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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51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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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충민공순절비
역사관광충청남도

권충민공순절비

권충민공순절비는 임진왜란 때 금산으로 쳐들어오는 왜적을 막다 순절한 금산군수 권종과 그 아들 권준의 충의를 기리고 있는 유허비로 금강 인근에 있다. 권종 부자는 충북 영동 지역으로 쳐들어오는 왜적을 막기 위하여 출정하였다가 강을 건너려는 왜구와 싸워 전사하고 말았다. 비석은 제원대교 입구에서 서남으로 약 50m 지점에 세워져 있는데 전면에 ‘증정헌대부이조판서시충민공행금산군수안동권공휘종순절유허비’라고 한자로 새겨져 있다. 순절비의 글은 이승보가 지었고 글씨는 11대손인 정현이 썼다. 1878년(고종 15) 금산 유림에서 비를 세웠으나 1941년 일제에 의해 비석의 비문이 뭉개진 것을 광복 후 다시 비를 찾아 세워 놓았고, 1974년 비를 보호하고자 비각을 세워 두었다. 인근에 기러기공원, 금강생태과학체험장, 금강뷰 등 여행지가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제원면 저곡리

서벽정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서벽정

서벽정은 조선 말기 대사헌의 벼슬에 올랐던 연재 송병선이 당시의 세태를 비판하고 은둔생활을 하던 중 이 고장을 찾아왔다가 구천동의 아름다움에 반해 이곳에다 집을 짓고 머물면서 영·호남의 선비들과 시국을 논하며 후진을 양성하던 곳이다. 구조는 막돌로 쌓은 석축 기단 위에 주춧돌을 놓고 세운 정면 4칸, 측면 3칸의 팔작지붕의 주심포집이다. 정면 좌·우측 1칸씩은 누각처럼 바닥을 기둥 가운데에 올려 앉혔는데, 좌측은 높고 우측은 낮다. 전체적으로 단아한 사대부의 재실 모습을 지녔다. 한때 화재로 소실되었던 것을 고종 28년(1891)에 재건하였으며, 한국전쟁 때에는 북한군의 숙영지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 고종 광무(光武) 원년(1897)에 무주 군수 조병유(趙秉瑜)가 주자(朱子)와 송시열의 초상을 봉안하였다. 연제 송병선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망국의 비분을 참지 못하고 자결로서 충절을 지킨 충신이다. 송병선의 자는 화옥(華屋)이며 본관은 은진(恩津)으로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의 9세손이다. 학문과 절제 있는 행동으로 천거받아 좨주(祭酒)에 기용된 뒤 서연관(書筵 官)·경연관(經筵官)·지평(持平)을 거쳐 대사헌(大司憲)에 이르렀으나 취임하지는 않았다. 그는 ≪벽사설(闢邪說)≫을 지어 양학(洋學)을 배척하고, 일본과의 개국 통상을 반대하였다.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시정 개혁과 일본에 대한 경계를 건의하여 왕의 동의를 얻었다. 뒤에 다시 대궐에서 왕에게 상소하려다가 경무사(警務使) 윤철규(尹喆圭)에게 속아 일본 헌병대에 의해 고향으로 이송 당하자 망국의 울분을 참지 못하고 음독 자결하였다. 고종에게서 의정(議政)에 추증되고 문충(文忠)이라는 시호를 받았으며,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저서로는 ≪무계만집≫이 있고, 문집으로 ≪연재집≫이 간행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구천동로 1868-30

치목삼베마을
문화관광전북특별자치도

치목삼베마을

적상산 동남쪽 양지 바른 곳에 위치하며 적상산 산성으로 가는 길목에 자리하고 있다.마을 남쪽으로 우뚝 솟은 단지붕과 그 주변의 울창한 수림이 풍치를 이룬다 하여 치목(致木)이라 하였다고 한다. 치목마을 뒷산 깊은 계곡에 위치한 송대폭포를 지나 양수발전소 상부댐에 오르면,조선실록을 봉안했던 적상산사고가 복원되어 있고,더 위로 올라가면 본래 사고지 수호를 위해 건립되었다가 1949년 여순사건의 병화로 불타버린 흔적만 남은 호국사지에 안국사(安國寺)가 이건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치목길 83

창원 회원현성지
역사관광경상남도

창원 회원현성지

경상남도 마산시 무학산 남쪽 기슭의 낮은 야산 계곡을 둘러 쌓고 있는 산성이다. 이곳에 서면 남서쪽으로 마산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북동쪽으로는 창원의 평야지대를 살펴볼 수 있다. 이곳 주민들은 자산산성(玆山山城)이라고 부르고 있으나, 실제로는 옛 회원현의 관아건물이 있던 곳으로 행정상의 구실과 군사상의 구실을 겸한 유서깊은 곳이다. 성벽은 야산 능선을 따라 둘러져 있다. 주로 흙을 다져서 쌓았는데, 성벽 안팎의 끝 부분은 돌을 쌓아 마무리하였다. 성문은 북쪽의 것이 남아있으며 일반 성벽에 정사각형의 입구를 내고 안쪽에 기둥을 세워 문을 단 형태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자산동

인곡리 모과나무
자연관광경상남도

인곡리 모과나무

창원 인곡리 모과나무의 나이는 약 250년이며, 높이 10m, 둘레 33m로 의림사 대웅전 앞 뜰에 자라고 있다. 나무줄기가 근육 모양으로 울퉁불퉁하게 골이 파여 있는데, 오래된 모과나무에서만 볼 수 있는 특이한 형태이다. 또한 작은 가지들이 불규칙하게 많이 나 있다. 인곡리 모과나무는 오래되고 특이한 형태를 지니고 있어 옛날부터 의림사를 찾는 많은 신도들의 신앙대상이 되고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의림로 382

의성 경덕왕릉
역사관광경상북도

의성 경덕왕릉

의성 경덕왕릉은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에 위치하고 있는 고분군 중에 조문국 경덕왕릉이라고 추정되는 무덤이다. 조문국은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였던 나라로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를 도읍지로 하여 존속하다가 185년에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조문국이 실재했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짧게 언급되어 있을 뿐 문헌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옛 조문국 경덕왕릉은 그 형식이 전통적인 고분으로서 봉 아래 화강석 비석과 상석이 있다. 능의 둘레가 74m, 높이가 8m이며 능의 정면에는 가로 42㎝, 세로 22㎝, 높이 1.6m의 비석이 서있다. 1725년 현령 이우신이 경덕왕릉을 증축하고 하마비 등을 세웠다고 하는데 그때부터 왕릉 제사를 지내오다가 일제강점기에 중단되었고, 그 후 경덕왕릉보존회가 구성되어 다시 제사를 지내고 있다. 소나무로 둘러싸인 묘역은 조문국경덕왕릉이라고 쓰인 비석과 문인석, 장명등, 상석으로 단장되어 있다. 옆에는 조문국 고분 전시관이 있다. 조문국 고분 전시관은 원래 대리리 2호분이 있던 자리로 발굴조사를 끝낸 후 무덤 내부를 관람객들에게 보여주고자 전시관을 건립하였다. 당시의 유물 및 매장 풍습을 눈으로 보며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2호분에서 출토된 유물들도 같이 전시되어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문익점 면작기념비
역사관광경상북도

문익점 면작기념비

문익점 면작기념비는 1935년 문익점의 목화 재배를 기념하여 세운 비석이다. 문익점은 고려 말의 문신으로 1363년 원나라에 갔다가 고려로 귀국할 때 김룡을 시켜 목화 몇 송이를 딴 후 그 종자를 붓대 속에 넣어 가지고 돌아왔다. 장인과 함께 시험 재배를 하였는데, 처음에는 재배 기술을 몰라 겨우 한 그루만 살릴 수 있었으나 3년간의 노력 끝에 성공적으로 전국에 목화씨가 퍼지도록 하였다. 문익점 손자 문승로가 의성 현령으로 있을 때, 의성군의 지세가 중국의 금주성과 흡사하여 재파(다시 파종하는 것) 하였다고 한다. 문익점의 자손이 의성 땅에 목화 재배를 시작한 경위와 목화를 처음 원나라에서 수입해 온 조상의 공적을 기리고자 의성 목화재배지에 비문을 짓고 문익점 목면유전비를 세웠다. 그 후 현 위치인 금성면 대리리에 별도의 기념비인 문익점 면작기념비를 건립하였다. 이는 일제강점기 면작을 독려하는 시책에 따라 세운 것이라고 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동부로 2545

의성 산운생태공원
자연관광경상북도

의성 산운생태공원

의성 산운생태공원은 2006년 산운 초등학교(폐교)를 활용하여 자라나는 세대의 자연학습 및 환경에 대한 가치관 형성을 위해 건립된 곳이다. 주요 시설로는 생태관, 연못, 분수, 목교, 관찰데크 등이 있으며, 넓은 마당에는 50여 종에 이르는 나무와 풀, 꽃들이 식재되어 있다. 제1전시실에서는 지진과 화산 활동, 생명의 기원과 지구의 탄생에 관한 자료가 전시되고 있고, 제2전시실에서는 인류의 진화 과정과 동식물의 분류별 종류를 알 수 있다. 제3전시실에서는 공룡 화석과 공룡의 연대기를 알 수 있다. 이 밖에도 의성군의 유래와 특산품, 관광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생태관과 산운마을의 유래를 전시하는 마을 자료관 등이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수정사길 19

의성읍 도서동의 회나무
자연관광경상북도

의성읍 도서동의 회나무

회나무는 잎이 지는 나무로, 8월에 황백색 꽃이 피며 열매는 10월에 익는다. 회나무는 예로부터 귀하게 취급되어 집안에 행복이 찾아온다고 믿어 우리나라에 즐겨 심었던 민속나무이다. 의성읍 도서동의 회나무의 나이는 600년 정도로 추정하며, 높이는 18m, 둘레는 10m 정도이다. 옛날에 치질약에 좋다 하여 나무껍질을 벗겨가서 동쪽과 북서쪽에만 껍질이 남아있다. 가지가 지상으로부터 3m 되는 지점에서 세 갈래로 갈라져 있다. 가운데 있는 가지는 말라죽었으며, 동쪽과 서쪽에 있는 가지만 살아있다. 나무의 밑동 부분은 썩어서 큰 구멍이 나 있는 상태이다. 1919년 조선총독부 이름으로 출판된 『조선거수노수명목지』에는 남북한을 통틀어 208건의 회화나무 중 도서동의 회나무나 가슴 높이의 둘레가 가장 크다고 적혀 있다. 또 1972년에 발간된 『보호수지』에 실려 있는 360건 중에서도 단연코 1위였다. 도서동의 회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 살아온 나무이며, 회나무 중에서 둘레가 매우 크고 높은 나무로 생물학적 보존가치가 높아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나무 아래에서는 당산제가 열리기도 한다.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도서리

의성 만취당
역사관광경상북도

의성 만취당

만취당은 퇴계 이황의 제자 김사원(金士元, 1539~1601)이 학문을 닦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건물이다. 이곳을 찾은 온계 이해, 서애 류성룡 등 많은 인사들의 시문이 남아 있으며, 현판은 석봉 한호의 친필이다. 건립연대는 만취당 중수기문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1582년(선조15)에 짓기 시작하여 1584년에 완공하였다고 적고 있다. 이후 1711년(숙종 37) 연목을 일부 교체하였고, 1727년(영조 3) 동쪽으로 2칸을 증축하였으며(復齋), 1764년(영조 40) 서쪽으로 1칸 온돌방을 증축(西小翼室)하여 현재와 같은 T자형 평면이 완성되었다. 만취당은 도리와 대량의 구조결구법 등 초창 당시의 건축수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16세기 사대부가의 주거 및 선비문화 그리고 사회적 요구에 따른 건축적 변화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만취당길 17

의성 사촌리 향나무
자연관광경상북도

의성 사촌리 향나무

향나무는 상나무 또는 노송나무로 부르기도 하며, 약 20m까지 자란다. 향나무 줄기의 단단한 부분은 강한 향기를 내는데, 이것을 불에 태우면 진한 향기를 내르모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용도로 널리 쓰이고 있다. 의성 사촌리 향나무는 의성 지역에서 고택으로 유명한 만취당 앞 골목에 심겨 있고,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는 8m, 줄기의 폭은 25m 정도이다. 나무의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며, 향나무의 줄기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모양을 하고 있다. 이 향나무는 조선 중기의 시인이었던 송은 김광수가 심은 것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다. 만년 동안 푸르게 살라는 의미를 붙여 만년송이라 불렀다고 전한다. 의성 사촌리 향나무는 오랜 세월 사람들의 관심과 보살핌 속에서 지내온 나무로, 현재는 안동 김씨 만취당파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사촌리

의성 소계당
역사관광경상북도

의성 소계당

소계당은 남정기가 1800년 경에 지었다고 전한다. 대문을 들어서면 넓은 사랑마당 너머에 ㅡ자형 사랑채가 남향으로 있고, 그 뒤로 ㄷ자형 안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트인 ㅁ자형이다. 앞쪽에 있는 사랑채는 건물 가운데에 있는 중문을 중심으로 왼쪽은 집안의 남자 웃어른인 할아버지가 거처하는 큰사랑이고, 오른쪽은 아들이나 손자가 거처하는 작은사랑이다. 큰사랑과 작은사랑의 지붕 모양은 각각 팔작지붕과 맞배지붕으로 서로 다르다. 지붕이 더 높고 화려한 팔작지붕을 한 곳은 지위가 높은 사람이 있는 곳임을 나타낸 것이다. 안채는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안방, 왼쪽에는 상방과 마루방을 두었다. 안방에는 집안의 안주인이, 상방에는 집안의 여자 웃어른인 할머니가 살고 있다. 소계당은 영남 지방 양반들이 살던 집의 일반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어 조선시대 영남 지방의 주택을 연구하는 자료로서 가치가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점곡면 의성길안로 1034

의성 월소리 소나무
자연관광경상북도

의성 월소리 소나무

의성 월소리 소나무의 나이는 200년 정도로 추정되며, 월소리 비로자나불로부터 500m 떨어진 신법마을 입구에 있다. 나무줄기에 세 갈래의 큰 가지가 위로 줄기차게 뻗어 있다. 자라나는 상태가 매우 좋으며, 안정된 형태를 갖추고 있어 위엄있는 모습이다. 조선 광해군(재위 1608~1623) 때 평산 신씨가 이 마을에 정착하면서 심었다고 전하며, 지금은 정자목으로서 마을사람들의 휴식처로 사용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의성군 안사면 월소리

의성 금성면 고분군
역사관광경상북도

의성 금성면 고분군

의성 금성면 고분군은 대리리, 탑리리, 학미리 일원에 소재하며 200여 기에 이르는데 출토된 유물은 5~6세기 것으로 추정된다. 지름 15~19m, 높이 3~4m의 대형분과 지름 10~15m, 높이 2~4m의 중형분, 지름 10m 미만의 소형분이 고루 밀집되었으며, 원형봉토분이 대부분이다. 1960년에 국립중앙박물관, 1965년 경희대학교 박물관이 발굴·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성토의 모양은 봉구를 중심으로 수평단축 상태로 되어 있음이 밝혀졌다. 봉구를 조성하는 데 사용된 흙은 순수한 점토로서 그 양 또한 매우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사용된 흙의 대부분이 이 지역에서 나는 흙과 색깔이 달라 다른 지역에서 운반해 왔을 것으로 짐작된다. 이것으로 이 고분을 만들기 위해서는 막대한 노동력이 동원되었을 것으로 여겨지며, 이 고분군은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큰 통치자에 의해 조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조문국은 삼한시대의 부족국가였던 나라로 현재의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일대를 도읍지로 하여 존속하다가 185년(신라 벌휴왕 2년)에 신라에 병합되었다고 전한다. 하지만 조문국이 실재했었다는 기록은 삼국사기에 짧게 언급되어 있을 뿐 문헌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금성산 고분군은 조문국의 도읍지로 여겨지는 곳으로 의성 지역 지방 세력과 사회구조 및 의성 지역과 신라와의 관계 파악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금성면 대리리

의성향교
역사관광경상북도

의성향교

의성향교는 조선 태조 3년(1394)에 세워졌다고 전하며, 성종 때 고을 수령이었던 이종준에 의해 아사천변에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이후 여러 차례 보수가 있었다. 지형에 따라 좌측 언덕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이 배치되어 있고, 공부를 하는 공간인 명륜당은 뒤에 있는 전묘후학 배치를 하고 있다. 일반적인 향교와 다른 독특한 배치를 하고 있다. 향교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은 중국과 우리나라 성인들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앞면 5칸, 옆면 2칸의 맞배집이며 조선 중기 건축이다. 강학공간의 중심 건물인 명륜당은 앞면 5칸, 옆면 2칸의 옆모습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집으로 조선 후기 건축물이다. 명륜당 앞에 있는 유생들의 숙소인 동재는 앞면 4칸, 옆면 2칸의 맞배집이다. 누문인 광풍루는 앞면 5칸, 옆면 3칸의 2층으로 지붕의 옆모습이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집이다. 2층에는 난간을 둘렀다. 지금은 향교의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두 번 제사를 드리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향교길 57

하동 범왕리 푸조나무
자연관광경상남도

하동 범왕리 푸조나무

푸조나무는 따뜻한 지방의 하천과 마을 부근에 많이 자란다. 곰솔, 팽나무와 함께 소금기 섞인 바닷바람에 잘 견디기 때문에 바닷바람을 막아주는 방풍림에 적당하다. 팽나무와 비슷하여 개평나무 또 검팽나무라 불리기도 한다. 하동 범왕리 푸조나무는 높이 25m 둘레 6.25m로서 수령은 약 500년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운 최치원 선생이 속세를 등지고 지리산에 들어갈 때 꽂아둔 지팡이에서 싹이 나서 자란 나무라고 전하여 오고 있다. 고운 선생이 신흥사로 들어갈 때 ‘이 나무가 살아 있으면 나도 살아있고, 이 나무가 죽으면 나도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최치원 선생이 신라 말 혼탁한 세상을 등지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더러워진 귀를 씻었다는 세이암이 건너편에 자리하고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화개로 967

괴산 문당리 서낭단
사찰충청북도

괴산 문당리 서낭단

성황단은 토지와 마을을 수호하는 신인 서낭신에게 제사하기 위한 제단으로, ‘서낭단’이라고도 한다. 주로 마을 입구나 고갯마루에 작은 돌을 무더기로 쌓아놓고 가까이에 나무가 있다. 괴산 문당리 성황단은 오리목 마을 입구에 있는데, 제단부와 좌우 돌탑 등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이 성황단은 비교적 정연한 형태로 쌓은 제단부를 중심으로 좌우에 2기의 원추형 돌단을 쌓아 남성 성기형의 적석단을 이루고 있다. 산에서 사룡이 마을을 향하여 긴 꼬리를 하고 내려오는 형상의 돌무지 성황단으로, 양쪽에 남성 성기 모양인 2개의 돌무지가 있고, 가운데에 남근 모양의 형상으로 만든 적석단의 특이한 성황단이다. 돌탑을 좌우에 두고 가운데에 폭 3m, 길이 5m 규모의 제사공간과 90㎝×90㎝정도 크기의 제물대를 갖춘 제단을 쌓은 것이다. 제단부에서 산 쪽으로 꼬리를 끌 듯 10여 m 가량 돌무지를 늘여 쌓아 마을 주산으로 연결하고 있다. 이 성황단은 마을이 형성되었던 조선시대 중기 때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매년 정초에 색색의 헝겊을 끼운 금줄을 적석단 옆의 신목에 쳐놓고 생기발복일을 골라 제사를 지내되 3일 전부터 금기가 있었으나 현재는 사라졌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질마로오리목1길 16-25

괴산향교
역사관광충청북도

괴산향교

괴산향교는 처음 세워진 연대는 알 수 없으며, 1530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1587년에 다시 짓고 그 후에 여러 번의 수리를 하였으나 비교적 원래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은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교직사 등이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으로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맞배집으로 공자를 주향하고, 그 양편에 4성을 배향하였으며, 동·서 양무는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의 맞배집으로 송조 2현 및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공부하던 곳으로 학생들의 거처인 동재·서재와 함께 배움의 공간을 형성한다. 정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단층 맞배집이며 동·서 양재는 각각 정면 네 칸, 측면 한 칸의 맞배집이다. 현재의 명륜당은 선조 1569년에 지었는데, 1647년에 중건하였으며, 1981년에 크게 보수한 바 있다. 건물들의 규모와 형식이 향교의 일반적 배치 형태인 전학후묘를 따르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서부리

괴산 보안사 삼층석탑
역사관광충청북도

괴산 보안사 삼층석탑

괴산 보안사 삼층석탑은 보안사의 북쪽 담장 옆에 자리하고 있는 석탑으로, 1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전체높이 325cm의 이 석탑은 1매의 지대석 위에 4면에서 면석을 조합하여 단층 기단부를 형성하고 탑신을 올렸다. 기단은 네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기고, 탑신의 1층 몸돌 남쪽 면에는 감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본떠 간략히 조각해 두었다. 충북지역에서 발견된 석탑 가운데에는 이처럼 탑신에 감실을 새긴 예가 드물어 특이한 양식이라 할 수 있다. 석탑의 각 부분이 훼손되지 않은 비교적 완전한 모습으로, 탑신부가 균형을 보이고 있어 안정감을 준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이 3단으로 줄어들고 뭉툭하게 표현된 점이나, 기단이 완전하지 않고 간략하게 표현된 점 등으로 보아 고려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효근1길 23

괴산 한지체험박물관
문화관광충청북도

괴산 한지체험박물관

우리 조상들은 예로부터 다양한 원료를 이용하여 종이를 만들어 왔다. 대표적으로 닥나무 껍질을 비롯하여 대나무, 볏짚, 보릿짚, 귀리를 원료로 한 종이, 마지, 안피지, 면지 등이 있으며 각각의 종이는 그 원료의 특성에 맞는 방법으로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종이는 주로 닥나무 껍질을 원료로 하였다는 것이 특색이다. 농한기인 11~12월에 닥나무 1년생 가지를 채취해서 삶기-껍질 벗기기-건조하기- 백피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담그기-충분히 불린 백피를 다시 삶기-표백하기-티 고르기-닥죽 만들기-종이뜨기 과정을 통해 한지가 만들어진다. 신풍한지는 순수 국산 닥나무를 이용하여 한지를 제작한다. 전통적 가치를 소중히 할 기회를 마련코자 전통 한지 뜨기, 야생화지 뜨기, 한지 소원, 한지 컵 받침 만들기, 야생화지뜨기 체험, 한지 뜯어서 장식하기 등 직접 만드는 체험학습장을 운영하고 있다. 예약 후 방문하면 한국 고유전통의 미를 직접 체험할 수 있다. 무형문화재 안치용 한지장인이 관장을 맡고 있는 세계 유일의 한지박물관이 함께 있어 한지의 천년의 기록과 한지 제작 도구 등 한지 관련 유물을 관람할 수 있다. 또한 인근에 도예공방이 있어 도자기, 소품 등도 구입이 가능하다.

충청북도 괴산군 연풍면 원풍로 233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
자연관광충청북도

괴산 오가리 느티나무

장연면 오가리에 있는 느티나무로 상괴목, 하괴목 2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나이는 약 800살 정도로 추정된다. 이 2그루의 가까운 곳에 한 그루의 느티나무가 더 있는데 이곳에는 정자가 없으나 마을 입구에 서 있는 세 그루의 느티나무 모습이 마치 정자 같다고 하여 삼괴정이라고 부른다. 상괴목은 나무 높이 25m, 수관폭 26m, 나무 둘레 8m이고 지상부 2m 부위에서 큰 가지가 발달하였다. 하괴목은 나무 높이 19m, 수관폭 22m, 나무 둘레 9.4m이고 지상부 2m 부위에서 2개의 가지가 자라고 있다. 하괴목은 동쪽으로 뻗은 가지가 오래전에 부러져 말라죽었고, 속으로 구멍이 나 있다. 상괴목은 하괴목에서 60m 북쪽의 지대가 높은 곳에 있고 하괴목에 비해 건강하게 자라는 편이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정월 대보름마다 가장 아래에 있는 하괴목 아래에서 성황제를 지내고 있다. 이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크고 오래된 나무로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 오가리

괴산 고산정 및 제월대
역사관광충청북도

괴산 고산정 및 제월대

고산정은 달천변의 경승지를 일컫는 고산9경의 하나인 제월대 옆에 자리하고 있는 정자이다. 충북에서 가장 오래된 정자로 알려져 있으며 1978년 10월 27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고산9경 중 제1경 고산정은 1596년(선조 29)에 당시 충청도관찰사였던 유근이 이곳의 풍광을 사랑하여 만송정과 고산정사를 짓고 광해군 때 낙향하여 이곳에 은거하였다. 숙종조에 편찬된 괴산군읍지에 고산정사가 1695(숙종 21년)에 화재로 전소되었다고 했으며, 이후의 기록에 고산정사의 재건과 관련된 언급이 없어 지금 고산정이라 부르는 건물은 만송정을 개칭한 것으로 보인다. 건물은 정면 2칸, 측면 2칸 규모에 팔작지붕을 올린 단층 정자로 마룻바닥을 따라 평난간을 둘렀다. 처마 밑에는 이원이 쓴 孤山亭 현판이 걸려 있다. 안에는 명나라 사신이었던 주지번이 1606년(선조 39)에 쓴 호산승집, 웅화가 1609년(광해군 1)에 쓴 고산정사기 등의 편액이 있다. 고산정사기는 명문으로 이름이 높다. 제5경 제월대는 고산정이 있는 부분의 절벽 부분을 지칭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강줄기 양편에 흩어진 일련의 경승지를 통칭한다. 달천강의 아름다운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을 자랑하는 곳이다. 바로 아래쪽의 달천은 여름철 유원지로도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가까운 곳에 소설가 벽초 홍명희 선생의 제월리 생가와 문학비가 자리하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 64-2

괴산 읍내리 은행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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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읍내리 은행나무

청안 읍내리 은행나무는 은행나무과에 딸린 낙엽교목이며 높이 17m, 가슴높이의 둘레 7.1m 로서 가지가 동서로 16m, 남북으로 15.5m 정도 퍼져있다. 수령은 약 1,000년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려 성종(成宗) 때 이 고을의 성주가 선정을 베풀어서 백성들의 존경을 받아 왔었다. 어느 날 백성들에게 위로연을 베푸는 자리에서 우리 성내에 못이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더니 백성들이 ‘청당(淸塘)’이란 못을 파게 되었고, 성주는 그 연못가에다 많은 나무를 심었는데 이 은행나무는 그중에서 남은 하나이다. 그 후 성주가 조정으로 떠나게 되어 백성들은 어진 성주를 보내는 아쉬움에 시를 지어서 성주를 추모하면서 잘 가꾸어 왔다고 한다. 이 나무속에는 귀 달린 뱀이 살고 있어서 나무를 해하는 사람은 이 속에 있는 뱀의 해를 받는다고 전해오고 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청안읍내로3길 8

괴산 청안 안민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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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산 청안 안민헌

괴산 청안 안민헌은 조선시대 청안현의 관아 건물로, 태종 5년(1405)에 지어졌다고 전한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를 거쳤으며, 지금 남아있는 건물을 19세기 후반의 것으로 보인다. 1915년에도 수리가 있었고, 한때 청안지서로 사용되어 변형이 있었으나 1981년 복원하였다. 건물의 규모는 앞면 6칸,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의 옆선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으로 홑처마에 공포를 짜지 않은 민도리집이다. 낮은 돌 기단 위에 지었는데, 주춧돌은 다듬은 돌과 자연돌을 함께 사용하였고, 둥근기둥에 일부 네모 기둥을 세우기도 하였다. 앞면 1칸은 툇마루로 개방하고, 그 뒤로 왼쪽 3칸은 대청을 두고, 오른쪽 2칸은 온돌방, 마지막 1칸은 툇마루를 두었는데 여기에는 문을 달았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청안읍내로2길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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