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국 관광지 520페이지

총 12,561개의 관광지 중 520페이지입니다.

논산 딸기삼촌농장
문화관광충청남도

논산 딸기삼촌농장

딸기삼촌은 예전에 시장과 백화점, 마트에 출하를 해왔지만 중간 유통마진을 축소하고 소비자 직거래를 위한 딸기 체험농장을 운영 중이다. 딸기삼촌농장에서 재배하는 딸기는 친환경 저농약인증을 받은 상품이다. 다년간 자연농법과 친환경농법을 이용해 딸기를 재배하고 있다. 값비싼 미생물 제재를 통해 소요되는 천적 값만 해도 1년에 400여만 원정도 소요되지만 정말로 안전한 상품성 높은 딸기를 소비자에게 제공한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명재로 222-17

황산마을
역사관광경상남도

황산마을

황산마을은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리에 위치한 전통한옥마을로 수승대국민관광단지 건너편에 있다. 1540년(조선 중종 35년)에 요수 신권 선생이 이곳에 은거하며 1540년 구연재를 세우고 후학들을 양성했던 이후로 거창 신 씨의 집성촌 마을이 되었다. 이 구연재는 1573년 신권선생이 죽자 사림에서 구연서원으로 개칭하고 석곡 성팽년과 함께 배향하였다. 이후 황산마을은 18세기 중엽 조선 영조 때 노론계 학자인 황고 신수이 선생이 입양을 하면서 번성하게 되었다. 이곳 가옥들은 대개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에 건립된 건축물로 대한제국 말기와 일본 강점기 시대의 지방 반가의 전통 한옥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곳이다. 남아 있는 한옥은 약 50여 호로 안채와 사랑채를 갖추고 있고 모두 기와집으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씨족 부농촌의 모습을 보여준다. 마을의 담장은 제법 큰 자연석을 이용한 토석담으로 약 1.2㎞에 걸친 활처럼 휘어진 전통 담장길은 전통고가와 잘 어우러져 매우 고즈넉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마을에 들어서면 입구에 높이 15m, 수령 600년에 이르는 안정좌 나무라 부르는 느티나무가 자리하고 있다. 마을 중앙에는 거창 황산리 신 씨 고가가 자리 잡고 있는데 1927년 옛 건물을 허물고 새로 지은 건물로 원학고가라고도 부른다. 이 가옥은 경상남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안채, 사랑채, 중문채, 곳간채, 솟을대문, 후문 등으로 이루어져 있고, 특히 사랑채는 궁궐에서나 볼 수 있는 고급스러운 장식물로 꾸며져 있어 당시 큰 지주였던 집주인의 재력을 엿볼 수 있다. 안채는 많이 개수되어 전통한옥의 격식에서는 많이 벗어난 모습을 보여 준다. 수승대국민관광단지에 깨끗한 민박과, 호텔 등 숙박을 할 수 있는 곳이 있지만, 이곳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황산전통한옥마을에서 옛 조상들의 주거생활을 체험해 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거창은 오래전부터 산이 높고 물이 맑은 고장으로 이름난 곳이다. 낮에는 시원한 계곡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밤에는 황산마을에서 전통한옥체험을 한다면 여름휴가철을 즐기기에 안성맞춤일 것이다. 황산전통한옥마을은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에서 가깝고, 인근에 송계사계곡, 거창조각공원, 금원산자연휴양림, 월성계곡, 거창박물관, 화계사, 쌍계사계곡 등의 관광지가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위천면 황산2길 13

개평한옥마을
역사관광경상남도

개평한옥마을

함양의 중심에 위치한 개평한옥마을은 좌안동 우함양이라 불릴 정도로 많은 유학자들 배출한 영남지역의 대표적인 선비마을로 조선조 오현 중 한 분인 일두 정여창 선생의 고향이기도 하다. 하동 정씨와 풍천 노씨, 그리고 초계 정씨 3개 가문이 오래도록 뿌리를 내리고 살아오면서 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일두 정여창 선생, 옥계 노진 선생 등 역사적 위상이 높은 선생을 배출하였다. 개평마을은 일두고택(국가민속문화유산)을 비롯한 많은 전통가옥이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고, 선조들이 풍류를 즐겼던 교수정(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 일두선생의 명상의 장소였던 개평리소나무군락지(경상남도 자연유산) 등 조상의 의식주와 생활풍습 등을 알 수 있는 소중한 문화자원이 많이 남아있어 민속자료로써 중요한 가치를 가진다.

경상남도 함양군 지곡면 개평길 59

영양 주실마을
역사관광경상북도

영양 주실마을

* 조지훈의 주실마을 영양군 일월면 주곡리에 속하는 주실 마을은 북쪽으로 일월산이 있고, 서쪽에는 청기면, 동쪽은 수비면, 남쪽은 영양읍과 맞닿아 있다. 조지훈이 태어난 주실 마을은 전통마을이면서도 실학자들과의 교류와 개화 개혁으로 이어진 진취적인 문화를 간직한 매우 유서 깊은 마을이기도 하다. 주실 마을에는 조지훈 시인의 생가인 호은종택(壺隱宗宅 경상북도 기념물) 이 마을 한복판에 널찍이 자리 잡고 있고, 옥천종택(玉川宗宅:경상북도 민속자료), 월록서당 등 숱한 문화자원들이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 조지훈 생가 시인이며 국문학자인 조지훈(1920∼1968) 선생이 태어난 곳이다. 조지훈은 경상북도 영양 출신으로 본명은 동탁(東卓)이다. 선생은 박목월·박두진과 공동으로 간행한 청록 집의 시편들에서 주로 민족사의 맥락과 고전미 세계에 대한 찬양과 선(禪) 세계를 노래하였는데, 유교 도덕주의의 격조 높은 자연 인식을 보인다는 점에서 시문학 사적 의의가 있다고 평가받고 있다. 가옥은 몸체와 관리사로 나뉘어 있으며 몸체는 앞면 7칸·옆면 7칸 규모에 ㅁ자형 평면을 갖추고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의 팔작지붕으로 꾸몄고, 전형적인 영남 북부지방 양반가의 풍모를 지니고 있다. 대문과 중문에는 태극기를 조각하여 채색한 것을 끼워두었고 집 주위는 고풍스러운 담을 둘렀다. 이 집은 이 지방 주택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조선 중기 인조(재위 1623∼1649) 때에 조정형이 지었으며 한국전쟁 당시 일부 불탄 것을 1963년 복구하였다. 이곳은 조지훈 선생 외에 한말의 의병장이었던 조승기 선생과 선생의 조부인 조인석 선생 등 나라를 위해 큰일을 한 분들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 주곡동 옥천종택 한양 조 씨 옥천 조덕린 선생의 옛집으로 살림채인 정침과 글 읽는 별당인 초당, 가묘인 사당으로 구성된 17세기말 양반 주택의 대표적인 예이다. 살림채는 안동지방을 중심으로 분포되어 있는 ㅁ자 집의 평면구성을 하고 있다. 앞면 5칸의 가운데에 대문을 달고 왼쪽에 안사랑방을 두고 있다. 오른쪽에는 마구간을 고친 온돌방이 있고 부엌·고방이 있다. 살림채의 몸채는 양옆에 꺾여서 위치하는 부분보다 더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으며, 전면에는 안마당을 향하여 개방된 6칸 대청이 있다. 대청의 오른쪽부터 도장방·안방이 접해 있고, 안방을 마루 쪽으로 1칸 더 내어 2칸으로 꾸몄다. 경상북도에 분포되어 있는 ㅁ자집 중에 대청과 안방의 윗머리에 도장방이 놓여있는 경우는 가끔 있지만 이곳처럼 도장방의 바닥이 온돌이 아닌 마루로 깔려있는 예는 흔하지 않다. 초당은 조선 숙종 21년(1695)에 지은 것으로 아이들에게 글을 가르치거나 노인이 머무는 곳이다. 이 지역의 전형적인 평면구성을 보이며 있으며, 정조 14년(1790)에 지은 건물로 가운데 칸이 좀 넓다. 안채의 오른편 뒤쪽에 배치되어 있으며 담장을 두르고 있다. 안동지방의 전형적인 평면구성을 보이고 있으나 안방이 동쪽으로 오고 사랑방이 서쪽으로 배치된 점이 다르다. 이러한 형식은 18세기부터 안방과 부엌이 서쪽으로 배치되는 평면구성으로 통일된다. * 월록서당 후학들을 교육하고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월하 조운도(1718∼1796) 선생이 의견을 내고 한양 조 씨·야성 정 씨·함양 오 씨가 주축이 되어 조선 영조 49년(1773)에 지었다고 한다.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를 가진 한 일자형 건물로 전망이 좋고 한적하여 공부하기 좋은 곳이다. 가운데 2칸은 마루를 만들어 대청으로 꾸몄고 양쪽은 방을 만들어 놓았는데 오른쪽은 ‘극복재(克復齋)’, 왼쪽에는 ‘존성재(存省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간직한 건물이다.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주실길 55

안동 하회마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역사관광경상북도

안동 하회마을 [유네스코 세계유산]

하회마을은 풍산 류 (柳)씨가 대대로 살아오던 전형적인 집성촌으로 한국 전통가옥의 미(美)가 살아 숨 쉬는 마을이다. 조선시대의 대유학자 겸암 류운룡 선생과 서애 류성룡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한 안동 하회마을은 1999년 4월 21일에는 방한 3일째였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한국 전통의 고장으로서 방문하여 더욱 유명해졌다. 이곳 하회(河回)라는 지명은 낙동강물이 동쪽으로 흐르다가 S자형을 이루면서 마을을 감싸도는 데서 유래했다. 동으로는 태백산의 지맥인 화산이 있고 그 줄기의 끝이 마을까지 뻗어서 아주 낮은 구릉을 이루고 있다. 집들은 구릉을 중심으로 낮은 곳을 향하여 배치되어 있기 때문에 집의 좌향이 일정하지 않고 동서남북 각각으로 집들이 앉혀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마을 중심부에는 류씨들의 집인 큰 기와집이 자리 잡고 있으며 원형이 잘 보존된 초가집들이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마을 앞쪽에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과 멋들어지게 깎아지른 부용대, 끝없이 펼쳐진 백사장, 울창한 노송숲이 절경을 이룬다. 한편, 부용대 앞에 물길이 다시 열려 나룻배를 이용할 수 있다. 하회마을에서는 하회별신굿탈놀이를 상설공연으로 진행하고, 매년 가을 안동국제탈춤페스티벌을 진행하며 주변에는 신라 시대에 창건되었다는 봉정사, 고산서원, 귀래정, 계명산 자연휴양림, 학가산 자연휴양림, 와룡산 등 다양한 볼거리가 많은 곳이다. 특히 2010년 7월 31일 안동 하회마을과 경주 양동마을이 ‘한국의 역사마을’로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두 마을의 등재로 한국의 세계유산은 석굴암ㆍ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이상 1995), 창덕궁, 수원 화성(1997),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ㆍ화순ㆍ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 그리고 제주 화산섬과 용암 동굴(2007), 조선왕릉(2009)에 이어 통산 10번째 세계유산을 보유하게 됐다. 하회마을의 대표적인 먹을거리는 안동소주와 유명한 서원이 많아 생기게 되었다는 헛제삿밥, 안동 간고등어, 안동 국시 등이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해발 64m 절벽에서 줄을 타고 수많은 불꽃이 다가온다. 강에는 달걀 불이 유유히 떠내려오고, ‘낙화(洛花)야!’라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불꽃이 절벽 아래로 폭포처럼 떨어진다. 한국식 불꽃놀이 축제 선유줄불놀이는 그곳에 모인 이들의 염원을 담아낸 거대한 정화의식이다. 그 누구를 위해서가 아닌 온전히 자신의 의지로 살아가겠다는 구산영은 실명의 위기 속에서도 희망과 소원이 별빛처럼 빛나는 그곳에서 환하게 미소 짓는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전서로 186-8

무섬마을
역사관광경상북도

무섬마을

무섬마을은 물 위에 떠 있는 섬을 뜻하는 ‘물수리’의 우리말 이름을 가진 전통마을이다. 때로는 중국 섬계 지역의 지형과 비슷하다 하여 ‘섬계마을’이라고도 불린다. 40여 가구의 전통가옥이 마을을 이루고 있는데 이 중 30여 채가 조선 후기 사대부가 가옥이며, 역사가 100여 년이 넘는 가옥도 16채나 남아있어 조상들의 자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30여 년 전까지 마을과 외부를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였던 외나무다리가 마을의 대표 상징물이다. 무섬마을에는 무섬외나무다리 축제, 무섬 문화재 등의 축제와 행사가 있고, 전통한옥체험과 무섬 문화촌 전통문화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전통한옥체험에서는 김욱 가옥, 김천한 가옥, 김태길 가옥 등을 체험해 볼 수 있는데 감상뿐만 아니라 직접 숙박체험을 하며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또한 무섬 문화촌에서는 도자기, 염색체험, 사군자 체험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이 준비되어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 문수면 무섬로234번길 31-12

명품옻골 1616 협동조합
문화관광대구광역시

명품옻골 1616 협동조합

옻골마을은 대암공 할아버지가 1616년 옻골에 입향하면서 40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마을이다. 옻골마을은 대구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이며, 명품옻골 1616 협동조합은 경주 최씨 대암공파의 자손들이 모여사는 옻골마을의 자손들이 운영하는 마을기업이다. 종중원들이 지난 400년의 역사를 전승하고 마을을 지키고 앞으로의 1,000년을 준비하고자 지난 2019년 5월 협동조합을 결성했다. 전래의 풍습과 가치를 지키며 200여 년 된 고가옥을 활용한 한옥스테이, 여러 가지 민속놀이를 통한 체험, 한옥카페를 이용한 전래 전통 음료 개발 등의 사업을 하고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옻골로 195-5

예천 금당실마을
역사관광경상북도

예천 금당실마을

물에 떠있는 연꽃을 닮았다 하여 이름 지어진 금당실마을은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상금곡리 일대에 자리한 마을로, 복원된 초가 6채와 기와가 7채에서 전통한옥민박을 할 수 있는 체험마을이다. 마을에는 양주대감 이유인의 99칸 저택 터를 비롯하여, 초간 권문해의 유적인 종택과 초간정, 용문사, 금곡서원, 추원재, 사괴당 고택, 조선 숙종 때 도승지인 김빈을 추모하는 반송재 고택 등의 문화 유적이 많이 남아 있고, 10여 채의 고택 사이를 미로처럼 이어주는 돌담길이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마을의 또 다른 볼거리는 초간정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금당실 서북쪽의 소나무 숲이다. 금당실 오미봉 아래에서부터 용문초등학교 앞까지 약 800m에 걸쳐 소나무 900여 그루가 울창하게 조성되어 있는데, 수령은 약 200년이나 되었고, 높이는 13~18m 정도의 구불구불하게 자란 자연림이다. 수해방지와 방풍을 위하여 조성되었고, 오늘날은 마을의 휴식처와 행사 중심지로 이용이 되고 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길 118-32

의성 사촌마을
역사관광경상북도

의성 사촌마을

의로운 선비가 많다는 의성의 북부 마을인 사촌마을은 안동 김씨, 풍산 류씨의 집성촌이다. 사촌마을 지명이 붙여진 유래는 마을 주변의 협곡에 의해 사토가 퇴적돼 마을의 땅이 비옥하기 때문에 사촌이라고 붙여졌다는 설과 고려 중기 훈신 김방경의 후예인 김자첨이 안동 회곡에서 1392년 입향하여 중국의 사진촌을 본 따 사촌이라 하였다는 설이 있다. 평범한 시골 마을인 듯 보이지만, 김사원과 유성룡 등 40여 명의 과거 급제자가 배출된 의성 지역의 대표적인 양반마을로 유명하다. 훌륭한 선비를 많이 배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임진왜란과 일제 침략 때는 의병활동의 중심지 역할을 한 곳으로 유서 깊다. 임진왜란 당시 마을 대부분이 불태워져, 현재 남아있는 사촌마을의 고택은 100여 년 전에 지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30여 채의 전통가옥을 볼 수 있고, 대표적인 건물로는 1585년 완공되어 김사원이 학문을 닦고 후배들을 기르기 위해 세운 건물인 만취당이다. 사촌마을에는 지형을 보완하기 위해 사촌리 가로숲을 조성하였는데, 김자첨이 이 마을로 이주해 오면서 서쪽이 허하면 인물이 나지 않는다 해 샛바람을 막아 삶의 터전을 보호하려고 심어 둔 500여 그루의 방풍림이 현재의 사촌리 가로숲이 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방풍림 역할뿐 아니라 아름다운 풍경과 계절에 따라 변하는 다양한 매력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사로잡는다. 이 밖에도 의성의진의 의병 투쟁을 알리고 나라를 위해 싸우다 순국한 의병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의성의병기념관과 사촌마을의 경치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사촌마을 전망대 등이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점곡길 17-1

영암 왕인박사마을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 왕인박사마을

남한의 금강 국립공원 월출산 자락에 위치한 영암왕인박사 권역은 2200년의 역사를 가진 마을로 일본에 한자와 유학을 전한 왕인박사와 풍수지리설의 시조인 도선 국사 탄생지이며 전통기와집과 오래된 정자들, 정겨운 흙담 등 마을 전체가 살아있는 박물관과도 같다. 권역 내 구림마을에는 450여 년 동안 구림대동계가 존속되어 오고 있고 마을중심에 자리한 시유도기의 발상지 영암도기문화센터에는 다양한 전시관광 체험공방이 있어 관광객이 직접 교육을 병행한 도예체험을 할 수 있다. 이곳 영암 왕인박사 권역에서는 주민들(왕인촌)이 다양한 체험프로그램들을 운영하고 있으며 100여 채의 한옥 민박집마다 독특한 개별체험프로그램이 있어 여느 체험마을과는 사뭇 다르다. 월출산국립공원과 왕인박사유적지, 도기문화센터 등 주변관광지와 왕인촌 주민자치회가 네트워크화되어 전통 및 향토문화 웰빙 체험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것이 이 마을의 가장 큰 특징이며 우리나라 체험관광 문화를 선도해 나가는 마을로 손꼽을 만하다. (출처 : 영암 왕인박사마을 홈페이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군서면 구림로 43-14

남도한옥민박마을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도한옥민박마을

무선동 마을은 해남읍에서 5㎞ 정도 떨어진 두륜산 끝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마을이다. 약 30년 전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 한옥으로 조성된 민박 마을로 초창기에 성황리에 운영되다 잠깐 주춤하였지만, 90년대 후반부터 가족 중심의 관광이 시작되고, 시설을 보완함으로써 도시민들로부터 각광을 받고 있는 한옥민박 마을이다. 1977년 처음으로 한옥 민박촌으로 지정되어 16가구의 한옥 가옥을 중심으로 한옥 민박 체험을 할 수 있도록 조성되었다. 마을 내에 있는 두륜사라는 작은 암자가 있다. 마을에 들어서면 제일 우측에 보이는 건물이다. 원래 두륜사라는 이름은 마을 뒤쪽의 두륜산에 있는 대흥사의 옛 이름이다. 예능에 종사하는 사람들 몇몇이 관내 학생들의 체험과 민박 손님들의 체험 활동 등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어 체험 마을로서의 변화를 꿈꾸고 있다. 문화 체험 공연으로 영화 상영과, 판소리, 장구, 북 등을 배워보는 소리체험, 전통 체험으로 한복 예절 체험과 전통차 체험, 도자기 체험, 떡메치기, 떡 만들기, 널뛰기 등의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중 전통 소리 체험은 국악인 채옥란 선생님 지도로 체험을 할 수 있다. 한옥 민박 집들은 대부분 내부가 현대식으로 개수하여, 취사시설을 갖추고 있다. 남도여행은 역시 먹거리를 빼놓을 수 없다. 해남의 대표 음식인 떡갈비와 남도 한정식은 보기만 해도 푸짐한 상차림으로 나온다. 두륜산의 수려한 산세에서 자란 자연산 산나물로 만든 산채비빔밥도 이 지역의 대표적 먹거리이므로 챙겨 먹어 보는 것도 남도 여행의 좋은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인근에 두륜산, 대흥사, 윤선도 관광지, 김남주 시인 생가 등이 있어 볼거리가 많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삼산면 민박촌길 44

보성 강골마을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보성 강골마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보성군 득량면에 위치한 강골마을은 광주 이씨 집성촌으로 전통 한옥과 농촌 풍경이 어우러진 고즈넉한 마을이다. 득량마을이라고도 불리며 오봉산과 득량만이 가까워 아름다운 자연경관을 함께 즐길 수 있다. 조선 후기 고택들이 잘 보존되어 있어 옛 정취를 느끼기 좋으며 드라마 촬영지로도 알려져 있다. 2012년에는 국가기록원의 기록사랑마을로 선정되었고 이금재 가옥·이용욱 가옥·이식래 가옥과 열화정은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돼 역사적 가치를 더한다. 마을 중심에는 가장 규모가 큰 이진래고택이 자리하고 있으며 사랑채와 별채는 전통 고택 숙박 공간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용욱 가옥의 솟을대문과 담장 구조, 대숲에 둘러싸인 이식래 가옥, 연못과 숲이 어우러진 열화정 등은 한국 전통 건축과 조경의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또한 우물물 사용과 아궁이 불 지피기 등 전통 생활 방식을 체험할 수 있어 현대적인 일상에서 벗어나 느린 시골의 정취를 경험하기 좋은 곳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보성군 득량면 강골길 45-1

강원특별자치도 탄광문화촌
문화관광강원특별자치도

강원특별자치도 탄광문화촌

과거 대표 에너지원인 석탄과 탄광촌 광부들의 생활 모습을 ‘영월 마차리 탄광촌의 흔적’으로 재조명하여 과거 검은 황금으로 불리었던 석탄의 폭넓은 이해와 산업 역군의 주역으로 활약해 온 탄광 근로자들의 생활을 체험할 수 있는 테마형 문화공간으로 조성하였다. 지나간 세대에게는 아련한 향수와 감흥을 자라나는 세대에게는 탄광 문화에 대한 이해와 색다른 재미를 제공하는 복합 체험 공간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북면 밤재로 351

자천대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자천대

자천대는 최치원과 관련된 일화가 남아 있는 군산 지역의 대표적인 누정 건축물이다. 상평초등학교 북서쪽의 옥구향교 경내에 위치하고 있다. 원래 옥구군 선연리의 동산에 있었으나, 1934년 군용 비행장 안으로 편입되자 당시 유림들과 옥구군수가 이를 옥구향교로 옮기고 경현재라 하였다가 1967년에 다시 건립하였다. 자천대는 본래 옥서면 선연리 하제 인근 바닷가의 작은 바위산을 칭하는 명칭이었는데 그 산 위에 2층 정자가 자리하고 있어 이 또한 자천대라 불렀다. 신라 시대 최치원이 당나라에서 돌아왔을 때 세상의 인심이 어지럽고 어수선 하자, 이곳에 올라 책을 읽으며 근심과 걱정을 달랬다고 전해지는 곳이다. 자천대는 이 지역의 대표적인 누정 건축으로서의 건축적 가치와 지역에서 최치원과 관련된 여러 유적 중 하나로서의 의의를 갖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구읍 광월길 33-50

옥산서원(군산)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옥산서원(군산)

옥산서원은 서기 1929년에 건립된 서원으로 국권을 잃은 상황에서도 충, 효와 예절을 숭상하는 전통문화를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던 이 지역 유림(儒林)들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본 서원에서는 신라시대의 성현 문창후 최치원 선생을 비롯하여 옥구 지역의 문무 및 충효에 특출한 선현(先賢) 14분을 모시고 유림들의 배향으로 매년 음력 9월 계정일(季丁日)에 대제(大祭)를 올리고 있다. 옥산서원에는 사당인 옥산원, 강당, 내삼문, 원직사, 외삼문 등 총 5채의 건물이 있다. 그중 중심 건물인 옥산원은 낮은 콘크리트 기단에 자연석 덤벙 주초를 놓고 그 위에 원주를 세운 전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형태이다.

전북 군산시 옥구읍 상평리 627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염의서원

염의서원은 최치원과 군산 지역의 유학자인 고경과 고용현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한림마을 북서쪽의 산자락에 남서향 하여 자리 잡고 있다. 1685년에 창건하여 1804년(순조 4)에 사액을 받았다.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0년 재건립하였다. 서원 내 주요 건물로는 본전인 한림사를 비롯하여 유허비각, 어필각, 내삼문, 외삼문, 경부당, 원직사, 전사재 등이 자리하고 있다. 어필각에는 1908년 순종 황제가 내린 어필을 안치하고 있다. 매년 음력 9월 중정일에 대제를 올린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산면 염의서원길 156-9

군산 신흥동 일본식가옥(히로쓰 가옥)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군산 신흥동 일본식가옥(히로쓰 가옥)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구 히로쓰 가옥)은 일제강점기에 군산에서 포목점과 소규모 농장을 운영하며 군산부협의회 의원을 지낸 일본인이 건립한 일본식 2층 목조 가옥이다. ‘히로쓰 게이사브로’가 지은 주택으로 알려져 있으며, 일본식 주택의 특성이 잘 나타나는 건축물로 일제 강점기 군산에 거주하였던 일본 상류층 주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1945년 해방 후 적산 가옥으로 구 호남 제분으로 넘어가 한국 제분의 소유로 되어 있고, 2005년 6월 18일 국가 등록 문화유산 제183호로 지정된 이후 군산시에서 관리하면서 관람객을 위해 개방하고 있다. 영화 ‘장군의 아들’과 ‘타짜’를 촬영하기도 하였으며, 수많은 한국 영화가 이 주택에서 촬영될 정도로 일반인에게 잘 알려져 있다. 군산 신흥동 일본식 가옥은 군산 원도심의 남서쪽 가장자리인 신흥동의 주택가 안쪽에 남서향하여 자리 잡고 있다. 대규모 목조 주택 2층 건물로 벽체는 심벽에 목재 비늘판벽과 회벽으로 마감하였고, 지붕은 박공지붕과 합각지붕에 기와를 얹어 마감하였다. 자연석을 깐 기단 위에 방형 초석이 놓이고 그 위에 가느다란 사각기둥이 세워져 지붕 가구가 짜인 방식이다. 현관 부분의 지붕은 박공지붕과 모임지붕 형식인데, 처마 밑에 함석판을 덮은 차양이 덧달아져 있다. 2층 부분의 지붕은 합각지붕 형식으로 처리되었으며, 전면에 부섭지붕이 달려 있다. ‘ㄱ’ 자 모양으로 붙은 건물이 두 채 있고, 두 건물 사이에는 꾸며놓은 일본식 정원이 꾸며져 있으며, 정원 내에는 큼직한 석등이 있다. 1층에는 온돌방, 부엌, 식당, 화장실 등이 있고, 2층에는 일식 다다미방과 도코노마 등이 있어 일제강점기 일본인 지주의 생활양식을 엿볼 수 있으며, 아울러 이들의 농촌 수탈 역사를 알 수 있다. 본채 뒤쪽으로 뒷마당에는 또 다른 부속채와 우물, 화장실 등이 배치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구영1길 17

춘천지구 전적비(춘천지구 전적기념관)
문화관광강원특별자치도

춘천지구 전적비(춘천지구 전적기념관)

한국전쟁 때 국군 6사단이 치열한 방어전을 펼쳤던 춘천지구 전투를 기념하기 위해 만든 전적비이다. 춘천 지구에 배치된 6사단 7연대는 SU-76 자주포 부대를 앞세우고 침입한 적 2사단을 춘천의 북쪽 관문인 소양강교를 중심으로 소양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굳세게 막았다. 대전차 포 중대의 소대장인 심일 소위가 대전차 포와 육탄 공격으로 적 자주포를 파괴한 것도 바로 이때였다. 홍천 지구에 배치된 6사단 2연대도 자주포 부대와 T-34 전차를 선두로 침입한 적 12사단을 막아 싸웠다. 홍천 북쪽 말고개를 중심으로 방어선을 구축하고, 특공대를 편성해 적 자주포와 전차를 파괴하며 효과적인 지연전을 수행한 것이다. 춘천·홍천 지구의 방어전은 서울에 북한군이 진입한 6월 28일까지도 성공적으로 지속됐다. 그러다가 육본의 지시로 부대 편제를 유지한 채 28일 오후부터 원주 방면으로 후퇴했다. 적의 파상적인 공격을 막아내며 치명적인 타격을 가한 춘천·홍천 지구 전투는 6·25전쟁 개전 직후 아군이 방어전에서 승리한 유일한 전투였다. 이로써 북한군의 기습 공격 전략에 일대 타격을 줬을 뿐만 아니라 아군의 주력이 한강 방어선을 형성하고, 유엔군이 참전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를 벌어준 매우 귀중한 승전이었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수변공원길 45 (삼천동)

군산 해망굴
문화관광전북특별자치도

군산 해망굴

해망굴은 군산시 월명산 자락 북쪽 끝에 위치한 터널로, 해망동과 군산 시내를 연결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1926년 군산항 제3차 축항공사의 일환으로 화물 하차장 확대, 부잔교 설치, 창고 건설과 함께 조성되었으며, 길이 131m, 높이 4.5m 규모로 완공되었다.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 지휘소로 이용되면서 연합군의 공습을 받아 내부에 총탄 자국이 남아 있는 등 근현대사의 흔적도 간직하고 있다. 과거에는 차량 통행이 가능했으나 현재는 자동차 출입이 제한되고 보행자만 통과할 수 있다. 해망굴은 군산항과 구도심을 연결하며 군산 근대화의 상징적 유산으로 평가된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군산창2길 48

이영춘가옥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이영춘가옥

일제강점기 군산에서 대규모 농장을 경영하던 일본인 대지주 구마모토 리헤이가 지은 별장주택으로 일 년에 봄철과 추수철에 농장을 방문할 때 임시 거처로 사용되던 별장과 같은 건물로 서구식과 한국식, 일본식의 여러 건축양식이 절충된 다양한 양식적 특성을 띄며, 해방 후 우리나라 농촌 보건위생의 선구자 쌍천 이영춘 박사가 거주하며 이영춘 가옥이라 불리게 되었다. 아름다운 건물 외관으로 인해 빙점, 모래시계, 야인시대 등 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 장소가 되고 있다. 쌍천 이영춘 박사는 한국의 슈바이처라 불리는데 호인 쌍천(雙川)은 두 가닥의 샘물 즉 육체적 질병을 치유하는 샘물과 영혼을 치유하는 샘물이라는 뜻이다. 평안남도 용강군에서 1903년 10월 태어났다. 평양고보 사법과 시절 담임선생이던 경성제대 와타나베 교수의 소개로 전북 개정의 구마모토 농장에 소속된 2만여 명 소작농 가족을 돌보기 위해 1935년 4월 33세의 젊은 나이에 자혜의원 원장으로 부임하게 된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양호 교사제와 의료보험 조합을 실시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동개정길 7

보령 노을광장
테마파크충청남도

보령 노을광장

보령 노을광장은 보령 대천해수욕장 남부에 위치한 광장이다. 대천해수욕장 북부에 머드광장이 있다면 남부에는 노을광장이 있다. 노을광장은 해수욕장의 일원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으로 많은 관광객들의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해수욕장에서 아름다운 노을을 볼 수 있는 곳이자 일출, 일몰 명소로 알려져 있다. 광장 주변에는 야영장, 호텔, 음식점 등 각종 편의시설이 있다. 보령 노을광장은 국도 36호선, 77호선, 지방도 607호선에서 머드로, 대해로 등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서해안고속도로 대천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대천해수욕장 외에 짚스카이라운지, 남포방조제, 대천항, 보령해저터널, 보령해저터널홍보관 등이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해수욕장4길 7

역사관광충청남도

오천향교

오천향교는 1901년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된 향교이다. 현존하는 건물은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대성전이다.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소장전적은 필사본인 청금록과 서재유안 등이 있다. 오천향교는 오천중앙로, 향교길을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주변에는 보령향교, 보령에너지월드, 갈매못 순교성지 등이 있어 연계관광을 즐길 수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오천면 교성리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최호장군유지

최호장군유지는 조선 선조 때의 무신 최호 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영조 5년(1729)에 최호의 후손 최호선이 세웠으며, 최호의 아버지 최한정과 최호의 아들과 손자인 최몽란, 최효설의 위패를 함께 모시고 있다. 군산시 개정면 발사리에서 태어난 최호 장군은 무장으로서 여러 관직을 거치고 정유재란 때 칠천량 해전에서 전사하였다. 이곳에는 최호 장군과 관련된 유품과 군산시 향토 문화유산인 삼인보검 등이 보관되어 있다. 최호 장군 유지는 사당, 유물전시관, 묘역으로 조성되어 있다. 사당을 들어서면 전면에 ‘충의사’라는 현판이 걸린 건축물이 눈에 들어오는데, 글 뜻 그대로 나라를 위해 목숨 바친 충신의 의로운 발자취를 느끼게 한다. 조선 시대 사당 건축의 전형적인 특성을 보여주는 건축적 가치와 우리나라 및 지역에서 최호 장군이 갖는 중요한 의의를 높이 평가하여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원발산길 33-2

군산 개정면 구 일본인농장 창고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군산 개정면 구 일본인농장 창고

시마타니금고는 일제 강점기 군산 지역의 대표 농장주였던 시마타니 야소야가 1920년대에 지은 금고용 건물이다. 시마타니는 우리 민족의 문화재 수집에 관심을 가지고 발산리 석등과 오층석탑을 비롯한 수많은 예술품을 불법 수집하였던 인물이다. 이 건물은 시마티니가 수집한 골동품을 보관하던 장소였다. 건물은 3층의 콘크리트 건물로 입구에는 철제 금고문이 달려 있고 창문은 쇠창살과 철판으로 이중 장금 장치가 되어 있다. 현재 발산초교 자리에 농장을 만들었던 시마타니 야소야는 일본의 야마구찌현 구카군 출신으로 일본에서 주조업으로 재산을 모은 후 일본 청주의 원료인 값싼 쌀을 찾아 군산에 온 자인데 그는 1903년 12월 당시 돈 7만원으로 발산리 인근의 토지를 매입하면서 농장을 만들기 시작하여 1909년이 되자 임피 외에도 2개 면에 486정보의 농지를 소유한 농장주가 된다. 땅에 대한 집착이 유난히 강했던 시마타니 독은 해방 후 자신의 농장을 지키기 위해서 미군정청에 한국인으로 귀화를 신청했고 다른 일본인이 떠난 후에도 끝까지 귀국을 거부했고 그 덕분에 그는 군산의 마지막 일본인 농장주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지만 결국 그도 미군정청의 강제적 권유로 손가방 2개만을 지닌 채 부산항에서 마지박 귀국선에 몸을 실어야 했다. 이 건물은 반지하인 1층과 지상 2층으로 이어진 3층까지 하나의 구조물인 일체형으로 만들고 내부의 각층은 나무마루로 구분된 건물이다. 외부로 통하는 창문에는 쇠창살을 치고 그 바깥쪽으로 철문을 달아놓아 2중의 방범장치가 되어 있다. 출입문은 USA마크가 선명한 문을 달아 놓았는데 2차 세계대전 이전 미국에서 수입한 수입품임을 알 수 있다. 금고의 반지하에는 옷감과 음식류가 있었으며 2층에는 농장의 중요서류와 현금이 있었고, 3층에는 한국의 고 미술품이 다수 소장되어 있었다고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53-5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