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42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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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봉사(화순)
쌍봉사는 통일신라시대인 839년 이전에 창건되어 혜철선사가 여름을 지냈고, 855년 경에 철감선사가 중국에서 귀국하여 이곳의 산수의 수렴함을 보고 창건한 절로 지형이 절의 앞과 뒤에 산봉우리가 2개인 쌍봉이 되므로 이에 쌍봉사라 칭하였다. 창건 이후 퇴락한 절을 1081년 혜소국사가 창건 당시의 모습대로 중건하였고,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몇 차례 중창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중요문화유산으로는 철감선사탑, 철감선사탑비, 쌍봉사 대웅전이 있었다. 철감선사탑은 우리나라 석조 부도 중 가장 아름다운 작품이며철감선사탑비는 신라 말 작품으로 귀부(거북 모양의 비석 받침돌)과 이수(용의 형체를 새겨 장식한 비석의 머릿돌)만 남아 있다. 그리고 총 높이 12m의 정방형 3층 건물인 대웅전은 상륜부를 제외하고는 우리나라에서 3층 목탑의 모습을 전하고 있는 유일한 건물이었으나 1984년 촛불로 인한 실화로 소진되었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템플스테이가 있다. 휴식형과 장기 휴식형으로 나누어져 있다. 공양, 예불, 명상, 스님과의 차담을 할 수 있으며, 청정도량에서 맑은 공기를 마시며 사찰 주변을 산책하며 건강한 심신을 유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이양면 쌍산의로 459
운주사
화순 8경 중 2경인 운주사는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설, 운주스님이 창건했다는 설, 마고할미가 세웠다는 설 등이 있는데, 통일신라말 도선국사가 풍수지리에 근거해 비보 사찰로 세웠다는 이야기가 가장 널리 전해지고 있다. 비보 사찰이 [돕고 보호한다]는 의미로 풍수지리상 지세를 보완해 주는 방법으로, 인공적으로 탑이나 불상들을 조성하여 세워진 사찰을 의미하며 부처의 힘을 빌려 호국과 중생들의 안녕을 도모한 도선 스님의 지혜가 담긴 사찰이다. 임진왜란으로 사찰이 훼손되어 폐사로 남아있었으나 18세기에 자우가 불상과 불탑을 수리하고 약사전을 중건하였다. 발굴 조사 과정에서 금동불입상을 비롯하여 순청자, 상감청자, 분청사기의 파편, 기와편 등 출토된 유물로 볼 때 늦어도 11세기 초인 고려 초기에는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운주사 골짜기 서쪽 언덕 위에 땅에 누워있는 한 쌍의 부부와불이 있다. 절 주변은 문화재 보호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고 2017년 [화순 운주사 석탑군]이란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 잠정 목록에 최종 등재되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도암면 천태로 91-44

백련사(무주)
백련사는 무주 덕유산에 있는 절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신문왕 때 백련이 초암을 짓고 수도하던 중 그곳에서 흰 연꽃이 솟아 나와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이 절터에서는 광무 4년(1900)에 이하섭이 고쳐 지으면서 기념비를 세운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한국전쟁 때 건물들은 불에 타 없어졌으나, 경종 3년(1723)에 만들어진 것으로 전하는 백련사의 종은 자리를 옮겨 두어 남아 있다. 1968년에 요사를 건립하며 백련암으로 불리던 절 이름을 백련사로 바꾸고 30여 년 동안 중창 불사에 힘썼다. 대웅전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자 모양의 팔작지붕이다. 이외에도 선수당, 원통전, 사천왕문, 일주문 등이 있으며, 불교의 계(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 의식을 행하는 백련사 계단이 사찰 뒤쪽에 있다. 특히 이 계단에는 누구든지 『관세음보살』을 외우며 주변을 일곱 번 이상 돌면 그 사람의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말이 전해 내려와 많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설천면 백련사길 580

도갑사
남도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월출산 남쪽 도갑봉을 등지고, 주지봉을 바라보는 넓은 산자락에 자리한 도갑사는 신라의 4대 고승 가운데 한 분이신 도선국사(道詵國師)께서 본래의 문수사(文殊寺)를 크게 개창하여 오늘에 이른 유서 깊은 도량이다. 조선 세조 2년(1456), 수미왕사(守眉王師)가 왕실의 명을 받들어 무려 966칸에 달하는 당우와 전각, 그리고 12개의 암자를 세웠다. 이후에도 연담선사, 허주선사, 초의선사 등 역대의 고승대덕들이 주석하며 깨달음의 참된 이치를 널리 펼쳤고, 수행과 가르침이 끊이지 않는 법등의 도량으로 자리매김하였다. 도갑사는 또한 오랜 세월 동안 불교 예술과 문화의 정수를 간직해 온 귀중한 성보문화유산의 보고이다. 해탈문(국보), 마애여래좌상(국보), 석조여래좌상(보물), 문수·보현보살·코끼리상(보물), 그리고 도선·수미비를 비롯한 수많은 문화유산이 전해지고 있다. (출처 : 도갑사 홈페이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군서면 도갑사로 306

불회사(나주)
불회사는 백양사의 말사로, 운흥사터와 산 하나를 사이에 두고 덕룡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동진 태화 원년(366년)에 인도 승려 마라난타에 의해 창건되었고 희연조사 2창, 조선 태종 2년(1402) 원진국사가 3창하고, 정조 22년(1789) 큰 화재로 건물이 대부분 불타버린 것을 1800년 중건하였다. 불회사라는 이름은 부처님의 회상이란 의미로, 불법승 삼보가 어우러져 부처님의 가르침이 끊이지 않는 장소라는 의미이다. 불회사는 단번에 눈에 들어오는 화려함은 없지만, 호젓한 분위기로 사람을 붙잡는다. 대웅전(국가 보물)과 명부전, 삼성각, 나한전, 요사채가 동백숲을 뒤에 두르고 가지런히 자리잡고 있으며 단풍이 가장 늦게 드는 지역으로 그 빛깔이 인근에서 가장 아름답다. 대웅전에 안치된 삼존불 중 비로자나불은 종이로 만든 지불로 유명하다. 절 입구에는 숙종 45년(1719) 전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부정을 금하고 잡귀의 출입을 막는 수문신상인 석장승 한쌍이 서 있다. 할아버지 장승은 툭 튀어 나온 퉁방울눈을 하고, 이맛살을 굵게 찌푸려 남도 특유의 해학적 표정을 짓고 있다. 할머니 장승은 절을 찾는 사람들을 반기는 듯 웃음을 머금은 표정이 다정다감한 할머니의 표정 그대로이다. 할아버지 장승의 키는 2.3미터, 할머니 장승은 1.7미터이다. 불회사의 녹차는 1600년 전 삼한에 처음 불교를 전한 마라난타스님께서 이곳 덕룡산에 오시어 불회사를 창건하고 차씨를 들여와 시배되었다. 차나무가 옛 모습 그대로 비자나무 아래에 자라고 있고, 자연 그대로의 찻잎으로 만들어지는 그 차의 이름을 비로다(榧露茶)라 하였다. 비로다는 덕룡산에서 옛날부터 자생하는 찻잎을 채취하여 선배 스님들로부터 면면히 이어져 오는 전통적 제다법, 즉 아홉 번 덖어 만드는 방법을 그대로 지키며 만들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다도면 다도로 1224-142

연곡사(구례)
구례군 토지면 내동리에 있는 연곡사는 543년(백제 성왕 21년)에 화엄사 종주 연기조사가 창건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한국전쟁으로 소실되었다. 그러나 경내에는 동부도,북부도를 비롯하여 국보 2점과 보물 4점이 보존되어 있다. 1981년 3월 1일부터 당시 주지인 장숭부 스님이 정부지원과 시주로 옛날 법당을 철거하고 그 자리에 화강석과 자연석으로 축대를 쌓아 정면 5칸, 측면 3칸의 새 법당을 신축한 이후 복원 불사가 계속되고 있다. 사찰이름을 연곡사라고 한 것은 연기조사가 처음 이곳에 와서 풍수지리를 보고있을 때 현재의 법당 자리에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을 유심히 바라보던 중 가운데 부분에서 물이 소용돌이 치더니 제비 한마리가 날아간 것을 보고 그 자리에 연못을 메우고 법당을 짓고 절 이름을 연곡사(燕谷寺)라 했다고 한다.한편 연곡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의병장 고광순 순절비인데 을사늑약으로 나라의 주권이 일본에게 넘어가자 각지에서 항일 의병이 일어났는데 호남 지방에서도 의병 활동이 활발하였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담양출신 의병장 고광순. 그는 1907년 8월 26일 지리산 연곡사에 근거를 설치하고 적극적인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으나, 기습을 받아 패전하고 순절하였다. 이때 절도 불탔다. 이를 기리는 비석이 경내에 세워진 것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토지면 피아골로 774

중흥사(광양)
중흥사는 옥룡사의 남쪽 약 2.5㎞ 떨어진 곳에 위치하고 있는데 중흥산성안에 자리 잡고 있어서 중흥사로 부르게 되었다. 신라 경문왕때 도선국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당시 왜병과의 격전 끝에 승병들은 모두 죽고 절은 불에 타 폐사되어 암자로 유지되어 오다가 1963년에 중건되어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중흥사 경내에는 국보 제103호 쌍사자석등(광주국립박물관에 보관)과 중흥산성 3층 석탑(보물 제112호), 석조지장보살반가상(전남광주통합특별시유형문화유산 제142호)이 있다. 현재 중흥사에 있는 쌍사자석등은 모조품이다. 이 석등은 일제강점기에 한 일본인이 밀반출을 시도하다가 주민들의 제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중흥사를 품고 있는 중흥산성은 세심정이라는 정자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중흥산성에 오르면 백운산까지 확 트여진 풍경을 만나게 된다. 옥룡면 하운 마을 입구에서 산길을 약 800m 오르면 중흥사가 나온다. 주차장과 연결된 홍교를 지나 절을 방문할 수 있다. 중흥사 바로 뒤에는 호수도 자리 잡고 있는데 ‘중흥제’라고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양시 옥룡면 중흥로 263-100

태안사
동리산 자락에 위치한 태안사는 신라 경덕왕 742년에 신승 3인에 의해 중창되었다. 이후 847년 혜철 국사에 의해 선종 사찰로 거듭 개산 되어 구산선문의 하나인 동리산파를 형성하게 된다. 그 뒤에 고려 태조 때 혜철 대사가 머물면서 132칸의 건물을 짓고 대규모 절을 이룩하여 동리산파의 중심 도량이 되었다. 고려 초에는 송광사, 화엄사가 모두 이 절의 말사였다. 1925년에 최남선이 찾아와 신라 이래의 이름있는 절이요, 또 해동에 있어 선종의 절로 처음 생긴 곳이다. 아마도 고초(古初)의 신역(神域) 같다고 평했다. 6.25 때에 대웅전을 비롯하여 15동의 건물이 불탔다. 그 뒤 다시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혜철국사 사리탑, 광자선사탑 등 보물 5점이 있으며 동리산 계곡 절묘한 자리에 세워진 능파각도 볼만하다. 또한 태안사의 계곡은 봄에는 신록, 여름에는 시원한 계곡과 울창한 녹음, 가을에는 짙게 물들은 단풍이 아름다운 산책로로 알려져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죽곡면 태안로 622-215

천은사(구례)
천은사는 구례읍 북쪽 9㎞ 지점, 지리산 일주 도로 입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신라 흥덕왕 3년 (828년)에 덕운조사와 인도의 승려 ‘스루’가 터를 닦고 지은 절로서 화천양사라 하여 화엄사와 함께 지리산 3대 사찰로 손꼽힌다.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조선 광해군 2년(1610년)에 혜정 선사가 다시 지었으나 숙종 2년(1676년)에 불에 타버려 그 이듬해 절을 지었다가 영조 49년(1773)에 화재를 당해, 영조 51년 (1775년)에 혜암 선사가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렀다. 천은사의 본래 이름은 828년 인도 승려와 덕운 조사가 창건할 당시 경내에 이슬처럼 맑은 차가운 샘이 있어 감로사라 했는데, 이 물을 마시면 흐렸던 정신이 맑아진다 하여 많은 스님들이 몰려들어 한때는 천명이 넘는 스님이 지내기도 했으며 고려 충렬왕 때는 남방 제일 사찰로 승격되기도 했다. 그러나 임진왜란으로 불탄 뒤 중건할 때 샘가에 큰 구렁이가 자주 나타나기에 잡아 죽였더니 샘이 솟아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샘이 숨었다 하여 조선 숙종 4년(1677년)부터 천은사라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상하게도 이름을 바꾼 후부터 원인 모를 화재가 잦고 재화가 끊이지 않았다. 주민들도 절의 수기를 지켜주는 구렁이를 죽였기 때문이라며 두려워하였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조선 4대 명필의 한 사람인 원교 이광사가 지리산 천은사라는 글씨를 물 흐르는 듯한 서체로 써서 걸었더니 이후로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한다. 지금도 새벽녘 고요한 시간에는 일주문 현판 글씨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린다고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광의면 노고단로 209

보림사(장흥)
보림사는 가지산 봉덕계곡에 위치한 고찰이다. 동양 3대 보림(인도, 중국, 한국) 중 하나로 우리나라에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와 정착된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 원표대덕(元表大德)이 터를 잡을 당시인 759년에는 초암(草庵)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듯하며, 연기설화(緣起說話)가 이곳을 찾는 이들을 흥미롭게 한다. 곳곳에는 그와 관련된 땅 이름이 남아 있다. 옛 모습의 보림사는 웅장하고 수려한 모습이었으나 조선시대 숭유억불책(崇儒抑佛策)으로 쇠락하다가 한국동란 병화를 겪기도 하였지만 그 후 복원되어 있다. 보림사 남·북 삼층석탑은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그 가운데 있는 석등은 부처님의 빛이 사방을 비춘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보조선사 창성탑비는 어떤 일의 자취를 후세에 오래도록 남기기 위해 나무, 돌, 쇠붙이 따위에 글을 새겨 놓은 것으로 선의 경지와 보조국사의 행적, 창건 연기설화 등이 적혀있다. 보림사 마당 한가운데는 극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약수터가 있으며, 보림사 주변의 비자나무숲은 싱그러움과 신비로움을 가지고 있다. 500그루가 넘는 비자나무 숲에는 300년도 넘은 비자나무도 있다. 가을이 되면 알록달록하게 물든 단풍구경과 보림사 산림욕장에서 오래된 비자나무속을 거닐며 여유를 즐길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유치면 보림사로 224

천관사(장흥)
관산읍과 대덕읍 경계에 있는 천관산 중턱에 신라 애장왕 때 영통화상이 세웠다고 전해지는 천관사가 자리한다. 지금은 송광사의 말사인데, 번성했을 때에는 89 암자를 거느렸고 1,000여 명의 대중이 운집해 수도정진했으며 당나라 승려들도 이곳에 와서 불도를 닦고 돌아갔다는 말이 전해진다. 지금은 오랜 세월이 지남에 따라 많이 낡기는 했으나 신비스러운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보물로 지정된 3층석탑,유형문화유산인 석등과 5층석탑과 탑산사지 석등 및 많은 문화유적이 남아있다. 근래에 극락보전과 종각 등이 새로 지어졌다. 천관산의 기암괴석과 억새밭, 그리고 다도해의 풍경이 어우러져 훌륭한 경치를 보여 준다. 주변의 주요 관광지로 수인사, 제암산, 천관산, 용하사, 만수사 등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관산읍 칠관로 1272-473
![선암사 [유네스코 세계유산]](https://tong.visitkorea.or.kr/cms/resource/62/4054662_image2_1.jpg)
선암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계산 기슭 동쪽에 자리 잡은 선암사는 백제 성왕 7년(529년)에 아도화상이 비로암을 짓고, 신라 경문왕 1년 도선국사가 선종 9 산 중 동리 산문 선풍으로 지금의 선암사를 창건하셨다. 반대편 서쪽 산 중턱에는 유명한 승보사찰 송광사가 자리하고 있다. 선암사 주위로는 수령 수백 년 되는 상수리, 동백, 단풍, 밤나무 등이 울창하고 특히 가을 단풍이 유명하다. 또한, 절 앞에 아치형의 승선교가 있는데(보물), 받침대가 자연 암반으로 되어 있어 견고하며, 중앙부의 용머리가 매우 신비롭다. 대웅전 앞 좌우에 서 있는 삼층석탑도(보물) 관광객의 시선을 끈다. 사찰 전통문화가 가장 많이 남아 있는 절의 하나로 보물 7점 외에도 장엄하고 화려한 대웅전, 팔상전, 원통전, 금동향로, 일주문 등 지방 문화재 12점이 있고, 선암사 본찰 왼편으로 난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높이 7m, 넓이 2m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에 조각된 마애불을 볼 수 있다. 800년 전통을 지닌 자생 다원, 송광사에서 선암사를 잇는 조계산 등산로, 수정 같은 계곡물, 울창한 수목과 가을 단풍이 이곳의 멋을 더해 준다. 또한, 선암사 인근에는 지리산과 백운산과 마찬가지로 고로쇠나무가 자생하고 있어 매년 경칩을 전후하여 약수를 맛볼 수 있다. 선암사 칠전선원은 순천시 송주읍 조계산 동쪽 기슭에 있는 사찰 선암사에 있는 참선 장소이다. 태고종의 유일한 총림인 태고총림으로서 강원과 선원에서 수많은 스님들이 수행을 하고 있는 종합수도 도량이다. ‘칠전’이란 선암사에서 가장 위쪽에 있는 일곱 채의 건물군이다. 선암사 뒤편의 야생차밭에 800년이 넘는 자생 차가 군락지가 있다. 차 배지에서 생산한 야생차는 화개 차를 최상품으로 치지만, 순 자연산 야생차는 선암사 차를 최고로 친다. 선암사 야생차의 특징을 ‘구수하고 깊은 맛’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차나무가 삼나무와 참나무가 우거진 음지에서 자라 찻잎이 연하고 운무와 습한 기후가 깊은 맛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선암사 차를 맛보기란 쉽지 않다. 선암사 차밭은 규모가 크지 않아 수확량도 적고 귀한 대접을 받는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승주읍 선암사길 450

미황사(해남)
남도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달마산(489m) 서쪽, 한반도 육지 사찰 중 가장 남쪽에 자리한 미황사는 신라 경덕왕 8년(749년)에 창건되었다. 한때 12개의 암자를 거느릴 만큼 번성했으나, 100년 전 중창을 위해 길을 떠났던 스님들이 바다에서 조난을 당한 뒤 점차 쇠락의 길을 걸었다. 오랜 시간 비어 있던 이곳은 1989년 지운, 현공, 금강 스님이 찾아오면서 다시 숨을 쉬기 시작했다. 10여 년간의 중창 불사 끝에 이제는 명부전, 대웅보전(보물), 응진당(보물) 등 전각들이 반듯하게 자리를 잡아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찰 중 하나로 면모를 일신했다. 미황사는 서해로 저무는 낙조와 달마산의 기암괴석이 어우러져 늘 환상적인 풍경을 선사한다. 특히 대웅보전 주춧돌에는 다른 곳에서 보기 드문 거북과 게 등 바다생물이 새겨져 있어 흥미를 더한다. 숲길을 따라 10분 정도 걸으면 닿는 부도밭에서도 소박하게 새겨진 동자승과 도깨비 얼굴 등을 만날 수 있다. 산 정상까지는 약 1시간 거리로, 이곳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광은 수려하기 그지없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박하경이 템플스테이를 하기 위해 찾은 사찰인 ‘해남 달마산 미황사’는 달마산 중턱에 있는 사찰로 도시와는 완전히 동떨어져 있는 장소다. 이곳에는 마음을 비우고 생각을 비우기 위해 템플스테이 중인 여행객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와 은은히 퍼지는 향냄새, 그리고 스님의 불경 외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모든 걱정과 근심이 사라지는 기분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송지면 미황사길 164

송광사(순천)
조계산 북쪽 기슭에 자리 잡은 송광사는 합천 해인사(법보사찰), 양산 통도사(佛寶)와 더불어 한국 삼보사찰(三寶寺刹)로 불리고 있다. 신라 말엽 혜린선사(慧璘禪師)가 작은 암자를 짓고 길상사라 부르던 것을 시작으로 보조국사 지눌스님이 정혜결사를 이곳으로 옮겨와 수도, 참선의 도량으로 삼은 뒤부터 승보사찰이 되었다. 보조국사 지눌스님을 비롯한 16 국사를 배출했다. 목조문화재가 많은 사찰로 경내에는 약 80여 동의 건물이 있고, 16 국사의 진영을 봉안하는 국사전 등의 국보 3점을 비롯하여 하사당, 약사전, 영산전 등 보물 13점, 천연기념물인 쌍 향수 등 국가문화재 17점과 지정 국사사리합 등 지방문화유산 10점을 포함, 모두 27점의 문화유산이 보존되어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 우에 승보전과 지장전이 자리하고 있어 장엄한 기상을 나타내며, 각 전마다 피어오르는 향과 은은한 목탁 소리, 낭랑한 독경, 찬란한 고찰의 승맥을 이어가고 있는 스님들의 모습에서 경건함을 느끼게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송광면 송광사안길 100

능가사
대한불교조계종 제21교구 본사인 송광사의 말사인 능가사는 호남 4대사찰 중 하나로 규모가 크고 평지에 위치해 있다. 417년 아도화상이 창건하여 보현사라 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모두 불탄 뒤 조선 인조 22년(1644)에 벽천 정현대사가 중창하고 능가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벽천은 원래 90세의 나이로 지리산에서 수도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밤 꿈에 부처님이 나타나서 절을 지어 중생을 제도하라는 계시를 받고 이곳에 능가사를 신축하였다고 한다. 능가사는 호남 4대사찰 중 하나로 규모가 크고 평지에 위치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한 보물 제1307호로 지정된 대웅전을 비롯하여 응진당, 종각, 천왕문, 요사채 등이 있다. 능가사는 2018년부터 템플스테이 사찰로 지정되어 남쪽나라 바다 명상 여행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팔영산 자락에 위치해 팔영산을 둘러볼 수 있으며, 능가사를 지나 팔영산 자동차야영장이 인접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점암면 팔봉길 21

대흥사(해남)
두륜산에 있는 대흥사는 백제 성왕 22년에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사찰로, 2018년 한국의 산지승원이라는 명칭으로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대흥사는 호국불교의 정신이 살아 숨 쉬는 사찰로 임진왜란 때 서산대사가 거느린 승군의 총본영이 있던 곳이다. 그리고 차 안에 부처의 진리와 명상의 기쁨이 다 녹아있다 생각한 초의선사가 대흥사의 계곡으로 들어가 일지암을 짓고 40여 년 동안 홀로 수행에 전념하였는데, 이로 인해 대흥사는 우리나라 차 문화의 성지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대흥사에는 국보 대흥사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을 비롯 서산대사 유물관에는 선조의 하사품인 옥발, 비취옥발과 서산대사의 친필, 교자, 신발 그리고 금과 은으로 쓴 불경 등의 유물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삼산면 대흥사길 400

담양 소쇄원
소쇄원은 한국 민간원림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어 명승 40호로 지정된 곳으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경외와 순응, 도가적 삶을 산 조선시대 선비들의 만남과 교류의 장으로서 경관의 아름다움이 가장 탁월하게 드러난 문화유산의 보배이다. 1,400여 평의 공간 안에 건축 및 조경물이 자연과 조화를 절묘하게 이뤄내며 조성되어 있고, 곳곳에 조선시대 선비들의 심상이 묻어나 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봉대와 광풍각 그리고 제월당이 있으며, 긴 담장이 동쪽에 걸쳐 있고, 북쪽의 산 사면에서 흘러내린 물이 계곡을 이루고 흘러내려와 담장 밑을 통과하여 소쇄원의 중심을 관통한다. 소쇄원의 주요 조경 수목은 대나무와 매화, 소나무, 난, 동백 등이 있으며, 초본류는 석창포와 창포, 맥문동, 꽃무릇, 국화 등이 있다. 조경물로는 너럭바위, 흘러내리는 폭포, 걸상모양의 탑암과 책상바위 상암, 홈을 판 고목으로 물을 이어가는 두 개의 연못 등이 있다. 뿐만 아니라 따뜻한 정을 느끼게 하는 애양단, 계곡을 건너지르는 외나무다리 약작, 경사지에 적절히 단을 쌓아 꽃과 나무를 심고 담장으로 내부공간을 아우르고 감싸는 조화로운 곳이다. 이러한 공간의 조성은 조선 중종 때의 선비로서 조광조의 제자인 소쇄공 양산보의 주도로 이루어졌으며, 정확한 조영 시기는 1530년대에 시작하여 그의 자식과 손자 대에 이르러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후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불에 타기도 했지만, 후손들에 의하여 다시 복원, 중수되어 현재까지 15대에 걸쳐 후손들이 잘 가꾸어 나가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가사문학면 소쇄원길 17

진도 운림산방
서화 예술이 발달한 진도에서도 대표적인 서화 예술가로 꼽히는 이는 조선 후기 남화의 대가로 불리는 소치 허련(小痴 許鍊)이다. 그는 당나라 남송화와 수묵 산수화의 효시인 왕유의 이름을 따 허유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운림산방은 허련이 말년에 서울 생활을 그만두고 고향인 이곳에 돌아와 거처하며 그림을 그리던 화실의 당호다. 진도읍에서 바로 남쪽으로 내려오다 보면 첨찰산 서쪽, 쌍계사와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으며, ‘ㄷ’자 기와집인 운림산방과 그 뒤편의 초가로 된 살림채, 새로 지어진 기념관들로 이루어져 있다. 운림산방 앞 오각으로 만들어진 연못에는 흰 수련이 피고 연못 가운데 직경 6m 크기의 원형으로 된 섬에는 배롱나무가 있다. 소치 허련 선생은 1809년 진도읍 쌍정리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그림에 재주를 보였다. 28세부터 해남 대둔사 일지암에서 기거하던 초의 선사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30대 초반 그의 소개로 서울로 가서 추사 김정희에게서 본격적인 서화 수업을 받아 남화의 대가로 성장했다. 왕실의 그림을 그리고 여러 관직을 맡기도 했으나, 김정희가 죽자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인 진도에 내려와 운림산방을 마련하고 그림에 몰두했다. 운림산방은 오랫동안 방치되다가 1982년 허건에 의해 지금과 같이 복원되었다. 화실 안에는 허 씨 집안 3대의 그림이 복제된 상태로 전시되어 있고, 새로 지어진 소치기념관에는 운림산방 3대의 작품과 수석, 도자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운림산방이란 이름은 첨찰산을 지붕으로 하여 사방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어우러져 있는 깊은 산골에, 아침저녁으로 피어오르는 안개가 구름 숲을 이루었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의신면 운림산방로 315
우금산성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우금산에 있는 고려시대~조선시대의 산성이다. 변산반도의 중심쯤 되는 지점에 자리한 우금산성은 우금산(329m)의 울금 바위를 중심으로 서쪽과 동쪽의 산줄기를 연결하는 포곡식의 석성이다. 일명 울금산성, 주류성이라고도 한다. 우금산성은 660년 백제 의자왕이 부여를 빼앗겨 연합군에 투항하고 나당 연합군에 의해 멸망하자, 백제 광복군이 왕자 [부여풍] 을 받들어 최후 항전을 벌였던 역사적 현장이다. 또, 우금산성 내에 암자가 있는데, 주민들의 전언에 의하면 이 암자가 칠성암지로 전해진다. 현재 지상 구조물은 남아 있지 않지만, 지표상에 남아 있는 석축과 주춧돌 등을 고려해 볼 때, 대형 암반을 다듬고 그 앞쪽에 조그만 암자를 조성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우금산성이 있는 울금바위 정상에서는 드넓은 호남평야와 서해가 시원스럽게 내려다보인다. 주변으로 개암사, 변산반도국립공원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

정읍 황토현 전적
황토로 덮인 작은 산으로 1894년 갑오동학혁명 당시 동학농민군이 관군을 크게 물리친 전승지이다. 1894년 4월 초, 관군이 농민군을 쫓아나서자 농민군들은 이를 유인하여 4월 6일 밤부터 7일 새벽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여 큰 승리를 거두었다. 그 날로 고부 관아를 점령하고, 흥덕, 고창, 무장을 점령하였으며, 경상, 충청지방으로까지 농민혁명의 불길이 번져 갔다. 지금 이곳 황토현 마루턱에는 갑오동학혁명기념탑이 있고, 이 기념탑 동남쪽 기슭에 황토현 전적지 기념관이 있다. 탑을 등지고 앉아 내려다보이는 길건너 붉은 흙 둔덕과 밭이 강한 인상을 주는 곳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하학리

남원 만인의총
만인의총은 정유재란(1597) 때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한 민. 관. 군 1만여 의사의 호국의 얼이 서려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1592) 때 호남을 침범하지 못해 승리하지 못했다고 판단한 왜군은 1597년 11만 대군으로 다시 침략하여 적의 우근은 전주성을, 좌군과 수군 5만 6천은 남원성을 공략하였다. 조정에서는 남원성을 사수하기 위해 전라병사 이복남이 이끄는 1천여 군사와 명나라 부총병 양원의 3천 병사로 하여금 남원성을 지키게 하였다. 그러나 목숨을 건 치열한 전투를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중과부적으로 주민 6천여 명을 포함한 1만여 의사들은 분투 끝에 장렬하게 모두 순절하였다. 전쟁이 끝난 뒤 피난에서 돌아온 성민들은 시신을 한 무덤에 모시고 1612년(광해 4년) 충렬사를 건립하였다. 몇 번의 이전을 거쳐 정부의 지원과 전 도민의 정성 어린 헌수로 현재의 충렬사에 50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만인의총에서는 매년 9월 26일에 만인의사에 대한 제향을 올려, 그 숭고한 뜻을 기리고 있다. 이곳은 문화관광해설사와 관람하며 호국선열에 대한 감사함을 되새기고, 소중한 추억을 담을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만인로 3 (향교동)

남원 황산대첩비지
남원 황산대첩비지는 이성계가 황산에서 왜적을 무찌른 업적을 기념하여 세운 승전비가 있던 자리이다. 금강 어귀에서 퇴로가 막힌 왜구는 이곳에 주둔하면서 장차 바다로 달아나려 하였다. 고려군은 이성계를 최고 지휘관으로 삼아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이성계가 먼저 활을 쏘아 아지발도의 투구를 떨어트리고 뒤이어 이두란이 쏜 화살이 그의 머리를 맞혔다. 이에 고려군은 지휘자를 잃고 우왕좌왕하는 왜구를 완전히 섬멸하였다. 선조 때 왕명을 받아 김귀영의 글, 송인의 글씨로 대첩비를 세웠으나 일제강점기에 일본인이 부수었다. 광복 후 옛 비석을 복구하였다가 1972년 신석호가 한글로 글을 지어 새롭게 세웠다. 왜구의 침탈에 맞서 우리 선조들이 꿋꿋하게 일구어낸 역사의 향취가 물씬 풍기는 곳이다. 이곳에는 오른쪽에 황산대첩비가 세워져 있고, 오른쪽 뒤편에 파비각이 있다. 파비각 안에 일제가 저지른 만행의 흔적으로 파손된 대첩비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가산화수길 84

충장사
원효사로 올라가는 도로를 따라 배재에 이르면 왼편에 잘 가꾸어진 묘소와 함께 충장사의 우람한 건물이 바라다 보인다. 이 충장사는 무등산이 낳은 충장공 김덕령 장군을 모신 사우로 1975년에 세워졌다. 경내에는 김덕령의 영정과 교지가 봉안되어 있는 사우 충장사, 동재와 서재, 은륜비각과 해설비, 유물관, 충용문, 익호문 등이 세워져 있다. 유물관에는 중요민속자료로 지정된 김덕령 장군 의복과 장군의 묘에서 출토된 관곽, 친필 등이 전시되어 있다. 사당 뒤쪽 언덕에는 김덕령의 묘와 묘비가 있으며 가족묘도 조성되어 있다. 충장사로 향하는 길은 광주 사람들에게 드라이브 코스로 사랑받는 길이다. 봄이면 노란 개나리가 길섶을 수놓고, 여름이면 신록이 우거져 터널을 이루며, 가을이면 빨간 단풍이 숲을 물들이고, 겨울이면 나무마다 눈꽃이 피어 설원에 온 듯 장관을 이룬다. 이처럼 아름다운 풍경 때문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사람들이 즐겨 찾는 길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송강로 13

포충사(광주)
포충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인 고경명(1533~1592)과 고경명의 아들인 고종후, 고인후 및 금산전투에서 같이 순절한 유팽로, 안영을 배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역 서원과 사우 중에서 장성 필암서원과 함께 흥선대원군 서원 철폐령(1868년, 고종 5) 때 훼철되지 않은 곳이다. 호남 지역 유학자들이 고경명 등을 기리기 위하여 지금 자리에 사당을 건립하였다. 1603년(선조 34) 박지효 등을 중심으로 한 유학자와 고경명의 후손들이 사액을 청하여 조정에서 포충(褒忠)이란 이름을 받았다. 이후 수차례 중수가 되었다. 포충사는 신사우 구역과 구사우 구역로 나누어진다. 신사우 구역에는 사당인 포충사와 내삼문인 성인문이 있으며, 내삼문 앞에는 유물전시관인 정기관과 외삼문인 충효문이 있다. 구사우 구역은 신사우 구역의 서쪽에 있으며, 사당과 동재, 서재 및 내삼문, 외삼문이 있고, 입구에는 홍살문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구 포충로 7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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