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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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
감곡본당은 1896년 설립되어 100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초대 본당 임가밀로 신부는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으로 1894년 첫 본당으로 유서 깊은 교우촌, 신학당이 있었던 여주 부엉골에 부임하게 된다. 본당 이전을 생각하던 중 사목 방문차 여주를 지나 장호원에 이르러 산밑에 대궐 같은 집을 보고 이곳이 본당 사목지로서 가장 적합하다는 것을 직감하게 된다. 그 즉시 임가밀로 신부는 “성모님 만일 저 대궐 같은 집과 산을 저의 소유로 주신다면 저는 당신의 비천한 종이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 주보가 매괴 성모님이 되실 것입니다.”라고 기도 하였으며, 부엉골로 돌아가서 매괴 성모님께 끊임없이 청하였다. 당시 대궐 같은 집은 명성황후의 육촌 오빠인 민응식의 집이었고 1882년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가 피신 왔던 곳이기도 하다. 1896년 5월 성모성월에 그 모든 집터와 산을 매입, 매괴성월인 10월 7일 본당을 설립하기에 이른다. 결국 임가밀로 신부가 처음에 기도한 대로 감곡본당을 성모님께 봉헌하여 이곳이 감곡매괴성모순례지성당이 된 것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성당길 10

계양공원
인천광역시 계양산 자락에 있는 계양공원은 규모가 큰 산지형 공원으로 휴게시설, 체육시설 등 다양한 편익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며, 특히, 장미원은 36종 11,360주의 장미가 식재되어 있어 봄철 명소로 자리 잡고 있다. 아울러, 인천의 대표적인 계양산과 계양공원 산책로가 연결되어 도심에서 자연을 느끼고자 하는 시민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공원이다.
인천광역시 계양구 계양산로75번길 26 계양공원관리소

계양산 산림욕장
계양산 둘레길이 시작되는 곳에 위치한 계양산 산림욕장은 총면적 73,379㎡로 2012년~2020년까지 조성된 숲이다. 편백나무, 자작나무, 미선나무 등의 관목과 섬시호 등 다양한 수목들로 구성되어 있다. 자연 생태관찰로가 있어 계절의 변화에 따른 계양산의 다양한 모습을 살펴볼 수 있고, 건강지압로가 있어 혈액순환을 개선해 심신의 안정을 얻을 수 있다. 산책로 중간중간 운동시설과 정자, 나무 테이블이 있어 본인의 체력에 맞게 맞춤 운동을 할 수 있다. 모든 길이 나무 테크로 되어있고 무장애 나눔길도 있어 장애인이나 노약자, 임산부 등 누구든지 안전하고 편리하게 산림욕을 즐길 수 있다. 산림욕장으로부터 계양산 둘레길이 시작되어 계양산 중턱까지 오를 수 있다.
인천광역시 계양구 임학동
음성잿말고택 (김주태가옥)
음성잿말고택은 약 300여 년 전 이익이 건립하였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충주목사를 지낸 참판 박규희 가문이 오랫동안 거주하였다고 하여 박참판댁으로도 불리는 전통가옥이다. 음성잿말고택의 사랑채는 건물에 적힌 상량문에 따르면 1901년에 건축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안채는 사랑채와 같은 연대이거나 19세기 중엽 정도로 추정된다. 외부로 개방된 바깥마당에 ‘一’ 자형의 사랑채가 있고 그 뒤편 담장을 경계로 ‘T’ 자형 구조의 안채가 있다. 안채는 특이한 구조로 인해 왼쪽의 안마당, 오른쪽의 뒷마당을 구분 짓고 있다. 집안으로의 출입은 사랑채 왼쪽의 대문을 통한 후 다시 담장에 설치된 일각문으로 안마당에 출입한다. 뒷마당은 부엌을 통해서 집안사람들만 드나들 수 있게 하였다. 사랑채는 왼쪽부터 대문간, 사랑부엌, 아랫방, 윗방, 대청, 건넌방이 배열되었다. 부엌 앞의 부엌방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은 모두 앞면에 툇마루를 놓아 연결하였다. 높은 2단 축대 위에 서 있는데, 이는 지체 높은 사대부 집이나 축조연대가 떨어지는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경우이다. 사랑채와 담장을 경계로 하여 뒤쪽에 위치한 안채는 뒷채가 발달한 보기 드문 형태이다. 일각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건넌방과 대청이 보이며 대청의 오른쪽으로 뒷방이 있다. 뒷방은 이 집의 가장 중심이 되는 부분으로 오른쪽에 대청과 윗방·아랫방이 앞 툇마루로 연결되어 배치되었다. 안방과 부엌은 뒷방과 연결이 되는 중심 부분에 길게 자리 잡고 있다. 부엌의 오른쪽으로 나 있는 문을 통해 드나드는 뒷마당에는 장독대와 기타 부엌살림이 배치된다. 주부공간인 안공간이 발달되어 있는 건물로 경기지방 사대부 집에서만 가끔 볼 수 있는 형태이다. 눈에 띄는 정원시설물은 없으나 공간의 짜임새가 인상적이며 아름답다. 특히 중문인 일각문을 통해 안마당에 이르고 부엌을 거쳐 뒷마당에 출입하는 공간구성은 이 집의 특색이라고 할 수 있다.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충청북도 음성군 감곡면 영산안길 47-13

봉화산(서울)
봉화산은 서울의 동북부 외곽인 중랑구 상봉동, 중화동, 묵동, 신내동에 접해 있으며, 정상까지 높이는 160.1m로 평지에 돌출된 독립 구릉이다. 동쪽에 아차산 주 능선이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북쪽으로 불암산, 도봉산과 양주 일대까지 잘 조망되며, 서쪽과 남쪽으로도 높은 산이 없어 남산과 이남 지역도 잘 보이는 지역이다. 봉화산은 일명 ‘봉우재’라고 불리는데, 1963년 1월 1일 경기도에서 서울시로 편입되었다. 이곳은 북쪽 양주의 한이산에서 연락을 받아 목멱산(남산)으로 전달하는 아차산 봉수대가 있던 곳으로, 지난 1994년 11월 7일 봉수대를 복원하였다. 봉화산 정상에서 약간 남쪽에 봉화산 도당인 산신각이 있으며, 약 400년 전에 주민들이 도당굿과 산신제를 지내던 곳이기도 하다. 현재 산신각은 1992년 여름에 일어난 화재로 소실되어 지금은 붉은 벽돌과 시멘트로 지은 새 건물이 들어서 있다.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

망우산(서울)
망우산은 서울 중랑구 망우동과 면목동, 경기도 구리시에 걸쳐 있는 해발 281.7m의 산이다. 망우산 일대에는 1933년 공동묘지로 지정된 서울시립장묘사업소 망우묘지와 아동문학가인 소파 방정환과 민족 대표 33인의 한 분인 독립운동가인 오세창, 한용운 그리고 천연두 보급의 선구자로 의학자이며 국어학자인 지석영 등이 안장되어 있는 망우리공원 등의 시설이 있다. 공원에는 시인 박인환, 문일평, 서병호, 서옹일, 오재영, 서광조, 유상규, 교육가 오긍선 등 여덟 분의 연보비가 추가로 설치되어 역사의 교육장으로 이용되고 있다. 망우리공원에는 5.2㎞의 산책로가 있으며, 1998년 산책로의 이름을 공모하여 사색의 길로 부르기 시작했다. 문화재로는 거북비로 불려 오던 조선 중기의 문신인 충익공 신경진 묘역(서울특별시 유형문화유산)이 있다. 도시환경과 자연관찰로, 나무 정자, 약수터 등의 시설이 있으며, 수목 관리가 잘 되어있고, 공기가 맑아 휴식 및 자연공원으로 많은 시민들이 찾고 있다.
서울특별시 중랑구 망우동

봉화산근린공원
봉화산근린공원은 점토벽돌로 포장된 110평 규모의 진입광장을 비롯해 어린이 놀이터, 전통놀이마당, 주민건강마당, 야외무대 및 주민 쉼터 등으로 꾸며져 있다. 또한 공원을 따라 순환하며 조깅과 산책을 즐길 수 있는 630m의 외곽순환산책로와 공원 정상부에 800평 규모의 잔디마당, 장애인을 위한 전용 체력단련장 등으로 조성되었다. 이 밖에도 중랑구청을 찾아온 민원인들을 위해 구청 정문에서 한눈에 바라다볼 수 있는 위치에 인공폭포를 조성하여 휴식처를 제공하며, 구청의 다양한 야외 문화예술 공연 장소로 활용하기 위해 이벤트광장을 인공폭포와 연계해 조성했다. 봉화산근린공원 뒤 등산로를 따라 20~30분 정도 걸으면 봉화산 정상에 오를 수도 있다.
서울특별시 중랑구 봉화산로45길

대구부수성비
조선 고종 때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해 온 김세호가 대구부성을 수리한 후 그 기념으로 세운 비이다. 대구부성은 영조 때 경상관찰사 민응수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았는데 그 후 성이 훼손되어도 제대로 보수가 이루어지지 않던 것을 김세호가 수리한 것이다. 비는 네모난 받침돌 위에 비몸을 세우고 지붕돌을 올린 모습이다. 비문에는 공사에 관한 내용과, 유공자에게 상을 내린 일이 적혀 있다. 고종 6년(1869)에 세운 비로, 관찰사 김세호가 직접 비문을 짓고, 당시 공사 책임관이었던 최석로가 글씨를 썼다. 광무 10년(1906) 대구부성이 헐리면서 갈 곳을 잃었다가 1932년 대구향교 경내로 옮겨 놓았고, 1980년 영남제일관을 재현하면서 현재의 자리로 옮겨왔다. (출처 : 국가유산청)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영영축성비
임진왜란 때 허물어진 대구토성을 돌로 다시 쌓은 후 이를 기념하고자 세운 비이다. 비는 직사각형으로, 바닥돌 위에 비몸을 세운 간단한 모습이다. 비문에 의하면 성의 둘레는 2,124보(步)이며, 네 개의 문을 만들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군량, 전포 등을 갖춘 창고를 두었다. 석성의 공사기간은 6개월이며, 동원된 인원은 78,534명에 달한다. 성이 완성된 뒤에는 여러 장사들을 모아 활쏘기대회를 열어 상을 주었다 한다. 경상도 관찰사였던 민응수가 나라에 건의하여 영조 13년(1737) 대구 남문 밖에 세워두었으며, 민응수가 비문을 짓고, 백상휘가 글씨를 썼다. 광무 10년(1906)에 성은 헐리게 되었고, 비는 1932년 향교로 옮겨 보존되다가 198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다. (출처 : 국가유산청)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8

이공제비 및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
대구의 신천이 흐르는 둔치 주변 이서공원에 한 채의 비각 안에 서 있는 3기의 비이다. 왼쪽에 있는 것은 이공제비로, 대구판관을 지낸 이서의 치적을 기리기 위해 주민들이 세운 것이다. 당시 대구는 하천이 중심부로 흘러 홍수 때마다 큰 피해를 당하였다. 조선 정조 즉위년(1776) 대구판관으로 부임해 온 이서는 주민들의 어려움을 알고 1778년 자기의 재산을 털어 제방을 쌓아 물길을 돌리게 하였다. 홍수의 피해에서 벗어난 주민들은 새로 만든 냇물을 신천이라 부르고, 제방의 명칭도 이공제라 한 후 정조 21년(1797)에 이 비를 세워 그를 기렸다. 원래 수성교 서쪽 제방에 있던 것을, 이곳으로 옮겨 자리를 잡았다. 가운데에 있는 비는 옆의 이공제비가 초라하여 그의 업적을 영원히 기리는 의미로 순조 5년(1805)에 다시 세운 것이다. 오른쪽에 서 있는 군수이후범선영세불망비는 광무 3년 (1899)에 세운 비로, 고종 때 대구수령으로 있던 이범선의 공적을 기리고 있다. 1898년 큰 홍수가 일어나 이공제의 하류 부분이 파손되어 대구읍성이 위험하게 되자, 이범선은 빠른 기간에 보수공사를 완성하여 주민들의 근심을 덜어주었다. 이에 보답하고자 광무 3년(1899) 이곳 주민들이 비를 세웠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는 덕수이씨 종친회 주관으로 향사를 지내고 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천동로 117

대구 고모령비
장년층의 애창곡 가운데 비내리는 고모령은 작곡가 박시춘이 만들고 1946년에 가수 현인이 불러 수많은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던 노래이다. 이 노래의 배경이 된 곳 고모령에 가면 비 내리는 고모령의 노래비가 있으며, 노래비 뒷면에는 노래비를 세운 사연이 적혀있다. 옛날 고모령에는 남편 없이 어린 남매를 키우는 홀어머니가 있었는데 하루는 스님 한 분이 와서 이 집은 전생에 덕을 쌓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가난하다고 하여 어머니와 어린 남매는 덕을 쌓기 위해 흙으로 산을 쌓게 되었는데 현재의 모봉, 형봉, 제봉이라는 세 개의 산봉우리가 되었고 동생과 형이 서로 높이 쌓고자 시샘을 하여 싸우는 것을 보고 어머니는 크게 실망하여 자식들을 잘못 키웠다는 죄스러움으로 집을 나와 버렸다. 집을 나와 하염없이 걷던 길이 지금의 고모령이며 정상에 와서 집을 향해 뒤돌아 봤는데 그 이름이 뒤돌아 볼 고(顧) 어미 모(母)를 합쳐 고모라는 마을 이름도 이곳에서 나왔다. 지금은 경부선 때문에 산은 잘렸고 망우공원에서 파크호텔 팔현부락을 거쳐 고모역으로 이어지는 옛 고갯길이 이어져 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팔현길 241 (만촌동)

수성못 유원지
수성유원지는 범물동 용지봉(629m)에서 북서부로 뻗어 내린 줄기의 하부에 위치하여 주변의 완만한 산지와 수성못을 끼고 자연의 경관미를 이루고 있다. 1925년에 조성된 수성못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며 저수량도 70만에 달하고 21만 8000㎡의 면적에 못 둘레도 2,020m에 이른다. 수성못은 1925년 일제강점기에 농업용수 공급용으로 조성된 인공 못이었다. 지금은 수변 휴식공간으로 활용되어 연중 풍부한 수량을 자랑하고 있다. 수성못 주변에는 벤치와 수목, 산책로 유람선 선착장, 우주선, 유람선, 바이킹, 범버카, 회전목마 등의 놀이시설을 갖춘 수성랜드가 어우러져 유원지를 형성하고 있다. 보트놀이와 오리배 등을 즐길 수 있는 수성못과 어린이 놀이터, 두산폭포 등 볼거리, 즐길거리가 있어 가족나들이와 연인들의 데이트 코스로 적격이다. 수성못 미디어아트 음악분수는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로빈과 하나가 슬픈 이별을 준비했던 수성못 유원지는 대구 주민들의 대표적인 힐링 명소다. 밤이면 연못 주변에 들어오는 조명과 도심의 야경, 화려한 빛을 자랑하는 분수 쇼를 볼 수 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두산동
음성 읍내리 삼층석탑
음성 읍내리 삼층석탑은 고려시대의 삼층석탑으로 평곡리에 있었던 사찰의 사리탑으로 계속 절터를 지켜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은 1934년 연풍정(지금의 경호정)을 지으면서 현재의 위치인 설성공원 내로 옮겨진 것이라 한다. 음성 읍내리 삼층석탑은 단층 기단 위에 3층의 탑신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의 네 모서리와 탑신부의 각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에서 살짝 들려있다. 꼭대기에는 연꽃 봉우리 모양의 머리장식을 얹어 놓았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 전성기의 석탑 양식에 비교할 때, 기단이 2층에서 1층으로 줄어들고, 기단의 가운데 기둥 조각이 생략되었으며, 지붕돌받침은 3단의 줄어들었다. 이처럼 각 부분의 양식이 약식화되고 있어 고려 중기에 이 탑을 세웠을 것으로 추측된다. 설성공원의 연풍정에 들려 살펴보기 좋은 유적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읍내리

서울 호암산성
관악산에 위치한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성곽으로 한우물, 석구상 등 문화재 및 관악산 둘레길 코스 중 하나인 전통사찰 호압사와 연계 관광 가능하다. 호암산성은 산마루를 둘러쌓은 통일신라시대의 테뫼식 산성으로 둘레는 1,250m이며, 그중 약 300m 구간에 성의 흔적이 남아있다. 한우물은 호암산 정상에 있는 길이 22m, 폭 12m의 연못으로 네 주변을 화강암으로 쌓았으며, 용보(龍洑)라는 별칭을 가지고 있다. 가뭄 때에는 기우제를 지내고 전시(戰時)에는 군용에 대비하였다 한다. 이 연못 모양의 우물이 만들어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보수를 위한 발굴 당시 확인된 바로는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연못이 현재의 연못 밑에 묻혀 있었으며, 그 위에 어긋나게 축석 한 연못이 다시 조선 초기에 만들어졌음이 밝혀졌다. 한우물의 조선시대 석축지는 동서 22m, 남북 12m, 깊이 1.2m의 규모로 그 아래의 통일신라의 석출지도 확인되었다. 다른 우물지에서는 ‘잉벌내력지내미(仍伐內力只內未)’라는 글이 있는 청동숟가락이 나왔다. 우물지 근처에서 개 모양의 동물상(석수상, 길이 1.7m, 폭 0.9m, 높이 1.0m)이 발견되었는데, 이 것은 조선시대 서울에 화재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세웠다는 설화와 관련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우물 근처에서 석구지(石拘池)라고 새겨진 돌이 발견되었는데, 아마도 이 연못이 석수상과 관련되어 석구지라고 불려진 것이라고 보인다.
서울특별시 금천구 시흥동
설성공원
설성공원은 음성읍 시내 중심부에 있어 접근성이 좋고 경관이 수려하며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약 4,950m²(1,500평)의 연못 중앙에 둥근 모양의 섬을 만들고 그 안에 있는 정자로 1934년 연풍정을 창건하였으며, 그 후 경호정으로 고쳐 부르고 있다. 이외에 음성군 향토민속자료전시관, 수영장, 게이트볼장, 여성회관, 야외음악당 등의 시설을 갖추고 있어, 군민 휴식시설로 각광을 받고 있는 음성의 명소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설성공원길 28
대구 팔거산성
대구 팔거산성이 위치한 함지산은 대구 분지의 북쪽 부분을 감싸며 동에서 서로 흐르는 금호강의 북안에 솟아 있어 산 정상에서는 남쪽으로 대구 분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산의 북서쪽으로는 구암동으로부터 다부~가산을 거쳐 영남 북부의 군위·의성(현 5번 국도), 북서부의 구미·상주( 현 25번 국도) 방면으로 연결된다. 이처럼 팔거산성은 구암동 일대는 물론 대구분지 전반을 조망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한다. 그리고 성 아래를 지나는 금호강을 따라 동쪽으로 경산·경주지역, 서쪽으로 낙동강 본류와 합류하는 다사 지역이 연결되는 통로를 관리할 수 있다. 더하여 북쪽으로는 영남 북부 지역과 곧바로 연결되는 길목의 시작점이 된다. 따라서 산성은 대구 분지 일원을 조망하면서 동시에 동쪽과 서쪽, 북쪽으로 연결되는 육로와 수운을 관리할 수 있는 요충지에 축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팔거산성은 5~6세기에 축조된 삼국시대 산정식 성곽이며, 성벽은 함지산의 자연지형을 따라 축조되었다. 1999년 지표조사를 통해 파악된 성벽의 전체 둘레는 약 1,136.8m, 성내 면적은 약 55,101.67㎡이다. 발굴 조사 결과 신라시대 산성에서 주로 나타나는 양식인 현문(縣門)식 구조, 곡성(曲城) 등이 확인됨에 따라 신라시대 축성양식의 보편성을 확인할 수 있는 한편, 완만한 경사의 성벽, 곡성과 성벽의 접합부 축조방식 등을 통해 해당 산성만의 독특한 축성 양식이 확인 가능하다는 점에서 가치가 뛰어나다. (출처 : 국가유산청)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동

운암지 수변공원
운암지 수변공원은 함지산 아래 운암지에 조성된 수변공원이다. 대구북구 8경의 제3경이며 대구 시민들이 즐겨찾는 공원으로 물과 산림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공간이다. 운암지는 대략 일제강점기 시기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함지산을 비롯하여 해발 고도 200~300m의 구릉성 산지로 둘러싸인 계곡에 조성되었고 인근 칠곡 들에 농업 용수를 공급하던 저수지였다. 이곳 수변공원은 대구 칠곡3지구에 대규모 택지개발 이후 쓸모가 없게 된 저수지를 자연 그대로 보전하여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어 조성되었다.
대구 북구 구암동 349

석조부도
경북대학교 박물관 야외에 대구 산격동 연화 운룡장장식 승탑과 대구 산격동 사자주악장식 승탑 2기의 석조부도가 있다. 두 석조부도 모두 대구의 일본인 사택에 있던 것을 1958년 현재의 위치인 경북대학교 야외 박물관으로 옮긴 것으로 원래 승탑이 세워진 터와 이 승탑의 주인공은 알 수 없는 상태이다. 대구 산격동 연화 운룡장식 승탑은 고려시대 팔각원당형부도의 특징이 잘 발휘된 걸작품으로 탑신, 옥개에 비해 기단부가 비대한 감이 있으나 안정되고 장중한 느낌을 준다. 지대석 위에 하대, 중대, 상대가 있으며 하대석과 중대석에서 고려시대의 특징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중대석은 8각으로 원에 가까운 표면에 용문이 조각되었는데 당시 장인의 예술 감각을 엿보게 한다. 하대석은 방형으로 각면에(6판씩 24판) 조각되어 있다. 8각의 탑신석각면에는 우주가 있고 4면에 사천왕입상이 조각되었다. 옥개석도 8각으로 상부에 우동이 뚜렷하고 경사가 급하다. 상륜부에는 연꽃이 조각된 보륜형의 돌이 얹혀 있다. 전체적인 높이는 274cm이며 지대석의 너비는 157cm이다. 대구 산격동 사자 주악장식 승탑은 8각의 평면을 기본으로 삼아 각 부분을 이루고 있으며, 3단으로 이루어진 기단 위에 탑신을 올리고 지붕돌을 얹은 형태이다. 네모진 바닥돌 위에 올려진 기단은 아래·가운데·윗받침돌로 나뉘는데, 아래받침돌 옆면에는 사자를 새겨 놓았고 윗면에는 구름을 입체적으로 조각하였다. 낮은 가운데 받침돌은 모서리를 죽이고 각 면마다 악기를 연주하는 모습을 새겼다. 윗받침돌은 가운데 띠를 돌리고 아래·윗면에 소박하면서도 큼직한 연꽃을 조각하였다. 사리를 모셔놓은 탑신은 낮은 편이며,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기고 앞·뒷면에는 자물쇠가 달린 문짝 모양을 나머지 면에는 사천왕상과 보살상을 조각하였다. 넓은 지붕돌은 밑면에 향로와 비천상을 아름답게 새겼으며, 처마 부분은 목조건축의 지붕양식을 따라 2중의 서까래를 촘촘히 본뜬 조각이 있다. 윗면에는 연꽃이 둘러져 있으며 그 위의 4면에는 불교의 낙원에 산다는 새인 가릉빈가를 조각한 노반(머리장식 받침)이 올려져 있다. 이 승탑은 지붕돌 일부가 깨지고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위아래의 비례가 잘 맞아 아름다운 작품이다. 각 부분의 조각이 웅장하고 뛰어나며 고려시대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대구광역시 북구 대학로 80
음성향교
조선 명종 15년(1560)에 세워진 음성향교는 고종 7년(1870)과 24년(1887)에 고쳤고, 후에 여러 번의 수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동재·서재·명륜당 등이 있다. 건물은 내삼문을 경계로 앞쪽에는 학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을 중심으로 배움의 공간을 두고 있다. 뒤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들의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이 있어, 향교의 일반적 배치형태인 전학후묘를 따르고 있다. 특히 동재·서재가 다른 곳과는 달리 명륜당의 뒤쪽에 있는 것이 특이한데, 이것은 도로공사로 인해 변형된 것으로 보인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중앙로 223

큰장길 침구류 명물거리
큰장길 침구류 명물거리는 서문시장 인근 70여 개 이불, 베개, 수예 제품 취급업체가 밀집된 거리이다. 이곳은 약 30년 전부터 침구류 도소매점이 하나씩 생겨 거리가 형성되었다. 또한 서문시장은 조선 중기부터 형성된 시장으로 전국 3대 장터 중 한 곳이었으며 지금도 그 명맥을 이어받아 대구 제일의 시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야시장이 개장하여 더 많은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하고 있는 시장이다. 대구의 침장 제조업체는 전국의 27%가량 (578개사)으로 OEM을 포함하면 전국에 유통되는 침구 제품의 50~60%가 대구에서 생산되고 있으며, 그 중심에 있는 큰장길 침구류 명물거리는 시민들에게 고품질의 침장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판매하고 있다. 또한 제품도 전국 각지로 활발히 공급한다. 서문시장과 대구근대화거리, 동성로 등 문화·쇼핑거리와도 밀접한 위치에 있어 편리하게 접근할 수 있는 곳이다.
대구광역시 서구 큰장로 35

용왕정
용왕정은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하여 1994년에 건립된 팔각형 정자로, 용왕산 근린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다. 이 정자는 조선 중기의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으며, 전통미를 간직하고 있다. 용왕산 정상은 예로부터 서울 전경을 감상하기 좋은 조망 명소로 알려져 있다. 정자에 오르면 성산대교와 월드컵분수를 비롯해 월드컵경기장, 북한산, 인왕산, 남산, 관악산, 서강대교, 63빌딩 등 서울 주요 지형과 건축물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뛰어난 전망으로 인해 서울 8경 중 하나로 선정된 명소이다.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중앙로9길 40 (목동)

용왕산근린공원
용왕산은 옛 지도상에 ‘엄지산’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엄지는 순수한 우리말인 ‘첫머리’ 또는 ‘으뜸’이라는 뜻으로 천호가 살 수 있는 들판의 들머리에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용왕산의 또 다른 이름으로는 박씨 성을 가진 사람이 죽어서 왕으로 환생하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는 전설에 따라 엄지산을 ‘용왕산’, ‘왕령산’, ‘왕재산’ 등의 ‘왕’ 자가 포함된 이름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전설의 시기를 추정해 본다면 600년 전의 지도에 엄지산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선시대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산의 형태가 한양을 등지고 돌아앉아 있다 하여 ‘역산’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용왕산에서는 매년 1월 1일 새벽 6시부터 새해 소망을 기원하는 해맞이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해가 떠오르기 전 용왕산 근린공원에서는 ‘소망기원문 쓰기’, ‘풍물패 길놀이’ 등 식전행사를 시작으로 양천구민의 화합과 지역발전을 염원하며 힘차게 북을 두드리는 ‘희망의 대북타고’,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며 다 함께 환호성을 지르는 ’해오름 함성’, 한 해의 소망을 담아 풍선을 띄워 올리는 ‘소망 풍선 날리기’ 등 새해 첫 아침을 여는 새로운 발전과 번영, 풍요로운을 기원하는 행사가 매년 열린다. 용왕산에는 1987년 목동배수지가 설치되어 배수지위는 체육공원시설이 만들어져 있다. 산 중턱에는 약수터가 있어 주민들의 산책길로 이용되고 있으며, 데크로 연결된 무장애 순환형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유아숲 체험장도 조성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다양한 체험프로그램과 유아숲 페스티벌 등 아이들 눈높이에 맞는 다채로운 교육 및 행사를 운영하고 있다. 또한, 서울 정도 600년을 기념하여 1994년에 건립한 용왕정이 있다. 용왕정에서 서울의 경치를 즐기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찾던 유서 깊은 조망명소로, 서울 8경에도 뽑혔다. 성산대교와 월드컵분수가 바로 앞에 내려다보이고, 좀 더 멀리로는 월드컵경기장, 북한산, 인왕산, 남산, 관악산, 서강대교, 63빌딩 등이 보인다.
서울특별시 양천구 목동

갈산공원
대체로 산세가 둥근 양천구의 다른 산들과는 달리 갈산은 동쪽 부분이 벼랑처럼 깎인 절경을 뽐낸다. 안양천의 오랜 침식작용으로 산 정상이 칼날처럼 변한 것으로 ‘칼산’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다가 ‘갈산’으로 순화되었다. 갈산 입구에는 어린이 교통공원이 들어서 있고, 중턱에는 중심광장과 산책로 등의 쉼터 그리고 정상에는 전망대가 있어 양천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갈산 정상에는 ‘갈산정’과 함께 그 옆으로 우리나라 최초의 ‘대삼각본점’이 설치되어 있다.
서울특별시 양천구 신정동 162-56

증평 남하리 석조보살입상
증평읍 남하리 마을 논밭 사이에 북쪽을 향하여 서 있는 불상으로, 작은 2구의 불상과 함께 주변에 흩어져 있던 것을 1949년 마을 뒷산에 성주사를 세운 윤월인 스님이 이 불상들을 모아 다시 세웠다가 한국전쟁 후 마을의 수호 부처로서 주민들이 보호하고 있다. 발 아랫부분이 땅에 묻혀 있는 이 불상은 머리에 높은 보관을 쓰고 왼손을 가슴 부분에 들어 연꽃 송이를 받치고 있는 보살상이다. 보관을 써서 머리 부분이 상당히 큰 편이고, 어깨가 좁으며 몸의 양감은 편평하여 전체적으로 길쭉한 사각형의 형태를 보인다. 미소 짓는 얼굴의 표정이 잘 조각되어 온화한 인상을 풍기고 있다. 입고 있는 옷은 가슴 부분이 넓게 벌어지게 표현되었고 아랫부분에서는 두 다리에 둥근 옷 주름이 늘어져 있다. 이 불상은 전체 높이가 350㎝의 거대한 크기로 고려 시대 중기 이후 지방에서 유행하는 보살상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남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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