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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521페이지

총 12,561개의 관광지 중 521페이지입니다.

군산 발산리 석등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군산 발산리 석등

발산리 석등은 고려초기 작품이며 높이는 2.5m 로 기둥돌의 용무늬 조각이 특징이다. 완주군 고산면 삼기리 봉림사지에서 일제강점기 때 시마타니가 반출하였다. 현재 위치는 발산초등학교 건물 뒤편의 정원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발산초등학교가 있는 곳은 1900년대 일본인 농장주 시미타니의 집과 농장이 있던 곳으로 그 당시 일본인 농장주가 수집했던 문화유적이 다량 보존되어 있었다. 하대석에는 8장의 연화복련(연꽃잎 2장이 겹쳐진 모습)이 새겨져 있고 간주석에는 이빨을 드러내고 웃고 있는 용의 모습이 해학적으로 그려져 있다. 이처럼 기둥돌에 용이 새겨진 석등은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작품이다. 또한 지대석은 현재 전북대학교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발산리육각부도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발산리육각부도

발산초등학교에 자리하고 있는 육각부도는 1903년 일제 강점기 대규모 농장의 농장주였던 시마타니 야소야가 불법으로 획득한 다른 석조 문화유산과 함께 발산 초등학교 후원에 전시하였다. 육각부도의 출처나 어느 절터에서 가져온 것인지 알 수는 없으며 현재 발산리오층석탑 및 석등과 함께 자리하고 있다.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며, 높이 175㎝로, 육각의 2단 받침돌 위에 탑신과 옥개석을 올린 형태이다. 육각의 탑신 2면에는 문(門) 형태를 새겼고, 4면에는 사천왕상이 희미하게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 이 승탑은 보기 드문 6각의 승탑이라는 점과 조각 수법이 뛰어나다는 데서 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군산 발산리 오층석탑

발산리 오층석탑은 현재 군산시 개정면 발산 초등학교 건물 후원에 자리하고 있다. 원래 완주군 고산면 삼거리 봉림사 터에 있었는데,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 대규모 농장주였던 시마타니 야소야가 자신이 소유한 농장 사무실이었던 이곳으로 옮겨왔다고 한다. 2단의 기단 위에 5층의 탑신을 올린 형태였으나 지금은 탑신의 한 층이 없어지고 4층까지만 남아있다. 발산리 오층석탑은 2층의 높은 기단에서 신라 탑의 특징을 엿볼 수 있는 고려 시대 탑으로 전라북도 지역의 석탑 문화를 보여주는 탑이라고 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개정면 바르메길 43

군산 임피역사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군산 임피역사

군산시 임피면 술산리에 자리한 임피역사는 1936년경 군산선의 철도역사로 건립된 건물이다. 1912년 호남선의 지선으로 완공된 군산선에 위치한 임피역사는 본래 임피 읍내리에 만들어져야 하는데 읍내리의 유림들이 풍수지리적 이유로 반대하여 술산리를 경유하게 되었다는 구전이 전한다. 일제강점기 때 군산선은 전라남북도의 농산물을 군산항을 통하여 일본으로 반출하는 중요 교통로로서 수탈의 아픈 역사를 지니고 있다. 임피역은 당시 농촌지역 소규모 간이역사의 전형적 건축형식과 기법을 잘 보여주며, 원형 또한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적, 철도사적 가치가 높은 건물이다. 1995년 4월 1일 배치간이역으로 격하되었고, 2005년 9월30일 화물 취급이 중지되었다. 현재는 객차전시관·시실리광장·방죽공원을 조성하고 재래식 화장실·우물터·오포대 등을 만들어서 이 고장 출신 소설가 채만식의 작품의 이야기와 엮어서 관광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임피면 서원석곡로 37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
자연관광충청남도

서산 해미읍성 회화나무

해미읍성 남부 진남문 앞에는 수령 약 300년으로 추정되는 큰 회화나무가 있다. 지역주민들에 의해 호야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조선 말기에는 나무 뒤에 박해당한 천주교 신자를 가두어 두었던 감옥이 있었는데, 1790~1880년 사이 이곳 감옥에 수감된 천주교 신자들을 이 나무의 동쪽으로 뻗어 있던 가지에 매달아 고문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역사성을 인정받아 2008년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한편, 동쪽 가지는 1940년대에, 가운데 줄기는 1969년 6월 26일에 폭풍으로 부러졌으나 여러 차례 외과 수술을 시행하고 토양을 개량하여 보호 및 관리하고 있다. 해미읍성에는 그 외에도 내아, 동헌, 객사 등 다양한 옛 건물을 보존하고 있다. 주변에는 역시 천주교 박해와 관련된 해미순교성지(여숫골) 뿐만 아니라 해미향교, 해미읍성역사캠핑장, 해미시장 등이 있다. 또한 서산 아라메길, 해미국제성지길이 지나므로 연계하여 관광해도 좋다.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동문1길 36-1

충렬탑(강원)
문화관광강원특별자치도

충렬탑(강원)

충렬탑이 자리한 우두산 지역은 6·25 개전 초기(1950.6.25~6.28) 국군 제2군단의 창설 모체부대였던 제6사단 장병들이 애국적인 춘천시민과 한 덩어리가 되어 인해전술의 파상공격을 자행해 온 북한군 제2군단 예하 제2사단, 제7사단의 주력을 섬멸함으로써 한국전쟁 초기 전선에서 유일하게 승전보를 올렸던 유서 깊은 곳이다. 당시 북한군이 춘천 및 우두산 전투에서 대패함으로써 속전속결의 남침계획에 결정적 타격을 주었고, 적 제2군단장이 전격 해임되는 등 6·25 전사상 가장 빛나는 전승의 기록을 남겼던 전적지이다. 특히, 이 당시 전투에서 춘천시민, 학도호국단학생 그리고 제사공장 여성근로자들이 국군장병과 더불어 탄약을 운반하고 전투에 참가하는 등 시산혈해의 격전을 벌여 빛나는 승리를 가져옴으로써, 민·관 총력전의 귀감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곳 주민들의 뜨거운 반공 애국정신과 자유 수호 의지를 만천하에 드높였던 성스러운 곳이다. 6·25 당시 전사한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해 1955년 3군단 제29사단 장병들이 건립하였으며, 매년 현충일 행사가 실시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우두동

조양루
역사관광강원특별자치도

조양루

조양루는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중앙로 1가, 강원특별자치도청 앞에 위치한 건축물로, 강원특별자치도의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어 있다. 1646년 춘천지사 엄황이 관아 건물인 문소각을 신축할 때 위봉문과 함께 건립되었다. 조선 고종은 유사시 춘천을 피란처로 삼고 이궁 설치를 명하였으며, 이에 따라 초대 춘천유수 김기석이 공사를 시작하였다. 1890년 2대 유수 민두호가 문소각과 부속 시설을 확장하며 이궁을 완성하였다. 조양루는 이궁 내에서 임금의 침전이자 집무소였던 문소각의 문루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와 전란을 거치며 춘천 이궁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현재는 조양루와 위봉문만이 남아 있다. 1908년 우두산으로 이전되었고, 한국전쟁 중 일부가 파손된 후 1969년 보수되었으며, 2013년에 현 위치로 복원되었다. 조양루는 관아건물의 전형적인 양식을 보여주는 동시에, 춘천 이궁의 유일한 잔존 건물로서 역사적 의의가 크다. 현판은 조선 후기 명필 자하 신위가 쓴 해서천자문의 글씨를 집자하여 복각한 것이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로, 누각 아래에 삼문이 설치된 문루 형식을 띠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중앙로 1

서산여미리석불입상
역사관광충청남도

서산여미리석불입상

이 불상은 1970년대에 지금의 위치에서 1㎞ 떨어진 용장천 정비사업 도중 발견되어 지금의 언덕으로 옮긴 것이다. 이곳에서 용장천을 따라 5㎞쯤 거슬러 올라간 상류에 2구의 불상이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떠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있으나 정확하지는 않다. 화강암으로 얼굴과 손등을 조각했는데 옆과 뒷면에는 거친 못 자국이 남았고 목이 부러져 있던 것을 접착하였다. 상부에는 사다리꼴의 얼굴에 관을 쓰고 여기에 작은 부처를 새겼는데 심하게 닳아 있다. 옷은 왼쪽 어깨에서 걸쳐 내려와 형식적인 반원 모양을 그리고 있다. 왼손은 치켜들고 오른손은 아래를 받치고 있다. 전체적인 기법이 형식적이고 입체감이 없어서 고려시대에 지방에서 자체적으로 제작된 불상으로 생각된다. 이곳은 서산 아라메길 천년미소길이 경유하므로 연계하여 관광해도 좋다. 그 외에도 주변에 유기방가옥, 여미리 비자나무, 달빛미술관 등이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여미리

서산 유기방가옥
역사관광충청남도

서산 유기방가옥

1900년대 초에 건립되었으며, 면적은 4,770㎡이다. 일제 강점기의 가옥이며, 향토사적, 건축학적으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어 2005년 10월 31일 충청남도 민속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기방 가옥은 송림이 우거진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남향하여 자리하고 있다. 북으로 ㅡ자형의 안채와 서측의 행랑채, 동측에는 안채와의 사잇담과 근래에 지은 주택이 안마당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 안채 앞에 중문채가 있던 것을 1988년에 헐어내고 현재와 같이 누각형 대문채를 건립하였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이문안길 72-10

서산객사
역사관광충청남도

서산객사

객사는 조선시대의 지방 관아 건물로 고을 수령이 임금의 위패를 모시고 예를 올리는 정청과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나 외국의 사신이 머물렀던 좌우익실로 구성되어 있다. 서산객사는 본래 지금의 시청인 관아 내에 있었다. 처음 세워진 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시청 내에 남아 있는 외동헌과 관아문의 기법과 같은 것으로 보아 조선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위치로 이전된 것은 일제강점기의 일이다. 현재 남향으로 세워진 이 건물은 앞면 8칸, 옆면 2칸의 규모로 잘 다듬어진 화강석 기단 위에 세워졌다.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자리를 옮긴 이후 서산읍사무소, 서산농촌지도소, 서산문화원으로 사용하다가 1994년에 학계의 고증을 받아 복원, 정비하여 비로소 옛 모습을 찾고 관광지화되었다. 이곳은 서산시청과 가까우므로 원래 관아 위치에 남아있는 외동헌, 관아문도 함께 관람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주변에 서광사, 서산향교, 서산중앙호수공원 등이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동헌로 149

성암서원
역사관광충청남도

성암서원

성암서원은 유숙과 김홍욱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유숙(1324∼1368)은 고려 문신으로 홍건적의 난 때 공을 세워 서령군으로 봉해지고 일등공신 칭호를 받았으나, 공민왕 14년(1365) 그의 충직을 두려워하던 신돈에게 교살당하였다. 김홍욱(1602∼1654)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황해도 관찰사 등 여러 벼슬을 거친 분이다. 효종의 심기를 건드리는 발언으로 죽음에 이르렀는데 ‘언론을 가지고 살인하여 망하지 않은 나라가 있었는가’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숙종 45년(1719)에 세운 이 서원은 경종 1년(1721)에 나라에서 내린 ‘성암서원’이라는 현판을 받은 사액서원이다.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24년에 다시 세웠다. 대문 격인 외삼문을 들어서면 동재와 서재가 마주 보게 배치되어 있고, 유숙과 김홍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다. 이 서원에서는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성암1로 45 (읍내동)

서산향교
역사관광충청남도

서산향교

서산향교는 조선 태종 6년(1406)에 서문 밖에 세워졌다가 그 뒤 선조 7년(1574)에 군수인 최여림이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향교 안에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동재·서재, 내삼문, 외삼문이 있다.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 유학자 7명과 우리나라 성현 18명 등 25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배우는 공간인 명륜당은 앞면 8칸, 옆면 2칸 규모로 되어 있다. 명륜당 앞마당에는 조선 정종 때 심었다는 500년 정도 된 은행나무가 있다. 이 은행나무는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향교1로 26

서산향교 은행나무
자연관광충청남도

서산향교 은행나무

충청남도 지정 기념물 제116호로 지정된 서산향교 경내에 있는 거목이다. 1982년 10월 15일 시나무로 지정되었다. 둘레 430cm, 높이 33m 소유자 및 관리자 서산향교로 되어 있다. 이 나무는 조선 이조정랑 한여현이 지은 우리 지역 최초의 군지인『호산록(1619)』 의 향교조에 선인이 은행나무 네 그루를 심었다고 전해지는데 이들 나무 중 하나로 추정수령이 430년으로 역사가 깊다.

충청남도 서산시 향교1로 26

해미국제성지
사찰충청남도

해미국제성지

이곳은 1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자행된 천주교 박해 때 충청도 각 고을에서 붙잡혀 온 천주교 신자 1,000여 명이 생매장당한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해미 현감이 충청좌도의 국사범을 처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으므로 천주교 신자들을 해미읍성 서문 밖의 돌다리에서 처형하였다. 그런데 1866년 병인박해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자 해미천에 큰 구덩이를 파고 모두 생매장하였다고 한다. 당시 죽음을 앞둔 천주교 신자들이 (예수 마리아)를 부르며 기도를 하였는데, 마을 주민들이 이 소리를 (여수머리)로 잘못 알아들어 이곳을 (여숫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고 전한다. 그 후 1935년 서산성당 범바로 신부가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순교자들의 유해 중 일부를 발굴하면서 박해의 전모가 드러났다. 발굴된 유해는 상홍리 공소에 임시 안장되었다가 1995년에 이곳으로 다시 옮겨와 보존 중이다. 그리고 천주교 신자들이 홍보, 모금 활동을 벌여 2003년에 성지를 조성하여, 해미성지성당과 함께 16m 높이의 (해미순교탑), (무명순교자의 묘)를 건립하였다. 2014년에는 로마 교황청이 해미 순교자 3명을 가톨릭교회 공적 공경 대상인 복자로 추대하고 교황 프란체스코가 직접 방문하였다. 이곳은 서산 아라메길 해미국제성지길의 시종점이기도 하다. 해미국제성지길을 따라가면 내포 지역에서 해미로 넘어가는 순교자 압송로였던 한티고개가 있다. 주변에는 그 외에도 해미읍성, 해미향교, 해미시장, 산수저수지 등이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성지1로 13

해미향교
역사관광충청남도

해미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해미향교는 조선 태종 7년(1407)에 정해현(貞海縣)과 여미현(如美縣)이 해미현(海美縣)으로 합쳐지면서 세웠다. 그 뒤 조선 헌종 10년(1844)에 고쳐 지었고, 1924년에 보수를 하였다.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중국 유학자 9명과 우리나라 성현 18명 등 27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주변에는 해미읍성, 해미순교성지(여숫골) 등이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해미향교길 2-13

역사관광경기도

황희선생묘

조선 왕조를 통하여 가장 망명 있는 재상으로 칭송되었던 방촌 황희 선생의 묘소이다. 고려 공민왕 1년(1389)에 문과에 급제한 후 성균관학록을 지냈으며, 고려가 멸망하자 한 때 시골에 은거하였으나 조정의 요청과 동료들의 천거로 성균관학관으로 제수되었고, 이후 여러 직책을 두루 맡았다. 그는 태종의 극진한 예우를 받으며 6조의 판서, 대사헌 등 요직을 거치면서 문물과 제도를 정비하여 조선 초기 국가 기반을 확립하는데 큰 업적을 남겼다. 태종 대의 관직생활을 통해 얻은 국정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경험을 토대로, 세종 대에는 20여 년간 나라살림을 총괄하던 의정부에서 외교와 문물제도의 정비, 4군 6진의 개척, 문예진흥 등을 지휘하여 세종성세에 크게 공헌하였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정승로88번길 23-73

최영장군묘
역사관광경기도

최영장군묘

고려 말기의 명장으로 고려를 지키려다 처형된 최영 장군의 묘이다. 홍건적을 평정하고 수십 차례에 걸친 왜구의 침입을 막아내는 등 흔들리는 고려의 국운을 바로 잡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명나라에서 철령 이북의 영토를 빼앗으려 하자 요동정벌 계획을 세워 압록강까지 진군하였다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뜻을 이루지 못하고, 1388년 이성계 등의 신진세력에 의해 처형되었다. 묘역은 부인 문화 유 씨(文化柳氏)와의 합장묘로 하나의 봉분으로 조성되었다. 묘제는 원형이 변형되었지만, 석물은 옛 것과 새것이 섞여 있다. 봉분은 고려 말기의 전형적인 직사각 형태이고, 봉분을 보호하기 위하여 아래 부분에 2단으로 둘레석을 조성하였다. 봉분의 정면 왼쪽에는 묘표를 세웠고, 봉분의 정면 오른쪽에는 무민공 충혼비를 세웠다. 봉분 앞에는 혼유석·상석·향로석·문석인 등을 조성하였는데 모두 1970년대에 새롭게 추가한 것이다. 이 묘역은 고려시대의 묘제가 일부 남아있어 학술적 가치가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자동

성령대군묘
역사관광경기도

성령대군묘

성령대군 이종은 조선 태종의 넷째 아들이자 양령, 충령(세종대왕)대군의 친동생이다. 1414년에 대군이 됐으며, 어려서부터 태도가 의젓하고 총명해 부왕의 총애를 받았다. 그러나 14살 때 홍역에 걸려 세상을 떠났다. 태종은 이를 몹시 비통히 여겨 친히 제문을 짓고, 분묘 옆에 대자암자를 지어 대군의 명복을 빌었다고 한다. 성령대군의 묘는 대자산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장대석 3단을 쌓았으며, 주위에 호석을 둘렀다. 묘 앞에는 상석, 장명등을 두었으며 좌우로는 문인석을 배치하였다. 석조물이 많고, 조성양식도 특이해 조선시대의 묘제 연구에 좋은 자료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령길 40 (대자동)

여주 현충탑
역사관광경기도

여주 현충탑

여주시가 국가와 민족을 위해 산화한 호국 영령들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현충탑이다. 여주의 영월근린공원내에 위치해 있으며, 1959년 6월에 건립하였으나, 시설 규모가 작고 부지가 좁아 2005년 6월 1일 다시 세웠다. 현충탑은 조각가 이경순[李慶順]의 작품이다. 여주 도자기의 곡선미를 살리고, 여기에 여의주를 문 용의 몸짓을 소총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현충탑 뒷면에는 호국영령들의 위패벽이, 좌우에는 호국용사상이 설치되어 있다. 탑을 다시 세우면서 14위를 추가해 총 958위의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해마다 1월 1일 아침과 현충일에 군민 추도 및 참배 행사가 열린다..

경기도 여주시 주내로 13

가평향교
역사관광경기도

가평향교

가평향교는 1398년(태조 7년) 세워졌으며, 현재의 건물로는 대성전, 서무, 내삼문, 제실, 명륜당이 있어 전통 향교의 원형을 갖추고 있다. 병자호란 당시 1636년(인조 14년)에 대성전 일부가 파손되어 개축하였고 1950년 한국전쟁 때 대성전이 불 타 휴전 후 새로 지었다. 이후 1980년 대성전과 동무, 내삼문을 수리하고 1985년에 명륜당을 새로 지었으며 2017년 화재로 명륜당이 일부 소실되어 이듬해 복원하였다. 가평향교의 배치는 학문을 닦는 명륜당을 앞쪽에 두고 제례를 드리는 기능을 하는 대성전이 뒤에 놓인 전학후묘의 모습을 하고 있다. 대성전 내부에 공자를 비롯한 다섯 분의 성인의 위패를 봉안하고 동쪽벽으로는 송준길 등 열 분의 현인의 위패를 서쪽에는 주희를 비롯한 열 분의 현인의 위패를 모셔 놓았다.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향교로 23-1

이방실장군묘
역사관광경기도

이방실장군묘

고려 후기의 무신으로 홍건적을 격퇴하는 데 큰 공을 세운 이방실(李房實, 1298~1362) 장군의 무덤이다. 이방실 장군은 충목왕이 원나라에 있을 때 모신 공을 인정받아 왕이 즉위하자 무관의 벼슬인 중랑장에 오르게 되었다. 1359년(공민왕 8)에 4만여 명의 홍건적이 침입해 오자 철주·철화·함종 등에서 관군들과 적을 무찌르는 큰 공을 세워 왕명의 출납과 군기를 맡는 추밀원 부사가 되었다. 1361년(공민왕 10)에 20여 만 명의 홍건적이 다시 침입하여 개경까지 오자 정세운·최영 등 장군들과 합심하여 적을 완전히 물리치고 개경을 수복하였다. 그러나 그의 공을 시기한 간신 김용(金鏞) 등의 모략으로 1362년(공민왕 11)에 살해되었다. 묘역은 그의 두 부인과 합장된 원형 단분의 형태이다. 고려 후기 묘의 원형은 남아 있지 않으며 1978년에 지금의 모습으로 묘역을 정비하였다. 봉분 정면 오른쪽에는 새로 만든 묘표가 있고 봉분 아래로는 둘레석을 설치하였다. 그 앞으로 혼유석·상석·향로석이 차례대로 있고, 하단에는 무석인 1쌍이 있는데 모두 1978년에 새로 만든 것이다. 이 묘역은 경기도의 고려시대 역사인물의 무덤이라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하색리

필리핀군 참전기념비
역사관광경기도

필리핀군 참전기념비

필리핀군 참전기념비는 1974년 국방부에서 건립한 기념물로, 한국전쟁 때 우리나라의 자유수호를 위해 참전한 영령들의 넋을 위로하고 후손들에게 뜻을 전하기 위해 세워졌다. 필리핀군은 아시아국 최초로 우리나라를 위해 1,000여 명이 넘는 군을 파병해 주었고 미국과 영국에 이어 세 번째로 지상군을 파병해 준 나라이다. 1950년 9월 19일에 참전하여 많은 성과를 거두었고, 정전 이후에도 한국의 재건을 위해 많은 지원을 해주었다. 우리 국민의 자유와 평화를 추구하는 모습이며 탑신 전면의 부조는 필리핀 고유 민속 문화를 표현한 것이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관산동

진포대첩 기념탑
문화관광전북특별자치도

진포대첩 기념탑

금강 하구둑 인근 금강호 시민공원에 있는 진포대첩기념탑은 우리나라 최초로 화약을 이용한 함포로 왜구 500여척을 무찌른 최무선의 진포대첩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탑이다. 1999년 개항 1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든 것인데 돛을 상징하는 큰 화강암 날개 모양이 하늘을 향해 솟아있고 두 조형물이 만나는 가장 높은 곳에 진포대첩에서 왜구를 쳐부순 화포가 하늘을 향해 화구를 겨누고 있다. 진포대첩이란 고려말 군산에서 있었던 전투로 우리나라 역사상 최초로 화포를 사용하여 적을 물리친 전투를 말한다. 우왕 6년 8월 왜선 500여척이 진포에 침입하였다. 이때 침입한 왜구는 최소 25,000여 명의 대병력이었다. 이때 고려 조정에서는 나세, 심덕부, 최무선 등의 장군들로 하여금 최무선이 설계한 80여척의 병선과 역시 최무선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화약병기인 화통, 화포를 갖추고 적을 소탕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성산면 강변로 477

진포해양테마공원
테마파크전북특별자치도

진포해양테마공원

진포해양테마공원은 고려 말 최무선 장군이 함포를 만들어 왜선을 500여 척이나 물리쳤던 진포대첩을 기념하기 위하여 2008년에 개관한 해양공원이다. 항만을 끼고 있는 광활한 바다를 배경으로 지금은 쓰지 않는 군대 장비 13종 16대를 볼 수 있다. 월남전 등에 투입되었던 위봉함을 비롯한 해군함정, 장갑차, 자주포, 전투기 등 나라를 지키기 위해 최일선에서 활동하다가 퇴역한 육,해,공군 장비들이 전시 중이다. 군장비 내부 안에 들어가 직접 승선 체험을 할 수 있다. 위봉함 내부에는 진포대첩 모형과 당시에 쓰였던 무기, 최무선 장군이 만든 화포이야기, 군함 병영 생활 체험 등을 전시해놓은 전시관이 마련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내항2길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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