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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515페이지

총 12,561개의 관광지 중 515페이지입니다.

청안 사마소
역사관광충청북도

청안 사마소

청안 사마소는 조선 숙종때 청안현의 생원, 진사 50여명이 이미 사마방에 급제하매 숙종 29년(1703)에 사마소를 설치하였다 하며, 청안향교에서 생원시에 합격한 생원과 소과에 합격한 진사, 그리고 대과에 급제한 선비의 이름을 올린 사마재의 성격을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사마소에는 문과 8인, 생원 40인, 진사 40인, 인물 3인, 음관 2인, 지주 22인을 합하여 115인을 제명하고 춘추로 제향하고 있는데, 1910년 경술국치로 철폐되었다가 광복후 청안지방의 유림들이 1950년 재건하였다.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사마소는 생원과 진사 즉 사마방에 급제한 자가 50인 이상이 나온 읍에 설치되는데, 그 급제자들이 지방유림으로서 뛰어난 인물이라 하여 후배와 후손들이 제사하며 유학을 강론하고 정치를 의논하던 곳이다. 처음에는 이들의 친목도모와 정치 토론 및 교육 활동 등으로 그 고장 발전에 기여하였으나 점차 수령의 통치에 간섭하고 백성들을 함부로 잡아다 벌을 주는 등 폐단을 야기하기도 하였다. 현재 독립된 건물로 남아있는 사마소는 옥주사마소(옥천), 경주사마소 등 그 수가 그리 많지 않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청안읍내로5길 33-14

청안향교
역사관광충청북도

청안향교

조선초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하며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청안에 지은 관학기관이다. 언제 지었는지는 정확히 알지 못하지만, 숙종 29년(1703)에 사마소가 지어진 것을 보아 향교는 그 이전에 지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지금의 건물들은 1979년에서 1981년 사이에 해체·복원한 것이다.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앞에 있고, 제사하는 공간인 대성전은 뒤에 있는 전학 후묘의 배치를 하였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명륜당의 현판은 영조 9년(1733)에 쓰인 것이라고 전한다. 조선시대에는 나라로부터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운영하였으나, 교육의 기능은 없어지고 지금은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 청안읍내로5길 33-14

괴산 칠충사와 피세정
역사관광충청북도

괴산 칠충사와 피세정

* 칠충사 * 칠충사는 순창 조 씨(淳昌趙氏) 가문에서 배출된 충신 가운데 괴산삼강록(槐山三綱錄)에 등재되어 있는 조신, 조종, 조복, 조반, 조덕공, 조덕용, 조은 등 7명의 충절인(忠節人)을 뽑아 그들의 행적을 기리기 위하여 세워진 사당이다. 사당은 목조 기와집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집이며 1975년 문중에서 건립하였다. 사당 아래에는 1973년에 건립한 정면 7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목조 기와집인 순창 조문(淳昌趙門) 칠충각(七忠閣)이 있다. * 피세정 * 피세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의 정자로서 정자 안에는 피세정중건기, 피세정기를 비롯하여 많은 편액이 걸려 있다. 피세정은 정자의 위치나 경관을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자료로서 가치가 크다.

충청북도 괴산군 문광면 괴산로 3440-14

거제 명진리 느티나무
자연관광경상남도

거제 명진리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대만,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으며,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자라서 둥근 형태로 보이며, 꽃은 4월~5월에 피고 열매는 원반 모양으로 10월에 익는다.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어서 쉼터 역할을 하는 정자나무로 이용되거나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를 받아왔다. 마을 앞 가운데에 자라고 있는 거제 명진리의 느티나무는 나이가 6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높이 14m, 둘레 7.7m의 크기로 높이 1m 부위에서 사방으로 굵은 가지가 뻗어 있어 마치 커다란 녹색 우산을 펼쳐 놓은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명진리 마을 사람들은 이 느티나무가 마을을 지키는 수호목이라고 믿어 있어 마을에 시집오는 새색시에게 제일 먼저 이 나무 밑에서 고신제를 지내게 했다고 한다.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명진리 220

거제 외간리 동백나무
자연관광경상남도

거제 외간리 동백나무

동백나무는 차나뭇과에 속하는 상록 활엽 교목으로 높이가 약 7m이고 겨울에 꽃이 핀다고 하여 동백이라고 부른다. 동백나무는 주로 남쪽 해안이나 섬 지방에서 자라며 일본과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며 꽃은 11월부터 다음 해 4월까지 피고 열매는 10월에 익는다. 열매는 기름을 짤 수 있어 주로 머릿기름으로 쓰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바닷가에서 피는 붉은 꽃이라 하여 해홍화라고도 한다. 외간리의 이정묵의 집 뒤 터에 동서로 각각 한 그루씩 서 있는 이 나무는 마을 사람들이 부부나무라 하여 가정의 조화와 마을을 지켜주는 수호목으로 보호받고 있으며 매년 섣달 그믐날이면 이 나무 밑에서 당산제를 지낸다. 예로부터 우리나라 남쪽 바닷가 주민들은 동백나무의 가지를 혼례상에 차려놓고 신랑신부의 무병장수와 굳은 약속의 징표로 삼아 왔으며 동백나무 꽃이 골고루 잘 피어나면 좋은 시절이 올 것이고 북쪽에 꽃이 많이 피면 비가 많이 오고 남쪽은 흉년이 들고 동쪽과 서쪽에 많이 피면 풍년이 든다고 하는 미신이 있다.

경상남도 거제시 거제면 외간4길 5

장승포항
자연관광경상남도

장승포항

장승포항은 거제에서 최동단에 위치한 지역으로 맑은 날에는 일본의 대마도가 육안으로 식별이 가능하며, 해안은 리아스식 해안으로 자연경관이 아름다우며, 오랜 세월 동안 파도에 깎이고 다음어진 대형몽돌(바위)이 자연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곳이다. 해안선을 따라 2.5㎞의 일주도로가 조성되어 있고, 도로를 따라 아래쪽으로는 소나무가 울창하고 반대편으로 낮은 언덕으로 걸어서 오르기에도 어렵지 않은 곳이며, 해금강, 외도, 지심도로 갈 수 있는 유람선이 운영 중이다. 장승포항에는 흥남철수작전을 주제로 기적의 길과 송구영신 소망길이 조성되어 있는데, 이 두 길은 6·25 전쟁 중 흥남철수작전의 배경과 과정 그리고 피난민들이 거제에서 정착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를 조형물과 벽화 등으로 표현한 곳이다. 길을 따라 걸으면 저절로 스토리텔링 가능하도록 조성되어 있으며, 특히 송구영신 소망길은 조형물과 조명이 어우러져 장승포항 야경과 함께 야간관광도 가능하다. 장승포항에서는 해마다 장승포항 송년불꽃축제를 개최하는데, 민속놀이와 이색체험행사 및 각종 축하공연과 더불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한다.

경상남도 거제시 장승로 138

조선효종영릉재실
역사관광경기도

조선효종영릉재실

영릉[寧陵]은 조선 제17대 효종대왕과 인선왕후 장씨의 능이며, 재실[齋室]은 제관[祭官]의 휴식, 제수장만 및 제기 보관 등의 제사기능을 수행하기 위한 능의 부속건물이다. 효종대왕릉은 1659년 경기도 양주군 건원릉의 서쪽에 자리를 잡은 후 능호를 익릉[翼陵]으로 하였다가 영릉으로 고치고, 능을 조성할 때 능 앞에 재실을 건립하였다. 이후 1673년 석물에 틈이 생겨 현 위치로 옮겨오면서 재실도 함께 옮겨왔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 왕릉의 재실은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대부분 멸실되어 원형이 훼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곳 영릉 재실은 조선 왕릉 재실의 기본형태가 가장 잘 남아있고, 공간구성과 배치가 뛰어나 대표적인 조선시대 재실건축으로 학술적·역사적 가치가 높이 평가된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이천 신대리 백송
자연관광경기도

이천 신대리 백송

백송은 소나무과에 속한 바늘잎 상록수로서 짧은 가지 끝에 세 가닥의 잎이 뭉쳐나고 끝이 뾰족하며 짧다. 수꽃이삭은 긴 타원형, 암꽃이삭은 달걀 모양인데 5월에 꽃이 핀다. 솔방울은 달걀 모양이며 종자는 조금 큰 편이고 이듬해 10월에 익는다. 중국이 원산지로 인가 부근에 많이 심는다고 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매우 드물게 자라고 있는 희귀종으로서 발견되는 대로 지정 보호를 받고 있다. 전국을 통틀어 서울 통의동, 원효로, 제동, 수송동 등 네 그루가 있고 밀양, 보은, 예산에 각각 한 그루, 그리고 이천의 백송 등 모두 8그루가 있다. 나무의 높이는 16m가량이며 밑둥치에서부터 두 그루로 갈라져 옆으로 잔가지를 늘인 모양이 보기에 좋다. 수령은 220여 년이 넘는 것으로 추정되고 확실한 유래는 확인할 수 없으나 이 마을 노인들 말에 의하면 전라감사를 지낸 민달용의 묘를 이곳에 안치한 후 그 후손들이 묘 앞에 기념으로 심은 것이라고 한다.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원적로568번길 205-26

동림사(김해)
사찰경상남도

동림사(김해)

가락국(43~532) 김수로왕의 왕비인 허왕후의 오빠 장유화상이 창건한 김해 동림사는 수려한 경관을 가진 신어산에 있는 사찰이다. 장유화상이 신어산에 들어와 고향인 아유타국의 번영과 안녕을 기원하며 수행하던 사찰로 신어산 동쪽에 있어 동림사라고 전해지며, 신어산 서쪽에는 서림사(현 은하사)가 있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모두 소실되었으나, 1989년부터 13년에 걸쳐 화엄선사와 월주스님이 복원했다.

경상남도 김해시 신어산길 144 (삼방동)

사충단
역사관광경상남도

사충단

조선시대 선조 25년(1592년) 4월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김해를 지키다 전사한 김득기, 송빈, 유식, 이대형 선생의 공을 기리기 위하여 고종의 명으로 1871년에 건립한 묘단이다. 처음에는 동상동 873번지에 있었던 것을 김해의 도시계획으로 동상동 161번지 일원에 확장 이전하였으며 매년 음력 4월 20일 추모제를 지내고 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1600년(선조 33)에 이들은 모두 가선대부(嘉善大夫) 중에서 김득기와 이대형은 이조참판, 유식과 송빈은 호조참판으로 각각 추증(追贈) 되었다. 이 중 김득기의 묘는 한림면에 있고 이대형의 묘는 상동면에 있다.

경상남도 김해시 가야로405번안길 22-9

산수정
역사관광경상북도

산수정

산수정은 호봉 이돈(1568∼1624) 선생이 관직을 떠나 고향에 돌아와 학문연구와 후학양성에 전념하기 위해 지은 정자이다. 건립시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1610년경 지어졌을 것이라 추정된다. 건물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로 이루어져 있다. 건물 정면은 낮은 기단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두리기둥을 세우고 두리기둥 사이를 난간으로 처리하여 정자 건축의 멋을 돋우고 있다. 평면구성은 가운데 어칸의 대청을 전면의 3칸 툇마루와 이어서 우물마루를 깔았고, 전면의 툇마루는 측칸을 한칸으로 넓히고 툇마루 좌우측면으로 판벽과 두짝 밖여닫이 골판문을 설치하여 배면의 두짝 골판문과 함께 풍량을 조절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마애길 70-31

안동 사신리 느티나무
자연관광경상북도

안동 사신리 느티나무

느티나무는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 대만, 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가지가 사방으로 퍼져 자라서 둥근 형태로 보이며, 꽃은 5월에 피고 열매는 원반모양으로 10월에 익는다. 줄기가 굵고 수명이 길어서 쉼터역할을 하는 정자나무로 이용되거나 마을을 보호하고 지켜주는 당산나무로 보호를 받아왔다. 안동 사신리의 느티나무는 나이가 6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9.7m, 둘레 10.1m이다. 중앙에서 두 갈래로 나누어진 큰 가지에서 사방으로 풍성하게 잔가지가 뻗어나간 모습이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마을의 수호신으로 생각하며 정월 대보름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이 나무 밑에 모여서 새해의 행운과 풍년을 기원한다고 한다. 안동 사신리의 느티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민속적·생물학적 자료로서 보존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녹전면 사신리

안동 진성이씨 종택
역사관광경상북도

안동 진성이씨 종택

이 건물은 진성이씨(眞城李氏) 주하세거(周下世居) 경류정종택으로 당초 건립 연대(建立年代)는 미상이나 별당(別堂)인 경류정은 조선(朝鮮) 성종(成宗) 23년(1492)에 이연(李演) 선생이 세웠다는 기록이 있다. 이정은 이황(李滉)의 증조부로, 세종 때 영변판관(寧邊判官)으로서 여진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영변진(寧邊鎭)을 쌓았으며, 선산도호부사를 지냈다. 진성이씨가 안동 풍산 마애(麻厓)에서 이곳 주하, 즉 주촌(周村)으로 옮겨온 것은 이정의 부친인 이운후(李云候)에 의해서였다. 이운후는 진성이씨 안동 입향조이자 부친인 송안군(松安君) 이자수(李子脩)와 함께 이곳으로 왔다고 한다. 따라서 이 건물은 진성이씨 대종택의 위상을 갖는다. 건물의 구조는 정침 외에 경류정, 사당, 행랑채, 방앗간채 등 다섯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ㅁ자형이며 전면 좌측에 사랑채가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에 바닥을 지면(地面)에서 높이 띄우고 앞쪽에 툇마루를 내었다. 경류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팔작지붕의 익공식(翼工式) 건물로 기둥은 원형(圓形)인데 일부에 배흘림이 남아 있어 주목된다. 정침과 경류정 뒤에 서남향으로 앉은 사당은 3칸으로 5량가의 겹처마집이다. 방앗간채는 문간과 고방 및 방앗간 2칸으로 된 4칸 집이다. 조선시대 이 지역의 사대부가(士大夫家)의 면모를 고루 갖추고 있는 종택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금산로 242-5

안동 주하리 뚝향나무
자연관광경상북도

안동 주하리 뚝향나무

안동 주하리 뚝향나무는 조선 세종(재위 1418~1450) 때 선산부사를 지낸 이정(李楨)이 평안북도 정주판관으로서 약산성 공사를 마치고 귀향할 때 가지고 와서 심은 것이다. 『노송운첩』에 이에 대한 내력이 실려 있다고 한다. 이정이 약산산성 쌓기를 마치고 귀향하면서 세 그루의 향나무를 가지고 와서 도산면 온혜와 외손인 선산의 박씨에게 각각 한 그루씩 주고 남은 한 그루를 이곳에 심은 것이라 한다. 그러나 모두 죽고 이 나무가 유일하게 남아 있다고 한다. 나이는 5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나무 높이 4.0m, 가슴높이 둘레 2.5m이며, 가지가 아래로 처지는 것을 막기 위해 여러 가지 형태의 받침대를 세워서 관리하고 있다. 향나무와 비슷하지만 곧게 자라지 않고 전체가 옆으로 퍼지면서 자란다. 안동 주하리 뚝향나무는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태리금산로 242-5

역동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역동서원

국립경국대학교 안동캠퍼스 내에 자리하고 있는 역동서원은 고려 말기의 학자 우탁(禹倬, 1263~1342)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1570년(선조 3) 퇴계 이황(退溪 李滉) 선생의 발의로 인근의 사족과 수령들의 협조를 받아 예안을 포함한 안동지역에서 최로로 건립된 서원이다. 우탁은 단양 출신으로 1290년 과거에 급제하였다. 북송의 성리학자 정이(1033~1107)의 저술 「역전」이 고려에 들어오자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는데, 역학에 조예가 깊었던 우탁이 이를 깊이 연구하고 터득하여 생도들을 가르쳤다. 역동서원은 1684(숙종 10)에 사액을 받은 후 대원군의 서원철폐 때 훼철되었다가, 1969년 현 위치에 이건 복원되었다. 1991년에 국립경국대학교 안동캠퍼스가 이곳에 들어서면서 대학교에서 관리하고 있다. 서원은 정문인 입도문, 강당인 명교당, 원생들이 일상생활을 했던 사물재와 삼성재, 우탁의 위패를 모신 상현사, 그 외 서원의 부속 건물로 구성되었다. 서원에는 이황의 역동서원기와 다수의 친필 현판이 걸려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자연관광경상북도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는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에 있는 은행나무로 대한민국의 천연기념물 제175호로 지정되었다. 키가 47미터에 이르며, 가슴 높이 둘레가 14미터로 한국 은행나무 가운데에서는 가장 굵으며 700살이 훨씬 넘은 것으로 추정된다. 원래는 용계초등학교 운동장에 있었으나 임하댐의 건설로 물에 잠길 위치에 있어 노거수의 이식이 불가하여 그 자리에 15m의 높이로 흙을 쌓아 인공섬을 만들고 그 자리에 수직으로 옮겨 심은 것이다. 이 나무에는 조선 선조(재위 1576∼1608) 때 훈련대장이었던 탁순창이 서울에서 내려와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은행나무 계를 만들어 이 나무를 보호하고, 매년 7월에 나무 밑에 모여 서로의 친목을 도모했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현재 이 마을은 사라졌지만 탁씨의 자손들은 해마다 나무에 제사를 드리며 보호하고 있다. 용계리 은행나무는 주민 단합을 이루게 하는 상징물의 역할을 하여 온 나무로써 가치가 크고, 우리 선조들이 나무를 사랑하고 보호한 것을 알 수 있는 자료이며 우리나라에 있는 은행나무 가운데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 다음으로 크고 오래된 나무이며 주변 단풍나무가 조성되어 가을 단풍 명소로 유명하다. 나무를 보기 위해서는 길가에 주차하고 인공섬으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야 한다.

경상북도 안동시 길안면 용계리

청송 후송당 고택
역사관광경상북도

청송 후송당 고택

청송 후송당 고택은 1920년 무렵 후송 조용정(趙鏞正)이 건립하였다. 고택은 ㅡ자형 안채와 ㄴ자형 중문간채와 ㄴ자형 사랑채가 안마당을 감싸고 있어 전체적으로 보면 ㄷ자 모양이다. 안채는 오른쪽에 있는 부엌을 제외한 전면에 툇마루를 만들었으며, 네모기둥을 세운 5량가(한식 건물에서 도리가 다섯 개가 있는 지붕)의 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달았다. 종도리(용마루 밑에 서까래가 걸리게 된 도리) 밑면에 ‘단기사천이백팔십년 상량(檀紀四千二百八十年上樑)’이란 기록이 있다는 문화재지정 조사보고서로 본다면 고택은 화재로 불타서 없어진 것을 해방 후 1974년에 다시 건립한 것으로 추정한다. 사랑채는 안채와 같이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건물로 앞면 튓기둥만은 둥근기둥을 세웠으며, 후송헌(后松軒)이라 쓴 현판이 걸려 있다. 안채의 앞에 위치한 중문간채는 대청과 좌측의 사랑방이 다 같이 ㄴ자형을 이루어 사랑채와 함께 ㄷ자로 내정을 에워싸고 있다. 내정으로 출입하는 중문을 비롯하여 마구간, 방앗간, 하인들이 거처하던 방, 부엌 등이 있다. 고택 건립연대는 오래되지 않으나 50칸이 넘는 큰 규모의 주택으로, 일제강점기 동안 전통한옥이 변천해 온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각 건물의 배치 관계가 좋고 비교적 간소한 외관을 보여 주고 있다.

경상북도 청송군 현동면 청송로 2585-4

청송 장전리 향나무
자연관광경상북도

청송 장전리 향나무

영양 남씨의 무덤 옆에 위치한 청송 장전리 향나무는 1580년 경 심어진 것으로, 나이는 400년 정도로 추정된다. 나무 높이 8.0m, 가슴높이 둘레 1.8~3.8m이다. 줄기는 지면에서 1m 정도 올라가서 네 개로 갈라졌으며, 나무의 키는 비록 작으나 밑둘레가 굵고, 가지가 넓게 뻗어 자라고 있다. 청송 장전리 향나무는 무덤 옆에 심어져서 오랜 세월 동안 조상들의 관심과 보살핌 가운데 살아온 문화적·생물학적 자료로서의 가치가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장전리

청송 홍원리 개오동나무
자연관광경상북도

청송 홍원리 개오동나무

청송 홍원리 개오동나무는 청송군 부남면 홍원리에 있는 노거수이다. 모두 세 그루이며, 그중 가장 오래된 나무의 수령은 약 400년으로 추정된다. 나무의 높이는 8m, 가슴 높이의 줄기 둘레는 3.9m이다. 우리나라에서 흔하지 않은 나무로, 수형이 아름답고 노거수로서 학술적 가치가 인정되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마을에서는 오래전부터 당산나무로 정하여 매년 음력 정월대보름에는 이 나무에 모여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동제를 지내며 보호하고 있다.

경상북도 청송군 부남면 홍원리 547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영월 하송리 은행나무

영월읍 하송리마을 가운데 있는 나무로 나이가 1000~1200년으로 전해지며 높이 23m, 가슴 높이 줄기 둘레 14.5m나 되는 세계 최대의 은행나무로 알려져 있다. 이 나무는 1962년 12월 7일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영월 엄씨의 시조인 엄임의가 심었다고 전해진다. 예전에 대정사라는 절 앞에 서 있었으나, 절이 없어지고 주택이 들어섬으로써 마을 가운데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 나무는 마을의 정자목 역할을 하고 있으며, 주민들은 이 나무속에 신령스러운 뱀이 살고 있어 개미, 닭, 개 등과 같은 동물이나 곤충이 접근하지 못하여, 아이들이 나무에서 떨어져도 큰 상처를 입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주민들은 이 나무를 소중하게 여기는데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때는 북쪽 가지가 부러지고, 8·15 광복 때는 동쪽 나뭇가지가 부러져 국가의 슬픔과 기쁨을 예언했다 한다. 옛날에는 자식을 얻기 위해 부인들이 치성을 드리던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하송리 190-4

포천 반월성
역사관광경기도

포천 반월성

포천시 군내면에 있는 산성이 있는 자리로 길이는 1,080m이다. 산성은 후고구려를 세운 궁예가 쌓았다고 전해지나, 조사결과 고구려 때 쌓은 성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여러 책에 고성, 산성, 반월산성 등으로 기록하고 있는데 대동지지를 통하여 광해군 10년(1618)에 고쳐 쌓고, 인조 1년(1623)부터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밖에 ‘연려실기술’, ‘포천군읍지’, ‘견성지’에서도 돌로 쌓았다는 기록과 함께 여러 가지 당시 성에 관한 기록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성의 옛 자취를 엿볼 수 있는 시설물로는 남쪽과 북쪽의 문 터, 성벽 바깥쪽에 사각형 모양으로 덧붙여 만든 치성 4개소, 건물터 6곳, 배수시설이었던 수구터, 장수의 지휘대였던 장대터, 적의 동정을 살피기 위해 세웠던 망대터 등이 있다. 반월성이 위치한 청성산은 포천시의 진산으로 옛날부터 신성시되었다. 때문에 이곳에서 많은 제사 및 무속행사가 이루어졌으며 제사 유구로는 지역주민들이 애기당이라 부르는 당집이 있었다. 반월성은 조선 광해군대에 후금을 방어하기 위해 성을 수축하였으나, 이후 성의 기능을 잃고 포천의 치소와 종교적인 공간으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도 포천시 청군로3290번길 19

영동 덕수이씨 육세팔효정문
역사관광충청북도

영동 덕수이씨 육세팔효정문

영동 덕수이씨 육세팔효정문은 조선 선조 때부터 영조 때까지 덕수이씨 가문에서 배출한 효자 6인과 효부 2인에 대한 효행을 기리는 정려를 영조 40년(1764)에 한 곳에 모아 건립한 정문이다. 정문(旌門)이란 충신·효자·열녀들을 표창하기 위해 마을 입구나 집 문 앞에 세우던 붉은 문을 말한다. 이곳에서 받들고 있는 효자 6명은 이학수, 이탱, 이만춘, 이채, 이복초, 이종철이고, 효부 2명은 복초의 처인 장씨와 종철의 처인 김씨이다. 정문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1칸으로 지붕선이 옆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의 단순한 맞배지붕이다.

충청북도 영동군 양산면 원당리

영동 세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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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동 세천재

이 건물은 충주박 씨 종중에서 후손들의 강학을 위하여 조선 중종 15년(1520)에 건립한 것으로 흥학당기에 의하면 조선 숙종 때 중수한 뒤 영조, 고종 때에도 중수가 있었던 것으로 전해오고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지붕의 오량집으로 활석으로 쌓은 기단 위에 남향하여 있다. 덤벙 주초석을 놓고 위에 두리기둥을 세우고 기둥 위의 공포를 초포를 초익공 양식으로 짜고 안쪽으로는 보아 지를 둘 출시 켜 대들보의 안쪽을 받쳤는데 특히 대청의 중간 기둥 위에 용두를 결구하였다. 중앙 2칸은 우물마루로 깔아 넓은 대청으로 이용하고 양끝 방은 온돌방으로 만들었다. 가구는 전후 평주위에 대들보를 건 형식이며 동자주 위에도 주두가 짜여 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내오곡길 94-97

봉유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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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유재

봉유재는 조선 중종 때 안주목사를 지낸 박성량을 기리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인조 10년(1632) 3월에 건립한 재실이다. 이후 두 차례에 걸친 중수 과정이 있었으며, 2019년에 해체 보수하였다. 건물이 세워진 당시에는 대종재인 흥학당 앞에 세워져 있다는 이유로 현판도 설치하지 않은 채 소종재라는 이름으로 불렸다고 한다. 그러나 후대에 이르러 ‘선조를 받들고 후손에 복을 준다’는 의미로 봉유재라는 현판을 설치하고 재실, 서당으로 사용하였다. 봉유재는 저연석 기단과 초석을 사용하여 건립하였는데, 정면 4칸 및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구성하고 정면 2칸은 큰 대청마루를 이루고 있으며, 높이가 낮은 굴뚝 등은 지역적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다. 주변을 토석담으로 두르고 전면에는 삼문을 배치하였으나, 이는 후대에 복원된 것으로서 초기에 건물이 어떤 형상으로 건립되었는지는 추정하기 어렵다. 충주 박 씨 종중 세거지인 매곡면 노천리는 충청북도 유형문화재인 ‘흥학당’, ‘사로당’과 인접 마을에 문화재 자료인 ‘세천재’가 세워져 있어 서당, 사당, 재실이 모두 갖추어진 전형적인 마을로 종중의 지역 정착과 발전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다.

충청북도 영동군 매곡면 내동1길 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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