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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35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35페이지입니다.

청량사(봉화)
사찰경상북도

청량사(봉화)

청량산도립공원 내에 자리한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년)에 원효대사가 세운 사찰이다. 창건당시 승당등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던 대사찰이었으며, 자연경관이 수려한 청량산에는 신라의 고찰인 연대와 망선암 등 크고 작은 암자가 있어서 당시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기도 했다. 청량사에는 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인 청량사 유리보전이 보존되어 있다. 유리보전은 약사여래를 모시는 법당으로 약사전이라고도 한다. 청량사가 내청량이라면 응진전은 외청량이다. 응진전은 원효대사가 머물렀던 청량사의 암자로 663년에 세워진 곳으로 청량산에서 가장 경관이 뛰어난 곳에 든다.

경상북도 봉화군 명호면 청량산길 199-152

표충사(밀양)
사찰경상남도

표충사(밀양)

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한 표충사는 임진왜란 때 공을 세운 사명대사(四溟大師)의 충혼을 기리기 위하여 국가에서 명명한 절이다. 1715년(숙종 41)에 중건한 사실이 있으나 1926년에 응진전(應眞殿)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화재로 소실된 것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주요 문화유산 및 건물로는 국보인 청동 함은향완(靑銅含銀香)을 비롯하여 보물 삼층석탑이 있으며 석등(石燈), 표충서원(表忠書院), 대광전(大光殿) 등의 지방문화유산과 25동의 건물, 사명대사의 유물 300여 점이 보존되어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 단장면 표충로 1338

해인사(합천)
사찰경상남도

해인사(합천)

해인사는 신라 애장왕 3년 순응과 이정 두 스님이 창건한 우리나라 3대 사찰 중 하나이다. 화엄경의 '해인삼매'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으며, 화엄사상을 널리 전파하기 위해 세워진 화엄십찰 중 하나이다. 고려 태조는 희랑대사의 도움에 대한 보답으로 이곳을 국찰로 삼고 전지 500결을 하사했다. 한편 해인사가 삼보사찰 중 법보종찰로 불리는 이유는 세계기록유산인 고려대장경판을 대장경판전에 봉안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경내에는 대장경판전, 대적광전, 명부전 등 다양한 전각들이 자리하고 있다. 부속 암자로는 원당암, 홍제암, 용탑선원, 고운암, 간월암, 청량사 등이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호국사(진주)
역사관광경상남도

호국사(진주)

진주성 내에 있는 호국사는 고려 시대에 창건되어 내성사라 하였다. 고려 말기에 왜구를 막기 위해 진주성을 고쳐 쌓고, 승병을 기르기 위해 창건된 것으로 생각되는 이 절은 임진왜란 때는 승군의 근거지가 되었다. 제2차 진주성 싸움에서 성과 함께 운명을 같이한 승병들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대에 호국사란 이름으로 재건하였다고 전한다. 최근에 진주성을 정화하면서 일주문 자리가 발견되어 새로 세웠으며, 사찰의 건물은 모두 근년에 새로 이룩된 것이다. 호국사 인근에는 진주음악분수대, 진주성 의암, 의기사 등 많은 관광지가 있는 지역이다.

경상남도 진주시 남강로 626-71

성주사(창원)
역사관광경상남도

성주사(창원)

성주사는 신라 42대 흥덕왕 2년(827년)에 창건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2006년 신축된 지장전으로 지장보살을 이운하면서 발견된 복장물 속에 숙종 7년(1681년)에 지장보살과 도명존자, 무독귀왕, 시왕 등 여러 권속을 시주한 시주자 명단과 함께 불모산 웅신사라는 절 이름을 사용하였음을 발견하였다. 조선시대의 지도에서도 웅신사로 표시되어 있다. 성주사는 대웅전, 영산전, 삼신각, 설선당, 안심료 등의 당우와 삼층석탑, 관음보살입상, 부도군 등의 문화유산 있고 지방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대웅전은 조선 숙종 7년(1681년)에 중건한 맞배지붕으로 전면 포작을 화려하게 조각하였으며 대웅전 내부에는 화려하고 규모가 큰 닫집을 시설하여 법당 내부를 장엄하게 꾸민 조선 후기 건축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곰절길 191

보경사
역사관광경상북도

보경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 보경사는 602년(신라 진평왕 24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대덕지명법사가 603년(진평왕 25년)에 창건한 천년고찰이다. 지명은 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있을 때 어떤 도인으로부터 받은 팔면보경(八面寶鏡)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나라의 침략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수 있으리라고 하였다. 왕이 기뻐하며 그와 함께 동해안 북쪽 해안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해아현(海阿縣) 내연산 아래 있는 큰 못 속에 팔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金堂)을 건립한 뒤 보경사라 하였다. 723년(성덕왕 22)에는 각인(覺仁)과 문원(文遠)이 “절이 있으니 탑이 없을 수 없다.”하고 시주를 얻어 금당 앞에 오층석탑을 조성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비로자나불과 문수보살 · 보현보살을 모신 대적광전,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사자를 탄 문수와 코끼리를 탄 보현보살, 16나한 등을 배열한 영산전, 석가모니의 팔상시현(八相示顯)을 나타낸 팔상전이 중심 당우로 자리 잡고 있다. 문화유산으로는 보물 8점과 경북도문화유산 2점, 1974년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탱자나무가 있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송라면 보경로 523

다솔사(경남)
역사관광경상남도

다솔사(경남)

다솔사는 신라 지증왕 때 범승 연기조사가 창건한 역사 깊은 고찰로,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는데 그로부터 10년이 지난 후인 숙종 12년(1686)에 승려들이 힘을 모아 10년 세월에 걸쳐 중창불사로 크게 중흥했다. 그러나 62년이 지난 후인 영조 24년(1748)에 큰 불로 말미암아 불행히도 큰 재앙을 겪었으며 같은 왕 34년(1758)에 여러 스님이 또 합심하여 명부전과 대양루 그리고 사왕문을 중건했다. 그런데 1914년 12월에 또 화재가 일어나 모든 전각이 불탔으나 다행히도 대양루는 소실되지 않았으며 그 이듬해부터 3년간 중건 끝에 현존하는 것이 이 건물이다.

경상남도 사천시 곤명면 다솔사길 417

대원사(산청)
역사관광경상남도

대원사(산청)

지리산의 천왕봉 동쪽 아래에 신라 제 24대 진흥왕 9년(548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하여 평원사라고 했다. 그 뒤 1 천여 년 동안 폐쇄되었던 것을 조선조 숙종 11년에 운권선사가 문도들을 데려와 평원사의 옛 절에 사찰을 건립, 대원암이라 개창하고 선불간경도량을 개설하여 영남의 강당이 되었다. 조선조 고종 27년에 혜흔선사의 암자가 무너져 크게 증건하였다. 서쪽에는 조사영당을 보수, 동쪽에는 방장실과 강당을 건립하여 대원사라 개칭하고 큰스님을 초청하여 설교를 하니 전국위 수행승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1914년 1월 12일 밤에 다시 불로 절이 모두 타버린 것을 여러 스님들이 다시 중창하여 1917년 전(殿), 누(樓), 당(當), 각(閣), 요사채 등 12동 184칸의 건물을 지었다. 여순반란사건과 한국전쟁 등으로 폐허가 되어 방치되다가 1955년 9월에 비구니 법일(法一)화상이 주지로 임명되어 1986년까지 대웅전, 사리전, 천광전, 원통보전, 봉상루, 범종각, 명부전을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절 부근에는 옛적 선비들이 수학했다는 거연정(居然亭), 군자정(君子亭)이 있다. 또한 대원사입구 주차장에서 대원사까지 약2㎞에 이르는 대원사계곡은 산이 높고 물이 맑을 뿐 아니라 바위틈 사이로 뿜어내는 물과 괴암은 절경이다. 용이 100년간 살다가 승천했다는 용소, 가락국 마지막 구형왕이 이곳으로 와서 소와 말의 먹이를 먹였다고 하는 소막골 등이 위치하고 있다.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원사길 455

석남사(울산)
사찰울산광역시

석남사(울산)

석남사는 가지산 동쪽 기슭 울산 울주군 상북면 덕현리에 위치한 절로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의 말사이다. 석남사란 이름은 가지산을 석면산이라고 하는데 이 산의 남쪽에 있다 하여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헌덕왕(신라 제41대, 서기 809-826)에 한국에 최초로 선을 도입한 도의국사가 일찍이 영산 명지를 찾다가 가지산의 법운지를 발견하고 터를 정한 뒤 신라의 호국을 염원기도하기 위해 창건했다. 창건 이후 여러 차례 중건중수를 거듭하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으나 그 후 1674년 (현종 15년) 언양현감 강옹의 시주로 탁영, 자운, 의철, 태주가 중창하였고 진혜, 쌍원, 익의, 성진이 단청하였으며 동시에 종과 북 등의 불구를 마련하였다. 이어 정우, 각일, 석맹 등이 극락전, 청풍당, 청운당, 청화당, 향각을 증축하였고 희철 선사가 명부전을 세웠다. 그 후 오랜 세월이 흐르면서 황폐해졌다가 1912년 우운스님에 의하여 다시 중수된 바 있으나 한국전란으로 폐허가 되어 그나마 남아있던 신라고찰의 모습이 모조리 파괴되어 버렸다. 이렇게 폐허가 된 것을 1957년 비구니 인홍스님이 주지로 부임하면서 먼저 대웅전, 극락전, 그 밖의 부속시설을 중수중창을 하고 다음에 종각, 침계루, 심검당 등을 신축하여 사찰의 면모를 일신케 하였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대웅전, 극락전, 강선당, 조사전, 심검당 등 30여 동이 있으며 순조 3년에 세운 대웅전과 1791년(정조 15년)에 세운 극락전이 있다. 이 외에도 문화유산으로 도의국사 사리탑으로 전해지는 보물 제369호 석남사 부도와 경상남도 유형문화유산 제22호인 삼층석탑, 조선 초기의 엄나무구유, 돌구유 등이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상북면 석남로 557

역사관광경상남도

칠불사(하동)

지리산 반야봉 해발 약 800m 고지에 자리 잡은 칠불사는 삼국 시대 초기 김해 지방을 중심으로 낙동강 유역에 있었던 가락국의 태조이자 오늘날 김해 김 씨의 시조가 되는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이곳에 와서 수도를 한 후 모두 성불하였다고 해서 칠불사라 불리고 있다. 가야 불교의 중심 사찰로 성장한 칠불사는 1,100여 년 전 신라 효공왕 때 한 번 불을 때면 온기가 100일은 간다는 아자방(亞字房)을 지음으로써 더욱 유명해졌으나 전란으로 소실된 것을 1978년 제월당 통광 대선사가 다시 지었다.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범왕길 528

통도사(양산)
사찰경상남도

통도사(양산)

우리나라 3대 사찰의 하나인 통도사는 부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는 불보사찰이다. 사찰의 기록에 따르면 통도사라 한 것은, 사찰이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가 설법하던 인도 영취산의 모습과 통하므로 통도사라 이름했고 또 승려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모두 금강계단을 통과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했으며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일체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에서 통도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의 기록에 의하며 신라의 자장스님이 당나라에서 불법을 배우고 돌아와 신라의 대국통(大國統)이 되어 왕명에 따라 통도사를 창건하였고 승려의 규범을 관장, 법식을 가르치는 등 불법을 널리 전하였다고 하며 부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금강계단을 쌓아 승려가 되고자 원하는 많은 사람들을 득도하게 하였다고 전해진다. 건물들은 임진왜란 때 소실된 것을 두 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는데 대광명전을 제외하고는 모두 새로 지은 건물들이다. 통도사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안치하고 있어 대웅전에 불상을 모시지 않고 있으며, 대웅전과 금강계단 등은 국보로 지정되어 있고 보물로 지정된 청동은입사향완, 통도사 봉발탑 등 26점이 통도사내 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통도사 템플스테이는 큰절의 규모에 맞는 규모 있는 템플스테이가 진행된다. 스님들께서 직접 알려주시는 사찰예절을 시작으로 통도사 봉사단체 적멸도량회에서 서비스하는 통도사문화재 해설까지 짧은 시간이지만 핵심적으로 알아야 할 사찰에 대한 지식을 알려준다. 해가 지면 낮 시간 동안 만들었던 연꽃등을 들고 부처님의 사리와 가사가 모셔져 있는 보궁에 들어가 사리탑을 마주 보며 명상에 잠긴다. 오직 이 경험만을 위하여 템플스테이에 참여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보궁명상은 통도사 템플스테이의 핵심 프로그램이다.

경상남도 양산시 하북면 통도사로 108

장육사
역사관광경상북도

장육사

운서산에 자리한 장육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 말사이다. 고려말 공민왕 때 나옹선사가 1355년에 창건하고 참선하다가 입적한 곳으로, 입적 뒤에 그의 뜻을 따라 많은 승려들이 모여들어 수도한 역사적인 사찰이다. 조선 세종 때 화재로 소실되자 화지도사가 중창하였고, 임진왜란 때에도 전란으로 피폐한 것을 중수하였으며, 이후 1900년 이현규가 중건하여 현재는 대웅전, 종각, 홍연암, 산신각, 금당, 주방처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집으로 주심포계의 수법을 사용하였으며 대웅전 안의 삼존불 중 오른쪽 관세음보살좌상은 종이로 만든 건칠보살상으로, 1395년(태조 4) 태조와 현비를 송축하기 위해 지방 관리들이 조성한 것으로 기본 틀 위에 종이를 여러 겹 덧붙여 형태를 만들고 그 위에 금물을 입힌 것으로 국가 보물로 지정되었다. 장육사는 일상의 번뇌를 내려놓고 부처님의 교리를 배우며 수행을 체험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한다. 내·외국인을 대상으로 하는 당일형과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와 소박한 절밥으로 심신을 맑히는 1박 2일 체험형, 여성을 대상으로 하는 휴식형 프로그램으로 나누어져 있다. 주변에는 동해의 장사해수욕장, 대진해수욕장, 고래불해수욕장 등 넓고 아름다운 해수욕장이 있고, 옥계유원지, 칠보산 휴양림, 경보화석 박물관, 구한 말 의병대장인 신돌석 장군 기념관이 있다.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장육사1길 172

역사관광경상북도

유금사(영덕)

유금사(有金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1교구 본사인 불국사의 말사로, 637년(선덕여왕 6) 왕의 명령으로 자장율사(590~658)가 창건한 사찰이다. 옛날에는 손으로 금을 주울 정도로 많이 캤다고 해서 ‘유금마을’, ‘유금사’가 되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까지 사세가 번성했는데 이후 퇴락하여 현재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유금사 법당 뒷마당에는 보물 제674호로 지정된 영덕 유금사 삼층석탑이 있다. 석탑은 각 기단의 면 가운데에 기둥이 하나씩 새겨져 있는 것과 지붕돌 밑면의 받침이 4단인 것 등으로 보아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탑으로 짐작된다.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유금길 208-5

수도암(김천)
사찰경상북도

수도암(김천)

수도암은 수도산(1,317m)의 상부에 위치한 사찰이다. 청암사와 함께 도선국사가 쌍계사의 소속 암자로 창건한 이래 내력은 알 수 없으나 1894년 동학혁명 당시 농민군에 의해 전소되었다가 1900년에 포응화상이 건물을 중수하였다. 1969년 이래 법전화상이 건물을 중수하고 선원을 개설하는 등 많은 불사를 이룩하였다. 현재 본당인 대적광전, 약광전, 나한전, 관음전, 선원 등이 있다. 수도암에는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비로자나불좌상, 김천 청암사 수도암 동·서 삼층석탑, 김천 청암사 수도암 석조보살좌상 등 지정문화유산이 있다.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수도길 1438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역사관광경상북도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은 성주군 월항면 선석산 아래 태봉(胎峰) 정상에 있으며, 세종의 적서(嫡庶) 18왕자와 세손 단종의 태실 등 19기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태실은 왕실에 왕자나 공주 등이 태어났을 때 그 태를 넣어두던 곳을 말한다. 전체 19기중 14기는 조성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으나 세조의 왕위찬탈에 반대한 다섯 왕자의 태실의 경우 방형의 연꽃잎이 새겨진 대석을 제외한 석물이 파괴되어 남아 있지 않으며, 세조 태실의 경우에는 즉위한 이후 특별히 귀부를 마련하여 가봉비(加封碑)를 태실비 앞에 세워두었다. 조선 세종 20년(1438)에서 24년(1442)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태봉은 당초 성주 이씨의 중시조(中始祖) 이장경(李長庚)의 묘가 있었는데 왕실에서 이곳에 태실을 쓰면서 그의 묘를 옮기고 태를 안치하였다고 한다. 한편 1977년 태실에 대한 보수 시 분청인화문대접·뚜껑, 평저호 및 지석(誌石) 등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세종대왕자 태실은 우리나라에서 왕자태실이 완전하게 군집을 이룬 유일한 예이며,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교체와 함께 왕실 태실 조성방식의 변화 양상을 볼 수 있는 중요한 유적이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인촌리

김해수로왕릉
역사관광경상남도

김해수로왕릉

김해수로왕릉은 김해시 서상동에 있는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의 무덤으로 사적으로 지정됐다. 높이 약 5m의 원형봉토분이며 신위를 모신 숭선전과 안향각, 전사청, 제기고 등의 건물이 있고 신도비와 공적비 등의 석조물이 있다. 수로왕릉의 주요 유적지로는 신위를 모신 숭선전, 춘추 제례에 사용할 향과 축을 보관한 안향각, 왕릉의 정문인 납릉 정문, 거북이 10마리가 뭉쳐져 있는 형상의 구지봉 등이 있다. 수로왕은 서기 42년 가락국의 시조로 왕위에 올라, 서기 48년 인도의 야유타국 공주 허황옥을 왕비로 맞았으며 김해 김씨의 시조이다. 선조 13년(1580)에 영남관찰사 허엽이 무덤을 지금의 모습으로 단장하였다고 전해진다. 왕릉 내부에는 수로왕과 수로왕비의 신위가 모셔져 있다. 여기서 신위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의지할 자리로 죽은 사람의 사진이나 지방에 해당된다. 능 앞의 묘비는 조선 인조 25년(1647)에 세운 것이며 숭선전은 고종 21년(1884)에 임금이 내린 이름이다.

경상남도 김해시 가락로93번길 26

정암루(솥바위)
역사관광경상남도

정암루(솥바위)

정암루는 솥바위에 있는 누각으로 곽재우 장군이 이곳 정암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세웠다. 정암전투는 곽재우 장군이 이끄는 의병이 처음으로 승리한 전투이며 그 당시 왜장인 안코쿠지는 정찰대를 보내 통과할 지점에 나무 팻말을 꽂아 두었고 그것을 알아챈 곽재우 장군이 나무 팻말을 늪지대 쪽으로 옮기고 기만전술을 펼쳐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정암루는 옛날 선조들이 나룻배를 타고 왕래했던 나루터였지만 지금은 남강을 굽어볼 수 있는 멋진 풍광을 자랑하는 누각이다. 정암(솥바위)은 의령의 남강에 있는 바위섬이다. 물 위로 솥의 모양을 하고 있고 물아래 감추진 형상 또한 세 발을 달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어 그 이름이 붙었다. 남강물이 유유히 흐르는 철교 아래 가마솥을 닮은 바위 하나가 물 위에 유유자적한 모습을 보이며 정암을 중심으로 반경에는 부귀가 끊이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온다.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남강로 686

충렬사(부산)
역사관광부산광역시

충렬사(부산)

충렬사는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 송상현, 부산진첨절제사 정발, 다대진첨절제사 윤흥신을 비롯해 부산지방을 지키다 순절하신 선열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1605년(선조 38) 당시의 동래부사 윤훤은 동래읍성 남문 밖 농주산에 송상현의 위패를 모신 송공사를 지어 매년 제사를 지내고 기리게 하였다. 선위사 이민구의 상소로 1624년(인조 2)에 송공사는 충렬사로 사액되어 명칭이 바뀌었다. 현재의 충렬사는 1978년 정화 사업을 거쳐 사당인 본전과 의열각, 기념관, 정화기념비, 송상현공 명언비, 충렬탑 등의 시설을 갖추게 되었다.

부산광역시 동래구 충렬대로 347 (안락동)

유엔기념공원
문화관광부산광역시

유엔기념공원

유엔기념공원은 세계 유일의 유엔군 묘지로서, 세계평화와 자유의 대의를 위해 생명을 바친 유엔군 전몰장병들이 잠들어 있다. 이곳 묘지는 한국전쟁이 일어난 이듬해인 1951년 1월, 전사자 매장을 위하여 유엔군 사령부가 조성하였으며, 같은 해 4월 묘지가 완공됨에 따라 개성, 인천, 대전, 대구, 밀양, 마산 등지에 가매장되어 있던 유엔군 전몰장병들의 유해가 안장되기 시작하였다. 1955년 11월 대한민국 국회는 유엔군의 희생에 보답하기 위해 이곳 토지를 유엔에 영구히 기증하고, 아울러 묘지를 성지로 지정할 것을 결의하였으며, 1955년 12월 15일, 한국 정부로부터 국회의 결의 사항을 전달받은 유엔은 이 묘지를 유엔이 영구적으로 관리하기로 유엔총회에서 결의문을 채택하였다. 한국전 당시 대한민국의 자유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군대를 파견한 16개국과 의료 지원단을 보낸 5개국의 용사 중, 전사한 유엔군 전사 장병의 영혼이 잠들어 있는 성역으로 이곳 기념 묘지에는 최초 11,000여 명의 전사자가 안장되어 있었으나, 그 후 유가족이나 본국 정부의 요청으로 이장되어, 현재 2,300기의 유해가 안장되어 있다. 한국 정부가 1978년에 건립한 유엔군 위령탑에는 한국전에 파견된 전투 장비, 인원 규모, 전사자 현황이 동판에 한글 및 영문으로 새겨져 있으며, 영국 정부가 주체가 되어 건립한 영연방 위령탑에는 영연방 국가의 전사자 중 시신을 찾지 못한 그들의 고귀한 희생을 기리고 있다.

부산광역시 남구 유엔평화로 93 유엔기념공원

금정산성
역사관광부산광역시

금정산성

금정산성은 금정산 꼭대기에 능선과 계곡을 따라 축성되어 있다. 금정산성은 임진왜란의 혹독한 피해를 입은 동래부민(東萊府民)이 난(亂)에 대비하기 위하여 쌓은 피난겸 항전성(抗戰城)이며, 국내에서는 가장 큰 규모의 산성이다. 1707년 동래 부사 한배하가 성이 넓다 하여 남북 두 구역으로 구분하는 중성을 쌓고 장대, 군기고 등의 시설을 보완하였다. 1806년 동래 부사 오한원이 성을 다시 수리하고 동문을 새로 쌓았으며, 서문, 남문, 북문에 문루를 만들고 수비군을 배치하였다. 금정산성에는 산성마을이 조성되어 있고, 산성마을에는 우리나라 민속 막걸리인 산성막걸리가 생산되고 있으며, 각종 음식점, 카페 등이 많아 관광객들이 휴식하기 좋은 관광지이다. 금정산성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자가용을 이용하거나 대중버스를 이용하면 된다.

부산광역시 금정구 북문로 78-5 (금성동)

사천선진리성
역사관광경상남도

사천선진리성

사천에 있는 사천선진리성은 삼면이 바다에 접한 곳에 위치하여 전망이 매우 좋으며, 봄철의 벚꽃 관광지로 유명하다. 선진리성은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쌓은 성으로, 왜군들이 성 안에 조성한 700여 그루의 오래된 벚나무들이 꽃을 피우면 장관을 이루는 벚꽃 명소 중 한 곳이다. 지금은 약석루가 무너졌으나 토성과 문지, 장대지로 추측되는 곳은 흔적이 남아 있다. 선진리성 입구 돌계단을 올라와 마주하는 성벽을 따라 걷다 보면 야외공연장이 보이고, 성문을 지나면 천수각터와 호국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전적기념비와 이곳에서의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충무공의 사천해전 승첩기념비를 볼 수 있다.

경상남도 사천시 용현면 선진리

통영 세병관
역사관광경상남도

통영 세병관

세병관은 이경준 제6대 통제사가 통제영을 이 고장 두룡포에 옮겨온 이듬해인 선조 38년(1605년) 그해 7월 14일에 준공한 통제영의 객사이다. 세병관은 정면 9칸, 측면 5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된 웅장한 건물로 모든 칸에는 창호나 벽체를 만들지 않고 통칸으로 개방하였다. 우물마루로 된 평면바닥의 중앙 일부를 한단 올려 놓았는데 여기에 전패를 모셨던 것으로 보인다. 장대석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기둥 윗몸은 창방으로 결구하였다. 공포는 기둥 위에만 짜올린 주심포식이지만, 익공식 수법과 다포식 수법이 많이 보인다. 기둥 사이에는 창방 위에 직접 화반을 놓아 주심도리 장여를 받치고 있다. 가구는 십일량가로서 대들보를 양쪽 내고 주위에 걸고 이 위에 동자주를 세워 중보를 걸고, 다시 동자주를 세우고 종보를 걸었다. 종보 위에는 대공을 세워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내고주와 전면 평주 사이에는 퇴보를 걸었다. 처마는 겹처마이고 팔작기와지붕을 이루고 있으며 용마루, 합각마루, 추녀마루는 양성을 하였다.

경상남도 통영시 세병로 27

도산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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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도산서원은 건축물 구성상 크게 도산서당과 이를 아우르는 도산서원으로 구분된다. 도산서당은 퇴계 선생이 직접 거처하며 제자들을 가르치던 곳이고,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 사후에 건립된 사당과 서원이다. 도산서당은 1561년(명종 16년), 퇴계 선생이 낙향한 뒤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을 위해 세운 곳으로 서원 내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퇴계 선생이 직접 설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한 농운정사와 부전교당 부속시설인 하고직사(下庫直舍)도 함께 지어졌다. 도산서원은 퇴계 선생 사후 6년 뒤인 1576년(선조 9년)에 완공되었다. 1570년 퇴계 선생이 세상을 떠나자 1572년에 선생의 위패를 상덕사에 모시기로 결정하였다. 그로부터 2년 뒤인 1574년, 지방 유림의 뜻을 모아 사당을 건립하여 위패를 봉안하였으며 전교당과 동·서재를 지어 서원으로 완성했다. 1575년(선조 8년)에는 한석봉이 쓴 『도산서원』 편액을 하사 받아 사액(賜額) 서원이 되었고 이로써 영남 유학의 총본산 역할을 하게 되었다. 1615년(광해군 7년)에는 사림이 조목(趙穆)을 종향(從享)하였으며 1792년(정조 16년) 정조 임금이 치제(致祭)를 내리고 도산별과(陶山別科)를 시행하였다. 1796년(정조 20년)에는 시사단(試士壇)을 세웠고 1819년(순조 19년)에는 장서고(藏書庫)인 동광명실(東光明室)이 건립되었다. 1870년(고종 7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서도 제외되었으며 1930년(경오년)에는 서광명실(西光明室)을 중건하였고 1932년(임신년)에는 하고 직사(下庫直舍)를 이전하였다. 1969년 도산서원을 중심으로 임야 및 전답 19필지(324,945㎡)가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1970년부터 대통령령으로 보수·증축 사업이 진행되어 우리나라 유학 사상의 정신적 고향으로 성역화되었다. 1977년에는 도산서원관리사무소가 설치되었으며, 관리·운영 조례를 제정·공포한 이후 현재에 이르고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예능 16기 출연진이 한복을 입고 랜덤으로 파트너를 매칭한 장소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 없이 옷 색깔로 파트너가 정해질 때마다 시청자들이 대리 설렘과 긴장감을 느낀 장소이기도 하다. 인근에 조성된 둘레길을 따라 걸으면 서당 내부 뿐만 아니라 왕버들, 시사단 등 서원의 다양한 명물을 만날 수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도산서원길 154

영주 소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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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소수서원

1542년(중종 37년)에 풍기군수 주세붕(周世鵬)이 안향(安珦)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세운 것이 시초이다. 이듬해인 1543년에는 학사를 건립해 유생들을 교육하기 시작하면서 '백운동서원'이라 불렸다. 1550년(명종 5)에는 풍기군수 이황의 요청에 의해 소수서원이라 사액을 받고 나라의 공인과 지원을 받게 되었다. 1544년(중종 39)에 안축(安軸)과 안보(安輔)를 제사 지냈고, 인조 11년(1633)에는 주세붕을 더하여 제사 지냈다. 서원 내 건물들은 비교적 자유롭게 배치되어 있다. 이는 일반적인 서원의 정형화된 배치 형식이 확립되기 전에 세워진, 우리나라 최초의 초기 서원이기 때문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소백로 2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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