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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59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59페이지입니다.

상림공원
문화관광경상남도

상림공원

함양상림은 함양읍의 서쪽에 있는 위천(渭川)강가에 있는 숲으로서, 통일신라 진성여왕때 최치원 선생이 함양읍의 홍수피해를 막기 위해 만들었다고 전해진다. 예전에는 대관림(大館林)이라고 불렀으나 이 숲의 가운데 부분이 홍수로 무너짐에 따라 상림(上林)과 하림(下林)으로 나뉘게 되었다. 현재 하림은 훼손되어 흔적만 남아있고 상림만이 예전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참나무류와 개서어나무류가 주를 이루며, 왕머루와 칡 등이 얽히어 마치 계곡의 자연 식생을 연상시킨다. 120여 종의 나무가 둑을 따라 조성되어 있어 어린이들의 자연학습원으로도 좋은 곳이다.

경남 함양군 함양읍 교산리 1073-1

벽송사(함양)
역사관광경상남도

벽송사(함양)

대한불교 조계종 제12교구인 해인사의 말사로 창건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절 뒤쪽의 창건 당시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3층 석탑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시기를 신라말이나 고려 초로 보고 있다. 1520년에 벽송 지엄대사가 중창하여 벽송사라 하였다고 전한다. 서산대사 청허 휴정 이전에 한국선맥을 이어온 벽계정심과 벽송지엄, 부용영관뿐만 아니라 환성지안, 서룡상민 등 조선 선맥을 빛낸 8분의 조사가 이 벽송사에서 수도 정진한 도량으로써 우리나라 선과 벽송사의 인연은 각별하다. 숙종 30년(1704년) 실화로 소실되었다가 환성지안 대사가 중건하였고, 1850년에 서룡당 상민 대사가 중수하였으나, 1950년 6.25전쟁 때 다시 소실되어 1960년 원응 구한 스님이 쓰러진 가람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광점길 27-177

웅석봉군립공원
자연관광경상남도

웅석봉군립공원

산청에 위치한 웅석봉은 지리산에서 흘러온 산이면서도 지리산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산이다. 산의 모양새가 곰을 닮았다 해서 웅석봉이라 한다. 천왕봉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중봉과 하봉으로 이어져 쑥밭재, 새재, 외고개, 왕등재, 깃대봉을 거쳐 밤머리재에 이르러 한 번 치솟는데 이 산이 바로 웅석봉(熊石峰)으로 산의 모양새가 곰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기도 하다. 한국자연보존협회에서 ‘한국 명수 1백 선’으로 선정한 선녀탕을 감상할 수 있으며 구절양장 경호강을 굽어볼 수 있으며, 가을이 되면 화려하게 물드는 단풍으로 온 산이 불타는 것처럼 보인다.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웅석봉로

신안사(금산)
역사관광충청남도

신안사(금산)

금산군 제원면 신안리 동북쪽에 있는 해발 677m의 신음산 국사봉에서 내려온 지맥의 산록에 있는 신안사는 신라 26대 진평왕 5년에 무염선사가 창건했다. 신라 진평왕 5년(583)에 무염선사가 창건한 이 절의 이름에 ‘몸 신’ 자가 들어간 것은 경순왕(재위 927∼935)이 천태산 동쪽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영국사에서 수학할 때 이곳에서 가끔 머무른 데서 유래한다. 이 절집의 앉음새와 물 맑고 아늑한 주변 산세에 반한 경순왕은 “이곳에 있으니 몸과 마음이 편안하다”라고 해서 이름 지은 것이다. 경순왕이 보고 느꼈을 풍광과 분위기는 그로부터 천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여전하다. 신안사에는 대광전, 진향각, 극락전, 요묵당 등이 있었는데 지금은 대광전과 극락전만이 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불상은 10기가 봉안되어 있었으나 병화로 소실되어 태고사 등으로 5기를 이봉하고 현재 5기만이 봉안되어 있는데, 단정하고 우아한 모습은 참배자에게 불심을 일으키게 하는 조선 미술의 걸작품이다. 이 절이 흥할 때에는 반승 3,000여 명이 수학하였다 하며 불경, 불기 등 여러 가지 비품이 많았는데 6·25 전란을 겪으면서 모두 소실되어 찾을 길이 없다. 다만 절 앞을 흘러내리는 계곡의 아름다움은 변함이 없다.

충청남도 금산군 신안사로 970 신안사

금산 천내리 용호석
역사관광충청남도

금산 천내리 용호석

용과 호랑이 모습을 각각 2기(基)의 돌에 새긴 것이다. 천내리의 서쪽을 흐르는 천내강변 제원대교(濟原大橋)에서 북쪽 100m 지점에 용석(龍石)이, 그로부터 다시 북쪽으로 500m 지점에 호석(虎石)이 위치하고 있다. 용석은 소용돌이 모양으로 된 여러 개의 돌기와 그 사이에 꿈틀거리는 용의 몸체가 조각되어 있고, 여의주(如意珠)를 물고 있는 입 양편에는 아가미와 수염이 표현되어 있다. 호석은 호랑이가 앞발을 세우고 앉아 있는 모습인데 두툼하게 튀어나온 곡선과 동그라미를 조각하여 호랑이의 털 무늬를 만들었다. 호석의 몸체는 서쪽을 향하였으나 머리는 북쪽을 향하였으며 입을 크게 벌리고 있다. 고려말 홍건적(紅巾賊)의 난 때 안동(安東)으로 내려온 공민왕이 자신의 능묘(陵墓)의 위치를 정하고 필요한 석물(石物)로 준비하게 하였으나, 개경(開京)으로 돌아간 후 그대로 두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출처 : 금산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천내리

역사관광충청남도

금산 백령성

금산 백령성은 남이면 건천리와 역평리 성치산 동쪽 정상부에 있는 백제시대의 석성이다. 금산군 제원면과 추부면을 지나 충북 영동과 옥천으로 연결되는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다. 김정호의 청구도에는 백자령, 대동여지도에는 탄현으로 나와 있다. 형태는 산 정상 부분을 둘러쌓은 두른 테뫼식이며, 성의 둘레는 207m이다. 성벽의 동쪽, 남쪽, 북쪽은 대부분 허물어졌으나 서벽은 비교적 잘 남아있다. 성벽의 너비는 4m이다. 유물로는 백제시대 각종 명문와를 포함한 다량의 기와편과 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역평리

태조대왕 태실
역사관광충청남도

태조대왕 태실

태조대왕 태실은 조선 태조 이성계의 태(胎)를 봉안한 석실이며 조선 최고의 풍수지리학적 명당인 금산 만인산에 자리 잡고 있다. 처음에는 함경도 함흥에 안치하였다가 무학대사의 지시로 금산 만인산으로 옮기고 태실비를 세웠다. 왕실에서 태를 안치하는 것은 나라의 대사일 뿐 아니라 그 행렬을 맞이하는 지방에서도 큰 영예로, 왕의 태실지가 안치된 현이나 군을 승격시킨 예를 종종 볼 수 있다. 태조의 태를 봉안한 진산군도 주로 승격됐다. 928년 조선총독부에서 태 항아리를 서울 창경궁으로 옮겨간 후 석비와 석조물만이 남아 원형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파손되었으나, 1993년 현 위치에 복원하였다. 태실은 팔각형으로 돌 난간을 둘렀고, 태실비에는 태조대왕 태실이라는 비문이 음각되어 있다. 태실이 옮겨온 후에는 만인산을 태봉산이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1989년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고, 2001년에 산책로와 쉼터를 만들어 아름다운 자생식물원으로 거듭나고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추부면 마전리

금산향교
역사관광충청남도

금산향교

금산향교는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원래는 지금의 금산군 금산읍 하옥리 백학동에 있었다고 전한다. 그 뒤 임진왜란 때 불에 타버린 것을 조선 숙종 10년(1684) 현재의 위치에 다시 짓고, 수차례 중보수를 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대성전을 두고 대성전 앞마당에 대성전을 중심으로 동무와 서무가 마당을 사이에 두고 마주 보는 방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규모이며, 공자를 중심으로 중국의 선철을, 동무와 서무에는 우리나라의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봄과 가을로 제향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배향된 인물의 배향 순서는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 교육 공간으로 강당인 명륜당을 중심으로 명륜당 앞마당을 사이에 두고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위치하고 있다. 그밖에 외삼문, 내삼문 등이 남아있다. 금산향교는 이와 같이 전통양식의 공간 배치를 충실히 하고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비단로 298

진산향교
역사관광충청남도

진산향교

진산향교는 원래 금산군 진산면 읍내리, 현재의 진산중학교 자리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은 후 영조 31년(1755)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었고, 정조 4년(1780)에 중수하였다. 이후 1950년 6·25 전쟁으로 훼손된 후 다시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외삼문, 전교실이 있다. 대성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명륜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층건물이다. 전체적으로 다른 향교에서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경사지를 이용하였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중국의 선철과 우리나라의 18현의 위패를 모시고 봄과 가을로 제향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배향된 인물의 배향 순서는 시대에 따라 바뀌어 왔다.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교촌1길 45-20

청풍사
역사관광충청남도

청풍사

청풍사는 고려 후기 충절공 야은 길재 선생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지은 사당이다. 이곳에 길재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시고 있다. 길재 선생은 고려말∼조선초의 학자로, 개경에 가서 이색, 정몽주, 권근 등 여러 선생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몇 차례 과거에 합격하였으나 나가지 않고 같은 마을에 살던 조선 태조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후의 태종)과 두터운 친분을 맺었다. 훗날 태종이 그를 불렀으나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 하여 거절하였으며, 이색, 정몽주와 함께 고려 삼은으로 일컫는다. 길재가 초년에 시묘살이를 하였던 금산군 부리면 불이리에 현종 12년(1671) 후손과 고을의 선비들이 함께 불이사(不二祠)를 창건하여 숙종 3년(1678)에 위패를 봉안하였다. 그러나 영조 17년(1741)에 서원남설 금령에 저촉되어 훼철되었다. 이후 영조 37년(1761)에 금산군수 민백홍과 지방유림이 ‘백세청풍(百世淸風)’ 4대자를 새긴 비를 유허에 세웠다. 이후 1804년 다시 사당을 세웠으나 고종 5년(1868) 또다시 철폐되는 비운을 겪었다. 1928년 청풍비각, 청풍사, 청풍서원이 중수되었다. 청풍사의 앞쪽에는 백세청풍비(百世淸風)와 지주중류비(支柱中流)가 있는데 이는 야은 길재의 충절을 보여주는 것이다.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무금로 1688

충렬사(금산)
역사관광충청남도

충렬사(금산)

충렬사는 해주 오 씨의 사당으로, 완월당 오응정(1548∼1597)과 그의 장자 욱, 둘째 아들 직과 손자 방언 등 3세에 걸친 4 충신을 모신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건물로 1831년(순조 31년)에 세워졌다. 오응정은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조선 선조 7년(1574) 무과에 급제하였다.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에는 전라도 순천을 수비하였으며, 같은 해에 왜적이 남원을 침입하자 남원성 싸움에 참여했다가 전사하였다. 둘째 아들 직은 1619년(광해군 11년) 후금을 정벌할 때 강홍립이 항복하자 백마를 타고 적진에 돌진하여 수많은 적을 죽이고 자결하였으며, 손자 방언은 병자호란 때 인조가 항복하자 강에 몸을 던졌다. 충렬사는 일제 말기에 일본 경찰이 갖은 책동으로 헐어버리려고 하였으나 유림과 오 씨 문중의 결사반대로 실패하고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으며, 매년 음력 9월 20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진산로 356-10

조헌사당(표충사)
역사관광충청남도

조헌사당(표충사)

임진왜란 당시 금산성전투에서 순절한 중봉 조헌(重峰趙憲) 선생을 모신 부조사우이다. 부조사우란 나라에 큰 공훈이 있는 사람의 신주(神主)를 영구히 모시도록 조정(朝廷)에서 지정한 부조묘이다. 임진왜란 이전에 선생은 주로 옥천군 안읍 밤티(沃川郡安邑栗峙)에서 생활하였지만, 자주 이 지역에 왕래하면서 후손들에게 이곳에서 살 것을 분부하였다고 한다. 이 사우는 원래 1734년(영조 10년)에 곡남리 진동산에 창건되었으나 오랜 시간이 흘러 건물이 허물어지면서, 유림(儒林)과 후손들의 정성으로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웠다고 한다. 뒤편에는 선생이 이름을 짓고 우암 송시열(尤庵宋時烈)의 글씨로 알려진 수심대(水心臺)라고 새겨진 글자가 현재까지 보존되고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수심대길 32

온양이씨어필각
역사관광충청남도

온양이씨어필각

금성면 하신리는 원래 온양 이 씨의 세거지로서 이 씨 문중에 5세 3효가 있는데 고사인 이태귀와 그의 증손 홍엽, 현손 원배로 효행이 탁월하므로 1924년 당시 유림의 천장으로 마침내 순종 황제까지 알게 되어 당대에 장한 일이라 칭찬하시고 이듬해 3월에 온양이씨계효지비(溫陽李氏繼孝之碑)라는 여덟 자의 어필(御筆)을 하사하시게 되자 지방 유림과 온양 이 씨 후손들이 합심하여 어필비를 세우는 한편, 비각을 봉건 하게 되었다. 또한 3효문에 대한 정각을 세운 바 있는데 의친왕이 온양이씨삼효문(溫陽李氏三孝門)이라는 친필을 하사했고, 1926년 봄 순종황제 승하 시에 본 손 원배공은 지방 유림과 함께 임금님께 은혜의 보답으로 전각을 봉건 키로 했다는 뜻을 전해 듣고 숭봉전(崇奉殿)이라는 친필 액자를 하사하였다. 1943년 5월경 일본인인 금산 경찰서장(石川道夫)이 숭봉전에 침입, 어영은 물론 제기 및 각종 문헌을 약탈, 숭봉전을 철폐시키는 비운을 겪었다. 현재는 충청남도 지정 문화유산자료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어필각로 412

의병승장비
역사관광충청남도

의병승장비

의병승장비는 금산전투에서 중봉 조헌과 함께 순절한 기허당 영규대사의 순절 사적비이다. 숙종 5년(1839) 5월에 보석사 입구에 건립되었으며, 비각 안에 위치하고 있다. 비문을 지은이는 우의정 조인영이며, 금산군수 조취영이 글씨를 썼다. 비의 앞면에는 큰 글자로 ‘의병승장’이 새겨져 있으나 자획이 심하게 훼손된 상태이다. 왼쪽 면에는 창건화주 낙봉대인 등 건립 당시의 관계 인물의 이름을, 오른쪽 면에는 앞면의 ‘의병승장’을 창녕위 김병주가 썼음을 기록하였다. 일제가 1940년 비를 보호하던 비각을 부수고 비를 묻어놓았던 것을 해방 후 다시 꺼내 세워놓은 것이다.

충청남도 금산군 남이면 심천길 8-9

권율장군 이치대첩비
역사관광충청남도

권율장군 이치대첩비

권율장군이치대첩비는 임진왜란 때 권율 장군이 승리로 이끈 이치대첩을 기념하고 있는 비이다. 이치는 배티재 고개의 한자어로 이 고개는 대둔산 중허리를 넘어 금산과 전북 완주를 연결하는 교통의 요지이자 전략상 중요한 곳이었다. 1592년 임진왜란을 일으켜 경상도와 충청도를 휩쓴 왜군이 군량미의 현지 보급을 위해 이 고개를 넘어 호남평야로 진출하려고 했을 때, 권율장군이 동복현감 황진과 군사들을 이끌고 이치를 지켜 왜군의 호남진출을 막았다. 이것이 이치대첩이며 행주대첩, 진주대첩보다 앞서는 임진왜란 최초의 육지에서 승리한 싸움이다. 이 전투에서 조선군이 승리하면서 왜군이 호남진출에 실패했다. 고종 3년(1866) 금성면 상가리에 이치대첩비(梨峙大捷碑)와 대첩사(大捷祠)를 함께 세워 그 뜻을 기렸는데, 1944년 6월 일제에 의해 폭파되었다. 현재의 비석은 1964년에 진산면 묵산리에서 이치를 바라볼 수 있는 산 중턱에 다시 세운 것으로, 연재 송병선이 짓고 송성용이 쓴 비문을 다시 새긴 것이다. 1991년부터 성역화 계획이 수립되어 사당, 비각 및 안내판, 내삼문, 외삼문, 담장을 정비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2000년에는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대둔산로 191

수심대
역사관광충청남도

수심대

곡남리 마을의 조헌 선생 사당 위쪽에 자리하고 있는 바위로, 바위가 있는 이 마을은 임진왜란 당시 금산지역에서 칠백의병을 이끌고 수많은 왜적을 무찌른 중봉 조헌 선생(1544∼1592)이 한때 머물렀던 곳이라 한다. 옆으로 넓게 퍼진 바위에는 ‘수심대’라는 글씨를 힘 있는 필체로 새겨 놓았으며, 바위 주변으로는 소나무가 둘러싸여 있다. 수심대라는 이름은 조헌 선생이 직접 지었으며, 글씨는 우암 송시열 선생이 새겨 놓은 것이다. 예전에는 이 주위로 맑은 시냇물이 흘러 좋은 경치를 이루었다고 한다.

충청남도 금산군 복수면 수심대길 30

고경명선생비
역사관광충청남도

고경명선생비

고경명선생비는 충남 금산군 금성면에 위치한 문화유산이다. 문인출신 의병장으로 임진왜란 당시 금산(錦山)에 침입한 왜군을 맞아 싸우다 순절한 고경명의 충혼을 기리는 비로 정확한 건립연대는 알 수 없다. 비각 안 좌대 위에 세워진 순절비에는 ‘제봉고선생순절지기(霽峰高先生殉節地記)’라는 글씨가 음각되어 있다. ‘제봉’은 고경명의 호이다. 역사적인 흔적들을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주변 관광지로는 금성산, 칠백의총이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성면 양전리

덕산사(금산)
역사관광충청남도

덕산사(금산)

덕산사는 밀양 박 씨 눌재 박증영, 강수 박훈, 퇴우당 박사현 세 분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들의 충절과 공훈을 기리기 위해 1962년 지방 유림들과 그의 후손들이 세웠다. 박증영은 예종과 성종 때 문신으로 문물과 제도의 정비에 공로가 컸고, 그의 아들 박훈은 중종 때 기묘사화에 화를 입은 기묘명현의 한 분이며, 박훈의 손자 박사현은 임진왜란 때 중봉 조헌의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우고 전사한 충신이다. 건물은 15평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기와지붕으로 되어있다. 사우 앞에는 삼문, 비 등이 있다. 1966년 박정희 대통령이 친필로 쓴 덕산사의 액자를 내려주었다. 해마다 이곳에서 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배정이길 39

역사관광충청남도

귀암사

귀암사는 양성지(1414∼1482)를 기리기 위해 1922년 세운 사당이다. 양성지는 조선시대 문신으로서 호는 눌재이다. 대사헌, 이조판서 등 여러 벼슬을 지냈고 항상 나라를 위해 현실적인 정책을 연구한 인물이다. 민생을 위해 각 지방에 의료기관 설치를 주장하였고 우리나라 고유의 풍습이 중요함을 강조했으며 과거 시험에 대해서도 현실에 맞도록 바꾸길 요구하였다. 또한 귀암사숙을 열어 후진 교육에도 이바지하였다. 묘정에는 선생의 공적을 적은 눌재 양선생 묘비가 건립되었고 그 옆에는 거북이 모양의 귀암이 지금도 남아있다. 주변 관광지로 청풍사, 금산 인삼골 오토캠핑장, 금강 농바우마을, 덕산사, 금산 천내리·용화리 고인돌이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부리면 평촌1길 2

아인리석탑
역사관광충청남도

아인리석탑

금산읍 아인리에 위치해 있는 석탑으로, 원래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었을 것이나, 현재는 탑신의 2층 몸돌과 꼭대기의 머리장식이 없어진 상태이다. 기단은 최근에 조립된 것으로, 네 장의 판판한 돌을 세워 4면을 만들고, 판돌을 덮어 마무리하였다. 탑신의 1층 몸돌 남쪽면에는 선으로 새긴 부처 모습의 조각이 있으며, 한 돌로 이루어진 2층 지붕돌과 3층 몸돌은 그 위에 놓여 있는 3층 지붕돌의 크기가 잘 맞지 않아 불안정한 비례를 보인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1층은 4단, 2·3층은 3단이며, 네 귀퉁이에서 크게 치켜 올라갔다. 석탑 주변에서 고려시대의 기와가 수습되어 고려시대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아인리

탑선리석탑
역사관광충청남도

탑선리석탑

탑선 마을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놓은 모습이다. 기단은 직육면체의 돌을 2단으로 짜 놓은 후 그 위로 판돌을 얹어 마무리하였고,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다른 돌로 새겨 차례대로 올려놓았다. 탑신의 각 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는데, 현재 1층 몸돌은 세로로 기둥 조각의 폭만큼 잘린 채 옆으로 뉘어 있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위로 가볍게 들려 있으며, 밑면에는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남아있는 탑의 모습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측되며, 기단과 탑신을 이루는 돌의 재질이 서로 달라 원래는 각기 다른 탑의 일부분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충청남도 금산군 금산읍 중도리

금산 천내리 용화리 고인돌
역사관광충청남도

금산 천내리 용화리 고인돌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지배층의 무덤으로 ‘지석묘’라고도 한다. 이 고인돌이 있는 자리는 일용골 마을 뒷산으로, 남북으로 길게 낮은 구릉성(丘陵性) 산지가 형성되어 있다. 용화리에서 흘러 내려오던 금강의 물줄기가 이 구릉을 ‘S’자 형태로 휘어 돌아 충청북도 영동 쪽으로 빠져나가면서 금산읍에서 무리를 이루고 있는데 모두 12기가 확인된다. 덮개 돌은 사각형(四角形) 또는 일정하지 않은 모양의 200cm 안팎의 크기로, 주변에서 돌칼, 돌화살촉, 붉은색을 띤 토기 등이 출토되었다. 전국에 흩어져 있는 고인돌 중 14기가 금산에 있는데 그중 청동기 시대의 고인돌 12기가 제원면 천내리 470-5번지에, 고인돌 2기가 용화리 502-1번지에 위치하고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용화리

난고 김삿갓 유적지
역사관광강원특별자치도

난고 김삿갓 유적지

난고 김삿갓 유적지는 영월군 노루목에 위치한 유적지이다. 이곳은 차령산맥과 소백산맥 준령의 북단과 남단에 위치하며 산맥의 형상이 노루가 엎드려 있는 듯한 모습이라 하여 노루목이라 불리고 있다. 김삿갓 유적지 내에 흐르는 곡동천은 기암괴석 사이로 맑고 풍부한 수량이 넘치고 가을에는 형형색색 단풍이 아름다운 곳이다. 이곳에 조선 후기 방랑 시인이자 천재 시인인 일명 김삿갓, 난고 김병연 묘소와 주거지가 있다. 그의 묘는 1982년 영월의 향토사학자에게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김삿갓의 시대정신과 문화 예술 혼을 추모하고 문화적 가치를 재조명하고자 김삿갓 계곡에서는 98년도부터 매년 10월 초에 ‘난고 김삿갓문화큰잔치’가 열린다. 또한, 강원도 시책사업으로 2001년부터 2003년까지 유적지 내 조경 및 도로포장 등 기반 시설이 조성되어 쾌적한 관광지로 탈바꿈하였으며 2003년 10월 난고 김삿갓 문학관이 개관되어 김삿갓의 문학세계를 한 곳에 전시해 관광객들에게 소개하고 있다. 김삿갓 유적지 내에는 조선민화박물관과 묵산미술관이 있다. 조선민화박물관은 소박한 서민들의 애환과 풍자가 담긴 조선시대 민화 5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맑은 계곡물이 흐르는 폭포와 함께 백두대간을 등산할 수 있는 마대산과 곰봉 등산로도 잘 정비되어 있어 문화유적지를 돌아보며 함께 즐기면 좋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김삿갓로 216-22 난고김삿삿문학원

선돌 (강원고생대 국가지질공원)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선돌 (강원고생대 국가지질공원)

선돌에 가면 거대한 기암괴석이 ㄱ자로 굽은 강줄기와 함께 나타난다. 선돌은 일명 신선암이라고도 하는데 선돌은 푸른 강과 층암절벽이 어우러져 마치 한폭의 그림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선돌은 영월읍 방절리 서강 안에 절벽을 이룬 곳에 위치해있는데 마치 큰 칼로 절벽을 쪼개 내리다 그친 듯한 형상을 이룬 입석을 말한다. 선돌은 기반암인 석회암이 물에 의한 용식작용으로 절리틈이 녹아서 형성된 지형으로 추측되고 있다. (출처 : 강원고생대 국가지질공원)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남면 영월로 14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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