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2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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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동공원과 궁남지
궁남지는 백제시대의 연못으로, 삼국사기에 의해 백제 무왕이 궁궐 남쪽에 만들어 궁남지라고 불린다. 삼국유사에는 무왕의 어머니가 궁남지의 용과 정을 통하여 무왕을 낳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연못 주변에는 우물과 주춧돌들이 남아있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인공 조경으로 백제의 조경 기술 수준을 엿볼 수 있다. 못 가운데 섬을 만들어 신선사상을 표현한 궁남지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정원으로 백제의 노자공은 일본에 건너가 백제의 정원 조경기술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백제가 삼국 중에서도 정원을 꾸미는 기술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사계절이 아름다운 관광지이다. 현재 궁남지는 자연과 인간의 공존하는 이상적인 친환경 여행지로 발전했는데, 자연환경 보전을 위해 적극적인 관리가 진행되고 있다. 덕분에 관광 시에는 역사와 자연을 동시에 경험할 수 있는 체험을 선사하고 있는데, 자전거와 도보를 통해 더욱 친환경적인 관광이 가능하다. 또한, 유적지를 둘러보며 관광지에 있는 역사적 가치를 더욱 심도 있게 이해할 수 있다. 7월에는 천만 송이 연꽃들의 아름다운 향연인 서동연꽃축제가 열리고, 10~11월에는 다양한 작품으로 꾸며진 굿뜨래 국화전시회가 열려 궁남지의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궁남로 52
영동 난계사
조선 전기 문신이자 악성인 난계 박연(1378∼1458)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세종을 도와 음악을 정비하는 데 많은 공을 세운 박연은 악률에 정통하여 세종 7년(1425) 아악의 율조와 악기의 그림, 악보를 같이 실은 를 편찬하였고, 1427에는 편경 12매를 만들어 자작한 12 율관을 따라 직접 연주하기도 하였다. 사당 일대에는 박연을 비롯한 6인의 위패를 봉안한 세덕사와 박연의 묘소, 그의 사촌형인 국당 박흥생(朴興生)의 묘비, 쌍효각(雙孝閣)등이 있다. 외삼문을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난계사 蘭溪祠’라는 현판이 걸린 사당이 있다. 난계의 동상과 비가 방문객을 맞이하는 사당 입구부터 외삼문까지 푸른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나무도 많아 휴식하기도 좋다.
충청북도 영동군 심천면 국악로 13-34

문헌서원(서천)
문헌서원은 가정 이곡(1298∼1351)과 목은 이색(1328∼1396)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곡은 고려 후기 학자로서 이색의 아버지이다. 원나라의 과거에 급제하여 실력을 인정받았고, 문명을 떨쳤다. 이색은 고려 후기 문신이며 학자이다. 원·명교체기에 친명정책을 지지하였고, 유교의 입장에서 불교를 이해하고자 하였다. 그의 문하에서 권근, 김종직, 변계량 등을 배출하여 조선 성리학의 주류를 이루게 하였다. 이곳은 자연과 함께하는 아름다운 경관 명소로 유명하며, 특히 이색 선생 영당 뒤 아름드리 배롱나무가 장관이다. 배롱나무 꽃은 8월~9월 사이에 만개하며, 우리 전통 건축과 선홍 빛 꽃이 어우러진 자연미를 감상할 수 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조선 시대 성리학의 연구와 교육을 목적으로 지방에 세운 기관으로 한국의 고즈넉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서원이다. 에서 배롱나무에 걸린 천을 잡으려던 어린 담이와 이휘가 처음으로 만난 장면의 촬영지로 여름이면 400년 된 서원과 소나무 숲, 너른 잔디밭, 배롱나무가 함께 어우러져 고요한 절경을 이룬다.
충청남도 서천군 기산면 서원로172번길 66
![부여 왕릉원 [유네스코 세계유산]](https://tong.visitkorea.or.kr/cms/resource/50/4063450_image2_1.jpg)
부여 왕릉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부여 왕릉원은 충남 부여군 소재지 동쪽 능산리에 위치한 백제 고분군이다. 남향 경사면에 고분이 앞뒤 2줄로 3기씩 있고, 뒤쪽 제일 높은 곳에 1기가 더 있어 모두 7기로 이루어져 있다. 오래전부터 왕릉으로 알려진 고분의 겉모습은 모두 원형봉토분이고, 내부는 널길이 붙은 굴식돌방무덤(횡혈식 석실분)으로 뚜껑돌 아래는 모두 지하에 만들었다. 1호는 네모형의 널방과 널길로 이루어진 단실무덤으로 널길은 비교적 길고 밖으로 갈수록 넓어지는 나팔형이다. 널방의 네 벽과 천장에는 각각 사신도와 연꽃무늬, 그리고 구름무늬의 벽화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고구려의 영향으로 보인다. 2호는 공주 무령왕릉과 같이 천장이 터널식으로 되어 있으며, 가장 먼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3호와 4호는 천장을 반쯤 뉘어 비스듬히 만든 후 판석을 덮은 평사천장이고 짧은 널길을 가졌다. 이 형식은 부여에 많으며 최후까지 유행한 것으로 보인다. 고분군 서쪽 절터에서는 백제금동대향로(국보)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국보)이 출토되어 왕릉일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고 있다.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에도 포함되었다. 인근 관광지로는 부여 능안골 고분군, 부여나성, 부여 중정리 백제건물지, 국립부여박물관 등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왕릉로 61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은 충남 부여군 소재지 북부에 위치한 백제시대 유적이다. 부여의 진산인 부소산(96.4m)에는 낙화암, 백화정, 사자루, 반월루, 궁녀사, 고란사, 부소산성, 영일루, 백제의 마지막 충신인 성충, 흥수, 계백을 기리는 삼충사, 곡식 창고터였던 군창지, 수혈병영지등 백제의 유적이 매우 많다. 부소산성은 금강의 남안에 있는 부소산의 산정을 중심으로 쌓은 테뫼식, 포곡식 복합 산성이다. 백제시대에는 사비성, 소부리성으로 부른 것으로 보이나 산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으로 불리고 있다. 백제의 수도인 사비 도성의 일환이며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538년(성왕 16년) 사비 천도 시 혹은 그 이전에 축조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 백제 멸망 이전과 이후에 계속 개보수되어 현재에 이른다. 부소산성 아래 관북리 725번지 일원에 위치한 관북리유적은 그동안의 발굴 결과 도로 유적, 배수시설 유적, 토기 등이 출토되어 현재 왕궁지로 추정되고 있다.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은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역사유적지구에도 포함되었다. 사비도성 가상체험관도 들어서 유적을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으며 매년 가을 대백제전이 개최된다. 인근 관광지로는 정림사지 5층석탑, 부여 구아리유적, 부여 쌍북리 요지, 부여향교, 궁남지, 국립부여박물관 등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

보은 삼년산성
충북 보은군 보은읍 성주 1길 104에는 신라시대 산성인 삼년산성이 있다. 둘레 1.7㎞, 넓이 8~10m, 높이 13~20m 규모의 삼년산성은 난공불락의 요새다. 성벽 아래에 서면 정육각형 벽돌로 깎아 쌓은 정교한 솜씨와 높고 튼튼한 기품에 압도된다. 삼년산성이라는 이름은 성을 쌓는 데 3년이 걸렸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삼국시대 보은의 지명이 삼년군이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백제 성왕을 공격한 신라의 관산성 전투부대가 이곳에 주둔했었다. 태종무열왕이 당나라 사신을 접견한 곳도, 고려 왕건이 패퇴해 물러간 곳도 이곳이다. 삼국통일의 유리한 거점이었던 성곽에는 당시의 치열했던 전투는 간곳없고 돌에 낀 이끼에 평화가 느껴진다. 주차장에서 10여 분을 오르면 산성 탐방이 시작되는 서문에 닿는다. 웅장한 성벽이 양쪽으로 서 있는데, 거대한 문은 어디 가고 문을 달았던 자리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다. 조선시대 학자 김생의 글씨가 새겨진 암벽과 물이 사라진 연못이 평화로이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다. 성벽을 따라 발길을 옮기면 고즈넉한 성벽 너머 먼 산 능선들이 정답게 이어진다.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 성주1길 104

서산 해미읍성
서산 해미읍성은 1491년 조선 성종 때 축조된 대표적인 평지 읍성으로 둘레 약 1.8㎞의 석성과 동문·남문·서문이 잘 보존된 역사 유적이다. 복원 사업을 거쳐 현재는 사적공원으로 조성되어 성곽을 따라 걸으며 조선 시대의 건축과 방어 체계를 살펴볼 수 있다. 넓은 성내와 고즈넉한 풍경이 어우러져 역사와 산책을 함께 즐기기 좋은 명소이다. 이곳은 조선 후기 천주교 박해 당시 수많은 신자가 고문과 순교를 당한 장소로 감옥터와 회화나무, 자리개돌 등 당시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유적이 남아 있다. 성곽 곳곳에 남겨진 역사적 흔적은 우리 근현대사의 아픔과 신앙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며 역사 교육과 문화 탐방지로도 의미가 깊은 공간이다.
충청남도 서산시 해미면 남문2로 143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서산마애삼존불이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백제 후기인 7세기경에 바위에 불상을 새긴 것으로 백제의 미소가 어떤 것인지를 느낄 수 있는 문화재이자 예술 작품이다. 본존인 석가여래입상을 중심으로 오른편에는 가부좌를 틀고 있는 미륵반가사유상이, 왼편에는 제화갈라보살입상이 새겨져 있다. 불상의 광배까지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고 특히 본존의 연꽃과 불꽃무늬의 광배가 살아 있다. 때로는 근엄하게, 때로는 온화해 보이는 불상의 얼굴은 해가 비치는 시간에 따라 달리 보여 더욱 신비롭다. 서산 지역은 백제 후기에 수도 웅진(공주), 사비(부여)와 중국 등을 연결하는 서해 항구가 있었다. 이것 역시 이러한 서산의 역사와 관련하여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 멸망 후 지역 내에서만 알려져 있다가 1959년경에 본격적으로 세상에 알려져 1962년에는 역사·예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국보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용현계곡 내에 위치해 있으며 서산아라메길 천년미소길의 경유지이므로 연계하여 관광해도 좋다. 주변에는 용현계곡 외에 서산 보원사지, 용현자연휴양림, 고풍저수지 등이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마애삼존불길 65-13

보령 성주사지
보령 성주사지는 보령시 동부 성주산(676.7m) 남쪽 골짜기에 있는 절터이다. 성주사는 통일신라 말기 9 산선문 중 하나로 이름 높았던 곳으로 아주 번성했던 사찰이다. 성주사는 6세기경 백제 법왕에 의해 오합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고, 성주사로 개명된 것은 통일신라 말기로 전해진다. 전성기 성주사는 총 천여 칸, 승려 2,000여 명에 이르는 큰 규모였다. 이러한 영향으로 절터에서 백제시대에서부터 조선 초기에 이르는 유물들이 발굴되고 있다. 사적으로 지정된 성주사지에는 현재 국보 낭혜화상백월보광탑비, 보물 오 층 석탑, 보물 중앙삼층석탑, 보물 서삼층석탑,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석등, 충청남도 문화재자료인 석계단과 석불입상 등이 있다. 발굴 조사에 의해 금당지, 삼천불전지, 회랑지, 중 문지 등의 건물터가 드러났다. 절터 북서쪽에는 멋을 부려 세운 전각이 있는데, 그 안에 부도비가 있고 비문은 신라의 대문장가 고운 최치원이 글을 짓고 그의 조카 최인연이 글씨를 썼다. 지금은 바로 옆에 세워진 성주사지 천년역사관에서 전시물들을 관람할 수 있다. 보령 성주사지는 국도 40호선에서 심원계곡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으며, 서해안고속도로 대천 IC, 무창포 IC와 서천공주고속도로 서부여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성주산 외에 보령무궁화수목원, 보령석탄박물관, 보령시청소년수련관, 심연동계곡(성주계곡), 성주면 소재지 등이 있다.
충청남도 보령시 성주면 성주리
홍성 홍주의사총
홍성 홍주의사총은 조선말기 홍성 지역에서 있었던 의병 운동에서 일본군과 싸우다 희생된 분들의 유해를 모신 곳이다. 1905년 일본의 강압에 의해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홍주 지역에서는 1906년에 전 이조참판 민종식이 채광묵, 박인기, 이만식, 농민, 유생 구 관리를 중심으로 홍주성에 쳐들어갔는데 당시 홍성 군수 이교석과 이주승도 처음에는 의병 군에 호응할 기미였다가 일본군 다수가 입성한다는 소식을 듣고 성문을 닫고 입성을 막아 부득이 물러난 후 재차 홍주성에 쳐들어갔으며 5월 19일에 홍주성을 함락시켰다. 그 후 일본군이 홍주성의 의병 군을 공격하여 30일부터 본격전이 시작되었으며 그때에 일본군 대포에 의해 조양문이 부서졌고 중과부적으로 의병 수백 명이 전사하여 시체가 대교리 일대의 냇가와 남산 일대에 흩어져 있었다. 1949년 4월 5일 홍성 군수 박주철과 홍성 경찰서장 박헌교가 직원들을 인솔하고 현재 의사총이 있는 부근에서 식수하다가 의외로 많은 유골을 발견하였다. 병오 항일의병 시 전사한 의병 군의 유골이 임시 매장된 것으로 판명되어 충청남도에 그 사실을 보고하고 도비를 지원받아 유골을 모아 이곳에 합장하여 분묘를 조성하였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의사로 79

대전엑스포과학공원
우리나라 최초의 국제박람회기구(BIE) 공인 전문 엑스포로 개최되었던 '93년 대전세계박람회를 기념하기 위해 그 시설과 부지를 국민 과학교육의 장으로 활용하기 위하여 조성된 과학공원이다. 대전엑스포과학공원에는 지혜로운 과거를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잇는 한줄기 빛이라는 의미의 한빛탑이 있다. 높이 93m의 한빛탑은 과학과 우주를 모티브로 한 전망대로 공원을 비롯해 대전 시내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이다. 한빛탑 앞에는 엑스포다리까지 이어지는 물빛광장 음악분수가 있어 공원을 방문한 사람들에게 신나는 노래와 분수 쇼를 제공한다. 야간 운영 기간에는 한빛탑을 배경으로 화려한 미디어파사드가 펼쳐진다. 야간 특수 조명을 활용하여 형형색색의 영상물을 감상할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덕대로 480 (도룡동)
삼형제 저수지
삼형제 저수지는 음성에 있는 무극저수지, 금석저수지, 용계저수지를 일컫는 말이다. 미호천 개발사업으로 1980년 3월에 준공되었다. 한국에서는 유일하게 산을 두고 도수터널로 세 저수지가 연결되어 있어서 수면의 높이가 항상 일정하다. 무극저수지는 야산에 둘러싸여 조용하고 경관이 수려하며, 물이 맑아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다. 금석저수지는 물이 맑고 수심이 깊으며 수초지대가 없어 여름이나 겨울철 얼음 낚시터로 주목받는 곳이다. 인근의 산에는 전망대와 등산로, 체육시설, 주민들의 휴식공간 등을 갖춘 유원지가 있어서 명소가 되고 있다. 용계저수지는 남서쪽의 소속리산을 주수원으로 하는 전형적인 계곡형 저수지다. 물은 맑지만 수심이 깊고 가파르며 남북으로 길게 이어져 있다. 토종붕어, 잉붕어, 누치, 향어 등 민물고기가 서식하여 낚시터로 유명하다. 수온이 낮아 5월 중순 이후부터 낚시를 할 수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사정리

금남 백로 서식지
금남면 백로 서식지는 1만여 평의 야산에 백로가 서식하고 있는 곳을 일컫는다. 조선시대부터 형성되어 현재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백로 외에 왜가리, 황로 등도 서식하고 있는데 많을 때는 5,000여 마리가 넘는다고 한다. 백로가 많이 날아오는 해는 풍년이 들고 적게 날아오는 해에는 흉년이 든다고 전해진다. 이곳의 여행 시기로는 4월과 5월이 적기인데 그 이유는 이 시기에 가장 많은 백로가 날아와 장관을 이루기 때문이다. 백로는 황새목 백로과에 속하는 물새의 한 종류이다. 몸빛은 백색이나 눈 주위에는 황백색을 띠며 긴 부리와 다리는 흑색, 발가락은 황녹색이다.
세종특별자치시 금남면 감성리
국립망향의동산
국립 망향의 동산은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고국을 떠나 망국의 서러움과 갖은 고난 속에서 고향을 그리며 숨진 재일동포를 비롯한 해외동포들의 안식을 위해 세워진 곳이다. 해외동포 이외에도,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사할린동포 등 일제강점기에 국외로 강제동원된 분들의 안식처로서 역할을 다하고 있다. 우리 후손들에게는 국권 상실의 아픔과 교훈을 일깨워 주는 역사적 장소로서 기능을 다하고 있다. 주요 시설물로 위령탑, 유족대기실, 홍보관, 분수대, 일본군위안부피해자추모비 등이 있다.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망향로 372-8

외암민속마을
국가민속문화유산로 지정된 마을이다. 마을은 500여 년 전부터 형성이 되었고, 마을의 터가 좋아 한국의 살기 좋은 마을 10선에 선정되었다. 마을 주민들은 조상 대대로 농업에 종사, 전통문화를 지키며 살아가고 있으며 오시는 관람객들에게 다양한 볼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장승제를 지내고 10월에는 짚풀문화제, 11월에는 동지행사를 하며 마을 앞에는 조선시대 시장인 저잣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먹거리 및 공연을 관람할 수 있다. 아름다운 우리의 전통문화를 가꾸어 가는 외암민속마을에서 전통문화를 즐기다 보면 어느덧 어렵게 느껴지던 전통문화들이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드라마 드라마 의 주 촬영지는 바로 외암민속마을이다. 주인공들에게만 보이는 영혼들의 마을을 배경으로 사건의 진실을 쫓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이 드라마에서 외암민속마을은 신비롭고 고즈넉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극의 몰입감을 더한다.
충청남도 아산시 송악면 외암민속길9번길 13-2
진천 노원리 왜가리 번식지
진천군 이월면 노원리 노곡마을 뒤에는 수령이 약 800년 된 것으로 추정되는 은행나무가 있다. 이 주변이 우리 고장에서 유일하게 천연기념물 제13호로 지정된 왜가리 번식지이다. 1970년까지 노원리 보호 지역 내에서 자라고 있는 은행나무를 중심으로 수백 마리의 백로류 및 왜가리가 번식하여 왔다. 그러나 현재는 이 은행나무가 새들의 배설물에 의해 말라죽어가고 있으며, 5∼6개 둥지의 중대백로만 남아 있고, 왜가리와 백로들은 주변 숲으로 옮겨 살고 있다. 진천의 왜가리 번식지는 수질 오염으로 인해 왜가리의 먹이가 되는 개구리, 미꾸라지 등이 줄어 수가 감소되었으나, 우리나라 왜가리 번식지를 대표하는 지역이므로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왜가리는 우리나라의 백로과 새들 중에서 제일 큰 새로 우리나라 전 지역에 걸쳐 번식하는 여름새이며, 일부는 남쪽 지방과 섬 지방에서 겨울을 나는 텃새이다. 날개 길이는 45cm가량이고, 이마와 머리꼭대기가 흰색이다. 이마 양쪽에는 눈 위를 지나 뒷머리에서 합쳐지는 넓은 검은색의 띠가 있다. 가슴 옆과 배는 검은색이며 배에는 흰색 깃털이 섞여 있고, 옆구리는 어두운 회색이다. 부리는 갈색을 띤 황색이며, 긴 다리는 갈색이다. 다리와 부리는 길고 날카로우며 뾰족하고 셋째 발가락과 넷째 발가락 사이에 얇은 물갈퀴가 있다. 4∼6월에는 큰 나무 높은 곳에 둥지를 짓고 청록색의 알을 4개씩 낳는 습성이 있다. 논이나 하천, 호수 등지에서 떼 지어 살며 물고기와 조개, 개구리, 게 등을 잡아먹는다. 하절기가 시작되면 백곡 저수지 상류에 날아와 물고기 등 먹이를 잡아먹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이월면 논실길 113-12

국립대전현충원 보훈둘레길
국립대전현충원 내 보훈둘레길은 보훈가족과 방문객들이 편안하게 걸으며 나라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조성된 둘레길이다. 현충원 묘역을 따라 조성된 이 길은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쪽빛, 보라 총 7개의 코스로 구성되어 있어 ‘무지개길’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린다. 숲 속 오솔길 형태로 조성돼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으며, 노약자와 어린이도 부담 없이 걸을 수 있을 만큼 완만하다. 나무 그늘 덕분에 여름철에도 쾌적하게 이용할 수 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호국철도기념관, 소나무숲, 대나무숲, 전망대 등 다양한 볼거리를 만날 수 있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현충원로 251

청풍문화유산단지
충청북도 제천 청풍 지역은 수려한 자연경관과 풍부한 문화유산을 지닌 곳이었으나, 충주댐 건설로 인해 마을과 유산이 수몰될 위기에 놓였다. 이에 따라 1980년대 초부터 수몰 지역에 있던 문화유산들을 원형대로 이전·복원하여 현재의 청풍문화유산단지가 조성되었다. 단지에는 향교와 관아, 민가, 석물 등 총 40여 점의 문화유산과 생활 유물이 전시되어 있으며, 청풍 한벽루를 비롯한 주요 건축물과 유적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특히 고려시대 누각인 한벽루에서 바라보는 충주호의 풍경은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이처럼 청풍문화유산단지는 역사적 가치와 자연 풍경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옛 청풍의 생활상과 전통문화를 함께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청풍면 청풍호로 2048
고산 9경
괴산읍에서 수안보로 가는 19번 국도를 따라 4㎞쯤 가면 속리산에서 발원해 남한강의 상류와 합쳐지는 달천 양측 기슭에 있는 9개의 명승지이다. 고산은 넓은 들판 가운데 솟은 산으로 달천이 태극 모양으로 감싸며 흐르고 있다. 고산정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면 멀리는 속리산에서 발원한 푸른 물이 정자 밑을 돌아 흐르고 남으로는 작은 봉우리들이 마치 말을 탄 수천의 군사가 진을 친 듯하다. 조선 선조 때 충청도 관찰사로 온 유근이 이곳에 만송정과 고산정사를 지은 뒤, 광해군 때 혼탁한 정치를 피해 이곳에 은거할 무렵 고산 9경을 정하였다고 한다. 제1경은 만송정, 제2경은 황니판, 제3경은 관어대, 제4경은 은병암, 제5경은 제월대, 제6경은 창벽, 제7경은 영객령, 제8경은 영화담, 제9경은 고산정사이다. 제1경 고산정은 조선 선조 때의 명현 서경 유근이 충청 관찰사로 있을 때인 1596년에 창건하였으며 만송정이라 하였다. 광해군 때 어지러운 정치를 피해 고향에 돌아와 이곳에 머물면서 고산정이라 개칭하였다. 선조 때 명나라 학자 주지번이 썼다는 ‘은병’ 두 글자가 새겨져 있다. 1978년 10월 27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제3경 관어대는 영화담 위에 있으며 바위 절벽 아래서 내려다보면 한가롭게 놀고 있는 물고기들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세속을 떠난 신선처럼 마음의 평화를 찾을 수 있는 곳이다. 제4경 은병암은 제월대에서 강을 따라 조금 내려가면 푸른 강물이 S자로 크게 굽이치는 절벽과 절벽에 연이은 큰 바위들이 강물에 반쯤 드리워져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는데 이 바위를 은병암이라 한다. 제5경 제월대는 고산정이 있는 부분의 절벽 부분을 지칭하는 것으로 일반적으로 강줄기 양편에 흩어진 일련의 경승지를 통칭한다. 제8경 영화담은 고산정 아래로 속리산으로부터 흐르는 푸른 물이 여울 소리를 내며 유유히 흘러와 정자 밑에서 머물러 못을 이루는 곳이다. 푸른 연못처럼 평온하고 많은 물고기들이 노닐고 있어 한 폭의 동양화를 연상시킨다. 봄에 진달래꽃이 피면 꽃 그림자가 물에 비쳐서 산 그림을 펼쳐 놓은 것처럼 아름다우며 봄부터 가을까지 관광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제9경 고산정사는 고산정에 걸려 있는 고산정이란 글을 말하며 숙종 때 편찬된 『괴산군읍지』에 의하면 1695년(숙종 21)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주변에 충민사, 속리산국립공원, 쌍곡계곡, 괴강유원지, 각연사, 괴산호, 선유동구곡, 화양구곡, 미선나무자생지, 조령산자연휴양림, 공림사, 갈론계곡, 수옥정관광지 등 문화유적지와 관광지가 많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제월리

괴산 송덕리 미선나무 자생지
송덕리 미선나무 자생지는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자생하는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미선나무가 무리를 지어 자생하는 곳이다. 1955년 발견되었는데, 자생지 주변은 흙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바위가 많은 산기슭으로 바위 위에는 기린초의 작은 군락이 있다. 미선나무는 1919년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용정리에서 처음 발견되었다. 그 후 원산지인 진천에서 멸종되었는데, 1955년 괴산군 장연면 송덕리, 1965년 장연면 추점리, 1967년 칠성면 율지리에서 자생지가 발견됐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됐다. 미선나무는 낙엽이 지는 떨기나무로 키가 1m 내외로 자라는 관상목류이며, 어린가지는 4각이 지며 끝부분이 다소 아래로 휘어진다. 네모진 어린가지는 자라면서 원형으로 바뀌며, 줄기의 속은 개나리처럼 비어있어 꺾꽂이, 휘묻이 등이 가능하다. 잎은 마주나기로 달리고, 꽃은 잎이 나오기 전(3~4월)에 흰색 또는 엷은 도홍색으로 핀다. 6~7월 무렵에 담홍색을 띠는 둥근 부채 모양의 열매를 맺어 가을에 익는다. 미선나무라는 이름은 이러한 열매모양에서 유래되었다. 열매는 모양이 특이하고 꽃이 아름다워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나라 특산식물 중의 하나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장연면 송덕리
보은 속리 정이품송
속리산 법주사로 가는 길 한가운데 서 있는 속리의 정이품송은 나이가 약 600년 이상으로 추정되는 소나무로 높이는 15m, 가슴둘레 4.5m, 가지의 길이는 동쪽 10.3m, 서쪽 9.6m, 북쪽 10m이며 총면적은 1158.3㎡에 이른다. 벼슬품계인 정 2품을 받은 나무로 속리산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소나무가 정이품송이라는 이름을 얻게 된 데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세조 10년(1464)에 왕이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래를 지나게 되었는데, 가지가 아래로 처져 있어 가마가 가지에 걸리게 되었다. 이에 세조가 "가마가 걸린다"고 말하니 소나무가 자신의 가지를 위로 들어 왕이 무사히 지나가도록 하였다 한다. 또 세조가 이곳을 지나다가 이 나무 아래에서 비를 피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세조는 이 소나무의 충정을 기리기 위하여 정2품(현재의 장관급) 벼슬을 내렸고, 이 소나무를 정이품소나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소나무는 살아오는 동안 각종 재해를 입었는데, 특히 1980년대 초 솔잎혹파리의 피해 때문에 많은 비용을 들여 대규모 방충망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 소나무는 원래 삿갓 또는 우산을 편 모양으로 단정하고 아름다운 모습이었는데, 1993년 강풍으로 서쪽 큰 가지가 부러져 그 모습이 많이 상하였다. 하지만 전체적인 나무의 모양이 매우 아름다우며, 크고 오래된 나무여서 생물학 및 생물유전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매우 크고, 임금을 섬기는 그 시대상을 잘 전해주는 전설을 가지고 있는 등 문화적인 가치 또한 크기 때문에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99

서천 마량리 동백나무 숲
서천 팔경 중의 한 곳인 서면 마랑리 동백나무 숲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는 5백여 년 수령의 동백나무 85주가 8,265㎡에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동백나무 숲에 가면 3월 하순부터 5월 초순까지 푸른 잎 사이에 수줍은 듯 피어있는 붉은 동백꽃을 마음껏 감상할 수 있으며, 정상에 있는 동백정에 올라가면 서해의 푸른 바다와 낙조의 아름다움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특히, 바로 앞에 있는 섬인 오력도의 풍경과 어울린 바다의 모습은 한 폭의 동양화를 감상하는 듯한 즐거움을 준다.마량리 동백나무 숲 서쪽은 바람이 강하여 몇 그루만이 남아있고, 동쪽에는 70여 그루가 분포하고 있다. 차나무과에 속하는 동백나무는 키가 7m 까지 자라는 난대성 상록활엽수이지만 이곳의 동백나무는 강한 바람 때문에 키가 2m 내외이며, 옆으로 퍼져있다. 전설에 의하면 약 500년 전 마량의 수군첨사가 꿈에 바닷가에 있는 꽃뭉치를 많이 증식시키면 마을에 항상 웃음꽃이 피고 번영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고 바닷가에 가보니 정말 꽃이 있어 증식시킨 것이라고 전해져 온다. 그 뒤 마을 사람들은 매년 음력 정월에 이곳에 모여서 고기가 많이 잡히고, 바다에서 무사하게 해달라고 비는 제사를 지내왔다고 한다. 현재 이 숲은 마을의 방풍림구실을 하고 있다. 또한 이 지역은 지구의 자전 공전과 함께 지리적 특수성으로 인해 서해안에서 일출과 일몰을 동시에 볼 수 있어 많은 인기를 얻고 있다. 마량리에는 큰 규모의 발전소가 있고 발전소의 뒷길을 따라 가다가 언덕 돌계단을 지나 잠시 올라가면 언덕 위에 동백정이란 누정(樓亭)이 있다. 이 언덕에 나는 동백나무는 그 사이에 약간의 거리를 두고 있고 나무모양은 원형에 가깝다. 이 동백나무숲은 방풍의 목적으로 심어졌다 하나 방풍의 기능을 찾아보기 어렵다. 마량리 동백나무숲은 서도초등학교에서 4.5㎞정도 떨어진 바닷가의 낮은 언덕에 위치하고 있다. 언덕에서 조금 더 올라가면 동백정(冬栢亭)이라는 아담한 정자가 있는데, 이곳에 80여 그루의 동백 나무가 흩어져 자라고 있다. 한편, 마량리 동백나무숲은 우리나라에서 몇 안되는 동백 나무숲으로서 동백나무가 자랄 수 있는 북쪽 한계선상에 위치하고 있어 식물 분포학적 가치가 높다. 또한 풍어제 및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숲으로서 문화적 가치도 높아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동백나무는 차나무과에 속하는 나무로 우리나라를 비롯하여 일본·중국 등의 따뜻한 지방에 분포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남쪽해안이나 섬에서 자란다. 꽃은 이른 봄에 피는데, 매우 아름다우며 꽃이 피는 시기에따라 춘백(春栢), 추백(秋栢), 동백(冬栢)으로 부른다. 마량리 동백나무는 춘백(春栢) 상록활엽 교목으로, 잎이 두텁고 표면이 진한 녹색으로 광택이 있고 잎이 많이 빽빽하게 붙어 있어서 아름답게 보인다. 그 뿐만 아니라 늦겨울철부터 피어나는 붉은 꽃은 늦은 봄까지 만발하여 그 아름다움을 더해준다. 500여 년 전 이 마을 사람들은 뗏목을 타고, 바다에 나가 고기잡이를 하였는데 바다에 휩쓸려 돌아오지 못하는 일이 많았다. 그러던 중 남편과 자식을 잃은 한 노파가 그 앞바다에서 용이 승천하는 것을 보고 용왕을 잘 위해야 화를 면하리라 생각하게 되었다. 백발노인의 현몽으로 해안사장에서 널에 들어있는 선황 다섯 분과 동백나무 씨앗을 얻어 선황은 신당에 모시고 동백나무 씨앗을 주변에 심었다. 동백나무 숲 85주가 무성하며, 매년 정월 초하룻날 당에 올라 초사흘날까지 제사를 지내온 것이 지금까지 전승되고 있으며, 그 후부터 고기잡이에서 화를 입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내용으로 제사는 선창제, 독경, 대잡이 , 마당제, 용와제, 거리제로 이어져 제사가 시작되기 수일전에 경비로 호당 쌀 한되씩 거두어 드리고 신당부근에 수십개의 어선깃발 풍어, 만선을 꽂고, 화주, 화장(선주의일을 도와주는사람), 당굴(대잡는 사람) 2~3명 등의 의상 준비 등 제반 준비가 끝낸다.
충청남도 서천군 서면 마량리
금강하구둑(군산)
금강 하구둑은 충남과 전북의 6개 시군을 대상으로 한 대단위 농업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농업기반공사가 8년동안 1천억원의 사업비를 투입하여 1990년도에 완공한 하구둑이다. 1억 3,000만톤의 담수량을 자랑하며 1,841m의 제방은 충남과 전북을 잇는 교량역할을 하고 있다. 전라북도와 충청남도 일원에 농업용수와 공업용수를 공급하고, 금강 주변 지역의 홍수를 조절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토양과 모래가 흘러내려 강하구에 쌓이는 것을 막아 군산항의 기능을 유지시키면서 바닷물의 역류를 막아 농경지의 염해 피해를 막을 수 있게 되었다. 또 금강하굿둑은 군산과 장항(長項)을 잇는 교통로로도 이용되어 관광지로서 큰 몫을 하고 있으며, 장항선의 일부인 신장항-군산 대야 철도가 놓여 있다. 금강하구둑은 충청도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싸안고 흐르고 있다. 활짝 펼쳐놓은 듯한 금강하구는 갈대숲과 어우러져 새로운 철새도래지로 각광받고 있는데 겨울동안 고니와 청둥오리, 세계적인 희귀조인 검은머리물떼새와 검은머리갈매기 등이 서식하는 것으로 조사되어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철새도래지를 많은 사람들이 관람토록 하기 위하여 철새전망대도 세워져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성산면 철새로 120
덕유산국립공원(남덕유분소)
백두대간의 중심부에 위치한 덕유산은 1975년 10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고, 행정구역 상으로 전북 무주군과 장수군, 경남 거창군과 함양군 등 영호남을 아우르는 4개 군에 걸쳐 있으며, 총 229.43㎢의 면적이 공원구역으로 지정되었다. 덕유산국립공원은 동쪽의 가야산, 서쪽의 내장산, 남쪽의 지리산, 북쪽의 계룡산과 속리산 등으로 둘러싸여 있고, 덕유산은 남한에서 네 번째로 높은 산(향적봉 1,614m)으로 생태계의 보전가치가 높으며, 북쪽으로 흘러가는 금강과 동쪽으로 흐르는 낙동강의 수원지이기도 하다. 덕유산 구천동 계곡은 13곳의 대, 10여 개의 못, 20개의 폭포 등 기암절벽과 여울들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곳으로 예로부터 선인들이 33 경이라고 이름 붙인 아름다운 계곡이다. 거창 지역으로는 월성계곡이 자리하고 있으며, 월성계곡 또한 아름답고, 계곡이 깊고 맑기로 알려진 곳으로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다. 덕유산(1,614m)은 주봉인 향적봉을 중심으로 1,300m 안팎의 장중한 능선이 남서쪽으로 장장 약 30km에 걸쳐 있으며, 향적봉을 중심으로 동쪽에는 지봉, 북쪽에는 칠봉이 자리하고 있는데 덕유산은 덕이 많은 너그러운 모산이라 해서 덕유산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덕유산국립공원 지역의 지질은 선캄브리아대 변성암류인 편마암을 기반으로 하여 이를 관입한 중생대의 화성암류 및 퇴적암류를 주체로 하고 있다. 덕유산 향적봉에서 남덕유산까지 고산부가 육중하고 부드러운 산세를 갖게 된 것도 이러한 편마암 지질 때문이다.
경상남도 거창군 북상면 덕유월성로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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