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4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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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사당
춘향사당은 춘향의 임 향한 일편단심을 기리기 위해 1931년에 건립된 사당으로, 광한루의 동쪽, 절개를 상징하는 대나무 숲 속에 있다. 사당의 중앙에는 열녀춘향사라는 현판이 있고, 안에는 춘향의 영정이 안치되어 있으며, 이 사당에서 축원을 빌면 백년가약이 이루어진다고 하여 참배객이 늘고 있다. 최초 영정은 진주사람 강주수가 그려 기증하고, 1939년 가을에 이당 김은호가 그린 영정을 나란히 봉안하였으나 6.25중에 훼손되어 1961년 기증받은 이당 김은호 화백이 그린 춘향의 영정이 현재까지 봉안되고 있다. 춘향사당은 1931년 일제강점기에 남원의 유지들이 주축이 되어 권번의 기생들과 힘을 합하여 민족의식 고취와 춘향의 절개를 이어받고자 설립하고 제사를 지내게 되었다. 해마다 5월 5일에는 춘향제가 성대히 열린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요천로 1447 (천거동)

나주 금성관
이 건물은 나주목의 객사 건물로 매월 1일과 15일에 국왕에 대한 예를 올리고 외국 사신이나 정부 고관의 행차가 있을 때 연회를 열었던 곳이다. 초창은 성종 6~10년(1475~1479) 사이에 나주목사로 재직한 이 유인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면 5칸, 측면 4칸, 팔각지붕의 320.66m²(97평) 건물로 전국의 객사 건물 중 그 규모가 가장 웅장하다. 일제 강점기 이후 군청 건물로 사용해 오면서 원형이 파괴되어 1976년에서 1977년 사이 완전해체 복원하였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금성관길 8

왕인박사유적지·성기동국민관광지
왕인박사는 백제 근초고왕 때 일본으로 건너가 백제의 선진문화를 전파하여 일본의 문화 시조로 숭상받는 인물이다. 왕인박사유적지는 구림마을의 동쪽 문필봉 기슭에 자리 잡고 있으며 왕인이 새롭게 조명되면서 그의 자취를 복원해 놓은 곳이다. 왕인묘, 내삼문, 외삼문, 문산재, 양사재, 전시관, 왕인상, 책굴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 중 왕인묘에는 영정과 위패가 봉안되어 해마다 제사를 지낸다. 문산재와 양사재는 왕인이 공부하고 후진을 양성하였다는 곳으로 월출산 서쪽 산 중턱에 터만 남아 있던 것을 복원하였다. 책굴은 왕인이 학문을 수련할 때 쓰던 석굴이다. 전시관에는 탄생도, 수학도, 도일도, 학문전수도 등이 걸려 있다. 이 외에도 왕인박사가 마셨다고 전해오고 있는 성천이 있으며 탄생지 옆에는 유허비가 세워져 있다. 성기동 서쪽에 있는 돌정고개는 박사가 일본으로 떠날 때 동료, 문하생들과의 작별을 아쉬워하면서 정든 고향을 뒤돌아 보았다 하여 돌정고개가 되었다 한다. 왕인박사의 전설이 서려 있는 성기동은 1986년 6월 23일 성기동 국민 관광지로 개발되었다. 봄이 되면 왕인박사 유적지는 벚꽃 나들이 명소로 유명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군서면 왕인로 440

원불교영산성지
원불교는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 영촌마을에서 태어난 소태산 박중빈이 창시한 종교로 세계에 500여 개의 교당과 100만 신도가 있다고 한다. 원불교에서 일컫는 성지는 소태산 대종사가 탄생하여 개교한 영광의 영산성지인 이곳과, 교화의 장을 연 익산성지(익산시 신룡동), 교리를 초안하고 교강을 발표한 변산성지 등이 있다. 소태산대종사가 탄생하여 성장하고 구도과정 끝에 마침내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크게 깨친 후, 구인 제자들과 함께 저축조합, 방언공사, 법인성사 등 교단의 초석을 다진 곳으로, 영광군 백수읍 길룡리 일대를 말한다. 원불교의 개법성지인 이곳에는 대종사의 생가, 기도터인 삼밭재, 마당바위, 대각을 이룬 노루목, 제자들과 함께 바다를 막아 이룬 정관평 방언답, 방언공사 제명바위, 구인기도봉, 영산원, 대각전, 영모전, 영산선학대학교, 범현동 이 씨 재각 등이 있어 성지 순례차 전국의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백수읍 성지로 1218-54
내산서원
조선 중기 문신인 강항(1567∼1618)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강항은 공조좌랑과 형조좌랑에 있던 중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아 활동하다가 왜적의 포로가 되어 일본으로 압송되었다. 일본에 있으면서 그 나라의 역사, 지리 등을 알아내어 고국으로 보내기도 하면서 일본에는 성리학을 전하였다. 선조 33년(1600) 귀국한 후 벼슬을 사양하고 독서와 후진양성에만 전념하였다. 이 서원은 인조 13년(1635)에 나라에서 ‘용계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고 숙종 28년(1702)에 고쳐 세웠다. 일제강점기 때에도 고쳐 지었는데 그 뒤로도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앞쪽에 교육 공간을 마련하였고 뒤쪽에 제사 공간을 마련한 전학 후묘의 배치이다. 교육 공간인 강당은 중앙에 마루를 두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뒤에 있는 내삼문을 지나면 강항의 위패를 모신 작은 규모의 사당이 있다. 왼쪽 산기슭에는 강항의 묘소가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불갑면 강항로 101

해남윤씨 녹우당 일원
고산 윤선도가 살았던 집으로 윤선도의 4대 조부인 효정(1476~1543)이 연동에 터를 정하면서 지은 15세기 중엽의 건물이다. 집터 뒤로는 덕음산을 두고, 앞에는 벼루봉과 그 오른쪽에 필봉이 자리 잡고 있는 명당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현재 윤선도의 14대 종손이 살고 있다. 녹우당 고택을 중심으로 고산 사당, 어초은 사당, 어초은 묘역 등이 들어서 있고, 조선 중기 양반 상류 주택의 모습을 잘 보여주는 곳이다. 대문을 들어서면 바로 사랑마당인데, 앞면에 사랑채가 있고 서남쪽 담 모퉁이에는 조그마한 연못인 백련지가 있다. 사랑채는 효종이 윤선도에게 내려준 경기도 수원에 있던 집을 현종 9년(1668)에 이곳에 옮긴 것이다. 사랑채 뒤 동쪽 대문을 들어서면 안채가 [ㄷ] 자형으로 자리 잡고 있다. 사당은 안채 뒤 동쪽 담장 안에 한 채가 있고 담장 밖에 고산 사당과 어초은 사당 등이 있다. 이곳에는 국보인 윤두서 자화상과 보물 산중신곡집, 어부사시사집 등의 지정문화유산과 3천여 건의 많은 유물이 보관되어 있는 박물관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해남읍 녹우당길 135

순천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순천향교는 태종7년(1407)에 창건되었고 순천이 도호부로 승격되면서 1550년에 순천성 동쪽 3㎞ 지점에 옮겨 세웠다. 그 후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며, 광해군 2년(1610)에 순천성 서쪽 구지 북편으로, 정조 4년(1780)에 홍내동으로 이전하였으며, 마지막으로 순조 1년(1801)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웠다. 이처럼 여러 차례 이전한 원인은 옥천의 범람과 산사태로 인한 수해 때문이었던 것으로 추측한다. 요즘은 강우량도 많지 않고 제방도 잘 정비되어 있지만, 당시 순천은 수해가 심하고 잦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불리한 여건에서도 순천향교는 남원향교와 함께 전라좌도 지역에서 최대 규모의 향교로 발전하였으며, 전통적으로 강한 유림세력의 기반을 갖추고 있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동무, 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수호실 등으로 되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 10철, 송조6현의 위패가, 동무·서무에는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향교길 60

다산초당
다산초당은 조선 후기 실학자 정약용이 강진 유배 시기 머물며 학문 활동을 이어간 대표적인 유적지다. 그는 1801년 신유사옥 이후 유배되어 여러 곳을 거쳐 1808년부터 이곳에 정착했으며, 해배될 때까지 10여 년 동안 제자들을 가르치고 연구와 저술에 전념했다. 이 시기에 『목민심서』, 『경세유표』 등 조선 실학을 대표하는 방대한 저술을 완성하며 실학사상을 집대성한 장소로 평가된다. 다산초당은 단순한 거처가 아니라 학문적 성과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진 공간으로, 정약용이 실용적이고 현실 중심적인 학문 체계를 정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현재는 동암과 서암, 제자들이 머물던 공간이 복원되어 있으며, 정약용이 직접 글자를 새겼다고 전해지는 ‘정석(丁石)’, 차를 끓이던 약천, 다조, 연지석가산, 천일각 등 다양한 유적들이 함께 보존되어 있어 그의 생활과 사상을 엿볼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도암면 다산초당길 68-35

진도 남도진성
진도는 땅이 기름지고 농사가 번창해서 옥주라고도 부른다. ‘한 해 농사지어 삼 년을 먹는다’라는 말이 아직까지 내려올 정도로 물산과 인심이 넉넉한 고장이다. 진도는 예향이면서 워낙 외진 곳이기에 유배지로도 활용되었고, 군사적 요충지라서 군사 관련 유적들이 많이 남아있다. 남도진성은 백제 시대 매구리현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여겨지는데, 고려 원종 때 삼별초군이 진도로 남하한 몽골군과의 항쟁을 위한 근거지로 삼았던 성이며, 그 후 1438년 세종 20년에 또다시 성을 보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남도진성은 높이 4~6m, 폭은 2.5∼3m가량 되는 성으로 둘레가 610m이다. 둥그런 성벽과 동문, 서문, 남문이 거의 그대로 있으며, 서문 양옆에 밖으로 튀어나온 치가 남아있다. 남도진성 남문 앞으로 흘러가는 가느다란 개울 위에는 쌍운교와 단운교 두 개의 운교(무지개다리)가 놓여있다. 두 개 모두 편마암질의 판석을 겹쳐 세워 만든 것으로 규모는 작지만, 전국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특이한 양식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임회면 남도길 8-8
완도 묘당도 이충무공 유적
묘당도는 고금도에 딸린 섬으로 그 거리는 20리 안팎이다. 정유재란의 마지막 해인 1598년(선조 31) 2월 17일 충무공 이순신이 수군 8,000여 명을 거느리고 고하도(현 목포시 충무동)로부터 이곳에 옮겨 진을 쳤고, 그해 7월 16일에는 명의 원병으로 진린 장군이 5천 명의 수군을 이끌고 고금도에 도착해 관왕묘를 세우고 전쟁의 승리를 기원했으며 연합전선을 펴 왜적의 침략을 막아냈던 유적이다. 특히, 이곳은 해수로의 요새지로서 이충무공이 고금도에 진을 옮긴 뒤부터는 장흥, 고흥 등에 출몰하여 살육과 약탈을 일삼던 왜군이 순천 방면으로 도주해 버림으로 전투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공은 이때 우선 본영을 건설하고 피난민들을 거두는 일 등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였다. 유성룡은 「징비록」에서 ‘공이 고금도에 이르렀을 때는 군의 위세도 장했거니와 섬 안의 민간인도 수만 호에 달해 한산도 시절의 10배나 되었었다.’ 라고 기록하고 있다. 같은 해 9월 15일 이순신의 조선 수군과 진린의 명나라 수군이 연합하여 순천 수교 (왜교)에 침몰한 왜적을 소탕하고, 다시 10월 9일에는 고금도로 돌아와 전열을 재정비하였다가 11월 9일에는 함대가 노량을 향하여 출진하여 충무공이 11월 19일(양력으로는 12월 16일) 아침, 54 세를 일기로 순국하여 이곳으로 유해를 88일간 봉안하였다가 그 이듬해 1599년(선조 32년) 2월 11일 정식으로 발인, 고향인 충남 아산의 묘역으로 옮겼다. 아직도 이 터에서는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명나라 수장은 장군의 전사를 애석히 여겨 이곳에 서혈하고 귀국하였다는 기록이 남아있다. 관왕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충무사로 명칭을 변경하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고금면 세동84번길 86-31

보길도 윤선도 원림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대한민국의 명승으로 지정된 문화유산으로 조선시대의 문신, 시인, 학자 고산 윤선도(1587~1671)가 여생은 보낸 곳이다. 고산 윤선도는 해남에 있을 때 병자호란의 소식을 듣고 강화도에 도착하였으나 인조는 이미 남한성에서 적에게 항복한 후였다. 이에 고산은 세상을 버리고 제주도로 가는 길에 보길도의 경치에 취하여 이곳에 머물게 되었다고 한다. 고산은 보길도 내 경관이 수려한 곳의 경처를 명명하고 그곳을 오가며 『어부사시사』 등 주옥같은 한시가 창작되었다. 보길도 윤선도 원림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정원 양식들 보여 주는 한국의 3대 전통 정원 중 하나이다. 윤선도는 이곳에 대해 ‘지형이 마치 연꽃 봉오리가 터져 피는 듯해 부용이라 이름했다.’라고 전해진다. 부용동 정원은 고산이 직접 조성한 생활공간이자 놀이공간으로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별서정원에 해당한다. 별서는 농장이나 들이 있는 부근에 한적하게 따로 지은 집을 말한다. 오늘날 남아 있는 부용동정원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우선 거처하는 살림집인 낙서재 주변과 그 맞은편 산 중턱의 휴식공간인 동천석실 주변, 그리고 부용동 입구에 있는 놀이의 공간이라 할 세연정 주변이다. 이처럼 윤선도는 당쟁으로 시끄러운 세상과 멀리 떨어진 자신의 낙원에서 마음껏 풍류를 누렸다. 여기에서 그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어부의 소박한 생활을 창의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보길면 부황길 57

흥양읍성터 및 고흥 옥하리 홍교
흥양읍성터는 1441년 흥양현이 생긴 이래 1914년에 행정명이 고흥군으로 개칭되기까지 흥양현이 있던 곳으로 고흥 읍내에는 흥양현 시절에 쌓은 읍성의 자취가 남아 있다. 우선 고흥 존심당 역사문화공원 뒤편 비탈진 마을 길을 거슬러 올라가면 윗등성이에 성벽의 자취를 볼 수 있다. 흥양읍성터에는 성문, 성벽, 치성, 우물 등이 남아 있어 고흥군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고흥 옥하리 홍교는 조선 후기에 축조된 무지개 형태의 다리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옥하리를 흐르는 두개의 홍교가 있다. 이 중 위쪽 홍교는 비교적 큰 다리이며, 무지개 모양의 앞면에는 용머리를, 반대쪽에는 용 꼬리를 새겨 놓았다. 아래쪽 홍교는 위쪽 다리보다 규모가 크다. 형태는 위쪽의 것과 비슷하나, 용머리가 다리 아랫면 천장 중앙에 부착된 것이 앞의 홍교와 다르다. 두 다리 모두 조선 후기에 만든 것으로, 규모가 크고 장엄하다. 현재 두 다리의 정상이 지면보다 훨씬 높은데, 이는 후대로 내려오면서 지형이 바뀐 탓으로 추측한다. 흥양읍성터와 고흥옥하리홍교의 거리는 도보 8분 거리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고흥읍 옥하리

진도 용장성
진도의 용장성은 삼별초가 진도에 설치한 대표적인 항몽 시설이다. 산성은 진도 북쪽 해안의 산 능선에 있으며 북쪽 해안에는 진도의 관문인 벽파진이 있는데 울돌목으로 이어지는 조운로의 길목이기도 하다. 배중손을 지도자로 한 삼별초는 왕족인 승화후 왕온을 새 왕으로 받들고 관부를 구성하고 관리를 임명하여 몽고에게 항복한 고려 조정에 대립, 정권을 세웠다. 1,000여 척의 배에 재물과 인원 등을 싣고 진도 벽파진에 도착, 용장성에 터를 잡은 후 산성을 개축하고 성안의 용장사를 궁궐로 삼고 각종 건물을 지어 왕을 황제로 칭하였다. 2009년~2010년에 진행된 궁궐터 전면 조사를 통해 20여 채 이상의 건물이 치밀하게 배치되었는데, 마치 개경 만월대를 연상시키는 구조여서 계획하에 궁궐이 조성되었다고 보인다. 현재 성의 대부분은 원형이 사라진 상태이며, 성지가 부분적으로 남아 있고 성내의 용장사지 및 행궁지가 보존되고 있다. 주변에 용장성 홍보관과 고려항몽충혼탑과 배중손을 모시는 정충사가 있어 연계하여 방문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군내면 용장산성길 92

국립5·18민주묘지
1980년에 일어난 5·18민주화운동의 희생자들이 묻힌 공동 묘지인 국립5·18민주묘지는 5·18 묘역이라고도 한다. 민주 성지인 전남광주통합특별시의 대표적인 상징으로 묘역 안에는 5·18 영령의 묘가 있으며, 참배 광장, 전시 공간, 상징 조형물, 광주민주화운동 추모탑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곳 중앙에 있는 사각기둥인 탑신은 높이 40m로 우리나라 전통 석조물인 당간지주를 현대감각에 맞게 형상화했다. 탑신 가운데 감싸 쥔 손 모양으로 중앙에 설치된 타원형 형상은 새로운 생명의 부활을 상징하며, 시시각각 변하는 태양광에 반사된 빛은 희망의 씨앗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5·18 추모관은 민주화를 위해 희생한 민주 영령들을 추모하고 그 뜻을 올바르게 계승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5·18민주화운동과 그 희생자 그리고 아직 밝혀지지 않은 진실 등을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으며, 단순한 관람보다는 직접 참여하여 5·18 실상과 정신을 느낄 수 있는 체험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건한 참배 분위기를 위하여 슬리퍼, 민소매 등의 복장은 자제해야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민주로 200 (운정동)

광주 예술의 거리
서울의 대학로와 인사동 거리, 부산의 Piff 거리 등 지방마다 도시의 특색을 살린 거리가 존재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를 대표하는 거리는 바로 광주 예술의 거리이다. 예술의 거리는 호남 문화와 예술의 중심지인 예향 광주의 전통을 계승 발전시키기 위해 조성됐다. 현재 동호인의 편의도모를 위해 서화, 도자기, 공예품 등 이 지방 예술의 상징적 작품을 집산하여 전시·판매하고 있으며 한국화, 서예, 남도창을 중심으로 한 남도예술의 진수를 누구나 손쉽게 접할 수 있는 명소이다. 중앙초등학교 뒤편 사거리에 이르는 이곳을 두루 돌아보는데 구경만 하면 1시간 정도, 매장에 들어가서 감상하면 2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초행이면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 매주 토요일에는 ‘차 없는 거리’로 지정되어 다양한 문화행사를 즐길 수 있고 한 달에 한 번 남도문화예술진흥회가 주축이 된 음악회, 빛의 축제, 언더그라운드 공연, 캐릭터 문화 상품전, 빛의 축제 등을 펼치며 예술의 거리를 더욱 활성화시키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동구 궁동

남원관광단지
남원하면 떠오르는 모든 상징물과 위락시설들을 모아 놓은 종합관광단지이다. 단지에는 춘향전과 관련된 춘향테마파크, 춘향문화예술회관을 비롯해 국립민속국악원, 남원향토박물관 등의 문화시설이 있다. 특히 춘향전의 스토리를 따라서 5개의 장으로 꾸민 춘향테마파크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만한 곳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춘향전 세트장도 이곳에 있다. 단심정에서는 남원관광단지뿐만 아니라 온 시내가 조망된다. 이외에도 각종 전통음식을 판매하는 식당과 카페, 숙박업소, 위락시설인 남원랜드가 있다. 남원관광단지 근처에는 광한루, 선원사, 교룡산성, 혼불문학관, 백장암 등 명소가 많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양림길 43

땅끝관광지
바다와 하늘이 만나 시작되는 ‘땅끝’은 백두대간이 남으로 내달려와 마지막 용트림하며 멈춘 곳으로, 백두대간의 시작이요 끝이다. 한반도의 기가 가장 많이 뭉친 곳이기도 한데, 그 기로 하늘 문을 열어 많은 선인들과 예술인들이 신성한 제를 올리는 곳이라고 신성시했다. 그래서 하늘과 바다를 향해 소원을 빌면 소원을 이루며 희망이 싹튼다는 이야기도 땅끝마을에 전해온다. 땅끝은 이러한 상징성으로 전국의 많은 관광객들이 찾고 있다. 국토순례의 시발지이며 해양문화의 중요한 요충지이자 이동로이기도 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해남군 송지면 땅끝마을길 100
진도 신비의 바닷길
고군면 회동마을과 의신면 모도 사이에 바다가 갈라지는 일명 ‘한국판 모세의 기적’이 일어난다. 물이 빠지면 폭 30~40m, 길이 2.8㎞가량 되는 바닷길이 열리는 것이다. 바닷길은 약 1시간 동안 완전히 드러난 후 도로 닫혀 버린다. 이 신비의 바닷길에 얽힌 전설이 있다. 잦은 호랑이의 출몰로 마을이 피해를 입게 되자 마을 사람들이 급하게 모도로 떠나는 바람에 뽕할머니를 빼놓고 갔다. 혼자 남은 뽕할머니는 용왕님께 다시 가족을 만나게 해달라고 매일 기도를 했더니 음력 2월 그믐께 바닷길이 열려 그리운 가족과 만났으나 기진하여 그만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 이래로 마을 사람들은 해마다 할머니의 제사를 지내고 영등사리라고 부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진도 신비의 바닷길은 1975년 주한프랑스 대사가 진도로 관광을 왔다가 이 현상을 목격하고 프랑스 신문에 ‘모세의 기적’이라고 소개하면서 세계적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1970년대 후반부터는 영등사리에 맞춰 진도군에서 영등축제를 벌인다. 바닷가의 뽕할머니 사당에서 제사를 지내고 용왕제를 지내며 씻김굿, 다시래기, 강강술래, 남도들노래, 진도만가, 북놀이 등 진도 고유의 민속공연뿐만 아니라 다양한 행사를 개최하여 볼거리를 제공해 각지에서 수많은 구경꾼들이 모여든다. 신비의 바닷길 체험관이 있어 바닷길 갈라지는 시기와 관계없이 체험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진도군 고군면 신비의바닷길 148

수월봉
제주의 가장 서쪽 끝머리에 있는 한경면 고산리에 가면 제주에서 가장 넓은 들이 있다. 이 들판 끝 해안가에 솟아있는 조그마한 봉우리가 수월봉이다. 수월봉은 해안에 돌출해 있는 높이 약 77m의 봉우리로 절벽이 예리하고 운치가 있으며 곳곳에서 솟는 용천수는 약수로 유명하다. 수월봉 정상에는 기우제를 지내던 육각정인 수월정이 있다. 수월봉 아래 해안을 끼고 이어지는 절벽은 화석층이 뚜렷하여 자연의 신기함을 더하는 곳이다. 수월봉에서는 제주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섬인 차귀도가 내려다 보이고, 더욱이 수월봉 정상에 있는 수월정에 앉아서 바라보는 낙조는 제주 어느 곳에서 보는 것보다 아름답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 3760
![성산일출봉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https://tong.visitkorea.or.kr/cms/resource_photo/26/3052926_image2_1.jpg)
성산일출봉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해발 180m인 성산 일출봉은 약 5,000년 전 제주도 수많은 분화구 중에서는 드물게 바닷속에서 수중폭발한 화산체이다. 용암이 물에 섞일 때 일어나는 폭발로 용암은 고운 화산재로 부서져 분화구 둘레에 원뿔형으로 쌓여 있다. 원래는 화산섬이었지만 신양해수욕장 쪽 땅과 섬 사이에 모래와 자갈이 쌓여 육지와 연결이 된 것이다. 일출봉 정상에는 지름 600m, 바닥면의 높이 해발 90m에 면적이 214,400㎡나 되는 분화구가 자리한다. 예로부터 이곳 성산일출봉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출 광경은 영주 10경(제주의 경승지) 중에서 으뜸이라 하였다. 넘실대는 푸른 바다 저편 수평선에서 이글거리며 솟아오르는 일출은 온 바다를 물들이고 보는 이의 마음까지도 붙잡아 놓으며 보는 이로 하여금 저절로 감탄케 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성산읍 일출로 284-12

성판악
성판악은 한라산 국립공원의 성판악 등산로 주변에 위치하는 오름으로 한라산 동쪽 산록에서 가장 규모가 큰 단성화산이다. 단성화산은 일회의 분화 활동을 통해 형성되는 소형 화산체로서 제주에서는 오름으로 불린다. 성판악이라는 명칭은 산 중턱에 암벽이 널 모양으로 둘려 있는 것이 성벽처럼 보여 성널오름 또는 한자어로 성판악이라고 하게 됐다. 성판악은 전체가 삼림으로 덮여있으며 주변으로 성널계곡 등 크고 깊은 계곡이 발달해 있다. 제주시와 서귀포시를 잇는 5·16 도로의 중간 지점 가장 높은 곳에 성판악 휴게소가 있는데, 이곳은 한라산으로 오르는 등산로 중이 하나로 성판악이 시작되는 곳이다. 한라산 동쪽 코스인 성판악탐방로는 관음사탐방로와 더불어 한라산 정상인 백록담을 오를 수 있는 탐방로이며 한라산탐방로 중 가장 긴 코스이다. 정상까지 대체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지만 왕복 9시간 정도 소요되기 때문에 체력 안배에 신경을 써야 한다. 성판악탐방로는 한라산탐방로 예약시스템에서 사전예약을 해야 탐방이 가능하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조천읍 516로 1865

정방폭포
정방폭포는 천지연, 천제연과 더불어 제주도 3대 폭포라고 불린다. 국내에선 유일한 뭍에서 바다로 직접 떨어지는 폭포다. 웅장한 폭포음과 쏟아지는 물줄기에 햇빛이 반사되면, 일곱 색깔의 무지개가 푸른 바다와 함께 어우러져 신비의 황홀경을 연출한다. 예로부터 이곳을 정방하폭(正房夏瀑)이라 하여 영주 십 경의 하나로 삼았다. 중국 진나라 시황제가 서불에게 동양의 삼신산의 하나인 한라산에 가서 불로초를 캐어 오도록 하였으나 불로초를 찾지 못하고 정방폭포의 절벽에 ‘서불과지(徐市過之)’라는 글을 새기고 서쪽으로 돌아갔다는 이야기가 있다. 해변을 끼고 높이 솟은 절벽에는 노송이 바다로 나뭇가지를 드리워 넘어질 듯 서 있으며 각종 수목이 울창하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칠십리로214번길 37 (동홍동)

천지연폭포
이름만큼이나 빼어난 서귀포 천지연폭포는 조면질 안산암의 기암절벽이 하늘높이 치솟아 마치 신선의 세계로 들어온 것 같은 황홀경을 느끼게 한다. 천지연폭포의 하부에는 화산물질과 해양 퇴적물로 구성된 서귀포층이 분포하고, 그 상부에는 약 40만 년 전 분출된 용암이 서귀포층을 덮고 있다. 서귀포층에는 주로 회색 또는 회갈색을 띠는 사암류 및 점토로 구성되어 있고, 조기패류와 동물화석들이 섞여 있다. 40만 년 이후 서귀포 주변 해안선을 따라 대규모 단층운동이 발생하여 계단형 지형들이 형성되었고, 이후 하천이 발달하면서 여러 개의 폭포들이 만들어졌다. 용암아래 놓인 서귀포층은 계속되는 폭포수의 침식작용에 의해 깎이면서 점점 아래로 깊어져 20m에 이르는 깊은 웅덩이가 만들어졌다. 원래 폭포는 지금보다 바다에 더 가까웠으나, 오랜 시간에 걸친 침식작용으로 점점 계곡의 상류 쪽으로 이동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천지연 계곡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담팔수 자생지 이외에도 가시딸기, 송엽란 등의 희귀 식물과 함께 계곡 양쪽에 구실잣밤나무, 산유자나무, 동백나무 등의 난대성 식물들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어 천연기념물로 지정 보호되고 있다. 특히 담팔수나무는 담팔수과의 상록교목으로 우리나라에서는 안덕계곡, 천제연, 효돈천 등 제주도 남쪽해안이 섶섬, 문섬 등이 그 북한지이다. 또, 천연기념물인 무태장어는 뱀장어과에 속하는 열대성 대형 물고기인데, 천지연에서 가끔 발견되고 있다. 주로 아프리카 동부에서 남태평양, 동남아시아, 일본, 대만 등에 걸쳐 널리 분포하며, 우리나라에는 섬진강, 거제도, 영덕오십천 등의 하천에서 매우 드물게 발견되고 있다. 매우 희귀종에 속하는 물고기이므로 분포지역에 관계없이 무태장어 종 자체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서홍동 666-1

천제연폭포
천제연 폭포는 한라산에서 시작된 중문천이 바다로 흐르면서 형성된 폭포로, 중문관광단지 내에 있다. 천제연폭포는 3개의 폭포로 나누어지는데, 주상절리 절벽에서 천제연(못)으로 떨어지는 것이 제1폭포, 천제연의 물이 더 아래로 흐르면서 형성된 제2,3 폭포가 있다. 제1폭포는 높이 22m, 천제연 수심 21m로 건기에는 폭포수가 떨어지지 않지만 주상절리형의 암벽과 에매랄드 빛의 연못이 굉장히 아름다워 내외국인을 불문하고 카메라를 꺼내 들지 않는 이가 없다. 1 폭포 근처에 있는 암석동굴 천정에는 이가 시리도로 차가운 물이 쏟아져 백중, 처서에 이물을 맞으면 모든 병이 사라진다는 설이 있었으나 지금은 수영이 금지되어 진입할 수 없다. (출처 : 제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제주특별자치도 서귀포시 천제연로 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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