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380페이지
총 12,561개의 관광지 중 380페이지입니다.

켄싱턴 프렌치 가든
켄싱턴 프렌치 가든(Kensington Garden)은 2만 평 면적의 국내 최대 프랑스 콘셉트 정원이다. 프랑스 상트르주 앵드르에루아르에 위치한 ‘빌랑드리 자수정원’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해발 700m 오대산의 빼어난 풍광을 배경 삼아 다양한 식물이 분포하고 있으며, 오리엔탈 가든, 채소 가든, 셰프의 정원 등 10개 테마정원으로 나누어져 있어 산책하기 좋은 환경으로 가꾸어져 있다. 자수 정원은 시간에 따라 변하는 사랑의 감정을 네 가지 패턴으로 표현되어 있다. 사계절 만개하는 여러해살이 풀이 가득한 4계절 정원 플라워 가든과 건강한 식재료를 준비하는 셰프의 가든까지 눈이 즐거운 이색 정원은 물론이며, 온 가족과 연인이 함께 걷기 좋은 은행나무 길과 아이들이 즐겁게 뛰 놀 수 있는 대왕참나무 길, 도시에서 벗어나 조용히 사색하기 좋은 느티나무 길도 조성되어 있다. 게다가 평창 진부면에서 공수한 100% 천연 마사토로 만든 흙 길은 맨발로 산책하기에도 좋다.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진고개로 231
유유마을
우리나라에서 누에와 뽕나무가 가장 많은 곳이 부안이다. 부안을 둘러싼 자연환경 덕분에 뽕나무가 잘 자라고, 뽕잎의 영양도 풍부하다. 오디도 다른 곳에서 생산되는 오디와 달리 당도가 높고 품질 또한 우수하다. 유유마을은 우리나라에서 단일 규모로 가장 많은 뽕나무를 재배하고 있는 마을이면서 누에를 기른 지가 무려 150년에 이르는 전통적인 양잠마을이다. 그래서 유유마을은 누에 오디마을로 불린다. 대표적인 식품으로 오디를 이용한 오디즙, 주류로는 와인과 막걸리, 오디주를 개발해 수출하고 있고, 누엣가루, 누에동충하초, 뽕잎차와 뽕잎김치도 맛볼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변산면 참뽕로 434-20

어천마을
어천마을은 산청군 단성면과 산청읍의 경계에 있는 경호강변의 마을이다. 예전에 어리내라 하고 우천(愚川)으로 부르다가 어천(漁川)이 되었다. 피서지로도 꽤 알려진 어천계곡이 마을을 지나는데, 지금은 작은 마을 전체가 별장과 펜션으로 변신을 거듭해 예전의 오지마을 모습은 거의 사라진 셈이다. 마을 앞 경호강은 지금은 다소 탁해지고 낚시보다는 래프팅이 먼저 떠오르는 지역이지만, 예전에는 쏘가리나 꺽지가 많이 잡히는 낚시 명소였다고 한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호암로 1333

운리마을
운리마을은 탑동, 본동, 원정 등 3개 동네가 모여 이룬 마을이다. 수령이 600년이 넘는 당산 느티나무가 서 있어 멀리서도 한눈에 들어온다. 과거를 보러 가던 선비들이 쉬어가기도 하고, 국상을 당하면 당산나무 아래 냉수 한잔을 올리고 북향재배를 하며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당산나무 아래 계곡이 만나는 곳에는 용소가 있는데, 단성면 일대에 비가 오지 않을 때 기우제를 지냈던 곳이라고 한다. 운리마을은 단속사지로도 유명한데, 마을 사람 46인이 합심하여 서당을 짓고 중국 송나라 주희를 사모하며 학문을 닦았다. 중국 무이산의 무이구곡을 본떠 금계구곡이라 하고, 재실 이름을 운곡재라 하였으며 마을 이름을 운리라고 지었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호암로619번길 98

지막마을
지막은 ‘종이로 막을 쳤다’라는 뜻으로, 지막마을은 닥나무가 많아 닥종이를 만들던 마을이다. 지금은 주요 소득원이 밭농사이지만, 한때는 닥종이를 집마다 널어 장관을 이루었다고 전해진다. 종이를 만들어 국가에 바치던 특수지방행정단위를 ‘지막’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또한 백년초를 ‘지초’라고도 하는데, 지막마을은 지초가 지천으로 피어 향기가 마을을 가득 메우던 곳이기도 하다. 지초는 초여름에 피는 꽃으로 향이 짙고 효능이 남달라 산삼에 버금가는 약초였다고 알려진다. 마을 곁으로 지막계곡이 흘러 물놀이나 캠핑을 즐기러 오는 사람들도 있다.
경상남도 산청군 금서면 왕등재로 42

나본마을
나동(고래실마을)과 청계동을 합해 나본(螺本) 마을이라고 한다. 나동은 고둥이 많이 잡혀 붙은 이름으로 고래실이라고도 부른다. 예부터 나무꾼들이 마을을 오가며 쉬어가던 마을로 나무꾼들을 위한 정자나무가 많다. 나본마을의 범바위에는 전설이 있는데, 청암천 냇가에서 놀던 소년이 물을 차고 오르는 큰 뱀 한 마리를 보고 ‘뱀이 하늘로 올라간다!’ 하고 외치자 그 뱀이 순간 힘을 잃고 떨어져 범 형상의 바위로 변해버렸다고 한다. 범바위가 있는 산을 범바위등이라고 한다. 범을 닮았다고는 하나 집채만 한 크기만 거대할 뿐 형상은 평범하다.
경상남도 하동군 청암면 청학로 1257

오율마을
하동군 옥종면에 위치한 오율마을은 밤실, 여차골, 불당골, 시양골, 오대 등 여러 작은 동네들이 모여 이룬 마을을 일컫는 이름으로 옛 오대산 절터의 유적이 있는 마을이다. 닥나무가 많아 지금도 일부 마을에서 품질 좋은 한지를 생산하고 있다. 예부터 오율마을의 남산 산발치에 연못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덤불이 우거져 샘물이 솟고 있음에도 형체는 찾아볼 수 없다고 한다. 옛날 오대사가 망할 때 절의 보물들을 이 연못에 던져 넣고 갔다고 전해진다. 시양골에는 양봉 단지가 조성되어 있다.
경상남도 하동군 옥종면 오율길 5

금계마을
지리산 둘레길 인월-금계코스 종착지이자 금계-동강코스의 시작점인 마을로 강변과 산이 만나는 지점에 있다. 이 마을에는 지리산둘레길 함양센터가 있다. 금계란 황금닭이 알을 품은 형상의 명당으로 풍요와 행운의 상징이자 마을의 이름이기도 하다. 금계마을의 원래 이름은 ‘노디목’이었다. 노디는 징검다리라는 이 지방 사투리로 칠선계곡에 있는 마을사람들이 엄천강 징검다리(노디)를 건너는 물목마을이라 부른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산촌사람들의 정을 징검징검 날랐을 노디가 세월에 씻겨 나가고 지금은 그 위에 의탄교가 들어서 있다. “동구 마천 큰아기는 곶감 깎으러 다 나가고”라는 노랫말처럼 가을이면 감을 깎아 매달아 말리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유명한 휴양 명소인 지리산 칠선계곡이 있고 고사리, 곶감 등을 주요 작물로 재배한다. 지리산 둘레길 안내센터가 있어 민박 사업과 연계하여 농가 소득을 창출하기도 한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금계길 1

운서마을
휴천면에서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이 가장 좁은 마을로, 민가가 밀집되어 있기보다 드문드문 서있다. 식용식물이 자생하기로 유명한 곳으로 품질 좋은 산채류가 자라는 곳이다. 인근 남호리 절터 마을과 동호마을에서 점필재 김종직 선생이 함양 군수로 부임한 뒤, 백성들의 차 공출에 대한 폐해를 줄이기 위해 차나무를 재배했다는 기록이 전해지며 그것을 기념한다는 사적비가 마을 앞에 서 있다. 1472년 지리산을 탐방하고 쓴 김종직의 유두류록에 따르면 '한 여인이 바위 사이에 돌을 쌓고 들어가 도를 닦다 하늘로 올라갔다'라는 독녀암을 지금의 함양 독바위로 보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휴천면 운서길 113

의중마을
의탄마을을 지나 고갯길을 넘으면 낮은 주택들과 소박한 골목이 여기저기 뻗은 의중마을이 나타난다. 5월이면 옻나무가 푸르른 마을로 옻칠 전통을 이어오는 작업장에서 생칠 채취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옻나무에 흠을 내어 진액을 받아내는 것을 생칠, 옻나무를 잘라다 구워 진액을 받아내는 것을 화칠이라고 한다. 약이 귀하던 시절 이 마을 일대에서는 땅속에는 금, 땅 위에는 옻이 있다고 할 정도로 의중마을의 화칠로 받아낸 옻나무 진액을 받아다 보약으로 마셨다고 한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의중길 38-2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옴뷔
자연명상마을 옴뷔는 강원 평창군 진부면에 위치한 곳으로 숙박시설과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숙박은 싱글룸, 트윈룸,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고 모든 숙소에는 편백나무의 명상공간이 있다. 객실 내에는 디지털 디톡스라고 하여 TV, 인터넷, 냉장고가 없으니 참고하면 된다. 이곳의 대표 체험 프로그램으로 요가와 명상이 있다. 호흡과 몸의 감각을 있는 그대로 알아차림으로써 내면의 성찰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무료로 이용할 수 있고 프로그램과 시간은 변동될 수 있다. 또한 외부에는 산책을 할 수 있는 정원과 숲길이 조성되어 있다. 평온한 힐링 여행을 원한다면 이곳을 추천한다.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3길 2

밀양 만어산 암괴류
만어사 앞 너덜겅에 지천으로 깔려있는 물고기 형상의 돌들이 널려 있어 장관을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밀양 신비로 분류된 경석이다. 크고 작은 반석들은 모두 경쇠소리가 나며, 이는 동해의 물고기와 용이 돌로 변한 것이라 전하고 있다. 한반도 빙하기가 끝난 후 많은 비가 내려 이곳의 암석들이 양파가 벗겨지듯 침식·풍화되며 생성된 암괴류로, 700m 이상 길게 펼쳐지며 독특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보이는 등 학술적, 경관적 가치가 크다. 견고한 요새처럼 만어사 일대를 둘러싸고 있다. 바위의 크기는 각각 다르지만, 색깔은 검거나 회색 등으로 동일하고, 손에 쥘 수 있는 돌멩이로 두드린 자국을 때리면 마치 길고 긴 여운을 남기는 듯한 맑은 종소리를 들을 수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 삼랑진읍 만어로 776

밀양관아 (밀양관아지)
관아는 지방의 수령이 공무를 처리하던 곳이다. 『밀주구지(密州舊誌)』에 밀양의 관아에 대하여 “아사내외 동서헌별실백여간임진왜란탕진무여 만력신해부사원유남중창(衙舍內外 東西軒別室百餘間壬辰倭亂蕩盡無餘 萬曆辛亥府使元裕男重創)”이라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밀양읍성이 축조될 당시에 관아도 백여 칸으로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본래 있던 건물은 선조 25년(1592년) 4월 임진왜란으로 전부 불타버렸는데, 이후 선조 32년(1599년)에 당시 부사 이영(李英)이 영남루 경내에 우선 초옥(草屋)을 세워 집무를 하다가 광해군 3년(1611년)에 원유남(元裕男)부사가 부임하여 원래 자리에 관아를 재건하였다. 관아의 중심 건물인 동헌(東軒)은 부사가 행정을 처리하던 곳으로 근민헌(近民軒)이라 불렀고, 동헌의 부속건물이라 할 수 있는 서헌(西軒)과 별실 등이 있었지만 자세한 용도는 알 수가 없다. 다만『밀주징신록(密州徵信錄)』등에는 내동헌(內東軒)과 외서헌(外西軒) 건물이 별도로 있고, 내동헌은 부사 부인이 거처하던 곳이라 적혀있는 점으로 비추어 볼 때, 부사의 내실(內室:北別室), 책방(冊房:梅竹堂), 주방(廚房), 창고 등으로 활용이 되었던 것 같다. 1611년 중건 후 300여 년간 관청으로 사용되어 오던 관아는 조선후기에 동헌, 정청, 매죽당, 북별실 내삼문 이외에도 연훈당(延薰堂), 전월당(餞月堂), 신당(新堂) 등 부속 건물들이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정확한 위치나 규모를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 고종 32년(1895년)에 지방관제 개편에 따라 군청으로 명칭이 바뀌었다가 1927년도에 삼문동으로 밀양군청을 신축하여 옮겨 가게 되자 본래의 용도가 폐지되었고, 구밀양읍사무소, 구밀양시청, 구내일동사무소의 청사 등으로 이용되다가 2010년 4월 관아를 복원하였다.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48 (내일동)

밀양교동 손씨고가
경상남도 밀양시 교동에 위치한 밀양향교 입구에는 밀성 손 씨의 고택들이 모여 있는데, 열두 대문 집, 밀성 손 씨 종택, 손병구 가옥, 손병순 가옥 등 1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전통한옥과 근대 한옥들이다. 그중 가장 오래되고 규모가 큰 밀양 교동 손 씨 고가는 조선 숙종 때 학자인 손성증이 건축했으며, 3,300㎡(1천 평) 부지에 지어진 99칸 규모의 전통 한옥으로 30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한다. 일명 ‘만석꾼 집’, ‘열두 대문 집’으로 불리는 이곳은 한옥의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어 건축학적 가치가 뛰어난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손 씨 고가에서 운영하는 ‘열두 대문’은 밀양에서 유명한 전통 한정식 전문점으로,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던 손중배 씨가 모친 강정희 여사의 손맛을 이어나가기 위해 만들었다. 당시 손 씨고 가의 자랑인 열두 대문에 착안한 이름을 짓고 현재까지도 음식점을 운영해나가고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 밀양향교3길 7
금시당
밀양강변의 아름다운 풍광 속 아름드리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는 금시당은 자연 그대로의 순수함과 아름다움 그리고 유구한 역사까지 두루 갖춘 곳이다. 1996년 경상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됐으며, 1566년 조선 중기 문신이었던 이광진 선생의 별업으로 세워진 곳이다. 현재 금시당은 그의 후손인 여주 이 씨 종중에서 소유·관리하고 있으며, 선생의 사후, 아들 이경홍 선생이 선친의 뜻을 이어받아 후진을 양성하는 강학소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금시당 정원은 조용하고 절제된 운치와 여백의 미가 느껴지는 곳이며 정원 한 곳을 차지하고 있는 460여 년 된 은행나무는 말문을 막히게 할 정도로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특히 이 은행나무는 이광진 선생이 직접 심었다고 전해지는 것으로, 아직도 여름이면 무성한 푸른 잎을 자랑하고, 가을이면 노랗게 물든 잎을 자랑한다.
경상남도 밀양시 활성로 24-183

박시춘옛집
박시춘 옛집은 영남루 후문 바로 옆에 위치한 명소로, 대중음악 작곡가 박시춘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입구에는 애수의 소야곡 악보를 새긴 돌탑과 박시춘 선생의 흉상이 세워져 있으며, 돌탑에서는 끊임없이 선생이 만든 음악이 흘러나오고 있다. 진흙과 볏짚 등으로 지어진 초가집엔, 방 하나와 부뚜막이 있을 뿐이지만, 과거 이러한 형태의 집에서 살았던 기억이 남아 있는 여행객들에겐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박시춘은 1913년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났으며 약 3천여 곡의 노래와 악상을 남기면서 한국 가요의 뿌리이자 기둥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인물이다.
경상남도 밀양시 중앙로 324

사명대사 유적지
밀양출신인 사명대사의 호국정신과 애민애족의 숭고한 얼을 기리기 위해 지난 1999~2006년까지 부지면적 49,146㎡에 사명대사 동상과 사명대사 기념관, 추모공원, 기념비 등을 조성하여 역사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유적지로는 응규마당, 유정마당, 사명마당, 추모광장, 송운마당, 종봉마당, 야생화원, 외삼문, 선친묘로 구성되어 있다. 이 외에도 사명대사와 관련된 역사 이야기를 담아낸 기념관, 아이들이 뛰어놀기 좋은 연꽃타워 놀이터도 있다. 기념관 뒤편으로는 사명대사 동상이 세워져 있다. 동상 앞에는 향을 태울 수 있도록 제단이 조성되어 있으며 제단에 새겨진 시를 통해 당시 풍전등화였던 나라를 구할 생각에만 젖어 있던 사명대사의 절절한 마음을 읽을 수 있다. 특히 분수대와 조형물, 포토존, 사명대사의 일대기를 그린 벽화 등이 잘 배치된 상징광장은 찾는 이들이 많은 곳이다. 화는 의병을 일으켜 전쟁에서 승리하고 일본에 사신으로 건너가 협상을 맺고 온 그의 활약상을 잘 담아내고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 무안면 사명대사생가로 681

보구정사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사찰이다. 보구정사란 부처님의 말씀과 법을 영원히 지키고 보호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무엇보다 보구정사는 7080 콘서트를 겸한 연빛 축제가 열리는 사찰로 유명하다. 7080년대 인기곡을 산사에 울리는 통기타 소리와 함께 즐길 수 있다. 빛의 축제인 루미나리에게 함께 열려 용인의 야경 명소로 사랑받는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동백중앙로54번길 50 (중동)

밀양읍성
밀양읍성은 조선 성종 대에 왜적 방어와 수비 강화를 위하여 읍성을 축조하고 관아 건물을 세웠다. 이어 선조 대에는 못을 파서 치수하는 등 성곽 일부를 보수하였다.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밀양부」에 의하면 장군정(將軍井)이라는 우물이 객사의 동북쪽에 있으며, 연꽃을 심은 못이 응향문 밖에 있다고 하였다. 임진왜란으로 읍성이 폐허가 된 후 성벽의 재건과 건물의 복구를 하면서 구조가 변경되었고, 조선 후기에 경부선 철도가 부설되면서 사대문과 성벽이 훼철되었다. 밀양읍성은 현재 읍성의 동문지(東門址)에서 밀양 영남루 방향까지 ㄱ자 형태로 일부 복원되어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 영남루1길 16-11

벽계구곡
통방산(650m) 삼태골에서 발원하여 노문리와 수입리를 거쳐 북한강으로 흘러드는 계곡이다. 가마소를 비롯해 병풍소·박쥐소 등 깊은 소[沼]와 작은 폭포들이 이어져 노문 8경의 하나를 이룬다. 폭이 넓고 수심이 얕은 데다가 곳곳에 천연 수영장이 많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피서지로 적합하다. 계곡 오솔길을 따라가면 돌기둥 일주암이 나오고 그 아래에 수심이 깊은 자라 소가 있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수입리 381
양평상자포리마애여래입상
파사성 서쪽 능선의 남쪽 경사면의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이다. 왼쪽 눈과 콧망울 아래쪽, 입술 등 군데군데 표면이 떨어져 나간 곳이 있다. 머리 오른쪽이나 왼쪽 어깨에는 잘못된 선을 수정한 곳이 보여 기량이 떨어지는 지방 장인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두광(頭光 ; 붓다의 정수리에서 나오는 성스러운 빛을 형상화한 것)은 이중의 동심원으로 지나치게 크고, 대좌(臺座 ; 불교존상을 봉안하여 올려놓는 받침대)는 내부를 거의 직선으로 표현하여 연꽃잎으로 알아볼 수 없을 지경이다. 두 발은 법의 속에 감춰져 드러나지 않는다. 얼굴에 눈·코·입이 큼직하게 표현되었고, 귀는 어깨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왼쪽 어깨를 감싸는 식으로 법의를 둘러 대좌에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경기도에서는 거의 보이지 않는 옛 방식의 착용법을 보여준다. 오른손을 배에 대고, 왼손은 바깥쪽으로 벌리면서 내리고 있으나 마멸이 심하여 손의 형태를 알아보기 어렵다. 신라에서 유행한 옛 방식의 대의 착의법을 보이지만 방형의 큰 얼굴에 긴장이 빠지고 탄력이 줄어든 새김, 정교하지 못한 옷주름이나 세부 표현 등에서 고려 전기의 지방화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특히 넓은 육계와 양쪽 귀를 따라 새긴 윤곽선 및 네모난 얼굴에 길고 큰 눈, 콧망울이 둥근 코 등의 표현은 형식화가 진행되고 기법이 떨어지기는 하나 안성 석남사 마애여래입상에서 이천 소고리 마애여래좌상으로 이어지는 경기도 마애불의 지방화된 양식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기도 양평군 개군면 상자포리 산36-1

노산사지
노산사지는 주자, 송시열, 화서 이항로 세 분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이항로 선생이 생전에 주자와 송시열의 영정을 그려 모시고, 항상 경모 하던 뜻을 받들어 주자를 주벽으로 하고 송시열과 화서를 동서로 모셨다. 원래 330m² (100여 평)에 이르던 사당이 6.25 전쟁 때 불타 없어졌다. 그 후, 사림들이 화서 선생을 추모하고 그 도학 정신을 계승하고자 1950년 현 위치에 사당을 짓고 매년 9월 15일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화서1로 241

명달리계곡
명달리는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에 자리 잡은 두메산골마을의 지명이다. 이 마을은 경기도의 오지로 꼽힐 정도로 개발의 발길이 닿지 않은 곳이다. 현재도 손가락으로 꼽을 수 있을 만큼의 사람들만 이곳을 지키고 있다. 삼태봉 기슭의 명달리 계곡이 때 묻지 않은 태고의 자연 생태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이유다. 사람들의 발길이 많지 않았던 이유로 이 계곡에는 각양각색의 야생화가 아직도 풍부하게 남아있다.
경기도 양평군 서종면 명달리

동촌마을
적량면의 동리(東里)와 서리(西里)의 7개 마을을 합하여 삼화실이라고 하는데, 동촌마을은 존티재에서 넘어와 삼화실의 첫 관문 역할을 하고 있다. 존티재를 넘으면 들녘을 가득 채워놓은 비닐하우스를 만난다. 그 안에는 동촌마을의 효자 농작물인 부추와 취나물이 자란다. 존티재를 올라가는 골목에는 대나무들이 무성하게 자라서 대숲을 이루고 있다. 바람이 부는 날 대나무들에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대숲을 지나면 솔숲에 향기를 맛볼 수가 있고 정상에는 부부목장승이 지키고 있다. 하동군에서 세운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이다. 존티재 정상에 서면 아래로는 멀리 삼화실이 보인다.
경상남도 하동군 적량면 동촌길 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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