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4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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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사암(광주)
약사암은 증심사의 부속 암자로 새인봉 아래쪽에 자리 잡고 있다. 신라시대에 도윤(道允)이 847년(문성왕 9) 당나라에서 귀국한 뒤 창건하였다고 전하는데 당시에는 인왕사(人王寺)라고 했다가, 고려 예종(1105~1122) 때 국사 혜조(慧照)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약사암으로 바꾸었다. 조선시대인 1856년(철종 7) 3월에 성암(性庵)이 약사전을 중수하였고, 1905년 9월에 선주(善周)가 관청의 도움과 시주로 중건했다. 이후 1970년대부터 주지 석담(石潭)이 법당과 요사채 등을 중건·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약사암에 보존되어 있는 유물로 석조여래좌상(보물)과 3층석탑이 있다. 이 두 가지의 유물이 9세기 전반의 작품으로 추정되어 이 절의 역사를 뒷받침해 주고 있다. 현재 약사암에는 대웅전, 운림당, 운림서원, 강원, 일주문 등이 있으나, 모두 1970년 대 후반부터 1980년대 중반의 건물이다. 대웅전에는 독성탱화·칠성탱화·산신탱화·신중탱화 등의 불화가 있는데 독성탱화는 1912년에 그린 것이며 칠성탱화와 산신탱화도 이와 비슷한 시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신중탱화는 근래의 것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증심사길160번길 89

망해사(김제)
김제시 진봉면 심포리에 자리한 금산사의 말사이다. 망해사는 754년(경덕왕 13) 통장 법사가 창건한 후 성쇠를 거듭하다가 조선 시대 억불 정책으로 폐허가 되었으나, 1609년(광해군 1) 진묵 대사가 중창하였다. 이후 승려 관준(1850~1919)이 다시 중창하고 수도하였으며, 1915년 계산이 중창하였다. 1933년 주지 김정희가 본전을 중수하고 보광명전과 칠성각 등을 신축하였다. 1977년 남파가 요사채와 망해대를 신축하고 보광명전·낙서전·칠성각 등을 복원 중수하였다. 1984년 보광명전과 칠성각을 허물고 대웅전을 새로 지었으며, 수차례 중수와 중건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 서해의 섬들과 어우러진 경관이 매우 뛰어나 2024년 6월 명승으로 지정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진봉면 심포10길 94

만일사(순창)
전라북도 순창군 구림면 안정리 회문산 자락에 있는 만일사는 백제 무왕(673년) 때 처음 세워진 사찰로 조선 초기 이성계가 임금이 되기 전 무학대사에 의해 중건되었다. 그 후 6.25 전쟁으로 완전히 소실된 것을 1954년에 다시 세웠고 1998년에 일주문, 대웅전, 요사채 각 1동씩을 건립하였다. 만일사라는 명칭은 무학대사가 이성계를 임금의 자리에 오르게 하고자 만일 동안 이곳에서 기도하였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 이 내용을 기록한 비석이(높이 175㎝, 폭 65㎝, 두께 16㎝) 있으며 절 아래로 산안마을과 무직산, 성미산 등 수려한 연봉이 바라보인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구림면 안심길 103-134
한산사(여수)
고려시대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한 사찰로서 임진왜란 당시 수군과 의승군의 주둔처이기도 한 호국역사의 현장이다. 당시에는 보광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다는 설도 있으나 고증이 확실치는 않다. 아홉 마리 봉황의 전설이 얽힌 구봉산에 위치한 한산사는 경내의 동쪽 바위 사이로 흐르는 약수가 차고 맛있기로 이름나 있다. 이 절의 종소리는 맑아서 여수 8경으로 꼽혀 왔으며 특히 이 절에서 바라보는 여수는 한적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한산사의 한산모종(해 질 녘에 울려 퍼지는 범종소리)은 여수 8경 중 제3경이다. 신도회의 자원봉사 활동도 활발하여, 한산사 가릉빈가 합창단이 불교행사에 참여하여 음성공양을 하고 있다. 주택가에 위치하고 있어 평일에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하여 참배를 하거나 경내를 돌아보며 휴식의 시간을 갖는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야경시내와 여수바다의 경치가 아름답다. 야경을 보기위해 한산사를 방문할 시 정숙을 요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 구봉산길 114 (봉산동)
봉서사(완주)
봉서사는 용진면 간중리 동쪽에 있는 서방산의 수목이 울창하고 산세가 수려한 기슭에 위치해 있다. 서방산 정상에 서면 김제평야가 한눈에 바라다보이고 맑은 날에는 서해바다가 바라다 보인다. 봉서사를 찾아가려면 전북 향토사단의 유격장을 지나야 한다. 유격장을 지나면 간중제가 위치해 있는데 주변 산과 어우러져 정겨운 한 폭 그림을 연상케 한다. 봉서사는 신라 성덕왕 26년(727년)에 창건되었으며 고려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조선시대 선조 때에는 진묵대사가 중창하고 이곳에 머물면서 중생을 교화하였던 유서 깊은 절이다. 1945년 전까지는 지방 굴지의 대찰이었으나 6.25 때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완전히 소실되어 폐사되었다가 호산스님이 1963년에 대웅전과 요사채를 중건하고 1975년 삼성각을 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사찰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재 108호인 진묵대사 부도를 비롯 몇 기의 부도가 있다. 이 절에는 진묵대사와 해인사 대장경에 얽힌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이 절에서 수도하던 진묵은 자주 해인사를 내왕하면서 대장경을 모두 암송하였다 하며 하루는 제자를 데리고 급히 해인사로 갔는데, 그날밤 대장각 옆에서 불이 나 도저히 끌 수 없게 되었다. 이때 진묵대사가 솔잎에 물을 적셔 불길이 번지는 곳에 몇 번 뿌리자 갑자기 폭우가 내려 불길이 잡힘으로써 대장경판의 위기를 모면하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또한 진묵대사가 지팡이로 바위를 뚫어 발견했다는 약수터가 있는데 이곳을 찾는 사람들도 약수 맛에 끌려 자주 찾는다고 한다. (출처: 완주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용진읍 봉서안길 313

금산사(김제)
금산사는 백제시대에 창건되어 1400여 년의 역사를 이어 오늘날까지 법등을 밝혀온 유서 깊은 명찰이다. 호남평야 가운데 우뚝 솟은 모악산 서쪽 자락에 위치해 있다. 정유재란 때 왜군의 방화로 모든 건물과 산내의 40여 개 암자가 완전히 소실되는 등 수난을 겪었으나 이후 많은 문화재가 조성되어 현재까지 전해지고 있다. (출처 : 금산사 홈페이지)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모악15길 1

문수사(고창)
문수사는 고창과 전남 장성과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문수산(621m) 중턱에 자리 잡고 있다. 고수면 소재지에서 고수도요지를 지나 위로 올라가면 조산 저수지가 나오고, 왼쪽 골짜기를 타고 6㎞ 정도 가면 문수사가 있다. 의자왕 3년(643)에 신라의 자장율사가 창건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신라의 자장이 당나라 청량산에서 수행을 하고 돌아오던 도중, 백제 영토인 이곳 문수산을 지나다가 청량산과 비슷하다 느껴 석굴에서 기도를 올렸고, 땅속에서 문수보살입상을 발견하고 이곳에 절을 지었다 전한다. 지방유형문화유산 제51호 문수사 대웅전, 제52호 문수사 문수전, 제154호 문수사 부도, 제207호 목조삼세불상, 제208호 문수사 목조지장보살좌상이 있으며 기타 명부전, 한산전 등이 남아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문수사 애기단풍나무숲은 일주문부터 문수사 입구까지 약 80m 구간에 식재되어 있다. 수령 100년에서 400년 된 애기단풍나무 500여 그루가 자생하고 있다. 가을이면 색색으로 물든 단풍이 완만한 곡선을 이루는 천년고찰 문수사 주변 산세와 어우러져 가을 정취를 만끽할 수 있는 명소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수면 칠성길 135

백양사
백양사는 내장산 국립공원 안에 있는 절로, 백제 무왕(632년) 때 창건했다고 전한다. 거대한 바위를 배경으로 좌우에 맑고 찬 계곡물이 흘러내려 경치가 매우 수려하다. 가을 단풍을 비롯하여 일 년 내내 변화 있는 아름다운 경치를 보여준다. 대웅전, 극락보전, 사천왕문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소요대사부도는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갈참나무와 단풍나무가 도열하듯 서 있는 숲 길을 지나 백양사 입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쌍계루가 눈에 띈다. 앞에는 계곡을 막아 만든 연못, 뒤로는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서 있어 연못물에 어른거리는 쌍계루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쌍계루를 지나면 대웅전과 극락보전, 부도탑이 나온다. 백양사는 창건 당시 백암사였다가 고려 때 정토사로 바뀌었다. 조선선조 때 환양조 사가 불경을 읽을 때마다 흰 양이 설법을 들었다 해서 백양사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선도량으로 유명했던 곳으로 불교계를 이끌었던 고승들도 많이 배출되었다. 일제 때 2대 교정(종정)을 지낸 환응, 조계종 초대 종정 만암, 태고종 초대 종정 묵담 등 근래에 와서 서옹당 종정 등 고승만도 5명이나 된다. 또한 등산로 쪽으로 올라가면 암자가 많고 약사암과 운문암, 천진암 등은 경관도 뛰어나다. 절 입구에서 20분 거리인 약사암은 전망대 격으로 첩첩산중에 둘러싸인 백양사의 모습이 한눈에 조망된다. 절경 맞은편에는 난대성의 늘 푸른 나무인 비자나무 5,000그루가 군락을 이뤄,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으며, 주차장에서 절로 오르는 0.5㎞ 구간에 우거진 수백 년 된 아름드리 갈참나무 거목들, 3,000여 그루의 고로쇠나무와 비자림은 산림욕 하기에 더없이 좋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성군 북하면 백양로 1239

원불교중앙총부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는 전라북도 익산시 신용동 원광대학교와 원광보건대학교 맞은편에 위치한 원불교의 중심 성지이다. 이 성지는 정문을 기준으로 좌측 순서에 따라 둘러볼 수 있으며 총 14개의 주요 장소로 구성되어 있다. 붉은 꽃이 만개한 종각을 시작으로 청하원, 정화정사 등 다양한 전통 건물과 사찰 공간이 조화를 이루며 사계절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성직자를 위한 수행 공간 외에도 일반인에게 개방된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어 시민들의 휴식처로도 사랑받고 있다. 대종사 성탑과 성비 주변에는 목련, 벚나무, 동백나무 등이 계절마다 피어나며 처마 끝 풍경 소리는 고요한 명상 공간을 완성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익산대로 501

내장사(정읍)
아름다운 내장산국립공원의 품 안에 안겨 있는 내장사는 636년(백제 무왕 37)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창건하여 영은사(靈隱寺)라 하였으며, 이때의 가람규모는 50여 동이었다고 한다. 1098년(숙종 3) 행안(幸安)선사가 전각과 당우를 새로 건립하고 중창하였고 1557년(명종 12) 희묵(希默)대사가 영은사의 자리에 법당과 요사채를 건립하고 산 안에 무궁무진한 보물이 숨어있다 하여 절 이름을 내장사라 하였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내장산 용굴암과 은봉암과 은봉암, 비래암에 이안된 조선왕조실록과 태조 어진을 내장사 주지였던 승병장 희묵대사와 승군들이 함께 수호하는데 공을 세웠다. 정유재란 때 전소된 것을 1639년(인조 17년) 부용대사가 중창하고 불상을 개금(改金)하였으며, 1779년(정조 3) 영담대사가 대웅전과 시왕전(十王殿)을 중수하고 요사채를 개축하였다. 1923년 학명(鶴鳴)선사가 사세를 크게 중흥시킨 뒤 1938년 매곡선사가 현재의 자리로 옮겨 대웅전을 중수하고 명부전과 요사채를 신축하였다. 1951년 1월 12일 불탄 뒤 중건을 보지 못하다가, 1957년 야은스님이 요사인 해운당을 건립하였고, 1958년 다천스님이 대웅전을 건립하였다. 1960~1962년과 1974∼1977년에 중건하였고, 1992년 요사인 향적원(香積院)과 종각을 건립하였으며, 1997년 해운당을 중건하였다. 현존 당우로는 대웅전, 극락전, 관음전, 명부전, 삼성각, 천왕문, 범종각, 정혜루, 일주문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산로 1253 (내장동)

금당사(진안)
마이산 남부 진입로에서 마이산을 오르다보면 매표소를 조금 지나서 왼쪽에 금당사가 있다. 금당사에서 더 올라가면 마이산 탑사가 나온다. 814년 혜감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극락전에는 수천년이 넘은 은행나무를 깎아서 만든 금당사목불좌상과 괘불탱화가 있다. 이 괘불탱화는 단독의 관음보살입상이 그려져 있으며 표현양식으로 보아 17세기 후반의 걸작으로 통도사의 관음보살 괘불탱화나 무량사의 미륵보살 괘불탱화 등과 함께 걸작으로 손꼽힌다. 이 괘불을 걸고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또한 이곳에는 백제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당사 삼층석탑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마령면 마이산남로 217

귀신사(김제)
금산면 청도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의 말사이다. 귀신사는 676년(문무왕 16)에 의상대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백제 법왕 때 왕실의 내원사로 처음 세워졌다는 주장도 있다. 창건 당시의 명칭은 국신사였다고 한다. 그 후 통일신라 말기 도윤이 중창한 뒤 귀신사로 개칭하였다. 고려시대에는 원명국사(1090~11410가 중창하였는데 이 무렵에는 구순사로 불렸다. 그 후로도 몇 차례 부분적인 중수와 대대적인 중창을 거쳐 1934년에는 대적광전 등을 중수한 뒤 다시 귀신사로 명칭을 바꾸었다. 귀신사는 원래 금산사를 거느릴 정도로 규모가 큰 절로 고려 말에는 쳐들어온 왜구들 300여 명이 주둔했을 정도였다고 하는데 지금은 쇠퇴하여 작고 소담한 사찰로 남았다. 귀신사의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 대적광전과 삼층석탑과 부도, 석수 등이 있다. 삼층석탑은 귀신사의 창건과 함께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신라시대의 미를 나타내는 빼어난 작품이다. 부도는 청도원 마을 입구의 논 가운데 있는데 전성기에는 이 부도가 있는 곳까지가 절의 경내였음을 알 수 있다. 귀신산 석수는 독특한 양식으로 앉아 있는 석수의 등 위 중간에 남근 같은 석주가 당당하게 꽂혀 있다. 불교사상과 남근숭배사상이 어우러진 특이한 형태의 석조물로, 터를 누르기 위하여 세웠다는 설과, 백제왕실이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세웠다는 설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금산면 청도6길 40

개암사
개암사는 부안군 우금산에 있는 백제시대 고찰이다. 개암사는 선운사의 말사로 634년 묘련이 창건하였다. 개암이라는 이름은 기원전 282년 변한의 문왕이 진한과 마한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 도성을 쌓을 때, 우와 진의 두 장군으로 하여금 좌우 계곡에 왕궁 전각을 짓게 하였는데, 동쪽을 묘암, 서쪽을 개암이라고 한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676년 원효와 의상이 중수하였고, 1276년 원감국사 때는 30여 동의 건물을 세워 대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 후 임진왜란으로 황금전을 제외한 전 당우가 소실되었고 1636년에 계호스님이 다시 중창하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개암사 뒤, 우금암을 포함한 우금산성은 백제의 유민들이 왕자 부여풍을 옹립하고, 3년간에 걸쳐 백제부흥운동을 폈던 사적지로도 유명하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상서면 개암로 248

강천사(순창)
강천사 군립공원 입구에서 1.8㎞ 지점에 위치한 강천사는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그 후 번창하여 고려 충숙왕 3년(1316) 덕현선사가 사찰을 중창하고 5층 석탑을 세웠고, 한때 12개 암자와 1천여 명의 승려들이 머물렀다고 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석탑만 남고 모두 소실되었다. 선조 37년 (1604)에 소요대사가 재건했으나 다시 한국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9년 원상대로 복원하였다. 충신리와 남계리, 석장승, 순창객사, 순화리 3층 석탑 등의 문화재가 있다. 주변 관광지로 금성산성, 용소폭포, 강천호, 담양호, 추월산, 희문산, 내장산국립공원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순창군 팔덕면 강천산길 270

도림사(곡성)
곡성읍에서 서남쪽으로 떨어진 월봉리, 동악산 줄기인 성출봉 중턱에 자리 잡은 도림사는 신라 무열왕 7년(660)에 원효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현재는 보광전, 약사전, 응진당, 명부전 등이 있고 절 입구에는 허백련 화백이 쓴 도림사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풍악의 음률이 온산을 진동하였다 하여 동악산이라 하고, 도인이 숲같이 많이 모여들었다 하여 도림사라 하는데, 인근에는 동악산 남쪽 골짜기에서 시작된 도림계곡(청류계곡)이 흐르고 있다. 계곡물이 연중 그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노송, 계곡, 폭포들이 어울려 절경을 이루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곡성읍 도림로 175

불갑사(영광)
영광군 불갑산 기슭에 자리 잡은 불갑사는 상사화가 만개하는 명소로 잘 알려져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제18교구 본사인 백양사의 말사로, 백제 침류왕(384년) 때 마라난타가 불교를 전래하며 세운 첫 번째 불법도량이라는 의미를 담아 ‘불갑사(佛甲寺)’라 이름 붙여졌다. 이곳에는 조선 중기 이후의 양식을 간직한 대웅전과 천왕문 등이 보존되어 있다. 울창한 숲에서는 멸종 위기 야생식물인 노랑상사화를 볼 수 있으며, 가을이면 붉은 꽃무릇이 군락을 이루는 대표적인 계절 여행지로 사랑받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불갑면 불갑사로 450

원효사(광주)
원효사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등산 원효계곡의 웅장한 산세 속에 있으며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누각을 가지고 있는 전통사찰이다. 신라 때 원효대사가 산의 수려함을 사랑하여 이곳에 암자를 세우고 지냈다 하여 원효암이라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일설에는 고려 충숙왕 당시의 이름 있는 화엄종 스님이 창건한 뒤 원효를 사모하는 마음에서 원효암이라 했다고도 한다. 그 후의 역사는 입증할 길이 없으나 문정왕후의 섭정 때 사세가 다시 일어났으며, 선조 때의 승병장이었던 영규가 수도했던 곳이기도 하다. 정유재란 때 전소된 뒤 증심사를 중창했던 석경이 직접 기와를 구워 중창하였다. 원효봉 한 기슭에 있는 원효사 동부도는 현존하는 부도 중 조각기법이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사면에 동물모양의 해학적 모습이 특이하다. 절 바로 앞에 높고 긴 계단이 있고 양옆으로 하늘을 뒤덮은 우거진 대숲 때문에 절을 향해 나 있는 통로가 마치 하늘을 오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1980년 5월 대웅전 신축 작업 중 국립광주박물관 학예연구팀에 의해 발굴된 청동, 청동불 입상, 동경(구리거울), 각종 소조불 등 백여 점의 유물은 통일신라 말에서 조선시대에 이르는 다양한 시대의 것들로서 원효사의 오랜 역사를 말해준다.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무등로 1514-35

증심사(광주)
증심사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지역의 대표적인 불교도량으로 무등산 서쪽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통일신라 때 고승 철감선사 도윤이 9세기 중엽에 세운 절로 고려 선종 때(1094년) 혜소국사가 고쳐 짓고 조선 세종 때 김방이 삼창하였는데 이때 오백나한의 불사가 이루어졌다고 한다. 이후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진 것을 1609년(광해군 1)에 석경·수장·도광의 3대 선사가 4창했다고 한다. 그 후 신도들의 정성으로 몇 차례 보수가 이루어졌으나, 6 ·25 전쟁 때 많은 부분이 소실되었다가 1970년에야 대웅전을 비롯한 건물들이 복구되었다. 증심사의 유물로는 오백전과 비로전(사성전)에 봉안된 철조비로자나불 좌상(보물), 신라 말기의 석탑인 증심사 삼층석탑(지방유형문화재), 범종각, 각 층의 4면에 범자가 새겨진 범자칠층석탑 등 수많은 문화재가 있다. 특히 오백전은 무등산에 남아 있는 사찰 건물들 중 현재 가장 오래된 조선 초기(세종 25년)의 건물로 강진의 무위사 극락전과 계통을 같이 하는 정면 3간, 측면 3간의 단층 맞배지붕의 다심포 양식으로 그 희귀성이 돋보인다. 이에 1986년 11월 1일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는 사찰이다. 다양한 템플스테이가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으며 여러 가지 체험프로그램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증심사길 177

내소사(부안)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에 혜구두타(惠丘頭陀)가 세운 절로 원래 이름은 소래사이다. 대웅보전은 석가모니를 중심으로 좌우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을 모신 불전으로 조선 인조 11년(1633) 청민 대사가 절을 고칠 때 지은 것이라 전한다.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3칸이며, 지붕은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한 장식 구조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과 기둥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쳐 나온 부재들의 포개진 모습은 조선 중기 건축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또한 대웅보전의 꽃문살에서 당시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엿볼 수 있으며, 불상 뒤쪽 후벽에는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것 중 가장 큰 백의관음보살 좌상이 그려져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드라마 ‘대장금’에서 장금이가 연못을 바라보며 돌을 던지는 장면, 그리고 그 모습을 민정호가 지켜보던 인상적인 장면은 바로 내소사 경내의 연못에서 촬영되었다. 고즈넉한 사찰 분위기와 함께 연못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이 드라마의 감성을 더욱 깊이 있게 담아낸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내소사로 191

실상사(남원)
지리산 기슭의 평지에 있는 실상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의 말사이다. 신라 흥덕왕 3년(828)에 증각대사가 9산선문의 하나인 실상산문을 개산하면서 창건했다. 이 곳에 절을 세우지 않으면 우리나라의 정기가 일본으로 가 버린다는 풍수지리설에 따라 절을 세웠다고 전한다. 정유재란 때 완전히 폐허가 된 것을 조선 숙종 26년(1700년)에 다시 지었으나, 고종 19년(1882년)에 거의 불타 버려 일부만 남게 되었다. 현재 통일신라시대 작품으로 국보인 높이 약 5m의 백장암 3층 석탑과 보물 11여 점을 포함하여 단일 사찰로는 가장 많은 17점의 지방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진입로는 논 가운데 있고, 절은 산속이 아닌 들판에, 수목에 둘러싸여 있다. 절 입구에서 반달 모양의 돌다리인 해탈교를 지나면 보이는 돌장승이 인상적이다. 지리산 자락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어 마음이 편안해지며 고요한 사찰로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입석길 94-129 실상사

안국사(무주)
적상산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찰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년)에 월인화상이 지었다고 전한다. 광해군 6년(1614년) 적상산성 내에 사각이 설치되고, 인조 19년(1641년)에 선운각이 설치되어 적상산 사고로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족보인 선원록이 봉안되었다. 이때 사고를 방비하기 위하여 호국사를 지었으며, 안국사는 그 전부터 있던 절이었으나, 호국사와 더불어 이 사각을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되어 안국사라는 이름으로 불리워졌다. 적상산 양수발전소 건설 때문에 이 사찰은 호국사지의 위치로 옮겨져 안국사가 호국사지에 있다. 인근에는 무주리조트와 라제통문 구천동 계곡이 있어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무주군 적상면 산성로 1050

용담사(남원)
남원에서 동쪽으로 약 3㎞ 떨어진 곳에 위치한다. 백제 26대 성왕 때 지어진 것으로 절이 세워지기 전에는 부근의 깊은 물속에 용이 되지 못한 이무기가 살아 농작물을 해치고, 사람을 잡아먹는 등 갖은 행패가 심했으나 절을 지어 용담사라 한 후 사라졌다는 전설이 있다. 용담 사지 석불입상은 고려 초기 거불상 계통을 따르고 있는 가장 우수한 작품의 하나로 평가되며, 높이 10m에 이르는 홀쭉하고 긴 모양의 용담사 칠층 석탑은 용담사 창건 당시의 유물로 여겨진다. 1914년에 옛 터에 중창했고, 1930, 1989년에도 중창 불사를 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천면 원천로 165-12

위봉사(완주)
위봉사는 전라북도 완주군 위봉산(추줄산)에 자리하고 있는 고찰이다. 고려 말 나옹스님이 중건하였고, 조선 세조 때는 선석, 석잠 두 스님이 중수하였다. 조선시대 말에 포련대사에 의한 60여 칸 건물 중수를 거쳐 1312년에는 전국 31 본산(일종이나 일파의 기본이 되는 큰 절) 중 하나로 전북 일원의 50여 말사를 관할하기도 하였다. 해방 후 6.25전쟁을 거치면서 급속히 퇴락했다. 폐사 직전인 1988년 법중스님이 부임 후 바로 도량 정비를 시작하여 퇴락한 보광명전과 관음전을 보수하였고, 여러 시주의 동참으로 100여 칸의 건물을 새로 지었다. 현재는 보광명전, 극락전, 관음전, 삼성각, 나월당, 요사채 등을 갖추고 있고, 건물에 50~60명의 대중이 상주하고 있는 대찰의 면모를 갖추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 위봉길 53

무위사
무위사 사적을 보면 875년(헌강왕 1) 도선[道詵]국사가 갈옥사[葛屋寺]로 창건한 것이 첫 번째 중창이다. 그리고 이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은 905년(효공왕 9) 이후 선종인 가지산문[迦智山門] 계통의 선각국사[先覺國師] 형미[逈微](864∼917)가 고려 태조 왕건의 요청으로 무위갑사[無爲岬寺]에 머무르면서 절을 중수하고 널리 교화를 펴 대중적 지지를 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무위사는 형미 스님이 주석했던 10세기 초 이전에 무위갑사라는 절로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무위사 사적에 의하면 고려 시대인 946년(정종 1)에 형미가 제3창을 하면서 모옥사[茅屋寺]로 절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러나 946년은 이미 형미가 입적한 30년 뒤이며, 최언위가 지은 ‘고려국고무위갑사선각대사편광영탑비’가 세워진 해라서 믿기 어렵다. 이것은 아마 형미가 무위갑사를 왕건의 후원을 받아 크게 중창하면서 교화를 펼쳤던 사실을 후세 사람들이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 무위사는 10세기 초 이전에 창건되었고, 형미에 의해 중창되었으며 가지산문 소속의 선종 사찰이었음은 분명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성전면 무위사로 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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