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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49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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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의사(고성)
역사관광경상남도

장의사(고성)

경남 고성군 거류면 한복판에 우뚝 솟은 거류산(570m) 중턱에 위치한 장의사는 신라 원효대사가 선덕여왕 1년 (서기 632년)에 창건하여 6.25 사변의 병화를 입었으며 1891년 성담화상이 중창한 것을 비롯하여 1917년 효봉화상에 의하여 중건되고 그 후 신도들에 의해 보광전을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며 사찰의 뒤로는 기암괴석이 웅장하게 치솟아 울창한 수목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 (출처: 고성군 문화관광)

경상남도 고성군 거류면 신용9길 295

적석사
사찰인천광역시

적석사

적석사는 전등사본말사지 등의 기록에 의하면 백련사 및 청련사와 함께 고구려 장수왕 4년(416)에 창건되었고, 처음에는 적련사(赤蓮寺)였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다. 적석사를 오르는 길목 오른쪽에 자리한 적석사 사적비는 숙종 40년(1714)에 세워진 것으로 전체 높이가 3m 94cm이고 비신의 높이 3 m4 cm, 너비 69cm이다. 사적비의 재질은 화강암이고, 지붕모양의 뚜껑돌이 얹혀 있으며 비신의 상부에 ‘고려산적석 사지(高麗山積石寺之碑)’라는 비의 제목이 있다. 비문에는 불교의 전래 및 사찰의 중건 ·중수상황과 고려시대 몽고 침입에 대항하여 강화에 도읍을 옮겨 올 때 임금의 거처로 사용했다는 기록 등이 있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내가면 연촌길 181

적조사(서울)
사찰서울특별시

적조사(서울)

적조사는 성북구 돈암동에 위치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교구 소속사찰이다. 1849년(헌종 15) 혜암성혜 스님이 염불관선(마음을 청정하게 하기 위해 부처를 생각하는 수행법)의 수행도량으로 삼고자 흥천사의 산내 암자로 창건하였으며, 칠성각을 건립하여 국가축원 기도처로 유명하였다. 이후 가람이 소실되어 폐허가 되었던 것을 1958년에 학월경산(1917~1979) 스님이 주석하면서 복원 불사를 일으켜 가람을 정비하였다. 1970년대 후반 흥천사의 산내암자에서 사격이 분리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적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을 세 번 역임한 경산스님이 1979년 입적하기 전까지 주석하며 헌식적으로 전법교화에 진력하였던 도량이다. 입적 이후 스님이 사리를 수습하여 1982년 사리탑과 비석이 조성된 사찰로서 경산스님의 수행과 전법은 현대불교사에 뚜렷한 자취로 남아 전해지고 있다. 또한, 적조사는 1980년 10월 계엄사령부의 합동 수사본부 합동 수사단이 불교계 정화를 명분으로 대한불교조계종 승려 및 불교 관련자를 강제로 연행 및 수사하고, 포고령 위반 수배자 및 불순분자를 검거한다는 구실로 군·경 합동으로 전국의 사찰 및 암자 등을 수색한 사건인 10·27법난의 피해사찰이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흥천사길 49-23 (돈암동)

적천사(청도)
역사관광경상북도

적천사(청도)

적천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로 664년(신라 문무왕 4)에 원효 대사가 수도하기 위해 토굴을 세운 것에서 시작되었다. 828년(통일신라 흥덕왕 3)에 심지왕사가 고쳐 세운 뒤 여러 차례 소실되어 다시 지었으며, 근래에는 명부전과 누각을 고쳐 세웠다. 적천사 대웅전은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대웅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조선 후기에 지은 것으로 보이지만 조선 전기 건축 수법도 부분적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적천사에는 800년된 은행나무도 있는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은행나무는 나무 높이 25.5m, 가슴높이 둘레 8.7m로 3m 위치까지 한 줄기이며, 그 위부터는 3개의 가지로 나뉘었다. 맹아 및 유주가 유난히 발달했는데, 맹아는 새로 난 싹을 말하며, 유주는 가지 사이에 혹 또는 짧고 뭉뚝한 방망이처럼 생긴 가지를 말한다. 유주는 일종의 뿌리가 기형적으로 변한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일본에서는 흔히 볼 수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보조국사가 고려 명종 5년(1175)에 적천사를 다시 지은 후 짚고 다니던 은행나무 지팡이를 심은 것이 자라서 이처럼 큰 나무가 되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원동길 304

정각사(부여)
역사관광충청남도

정각사(부여)

부여와 논산을 잇는 길 중간에서 태조산으로 접어들면 사면을 깎아 대지를 조성하여 만든 정각사에 이르게 된다. 이 사찰은 백제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이를 입증할 만한 기록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사찰 경내에는 입구 좌측에 있는 석종형의 부도를 포함해 모두 5기의 부도가 있으며, 그중 1기에서 1958년에 기단 보수 공사 중 사리가 출토되어 부여박물관에서 조사한 바 있다. 이들 부도군은 부여군 향토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대웅전에는 삼존불상이 봉안되어 있으며, 이 중 본존 석가불은 현대에 만들었으나 좌우의 보살상은 조선시대에 만들었다. 18세기 이전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두 보살상은 역사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예술성도 뛰어나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석성면 왕릉로정각사길 165

정법사(서울)
사찰서울특별시

정법사(서울)

삼각산 정법사(正法寺)는 원래 복천암(福泉庵)으로 조선 후기 유명한 학승이며, 선사였던 호암 체정(1687~1748) 대선사가 창건하였다. 1959년 건봉사(乾鳳寺) 만일염불회(萬日念佛會)의 회주 보광스님과 석산스님이 서울 가회동에 있던 건봉사 포교당인 정법원을 이곳에 이전하여 중창하였다. 이후 만일염훌회의 만화, 대련, 복광의 법맥을 계승한 고명한 어산장(염불승)인 석산스님이 주석하면서 염불수행의 일가를 이루었다. 현재 남아있는 유물로는 조선시대에 조성된 관세음보살상과 산신탱화 및 복천암터의 주춧돌 등 다수가 있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대사관로13길 44 (성북동)

정수사(완주)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정수사(완주)

정수사는 상관면 소재지 및 상관IC에서 자동차 기준으로 15분 정도 떨어진 만덕산(765.5m) 골짜기에 자리한 사찰이다. 정수사라는 이름은 곧 청정한 도량임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이 사찰은 그만큼 노령산맥의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환경과 관련이 있다. 그만큼 사찰이 들어서기 좋은 곳으로 889년(신라 진성왕 2)에 도선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진다. 그 후 조선시대 들어 1581년(선조 14)에 중건되었다가 얼마 못 가 임진왜란을 거치며 불타 없어졌다가 다시 중건되었다. 지금은 부도 2기, 요사채, 종무소를 겸하고 있는 관음전, 삼성각, 극락전, 지장전, 범종각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내에는 보물로 지정된 목조아미타여래삼존상이 보존되어 있다. 주변에는 만덕산 외에 상관저수지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상관면 정수사길 18

정심사(충주)
역사관광충청북도

정심사(충주)

정심사는 대림산 중턱 기슭에 위치한 사찰이다. 건립연대는 추정하기 어렵지만 고려 후기에는 월은사, 조선시대에는 달암사, 호암사 그리고 일제강점기 때는 개운사로 명명되었다가 지금은 정심사로 개칭하였다. 전설과 구전에 의하면 정심사는 임경업 장군이 유년 시절부터 무술을 연마하던 곳이라고 한다. 시설은 1978년에 중수한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대웅보전을 비롯하여 명부전, 범종각, 산신각 및 요사채 2동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유주막로 248

사찰충청남도

정암사(홍성)

오서산 중턱에 위치한 정암사는 백제 성왕 5년 담욱 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충남 전통사찰 68호로 지정되었다. 전형적인 시골 사찰처럼 규모가 그리 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속인들의 교화에 관심을 많이 갖고 계신 주지스님 덕분에 제대로 된 모습을 갖추고 있다. 중심 법당인 극락전에는 본존불인 아미타불을 가운데로 좌우에 관세음보살과 지장보살이 협시한 아미타 삼존불이 봉안되어 있다.

충청남도 홍성군 광천읍 오서길 625

정토사(정읍)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정토사(정읍)

정토사는 선운사의 말사로, 팔봉산 또는 정토칠봉이라고도 불리는 정토산 중턱에 있다. 1299년 담운선사가 창건했다고 구전되지만, 절의 연혁을 기록한 사적기나 기타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확실한 것은 아니다. 정토사는 약사전·관음전·종각·칠성각·요사 등의 건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석조미륵입상과 삼층석탑, 정토사 기적비 등이 조성되어 있다. 약사전은 팔작지붕 집으로, 내부에 주존 불인 석가 불좌상을 비롯하여 영산 후불탱·지장탱·신중탱 등이 있다. 관음전은 정면 우진각 지붕으로 법당 겸 요사로 사용되는데 내부에 관음상을 비롯하여 소형 여래상 등이 모셔져 있다. 칠성각은 맞배지붕 집으로, 불상은 봉안되지 않았으며 칠성탱·산신탱·독성탱 등의 불화만 조성되어 있다. 주변 관광지로 창동서원, 백운암석불입상, 말목정과 감나무, 전봉준선생고택, 말목장터유지비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정우면 정신로 832-20

정혜사(순천)
사찰전남광주통합특별시

정혜사(순천)

순천시 서면 청소리 계족산 중턱에 자리한 정혜사는 통일신라 시대 말 보조국사 체징(804~880)이 창건하였다는 설과 고려시대에 창건되었다는 설이 있다. 이 지방에서는 아주 오래된 사찰이라는 뜻으로 ‘고사절’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19교구 본사 화엄사 말사이다. 또한 송광사 원감국사 충지스님이 서기(1226~1293년)에 스님의 스승에 대해 쓴 ‘혜소국사 제문’ 등에 보면 정혜사는 혜소국사가 창건했다는 기록도 있다. 임진왜란 때인 선조 20년(1592)에 소실되어 흔적만 남아있는 것을 임진왜란 이후에 신욱스님께서 정사년(1671년, 광해군 9년)에 법당 3칸을 중창하셨다는 기록이 대웅전 상량문에 기록으로 남아 있다. 대웅전은 1984년 11월 30일 보물로 지정되었으며 정혜사의 역사가 깊고 대웅전 건물이 조선 시대 목조 건축의 여러 양식을 찾아볼 수 있는 중요 자료로서 상당한 격조를 갖추었음을 알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서면 정혜사길 32

정혜사(전주)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정혜사(전주)

전주의 정혜사는 보문종 계열의 비구니 스님들이 기도하고 공부하는 사찰이다. 정혜사는 1899년에 최향관 선생이 득남발원을 위하여 완산 아래 이곳에 조그만 칠성각을 건축한 후 불상을 모시고 그 옆에 초가집을 사서 사찰을 만들고 절 이름을 정혜사라고 하고 기도불사를 진행하였다. 1921년 정명주 스님이 불교 포교의 원력을 세우고 보광전 15칸, 용화전 1칸을 건축하였으며 명부전, 나한전, 완산선원, 사대천왕문과 아울러 요사채를 건축하여 수행과 포교에 전력을 다했으며, 강원을 설치하여 도제 양성에도 힘을 기울였다. 그 후 백혜명 스님과 현 주지인 정혜일 스님이 중건, 중창불사를 거듭하여 지금의 정혜사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외칠봉1길 36

제석사(경산)
역사관광경상북도

제석사(경산)

제석사는 원효대사(617-688)의 탄생지에 지어진 사찰이다. 원효대사는 신라 고승으로 통불교(원효종, 분함종, 해동종)을 제창하고 민중 속에 불교를 보급하고 한국 고대사, 철학사, 사상사에서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로 추앙받고 있으며, 독창적 지식체계의 위상과 가치는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서 꾸준히 재조명되고 있다. 원효의 어머니 조 씨 부인이 유성이 품에 안기는 태몽을 꾸고 원효를 잉태하여 만삭이 되었을 때 불 지른 북쪽 율곡의 밤나무 아래를 지나다가 홀연 산기를 느껴 남편의 옷을 밤나무에 걸어 산실을 마련하고 해산하게 되었는데, 이때 하늘에서 오색구름이 내려와 땅을 덮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 밤나무를 사라수라 부르게 되었으며, 그 밤나무 열매의 크기와 굵기가 보통과 달라 사라울이라 불렀다고 전해지고 있다. 후에 원효는 자신이 태어난 밤나무 옆에 절을 지어 ‘사라사’라 하였다. 제석사는 신라시대 원효대사가 출가한 후 생가 곁에 지어졌던 사라사가 폐사되었다가 400여 년 전 밭갈이하던 농부가 불상과 탑신을 발견하고 사찰을 복원했다는 설화가 있다. 제석사에 남아 있는 석조좌불과 부서진 탑신, 석등 연화대석 등이 신라말기의 것으로 보이고 있어 사라사의 후신이 제석사임을 짐작케 한다. 아울러 제석사에서는 원효대사 탄생일인 음력 5월 4일 매년 다례제와 원효·설총·일연 삼성현(三聖賢)의 삶과 사상을 조명하는 삼성현 문화축제를 개최하며 음력 5월 5일 단오절이 되면 경산시에서 주최하는 경산자인단오제에 참여한다.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북사안길 18

조앙사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조앙사

조앙사는 진묵조사를 흠앙하는 뜻에서 진묵조사의 조(祖)자와 흠앙의 앙(仰)자를 따서 이름 지었다. 이곳은 불교계의 거목으로서 전북지역의 고승이던 진묵대사가 태어났던 곳으로써 그를 모시는 사찰이다. 경내에 진묵조사전이라는 전각을 마련하여 진묵대사를 모실 뿐 아니라 영전을 세웠고, 그의 어머니와 누이의 영정까지 모시고 숭앙하고 있다. 조앙사는 1915년 창건되었고 당시는 대웅전만 있었으나 그 이후 요사를 짓고 칠층석탑을 세우고종각을 지었다. 1977년에는 이전의 대웅전을 헐고 새로 지었다. 이곳은 진묵대사와 함께 근대기에 대화교의 본산이었던 중요한 사찰로 일제강점기 때 대화교의 포교당이 있어 현세에서 고통받는 이들이 미래에는 희망을 밝혀줄 미륵불을 신앙하고 전파하였던 곳이다. 따라서, 근대기 한국 불교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전개했던 증거로서 당시에 제작된 포교문을 비롯하여 불화와 불탑 등 여러 성보 문화재가 남아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만경읍 화포3길 63-12

조왕사(부여)
역사관광충청남도

조왕사(부여)

금성산 조왕사는 국립부여박물관 뒤편에 위치한 아담한 사찰이다. 이곳은 고려시대에 건립된 사찰로 추정될 뿐, 구체적인 연혁에 대하여 알려진 바는 없다. 조왕사가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일제강점기에 이르러서이다. 1913년 절 뒤편에서 훗날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비로자나불좌상을 발견하여 1919년에 법당을 짓고 이 불상을 봉안하여 중창하였다. 최근에는 1981년 요사, 1984년 종각, 1997년 대웅전을 새로 지었고, 일제강점기에 발굴된 좌불은 법당에 봉안되어 있다. 그리고 1987년에는 그동안 묻혀있던 석탑이 폭우로 인해 우연히 드러나 복구되어 부여군 향토 유적으로 지정되었다. 한편, 이곳은 화지산과 부여시가지 남부, 그리고 멀리 백마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여 경관이 좋을 뿐만 아니라 암벽과 바위 사이에서 나오는 약수가 있어 더욱 잘 알려져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계백로 334-47

역사관광경상북도

주사암(경주)

경주는 이름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이는 곳이다. 신라인의 불국토이자 이상향이었던 경주. 그래서 그곳을 찾아가는 길은 더욱 특별하다. 경주의 산들은 그 산세가 웅장하거나 계곡이 아름답다기보다는 우리나라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모습들이지만 산자락마다 신라 천년의 역사와 설화를 간직한 곳이어서 그 역사의 향기를 더듬으며 한 번쯤 올라볼 만한 산들이 많다. 일명 주사산[朱砂山], 부산[富山]이라 불리는 오봉산[五峯山] 역시 천년이 넘는 옛 설화를 찾아 떠나 봄직한 산이다. 그리고 그 오봉산 정상에 옛 설화를 간직한 주사암이 있다. 주사암은 신라 문무왕 때 의상 대사가 주암사[朱巖寺]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는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이 절의 내력과 관련된 설화가 전해진다 (주사암의 창건 설화 참고). 그리고 이 설화에 의해서 절 이름이 주사암이 되었다고 한다.

경상북도 경주시 서면 도계서오길 251-355

죽림사(영천)
역사관광경상북도

죽림사(영천)

영천시 유봉산에 위치한 죽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0교구 은해사의 말사이다. 죽림사는 809년(신라 헌덕왕 1)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연혁은 알려진 바 없고, 임진왜란으로 사찰이 전소되었다가 중건된 내용만 알려져 있다. 1800년대에 몇 차례 중수가 있었으나, 6·25전쟁으로 또다시 폐사된 것을 1990년부터 대웅전, 삼성각 등의 전각을 중건하면서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웅전과 응진전, 삼성각, 누각, 요사 등이 있고,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철조여래좌상이 있다. 또한 대웅전 앞 화단에 고려 시대의 석탑재가 남아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죽방길 279-57

죽림사(포항)
역사관광경상북도

죽림사(포항)

봉비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도심 속의 전통 사찰인 죽림사는 불국사의 말사이며 신라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진다. 1929년 기록된 죽림사 상량문에 의하면, 신라 때 원앙 부인이 수도를 닦던 도량으로 그 아들 안락국이 대도를 깨달은 자리이기도 하다. 1927년에 주지 김노성 법명 용연 스님과 당시 면장 권전근이 뜻을 세워 신도 여섯이 불교 기성회를 조직하여 법당을 중수하고, 1980년 대웅전과 유치원 건물을 새로 건립하고 1996년 삼성각을 신축하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죽림사는 도심형 사찰답게 사찰의 외형적인 모습보다는 내부 활동을 충실히 하고 있으며 대중에서 다가는 포교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신도회, 관음회, 지장회, 유마회 등의 신도 모임이 있고, 반야 합창단, 청년회, 학생회 등의 많은 활동이 활발하다. 청년회와 학생회는 1947년 창립하여 오랜 역사와 전통이 있으며, 불교 포교에도 많은 역할을 하고 있다. 도심 속에서 부처님 품 안처럼 따뜻한 사회와 정토 세계를 구현하고자 하는 죽림사는 그 전통과 역사를 바탕으로 현대 불교 포교에 큰 힘을 쏟고 있는 도심형 사찰이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탑산길10번길 11-4 (용흥동)

죽림사(청도)
역사관광경상북도

죽림사(청도)

청도 죽림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 동화사 소속 사찰이다. 죽림사는 610년(신라 진평왕 32)에 법정 대사가 화남사라는 이름으로 창건하였다. 법정 대사는 창건 후 선덕 여왕의 명을 받아 화친사로 일본에 건너가 많은 성과를 거두고 돌아왔다. 왕은 노고에 대한 답례로 왕명으로 화남사 옆의 땅 약 900여 결을 하사하였는데, 그때 심은 대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죽림사라는 이름의 유래가 되었다고 한다. 고려 시대에 와서는 보조 국사 지눌이 중창하였다. 조선 시기에는 태조 때 무학대사가 중건하였다고 전한다. 그 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의 병화로 대웅전과 명부전이 소실되고 보광전만 남은 것을 전쟁 후에 인덕당을 새로 건립하였다. 최근에는 1992년 산령각과 요사인 견을당, 1993년에는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홍도길 205-5

죽림암(임실)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죽림암(임실)

임실읍의 안산이라고 할 수 있는 용요산(龍要山, 일명 용오산)의 중턱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로 9세기 말경 신라 진감국사가 신흥사를 건립 후 초가삼간의 규모로 창건하였다. 절 주위에는 왕대가 있었고, 이 때문에 죽림암이라 불렀다 하는데 한 승려가 칡덩굴을 없애려고 불을 놓았다가 왕대도 모두 사라졌다 한다. 신흥사가 수행을 위한 도장으로 만들어졌다면 죽림암은 수행과 포교의 목적을 지닌 곳이었다. 1504년 고려시대 승려인 보우국사의 4 세손 지엄이 중창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그 후에 전라남도의 어느 민가를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 현재의 죽림암이다. 본래 법당 본전 5칸과 칠성각, 산신각이 있었으나 임진왜란과 6.25 전쟁 때 다시 불타버렸다. 지금의 법당, 칠성각, 산신각은 1981년 중수된 것이다. 암자 바로 앞에는 오래된 느티나무 3그루가 서 있는데 큰 것은 높이 약 25m 정도로 이 절의 역사를 짐작케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호반로 79-53

죽사(서산)
역사관광충청남도

죽사(서산)

죽사는 서산시 갈산동과 인지면의 경계에 해당하는 비룡산의 남향사면에 위치한다. 지형적으로는 비룡산의 정상부 남향사면에 해당하며 죽사의 후면에는 비룡산 동쪽에 솟아있는 큰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죽사의 창건연대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으며, 일설에 의하면 백제 의자왕 때 도감국사가 수도하기 위해 창건한 것이라고 전한다. 현재 죽사에는 원통전과 종각 그리가 요사체가 있다. 원통전은 화재로 소실된 것을 다시 신축하였다.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갓고개길 242-24

진월사(영주)
역사관광경상북도

진월사(영주)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학가산 자락에 위치하고 있는 진월사는 천년고찰로 이 고장 절 가운데 가장 높은 지대에 자리해 있으며, 서북으로 멀리 소백산 연봉을 마주하고 절 아래로 내성천이 굽이굽이 흐르고 있다. 진월(陳月)이라는 이름은 이 곳의 지명과 관련이 깊다. 학가산 진월사는 영주시와 안동시의 접경지역으로 현재 절이 있는 곳은 영주시에 속하나, 안동 월전(月田)동이 본마을이라고 한다. 이 마을 지형이 고지대 분지를 이루고 있고 동산마가 위치한 곳에 반월처럼 생긴 동산이 있으며 그 동산을 중심으로 반월처럼 층계로 밭을 이루고 있어 달밭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마을에서 유래되어 절 이름도 진월사가 되었다고 한다.진월사는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나 옛 건물의 흔적은 찾아볼 수가 없고 현재는 무량보전, 향로전, 심원루와 가정집처럼 지워진 요사채가 눈길을 끈다. * 창건배경 및 역사* 진월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 말사이다. 신라 문무왕(재위 661∼681) 때 의상(義湘)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나 확실한 유래는 알 수 없다. 이후부터 조선 중기까지의 연혁은 전해지지 않으며 1720년(조선 숙종 46) 설신(雪信)과 계원(戒員)이 무량보전(극락전)을 중건하면서 이 절의 주불을 지장보살에서 아미타삼존불로 바꿔 봉안하고 노전도 신축하였다. 1797년(정조 21) 계문(戒文)이 중수하였고, 1807년(순조 7) 시임(時任)과 정신(定信)이 중수하였다. 1891년에 희민(曦玟)이, 1919년 보정(普貞)이 중수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건물로 무량보전과 삼성각, 심원루, 향로전, 요사 등이 남아 있다. 특별히 전해지는 유물은 없다.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용혈리 1106

진흥사(해남)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흥사(해남)

진흥사는 두륜산 남쪽 산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태고종 사찰이다. 진흥사는 1909년(융희 3) 김진성각(金眞性覺) 보살이 창건한 이래 몇 차례에 걸쳐 절 이름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양도암(養道庵)’으로 불렀다가 ‘양도사’로 바뀌었으며, 다시 ‘진흥사’가 되었다. 절로 들어가는 입구 왼쪽에는 ‘제석천왕비(帝釋天王碑)’라 새겨진 석비가 세워져 있다. 이 비는 창건주인 비구니 김해김씨 진성각의 비석으로 그가 생존해 있던 1928년 6월에 건립된 것이다. 이 비는 본래 법당 앞에 있었으나 최근 이곳으로 옮겨졌다. 석비 바로 뒤에는 진성각의 부도 1기가 있다. 진흥사는 대웅보전과 극락보전, 요사 채가 있으며, 동서로 긴 장방형의 대지 위에 극락보전과 요사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요사로 사용하고 있는 건물은 본래법당이었는데 최근 그 오른쪽에 극락보전을 지어 불상을 모시고 있다. 극락보전에는 아미타불, 관음, 지장보살의 삼존상과 나한상이 있다. 불화로는 1937년에 봉안된 아미타후불탱화, 1975년에 봉안된 칠성탱화 및 근래에 봉안된 산신탱화, 신중탱화가 모셔져 있고, 안에는 소종도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현산면 입제길 442

참당암(고창)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참당암(고창)

참당암(懺堂庵)은 선운사를 나와 오른쪽 산길을 따라 가면 있다. 지금은 선운사의 산내 암자 가운데 하나로 그 격이 떨어졌으나 선운사의 여러 사암(寺庵) 가운데 가장 먼저 창건되었고, 본래의 이름도 ‘참당사’ 또는 ‘대참사(大懺寺)’라고 불렸던 큰 사찰이다. 의운(義雲) 선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고려 시대부터 이어지는 여러 번의 중수가 있었다. 조선 성종 대(1469∼1494년) 이후 선운사가 산중의 중심 도량이 되면서 사세가 기울게 되었다. 선운사에 속해 있는 암자인 참당암에는 대웅전이 있는데, 1984년 11월 30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고창 선운사 참당암 대웅전은 의문화상이 신라 진평왕의 부탁으로 지었다고 한다. 대웅전의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다. 이를 다포 양식이라 하는데 앞면에 짜인 공포는 전형적인 18세기 다포 양식을 보이고 있는 반면, 뒷면은 기둥 위에만 공포가 있는 주심포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는 건물을 수리할 때 고려시대의 부재를 재활용한 것이라 짐작한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도솔길 194-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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