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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23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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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익산 고도리 석조여래입상

익산 고도리 석불입상은 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마주 서 있는 2구의 석상으로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사다리꼴 모양의 돌기둥에 얼굴, 손, 대좌 등이 표현되어 있다. 이 석불은 200m쯤 거리를 두고 서로 바라보고 서 있는 남녀상이다. 몸은 사다리꼴의 돌기둥으로 굴곡이 없으며, 팔은 표현되지 않고 손이 간신히 배에 나타내었다. 머리에는 4각형의 높은 관(冠) 위에 다시 4각형의 갓을 쓰고 있다. 4각형의 얼굴에는 가는 눈, 짧은 코, 작은 입이 간신히 표현되어 있는데, 토속적인 수호신의 표이다. 도포자락 같은 옷은 특별한 무늬 없이 몇 줄의 선으로 표현하였다. 대좌(臺座)와 불상을 같은 돌에 새겼는데, 앞면을 약간 깎아 대좌 같은 모양을 만들고 있다. 사다리꼴의 돌기둥 같은 신체나 비사실적인 조각 수법이 마치 분묘(墳墓)의 석인상(石人像)과 비슷하다. 고려 시대에 이르면 신체표현이 지극히 절제된 거대한 석상이 많이 만들어지는데 이 불상 역시 그러한 작품 중의 하나로 보인다. 익산 고도리 석불입상에는 사랑하는 연인의 이야기가 전설로 되어 전해지고 있다. 불상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음력 12월에 두 불상이 만나 1년 동안의 회포를 풀고 새벽닭 우는소리를 듣고 제자리로 돌아가는 남녀 상이라고 한다. 불상의 목을 보면 무척 짧게 표현되어 있으면서도 어깨와 얼굴이 거의 붙어있는데 이러한 형태가 연인의 전설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어 주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동고도리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
역사관광경상남도

함안 대산리 석조삼존상

대사골로 불리는 마을 앞에 3구의 불상이 남아 있어서 하나의 석불군을 이루고 있다. 좌우 측면의 불상은 다른 불상의 협시보살로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2구의 보살입상은 손모양만 다를 뿐 조각수법이 거의 비슷하다. 머리에는 두건 같은 높은 관을 쓰고 있으며 길쭉한 얼굴에 눈, 코, 입이 평판적으로 표현되었다. 우리나라 고유의 한복 같은 옷을 입고 있는데, 두껍고 무거운 느낌이다. 어깨의 매듭과 양 무릎에서 시작된 타원형의 옷주름은 불상의 가장 큰 특징이다. 이런 표현들은 고려시대 지방화된 불상양식에서 보이는 석조보살상들의 특징이다. 대좌(臺座)는 상대와 하대로 나누어지는 2단으로 되어 있으며 연꽃이 새겨져 있다. 그 아래 8각의 단에는 각 면마다 귀꽃을 표현해 놓아 통일신라 초기 양식을 계승한 것으로 보인다. 두 보살입상 사이의 중간에 놓인 머리가 없는 좌불상은 온몸에서 나오는 빛을 형상화한 광배(光背)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불상임을 확인할 수 있다.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대산리

무진정(함안)
역사관광경상남도

무진정(함안)

무진정은 풍류를 즐기기 위해 언덕 위에 지어진 정자이다. 이 정자는 조선 명종 22년(1567)에 무진(無盡) 조삼(趙參) 선생의 덕을 추모하기 위해 그의 후손들이 세우고, 선생의 호를 따서 무진정(無盡亭)이라고 하였다. 무진은 조선 성종 14년(1483) 진사시에 합격하고 중종 2년(1507) 문과에 급제하여 함양·창원·대구·성주·상주의 목사를 지냈고, 사헌부(司憲府) 집의(執義) 겸 춘추관(春秋館) 편수관(編修官)을 지냈다. 앞면 3칸·옆면 2칸의 건물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이다. 앞면의 가운데 칸에는 온돌방이 아닌 마루방으로 꾸며져 있고, 정자 바닥은 모두 바닥에서 띄워 올린 누마루 형식이다.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어 전체적으로 단순하고 소박한 건물로 조선 전기의 정자 형식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의 건물은 1929년 4월에 중건한 것으로 기둥 위에 아무런 장식이나 조각물이 없이 단순 소박하게 꾸민 팔작지붕의 건물로 조선 초기의 정자형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앞뒤의 퇴를 길게 빼고 중앙의 한 칸을 온돌방으로 꾸며놓았다. 매년 무진정 일대에서는 국민의 안녕을 기원하는 뜻에서 함안 고유의 민속놀이인 함안낙화놀이가 열린다. 함안 낙화놀이는 연등과 연등사이에 참나무 숯가루로 만든 낙화를 매달아 이 낙화에 불을 붙여 꽃가루처럼 물 위에 날리는 불꽃놀이이다.

경상남도 함안군 함안면 괴산4길 25

역사관광경상남도

광심정

광심정은 경상남도 창녕군 길곡면 낙동강 절벽 위에 자리한 조선시대 정자로, 선조 2년(1569) 용성송씨 문중의 젊은 유생들이 학문을 닦기 위해 건립하였다. 이후 현종 5년(1664) 성리학자 송지일 선생이 선비들과 학문을 연구하며 자신의 호를 따 '광심정'이라 이름 붙였다.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뒤 여러 차례 중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으며, 앞면과 옆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앞쪽은 마루, 뒤쪽은 방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서 깊은 역사와 함께 낙동강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상할 수 있어 역사와 자연을 함께 즐기기 좋은 문화유산이다. 상시 개방하는 곳이 아니므로 방문 전 관리 주체에 개방 여부를 미리 확인한 후 찾는 것이 좋다.

경상남도 함안군 칠북면 봉촌2길 277

역사관광경상남도

안국사(함양)

안국사는 태종 3년(1403년)에 행호조사가 국태민안을 기원하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1947년 소실되었다가 1965년에 중건되었으며 안국사 부도가 특이하다. 안국사를 지나 비탈길을 계속 올라가면 산 정상의 구부증선 아래에 금대암이 있는데 안국사와 같은 시대 같은 사람이 창건한 안국사의 암자였지만 지금은 안국사보다 크고 웅장한 사찰이다. 탁영 김일손의 두류산 기행문에 일두 정여창과 함께 지리산에 가면서 들렀던 곳이며 뇌계 유호인의 시문에 금대야 잘 있느냐 송하문이 옛같구나 송풍에 맑은 꿈 깨어 문득 잠꼬대를 하는구나 라고 하는 사실로 볼 때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들렀던 사찰로 사료된다.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 천왕봉로 1035-337

함양 화림동 거연정 일원
역사관광경상남도

함양 화림동 거연정 일원

거연정은 서하면 봉전마을 앞에 흐르는 남강천의 암반 위에 건립된 정자다. 안의 3동의 하나인 화림동계곡에 있는 거연정과 주변 일대는 농월정, 용유담과 어우러져 절경을 이루는 관광명소이다. 거연정은 고려 말의 충신이며 정선 전씨의 파시조인 전오륜의 7대손 동지중추부사 전시서가 1640년에 서산서원을 짓고 현 위치에 억새로 만든 누정을 처음으로 지은 것이며 1853년 화재로 서산서원이 불타자 이듬해 복구하였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서원 자체가 훼철되자 1872년 전시서의 7대손 전재학 등이 억새로 된 정자를 철거하고 훼철된 서산서원의 재목으로 거연정을 재건립하였으며 1901년에 중수하였다.

경상남도 함양군 서하면 육십령로 2582

망산도·유주암
역사관광부산광역시

망산도·유주암

용원동 앞바다의 작은 섬을 망산도, 이 섬의 동남방 70m 해상의 바위섬을 유주암이라 한다. 두 곳으로부터 약 1km 떨어진 곳에 있는 비각이 유주비각으로 삼국시대 가야 김수로왕비 허태후의 전설과 관련된 것으로 1988년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유주비각은 목조 기와집으로 기단이 없이 장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운 것으로 전체적으로 볼 때 벽체 상부를 홍살로 장식한 전형적 비각의 형태이다. 전설에 따르면 수로왕에게 왕비를 맞아들이기를 청하자, 왕은 자신의 왕비는 하늘이 정해 줄 것이라고 대답하였는데 어느 날 서남쪽 해상에 붉은 돛과 붉은 깃발을 단 배가 나타났다. 그 후 배를 인도하니 마침내 그 배는 망산도에 닿았고, 그 배에서 허태후 일행이 상륙하였다. 전설에 따르면, 허태후가 처음으로 배에서 내린 곳이 망산도이며, 타고 온 돌배가 바닷속에 뒤집혀 유주암이 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수로왕이 몸소 마중을 나와 이 섬에서 멀리 해상을 바라보며 기다렸다고 하여 망산도라 부른다는 설도 있다.

부산광역시 강서구 송정동

의림사 삼층석탑
문화관광경상남도

의림사 삼층석탑

수리봉 자락에 있는 사찰인 의림사에는 의림사 3층 석탑이 있으며 통일신라시대 후기의 양식을 보인다. 이중 기단 위에 3층의 탑신부를 형성하여 상하 기단면석에는 양 우주와 1탱주를 모각하였다. 탑신은 각 층에 양 우주가 모각 되어 있으며 옥개 받침은 5단이다. 상륜부는 노반만이 남아 있으며 보주는 후에 끼워 넣은 것이다. 1974년 주지 도각 스님이 요사 앞에 있던 것을 현재의 위치로 옮겨 세우면서 일부 보수를 하였는데 높이는 3m이다. 이 탑 주변에는 석등의 대석과 당간지주 등의 석물 부재가 남아 있으며 사찰 입구 약 1㎞ 지점에는 석종형의 조선시대 부도 3기가 잘 보존되어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북면 의림로 382

창원 월영대
역사관광경상남도

창원 월영대

신라 말기 학자인 해운 최치원 선생이 대를 쌓고 해변을 산책하면서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며 최치원 선생 사후에 그의 학문과 인격을 흠모한 고려, 조선 시대 많은 선비가 이곳을 찾게 되었고, 이곳은 우리나라 선비들의 순례지가 되었다. 조선 숙종 17년에 최위가 창원도호부사로 부임하여, 대를 정화하고 천세만세에 유린되지 말라고 한 유허비를 동편 중앙에 세웠고, 서편에는 1930년경에 최씨 문중에서 추모비를 세워 팔작지붕 비각 안에 안치하였다. 삼국사기, 보한집, 역옹패설, 신증동국여지승람, 동문선, 읍지 등 많은 기록을 살펴보면 그 경관이 아름답고, 고려, 조선 시대에 이르는 동안 많은 선비와 시문학의 대가들이 최치원의 학덕을 흠모하여 끊임없이 찾아온 아름다운 바닷가의 '대' 였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밤밭고개로 442

몽고정
역사관광경상남도

몽고정

고려 말 충렬왕 7년 원나라 세조가 일본 원정을 준비하기 위하여 정동행성을 두었으나 일본 정벌이 2차에 걸쳐 실패로 돌아간 그해 10월, 환주산(현, 자산동 무학초등학교 뒤쪽 마산시립박물관 일대)에 둔진을 설치하였다. 몽고정은 이곳의 둔진군이 용수를 쓰기 위해 만들었던 우물로 추정되고 있다. [몽고정 맷돌]이라고 불리는 지름 1.4m가량의 원방형의 돌이 몽고정 근처에서 발견되었는데 이를 차륜이라는 설도 있으나, 맷돌로 쓰였던 것으로 보인다. 우물 곁의 석비에 몽고정이라 써서 세워둔 것은 1932년 마산 고적 보존회(일본인 고적 단체)가 멸시적 감정에서 명명한 것으로, 그 이전에는 고려정이라 불렸을 것이다. 몽고정은 지금은 나무 덮개가 덮여 있지만, 근대까지만 해도 인근 주민들이 사용하는 공동 생활용수이자, 물맛이 좋아 간장 공장에서도 사용되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자산동

창원 관해정
역사관광경상남도

창원 관해정

관해정은 회원서원이 있었다고 해서 서원곡이라 부르는 무학산 계곡 일대에 관해정이 자리잡고 있다. 조선 중기의 학자 한강 정구(鄭逑) 선생을 추모하는 뜻으로 그의 문하생들인 장문재(張文哉)선생이 지은 것으로 전한다. 서원은 고종 때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없어지고 정자만 남아 있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을 중심으로 외삼문(外三門), 관리사(管理舍) 등이 있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한강과 그의 문하생인 미수 허목(許穆)의 향사(享祀)를 모시고 있다. 관해정 앞에 있는 수령 440년이 넘은 은행나무는 한강(寒岡)이 손수 심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관해정길 17

수릉원
문화관광경상남도

수릉원

수릉원은 가야를 건국한 수로왕을 기념하기 위한 공간이다. 수로왕과 허왕후가 함께 거닐었던 정원과 같은 이미지로 수로왕릉과 가야 왕들의 묘역인 대성동고분군을 이어주는 단아한 숲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39,600㎡ 규모의 생태공원으로 수로왕과 허왕후의 만남을 테마로 조성되었으며 동쪽에 자리한 산책로는 가락국 시조인 김수로왕을 기념하는 공간으로서 구실잣 밤나무와 가시나무, 상수리나무 등 곧게 뻗은 나무를 심어 남성의 느낌이 들도록 하였고 서쪽은 대성동고분군을 지나 허왕후를 위한 공간으로 야생감, 돌배, 살구, 개복숭아 등 열매를 맺는 나무들을 심었다. 정원의 연못은 해상왕국인 가야를 상징적으로 표현했고, 옛 가야시대 습지에 서식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시연꽃이나 노랑어리연꽃 등을 심었다. 주요 시설로는 수로왕을 위하여 허황후를 위하여, 한마당, 가야루, 기억의 정원, 사색의 정원, 민속박물과 등이 있다. 인근에 수로왕릉, 대성동고분군이 있고 바로 옆에 김해민속박물관과 김해한옥체험관이 있어 가야시대의 역사와 문화, 생활상을 한 번에 둘러볼 수 있는 곳이다.

경상남도 김해시 분성로261번길 35

장유사(김해)
역사관광경상남도

장유사(김해)

우리나라에 불교가 최초로 전래된 유서 깊은 사찰이다. 경내에는 우리나라 최초 불법을 전파했다고 전하는 장유화상의 사리탑이 있다. 사찰 내에는 사리탑이 있는데, 가락국(駕洛國) 수로왕(首露王)의 처남인 장유(長游:본명 허보옥)의 사리를 봉안하고 있는 석조팔각사리탑(石造八角舍利塔)이다. 석탑의 크기는 높이 241㎝로, 팔각기단 위에 팔각의 탑신(塔身)과 옥개석(屋蓋石)을 올렸다. 장유암 근처에는 해발 801m의 불모산 용지봉 준령에서 흘러내리는 장유대청계곡과 수려한 자연경관이 펼쳐져 장유암을 찾는 이들에게 세상사 시름을 모두 잊게 하기에 충분하다.

경상남도 김해시 대청계곡길 170-563

노무현대통령 생가
역사관광경상남도

노무현대통령 생가

봉하마을은 진영읍에서 동쪽으로 4.5km 떨어진 봉화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으며 진영단감과 벼농사를 주로 하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이다. 故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는 초가집 형태로 본채에는 방 두 칸과 부엌이 있고, 아래채에는 헛간과 옛날식 화장실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8살까지 살았던 집으로 2009년 9월 복원하였다. 생가를 최대한 원형에 가깝게 복원하되, 방문객의 쉼터가 되길 바랐던 대통령의 뜻에 따라 일부 수정된 형태로 복원했다.

경상남도 김해시 진영읍 봉하로 103-1

고령 신촌숲
자연관광경상북도

고령 신촌숲

고령 신촌숲은 고령군 쌍림면에 위치한 자연발생유원지이다. 마을 뒤쪽으로는 산이 있으며, 야산에서 흐르는 내와 경남 합천군 묘산에서 흘러오는 내가 서로 합류하여 안림천을 이룬다. 아름드리나무가 무성하며 깊지 않은 안림천은 시원한 숲 속에서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최상의 조건으로 여름 피서지로 각광을 받는다. 무엇보다 주차공간과 야영지가 넓고 개수대와 샤워실이 있어 무료 캠핑을 하기에 안성맞춤이다. 신촌숲 주변 2㎞에 걸쳐 전망 및 관찰데크, 진입 계단, 램프, 학습장, 산책로, 지압로, 기타 체육 시설이 설치되어 있고, 안림교의 상류와 하류 1㎞ 구간에 자연적으로 자생하고 있는 수목을 따라 산책로를 비롯해 지압로 등 체육시설을 갖추고 있다.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신촌길 27-7

청곡리지석묘
역사관광경상남도

청곡리지석묘

지석묘는 청동기시대의 대표적인 무덤으로 고인돌이라고도 부르며, 주로 경제력이 있거나 정치권력을 가진 지배층의 무덤으로 알려져 있다. 우리나라의 고인돌은 4개의 받침돌을 세워 돌방을 만들고 그 위에 거대하고 평평한 덮개돌을 올려놓은 탁자식과, 땅속에 돌방을 만들고 작은 받침돌을 세운 뒤 그 위에 덮개돌을 올린 바둑판식으로 구분된다. 경상남도 거제시 사등면 국도변에 약 50m의 간격을 두고 바둑판식 고인돌 3기가 있다. 국도변 언덕에 있는 1호는 현무암으로 된 덮개돌을 2개의 작은 받침돌이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이 고인돌의 머리가 향하는 마을은 망한다는 전설이 있어서 옛날부터 마을사람들이 돌머리를 돌리는 싸움을 했다고 하는데, 지금에 와서는 서로 화합하여 마을 중간지점으로 돌머리를 돌려놓았다고 한다. 2호는 국도변에서 50m 지점의 밭 가운데에 있는데 중간이 파괴된 채 흙속에 묻혀 있어 하부구조를 파악하기 어렵다. 3호는 청곡 마을 입구에 있는데, 동네 수호신 같이 동네를 지키고 있으며, 정월 대보름이면 이곳에서 마을사람들이 안락제를 지냈다고 한다. (출처: 국가유산청)

경상남도 거제시 사등면 청곡리

아산 용궁댁
역사관광충청남도

아산 용궁댁

울창한 나무숲으로 둘러싸인 곳에 북향으로 자리 잡은 아산 용궁댁은 순조 25년(1825)에 지었다고 한다. 집의 진입로에는 보호수로 지정된 은행나무 두 그루가 서있고, 바깥마당에는 무지개처럼 휘어진 소나무 줄기가 대문을 대신하고 있다. 안채는 5칸 겹집에 양쪽을 홑집으로 꺾어 덧붙여 ‘ㄷ’ 자 모양을 이루고 있고, ‘一’ 자형의 중문간채가 튼 ‘ㅁ’ 자형을 이루고 그 앞에 ‘ㄱ’ 자형의 사랑채가 있어 전체적으로 ‘日’ 자형의 배치를 하였다. 대청 앞쪽에는 후대에 시설된 듯한 유리문이 있고, 대청의 왼쪽으로 제사에 쓰였던 곳으로 보이는 2칸의 찬방이 있다. 사랑채는 앞면에 툇마루를 두었고, 모두 덧문을 달았는데 이것은 북향집이기 때문에 비바람을 막기 위하여 후대에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안채와 사랑채를 가로막고 있는 중문간채는 중문을 들어서서 곧바로 안마당을 향해 있지 않고 꺾어 들어가도록 하였다. 특별한 정원시설은 없지만 집안 곳곳에 매화, 소나무, 향나무, 감나무 등을 심어 아름답게 꾸몄다. ※ 위 국가유산은 일반적으로 관람이 가능하나, 소유주 등의 개인적 사정으로 관람이 제한될 수도 있음

충청남도 아산시 도고면 도고산로587번길 73-21

녹동항
자연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녹동항

녹동항은 고흥반도 남서쪽에 위치한 어항으로 1971년 12월 21일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었으며 소록도, 거문도, 백도, 제주도를 연결하는 해상 교통의 중심지이다. 또한 고흥군의 주요 어업항으로 연근해 어획량의 약 70%가 이곳에서 생산된다. 깊은 수심과 넓은 수로를 가지고 있어 대형 선박의 입항이 가능하며 항만 주변에는 여객터미널, 수산물 시장, 공영주차장 등이 있어 이용이 편리하다. 1995년부터 2001년까지 녹동신항 건설 공사를 진행하여 현재는 구항과 신항으로 나뉘어 있다. 구항은 녹동 재래시장이 들어서 있고, 신항에서는 제주도와 거문도 여객선이 운항 중이다. 인근 섬에서 생산되는 활어, 선어 등과 김, 미역, 다시마, 멸치 등 모든 해산물의 집산지로 고흥 연근해에서 생산되는 각종 수산물을 저렴한 가격에 구매할 수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지름 80m, 둘레 251m의 인공섬으로 바다 위 떠 있는 정원을 형상화한 녹동항 바다정원과 돔 영상관, VR 체험관이 있어 녹동항의 이모저모를 경험할 수 있다. 매년 5월에는 녹동 바다 불꽃축제가 열린다. 주변 관광지로는 쌍충사, 소록도 중앙공원, 거금대교, 도양 해안일주도로 등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도양읍

고흥 쌍충사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 쌍충사

쌍충사는 충열공 이대원과 충장공 정운을 배향하는 사당이다. 이대원은 1587년 녹도만호로서 남해안에 출몰하는 왜적을 맞아 전과를 올렸고 손죽도 해상에서 순절하였다. 정운은 유성룡의 천거로 1591년 녹도만호로 부임했고 임진왜란 때에 이순신과 함께 옥포·한산해전 등에서 선봉장으로서 전과를 올리고 몰운대에서 순절했다. 쌍충사는 1605년 이대원의 아들인 이대상이 세웠으며, 1990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지어졌으며,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내부에는 이대원과 정운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쌍충사는 봉암리 해안가 높은 언덕위에 자리잡고 있어 소록도와 녹동항, 녹동항 바다정원이 바로 보이며 이곳을 둘러본 후 뒷문으로 나가면 공원형식의 녹도진 성지가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도양읍 목넘가는길 34

고흥 유자공원
테마파크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 유자공원

우리나라 유자의 최대 산지인 고흥군에 위치한 고흥유자공원은 풍양면 일대 유자 재배 단지에 있는 공원이다. 유자 재배지로서 천혜의 기후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는 고흥은 전국 유자 생산량의 약 60~70%를 차지한다. 고흥유자공원은 고흥군이 2008년 1년 동안 조성한 공원으로 전망대, 산책로, 탐방로, 약수터, 쉼터를 갖추고 있다. 마을 입구에서부터 유자나무가 양옆으로 심어져 있고, 유자 밭 사이로 난 탐방로를 지나 전망대에 오르면 일대에 펼쳐진 대규모 유자 재배 단지와 고흥만의 다도해 풍경을 조망할 수 있다. 대한민국 유자 1번지라 할 수 있는 고흥군 풍양면 대청마을은 11월이 되면 2019년부터 고흥유자석류축제를 열고 있다. 주변 관광지로는 차량 이동 약 20분, 14㎞ 거리에 운암산이 있고, 운암산의 반대 방향으로 차량 이동 약 15분, 15㎞거리에 녹동항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풍양면 대청길 33-11

고흥발포만호성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발포만호성

발포만호성은 현재 고흥군 도화면 발포리 성촌마을을 중심으로 자리잡고 있다. 발포만호성은 조선시대의 군사 건축물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적지로 전라좌수영 산하의 5관 5포 중 수군만호가 다스린 수군 진성으로서 성종 21년(1490년) 축성되어 고종 31년(1894년) 폐지된 조선 초기의 성이다. 이 성은 선조13년(1580년) 이순신 장군이 발포만호로 부임해와 18개월 동안 재임했던 곳이다. 성벽은 항아리 모양에 가까운 사다리꼴 형태로 성안의 건물지로서는 동헌과 객사, 배수로, 무기고, 동문, 서문, 남문, 망루터 등이 남아 있는데 이는 1977년 전남대학교 박물관 발굴 조사에 의해 확인된 것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도화면 발포성촌길 3

고흥향교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향교

고흥향교는 세종 23년인 1441년에 지방 유생을 교육하고 유교 문화를 보급하기 위해 고흥현 서문 밖에 창건된 교육기관이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으나 유림들의 노력으로 숙종 2년인 1676년 현재의 자리로 옮겨 복원되었다. 향교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과 배향 공간인 대성전을 중심으로 전학후묘의 전통적인 배치를 갖추고 있으며, 동재와 서재는 유생들의 기숙사 역할을 했다. 조선시대 고흥 지역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담당하며 지역 유학의 중심지 역할을 수행한 곳이다. 고흥군청에서 차량으로 약 5분 거리에 위치해 있으며, 인근에는 존심당과 고흥 아문 등 역사문화유산이 자리해 함께 둘러보기 좋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고흥읍 흥양길 90-29

송호영당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송호영당

송호영당은 눌재 박상(朴祥)과 사암 박순(朴淳)의 영정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1728년에 건립되었다. 원래 박상의 출생지인 서창동 절골마을에 있었으나 후에 현 위치로 옮겼다. 이곳은 1995년 12월 22일부터 1996년 4월 16일까지 사당, 담장, 진입계단의 보수공사가 이루어졌고, 1997년 10월 12일부터 1998년 1월 16일까지 효자각을 건립하였다. 이후 1998년 9월 2일부터 10월 14일까지 사우석축을 보수하였다. 이 영당의 기단은 시멘트 기단 위에 중앙은 영정봉안장소로 사용되고 좌우에는 온돌방을 만들기 위해 칸막이를 설치하였다. 뒤쪽 벽에는 창방소로 장혀위에 납도리를 걸쳤고 전면에는 단청을 하였으나 퇴락하였다. 창호는 분합문이며 빗살(교살) 창살로 되어있고 주두 위의 포작은 익공식을 따르고 있다. 처마는 겹처마이며 담징을 붉은 벽돌로 쌓았으며 대문은 평문이다. 눌재 박상(1472∼1530)은 연산군 7년(1501)에 정시을과에 급제하여 교서관 정자를 시작으로 중종 24년(1529) 나주목사를 마치기까지 약 29년간 조정에 몸담았다. 사암 박순(1523∼1548)은 그의 조카로 조선중기의 문인학자이다. 사암은 명종 8년(1553)에 정시문과에 장원한 뒤 예문관전적을 시작으로 약 35년간 조정에 있었다. 송호영당에는 사암과 눌재의 문집도 보관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소촌로46번길 46 (소촌동)

양씨삼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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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씨삼강문

양씨삼강문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박호동 박뫼마을 입구에 있으며 임진왜란 때 진주성 싸움에서 왜적과 싸우다 순절한 양산숙과 가족 6명의 충·효·열·행을 기리기 위해 1635년 건립된 정려각이다. 정려는 충신, 효자, 효부, 열녀 등을 기리기 위해 표창하는 일을 말한다. 박뫼마을은 양산숙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양산숙은 형인 양산룡과 함께 나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김천일 휘하에 참여하여 여러 전공을 세우다가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이후 왜군이 전라도 지역으로 침입하자, 양산룡은 어머니와 아우, 누이와 피난을 가다가 현재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안군 몽탄면 지역인 삼양포에서 왜적을 만나 바다에 몸을 던져 순절하였다. 양산숙의 부인 광산이씨는 현재의 전라남도 무안군의 승달산에서 왜적을 만나 저항하다가 자결하였다. 양씨삼강문에서는 임진왜란 때 광주 지역의 모습과 충, 효, 열을 강조한 조선 후기 사회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박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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