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381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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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점마을
하동군 청암면 관점교를 건너면 바로 관점(冠店) 마을이다. 용소는 마을 앞 청암천에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용굴에 불을 때면 용소에서 연기가 났다고 하는데 이것은 용굴과 용소를 지하 통로를 통해서 내왕했다는 이야기다. 용소는 가뭄이 심해도 물이 줄지 않고 비가 많이 와서 큰 물이 져도 토사로 메워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깊이는 명주실 꾸리 3개가 다 들어간다고 하니 얼마나 깊었는지 짐작이 간다. 가뭄이 심할 때에는 마을 사람들이 이 용소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평촌에서 돌다리를 건너서 관점 마을로 향하는 둘레길은 지루함을 피할 수 있는 운치 있는 코스다. 개울을 건너기 위해 다리를 건너는 편리함을 마다하고 여러 모양의 돌을 의지하고 건너는 재미는 옛 시절의 향수를 느끼게 해 준다.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관점길 66

괴목마을
서당마을에서 우계저수지를 지나 만날 수 있는 마을이 괴목마을이다. 우계저수지에서 적량 쪽을 바라보면 갓논으로 불리는 다랭이 논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랭이논 너머로 하늘색과 주홍빛 슬레이트 지붕을 소박하게 이고 있는 집들이 옹기종기 들어앉은 곳이 괴목마을이다. 괴목마을 앞에는 마을 사람들과 생사고락을 같이하고 있는 괴목 나무가 서 있다. 옛날 마을을 기목정 또는 기먹징이라 불렀는데, 느티나무의 다른 이름인 ‘기목’과 정자나무를 뜻하는 ‘정(亭)’이 경상도식으로 ‘징’으로 발음된 것이다. 마을의 앞 들이 우계저수지 축조로 편입되어 마을은 우계저수지에 바짝 붙어 자리 잡게 되고, 마을 뒤로 들이 더 넓은 모양새를 하고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우계리
수촌교회(화성)
수촌교회는 장안면 수촌리 지역에서 3·1 운동을 주도한 교회로, 1905년 교인 김웅태의 주도하에 정청하의 집에서 교인 7명이 모여 예배를 본 것을 계기로 창건되었다. 1907년에 초가집 15칸을 매입하여 예배당을 만들었는데, 이 무렵 교인이 약 10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1919년 3·1 운동 당시 만세 사건을 진압하던 일본 경찰이 마을 전체를 방화하는 만행을 저질렀는데, 이때 교회도 모두 불에 탔다. 1922년 선교사 아펜젤러(Alice R. Appenzeller)와 감리사 노블(W. A. Noble)의 도움으로 초가집 8칸의 예배당을 건립하였고, 1932년 현재 자리로 이전하였다. 1974년에는 양식 기와로 지붕을 개량하였으나 퇴락이 심하여 1987년에 초가 형태로 복원하였다.
경기도 화성시 장안면 수촌큰말길 32

먹점마을
먹점마을은 읍사무소에서 서북쪽으로 약 10㎞의 거리의 구자산 중턱에 자리한 산골마을이다. 봄이면 하얀 매화꽃들로 별천지 세상이 된다. 먹점마을의 매화나무들은 광양처럼 대규모 농장의 위엄을 자랑하거나 관광객을 위해 잘 다듬어지지 않았기에 오히려 시골마을 사람들의 질박한 삶의 향취가 베어난다. 먹점마을 골짜기가 내려다 보이는 이 지점에서 둘레길은 마을을 들르지 않고 바로 먹점재와 미동고개로 이어진다. 먹점재에 오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강바람이다. 저 멀리 섬진강이 보인다. 임도를 따라 걷는 길이다. 등산로 표지판이 눈에 들어온다. 가파른 산길을 좋아한다면 구제봉 ~먹점 등산로를 따라 걸어도 된다. 지리산 둘레길의 맛은 인근의 등산로나 걷는 길을 찾아 걷기 계획을 세우면 자신만의 지리산 둘레길을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하동읍 매화골먹점길 186
소리산
소리산(479m)은 높이나 산세가 그리 높지는 않지만, 바위절벽과 기암괴석, 산을 중심으로 흐르는 맑은 석산계곡으로 인해 예부터 소금강이라 불릴 만큼 경치가 아름답다. 산속에 수리가 산다고 수리산으로 불리다 훗날 소리산으로 바뀌었다고 전해진다. 해발고도가 높지 않아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주말 등산 코스로 인기다. 어느 등산코스를 이용해도 하산지점에는 계곡을 만날 수 있어 시원하게 발을 담글 수 있다.
경기도 양평군 단월면 석산리

평촌마을
하동호에서 흘러나오는 물줄기 따라 청암면 체육공원을 옆에 두고 쭉 내려오면 면소재지인 평촌마을이 있다. 하동읍으로 나가는 버스가 다니는 길목이라 교통도 편리하다. 평촌을 창촌(倉村)이라고도 했다. 큰들(大坪)을 끼고 있어 창평이라는 말이 마을 풍경과 어울린다. 또한 청암지서 뒤 몬당에 당산이 있었기에 평촌을 당산몰이라 불렀다고도 한다. 평촌마을에는 편의시설이 있어 둘레길 걷기에 필요한 준비물을 구입하거나 식사를 할 수 있다. 마을의 자연경관을 둘러보며 가볍게 산책하기도 좋다.
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동매리

추화산성
추화산성은 경상남도 밀양시 주화산 산마루에 축조된 삼국시대의 퇴뫼식 산성으로, 밀양읍성으로부터 동쪽 지점에 있다. 화산성은 신라가 가야와 낙동강을 사이에 두고 대치하던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보이는 삼국시대 초기의 산성터로 추정된다. 성의 구조는 동, 서, 남에 문 터가 있고, 북쪽 계곡의 평지에는 우물, 연못 부속건물들이 있었던 것 같다. 성벽은 석축 부분이 많고, 토석혼축 부분은 적은 편이며, 축조수법이 경사면의 기단부는 내탁하고 상단부는 협축하는 순서를 취했다. 토석 혼축 부분은 기둥을 세우지 않고 양측에 석축을 쌓고, 그 속에 흙을 채워 다져 넣는 공법을 사용하였다. 성안에서 출토된 유물은 기와 조각, 토기 조각, 분청자기, 백자조각들이 발견되었는데, 추화산성은 처음에는 읍성으로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많으나, 읍성이 현재의 밀양시내에 쌓아지면서 산성으로서 기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추화산 정상에는 봉수대가 있는데 적의 침입이 있을 때에는 군사적 고지이면서, 주변의 주민과 군사들에게 적의 침입을 알리는 기능을 하였던 곳이었다.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

천진궁
천진궁(天眞宮)은 영남루 경내 북쪽에 위치한 건물로 우리나라 시조인 단군을 비롯해 8대 왕조의 위패가 모셔져 있는 성스러운 곳이다. 위패의 배열은 중앙에 단군 영정을 시작으로 좌측에는 부여, 고구려, 가야, 고려의 시조 위패와 우측으로는 신라, 백제, 발해, 조선 시대의 시조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음력 3월 15일 어천 대제와 10월 3일 개천 대제 일 년에 두 번 제사를 지낸다. 단군 영정을 봉안한 곳은 전국적으로 크게 25개소가 있지만, 8대 왕조 시조까지 봉안한 곳은 밀양의 천진궁이 유일하다. 그래서 이곳을 잘 아는 학자들은 천진궁을 두고 밀양 선비와 전국 유림의 국가관, 민족사관을 엿볼 수 있는 곳으로 평가하고 있다. 천진궁의 규모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의 기둥과 지붕을 연결하는 고유의 건축양식인 주심포식 건물로 대리석으로 기단을 쌓고 그 위에 높은기둥을 세워 웅장한 위용을 느끼게 한다. 건축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천진궁은 역사적인 아픔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당시 일제는 조선왕조의 정통성을 말살하기 위해 역대 시조의 위패를 땅에 묻고 감옥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이는 우리나라 민족의 최대 수난사로 기억되고 있으며 해방 이후 이를 복원하려는 지역민의 노력은 단지 옛 건물의 복원이 아닌 민족의 정통성 회복을 추구하고자 했던 밀양인의 민족정신을 의미 있게 잘 보여준다.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 (내일동)

추원재(김종직선생생가)
추원재(김종직선생생가)는 조선전기 성리학의 거두인 김종직의 생가터로 1389년 김종직의 부친인 김숙자 선생이 지었고 1810년 김종직을 따르던 선비들과 후손들이 합의하여 낡은 건물을 중수·개조해 그 이름을 추원재라 하고 당호를 전심당이라고 지었다. 추원재가 위치한 밀양 제대리는 김종직의 외가였고 그는 이곳에서 태어나 성장했고 일생을 마쳤다. 정원에는 김종직의 흉상이 세워져 있으며 팔각지붕과 7개의 계단이 인상적인 대문 안으로 들어서면 기둥 사이 하얀 벽과 단조로운 멋이 있는 지붕이 드러난다. 강직한 선비의 모습을 닮아 있는 이곳은 전심당이라는 당호로 불리고 있다. 전심당의 뜻은 ‘성리학의 전수자’라는 의미로 이는 김종직을 두고 하는 말이지만 ‘전심’은 동방의 성리학이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강호 김숙자에서 김종직, 김굉필, 정일두 등에게 전해졌다는 의미로 지어졌다. 뒷산에는 김종직의 묘소가 있다. 그의 묘소는 원래 자리에서 조금 아래로 내려온 것이라고 전해지는데 이는 묘역 정비 과정에서 본래 자리를 확인한 후 지난 2009년 5월 중창을 마친 후 기적비를 건립했다.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추원재길 58

퇴로고가마을
밀양 부북면 퇴로리에 위치한 퇴로리 고가 마을은 조선 시대에 건립된 여주 이 씨 종택을 비롯해 여러 채의 고택이 있어 문화재적 가치와 더불어 한적한 시골 마을의 전형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퇴로리 고가마을 골목을 걷다 보면 진흙을 발라 낮게 조성한 토담과 빛바랜 아청색의 기와가 흘러간 세월의 무게를 잘 느끼게 해주는 곳이다. 토담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어디든 걸어도 고요하면서 편안한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다. 특히 여주 이 씨 고가는 배우 강부자 주연의 영화 ‘오구’ 촬영지로도 많이 알려졌으며, 봄이면 마당에 심어놓은 나무들이 꽃을 피우고, 가을이면 감나무에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운치를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전통 문화관에서는 떡 만들기, 고구마 캐기, 치즈 만들기, 아기소 우유 주기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길 수 있으며, 저렴한 가격으로 고택에서의 숙박 체험까지 가능해 가족 여행객들에게 시골 여행의 참맛을 알려준다. 또한 이곳은 고택체험, 농촌체험, 밀양 치즈 스쿨 등 가족과 함께 할 수 있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어 아이들에게는 우리 문화재의 소중함을, 어른들에게는 어린 시절 시골집에서 경험했던 소소한 추억을 선사하고 있다. ※ 체험행사와 고가 펜션 숙박은 사전에 인터넷이나 전화 등을 통해 예약해야 하며, 선착순으로 이뤄진다.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퇴로로 233

밀양 퇴로리 이씨고가
밀양 퇴로리 이씨고가는 여주이씨 자유헌(1656~1716)파의 종가집으로 조선 후기 1890년(고종 27)에 자유헌 이만백의 7대손인 항재 이익구(1838~1912)가 퇴로에 들어오면서 건립하여 100여 년 동안 5대에 걸쳐 옛 그대로 잘 보존하고 있는 전통 가옥이다. 이 집은 기와를 얹은 토담으로 구획된 부지에 남향으로 지은 목조 기와집으로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정침과 중사랑, 별채로 구성되어 있다. 이 집은 기와를 얹은 토담으로 구획된 부지에 남향으로 지은 목조 기와집으로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정침과 중사랑, 별채로 구성되어 있다. 정침은 정면 7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청덕당’이라는 당호를 가지고 있다. 중사랑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집으로 아들인 성헌 이병희가 거쳐하면서 독서하던 곳으로 ‘성헌’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청덕당 서편에는 종가 사당이 자리 잡고 있고 별채는 청덕당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는데, 항재의 손자 후강 이재형(1891~1979)이 건립하였다. 안채와 사랑채, 동서익랑으로 구성되어 있다. 안채는 정면 7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집으로 ‘사현합’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사랑채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집으로 ‘쌍매당’이라는 당호를 가지고 있고 후강유서, 담재, 청덕고가 등의 현판이 걸려있다. 쌍매당 북측 담 밖의 천연정과 퇴로 서쪽 산기슭의 서고정사와 한서암 등도 모두 이 마을 여주이씨와 관련된 건물들이다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 퇴로2길 26-1

화월마을
평촌마을을 지나 삼화실로 향하는 길목에서 만날 수 있는 마을이 화월마을이다. 화월마을은 함박골(咸花)과 버드리(반월伴月)의 두 마을을 합하여 행정상으로 부르는 이름이다. 반월마을은 마을 일대에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리라 불리다 ‘반월’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마을 앞 청암천 냇가에 자생의 버드나무가 울창했다고 하였으나 논에 피해가 있다고 하여 오래전에 베었다고 한다. 마을 이름을 반월이라 한 것은 마을 뒷산이 반달처럼 생겼다고 하는데서 연유한 것이라고 한다. 평촌마을의 넓은 들을 걷다 보면 관점교를 건너기 전에 징검다리가 있다. 여러 모양의 돌들을 모아 만든 돌다리가 편안한 시멘트 다리보다 더 운치가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청학로 625

하존티마을
존티마을은 하존티마을과 상존티마을로 나뉜다. 하존티마을은 도로가에서 마을 전체를 조망할 수 있을 정도로 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다. 마을로 접어드는 길목에는 대숲이 크게 자리하고 있어 아름다움을 더한다. 하존티마을에서 금포정은 용심정을 지나 상존티마을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하존길 51

마산항
마산항은 지리적으로 천혜의 조건을 갖추었고 수출입 화물을 처리하는 항만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면서도 마산, 진해, 거제도 일대에서 잡히는 수산물의 집결지로 무학산과 팔룡산이 둘러싼 리아스식 해안의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한다. 바로 앞바다에는 돝섬에는 예술작품들이 많은데 배로 20분 거리에 수시 운항 중이라, 섬을 둘러보고 마산항과 도심을 조망하기도 좋다. 또한 마산항에서는 돝섬을 오가는 여객선뿐만 아니라, 마산항 일대를 조망할 수 있는 유람선도 운항하고 있다. 마산항 내의 부두공원에서는 매년 가을 가고파 국화축제를 하고 있어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 좋으며, 평소에는 시민들의 휴식 공간으로 애용된다. 마산항은 해가 진 후에는 야경으로도 유명하다. 마산항 내에서 멀리 도시의 불빛을 배경으로 바다에 떠 있는 대형 수출입선이 만들어 내는 야경도 물론 멋지지만, 마산항을 둘러싼 무학산 정상에 오르면 일대의 도심은 물론 마산항의 화려함과 멀리 마창대교까지 선명하게 빛나는 모습을 감상할 수 있어 사진작가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또한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조망하는 코스도 운행되어, 다양하게 야경을 즐길 수 있다. 또한 마산항 가까이에는 통술 거리와 복국 거리 등이 조성되어 있어 관광과 맛집 투어까지 한 번에 가능하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월포동 1-4
서림공원
원래는 느티나무, 밤나무 등으로 숲을 이루어 마을에서는 선두숲이란 명칭으로 관리하여 왔는데, 고목나무 등이 폭풍 또는 병해로 한두 그루씩 고사되어 현재 이 숲에는 서어나무 5주, 88서울올림픽을 맞아 남원군에서 올림픽숲 조성사업으로 심은 느티나무 40주가 있다. 주변에는 서림정과 석장승, 그리고 충혼탑 등이 있다. 현재 서림숲은 여원치에서 팔랑치로 부는 바람의 통로가 되어 운봉읍에서 가장 지세가 허한 곳이다 하여 석장승과 짐대가 숲과 함께 비보 및 액막이, 그리고 방제 등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서천리 서림숲에 세워진 갑오토비 사적비는 1894년 갑오동학혁명 당시 남원 동학군이 운봉으로 진출하려 하자, 일목(애꾸눈)장군 박봉양이 운봉의 민보군과 함양 등지에서 보내온 지원병과 합세하여 방아치와 관음치 전투에서 격퇴시켜 운봉을 지킨 공로로 문중에서 세운 사적비라고 한다. 본래 비의 위치는 운봉초등학교 교문 앞 민가에 있었으나 어느 땐가 현 위치에 옮겨 방치되고 있다가 1993년경 비석의 좌대를 새로 만들어 세웠다고 전하지만 정확한 건립연대는 비문이 훼손되어 해독할 수 없다. 서천리 서림숲에는 석장승 두 기가 양쪽에 남북으로 마주 보고 서 있다. 원래는 운봉이 배의 형국이라 배를 움직이는 짐대도 같이 있었으나 현재는 장승만이 남아 있다. 남쪽에는 남자를 상징하는 2.4m의 방어대장군이 있고, 북쪽에는 여자를 상징하는 2.1m의 진서대장군이 서 있다. 두 장승 모두 벙거지를 쓰고 있으며, 수염이 달렸으나 남자 장승은 귀가 없고, 여자 장승은 키가 작지만 수수한 노인의 모습으로 실제 사람의 형상과 가깝다. 또한 둘레길 운봉-인월구간 중 비전마을에서 서림공원으로 이어지는 5㎞의 제방길은 너른 운봉 들녘을 적시는 젖줄인 람천을 따라 걷는 길로 천연기념물인 수달과 원앙 외에 여러 종류의 동식물을 볼 수 있다. (출처 : 남원시 문화관광)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황산로 1103-18

노치마을
노치마을은 해발 500m의 고원지대에 있는 산간마을로 조선 초 경주 정(鄭)씨가 머물러 살고 이어 경주 이(李)씨가 들어와 살게 되어 지금의 마을이 형성되었다. 지리산 숲길 및 백두대간의 발원지 중간에 위치하고 있으며 오래전부터 마을 뒤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는 노치당산제를 현재까지 지내고 있다. 마을에서는 마을 이름을 ‘갈재’라고 부르는데 이는 산줄기의 높은 곳이 갈대로 덮인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노치마을은 백두대간이 관통하는 마을로 널리 알려져 있다. 지리산 주 능선이 노고단을 거쳐 이곳 노치마을에 닿고, 마을 뒤쪽에 있는 수정봉으로 올라서서 북으로 산줄기를 이으며 덕유산권과 닿게 된다. 또한 빗물이 서쪽으로 흐르면 섬진강이 되고 동쪽으로 흐르면 낙동강이 되는 마을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천면 노치길 71-2

상황마을
마을 주변의 3개 자연 마을 중 위쪽에 있어 웃황치라 하다가 한자로 바꾸어 상황(上黃)이라 하였다. 마을 뒤로는 삼봉산(三峰山) [1186.7m]이, 동쪽으로는 백운산(白雲山)[902.7m] 줄기인 등구재가 있다. 마을 뒤쪽의 등구재는 도로가 개설되기 전까지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으로 통하는 유일한 고갯길이었다. 이곳에서 오른쪽에 보이는 두루뭉술한 봉우리가 백운산이고, 그 왼쪽 아래로 이어지는 잘록이가 등구재인데, 왼쪽으로 오르며 이어지는 산줄기는 삼봉산으로 이어진다. 그리고 바로 이 산줄기가 전라북도와 경상남도를 경계 짓는데, 도 경계를 이루는 삼봉산과 백운산은 가히 지리산 전망대라고도 할 수 있을 정도로 주 능선이 잘 조망되는 곳이기도 하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산내면 황치길 156
군화마을
군화마을은 남원시 운봉읍 화수리에 위치한 마을이다. 화신리는 북한 김신조 부대의 대남 침투 사건 이후 독가촌(獨家村)을 한데 모아 화수리에 편입하였으며, 화신리는 화수리에 새로 생긴 마을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다. 1961년 대홍수 때 소멸한 화수리 이재민들의 가옥을 군인들이 주둔하면서 13 가구를 건립하였는데, 이주 후 마을 이름을 ‘군인들이 지은 화수 마을’이란 뜻으로 군화동(軍花洞)이라 부르게 되었다. 군화마을은 지리산 바래봉 자락에 자리 잡고 있어 자연 풍광이 아름답다. 지리산 자락에 있는 작은 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군화동길 48-1
내송마을
내송마을은 지리산 둘레길 주천-운봉 구간을 거닐며 만날 수 있는 마을 중 하나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600여 년 전 한양 조(趙)씨들이 자리를 잡기 시작하여, 이후 30여 호 마을을 이루면서 주위의 비옥한 농토와 산림을 토대로 부유한 마을로 발전하기에 이르렀다. 내송마을은 「난중잡록」의 저자 의병장 조경남 선생의 출신 마을이기도 하다. 「난중잡록」은 조선 전·후기를 관통하는 임진, 정유년의 왜란, 그리고 병자년의 호란 등과 관련한 정치, 외교, 풍속 등과 관련된 많은 기록을 담고 있어, 역사 문화적으로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이 마을 위 산자락 곳곳에는 선생과 관련된 많은 이야기가 지금도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천면 내송길 32-5
가장마을
가장마을은 노치마을 오른쪽에 있는 덕산저수지 동쪽의 구릉 지대와 경계로 접하고 있다. 노치마을의 동쪽부터 가장마을까지 이어지는 들판은 해발 500m 고지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만큼 너른 들녘이 이어진다. 또한 섬진강과 낙동강을 이루는 물줄기가 처음 이루는 곳이 광천인데 이 물길은 운봉읍을 지나면서는 ‘람천’이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이 더 많이 부르고 있다. 풍수지리에 의하면 하늘에서 내려온 선녀가 화장을 하는 형국이라 하여 가장리(佳粧里)라 불렀다 한다. 지금은 들녘에 농사짓는 움막 터를 뜻하는 농막 장(庄) 자를 써 가장리(佳庄里)로 쓰고 있다. 마을 사람들은 옥녀봉 아래에 옥녀가 베를 짜는 옥녀직금의 천하명당이 있다고 믿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운봉읍 가장길 4

지리산 황전마을
지리산 황전마을은 구례군 마산면 황전리에 있는 마을이다. 황전마을보다는 화엄사 입구 집단시설지구로 더 유명하다. 그래서 항상 사람들이 끊이지 않는 마을이기도 하다. 마을 내에는 민박촌을 포함한 각종 숙박시설과 식당들이 즐비하다. 또한, 마을 옆으로는 화엄사계곡의 지류인 황전 계곡이 흐르고 있어 여름철이면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히기에 좋다. 화엄사와의 연계 여행으로도 좋고, 어린이와 함께 반달곰 생태를 체험할 수 있는 국립공원 종 복원센터에 들러보기에도 좋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마산면 황전3길 11

하사마을
하사마을은 신라 흥덕왕 때부터 형성된 오래되고 큰 마을이다. 원래는 사도리로 불리던 것을 일제강점기 때 윗마을과 아랫마을을 구분해 상사리와 하사리가 되었다. 현재는 하사마을과 상사마을이 사도리를 구성하고 있다. 사도리란 이름을 글자 그대로 풀면 ‘모래 그림 마을’이다. 전설에 따르면 신라 말 도선국사가 이곳에서 머리를 식히고 있는데 어디선가 도사 한 분이 나타나 모래벌판에 그림을 그려 우리나라의 풍수에 대해 알려주었다고 한다. 하사저수지를 품고 넓은 들을 바라보는 마을 전경이 아름답다. 초록 들판 너머 멀리 보이는 섬진강은 마치 한 편의 그림을 보는듯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마산면 하사3길 6
난동마을
난동마을은 전남광주 구례군에 위치한 마을이다. 이곳에는 유명한 두 개의 당산이 있는데 조탑 옆에 서 있는 당산나무가 할아버지 당산나무라면, 난동마을의 할머니 당산나무는 마을 안쪽에 자리를 잡고 마을의 안녕을 지켜주고 있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초하루 당산제를 지내는데, 할아버지 나무가 있는 윗 당산과 할머니 나무가 있는 아랫 당산 두 곳에서 당산제를 거행한다. 지리산 생태숲이 있는 지초봉 아래에 자리하고 있으며, 당동마을처럼 산 중턱에 자리해 들판 내려보는 전망이 좋다. 지리산 둘레길은 마을의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간다. 그 길 끝에 마을의 역사만큼 오래 묵은 소나무 몇 그루가 어울려 자라고 있다. 솔숲 가운데는 제당을 꾸려놨는데, 정자도 있어 쉬어가기 좋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광의면 난동길 40

구만마을
서시천이 상류에서부터 9번째로 굽이치는 곳에 위치했다고 구만리라 했다고 한다. 마을 뒤로 구만 저수지가 만들어져 농업용수를 대고 있다. 최근 들어 구만 저수지에 수상 레저타운 시설이 들어왔다. 528,925㎡의 넓은 저수지가 주변 풍광과 어우러져 시원한 풍광을 연출한다. 서시천에는 매년 수천 마리의 철새들이 찾아온다. 비오리, 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큰고니 등이며 백로와 왜가리는 거의 매일 볼 수 있는 새이다. 서시천 둑길이 있는데 이 길 좌우로 군에서 벚나무와 원추리를 심었다. 봄에는 섬진강 벚꽃 축제가 벌어지고 원추리 꽃이 피는 7, 8월이 되면 꽃길 걷기가 유행이다. 구례군에서는 매년 원추리 꽃길 건강 걷기 행사를 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토지면 구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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