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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4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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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관왕묘
역사관광서울특별시

서울 동관왕묘

서울 동관왕묘는 중국의 고전인 삼국지에 나오는 명장 관우의 사당이다. 조선 선조 34년(1601년)에 동묘, 서묘 및 북묘를 세웠으나 지금은 동묘만 남아 있다. 임진왜란 때 왜병을 격퇴하는 데 관우의 힘이 컸다고 하여 명의 신종이 임진왜란 후에 비용과 친필로 쓴 편액을 보내와서 창건하였고, 영조 15년(1739년)에 중수하였다. 중국 묘사 건축의 영향을 받아 그 평면과 외관이 우리나라 건축과 비교할 때 매우 색다른 모습을 이루고 있다. 흙 돌담으로 둘러싸여 있고 각종 정원수와 의자가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난계로27길 84

사육신공원
테마파크서울특별시

사육신공원

한강 인도교와 노량진역 중간의 높은 언덕에 자리한 사육신공원은 사육신묘 일대를 성역으로 가꾸어 조성한 공원이다. 사육신묘는 조선 세조 2년(1456) 조선의 6대 임금인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바친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6명의 신하 즉 사육신(死六臣)을 모신 곳이다. 이들은 단종 3년(1455)에 단종의 숙부인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고 단종을 몰아내자 이에 분개하여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참혹한 최후를 맞았다. 사육신의 충성심과 장렬한 의기를 추모하기 위해 숙종 7년(1681)에 이곳에 서원을 세우고, 정조 6년(1782)에는 신도비를 세워 두었다. 1955년에는 사육신비를 세우기도 하였고, 이후 묘역을 확장하여 새롭게 정비하여 충효사상을 기리고자 하였다. 원래의 묘역에는 박팽년, 성삼문, 유응부, 이개의 묘만 있었으나 후에 하위지, 유성원, 김문기의 묘도 만들어 함께 모시고 있다. 사육신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한 역사관도 운영 중이니 함께 둘러보는 것도 좋다. 사육신공원은 봄이면 벚꽃 등 갖가지 꽃들이 피어나고, 여름에는 녹음이 시원해서 시민들이 사육신의 충정도 생각할 겸 휴식 차 많이 찾는다. 또한 사육신공원 조망지점에서는 서울의 풍경이 한눈에 내려다 보여 야경을 감상하기 위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서울특별시 동작구 노량진로 191 (노량진동)

국립4·19민주묘지
역사관광서울특별시

국립4·19민주묘지

삼각산(북한산) 기슭의 국립 4·19 묘지는 1960년 3·15 부정선거를 자행한 권력에 맞서다 1960년 4·19 혁명 때에 희생된 224분이 안장되어 있으며, 이를 기리는 기념탑이 세워져 있다. 기념탑 중앙에는 의롭게 죽어간 이들을 기리는 탑문이 새겨져 있다. 135,901㎡의 묘지 경내에는 소나무와 향나무, 주목과 단풍나무 등으로 아담하게 꾸며져 있으며, 1,652.9㎡ 규모의 기념관과 영정을 모신 유영봉 안소는 한식 목조건물이 330.58㎡ 규모로 확장되어 있다. 그 외에 상징문, 민주의 뿌리, 정의의 불꽃 등 조각 작품과 연못이 있으며, 보도블록을 예쁘게 깔아 놓은 산책로와 야외 의자도 있다. 벚꽃이 피는 5월, 공원에서 바라보는 삼각산(북한산)은 어머니 품과 같은 아늑함과 화려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으며, 일몰의 풍경은 장관이다.

서울특별시 강북구 4.19로8길 17

역사관광서울특별시

서울 선릉과 정릉 [유네스코 세계유산]

선릉(宣陵)은 조선 9대 성종과 세 번째 왕비 정현왕후 윤씨의 왕릉이다. 선릉은 같은 능역에 하나의 정자각을 두고 서로 다른 언덕에 능침을 조성한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의 형식이다. 정자각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 언덕(서쪽)이 성종, 오른쪽 언덕(동쪽)이 정현왕후의 능이다. 선릉은 1494년 성종이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인 1495년 광주 학당리인 현재의 자리에 조성하였다. 원래 이 자리는 4대 세종의 아들 광평대군묘역이 있던 자리였으나, 선릉이 조성되면서 광평대군묘역은 현 강남구 수서동으로 옮겼다. 이후 1530년 정현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선릉 동쪽 언덕에 능을 조성하였다. 선릉은 정릉과 함께 1592년 임진왜란 때 왜적들이 능을 파헤쳐 재궁(梓宮)까지 불에 타는 피해를 당하여 1593년 7월에 다시 장례를 치렀다. 정릉(靖陵)은 조선 11대 중종의 왕릉이다. 중종은 1544년에 세상을 떠나 다음 해인 1545년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서쪽 언덕(현 고양 서삼릉 내 철종의 예릉 자리)에 능을 조성하고 능의 이름을 희릉과 함께 정릉이라 하였다. 그러나 정릉은 1562년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에 의해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문정왕후는 당시 봉은사 주지였던 보우와 논의하여 중종의 능을 이곳으로 옮겼는데, 이는 문정왕후 본인이 중종의 묻히기를 원해서였다. 그러나 옮긴 정릉이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침수되는 일이 자주 일어나자 문정왕후는 세상을 떠난 후 정릉이 아닌 현재 서울 노원구 태릉에 묻히게 되었다. 이로 인해 중종과 세 왕비(단경왕후, 장경왕후, 문정왕후)의 능은 모두 따로 흩어지게 되었다. 정릉은 선릉과 마찬가지로 1592년 임진왜란 때 능이 파헤쳐져 재궁(梓宮)이 불에 타는 피해를 입었고, 1593년 8월에 다시 장례를 치렀다.

서울특별시 강남구 선릉로100길 1

역사관광서울특별시

서울 태릉(문정왕후)과 강릉(명종·인순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태릉은 조선 11대 중종(재위 1506~1544)의 세 번째 왕비 문정왕후 윤씨(1501~1565)의 능이다. 1565년(명종 20) 문정왕후가 세상을 떠나 능 자리를 중종의 정릉(靖陵) 부근(신정릉(新靖陵))으로 정하였으나 명종의 반대로 현재의 자리를 문정왕후의 능 자리로 정하고 능의 이름을 태릉이라 하였다. 원래 문정왕후는 남편 중종과 같이 묻히기를 원하여 당시 봉은사의 주지인 보우와 의논하여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희릉 옆에 있던 중종의 능을 풍수상 불길하다는 이유로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그러나 옮긴 정릉은 지대가 낮아 비가 오면 홍수 피해가 자주 일어났기 때문에 명종은 어머니의 능을 지금의 자리로 정하게 되었다. 『선조실록』에 의하면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선릉·정릉과 마찬가지로 태릉과 강릉에도 왜적들에 도굴하려다 실패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태릉은 『국조오례의』의 예에 따라 조성되어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다. 병풍석에는 구름무늬와 십이지신을 새겼고, 십이간지를 문자로 새겼다. 원래 십이간지를 문자로 새긴 것은 병풍석을 생략하고 난간석만 조성할 때만 적용되었는데, 태릉을 시작으로 십이지신상과 문자를 함께 새기는 것으로 바뀌었다. 능침 문석인과 무석인, 장명등 등 석물은 다른 조선왕릉에 비해 크게 세웠는데 이는 조선 중기의 양식이다. 특히 문석인과 무석인의 귓불에 귀고리 구멍이 있는 것이 특이하다. 능침 아래의 정자각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1994년에 복원하였다. 강릉은 조선 13대 명종(재위 1545~1567)과 인순왕후 심씨(1532~1575)의 능이다. 강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명종, 오른쪽(동쪽)이 인순왕후의 능이다. 강릉은 1567년(명종 22) 명종이 어머니 문정왕후의 삼년상을 마친 후 며칠 뒤에 세상을 떠나자, 태릉 동쪽 언덕에 조성되었다. 이후 1575년(선조 8) 인순왕후가 세상을 떠나자 명종의 능 동쪽에 능을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전체적으로 문정왕후의 태릉을 조성한 지 2년 뒤에 조성된 능이기 때문에 태릉과 모습이 비슷하다. 두 봉분에는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난간석으로 두 봉분을 연결하였다.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무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 등을 배치하였고,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홍살문이 있다.

서울특별시 노원구 화랑로 681

서울 영휘원(순헌황귀비)과 숭인원(이진)
역사관광서울특별시

서울 영휘원(순헌황귀비)과 숭인원(이진)

영휘원은 대한제국 고종황제의 후궁인 순헌황귀비 엄씨의 무덤이고, 숭인원은 대한제국 마지막 황태자인 의민황태자의 첫째 아들 이진 원손의 무덤이다. 엄씨의 위패는 현재 종로구 궁정동에 있는 칠궁에 모셔져 있다. 순헌황귀비 엄씨(1854~1911)는 엄진삼의 장녀로 8살에 입궐하여 명성황후의 시위 상궁이 되었다가, 1897년 영친왕을 낳아 고종의 후궁이 되었다. 1903년 황귀비로 책봉되고 경선궁에 살았다. 황귀비는 여성의 신교육을 위해 진명여학교와 숙명여학교를 설립하였고 양정학교가 재정난을 겪자 땅 200만 평과 내탕금을 기증하는 등 나라를 짊어지고 나갈 인재를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하였다. 경술국치 후 1911년 덕수궁 즉조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신주는 덕안궁에 모셨고 이후 덕안궁은 육상궁 경내로 옮겨졌다. 의민황태자의 첫째 아들 이진 원손(1921~1922)은 영친왕와 황태자비 이씨의 첫째 아들로 일본에서 태어났다. 이듬해에 영친왕 내외와 함께 잠시 귀국하였으나 일본으로 돌아가기 하루 전 덕수궁 석조전에서 급사하였다. 순종황제가 원손의 죽음을 애석하게 여겨 후하게 장례를 치르도록 명을 내려, 현재의 자리에 무덤을 조성하였다. 영휘원은 조선시대의 원소 제도에 맞게 조성하여 홍살문, 정자각, 비각을 세웠고 원침에는 호석을 둘렀다. 숭인원은 영휘원과 비슷하게 조성하였으나 원침에 호석과 석양을 생략하고 석물과 봉분의 크기도 다른 원에 비해 작게 조성하였다.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홍릉로 90

절두산 순교성지
역사관광서울특별시

절두산 순교성지

절두산은 원래 누에의 머리와 비슷하다고 하여 잠두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1866년 2월 프랑스군함이 천주교탄압을 문제 삼아 한강을 거슬러 양화진과 서강까지 진입하였다. 이에 격분한 대원군은 수많은 천주교인들을 잠두봉에서 목을 베어 참수케 한다. 그 뒤로 머리를 잘랐다 하여 절두산(切頭山)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병인박해(1866년) 순교 100주년을 기념하여 1967년 10월 순교 기념관을 개관하였다. 현재 절두산성지 내에는 한국 천주교회 관련 사료와 유물·유품전시관, 28위의 성인유해를 모신 유해실, 순례성당, 순교자 교육관을 비롯하여, 야외 전시관이 있다. 절두산 순교 성지는 생명을 바쳐 믿음을 증거 한 한국 천주교회 신앙 선조들의 순교정신이 살아 숨 쉬는 뜻깊은 성지이다.

서울특별시 마포구 토정로 6 (합정동)

사찰서울특별시

새남터기념성당

새새남터기념성당은 대한천주교회 창립 200주년을 기념하여 1984년에 공사를 시작하고 3년 만에 완공된 성당이다. 이곳은 억새와 나무가 울창한 곳으로, 이로 인해 새나무터 또는 새남터라 불리게 되었다. 사남기로도 불리며, 조선 후기까지 숲이 울창한 곳으로 알려져 있다. 새남터는 조선 초반부터 군사 연무장과 처형장으로 사용되었던 곳으로, 1801년의 신유박해를 시작으로 기해박해, 병오박해, 병인박해 등에서 많은 천주교 신자가 처형당하였다. 성당에는 새남터 기념관이 있고 순교자들의 유해가 모셔있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이촌로 80-8

서울 헌릉(태종·원경왕후)과 인릉(순조·순원황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역사관광서울특별시

서울 헌릉(태종·원경왕후)과 인릉(순조·순원황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헌릉은 조선 3대 태종(재위 1400~1418)과 원경왕후 민씨(1365~1420)의 능이다.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태종, 오른쪽(동쪽)이 원경왕후의 능이다. 1420년(세종 2) 원경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 현재의 자리에 능을 조성하였다. 원경왕후의 능을 조성할 때 태종은 자신의 능자리를 미리 만들었다. 2년 후 1422년(세종 4) 태종이 세상을 떠나자 원경왕후의 능 서쪽에 능을 조성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능침 봉분은 모두 병풍석과 난간석을 둘렀고, 병풍석에는 십이지신상과 영저(금강저) 및 영탁(금강령) 등을 새겼다. 봉분 주변으로는 문석인, 무석인, 석마, 정중석,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를 배치하였다. 특히 문석인, 무석인, 석마, 석양, 석호 등은 다른 왕릉에 비해 두 배 더 배치되었는데, 이는 고려 공민왕과 노국공주의 현·정릉(玄·正陵) 제도를 따른 것이다. 능침 아래의 신도비각에는 두 개의 신도비가 있는데, 태종이 세상을 떠난 후 세운 신도비와 1695년(숙종 21)에 원래 신도비가 훼손되어 다시 세운 신도비가 있다. 인릉은 조선 23대 순조(재위 1800~1834)와 순원황후 김씨(1789~1857)의 능이다. 인릉은 한 봉분 안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合葬陵)의 형식으로, 우상좌하(右上左下)의 원칙에 따라 앞에서 봤을 때 왼쪽에 순조, 오른쪽에 순원황후를 모셨다. 1834년(순조 34) 순조가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파주 교하의 장릉(인조) 근처에 조성되었다. 그러나 풍수상 불길하다고 하여 1856년(철종 6)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옮긴 인릉 자리에는 원래 세종의 옛 영릉이 있던 곳이었는데, 인릉을 공사하면서 주변 땅에 묻혀 있던 세종의 옛 영릉 석물과 중종의 두 번째 왕비 장경왕후의 옛 희릉 석물을 다시 꺼내 다듬어서 사용하였다. 다시 사용한 석물은 문석인, 무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 석양과 석호이며, 일부 석양과 망주석, 석마는 새로 제작하였다. 이는 인릉을 옮긴 후 편찬한 『인릉천봉산릉도감의궤』에 기록되어 있다. 인릉을 옮긴 후 다음 해 순원황후가 세상을 떠나자 인릉에 합장되었다. 능침 아래 비각 안에는 두 기의 표석이 있는데 1비는 조선시대에 세운 표석(순조대왕, 순원왕후)이고, 2비는 대한제국 때 세운 표석(순조숙황제, 순원숙황후)이다.

서울특별시 서초구 헌인릉길 34 (내곡동)

무악산 동봉수대 터
역사관광서울특별시

무악산 동봉수대 터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한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조선시대에 전국적으로 5군데 있었는데 그중에서 2군데가 안산(무악산) 정상에 있었다. 평안북도 강계에서 시작하여 황해도, 경기도 내륙, 고양 해포나루, 무악동봉, 남산 훈도방으로 연결되는 봉수를 남산에 최종적으로 연락하는 곳이다. 무악산에 있는 이 봉수대터는 조선시대 봉수체제가 확립되었던 1438년(세종 24)에 무악산 동·서에 만든 봉수대 가운데 동쪽 봉수대터이다. 터만 남아있던 것을 서울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94년에 복원하였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봉원동

올림픽공원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올림픽공원

88서울올림픽의 숨결이 살아 있는 올림픽공원은 88서울올림픽의 정신과 가치를 계승 발전시키고 있는 국민체육진흥공단에서 운영·관리하는 시민들의 체육, 문화, 여가의 공간이다. 지난 1984년 86아시안게임과 88서울올림픽대회 개최를 위해 1986년 완공되었다. 공원 중심부에 몽촌토성이 복원되었고, 이를 중심으로 6개의 경기장이 반원형으로 배치되어 있어 서울올림픽의 감동과 한성백제의 숨결이 살아 숨 쉬는 도심 속의 공원으로 조성되었다. 곳곳에 산재해 있는 올림픽기념 조형물과 야외 조각작품들, 고대 백제의 유적지인 몽촌토성을 중심으로 드넓은 잔디와 몽촌해자, 그리고 쾌적한 자연환경 속에 잘 정돈된 평화의 광장을 비롯한 크고 작은 야외광장 등이 조성되어 있다. 또한, 다양한 공연과 행사가 열리는 KSPO DOME(올림픽체조경기장), 티켓링크 라이브 아레나(핸드볼경기장), 올림픽홀, 우리금융아트홀, 뮤즈라이브 등 문화공간을 갖추고 있다. 특히, 43만 평의 넓은 공간에 자연녹지와 올림픽시설물들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어 지하철 등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에 매우 편리한 도심 속에 자리하고 있다. 각종 경기, 대형 콘서트, 이벤트뿐만 아니라 수려한 경관을 배경으로 CF, 영화등 야외촬영 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서울특별시 송파구 올림픽로 424 (방이동)

청와대 앞길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청와대 앞길

청와대 앞길은 종로구 팔판동 162번지(삼청동길)에서 청와대 앞을 거쳐 궁정동 98-6번지(효자로)에 이르는 길이다. 이 길이 청와대 앞을 지나는 데서 그 이름을 유래했다. 1988년 3월 31일 처음 청와대 앞길로 이름 붙여졌으며, 경복궁 북쪽 담장길과 북악산 기슭 청와대 사이를 횡단하여 한때 시민의 통행이 금지되기도 했다. 청와대 앞길로 들어서면 좌우로 울창한 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어 나무 그늘과 아름다운 꽃밭을 감상하면서 산책을 할 수 있다.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 맞은편에는 청와대가 있고, 청와대 앞길이 끝나는 곳에는 청와대의 기자회견장인 춘추문이 있다. 춘추문에서 경복궁 정문인 건춘문에 이르는 삼청동길에는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가 늘어서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궁정동

대학로
문화관광서울특별시

대학로

젊음의 열기가 가득한 대학로는 대한민국의 예술, 공연, 자유 등을 대표하는 문화 집결지라 할 수 있다. 대학로가 젊은이들에게 이처럼 아낌없는 사랑을 받았던 것은 서울대학교 문리대와 법대가 자리한 시절부터이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주변 대학 학생들과 젊은이들이 모여들었고, 자연스럽게 다른 어떤 장소와도 비교 불가한 대학로만의 개성을 만들어갔다. 1975년 서울대학교는 관악산 아래로 캠퍼스를 이전했다. 그러나 그 자리에는 아름드리 마로니에 나무가 있어 ‘마로니에공원’이라 이름 붙은 공원이 조성되었다. 이후 젊은이들과 방문자들을 위한 연극, 뮤지컬 등의 크고 작은 문화시설들이 하나 둘 들어서게 되면서 비로소 오늘날의 대학로가 완성되었다. 서울시는 1985년 5월 대학로를 ‘문화예술의 거리’로, 인사동에 이어 두 번째로 2004년에 ‘문화지구’에 지정했다. 문화지구는 문화자원이 밀집된 장소를 선별해 시장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보호하고 관리할 필요성을 느껴 선정한다. 대학로의 공연 예술을 활성화시키고 방문객을 늘면서도 상업 관련 시설이 주가 되는 것은 지양하고 소극장 및 문화시설을 보호하기 위함이다. 앞으로도 대학로만의 순수한 낭만과 예술이 번창하는 곳이기를, 대학로의 더욱 빛나는 내일을 소망한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대학로 104 (동숭동)

문화관광서울특별시

남산서울타워

남산서울타워는 효율적인 방송전파 송수신과 한국의 전통미를 살린 관광 전망시설의 기능을 겸비한 국내 최초의 종합전파탑으로 방송문화와 관광산업의 미래를 위해 건립되었다. 세계 유명한 종합 탑들이 그 나라 또는 그 도시의 상징적인 존재가 된 것처럼 남산서울타워 역시 지난 40여 년간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관광지이자 서울의 상징물 역할을 해왔다. 남산서울타워는 서울 시내 전 지역에서 바라보이는 탑의 높이와 독특한 구조, 형태 등으로 인하여 시민의 관심과 사랑의 대상이 되었고 내외국인들이 즐겨 찾는 제1의 관광 명소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고 있다. 최근에는 한류 바람을 몰고 온 각종 예능, 드라마의 촬영지로 이름이 높아지면서 내외국인 관광객들이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남산공원길 105

북촌한옥마을
역사관광서울특별시

북촌한옥마을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위치한 곳으로 전통한옥이 밀집되어 있는 서울의 대표적인 전통 주거지역이다. 그리고 많은 사적들과 문화재, 민속자료가 있어 도심 속의 거리 박물관이라 불리어지는 곳이기도 하다. 청계천과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에서 ‘북촌(North Village)’이라고 이름으로 불리었으며, 가회동과 송현동, 안국동, 그리고 삼청동이 있다. 사간동과 계동, 소격동 그리고 재동에는 역사의 흔적이 동네이름으로 남아 수백 년을 지켜온 곳이기도 하다. 북촌은 조선시대에 조성된 양반층 주거지로서 1920년대까지 그다지 큰 변화가 없었는데, 1930년대에 서울의 행정구역이 확장되고, 도시구조도 근대적으로 변형되면서 변화가 일어났다. 주택경영회사들이 북촌의 대형 필지와 임야를 매입하여, 그 자리에 중소 규모의 한옥들을 집단적으로 건설하였는데, 현재 한옥들이 밀집되어 있는 가회동 11번지와 31번지, 삼청동 35번지, 계동 135번지의 한옥주거지들이 모두 이 시기에 형성되었다. 대청에 유리문을 달고, 처마에 잇대어 함석 챙을 다는 등, 새로운 재료를 사용한 북촌의 한옥은 전통적인 한옥이 갖고 있는 유형적 성격을 잃지 않으면서, 근대적인 도시조직에 적응하여 새로운 도시주택유형으로 진화했다는 점에 주목할 수 있다. 북촌 지역이 모두 한옥으로 이루어져 있던 1960년대와 달리, 1990년대 이후 급속하게 들어선 다세대가구 주택 때문에 많은 수의 한옥이 사라졌지만, 일부지역은 양호한 한옥들이 군집을 이룬 채 많이 남아 있다. 여러 채의 한옥이 지붕처마를 잇대고 벽과 벽을 이웃과 함께 사용하고 있는 풍경은 우리가 잊고 살았던 따뜻한 정과 살아갈 맛을 느끼게 해 준다. 북촌 지역을 걷다 보면 이어진 처마선의 아름다운만큼이나 골목길의 정겨움을 느낄 수 있다. 북촌한옥마을이 지속가능한 관광지가 될 수 있도록 침묵관광을 하도록 주의를 요한다. ※ 침묵관광이란 외부 관광객들의 관광지 방문으로 인해 주민들의 생활권과 환경권이 침해받지 않도록 큰 소리로 떠들지 않고 조용히 여행하는 관광형태를 말한다. ※ 북촌마을 방문 시 지켜야 할 ‘에티켓’ - 단체관광객 방문 시 반드시 가이드 동행 - 관광버스 불법주차 금지 - 무단 침입, 무단 촬영, 무단 투기, 노상방뇨, 소음 금지 - 마을 방문시간 준수

서울특별시 종로구 계동길 37 (계동)

봉선사(남양주)
역사관광경기도

봉선사(남양주)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본사 교종본찰 봉선사는 교종 수사찰의 종풍과 선종사찰의 법맥을 그대로 전승하고 있는 대가람이다. 서기 969년 고려 광종 20년에 법인 국사가 창건하고 운악사라고 했다. 그 후 서기 1469년 조선 예종 1년에 세조의 비 정희왕후가 세조의 능침을 이산에 모시고는 광릉이라 하고, 이어 당사를 초창하여 선왕의 능침의 명 복을 비는 자복사로 삼고 봉선사라 했다. 봉선사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한국전쟁 때 거듭 병화를 입는 비운을 겪는다. 낭혜대사(1539년)의 뒤를 이어 계민선사(1637년)가 중건하고, 1749년과 1848년에 다시 중수해 고아하고 장중한 대찰의 면모를 되찾았으나 오늘의 봉선사는 1960년 무렵부터 재건불사를 일으킨 가람의 모습이다. 봉선사에서는 매년 여름에 연꽃을 소재로 불교문화 축제인 봉선사연꽃축제가 열린다. 1,000여 평에 달하는 넓은 연꽃밭이 조성되어 있어서 연꽃이 만개할 때쯤 정말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 2003년부터 시작된 이 축제는 산사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즈넉한 정취와 문화를 대중들에게 알리고, 소통과 화합의 불교문화를 구현하기 위해 매년 이어지고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접읍 봉선사길 32

청도 용암온천
테마파크경상북도

청도 용암온천

청도 용암온천은 지하 1,008m 암반에서 뿜어져 나오는 43.7℃ 온천수로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청도 용암온천의 온천수는 천연 광천 온천수로서 만성피로 회복, 면역증강, 신경계통 질환과 노폐물 제거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청도 용암온천은 2021년 시설 전체를 리뉴얼 하였고 대온천장과 바데풀, 이벤트탕, 노천탕, 사우나를 갖추고 있다. 특히 바데풀은 다양한 압력의 물줄기와 공기방울을 내뿜기 때문에 피로 해소과 스트레스 해소에 큰 도움이 된다. 또한 이벤트탕은 산수유탕, 레드와인탕, 유아전용탕으로 이루어져 있어 개인의 목적에 따라 다양한 온천을 즐길 수 있다. 이 밖에도 편의 시설로는 고객 휴게실, 편의점, 한식뷔페 등이 있어 한층 더 편안한 휴식을 즐길 수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온천길 23

김포 장릉(원종·인헌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역사관광경기도

김포 장릉(원종·인헌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1623~1649)의 생부인 원종과 그의 비 인헌왕후 구씨의 능이다. 장릉은 하나의 곡장 안에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의 형식으로, 앞에서 능을 바라보았을 때 왼쪽(서쪽)이 원종, 오른쪽(동쪽)이 인헌왕후의 능이다. 능의 규모와 규격은 조선 중기의 전형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하고, 능 아래는 제사를 지내는 재실이 있으며, 조선 21대 영조와 22대 정조가 매년 행차하여 제사를 모시던 건물이며, 능 주위는 공원처럼 꾸며져 있다. (출처 : 김포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경기도 김포시 장릉로 79 (풍무동)

역사관광경기도

양주 온릉(단경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장흥관광지 인근에 있는 양주 온릉은 조선의 11대 왕 중종의 첫 번째 왕비이자 중종반정 이후 공신들의 반대에 의해 폐출된 단경왕후 신씨(1487~1557)의 능이다. 지금의 온릉은 1739년에 단경왕후로 복위되면서 새롭게 조성된 것으로 묘역의 크기는 약 6만 6천여 평이다. 사적 제210호로 2009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으며, 방문객들은 단경왕후의 삶을 기리며 역사와 자연을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특별한 경험을 할 수 있다. 군사시설 보호구역 내에 위치해 있어 일반인에게 비공개였으나 문화재청과 양주시의 끊임없는 노력으로 2019년 11월부터 공개되어 운영 중이다. 단경왕후는 신수근과 청원부부인 한 씨의 딸로 1499년(연산군 5년)에 성종의 아들인 진성대군과 가례를 올렸으나 1506년 중종반정으로 진성대군이 왕위에 오르자,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러나 아버지인 신수근의 누이가 연산군의 왕비였고, 중종반정을 반대해 반정 추진파에 의하여 살해당하였으므로 반정 공신들의 압력으로 7일 만에 폐위되었다. 능은 본래 친정 집안인 거창 신씨의 묘역에 묘를 조성하였으나, 1739년(영조 15년)에 복위되어 시호를 단경왕후라하고 신주를 종묘에 부묘하였다. 능호는 온릉으로 현재의 위치로 이장하여 사후 추존된 왕비의 능제인 정릉[태조비 신덕왕후]과 사릉[단종비 정순왕후]의 예에 따라 새롭게 조성하였다. 진입 및 제향 공간에는 홍살문, 판위, 향로와 어로, 정자각, 비각이 배치되어 있다. 능은 정남 쪽을 향하고 있으며 능침은 능 뒤에 곡장을 두르고 문인석, 석마, 장명등, 혼유석, 망주석, 석양 1쌍과 석호 1쌍을 배치하였다. 일반적으로 병풍석과 난간석을 두르고 석양과 석호는 각각 두 쌍씩 봉분 주위에 둘러 세우는데 온릉이 사후 추봉된 경우이기 때문에 이를 생략하거나 축소해 차등을 두게 된 것이다. 송추IC에서 차량으로 약 4분 소요된다. 인근에 장흥관광지(청암민속박물관, 가나아트센터, 두리랜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송암스페이스센터, 장흥자생수목원 등), 송추유원지, 일영유원지, 북한산국립공원, 국립아세안자연휴양림, 필룩스조명박물관, 회암사지 등이 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호국로 255-41

양주 회암사지
역사관광경기도

양주 회암사지

양주옥정신도시 부근에 있는 양주 회암사지는 고려 말∙조선 초 최대 왕실 사찰이자 대표적인 선종사원 유적이다. 창건 시기는 기록을 통해 12세기로 추정되며, 고려 말 인도의 승려로 회암사에 머물며 불법을 전파하기도 한 지공선사의 말씀에 따라 나옹선사가 14세기에 중창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무학대사가 머물러 태조 이성계가 자주 행차하였으며, 상왕으로 물러난 이후에는 이곳에 머물렀다. 이후 효령대군,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 중종의 비인 문정왕후 등이 회암사에 대규모의 불사를 단행하여 전국 제일의 도량이 되었다. 17세기까지 역대 왕과 왕비들의 위패를 봉안했던 어실까지 있던 조선 왕실불교의 중심축이었으나 문정왕후 사후 오래 지나지 않아 억불정책과 원인 모를 화재로 폐사되었다. 양주 회암사지는 발굴 조사를 통해 일반적인 사찰과는 다른 궁궐의 건축 요소와 13~14세기 동아시아에서 유행했던 선종사원의 모습을 갖추고 있음이 확인되었으며, 왕실에서만 사용되었던 기와류 및 도자기류 등 귀중한 유물이 다량으로 출토되어 그 위상과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회암사지에는 지공∙나옹∙무학 삼화상의 비와 부도가 모두 모여있으며, 그중에서는 보물로 지정된 양주회암사지 무학대사 탑과 양주회암사지 무학대사 탑 앞 쌍사자 석등은 태조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위해 무학 생전에 미리 만든 것으로 조선 전기의 탑 중 가장 뛰어난 걸작으로 손꼽힌다. 또 1377년(고려 우왕 3년)에 세워진 선각왕사비는 우리나라의 예서 수준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중요한 자료로 1997년 천보산 산불에 의해 훼손되어 원본은 중앙불교박물관에 보관하고 현재는 본래의 거북받침에 세운 모조비로 살펴볼 수 있다. 그 외 회암사지 전망대에서는 1만여 평의 넓은 공간에 8개의 단에 70여 개 사찰터와 그중 40여 기의 건물에 온돌시설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회암사지로 들어오는 길목 입구에는 양주시립회암사지박물관이 있어 출토된 유물들을 살펴볼 수 있다. 송추IC에서 차량으로 약 4분 소요된다. 인근에 장흥관광지(청암민속박물관, 가나아트센터, 두리랜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송암스페이스센터, 장흥자생수목원 등), 송추유원지, 일영유원지, 북한산국립공원, 국립아세안자연휴양림, 필룩스조명박물관, 회암사지 등이 있다.

경기도 양주시 회암동

불곡산
자연관광경기도

불곡산

북쪽 소요산에서 남으로 도봉산과 북한산국립공원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서 떨어져 나온 낙맥으로 양주시의 진산이다. 양주시는 서북쪽에 신천을 끼고 있으며, 서울 북쪽 지역에서 가장 넓은 평지가 있는 곳이다. 주변에 산맥으로 둘러싸인 산간 분지 형태의 도시로서 남고북저의 지형이다. 남쪽인 양주시 백석읍이 높고 북쪽인 은현면과 광적면이 낮아 신천이 북쪽으로 흐르며 동두천시를 거쳐 한탄강으로 유입된다. 곳곳에 400~500m 높이의 산이 있어 풍광이 아름답다. 고암IC에서 차량으로 약 9분 소요된다. 인근에 장흥관광지(청암민속박물관, 가나아트센터, 두리랜드,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양주시립민복진미술관, 송암스페이스센터 등), 송추유원지, 일영유원지, 북한산국립공원, 국립아세안자연휴양림, 필룩스조명박물관, 회암사지 등이 있다. (출처 : 양주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성공사
사찰충청남도

성공사

성공사는 고불산에 자리한 사찰로 1982년 주지 관묵이 불사를 시작 했다. 여러 성인들이 주석하고 있는 골짜기라는 뜻의 이름으로 풍광이 뛰어나 개인적인 기도뿐만 아니라 관광을 위해 찾는 사람이 많다. 대웅전, 종각, 삼성각, 명부전, 나한전, 천불전, 지장전, 명부전, 와불전, 약사전에 이어 2006년 관음전을 건립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천불전 중앙에는 높이 18m의 좌불이 있는데, 이는 국내에서 가장 큰 좌불이다. 좌불 주위로 석가모니의 10대 제자상이 있으며, 그 뒤로는 동판에 새긴 금강경이 병풍처럼 둘려 있다. 또 약사여래불, 미륵불, 지장보살불, 와불, 아미타불 등 10m가 넘는 거대한 불상이 있으며, 대부분 전각 없이 노천에 있어 일반적인 사찰 배치와는 다른 독특한 구조를 볼 수 있다. 한 개인의 서원(誓願)을 담는 원불(圓佛)로 천불전에 야광여래 333,333불을 모시고 있어 참회기도 도량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우성면 성곡길 371

고창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고창 고인돌 유적 [유네스코 세계유산]

고인돌은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양식으로 우리나라에 3만여 기 이상이 분포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중에서도 전남과 전북을 포함한 한반도 서남해안 지역에 밀집 분포하고 있다. 전북지역은 2003년 조사 기준으로 424개 군집에 2,632기가 분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고창군은 2023년 조사기준으로 전북 고인돌의 65% 이상인 1,748기의 고인돌이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되었다. 고창 고인돌유적은 죽림리와 상갑리, 도산리 일대에 무리 지어 분포하고 2000년 12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단일 구역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군집을 이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탁자식, 바둑판식, 개석식 등 다양한 형식의 고인돌이 한 지역에 분포한다. 또한 고인돌 축조과정을 알 수 있는 채석장의 존재 등 동북아시아 고인돌 변천사를 규명하는 데 있어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세계유산위원회에서는 등재 기준 제3항(독특하거나 아주 오래된 것)을 적용, 세계유산적 가치를 인정했다. 고창은 고인돌 박물관을 비롯하여 제1코스~제5코스 1.8㎞ (고창읍 죽림리, 아산면 상갑리 일대), 제6코스 1.7㎞ (고창읍 도산리 일대)를 탐방코스로 만들어 3천 년 전 다양한 고인돌의 모습 그대로 전승하여 오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고인돌공원길 74

배알도 수변공원
문화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배알도 수변공원

배알도 수변공원은 섬진강과 남해바다가 만나는 광양시 태인동에 위치하고 있다. 1940년 경 배알도에 정자가 세워지고, 주민들이 이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게 되면서부터 망덕리 해수욕장이라 불리다가 점차 백사장이 줄어듦으로써 1970년에 폐장하게 되었다. 그러나 시민들의 휴식 공간 필요성이 대두되어 지난 1990년에 배알도 해수욕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개장되었으나, 현재는 수변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섬진강의 아름다운 물결과 배알도를 배경으로 해변을 따라 조성된 데크길은 낭만적인 길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태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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