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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26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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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역사관광충청남도

월남 이상재선생 생가

조선 후기 사회 운동가인 이상재(1850∼1927) 선생의 생가가 있던 자리이다. 이상재는 종교가·정치가로 일찍이 기독교에 입교하여 신앙운동을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우고자 노력했다. 고종 18년(1881) 신사유람단의 수행원으로 일본을 시찰하고 돌아와 고종 25년(1888) 전권대신 박정양을 수행하여 주미공사 서기로 부임했다. 미국에 다녀온 뒤, 신문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광무 2년(1898) 서재필과 함께 독립협회를 조직하여 민중 계몽에 앞장섰다. 1927년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단일 전선을 결성하여 일본과 투쟁할 것을 목표로 신간회를 조직할 때, 창립회장으로 추대되었다. 저서로 논문집 『청년이여』, 『청년위국가지기초』 등이 있다. 선생의 생가는 안채와 사랑채가 있는 초가집으로 앞면 4칸·옆면 2칸 규모이며 대문은 솟을대문을 두었다. 안채는 1800년경에, 사랑채는 1926년경에 지었다고 하나 원래 건물은 1955년에 없어지고 지금 있는 건물은 1972년, 1980년 두 차례에 걸쳐 복원한 것이다. 생가 옆에는 유물전시관이 있어 선생이 생전에 남긴 유물들을 전시하고 있다.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종단길 71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
역사관광충청남도

서천 성북리 오층석탑

성북리 오층석탑은 높이 6.2m로 고려시대에 세워졌으면서도 백제 영토였던 서천 지역의 특색을 살려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과 닮은 백제계 양식을 취하고 있다. 이처럼 이 탑은 단층 기단에 5층의 탑신을 갖추는 등 백제계 석탑 양식을 가장 충실히 따르고 있다. 특히 각 면의 모습이 위는 좁고 아래는 넓어 사다리꼴을 하고 있는 것이 영락없는 백제의 탑이다. 그러므로 백제계 석탑 양식의 분포에 따른 그 전파 경로를 알아내는 데에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 가치가 있는 국가유산이다. 1963년에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로 지정되었다. 이곳은 주변에 비인읍성, 비인향교, 비인해수욕장, 월명산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하기 좋다.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 성북리

우산성
역사관광충청남도

우산성

우산성은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백제시대 축성한 산성이다. 대개 가로모양의 자연석을 모쌓기로 하였으며, 잘 남아 있는 곳의 성벽은 높이 7m, 폭 6m가량 된다. 남벽과 동벽이 만나는 곳, 북벽과 동벽이 만나는 부분은 다른 곳보다 높은데 아마도 전투 시 장수가 올라서 지휘하던 장대가 있던 곳으로 보인다. 성 안에서는 몇 개의 건물터와 저장용 구덩이가 확인되었으며, 세종실록지리지에 의하면 우물이 있다고 한다. 성에서 보이는 유물은 백제 토기조각이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기와조각도 확인되는 것으로 보아 이 성은 백제 때 쌓아 조선시대까지 사용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우산성을 따라 우산의 정상에 이르다 보면 칼바위 광장을 만나는데 보기 드문 기이한 모습의 바위들을 볼 수 있다. 정상에 위치한 청룡정 누각에 걸터앉아 청양의 전경을 내려다보면 산행 끝에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다.

충청남도 청양군 청양읍 백천리

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지
역사관광충청남도

만해 한용운선생 생가지

만해 한용운선생의 생가는 초가지붕을 얹었으며 방 두 칸, 부엌 한 칸으로 구성된 일자형 구조로 한용운이란 문패가 걸려있다. 댓돌이며 툇마루가 한없이 정겹고 우물과 장독대를 돌아 집 뒤 야산 언덕배기를 올려보면 적송과 조릿대가 자란다. 부엌 옆은 장작을 쌓아두는 헛간이고 사랑방 옆은 절구통과 맷돌이 보관된 헛간이다. 생가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위패와 영정을 모신 만해사라는 사당이 있다. 1879년 이곳 성곡리에서 태어난 한용운 선생은 6세부터 성곡리 서당골에서 한학을 배워 9세에 문리를 통달, 신동 소리를 들으며 자랐다. 26세에 강원도 백담사에 들어가 불문에 입도하였고 삼일운동 때 민족대표 33인의 한 사람으로 독립선언서에 서명, 체포되어 3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했다. 불교개혁운동에 일생을 바쳤으며 1944년 69세의 나이로 서울 성북동 심우장에서 별세했다.

충청남도 홍성군 결성면 만해로318번길 83

역사관광충청남도

김좌진 장군 생가지

김좌진장군생가지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백야 김좌진이 출생하고 성장한 곳으로 충남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생가는 안채, 사랑채, 곳간채로 구성되어 있으며, 안채는 김좌진 장군이 태어나고 성장한 곳으로, 사랑채는 김좌진 장군의 부친인 김두영 선생이 거주하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곳간채는 김좌진 장군의 가족들이 사용하던 창고로 사용되었다. 생가 주변에는 김좌진 장군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한 사당, 기념관, 백야공원 등이 조성되어 있다. 사당은 김좌진 장군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기념관은 김좌진 장군의 독립운동 활동을 전시하고 있는 곳이다. 백야공원은 김좌진 장군의 생가와 사당을 둘러싸고 있는 공원으로, 김좌진 장군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공간으로 자리 잡고 있다.

충청남도 홍성군 갈산면 백야로546번길 12

역사관광충청남도

안회당과 여하정

안회당은 조선시대 충남 서북부 지역의 중심지였던 홍주의 지방관이 근무하던 관청이다. 1678년에 처음 세웠고, 1870년 한응필 목사가 다시 크게 지었다. ‘안회당’이라는 이름은 논어의 ‘노자안지 붕우신지 소자회지’에서 인용한 것으로, ‘노인은 평안하게 모시고 벗은 믿음으로 대하고 아랫사람은 사랑으로 대해야 한다.’ 라는 의미이다. 현판의 글씨는 홍선대원군이 썼다고 전하는데, 광복 이후 분실되어 1991년에 새로 제작하였다. 여하정은 안회당의 뒤뜰에 있는 작은 연못에 세워진 정자이다. 19896년에 이승우 관찰사가 옛 청수정 자리에 세운 것이다. 이곳에서 역대 홍주목사들이 관아 일을 돌보다가 휴식을 취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정자는 육각형의 나무기둥으로 지붕을 떠받치고 있는데, 기둥에는 오언시가 주련으로 각 2개씩 총 12개가 걸려있다. 작은 규모의 정자이지만 고목과 연못의 연꽃들이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케 한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아문길 27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역사관광충청남도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은 1983년에 발견된 것으로 돌기둥 4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는 백제시대 유일의 사면불(四面佛)이다. 사면불은 일명 ‘사방불’이라고도 하는데, 동서남북 방위에 따라 사방 정토에 군림하는 신앙의 대상인 약사불, 아미타불, 석가불, 미륵불을 뜻한다. 남면에는 본존불로 생각되는 여래좌상이 있고, 나머지 면에는 여래입상이 각각 1구씩 새겨져 있다. 머리 부분은 많이 훼손된 채 서향과 북향만이 남아있고, 따로 끼울 수 있도록 되어있는 손은 모두 없어졌다. 4구의 불상은 모두 양 어깨에 옷을 걸치고 있으며, 가슴 부분에 띠매듭이 보인다. 옷주름이 매우 깊고 가슴아래에서 U자형으로 겹쳐 있다. 머리광배는 원형으로 불꽃무늬·연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백제 특유의 양식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석조 사방불로서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과 비교할 수 있어 백제미술사와 불교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

남연군의 묘
역사관광충청남도

남연군의 묘

남연군의 묘는 조선 흥선대원군의 아버지이자 고종의 할아버지인 남연군(본명 이구, 1788~1836)이 잠든 묘소로, 덕산도립공원 가야산 지구에 위치해 있다. 이 묘소는 원래 경기도 연천에 있었고, 이곳에는 가야사라는 사찰이 있었다. 그러나 이곳이 가야산 아래 풍수지리에서 말하는 좌청룡, 우백호가 웅장하게 뻗어 있어 [이대천자지지], 즉 2대에 걸쳐 황제가 되는 곳이라는 말을 들은 흥선대원군이 가야사를 불태워 폐사시키고 자신의 아버지 묘소를 이곳으로 이장하였다. 그리하여 흥선대원군 집안에서는 실제로 고종과 순종 2대에 걸쳐 황제가 배출되었다. 2018년에는 이러한 이야기를 다룬 영화 [명당]이 개봉되기도 하였다. 묘소 이장 이후엔 1869년에 독일인 오페르트가 조선에 통상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남연군의 시신을 볼모로 조선 조정을 협박하기 위해 이 묘소를 도굴하려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는데, 그 여파로 조선이 쇄국정책을 시행하고 천주교 박해가 더욱 강화된 역사적 의의가 있다. 지금은 다시 단장되고 1989년에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관람객을 맞고 있으며, 묘소 이장 당시 사라졌던 가야사지가 발굴되고 있다. 주변에는 가야산 외에 상가리 미륵불, 덕산온천, 충의사(매헌 윤봉길 의사 유적), 윤봉길의사기념관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역사관광충청남도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

충남 천안시 성환읍 대흥리 320에 위치한 천안 봉선홍경사 갈기비는 고려 현종 12년(1021년)에 봉선홍경사라는 사찰을 짓고 이를 기념하기 위해 현종 17년(1026)에 세운 비다. 절이 있던 곳은 호남과 한양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 갈대가 무성한 연못이 있었는데 민가와 떨어져 강도가 많았다. 이에 현종은 불법을 펴는 동시에 사람들의 안전한 왕래를 위해 이곳에 봉선홍경사라는 절을 짓고 광연통화원이라는 숙소를 세웠다. 봉선홍경사 갈기비 비문은 최충이 지었고 백현례가 글씨를 썼다.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환읍 대홍3길 77-48

부산각서석
역사관광충청남도

부산각서석

각서석은 바위에 글씨를 새긴 것을 말한다. 부산각서석은 부여 백마강 서쪽 기슭에 솟은 산인 부산의 동쪽 자락에 자리한 각서석으로 산을 깎아 세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정자 대재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백마강 너머로는 부여 시가지와 부소산성 등이 보인다. 이것은 조선 후기의 문신 백강 이경여(1585~1657)가 효종에게 청나라를 공격하여 병자호란의 치욕을 씻자는 내용의 상소를 올린 것에 대해 효종이 그의 뜻을 존중하면서도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답한 것이 그 기원이다. 우암 송시열(1607~1689)이 효종의 답변서 중에서 ‘지통재신’, ‘일모도원’ 8자를 골라 이경여의 아들 이민서에게 전한 것을 1700년(숙종 26)에 손자 이명이 바위에 새긴 것이 각서석이다. 그리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정자를 짓고 왕의 말씀이 크다는 뜻으로 ‘대재각’이라 하였다. 1976년에는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입구에는 부산서원이 있으며, 주변에는 백마강, 부소산성 외에 수북정, 부풍사 등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신리

천정대
역사관광충청남도

천정대

천정대 바위는 백제 때 재상을 선출하던 회의가 열린 곳으로 고대부터 신성시하던 곳이다. 부소산성에서 백마강을 거슬러 올라가면 범바위라는 바위가 있는데, 이곳에서 동북쪽에 임금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임금바위, 신하들이 하늘에 제사를 지낸 신하바위가 있는 곳이 천정대이다. 백제 조정에서 재상을 뽑을 때 후보자의 이름을 적어 밀봉하여 이곳 바위 위에 두었다가 열어보아 이름 위에 도장이 찍혀 있는 사람을 재상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천정대에서 임금과 신하가 하늘에 제사를 올리고 기원하였다는 전설을 통해 천명을 중히 여기고 이를 받들었음을, 그리고 회의를 통해 재상을 선출했다는 기록을 통해 부족사회의 풍습이 남아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곳의 경관이 아름다운 것을 통해 당시 국가의 중대사를 논할 때 자연경관도 신중히 고려한 것을 유추할 수 있다. 천정대는 바위산으로 침식을 많이 받아 남아있는 유적, 유물이 없어 전모를 확인할 수 없으나 주변에서는 백제시대의 연화 무늬 와당과 기와 조각이 출토된 적이 있다. 산 아래 서편 강변에 있는 마을은 호암리로 그곳에는 백제의 호암사 터가 남아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백제문로호암길 106-24

수북정
역사관광충청남도

수북정

수북정은 백마강 변에 있는 조선 후기의 정자로, 경치가 매우 뛰어나다. 조선 광해군(1608∼1623) 때 양주 목사 김흥국(1557∼1623)이 건립하였다 하며, 그의 호를 따서 수북정이라 명명되었다. 백마강이 유유히 흐르고 백제대교가 그대로 내려 보이는 수북정은 과거 문인들이 회합할 때 자주 이용되었다. 건물 구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장식한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또한, 신흠이 쓴 팔경시판(八景詩板)이 걸려 있다. 자연경관과 전통문화의 조화가 돋보이는 수북정은 자연 속에서의 휴식과 체험을 통해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제공하고 있다. 동시에 관광객이 자연 속에서 직접 전통문화를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여 역사적 스토리텔링과 문화를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수북정 아래쪽에는 백제시대에 왕이 왕흥사에 행차하는 길에 앉을 때마다 저절로 따뜻해졌다는 바위인 자온대가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규암리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오층석탑
사찰충청남도

천안 천흥사지 당간지주·오층석탑

천흥사지오층석탑은 천흥사터에 서 있는 고려 시대의 탑이다. 아래층 기단의 4면에는 각 면마다 7개씩의 안상[眼象]이 촘촘히 조각되어 있다. 위층 기단의 4면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두었다. 탑신은 각 층의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하나의 돌로 새겼다. 몸돌은 4면의 모서리에만 기둥 모양을 뚜렷하게 새겨놓았고, 위층으로 올라가면서 줄어드는 비율이 비교적 완만하다. 지붕돌은 얇고 너비가 좁으며, 밑받침이 3단으로 매우 얕게 조각되었다. 전체적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우며 돌의 구성에도 규율성이 있다. 특히 탑신에서 보이는 완만한 체감률은 온화하고 장중한 느낌을 더해준다.(높이 6m) 천흥사지 당간지주는 고려 태조 4년(921)에 창건되었던 천흥사의 당간지주로 천안시 천흥리 마을의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다. 절에서는 의식이 있을 때 절의 입구에 당[幢]이라는 깃발을 달아두는데, 깃발을 달아두는 장대를 당간[幢竿]이라고 하며, 이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 주는 두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양지주는 60㎝의 간격을 두고 동·서로 마주 보고 있으며, 2단의 기단[基壇] 위에 당간과 지주를 받고 있었던 것이나, 기단과 간대석 모두 파괴되어 흩어졌다. 기단은 흩어져 있던 것을 복원하였는데 기단 주위에 안상[眼象]을 새겨 넣어 당간지주의 장식화된 측면을 보이고 있다.(높이 3m)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성거읍 천흥4길 115-5

아산 이충무공묘
역사관광충청남도

아산 이충무공묘

충무공 이순신(1545∼1598) 장군의 무덤이다. 충무공 이순신의 본관은 덕수이며, 1545년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충무공은 무과에 합격하여 여러 직책을 거쳤는데, 임진왜란이 일어나기 직전에는 전라좌수사라는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충무공은 일본의 침입에 대비하여 군사를 훈련시키고 거북선을 만들었다. 그리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옥포, 노량, 당포, 한산도 등 여러 곳에서 적을 무찌르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그러다가 노량해전에서 적의 총을 맞고 숨졌으나, 사실을 숨기고 조카인 완이 대신 지휘하여 왜적은 큰 피해를 입고 도망을 갔다.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적이 패퇴한 뒤에 공의 서거를 발표하였다. 선조 32년(1598)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유해는 남해 충렬사에 안치되었다가 본영이 있던 고금도에 임시로 안장하였다. 그러다 1599년 운구되어 금성산에 장사되었다가 광해 6년(1614)에 현충사에서 9㎞ 떨어진 음봉면 어라산에 이장되었다. 후손들이 관리하다가 1973년부터는 종손의 동의를 얻어 국가유산청 현충사관리소에서 묘역을 관리하고 있다. 무덤 주위에는 제사 지낼 때 음식을 차려놓는 상석과 혼이 놀다간다는 혼유석과 향로석이 있으며, 동자상 1쌍, 망주석 1쌍, 석상 1쌍, 문인석 1쌍, 광명등, 묘비석이 있다. 무덤 앞에는 정조 18년(1794)에 세워진 어제비(御製碑)와 비각이 있다.

충청남도 아산시 음봉면 고룡산로 12-38

현충사
역사관광충청남도

현충사

현충사는 임진왜란에서 나라를 구한 영웅 충무공 이순신장군의 사당으로 1706년(숙종 32)에 처음 세워졌다. 1932년에는 이충무공 유적보존회가 결성되어 사당을 다시 지은 후, 1966년부터 1974년까지 정부 차원에서 성역화하고 사적으로 지정하였다. 이곳은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일생 기록화인 십경도가 보존되어 있으며, 난중일기(국보) 등과 장검(보물) 등 관련 유물과 임진왜란 당시 해전 사료를 수집하고, 이를 전시 및 교육하기 위한 역사 테마관인 충무공이순신기념관이 함께 있다. 그 외에도 이순신 장군이 살던 옛집, 활터, 정려 등이 있다. 그리고 성인 5인 이상 30인 이하 단체를 대상으로 하루 6회씩 안내해설이 가능하며, 겨울을 제외한 계절에는 활쏘기 체험 프로그램이 운영된다. 이곳에서 자동차 기준 15분 거리에는 음봉면 삼거리에 충무공 이순신 장군 묘소가 있다. 그 외에도 주변에 온양온천, 아산곡교천야영장, 염치저수지 및 충무유원지, 지중해마을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충청남도 아산시 염치읍 현충사길 126

무극전적 국민관광지
테마파크충청북도

무극전적 국민관광지

무극전적 국민관광지는 6.25 전쟁 때에 국군이 최초로 승리를 거둔 음성지구 전투인 감우재 전투의 격전장이 되었던 곳에 전투의 승리를 기념하고 애국정신을 기리고자 국민 관광지 조성계획으로 1986년 6월 30일 18,499㎡의 부지에 무극전적 국민관광지를 조성하였다. 6·25 전쟁 최초승전을 기리기 위해 전승비, 전승탑 등이 있으며, 조국광복과 수호를 위하여 순국하신 애국선열과 반공전몰 용사를 봉양하기 위한 충혼탑, 세계평화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하여 월남전에 참가하여 국위를 선양한 대한해외참전 기념탑, 새천년 밀레니엄 기념사업의 일환으로 현재의 문명과 생활을 사랑하는 후손에게 전해 주는 가교가 되어 선조들의 삶과 전통을 후세의 교육자료로 활용하기 위한 음성군타임캡슐 2000이 자리 잡고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생음대로 594

진천 금성대군 사당
역사관광충청북도

진천 금성대군 사당

진천군에 위치한 금성대군 사당은 세종대왕의 여섯째 아들인 금성대군(1426∼1457)을 봉향하고 있는 사당이다. 조선 영조 16년(1740)에 창건하고, 1974년에 삼문과 담장을 보수하였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금성대군은세종의 여섯째 왕자로 이름은 이 유, 어머니는 소헌왕후 심씨이다. 세조 2년(1456) 성삼문 등 사육신의 단종 복위운동이 실패하자 이에 연류되어 순흥으로 유배되었는데 다시 단종 복위를 꾀하다 고변을 당하여 이듬해 사사되었다.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 수의1길 75-8

진천 정송강사
역사관광충청북도

진천 정송강사

정송강사는 송강 정철선생(1536∼1593)의 위패를 봉안한 사당으로 지방기념물이다. 선생의 묘소는 원래 경기도 고양군 원당면 신원리에 있던 것을 현종 6년(1665)에 우암 송시열이 지금의 묘소로 자리를 정하고 그의 후손 정양이 이장하여 사우를 창건하였으나 규모가 작아 1979년에 전면 신축 정화하였다. 사당은 목조 19평 맞배지붕이고 유물전시관은 시멘트 32평 팔작지붕으로 되어있다. 경내에는 송강 묘소와 신도비가 있으며 송강 선생의 은배, 옥배 그리고 연행 일기 65일 분과 친필 편지 등이 보관, 전시되어 있다. 정송강사 왼쪽에 있는 마른 억새풀이 우거진 오솔길을 오르다 보면 송강의 묘소가 나온다.

충청북도 진천군 문백면 송강로 523

공주 공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역사관광충청남도

공주 공산성 [유네스코 세계유산]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성곽으로 웅진백제(475~538)를 지킨 왕성이다. 금강이 흐르는 해발 110m 능선과 계곡을 따라 흙으로 쌓은 포곡형(包谷形) 산성이다. 백제시대에는 웅진성, 고려시대공주산성, 고려시대 이후 공산성, 인조가 이괄의 난(1624)을 피해 산성에 머문 이후 쌍수산성으로도 불렀다. 조선 선조·인조 때 지금과 같은 석성(石城)으로 개축하였고, 이후 지속적으로 사용된 공산성에서 시대별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백제문화제 기간에는 공산성 앞에서 금강신관공원까지 부교로 건널 수 있다. 금서루에서는 백제왕국의 위풍당당함을 ‘웅진성수문병근무교대식’으로 볼 수 있고, 금강신관공원에서는 밤풍경이 아름다운 공산성 감상이 가능하다. (출처 : 공주 문화관광 홈페이지)

충청남도 공주시 웅진로 280

진천 길상사
역사관광충청북도

진천 길상사

진천 길상사는 삼국통일의 주역이었던 김유신 장군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김유신은 15세 때 화랑이 되었고, 무열왕 7년(660년) 상대등이 되었다. 그 뒤 중국 당나라와 연합하여 백제를 멸망시키고 나당연합군의 대총관이 되어 고구려를 정벌하고 삼국통일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신라와 고려 때에는 장군이 태어난 태령산 아래 장군의 사당에서 봄과 가을로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조선에 들어와서 관리가 소홀하다가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폐허가 된 것을 철종 2년(1851년) 백곡면에 죽계’를 세워 장군의 영정을 모셨다. 고종 1년(1864년)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헐렸는데 1926년 후손 김만희의 노력으로 지금 있는 자리에 길상사를 다시 세웠고, 1975년 정비하였다. 현재 이곳에는 장우성이 그린 그의 초상화와 흥무전, 흥무대왕신성비 등이 있다.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문진로 1411-38

제천 덕주산성
역사관광충청북도

제천 덕주산성

제천 덕주산성은 월악산의 남쪽 기슭에 있는 상덕주사를 중심으로 그 외곽을 여러 겹으로 둘러쌓은 석축산성이다. 월악산 남쪽 자락 일대는 남과 북을 잇는 도로의 길목으로 예로부터 전략적, 군사적 요충지였다. 신라 경순왕의 첫째 딸 덕주공주가 월악산에 머물면서 지세를 이용하여 쌓은 성이라 하여 덕주산성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덕주골로 들어가서 처음 만나는 성벽이 외성이고 하덕주사에서 마애불을 향해 올라가다가 도중에 보이는 성벽이 내성이다. 고려 고종 43년(1256) 몽골군이 충주를 공략하자 갑자기 구름, 바람, 우박이 쏟아져 적군들은 신이 돕는 땅이라 하여 달아난 전설이 있다. 또 조선 말기에는 명성왕후가 흥선대원군과의 권력다툼에서 패배할 것을 예상하고 은신처를 마련하려고 이곳에 성문을 축조했다고 전한다. 이 산성은 고려 때 몽고의 침입과 조선조 임진왜란, 병자호란으로 인해 수차례 파괴되어 현재는 홍문관만 남아있다. 누각이 없어진 석문에는 담쟁이넝쿨이 자라 있다. 제천시에서는 문화재 복원 사업으로 성곽 2,560m, 초루 3동을 복원하였으며 현재는 안팎으로 5겹의 성벽이 남아 있는데 그 축조 연대가 각각 달라 성을 축조하는 방법에 관한 귀중한 자료이다.

충청북도 제천시 한수면 송계리

당진 안국사지 석탑
문화관광충청남도

당진 안국사지 석탑

안국사지는 당진시내에서 서남쪽으로 10.5km 떨어진 정미면 수당리 원당굴 은봉산 중턱에 있는 절터이다. 안국사지 석불에서 서남쪽으로 500m쯤 채석장을 끼고 올라가면 1,000여 평의 터가 남아있다. 안국사터의 앞면은 돌로 축대를 쌓았고 터 안에는 장대석이 이리저이 나뒹굴고 주춧돌 3개가 보인다. 이 주춧돌들은 자연석이 아니라 양각 형태로 잘 다듬어서 사용했던 것들이다. 빈 터 한쪽에 작은 옹달샘이 있고, 그 뒤쪽으로는 부속건물이 있었음직한 터에 기와조각이 흩어져 남아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해미현조에 보면 "안국산에 안국사가 있다."는 기록이 있다. 창건연대는 문헌에 나타나 있지않아 분명치 않으나 백제 말엽 창건되어 고려 시대에 번창한 대사찰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언제 폐찰되었는지 알 수 없으며, 석불, 석탑, 석축, 배바위돌 하수구 등이 현존하여 사찰이었음을 입증하고 있다. 이 터의 동북쪽으로 500여m쯤 아래쪽에 보물 석불입상과 보물 석탑이 서 있고 그 뒤로 배바위 매향암각이라 불리는 큰 바위가 있다.

충청남도 당진시 정미면 원당골1길 188

옥천 석탄리 고인돌
역사관광충청북도

옥천 석탄리 고인돌

지석묘(고인돌)는 청동기시대의 무덤양식 중 하나로, 주검을 땅 위에 두는 탁자식(북방식)과 땅 아래에 두는 바둑판식(남방식), 그리고 주검을 지하에 묻고 그 위에 덮개돌만을 덮는 개석식의 세 종류가 있다. 옥천지석묘는 탁자식 고인돌로, 4면에 널돌을 세우고 그 위로 길고 평평한 덮개돌을 얹은 모습이었는데, 현재는 앞뒷면 널돌은 사라지고 양쪽면에만 널돌이 남아있다. 이곳에서 발견된 유물은 갈돌대, 돌쩌귀, 돌칼, 돌화살촉, 그물추, 구멍쪼으개, 여성을 나타낸 얼굴조각, 토기 등이다. 주로 식생활에 관련된 유물이 많아 묻힌 사람은 여자였을 것으로 판단된다.

충청북도 옥천군 동이면 안터1길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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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양문

조양문은 홍주성의 동문이며 홍성군의 관문으로 고종조에 목사 한응필이 홍주성을 석성으로 개축하고 동서남북의 문루도 다시 세웠다. 동문은 조양문 서문은 경의문 북문은 망화문이라 하는데, 대원군이 친필로 하사하였으며 남문은 문루가 없는 홍예문이었다. 북문은 역대 목사들이 문루에서 사형수의 처형을 감시하기도 하였는데, 동학운동 때 수백 명의 동학군이 여기에서 처형되었다. 고종 광무 10년(1906년) 항일의병이 일어나 일본군과 홍주성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는데 그때의 흔적이 조양문 곳곳에 보인다. 일본인들에 의하여 서문과 북문은 파괴되어 없어지고 조양문 또한 파괴되었으나 부분적인 보수로 퇴락되었던 것을 1975년 문루를 해체 복원하여 옛 모습을 찾게 되었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오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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