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235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235페이지입니다.

대구 계산동성당
계산성당은 중구 계산오거리에 위치하며 범어대성당과 함께 천주교 대구 대교구의 공동 주교좌성당이다. 본당의 주보성인은 루르드의 성모 마리아이다. 1898년에 본당을 세웠는데 명동성당을 건축하고 전주 전동성당을 설계한 프와넬 신부가 맡았으며 특히 스테인드 글라스는 프랑스에서 직접 공수하였다. 도심 가까이 위치하고 야간 조명이 설치되어 아름다운 야경도 감상할 수 있으며 성당 주위로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도심에서 휴식을 위해 방문하는 이들도 많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대구 최초의 가톨릭 성당인 계산성당과 역시 대구 최초의 개신교 예배당인 대구제일교회는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로 마주 본다는 것이다. 교파를 초월하여 계산동, 동산동 일대는 대구 그리스도교 역사의 출발지점인 것이다. 건립 당시 현 위치와 서편 청라언덕 사이에 고민하다가 노인 신자들의 요청으로 현 위치에 성당을 건립하기로 정해졌다고 한다. 원래는 성공회 강화성당과 비슷한 한옥식 건물이었지만, 화재로 1901년에 전소되자 새로 고딕식 성당을 지었으며 경상도에서 최초로 건립된 서양식 성당으로 문화재청의 관리를 받고 있다. 계산동성당은 남구 대명동의 가르멜여자수도원,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과 더불어 도심지역에서 실제 종을 타종하는 몇 안 되는 곳들 중 하나다. 때문에 삼종시간의 종소리를 들으면 마치 유럽에 여행을 온 듯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대구광역시 중구 서성로 10 (계산동2가)

서울 관상감 관천대
서울 관상감 관천대는 조선시대 별을 관측하던 곳으로 조선시대 기상대나 천문대인 관상감이 있던 자리에 설치한 것이다. 관측 기구로서 소간의를 올려놓아 소간의대, 또는 별을 관측하는 대라는 뜻으로 첨성대라고도 불린다. 세종 16년(1434)에 설치된 서운관의 관측대로서, 서운관은 천문, 지리, 측후, 물시계와 관련된 일을 관장하는 곳이었다. 경주에 있는 신라의 첨성대, 개성 만월대의 고려 첨성대, 서울 창경궁 내의 관천대와 더불어 우리나라 천문 관측역사의 발전을 연구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원서동

안동 석빙고
석빙고는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창고이다. 특히 이 석빙고는 낙동강에서 많이 잡히는 은어를 국왕에게 올리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조선 영조 13년(1737)에 지어졌다. 형태는 동·서로 흐르는 낙동강 기슭의 넓은 땅에 강줄기를 향하여 남북으로 길게 누워 있으며, 입구는 특이하게 북쪽에 옆으로 내었다. 안으로 계단을 따라 들어가면 밑바닥은 경사져 있으며, 중앙에는 물이 강으로 흘러가도록 만든 배수로가 있다. 천장은 길고 크게 다듬은 돌들을 무지개모양으로 틀어 올린 4개의 홍예[虹霓]를 세워 무게를 지탱하도록 하고, 각 홍예 사이는 긴 돌들을 가로로 채워 마무리하였다. 천장의 곳곳에는 환기구멍을 두었는데, 이는 안의 기온을 조절하기 위하여 설치한 것으로 바깥까지 연결하였다. 전체적으로 규모는 큰 편은 아니나 보존상태는 양호하다. 특히 석빙고는 그 위치가 매우 중요한데, 안동댐 건설로 수몰될 위기에 처하여 지금은 본래의 위치보다 높은 곳으로 옮겨왔다. 이전에는 바로 옆에 강이 흘러서 얼음을 운반하기가 아주 쉬웠을 것으로 보인다.
경상북도 안동시 성곡동
장사항
속초시 장사동에 위치한 장사항은 속초의 대표적인 항구 중 하나이다. 방파제 90m, 방사제 144m, 물양장 130m의 아담한 규모를 가진 어항으로 주변에 많은 횟집과 활어판매장이 운영되고 있어 싱싱한 생선을 회로 즐기며 다양한 해산물도 맛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가까운 곳에 배낚시 어장이 형성되어 있어 배낚시를 체험할 수 있다. 1973년 사진항에서 장사항으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매년 여름에는 ‘오징어 맨손 잡기 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여 해마다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다. 장사어촌체험마을은 오징어 맨손 잡기 축제를 2000년부터 매년 개최하면서 오징어 마을로 알려졌으며, 최근에는 오징어 맨손 잡기 및 시식, 오징어 해부, 오징어 먹물 글씨 쓰기(오적어 묵계), 오징어 스토리텔링 등 오징어에 관한 다양한 패키지(테마) 체험을 실시하고 있다. 장사어촌계에는 모텔, 민박 등의 숙박시설과 맛집이 많아 머무르면서 다양한 체험을 즐기기 용이하다. 2012년에는 어촌체험숙박시설이 완공되어 체험관광안내소를 통해 더욱 쉽게 정보를 얻고 장사항을 즐길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장사항해안길 58

곡성섬진강천문대
곡성섬진강천문대는 천문과학 체험시설이다. 섬진강의 자연경관을 배경으로 국내 순수 기술로 제작한 600㎜ 리치크레티앙 반사망원경을 갖춘 주관측실과 다양한 중형 망원경이 설치된 보조관측실을 운영한다. 8m 원형돔 스크린을 갖춘 천체투영실을 비롯해 VR 자이로스코프, 우주엘리베이터, 4D와 VR 융합상영관, 어린이체험과학관 등 다양한 체험시설을 갖추고 있다. 천체 관측과 과학 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해 우주와 천문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경험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구례읍 섬진강로 1234

덕양서원(곡성)
평산신씨 시조이며 고려의 개국 공신 신숭겸( ~927) 장군의 유적이다. 신숭겸은 왕건을 도와 궁예를 몰아내고 고려를 건국하는데 큰 공을 세워 개국 일등공신이 되었다. 덕양사는 선조 22년(1589)에 창건하여 신숭겸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서원으로 정유재란 때 모든 건물이 불타고 선조 36년(1603)에 신실이 중수되었으며 현종 6년(1665) 이전의 서원 규모로 모두 중건되었다. 이후 1695년에 덕양이라는 사액을 받아 선현배양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다가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철폐되었다가 1934년 지방유림의 공의로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강당, 동재인 연서재와 신실인 덕양사, 서재인 신덕재, 전사청, 그리고 외삼문, 내삼문 등이 있다. 유적 및 유물로는 덕양서원 건사사적비와 강당과 연서재의 내부현판 19개가 있으며 출생지인 용산재와 함께 도지방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다. 곡성 버스터미널 기준 차량으로 7분, 4㎞ 거리의 덕양서원길 끝에 위치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오곡면 덕양서원길 42

청도 석빙고
청도 석빙고는 조선 시대의 얼음 저장 창고로 얼음을 저장하기 위해 땅을 파고 만들었다. 청도 석빙고는 1713년에 건립되어 현재 남아 있는 석빙고 중에서는 가장 먼저 축조된 것이다. 석빙고가 설치된 연대는 입구 좌측에 있는 석비의 내용으로 확인할 수 있다. 석비 앞면에는 축조에 참여한 인원수, 비용, 소요 재료 등이 기록되었고 뒷면에는 비를 세운 연월일과 관계인의 이름을 열거하였다. 내부의 길이는 14.75m, 폭은 5m이고 높이는 4.4m이다. 동서로 긴 형태로 축조되었으며 입구는 서쪽에 설치되어 계단을 따라 내부로 들어가면 바닥이 약간 경사져 있다. 양쪽 벽을 이어주던 반원아치 형태의 홍예가 4군데 남아있을 뿐 천장은 완전히 무너져 불완전한 상태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남아있는 우리나라 석빙고 가운데 경주 석빙고 다음으로 큰 규모이다.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도주관로 190-8 (동천빌라)

창녕 영산 석빙고
석빙고는 추운 겨울에 얼음을 채취해 더운 여름까지 보관하고 사용했던 선조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얼음 창고이다. 영산 석빙고는 앞으로는 영취산을 마주 보고 뒤로는 개울을 등지고 있다. 규모는 경상도 지방에 있는 다른 석빙고에 비해 작은 편이지만 축조 형식은 같다. 지금은 상류에 제방을 쌓아 개울의 물이 말랐지만, 옛날에는 이곳에 물이 많아 겨울에 얼음을 채취하기 용이했던 것으로 보인다.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지만, 규모로 보아 18세기 후반으로 추정할 뿐이다. 여지도서와 조선 후기의 읍지에 따르면 현감 윤치일이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석빙고 옆 개울의 반대편으로 입구를 내고 여닫을 수 있는 돌문이 있던 흔적이 남아있다. 계단을 통해 내부로 들어가면 개울 쪽으로 약간 경사가 져 있어 얼음에서 녹은 물이 배수구를 통해 개울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도록 설계하였다. 천장에는 아치형의 홍예 세 개가 있으며, 그 사이를 다듬은 장대석으로 걸치고 더운 공기가 나갈 수 있는 환기공을 두었다.
경상남도 창녕군 영산면 교리

의마총
곡성군 입면 송전리의 논 한가운데에는 말 동상과 함께 둥그런 무덤과 비석이 하나 있다. 이것이 바로 월파 유팽로장군의 애마이자 의마의 말 무덤이다. 임진왜란 때 유팽로 장군은 성균관 학유로 재임하다 낙향하여 곡성, 담양, 순창에서 의병을 모아 양대박, 안영 등과 함께 담양에 모여 고경명을 의병장으로 추대하고 근왕 의병활동 중 왜군을 맞아 싸우다가 1592년 7월 10일 금산전투에서 순절하였다. 이에 장군의 충마가 장군의 머리를 물고 3백리 밤길을 달려 장군의 생가인 합강리에 나타나 부인에게 건네주고 울부 짖다 죽자 부인 원주 김씨와 마을 사람들이 충마의 갸륵한 뜻을 기리기 위해 마을 앞 송전리에 말 무덤을 만들어 주고 의마총이라 이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옥과면 합강리에는 장군과 부인 원주 김씨의 열행을 기리기 위한 정열각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입면 송전리
목멱산 봉수대 터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한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남산 봉수대는 조선 태조 3년(1394)에 도읍을 한양으로 옮긴 뒤 설치하여, 갑오경장 다음 해까지 약 500년간 사용되어 왔다. 남산의 옛 이름을 따서 ‘목멱산 봉수대’라 하기도 하고, 서울에 있다 하여 ‘경봉수대’라 부르기도 하였다. 평상시에는 1개, 적이 나타나면 2개, 적이 경계에 접근하면 3개, 경계를 침범하면 4개, 경계에서 아군과 전투를 벌이면 5개의 불을 올리도록 하였다. 남산 봉수대는 전국의 봉수가 도달하게 되는 중앙 봉수대로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곳이다.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향하여 5개소가 있었다 하는데, 현재 봉수대는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다. 전해지는 기록이 없어 정확하 자리를 확인할 수는 없는데, 「청구도」등의 관련자료를 종합하여 1개소를 복원하였다.
서울특별시 중구 예장동

군지촌정사
인근의 뛰어난 인재들을 모아서 힘껏 가르치거라 하는 중종의 하명을 받아 심광형은 일종의 영재학교를 세운다. 동악산을 등지고 섬진강과 마주하는 전형적인 배산임수의 지형인 군촌마을에 함허정과 군지촌정사(제호정 고택)를 세웠다. 1535년에 지어진 군지촌정사는 조선 후기의 건물로 사랑채의 이름으로, 지금 남아 있는 사랑채와 고택 제월당은 1800년대에 지어진 건물로서, 군지촌정사의 원형은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당시에는 학생을 수용할 수 있는 강당과 기숙사를 갖춘 건물들이 있었을 것이고 각지에서 찾아오는 선비들이 머물 수 있는 사랑채도 있었을 것이라고 추측된다. 군지촌정사가 세워진 후 세연정이라는 정자가 들어서고, 세월이 흘러 현재는 함허정이라 불린다. 함허정은 이 지역 유림들과 풍류와 독서, 사색, 학문을 교류하던 공간으로 군촌마을 섬진강가에 지은 정자이다. 군지촌정사와 함허정 앞으로 섬진강의 물줄기와 제월습지를 조망할 수 있다. 군지촌정사(제호정 고택)에서 차량으로 7분, 4㎞ 거리에 국립곡성치유의 숲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입면 청계동로 908-4

아차산 봉수대 터
봉수대는 횃불과 연기를 이용하여 급한 소식을 전하던 옛날의 통신수단을 말한다. 높은 산에 올라가서 불을 피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불빛으로 신호를 보냈다. 조선시대의 문헌에 아차산 주봉에서 북쪽으로 벗어난 능선의 서쪽 봉우리에 있다고 표시되어 있어, 이곳이 아차산 봉수대 터임이 밝혀졌다. 아차산 봉수는 조선시대 전국을 연결하던 5개의 주요 봉수로 첫 번째 봉수로의 마지막 봉수대였다. 이곳은 함경도 경흥에서 시작하여 강원도와 포천을 거쳐 이어지는 봉수를 받아 목멱산(남산)으로 연결하는 곳이었다. 봉수대가 있었던 곳으로 추정되는 정상부의 불을 피우던 연대는 없어지고 터만 남아있던 것을 서울정도 600년 기념사업의 하나로 1994년 모형을 설치하였다.
서울특별시 중랑구 묵동

마천목장군과 도깨비살
조선개국과 정란공신(태종 이방원의 집권에 기여한 관리)인 마천목 장군 선대에 장흥에서 이주해 왔다고 한다. 성황당이 있고 당제를 올리는 마을이어서 당산마을이라 했고 침곡과 송정 중간에 있고 고달면 두계 앞에 있는 어살(어전)을 도깨비살이라 했다. 마천목 장군이 어릴 적 어머니가 병을 얻어 물고기를 원하자 섬진강변에 나갔다가 이상하게 푸른 돌을 주워왔는데 도깨비들이 몰려와 두목 도깨비를 돌려주면 무엇이든지 다하겠다고 했다. 마천목은 강에다 어살을 만들어놓으면 돌려주겠다고 하자 어살을 만들어 놓았다는 도깨비살 전설이 전한다.17번 국도 변엔 안내 표석이 있고 강 건너에는 익살스러운 표정의 도깨비대장 조각이 세워져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오지2길 21-99

곡성 함허정
조선 중종 38년(1543년) 심광형이 이 지역 유림들과 풍류를 즐기기 위해 지은 정자로서 ‘호연정’이라고도 한다. 증손자 심민각이 오래된 정자를 옛 터 아래쪽으로 옮겨 다시 지었으며 5대손 심세익이 고쳤다. 지금 있는 건물은 1980년에 수리를 한 것이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구성은 마루 1칸을 3면을 터 만들었고 2칸 반은 방으로 꾸몄다. 나머지 오른쪽 반 칸은 바닥을 한 단 높여 쪽마루를 두었다. 정자 아래로 흐르는 섬진강, 울창한 숲, 멀리 무등산이 보이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으며 약 100m 가량 떨어진 곳에 심광형이 세운 군지촌정사(중요민속자료)가 있다. 당대 학문을 익히던 선비들의 수양지와 휴식처를 빼어난 경치와 함께 감상할 수 있는 곳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입면 제월리

속초 조양동 유적
조양동(온정리溫井里) 택지 개발 사업 지구에서 강릉 대학교 박물관의 발굴 조사(1992년 5월 22일부터 7월 31일까지) 결과에 의하면 이 유적지는 기원전(B.C) 7∼8세기의 청동기 시대(靑銅器 時代) 주거지(住居址) 유적이다. 특히 3호 주거지가 있던 터에서 출토된 굽 손잡이 그릇은 우리나라 동북 지방의 신석기시대(新石器 時代)의 말기 유적인 함경북도 무산 호곡동에서 출토된 유물과 유사한 것인데 현재 남한에서는 처음으로 출토되어 신석기시대의 말(末)과 청동기시대 초기에 있어서 동북 지방과 강원 영동 지역 간의 문화 교류를 확실하게 입증해 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선사로1길 16

서울 우정총국
서울 우정총국은 근대적인 우편 업무를 시작한 관청이다. 1884년 4월 일본과 미국에서 신식 우편 제도를 시찰하고 돌아온 홍영식이 건의하여 만들었다. 이 건물은 1884년 11월에 전의감 부속 건물을 수리하여 만든 우정총국 청사이다. 그해 12월 4일 우정총국의 개업을 축하하는 자리에 김옥균, 박영효, 서광범, 홍영식 등이 민씨 정권을 제거하고 신정부를 조직하는 갑신정변을 일으켰다. 이때 본채를 제외한 부속 건물은 모두 불에 탔고, 우정총국의 우편 업무도 중단되었다. 1893년에야 전우총국(電郵總局)이란 이름으로 우편 업무를 다시 시작하였고, 공무아문 역체국, 농상공부 통신부, 통신원 등으로 이어나갔다. 그러나 일본에 통신권을 빼앗긴 1905년 이후에는 한어학교, 중동야학교, 경성 중앙우체국장 관사 등으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에는 개인 주택이었다가 1972년부터 체신기념관이 되었다. 기념관 기능에 따라 일부를 고쳐 옛날 모습을 제대로 간직하고 있지는 못지만, 기념관 안에는 우표와 문헌, 유물들이 보존되어 있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우정국로 59 (견지동)

비선대
비선대는 설악산 천불동 계곡에 있는 커다란 암반이다. 주변에 둘러쳐진 거대한 바위벽과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가 감돈다. 비가 오면 암반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가 작은 폭포를 이루며 더욱 오묘한 풍경을 연출한다. 이리저리 휘감아 도는 물줄기가 금강산의 만폭동 못지않은 절경으로 꼽힌다. 철 따라 바뀌는 경치도 으뜸이다. 봄에는 곳곳에 만개한 꽃무더기가 화사함을 뽐내고, 여름에는 초록빛 정경이 청량감을 더하며 가을이면 주변이 오색 단풍으로 물든다. 겨울에는 온통 순백색으로 변해 신선들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듯한 느낌이다. 이처럼 신비로운 풍경 때문인지 비선대에는 마고선이라는 신선이 노닐다 하늘로 승천했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비선대(飛仙臺)라는 이름도 여기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설악산로 1091

서울 구 러시아공사관
서울 구 러시아공사관은 조선말 한로수호조약이 비준된 1885년 직후에 착공되어 1890년에 준공되었다. 공사관이 건립된 일대는 연산군이 도성 밖으로 놀러 가기 편리하도록 설치한 3개의 마장 중 하나였다. 고종이 일본을 견제하기 위하여 미국과 영국의 영사관과 함께 러시아 공사관을 덕수궁이 인접한 곳에 두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러시아 공사관은 아관(俄館)이라 불리는데, 우리에게는 고종의 아관파천 사건으로 익숙한 이름이다. 을미사변으로 명성왕후가 일본군에 시해를 당한 후 친일내각에 들어서자 경복궁에 유폐된 상태에 놓여 있던 고종을 친러파의 범진 등과 러시아공사 베베르가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1896년 2월 1일 세자와 함께 아관으로 옮겨오게 하였다. 그 결과 친일 김홍집내각을 무너뜨리고 친노 박정양내각을 조직하는 등의 국정을 처결하다가 다음 해 2월 20일 경운궁으로 환궁하였던 일련의 과정을 아관파천이라고 한다.
서울특별시 중구 정동길 21-18

문화역 서울 284
문화역 서울 284는 한국 근현대사의 주요 무대이자 교통과 교류의 관문이었던 구 서울역사의 원형을 복원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문화·예술의 창작과 교류가 이루어지는 플랫폼으로서 전시, 공연, 워크숍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1900년 남대문정차장을 시작으로 경성역을 거쳐 서울역이 됐다가 2004년 구역사가 폐쇄되며 새로운 공간으로 변신했다. 건물 외관은 1925년 경성역을 복원해 재현한 것이다. 유럽 르네상스식의 이국적인 외관으로 붉은 벽돌, 화강암 바닥, 인조석을 붙인 벽, 박달나무 바닥으로 이루어져 있어 인기를 끌었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드라마 속 목하(박은빈 분)가 꽃을 들고 기호(채종협 분)를 기다리던 곳이다. 옛 서울역사를 복원한 만큼, 드라마 에서는 삼천포(김성균 분)가 상경한 장소로 등장한다.
서울특별시 중구 통일로 1 (봉래동2가)

창원 진해우체국
진해우체국은 Y자 형태의 3방 도로 중앙에 조성된 삼각형의 대지에 건물 면적 452㎡로 지은 단층 목조건물로 1912년 10월 25일 준공하여 11월 15일 진해우편국이 이전했고 2000년까지 우체국 청사로 사용해 왔다. 평면은 삼각형 대지의 꼭짓점에 해당되는 중원 광장 쪽, 즉 양도로가 만나는 지점을 출입구로 하고 있어 입구는 좁으나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점차 넓어지는 구조로 되어 있다. 건물의 양식은 러시아풍의 절충식 근대건축인데 정면 입구의 양측으로 세운 강한 배흘림이 있는 투스칸오더의 두리기둥으로 당당한 외관을 보이고 있으며 우체국 건물 앞에는 우편낭을 메고 있는 집배원 동상과 과거에 사용하던 형태의 우체통이 있다.
경상남도 창원시 진해구 백구로 40

연천역 급수탑
연천역 급수탑은 1919년 인천-원산 간 중간지점에 세워진 철도 급수탑으로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시설이다. 증기기관차와 급수탑은 1899년 9월 서울-인천 간 경인선이 개통되면서 처음 등장하여 교통수단으로써의 기능을 담당하였으나 1950년대 디젤기관차가 등장하면서 사라지게 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세워졌던 연천의 역사 속 시설물들은 한국전쟁 당시 폭격에 의해 모두 사라졌으나 급수탑만은 원형대로 잘 남아 있다. 건립 당시에는 기관차 뒤에 달린 탄수차(炭水車)에 물을 공급하는 동안 물물교환 등 상거래가 활발하여 시장의 역할을 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6·25 이전까지만 해도 이곳은 북한의 최남단 지역이었고 경원선을 통한 북한의 군사물자가 대량으로 하역되었다. 이 때문에 하얀색의 이 급수탑을 좌표로 삼아 미군의 폭격이 극심하였고 아직도 건물에 탄흔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연천역 급수탑은 강원도 도계역 급수탑, 추풍령역 급수탑, 충남 연산역 급수탑, 경북 안동역 급수탑, 영천역 급수탑, 경남 삼랑진역 급수탑과 함께 철도 역사의 이해와 근대 교통사 연구를 위한 주요 유산으로 인정받아 국가등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차탄리

상승전망대
상승전망대는 적의 활동을 관측하기 위해 24시간 운용되는 최전방 관측소로 제1땅굴이 발견된 곳이다. 초소의 망원경으로 전방의 북한 초소들과 철책선, 지금은 비무장지대인 드넓은 연천평야를 볼 수 있는 안보 관광지로 많은 방문객이 찾는 곳으로 과거 상승OP로 알려졌다. 경계 임무는 비룡부대에서 수행하고 있으며, 실제 1호 땅굴은 비무장지대에 있어, 가장 가까운 관측소인 상승전망대에 실제 크기의 모형을 만들었다. 제1호 땅굴은 1974년 11월 15일 발견된 남침용 땅굴로 선임하사 구정섭이 지휘하는 육군 수색조가 임무 수행 중 땅 밑에서 수증기가 올라오는 것을 수상히 여겨 그곳을 파던 중 북한초소로부터 갑작스러운 사격을 받았다. 이에 우리 군도 응사하면서 조사를 계속한 결과 땅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땅굴은 서울로부터 52㎞, 개성으로부터 24㎞ 떨어진 곳에 있고 지표에서 2.5m~4.5m 깊이로 철근이 세 가닥 들어간 조립식 콘크리트를 사다리꼴로 엮어 튼튼하게 만들었다. 당시 7·4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되어 남북이 서로 비방을 중지하고 평화적 통일을 모색하고자 다정하게 손잡던 시기에 발견되어 우리 국민의 충격이 컸으며, 동시에 북한의 양면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출입방법은 개별, 단체(25인 이상) 구분 없이 출입 7일 전 연천군청 관광과로 사전 신청이 필수이다. 사전 신청 후 초소에서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기 때문에 신분증 지참은 필수이다. 출입 후 초소의 안내에 따라 행동하고 개별행동은 삼가야 한다.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백령리 642-4

퇴계종택
퇴계종택은 조선 중기 문신이며 대학자인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의 종가이다. 원래 있던 집은 없어지고, 이 건물은 1926~1929년 사이에 선생의 13대손 하정 공이 옛 가옥의 규모를 따라 새로 지었다. 퇴계종택은 정침, 정자, 사당 영역으로 나누어져 있으며, 각 영역은 담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정침 영역은 정침과 행랑채로 이루어져 있다. 정침음 ㅁ자형으로 사랑채와 안채가 배치되어 있으며, 행랑채로 통하는 솟을대문에는 이안도 부인 안동 권씨의 절개를 기리는 정려가 걸려 있다. ‘퇴계선생구택’이라고 쓰인 현판이 걸린 대문을 지나면 정자 영역에 도달한다. 정자 영역에는 조선 시대의 문신 권두경(1654~1725)이 숙종 41년(1715)에 이황을 추모하여 지은 추월한수정이 있다. 원래의 정자는 1896년 일제에 의해 불탔고, 1926년에 400여 문중의 성금으로 다시 지어졌다. 현재 추월한수정은 수련생을 강의하거나 문중 모임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백운로 268
제주맥주
제주맥주는 30년 양조 노하우를 보유한 뉴욕 No.1 크래프트 맥주사 브루클린 브루어리와 15년 이상 경력의 세계 반열 브루어가 참여하여 탄생한 양조장이다. 좋은 맥주로 맥주 미식 문화를 창조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국내 최고 양조 시설을 갖추고 있으며, 도슨트의 안내에 따라 체험 및 내부 시설 관람을 할 수 있는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한림읍 금능농공길 6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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