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522페이지
총 12,561개의 관광지 중 522페이지입니다.

병암서원
성주 도씨 서촌계의 랜드마크인 병암서원은성주 도씨 도응유(都應兪)와 경유(慶兪) 형제를 배향하고 있는 서원으로 대구 달서구 용산동 성산 고등학교 옆 대로변에 자리하고 있다. 병암서원의 시작은 인조 3년인 162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성주의 선비 도경유가 낙음정사를 세워 제자들을 가르쳤던 것이 후에 병암서당으로, 다시 병암서원으로 발전했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병암서원도 헐렸으나 후손들이 1924년 현재 위치에 복원했다. 2000년 도시개발계획에 따라 다시 옛 서원을 헐고, 지금의 자리에 강당, 사당, 동재, 서재 등 목조건물 10여 동과 회관, 지하 주차장 등 연건평 560여 평을 새로 건립하고 2003년 5월에 준공하였다. 이 한옥들은 2003년 ‘대구광역시 우수 건축물’로 선정돼 상을 받은 작품들이다. 경내에 황토를 가마에 구워 만든 전돌담장은 경복궁 자경전 꽃담의 일부를 재현하였으며 근래 대구전통문화센터를 통해 한옥 숙박 체험으로 이용하기도 하며 고택 음악회등이 열리는 등 서원이 빗장을 열고 다양한 형태로 시민에게 공간을 제공하는 모습이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새방로 21

송지호관망타워
송지호관망타워는 지상 4층, 면적 278.47㎡ 규모의 관망타워 형태로 2007년 7월 5일 개관하였다. 2024년 3월부터 해양쓰레기를 활용한 비치코밍 전시&체험관이 운영되고 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으로 올라가면 전망 공간을 즐길 수 있는 카페를 이용할 수 있다. 또한 종합관광레저타운으로 새롭게 변모한 송지호는 주변에 송지호해수욕장과 왕곡마을, 오토캠핑장, 해양심층수단지 등 다양한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있어 가족단위 테마체험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고성군 죽왕면 동해대로 6021
한수풀 해녀학교
한수풀 해녀학교는 해녀들의 고령화와 어족자원의 고갈, 작업여건의 어려움으로 점차 사라져가는 해녀문화를 젊은 세대에 전수하자는 취지에서 주민자치 특성화 사업으로 시작되었다. 그동안 미국, 캐나다, 일본등 외국 국적의 외국인을 비롯한 전국 각지에서 참여하고 있으며, 직업군 또한 공무원, 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작가, 기자, 약사, 통역사, 학생, 주부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분들이 해녀양성 교육에 참여하여 졸업하였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한림해안로 623-6

인천내동성공회성당
영국 해군 종군 신부 고요한 주교 등 선교 동역자 6명이 1890년 9월 29일 인천항에 첫발을 내디뎌 선교활동을 시작하였으며, 초대 성당 건물은 1891년 9월 30일 성당을 준공하였다. 1902년에는 한때 러시아 영사관으로, 1904년에는 성공회 신학원으로 1956년까지 운영되었으며, 당초 건물은 6·25 전쟁 시 소실되었으나 1956년 6월 23일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 형태는 지붕의 목조 트러스를 제외하고, 외벽과 주요 부재는 화강암으로 견고하게 쌓아 올린 중세풍의 석조이나 한국의 전통적인 목구조 처마 양식을 가미하였으며 창호 및 벽체 부분의 처리가 뛰어나다.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개항로45번길 21-32
홍예문
무지개처럼 생긴 문이라는 뜻의 홍예문(虹霓門)은 철도 건설을 담당하고 있던 일본 공병대가 1906년 착공하여 1908년에 준공하였다. 응봉산 산허리를 잘라 높이 약 13m, 폭 약 7m의 화강암 석축을 쌓고 터널처럼 만든 석문(石門)으로, 면적은 1,952.6㎡이다. 건설 당시 인천광역시 중앙동과 관동 등에 거주하던 일본인들의 수가 급격히 늘자 만석동 방면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기 위해 이 홍예문(을 뚫었는데 일본인들은 혈문(穴門)이라 불렀다. 공사를 진행할 때 예기치 못한 거대한 암석을 만나 공사 기간이 오래 걸렸다 한다. 당시 일본의 토목공법을 알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서 원형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홍예문을 통과하면 폭이 좁은 2차선 도로가 지나며, 홍예문 위쪽 길에 서면 인천항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출처 : 국가유산청)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송학동3가

제물포구락부
개항기 인천 제물포에 거주하던 미국, 영국, 독일, 프랑스 등 외국인들의 친목을 돕는 사교장으로 사용하기 위하여 1901년에 지었다. 벽돌로 된 2층 건물로 지붕을 양철로 덮었으며 내부에는 사교실·도서실·당구대 등을 마련하였고, 따로 테니스 코트도 있었다. 제물포구락부는 1953년부터 1990년까지는 인천시립박물관으로 이용하였고, 1990년부터 2006년까지 인천문화원으로 사용되었으며, 2007년 제물포구락부로 재탄생하였다. 새롭게 단장한 제물포 구락부는 영국, 이탈리아, 러시아, 독일 등의 국가들과 인천국제문화교류페스티벌을 진행하는 등 지금도 다양한 문화에 관심이 많은 어린이, 청소년, 일반 시민들의 문화 교류 창구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자유공원남로 25

(구)인천일본제58은행지점
이 건물은 일본 오사카에 본점을 둔 제58은행의 인천지점으로, 일제강점기 조선에서의 금융 활동을 위해 설립되었다. 이후 여러 은행들과 합병되어 야스다은행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광복 이후에는 조흥은행 인천지점으로 사용되었으나, 1958년 조흥은행이 새로운 건물을 지어 이전하면서 이 건물은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로 활용되었다. 현재는 요식업조합 사무실로 사용되고 있다. 건물은 2층 규모로, 드물게 볼 수 있는 발코니와 지붕창이 특징이다. 특히 2중 경사로 된 지붕 구조는 프랑스식 분위기를 자아내며, 전반적으로 르네상스 양식을 따르는 독특한 외관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건축적 가치 덕분에 근대 건축유산으로서 보존 가치가 높다.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신포로23번길 69-1 제물포구음식업지부

구 일본우선주식회사 인천지점
해안동에 있는 구 일본우선(郵船)주식회사 인천지점 건물은 개항 이후 인천의 해운업을 독점했던 일본 운송회사의 사옥이었다. 일본우선(郵船)주식회사는 당시 인천의 해운업을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으며 지금도 도쿄에 본사를 두고 해운업을 계속하고 있다. 이 건물은 당시 업무용 건물로서 규모가 큰 편으로 붉은색 지붕에 외벽을 노란색 타일로 처리했다. 이 건물은 지금 남아 있는 우리나라 근대 건축물 중 상당히 오래되었고, 종교시설과 공공시설이 아닌 민간 소유의 건물 중에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으며 근대문화 유산으로서 보존 가치가 높다. 최근까지도 해운업 관련 회사의 사무실로 이용되었으며 우리나라 해운 산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건물로 가치가 있다.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제물량로218번길 3 (해안동1가)

우암사적공원
우암사적공원은 대전 동구에 위치한 도시근린공원으로 조선 후기 대유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학문을 닦던 곳이다. 1991년부터 1997년까지 장판각, 유물관, 서원 등의 건물을 재현해 1998년 4월 17일 사적공원으로 새롭게 탄생했다. 조선 후기 이 땅에 유교사상을 꽃피운 우암 송시열 선생의 뜻을 기리고 보존하기 위해 조성된 이곳은 송시열이 말년에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에 정진하던 남간정사, 건축미가 뛰어난 기국정, 송시열 문집인 송자대전판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공원 곳곳이 잘 단장되어 있어 도심 속 시민들의 쉼터로도 제격이다. 사적공원 안으로 들어서면 맨 먼저 왼쪽으로 남간정사와 기국정 건물이 자리하고 있다. 남간정사를 살펴보고 나와 좀 더 위쪽으로 올라가면 우암선생의 유물과 일생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관이 있고, 유물관 앞 홍살문 사이로 멀리 명정문이 보인다.
대전광역시 동구 충정로 53
인천중구청(구 인천부 청사)
인천광역시 관동에 위치한 인천 중구청 본관 건물은 인천의 주요 행정기관 청사로 활용되어 온 건물이다. 현재 중구청의 본관 건물은 개항 후 일본 영사관이 자리했던 곳에 1933년 인천부 청사로 건립되었다. 인천부 청사로 사용되다 광복 이후 경기도 인천시 청사로, 1981년부터는 인천직할시 청사로 사용되었다. 1985년 시청이 구월동으로 이전하면서부터는 중구 청사로 지금까지 사용되고 있다. 건립된 이후로 지금까지 인천의 대표적인 행정 중심지로서 역할을 해오고 있다. 건립 당시에는 2층이었는데, 1964년 3층으로 증축되었다. 전체적으로 1930년대 모더니즘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당시에는 증기난방과 더불어 수세식 화장실 등 최신 설비를 갖추어져 크게 주목받았다. 외관을 구성하고 있는 스크래치 타일은 현재 찾아보기 힘든데, 당시 건축물의 특징 지어주는 귀중한 자료로 역사적, 건축적 가치가 있다. (출처 : 인천 문화관광 홈페이지)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신포로27번길 80
제물포고등학교 강당
인천 제물포고등학교 강당은 일제강점기인 1935년 인천중학교의 강당으로 세워진 건물이다. 건물 규모는 지하 1층, 지상 1층 규모의 벽돌조 건물로, 건축면적 495.87㎡, 연면적 628.1㎡이다. 너비가 15m나 되는 큰 규모의 강당이지만 중간에 기둥을 세우지 않고 만든 것이 특징적이다. 전체적으로 아주 간결하면서도 기능적으로 설계되었다. 지붕은 2단 경사로 되어 있는데, 윗부분은 물매가 완만하고 아랫부분은 가파른 망사르드 지붕 형식을 취하고 있다. 지붕틀은 왕대공 트러스트로 짜여 있고, 현재 지붕 밑 공간은 합판으로 된 천장에 막혀 있다. 출입문 기둥에는 성덕당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전체적으로 원형이 잘 보존돼 있다. 이 건물은 당시 제물포고등학교 학생들이 많은 애국지사의 강의를 들으며 청운의 꿈을 키우던 곳이기도 하다. 학교 강당의 기능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의 대형 집회 공간으로 이용되어 온 역사적인 장소이다. 광복 후인 1945년 인천중학교 학교장으로 부임한 길영희가 1954년에 제물포고등학교를 설립하면서부터 제물포고등학교의 강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출처 : 인천 문화관광 홈페이지)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자유공원로 58-9

서울 경교장
사적으로 지정된 경교장은 해방 후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활동 공간이자, 백범 김구 선생이 서거한 역사적 현장이다. 서울시는 경교장을 복원하고 내부를 전시공간으로 조성하여 2013년 3월 2일부터 공개해 서울 시민에게 우리 근현대사를 알리는 소중한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경교장 복원공사는 1949년 백범 김구 서거 이후 오랜 기간 대사관 및 병원시설로 사용되면서 변형된 내부 공간을 철거하고 이 과정에서 옛 모습이 잘 남아있는 부분은 최대한 원형을 살렸고 그렇지 않은 부분은 (1938년 8월호)에 수록되어 있는 경교장 도면을 근거로 하여 복원하였다. 복원된 경교장은 서울역사박물관의 분관으로 운영되고 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사를 유물과 영상, 키오스크 등 다양한 콘텐츠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출처 :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새문안로 29 (평동)

홍파동 홍난파 가옥
홍파동 홍난파 가옥은 1930년대 독일 선교사가 지은 벽돌조 서양식 건물을 작곡가 홍난파 선생이 인수하여 살던 곳이다. 홍난파 선생의 체취를 느낄 수 있는 이 주택은 1930년대 서양식 주택 특성이 원형대로 보존되어 있다. 홍난파 선생의 『봉선화』, 『고향의 봄』 등 대표곡들이 작곡된 곳이고, 그의 대표곡들이 작곡된 산실이므로 근대문화유산으로 보존될 가치가 있다. 홍난파는 ‘일제강점하 반민족행위 진상규명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 보고서에 포함된 인물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송월1길 38 (홍파동)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
강경 구 연수당 건재 약방은 1920년대 강경시장 전경 사진 중에 현존하는 유일한 건물이다. 강경의 하시장(下市場)을 중심으로 했던 번성시기에 시장 중심에 위치하여 호황을 누리기도 했다. 건축당시 ‘남일당(南一堂) 한약방’으로 사용되었으며, 이후 건축주가 바뀌면서 ‘연수당 건재 대약방(延壽堂 乾材 大藥房)’으로 상호를 변경하여 운영되었고, 현재는 후손이 관리하고 있다. 지상 2층 규모의 한식 목조 건물로 지붕은 우진각 기와지붕이며, 지붕내부의 상량문을 통해 1923년(癸亥年 八月 五日 酉時 立柱上梁)에 준공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이 건물은 근대 한옥 변천사적으로 가치가 높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24번길 12-1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은 충남 논산시 강경 읍내에 위치해 있다. 초기 선교 과정에서의 토착화 현상에 의해 기독교 건축의 형태는 한옥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당시 신부 및 목사가 대부분 서양인이었기에 한옥의 불편함을 느꼈고, 서양식 건물을 동경하는 일부 신도들로 인해 점차 서양식 예배당이 지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초기 한옥 교회가 대부분 소멸되거나, 개축 또는 신축되어 원형이 거의 남아있지 않다. 이러한 현실에서 한옥 형태로 남아있는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은 희소적 가치가 높다. 특히 내부 구조는 기독교의 토착화 과정에 나타난 한옥 교회의 건축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내부는 흔히 칸막고교회라고 하여 제단을 중심으로 천을 설치하여 남녀를 구분하기 위한 초기 교회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또한 내부의 벽돌 위의 회반죽 마감과 서까래를 그대로 노출한 연등천장은 단순한 목조건축의 구조적인 미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목재의 치목수법과 가구기법은 전통적 기법에서 근대화에 따른 기술적 변화 과정을 살필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2002년에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고, 지금은 강경성결교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구 강경성결교회 예배당은 국도 23호선, 지방도 68호선, 799호선에서 옥녀봉로를 통해 방문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논산천안고속도로 연무IC와 호남고속도로 지선 논산IC가 가깝다. 대중교통은 호남선 철도 강경역과 강경버스정류장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강경젓갈시장, 강경역사관, 강경근대거리, 강경포구 등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계백로219번길 40-1

원예예술촌
원예예술촌 HOUSE N GARDEN은 탤런트 박원숙씨를 비롯해 원예인들 뜻을 같이하여 평생의 꿈으로 품어온 아름다운 정원과 예쁜 마을을 만들었다.누군가가 꿈꿔온 바로 그 집, 그 정원이 이곳에서 발견될 것을 보람으로 바라보면서 집을 짓고 정원을 조성하였다.몇년에 걸친 수고 끝에 향기, 야자수, 조각 석부작, 타피어리, 채소, 풍차, 스파, 꽃지붕 등을 테마로 한 개인정원과 오솔길, 연못, 전망테크, 팔각정, 분수, 꽃길, 꽃울타리, 온실 등이 아름답게 완성되어가고 있다.무르익으려면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지만, 현대인들을 향한 그린 라이프 제안서로 제출한다. 아울러 최신시설의 영상실, 공연장, 전시실, 체험실, 카페, 게스트 하우스로 잘 갖추어져 편의를 제공한다.
경상남도 남해군 삼동면 예술길 39

강경 중앙초등학교 강당
강경 중앙초등학교 강당은 1930년대에 붉은 벽돌을 쌓아서 만든 건축물이다. 강경중앙초등학교는 논산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학교이자 졸업생 기수로 충남에서 가장 오래된 학교이다. 1905년 4월 2일에 2년제 사립학교인 보명학교로 개교한 이래, 1907년 4년제 강경공립보통학교, 1938년 강경중정공립심상소학교, 1941년 강경중정공립국민학교, 1946년 강경중앙초등학교로 여러 차례 학교 이름을 바꾸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당은 1937년 6월 30일에 세워진 지상 1층의 건물이다. 이 건물은 강경공립보통학교 개교 30주년을 기념하여 강경공립보통학교 후원회에서 기증한 것이다. 콘크리트 기초 위에 붉은 벽돌을 사용하여 지었고, 외벽 둘레에는 콘크리트로 흰색 띠를 둘러 두 층높이로 나누고, 모서리에는 벽돌 내어쌓기 방식으로 띠를 둘렀다. 이 건물은 당시 강당 건축의 전형적인 특징을 따르는데, 건물에 흰색 띠를 둘러 입면의 단조로움을 없애 단아한 멋을 보여준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 8

구 강경공립상업고등학교 관사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는 논산시 강경읍 강경상업고등학교 내에 위치한 문화재로 1931년 건축된 지상 1층의 벽돌 건물이다. 일본 목조 형식을 벽돌로 바꿔서 높은 박공지붕이 이음지붕형태로 늘어진 것이 특징이다. 입구는 석재마감의 포치를 사용하고 있으며, 외형은 비교적 잘 보존되어 있어 근대 주택사적 가치가 있다. 내부 공간은 좁고 미로 같은 복도에 많은 방을 배치하여 일본식 배치 구성을 따르고 있다. 구 강경공립상업학교 관사가 있는 강경상업고등학교는 국도 23호선, 지방도 68호선, 지방도 799호선 등에서 계백로를 통해 방문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논산천안고속도로 연무 IC와 호남고속도로 지선 논산 IC가 가깝다. 대중교통은 호남선 철도 강경역과 강경버스정류장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강경근대거리, 강경젓갈시장, 강경포구, 죽림서원, 팔괘정 등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계백로 220

강경역사문화안내소(구 강경노동조합)
구 강경노동조합은 1925년에 건립된 근대 건축물이다. 강경은 금강을 거쳐 서해와 연결되고, 내륙으로도 접근하기 쉬워 일찍부터 상권이 발달한 도시이다. 그러한 이유로 강경시장은 평양, 대구와 함께 전국 3대 시장으로 손꼽혔으며, 강경포구는 원산포구와 함께 전국 2대 포구로 불릴 만큼 각종 해산물과 공산품의 거래 및 이동이 활발했다. 일제강점기에는 수탈의 창구로써 1920년대에 이르러 내륙의 수산물 유통은 대부분 강경포구를 거쳐 전국으로 운송될 만큼 번성하였다. 당시 강경노동조합은 조합원의 수가 2,000~3,000명에 달하였고, 하루 약 200여 척의 배가 하역 작업을 할 만큼 활성화되었다. 강경노동조합 건물은 1925년 당시 조합장인 정흥섭이 개인 재산 5,000원을 들여 한식 목조건물로 조합 사무실을 지은 다음, 같은 해 10월 3일에 완공하였다. 당시 건물은 바닥 면적 70.08㎡의 2층 구조로 연면적 140.16㎡ 규모였고, 앞면 5칸, 옆면 3칸으로 1층 전체를 개방하여 사무공간으로 사용하였다. 강경노동조합은 1953년에 전국부두노동조합 강경지부 연맹체제로 바뀌었고, 이후 강경연락소로 축소되었다가 결국 해체되었다. 강경노동조합 건물도 1935년 이후 본래 용도와 상관없이 공장, 창고 등으로 사용되었는데, 1940년대 사진 자료를 보면 건물 모습이 현재와 같은 단층 구조로 바뀌게 된다. 이는 노동조합의 쇠락과 연관 지어 이해할 수 있다. 강경노동조합은 국가등록문화유산인 구 한일은행 강경지점, 강경 갑문, 강경 채운산배수지 등과 함께 근대 강경의 번성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옥녀봉로27번길 30-5
강경역사관
강경역사관(구 한일은행 강경지점)은 논산시 강경읍내에 위치한 전시관이자 문화재이다. 1905년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으로 설립되어, 국권 침탈 후 일제에 의해 한호농공은행이 조선식산은행으로 개편되면서 조선식산은행 강경지점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해방과 더불어 한일은행 강경지점으로, 다시 충청은행 강경지점으로 바뀌면서 강경 지역의 근대 상업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문화재이다. 건물의 외관은 전면부 및 금고실 부분을 제외한 측면이 모두 대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천정(7.2m)이 높아 공간에 비해 내부 공간이 환하고 넓어 보인다. 코니스 부분의 화려한 장식과 규모에 비해 비교적 입구를 작게 하고, 또 이를 철문으로 하여 은행으로서의 권위와 기능적 고려를 엿볼 수 있는 이 건물은 6·25 전쟁 당시 폭격으로 지붕 부분이 파괴되었다가 그 후 원형을 살려 일부 다시 복구되었다. 그리고 2012년부터는 강경역사관으로 용도를 바꾸어 강경 지역의 옛 사진,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단체 관람 예약 시 강경역사문화연구원 해설사의 해설을 들을 수 있다. 강경역사관(구 한일은행 강경지점)은 국도 23호선, 지방도 68호선에서 지방도 799호선을 통해 방문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논산천안고속도로 연무 IC와 호남고속도로 지선 논산 IC가 가깝다. 대중교통은 호남선 철도 강경역과 강경버스정류장을 이용할 수 있다. 주변에는 강경젓갈시장, 강경역사관, 강경근대거리, 강경포구 등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 계백로167번길 50

논산 연산역 급수탑
논산 연산역 급수탑은 1911년 호남선의 개통과 함께 증기기관차의 물을 공급하기 위해 같은 해 12월 30일에 설치되어 1970년대까지 약 60여 년간 사용되었다. 현재 남아있는 급수탑 가운데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다. 열차의 발전과 함께 기능을 상실한 채 남아있던 이 급수탑은 근대 산업시설물로의 역사성과 희소한 조형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전체 높이는 16.2m, 지면부의 바깥지름은 5.28m이며, 최상단부 철제 물탱크의 바깥지름이 4.1m인 총 용량 30t 규모의 원기둥형 급수탑이다. 급수탑 재료를 석재를 사용한 것이 큰 특징이다. 몸체는 화강석을 쌓았으며, 외곽 테두리를 정교하게 다듬고, 나머지 부분을 거칠게 다듬은 모양을 하고 있다. 급수탑 출입구 부분은 아치로 마감하고 이맛돌(Key Stone)의 모양이 매우 정교하며, 그 앞의 우물도 화강석 쌓기로 잘 다듬어져 있다. 급수탑 옆에 위치하고 있는 우물은 폭이 2.8m, 깊이 6m의 크기로 급수탑의 급수용으로 축조하였다. 상단부의 급수탱크에는 외부에 철제사다리를 설치하여 최상단 강판 지붕으로 올라갈 수 있도록 했다.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선비로275번길 31-2

개항장 거리
인천 개항누리길은 1800년대 말 개항기 시절의 풍경을 간직한 길이다. 인천 개항 후 대외무역이 활발해지자 지금의 인천광역시 일대에 일본과 청나라를 비롯한 각국의 조계지가 형성됐고, 최초의 근대식 공원, 은행, 호텔 같은 건축물도 세워졌다. 개항누리길을 걷다 보면 청‧일 조계지 경계계단부터 당시에 지어진 서양식 건축물까지 다양한 근대 문화유산을 만날 수 있다. 130년 전 인천을 통해 국내에 들어온 근대유물을 전시하는 인천개항박물관, 인천항의 물품 보관 창고에서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난 인천아트플랫폼, 중국인들이 모여 살던 차이나타운, 한국 제1호 중국 음식점 공화춘 건물을 활용한 짜장면박물관 등 인천의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길이다. 이곳에서는 인천문화 관광해설사가 있어 예약하면 해설을 들으며 도보 관광을 즐길 수 있다.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관동1가

월미짱랜드
인천에 위치한 월미도의 대형 놀이체험 테마파크이다. 아케이드 게임, 물총놀이, 물놀이보트, 미니 후룸라이드 등 다양한 놀이기구와 체험이 준비되어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방문하기에 좋으며, 연인과의 데이트 장소로도 안성맞춤이다. 테마파크 내에는 커피숍, 햄버거 가게, 편의점 등 다양한 먹거리와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다. 월미짱랜드에서 가장 눈에 띄는 놀이기구는 대관람차로, 밤이 되면 화려한 조명이 켜지며 아름다운 야경을 감상할 수 있는 명소이다.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월미문화로 81 (북성동1가)
농산정
신라말의 학자이며 문장가인 최치원(857∼?)이 지은 정자로, 은거 생활을 하던 당시에 글을 읽거나 바둑을 두며 휴식처로 삼았던 곳이다. 최치원은 신라의 유교학자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이다. 당나라로 유학을 가서 과거에 급제한 후, 중국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황소격문」이라는 글을 써서 이름을 날렸다. 귀국 후 정치개혁을 위해 노력을 기울였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관직을 떠나 가야산에 은거하면서 여생을 보냈다. 건물을 세운 시기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1922년 해체해서 원래대로 다시 지은 것을 1936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과 옆면이 모두 2칸씩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구원리 산-1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