 있던 곳에 세워졌다. 안보전시장과 철도종단점, 망배단 등의 시설이 있다. 한국전순직종군기자추념비를 비롯해서 6·25전쟁 당시 순직한 이유 중 대령과 김만술 대위의 기념비, 육탄용사충용탑, 충현탑,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 등의 기념물이 있다. 이 중 망배단은 북한에 고향을 둔 실향민들을 위하여 1985년 9월 26일 설치된 제단이다. 추석과 설날 등 명절은 물론 평소에 이곳을 찾는 실향민들이 차례를 지내는 곳이다. 육탄용사충용탑은 높이 20m의 대형 탑으로 6·25전쟁이 일어나기 1년 전 개성의 송악산 전투에서 박격포를 안고 적진에 뛰어든 10인의 용사를 기리는 탑이다. 개마고원 반공유격대 위령탑은 8·15광복 후 38선 이북이 공산화되자 서북광복동지회를 주축으로 유격전을 펼치다 희생된 전사들을 추모하는 탑이다. (출처 : 파주시 문화관광)

경기도 파주시 파주읍 통일로 1586-24

자락정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자락정

자락정은 조선시대 사인 김영호, 감사 박수기 등이 처음 지었으나, 1924년에 양쪽 집안의 후손들이 낡은 것을 고쳐 지었다. 자락정은 스스로 즐긴다는 뜻으로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했던 박기수의 심성을 잘 나타낸 말이다. 건물은 앞면 2칸, 옆면 2칸 규모이다. 아름다운 주위 경관, 풍천의 맑은 물과 섬과 같이 치솟은 석벽에 정자가 조화되어 가히 제일경으로 손꼽히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계면 삼봉리

수운정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수운정

수운정(睡雲亭)은 조선 철종 13년(1862) 4월에 이곳 금정리에 살던 경주김씨 수운(睡雲) 김낙현(金樂顯)이란 사람이 세운 것이다.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모습이 여덟 팔(八) 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김낙현은 경주김씨 계림군 김균의 15대손으로 성운(星運), 성홍(星弘), 성철(星徹) 등 아들 셋을 두어 행복한 가정을 꾸려오던 중 성운·성홍 두 아들이 죽게 되자 그 슬픔을 금할 길 없어 산수를 벗 삼고 소요하고자 시냇가 양지바른 곳에 터를 닦아서 세웠다고 한다. 한편 경주김씨가 이곳 금정리에 이거한 것은 계림군 김균의 9대손인 김재오(金載五)가 삼계면 석문동에서 이곳으로 이거한 이후 여러 대에 걸쳐 세거하고 있다. 이후에 행객들이 이곳을 찾고 수려한 자연을 벗 삼아 글을 지으면서 교류하였고, 그 글귀가 현판으로 걸려있다. 6ㆍ25 당시 마을이 모두 소실되었으나 수운정만은 소실되지 않고 보호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일제 치하에 있을 때 일본인들이 몇 개의 현판을 떼어갔다고 한다. (출처 : 국가유산청)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신덕면 금정길 62-5

해운대 관광특구
테마파크부산광역시

해운대 관광특구

부산광역시 해운대구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관광지이다. 우리나라 최대의 여름 휴양지로 사랑받는 것은 물론, 봄, 가을, 겨울에도 부산국제영화제와 국제요트대회, 해운대 해맞이 축제 등 다채로운 축제와 행사가 열려 사계절 내내 관광지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해운대관광특구에는 해운대해수욕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해양 레저와 풍부한 수산물을 즐기고 맛볼 수 있는 곳이며, 각종 여가와 문화를 즐기며 장기간 휴양할 수 있는 체류형 관광지로 전 세계인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 동백섬과 달맞이언덕, 해수온천과 같은 자연 자원뿐 아니라 컨벤션 센터와 요트장 등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관광특구에는 영화의 전당, 영화 촬영소, 미술관, 아쿠아리움 등 문화 시설도 있으며, 야경이 환상적인 문탠로드와 해안을 따라 이어지는 갈맷길 등 산책코스도 다양하다.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만취정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만취정

만취정은 조선 선조 때 형조참의를 지낸 김위[金偉] 선생이 선조 25년(1592년)에 건립, 후진 양성을 위한 학당으로 사용했다고 전한다. 김위선생은 조선조 개국공신인 계림군 김곤[鷄林君 金梱]의 7대손으로 중종 27년(1532년) 11월 23일에 출생하였다. 김위 선생은 선조 때 장흥 부사[長興府使] 등 9개의 수령을 역임하고 형조 참의[刑曹參議]·대사간[大司諫]에도 올랐으며 팔도 암행어사를 지내면서 많은 그릇된 일을 바로잡기도 했다. 또한 시문에도 능하였고 당대의 학자 이율곡과도 교의가 두터웠다. 만취정은 창건 이후 여러 차례의 중수를 겪었으며 마지막 중수는 헌종 3년(1834)에 있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익공계[翼工系]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가운데 2칸에 방을 두고 전후 및 우측 3면에 마루를 가설하였다. 정내[亭內]에 이율곡, 기대승 등의 시판[詩板]이 소장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삼계면 산수1길 62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