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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3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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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 보리암(남해)
사찰경상남도

금산 보리암(남해)

683년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초당을 짓고 수도하면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뒤로 산 이름을 보광산, 초당 이름을 보광사라고 했다. 훗날 이성계가 이곳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조선 왕조를 열었다는데, 그 감사의 뜻으로 1660년 현종이 이 절을 왕실의 원당으로 삼고 산 이름을 금산, 절 이름을 보리암으로 바꿨다. 금산의 정상에 자리 잡고 있는 보리암은 금산의 온갖 기이한 암석과 푸르른 남해의 경치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아름다운 절이다. 경내에는 원효대사가 좌선했다는 좌선대 바위가 눈길을 끌며, 부근의 쌍홍문이라는 바위굴은 금산 38경 중의 으뜸으로 알려져 있다. 강원 양양군 낙산사 홍연암, 경기 강화도 보문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기도처의 하나로 신도들이 연일 줄지어 찾고 있다. 빼어난 경치와 남해의 금강, 동물 형상의 바위가 많아 바위동물원으로 불리는 금산. 쪽빛 바다와 초록빛 들녘의 조화를 내려다볼 수 있는 산으로 한려해상 국립공원의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는 금산 정상에 원효대사가 창건하였다는 우리나라 3대 기도처 중 가장 유명한 보리암이 있다. 또한 금산은 바위마다 불교에 얽힌 전설들을 간직하고 있고 보리암은 대장봉·형리암·화엄봉·일월봉·삼불암 등 기암괴석에 둘러싸여 있다. 상주마을 금산 입구에서 보리암으로 오르는 코스는 울창한 숲과 남해바다가 조화를 이루는 최고의 산행코스. 하룻밤 묵으며 금산서 일출을 보면 천지신명의 조화를 느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일출이 절경이다. 자동차로는 앵강고개를 넘어 이동면 벅시골에서 복곡저수지를 지나 금산 8부 능선까지 도로가 나있다. (출처 : 남해 문화관광)

경상남도 남해군 상주면 보리암로 665

안정사
역사관광경상남도

안정사

통영 안정사는 신라 무열왕 1년(654)에 원효대사가 벽발산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조선 인조 4년(1626)을 시작으로 여러 차례 다시 지었고, 6.25전쟁으로 폐허가 되었던 것을 설호스님이 중창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통일신라시대에는 14방의 규모를 자랑하는 전국 굴지의 사찰로 1,000여명이 수도했던 대형사찰이었다고 한다. 사찰 입구를 알리는 일주문을 지나면 해탈교(다리)가 나오고, 다리를 건너 계단을 오르면 안정사가 나온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웅전, 나한전, 명부전, 칠성각, 만세루, 범종루, 요사채 등이 있다. 안정사의 대웅전은 임진왜란 때 화마로 소실되었다가 영조 27년(1751)에 중건했으며 조선 후기의 양식을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만세루는 법회와 강당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조선시대 경상남도 지역에 있던 사찰에 만들어진 누각의 특징이 두드러져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범종에는 만력(萬曆) 8년이라는 명이 새겨져 있다.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안정1길 363

비로사(영주)
역사관광경상북도

비로사(영주)

소백산 비로봉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비로사는 680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비로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의 거점으로 활용되었다. 하지만 임진왜란으로 인해 석조비로자나불좌상·석조아미타여래좌상 2구, 석조당간지주, 진공대사보법탑비만 남고 모두 불타버려 1609년(광해군 1) 경희가 중건하였고 1684년(숙종 10) 월하가 법당과 산신각 등 40여 칸을 중창하였다. 여러 기록에 의해 개항기까지 사세가 계속 유지되었음을 알 수 있으나, 1907년 법당을 제외한 모든 건물과 사지가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후 1919년에 희방사 주지 범선이 법당을 중수하였고, 1927년에 요사를 중건하였으며, 1932년에 다시 법당을 중수하였으나, 1950년 6·25 전쟁으로 다시 모든 건물이 소실된다. 1992년에 현재 주지인 성공이 부임하면서 다시 불사가 재개되었고 이후 적광전, 나한전, 반야실, 망월당 등이 건립되어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비로사의 주요 문화재로는 보물로 지정된 영주 비로사 석조아미타여래좌상 와 영주 비로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비로사 아미타후불탱화, 비로사 진공대사보법탑비 등이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삼가로 661-29

초암사(영주)
역사관광경상북도

초암사(영주)

초암사는 죽계구곡을 따라 올라가면 산기슭에 자리 잡은 조그마한 사찰이다. 신라시대 의상대사가 호국사찰을 세우고자 산수 좋은 이곳에 초막을 지어 임시거처를 정하고 명당자리를 골라 부석사를 세운 뒤 초막을 지었던 곳에 절을 지어 초암사라 했다. 초암사는 6.25의 병화를 맞아 쇠락해 있던 것을 이보은 스님의 각고의 노력 끝에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으며 도유형문화재인 3층석탑 등이 있다. 초암사는 소백산의 그윽한 정취 속에 깃든 청정도량으로, 세속의 잡다한 생각을 버리게 하고 고요한 명상의 세계로 이끌어준다. (출처 : 영주시 문화관광)

경상북도 영주시 순흥면 죽계로315번길 330

희방사(영주)
사찰경상북도

희방사(영주)

희방역에서 동북쪽으로 4㎞ 정도 되는 소백산 기슭 해발 850m에 있으며,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두운대사가 세웠다. 월인석보 1,2권의 판목을 보존하고 있었는데 6·25 때 절과 함께 불타고 얼마 전에 책판(목판)이 나왔다. 절 입구는 자연림이 우거져 햇빛을 가리며, 희방폭포는 높이 28m로 내륙지방 최고의 폭포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수철리

남장사
사찰경상북도

남장사

남장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산하의 전통사찰이다. 830년(흥덕왕 5년) 당나라에서 귀국한 진감국사가 개창하여 최초로 머문 사찰이다. 당시의 절 이름은 장백사였다. 1186년(고려 명종 16년) 각원화상이 장백사를 남장사로 개칭하면서 중창하였다. 진감국사는 중국 종남산에서 범패를 배워 830년인 57세 때 귀국하여 장백사에 머물면서 832년에는 무량전을 창건하고, 범패를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보급한 곳이다. 남장사의 주요 유물로는 철불좌상과 목각 후불탱화 등의 불교 예술의 걸작품을 보존하고 있다. 경내에는 1797년(정조 21년)에 창건된 관음선원이 있는데, 이곳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각 후불탱을 보존하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남장1길 259-22 (남장동)

직지사
사찰경상북도

직지사

황악산 기슭에 있는 직지사는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이다. 신라 눌지왕 2년(418) 아도화상에 의하여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개창되었다. 그 후 선덕여왕 14년(645)에 자장이, 경순왕 4년(930)에는 천묵이 중수하고, 고려 태조 19년(936)에 능여가 왕의 도움을 받아 중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전소되었으나 광해군 2년(1610)부터 60여 년에 걸쳐 복구하였다. 직지사라는 이름은 황악산을 가리키며 "저곳에도 좋은 절터가 있다"하여 직지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과, 고려 초 능여스님이 절터를 잴 때 자를 쓰지 않고 직접 자기 손으로 측량한 데서 붙여졌다는 설이 있다. 조선시대에 학조가 주지로 있었고, 유정대사가 이 절에서 승려 생활을 시작했다. 대웅전을 비롯하여 1,000구의 아기부처가 나란히 안치된 비로전, 극락전, 응진전, 관음전, 남월료, 명부전, 약사전, 설법전, 만덕전, 조사전, 제하당, 명월료, 청풍료, 사명각, 범종각 등이 현존하는 건물이며, 1,000년 묵은 칡뿌리와 싸리나무 기둥의 일주문, 금강문, 사천왕문 등이 있다. 2002년 주한 외국인 대사들을 초청 전국 최초로 템플스테이를 공식 개최해 명상체험형과 휴식형으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경상북도 김천시 대항면 직지사길 95

도리사(구미)
사찰경상북도

도리사(구미)

도리사는 신라 제19대 눌지왕(417년) 때 고구려의 승려 아도화상이 불교가 없었던 신라에 포교를 위해 처음 세운 해동불교의 발상지이자 신라 최초의 가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도화상이 수행처를 찾기위해 다니던 중 겨울인데도 이 곳에 복숭아 꽃과 오얏꽃이 활짝 핀 모습을 보고 좋은 터임을 알고 이 곳에 모례장자의 시주로 절을 짓고 이름을 복숭아와 오얏에서 이름을 따 도리사라 하였다. 신라불교 초전법륜지로 불교의 성지인 이곳에서 아도화상이 신라에 불교를 전하러 올 때에 모셔온 세존 진신사리가 1976년 세존 사리탑 보수 공사 중 금동육각사리함에 봉안되어 발견되었다. 도리사 세존사리탑 금동 사리기는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이 되며, 국보 제208호로 지정되어 현재 직지사 성보박물관에 위탁 소장되어 있다. 신라가 불교를 공인한 것이 514년(법흥왕 14)으로 이보다 보다 70여년이나 앞서 창건 된 도리사는 그 역사만큼이나 유형문화재로 보물인 화엄석탑이 있고, 아도화상 동상(2002년 새로 건립조성), 세존사리탑, 아도화상 사적비, 조선후기 탱화가 있으며 지정된 불교의 교리와 불교 문화 전파를 위한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도리사로 526

개목사(안동)
역사관광경상북도

개목사(안동)

개목사의 원래 이름은 흥국사로 통일신라 신문왕(재위 681~692) 때 의상대사가 세웠다고 한다. 전설에 따르면 의상대사가 절 뒤에 있는 천등굴에서 천녀(天女)의 기적으로 도를 깨치고 절을 세웠다고 하는데, ‘개목사’라는 절 이름은 조선시대에 바꾼 이름이라고 전한다. 관세음보살을 모셔 놓은 개목사 원통전은 1969년 해체·수리시 발견한 기록에 ‘천순원년(天順元年)’이라는 글귀가 있어 세조 3년(1457)에 지은 것으로 짐작한다. 전체적으로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1963년 1월 21일에 보물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개목사길 362

봉정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찰경상북도

봉정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천등산 봉정사는 도심에서 멀지 않아 잠시 일상을 벗어나 한적한 여유를 즐기기 좋은 사찰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을 간직하고 있으며, 맑은 공기와 고즈넉한 산사의 분위기 속에서 산책과 휴식을 즐길 수 있다. 또한 한국 산중 불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어 수행의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봉정사는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대사의 제자인 능인스님이 창건한 사찰이다. 천등산은 원래 대망산이라 불렸으며, 능인스님이 바위굴에서 수행하던 중 하늘의 선녀가 등불을 내려 굴 안을 밝혀 주었다는 전설에서 '천등산'이라는 이름이 유래하였다. 이후 능인스님이 종이 봉황을 접어 날렸는데 이곳에 내려앉아 머물렀다고 하여 봉황새 봉(鳳) 자와 머무를 정(停) 자를 따서 '봉정사'라 이름하였다. 창건 이후 여섯 차례 중수되었으며, 극락전과 대웅전을 비롯한 다양한 국보와 보물, 후불벽화, 목조관세음보살좌상, 화엄강당, 고금당 등 소중한 문화유산을 간직하고 있다. 이 밖에도 덕휘루, 무량해회, 삼성각, 삼층석탑과 영산암, 지조암, 중암 등의 부속암자가 있으며, 고려 태조와 공민왕이 다녀간 아름다운 사찰로도 전해진다. (출처 : 봉정사)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봉정사길 222

송계사(거창)
역사관광경상남도

송계사(거창)

북덕유산 자락의 맑은 계곡과 울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송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 12교구 본사인 해인사의 말사다. 이곳은 원효와 의상이 652년(진덕여왕 6) 영취사를 창건한 뒤 5개의 부속 암자를 세우면서 송계암이라고 이름 지어 창건하였으며, 그 뒤 많은 고승들이 이 절에서 배출되었다. 임진왜란 때 영취사를 비롯하여 5개의 암자가 모두 불탄 뒤 폐허로 있다가 숙종 때 진명이 송계암만을 중건하였다. 6·25 전쟁 때 다시 전소된 것을 1969년 승민스님이 중창하였다. 1995년에 원정이 1969년 중창 때 건립한 영취루가 기울어진 것을 해체하여 다시 짓고 문각이라 이름을 바꾸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극락보전을 중심으로 대웅전, 문각(종각), 요사채 등이 있으며, 유물로는 아미타여래좌상, 소종, 탱화 3점 등이 있다. 송계사 대웅전에서는 북덕유산 수리덤이 정면으로 볼 수 있으며, 겨울 송계사 설경은 북덕유산이 만들어내는 또 하나의 장관을 연출한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송계사길 321

동화사(대구)
역사관광대구광역시

동화사(대구)

동화사는 유서 깊은 신라 고찰로 팔공산 폭포골, 빈대골, 수숫골이 좌우로 몰려든 동학동 골짜기에 자리 잡고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이다. 493년(소지왕 15) 극단이 창건하여 유가사라 하였다. 그 뒤 832년(흥덕왕 7) 왕사 심지가 중창하였는데, 그때가 겨울철임에도 절 주위에 오동나무꽃이 만발하였으므로 동화사로 고쳐 불렀다고 한다. 현존하는 당우들은 대부분 영조 때 중창 시에 세워진 건물로서 대웅전을 비롯하여 연경전, 천태각, 영산전, 봉서루, 심검당, 칠성각, 산신각, 응향각, 원음각, 천안문 등이 있다. 또한 부속암자로는 금당암, 비로암, 내원암, 부도암, 양진암, 염불암 등이 있다. 또한 동화사는 팔공산국립공원의 다양한 탐방로가 시작되는 관문이다. 염불암을 지나 염불봉이나 동봉으로 향하는 코스, 빈대골 계곡을 따라 능선을 오르는 코스, 템플스테이 입구에서 폭포골을 따라 도마재(신령재)나 바른재로 향하는 코스까지, 사찰 곳곳에서 자연으로 향하는 탐방로가 열려 있다. 사계절 내내 산과 계꼭의 풍경을 따라 걷기 좋아 많은 이들이 찾는다.

대구광역시 동구 동화사1길 1 (도학동)

파계사
역사관광대구광역시

파계사

팔공산 자연공원 내에 위치하고 있는 파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로 일대가 울창한 숲, 맑은 계곡이 선경을 이루고 있다. 사적기에 의하면 애장왕 5년(804) 심지왕사가 창건하였고, 선조 38년(1605) 계관이 중창하였으며, 숙종 21년(1695) 현응이 삼창하였다. 파계사는 조선 영조와의 인연이 깊다. 숙종이 대궐 속으로 승려가 들어오는 꿈을 꾸고, 꿈속에 승려를 남대문 밖에서 찾으니 영원선사였고, 그에게 왕자 생산 기도를 부탁하고 얼마 후 숙빈 최씨에게 태기가 있어 왕자가 탄생했으니 바로 훗날의 영조이다. 기뻐한 숙종은 승려에게 현응이라는 호를 내렸다. 당시에 파계사는 유생들의 횡포가 심하던 중 현응은 왕실의 위패를 모시도록 숙종에게 청해 유생들의 횡포를 막아내는 현명함을 보였다고 한다. 지금도 파계사에는 하마비가 존재하며 현응대사의 비석과 부도, 그리고 영조대왕의 도포가 보관되어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원통전을 중심으로 진동루∙설선당∙적묵당 등 격조 높은 당우 4채가 [ㅁ] 자형을 이루고 있다. 원통전은 그 중심 전각으로 건칠관음보살좌상이 안치되어 있다. 이 밖에도 이 절에는 영산회상도(보물)와 왕실 원당 관련 고문서 등이 있으며, 법당 앞에 높이 2m의 8각 석등이 있고, 숙종의 하사품인 병풍 2개와 구슬 2개, 절 서쪽에 세워진 현응 등 세 대사의 부도와 비가 있다. 부속 암자로는 현니암, 금당암, 성전암, 칠성암 등이 있다. 이 중 성전암에는 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현응의 영정과 벽화가 있다. 이름에서부터 여러 갈래로 흩어져 있는 물길을 모은다는 뜻의 파계사는 팔공산자연공원에서도 맑은 계곡을 자랑으로 소문 낼만큼 아름다운 사찰이다.

대구광역시 동구 파계로 741

명봉사(예천)
역사관광경상북도

명봉사(예천)

명봉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875년(헌강왕 1) 두운이 소백산 자락에 창건하였다. 1662년(현종 3) 화재로 전소된 뒤 여러 승려들이 힘을 모아 중건하였다. 1668년 다시 화재로 소실되자 신익 등이 중창의 뜻을 세우고 10여 년 동안 시주를 얻어 크게 중창하였다. 6·25전쟁 때 전란으로 소실된 것을 1955년 주지 만준이 중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찰에는 1735년(영조 11)에 세워진 문종대왕태실비(경상북도 유형문화유산)와 941년(태조 241)에 세운 경청선원자적선사능운탑비(보물)가 있다. 사찰 뒤 산에는 문종대왕 태실과 세도세자(장조) 태실이 복원되어 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효자면 명봉사길 62

용문사(예천)
역사관광경상북도

용문사(예천)

용문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직지사의 말사이다. 870년(신라 경문왕 10년) 두운선사에 의해 창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고려 태조 왕건이 신라를 정벌하러 내려가다 이 사찰을 찾았으나 운무가 자욱하여 지척을 분간치 못했는데, 어디선가 청룡 두 마리가 나타나 길을 인도하였다 하여 ‘용문사’라 불렀다. 고려 명종 때 ‘용문사 창기사’로 개명했으나 조선 세종대왕의 비 소헌왕후의 태실을 봉안하고 성불사 용문사로 다시 고쳤고, 정조 때 문효세자의 태실을 이곳에 쓰고 소백산 용문사로 바꿔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는 대장전, 응진전, 명부전, 진영당, 일주문, 자운루, 성보 박물관이 있으며, 성보박물관에는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윤장대를 비롯해 성보문화재 10여 점이 있다. 또한 조선 숙종 때 조성된 목각탱화는 우리나라에서 제일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팔만대장경판을 보관한 윤장대를 돌리면 번뇌가 소멸되고 공덕이 쌓여 소원이 성취된다고 해 예로부터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용문사길 285-30

사찰경상남도

고견사(거창)

고견사는 신라 문무왕 7년에 의상과 원효대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고견사 뒤에 우뚝 솟은 아름다운 봉우리가 있는데 의상대사가 참선하던 터로 알려져 의상봉이라 한다. 이곳에 올라서면 동쪽으로 가야산, 서쪽으로 덕유산, 남쪽으로 지리산이 보인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장군봉과 별유산, 비계산, 미녀봉, 박유산의 산세가 빼어나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고려 왕씨들의 명복을 빌기 위해, 밭 150 결을 주어 대궐의 향을 내려 해마다 2월과 10월 수륙재를 지내게 한 사찰이다. 또, 이 절에 고운 최치원이 머무르기도 했다고 한다. 최치원이 심었다는 은행나무가 있고 의상대사가 도를 닦을 때 날마다 대사와 상좌가 먹을 만큼 쌀이 나왔다는 쌀굴도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가조면 의상봉길 1049

백률사(경주)
역사관광경상북도

백률사(경주)

경주시 북쪽 소금강산 중턱에 자리한 백률사는 신라 법흥왕 14년(527) 불교 공인을 위해 순교한 이차돈을 기리기 위한 절이자, 신라의 불교 성지이다. 와 헌덕왕 때 작성된 에 따르면 이차돈은 법흥왕의 명을 받들어 불교를 공인하고 사찰을 짓기 위해 순교했는데, 참수형을 받고 이차돈의 목을 베니 흰색 피가 솟아 나오고 꽃비가 내리는 등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불교 공인을 반대하던 신하들도 이것을 보고 마음을 돌렸다고 하며 이차돈의 아내가 그의 명복을 빌기 위해 이차돈의 목이 베려 날아가 떨어진 자리에 자추사를 지었다고 전한다. 백률사는 이 기록에 나오는 자추사일 것으로 추정된다. 백률사 건물은 임진왜란 때 불타 후에 다시 지었으며, 기단부는 일부 신라시대 양식을 지니고 있다. 과거 대웅전에 모셨던 금동약사여래입상은 불국사의 금동아미타여래좌상, 금동비로자나불좌상과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졌으며, 이 세 불상은 통일신라시대의 3대 금동불로 알려져 있다. 금동약사여래입상과 이차돈의 석당은 국립경주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산업로 4214-110 (동천동)

경주 불국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찰경상북도

경주 불국사 [유네스코 세계유산]

불국사는 신라 법흥왕 15년에 어머니의 뜻에 따라 국가의 안녕과 백성의 평안을 기원하며 창건되었다. 경덕왕 10년인 751년에는 재상 김대성이 절을 다시 지어 현재의 규모로 정비하였다. 그러나 임진왜란을 거치며 건물과 문화유산 대부분이 소실되거나 약탈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이후 1920년대 전까지는 일부 건물과 탑만 황량하게 남아 있었으나, 지속적인 원형 복구와 보수 작업을 거쳐 현재의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현재는 국보 7점을 포함한 문화유산을 보유한 대사찰로 자리 잡고 있다. 불국사에서 약 3㎞ 떨어진 산등성이에는 석굴암이 위치해 있다. 석굴암은 동해를 향해 앉은 여래좌상 본존불이 중심을 이루며 동양의 걸작으로 꼽힌다. 불국사와 석굴암은 1995년 12월 6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로써 두 유적은 국내외적으로 신라 불교문화의 정수로 평가받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 (진현동)

기림사
역사관광경상북도

기림사

기림사는 신라 선덕여왕 때 창건된 사찰이며, 처음에는 임정사라 불리다 원효가 도량을 확장하면서 기림사로 개칭하였다. 기림사는 크게 두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비로자나불을 모신 대적광전이랑 500년 이상 된 큰 보리수나무가 있는 지역과 보 박물관, 삼성각, 명부전, 관음전 등이 있는 지역이다. 대적광전은 기림사의 본전으로 배흘림기둥의 다포식 단층 맞배지붕의 건물이며 조선 초기 불상의 전형을 갖춘 삼존불을 모시고 있다. 대적광전과 진남루 사이 서쪽에 오백나한전이 있고, 그 바로 앞에 3층 석탑이 있다. 성보박물관에는 보물로 지정된 건칠보살 반가상과 비러자나불 복장전적과 목비, 석조 토제지미 등 많은 문화유산 자료들이 있다. 기림사에는 오종수라고 불리는 다섯 가지 맛을 내는 물이 유명하다. 차를 끓여 마시면 맛이 으뜸이라는 감로수와 그냥 마셔도 마음이 편안하다는 화정수, 기골이 장대해진다는 장군수, 눈이 맑아진다는 명안수, 물빛이 너무 좋아 까마귀가 쪼았다는 오탁수가 그것이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때 장군이 태어날까 두려워 장군수의 물길을 막아버렸고 지금은 네 곳만 물이 솟아 나오고 있다. 기림사에서는 산사체험 프로그램과 템플스테이도 운영하는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자율형과 예불 참여와 108배 등 스님과 함께하는 체험형이 있다. 계절별 테마로 구성되어 봄에는 녹차 만들기, 여름에는 용연폭포에서 명상의 길 체험, 가을에는 연차 시음하기 및 산사음악회 관람, 겨울에는 타종식과 동해의 해맞이도 볼 수 있다. 그 밖에 만다라 그리기, 마하사 여름수련회, 어린이 여름불교 학교도 체험해 볼 수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양북면 기림로 437-17

김룡사(문경)
사찰경상북도

김룡사(문경)

운달산 김룡사는 신라 진평왕 10년(588) 운달조사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의 말사이다. 김룡사는 원래 금선대에 위치하고 조선 중기까지 운봉사로 불리었으며, 이후 17세기부터 각종 기록을 통해 김룡사로 불려지게 되었다. 효종과 숙종이 왕위에 있던 시기에 사찰이 급격하게 커지기 시작했으며 영조와 정조시기를 거치면서 사찰의 규모가 정해졌다. 이후 큰 사찰로 자리를 잡았으며, 일제강점기 사찰령 체제하에서는 전국 31본산 중의 하나였다. 김룡사는 학교설립과 교육활동도 활발하게 진행하였다.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김용길 372

대승사(문경)
역사관광경상북도

대승사(문경)

대승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인 직지사의 말사이다. 1644년(인조 22)과 1722년(경종 2)에 의현, 종수 등이 중수하였고, 1831년(순종 31) 구담이 중창하였다. 1922년 큰 화재로 불타 의운, 덕산이 복원시켰는데, 1956년 또다시 큰 화재가 발생하여 명부전과 극락전만 남고 소실되어, 1960년 남인 대휴 등에 의해 삼창 되었다. 사불산 산마루에 있는 사면 석불상은 삼국유사불산조에 따르면 587년(신라 진평왕 9) 커다란 비단 보자기가 공덕봉 중턱에 떨어졌는데, 사면에 불상이 새겨진 4불암이 싸여 있었다고 한다. 왕이 소문을 듣고 그곳에 와서 예배하고 절을 짓게 하고 대승사라고 사액하였고, 망명비구에게 사면석불의 공양을 올리게 하였는데, 망명비구가 죽고 난 뒤 무덤에서 한 쌍의 연꽃이 피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 후 이름을 사불산 또는 역덕산으로 불렀다. 대승사는 국보 대승사목각탱부(아미타여래설법상) 및 아미타불사에서 나온 금자화엄경(7권), 불사리 1과 등이 있다. 부속 암자로 윤필암, 묘적암, 상정암, 관음암, 문수암 등이 있으며, 금강반야경오가해설의(1415)를 지은 곳으로 유명하다. 현재 대승사는 해발 600미터 고지의 대자연 속에서 스님들과 일상을 같이 체험하며, 차담, 예불, 윤필암, 묘적암, 사면석불 포행과 쉼이 있는 템플스테이를 운영하고 있다. 참가자들의 자율적인 선택과 참여로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을 취하는 프로그램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대승사길 283

고운사(의성)
사찰경상북도

고운사(의성)

고운사는 681년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사찰이다. 창건 당시는 고운사(高雲寺)라 하였으나, 200여 년 뒤 고운 최치원이 이곳에서 수도하면서 가운루와 우화루를 지은 후 그의 호를 따서 고운사(孤雲寺)라 하였다. 이후 조선시대에 들어와 몇 번의 중수를 거쳤다. 고운사는 임진왜란 때 사명대사가 승군의 전방 기지로 식량 비축과 부상병 뒷바라지를 하던 사찰이며, 일제강점기 때는 전국 3·1 본산지의 하나로 호국불교의 꽃을 피웠던 곳이다. 경내에는 대웅전, 극락전, 관음전, 금강문, 우화루, 고금당 등의 건물이 있다. 소장된 중요 문화재로는 의성 고운사 석조여래좌상, 고운사 삼층석탑, 고운사 가운루, 의성 고운사 연수전 등이 있다. 고운사의 체험 프로그램은 템플스테이와 사찰음식 체험이 있다. 템플스테이의 경우 수험생들의 노고와 스트레스를 치유를 위한 무료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인 두근두근 템플스테이와 대학에 재학 중인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청춘 힐링캠프 그리고 예불, 스님과의 차담, 걷기 명상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마음 숲길로 구성되어 있다. 사찰음식 체험은 고운사 사찰음식 체험관에서 진행되며 사찰음식 요리법을 고스란히 계승한 스님의 지도하에 사찰음식을 만들어 볼 수 있다. 사찰음식 체험 프로그램은 템플반, 기초반, 단기반, 발효음식 체험반, 1일 체험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단촌면 고운사길 415

불곡사(창원)
역사관광경상남도

불곡사(창원)

대한불교 법화종 소속 사찰로, 창원시 비음산 남쪽 기슭에 자리하고 있는 전통 사찰이다. 불곡사의 창건 연대를 알 수 있는 사료는 없으나, 창원 지역에서 구전되는 설화나 『한국 불교 사찰 사전』에 따르면, 통일신라시대에 국사 진경(854~923)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한다. 1929년 우담 화상이 옛날 절터에 드러나 있던 석조비로자나불좌상을 파내어 비로전에 모시고 다시 사찰을 세웠다. 중창 전 불곡사 뒤쪽은 가음정과 대방동, 사파정동을 왕래하는 길이 있었는데, 이곳 길가에 불상과 무수한 기와 조각이 흩어져 있는 이곳을 ‘부처골’이라 불리기도 했다. 불곡사는 비로전을 비롯하여 일주문과 탑재, 광배전, 이건비, 남무아미타불비 등이 있다. 일주문은 원래 창원부 객사 3문 중의 하나로서 웅천 향교에 있던 것을 1943년 우담이 절로 옮겨 온 것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성산구 대암로 55 (대방동)

오어사(포항)
사찰경상북도

오어사(포항)

운제산 오어사는 신라 4대 조사를 배출한 성지이다. 신라 26대 진평왕(579∼632) 때 창건된 사찰로 당초에는 ‘항사사[恒沙寺]’라 불렀으나 원효대사와 혜공선사가 이곳에서 수도할 때 법력[法力]으로 개천의 고기를 생환토록 시합을 하였는데, 그중 한 마리는 살지 못하고 다른 한 마리는 살아서 힘차게 헤엄을 쳤다. 그 고기가 서로 자기가 살린 고기라고 하여 나 ‘오[吾], 고기[魚]’자를 써서 ‘오어사[吾魚寺]’라고 하였다. 경내에는 대웅전, 나한전, 설선당, 산령각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을 제외한 것들은 모두 최근에 건립된 것이다.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 다포[多包] 집으로 조선영조 17년(1741)에 중건하였다. 사찰의 대표 유물로는 대웅전, 포항 오어사 동종, 원효대사 삿갓이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오어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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