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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236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236페이지입니다.

월천서당
역사관광경상북도

월천서당

경상북도 기념물로 지정된 월천서당은 월천 조목(1524∼1606)이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당이다. 조목은 퇴계 이황에게서 가르침을 받고 명종 7년(1552)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나 여러 벼슬을 사양하고 이황을 가까이 모시면서 학문 연구에만 주력한 분이다. 임진왜란 때에는 동생 및 두 아들과 더불어 의병을 모집하여 활동하였고 이황의 제자 가운데 유일하게 도산서원 상덕사에 모셨다. 중종 34년(1539)에 세운 이 서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가운데 2칸에는 마루를 구성하고 양 옆으로 온돌방을 배치하였다. ‘월천서당’이라는 현판은 이황의 친필이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월천길 437-7

의성김씨 학봉종택
역사관광경상북도

의성김씨 학봉종택

의성김씨 학봉 종택은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이 살았던 가옥이다. 학봉종택은 원래 지금의 자리에 있었으나 지대가 낮아 침수가 자주 된다며 학봉의 8세손 광찬(光燦)이 1762년(영조 38) 이곳에서 100여 m 떨어진 현재 소계서당이 있는 자리에 옮겨 살고 종택이 있던 자리에는 소계서당을 지었다 한다. 그러나 1964년 종택을 다시 원래의 자리인 현 위치로 이건 되었다. 학봉은 류성룡과 더불어 퇴계의 고제(高弟)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었으며, 27세에 사마시, 1568년(선조 1) 중광문과 병과에 합격한 이후 여러 관직을 역임하다가 1577년(선조 10)에는 사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1590년(선조 23)에는 통신부사로 일본에 파견되기도 하였으나 임진왜란 때에 왜적과의 전투를 독려하다가 병사하였다. 학봉종택 외에 운장각이 있다. 운장각은 조선 선조 때의 명신이며 학자인 학봉 김성일 선생의 유물을 보관한 곳이다. 선생께서 남기신 서적·물품·친필기록 제초고 및 선조전래의 전적·문서와 후손들의 유품을 영구히 보존코자 건립하였다. 운장각에는 현재 선생이 남긴 서적, 유품, 친필기록, 고문서 56종 261점(보물), 제초고 및 선조 전래의 전적문서(보물)와 후손들의 유품 등 500여 점의 유적이 소장되어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풍산태사로 2830-6

울진 왕피천 공원
문화관광경상북도

울진 왕피천 공원

왕피천 공원은 자연 생태계의 보고인 왕피천을 끼고 관동팔경의 하나인 망양정이 굽어보는 동해 바다가 이웃하는 강과 바다가 만든 20여 만평의 대지 위에 한국 자연을 축소하여 옮겨놓은 듯한 아름다운 공원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드문 생태공원으로 사계절 내내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을 제공하는 곳이다. 전시관, 실내시설, 야외시설, 체험시설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시관의 경우 울진곤충여행관과 울진아쿠아리움으로 이루어져 있다. 곤충과 해양생물과 교감해 보고 자연의 소중함을 배울 수 있다. 실내시설로는 공연장인 왕피천 문화관과 구아바, 암석사자 등과 같은 각종 신비한 식물들이 있는 원예치료관이 있다. 야외시설의 경우 야생화를 즐기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왕피천 생태공원, 동물들에게 직접 먹이를 주고 동물과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동물농장과 공원을 이용하는 어린이들을 위한 놀이시설이 있다. 대표적인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농산물 수확체험과 염전체험이 있다. 농산물 수확체험의 경우 가족과 이웃이 함께 친환경농산물 경작을 통해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농업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울 수 있는 체험이다. 염전체험의 경우 사라져가는 전통 소금을 이용해 특색 있는 전통문화 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이 밖에도 목공예, 도자기 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왕피천공원길 1

송암스페이스센터
테마파크경기도

송암스페이스센터

산 정상에 위치한 송암스페이스는 세계 최대규모의 테마파크이다. 다양한 프로그램과 시설을 즐길 수 있는 송암스페이스는 언제든지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천체관측소이다. 아련하고 멀기만 했던 우주를 현실로 만들어내는 기술의 중심지고 국내 최초 자체기술력으로 제작된 60cm 대형 Ritchey-Chretien 망원경과 Takahashi, Meade사의 최고급(High-end) 망원경에서 쉽사리 볼 수 없는 우주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고, 기술이 밝혀내는 무한한 우주의 모습을 직접 목격할 수 있다. 또한 케이블카, 천문대, 스타스카페 등 여러 가지 부대시설 내에서 다양한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다.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권율로185번길 103

임실 진구사지 석등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임실 진구사지 석등

임실 진구사지 석등은 통일신라시대인 8~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높이는 5.18m이다. 1992년부터 2001년까지 진행한 발굴 조사에서 ‘진구사’ 명문(쇠불이나 돌 또는 그릇 따위에 새겨 넣은 글) 기와가 출토되자 이전 명칭인 용암리사지 석등을 진구사지 석등으로 바꾸었다. 진구사는 7세기경 고구려계 적멸과 의융이 창건한 이래 통일신라시대에는 열반종 사찰이었다가 고려시대에는 조계종 사찰에서 천태종 사찰로 바뀌었고, 조선 전기인 1407년(태종 7)에는 88개의 자복사(국가의 복을 기원하는 절) 중 하나로 지정되었다. 석등의 팔각 받침대에는 연꽃무늬와 구름무늬, 안상(눈의 모양 또는 눈처럼 생긴 모양)을 새기고, 그 위에 올린 연화대석(돌로 만든 연꽃 문양의 조명 시설)에는 팔각으로 연화문을 새겼다. 석등의 끝에는 큼직한 귀꽃(석등이나 돌탑 귀마루 끝에 새긴 꽃 모양의 장식)을 달아 장식하였다. 석등은 북 모양의 간주석(석등의 기둥)을 사이에 두고 상대석의 앙련(연꽃이 위로 향한 것처럼 그린 모양 또는 그런 무늬)과 대칭을 이루고 있다. 또한 화사석(등불을 밝히도록 된 석등의 중간 부분) 위로 옥개석(석탑이나 석등 위에 지붕처럼 덮는 돌)을 두었으며, 옥개석 추녀 끝에 큼직한 귀꽃을 세웠다. 석등은 전체적으로 웅장하면서도 경쾌한 모습이 섬세한 문양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신평면 용암리 734

합천 백암리 석등
역사관광경상남도

합천 백암리 석등

합천 백암리 석등이 세워져 있는 곳은 백암사 또는 대동사터라고 전하여 오나 분명하지 않으며, 이 석등도 무너져 흩어져 있던 것을 복원한 것으로 원래의 위치는 알 수 없다. 8장의 잎이 달린 연꽃을 조각한 둥근 아래받침돌 위에 아무런 새김이 없는 8각의 긴 가운데기둥을 세워 신라석등의 경쾌한 특징을 보이고 있다. 그 위로 꽃봉오리 같은 윗받침돌은 안에 얕은 홈을 파서 불을 밝히는 화사석을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도록 하였다. 화사석은 8각으로, 4면은 창을 내고 4면은 사천왕입상을 매우 뛰어난 수법으로 도드라지게 새겼다. 화사석은 불을 밝혀두던 공간으로 불빛이 있던 옛모습을 떠올리면 흥미롭다. 지붕돌은 밑면에 1단의 받침이 있으며, 그 안쪽으로는 홈을 파서 화사석을 끼워 고정시키도록 되어 있다. 지붕돌의 경사면은 얇지만 뚜렷하게 각을 지어 신라시대의 전형을 이루고 있다. 귀퉁이에는 꽃조각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깨어져 그 흔적만 남아있다. 꼭대기에는 8잎의 연꽃 문양조각만이 남아 있을 뿐이다. 아래받침돌과 윗받침돌을 화사하게 장식하였고, 특히 화사석을 고정시키기 위한 홈과 사천왕상의 배치 등은 주목되는 수법이다. 전체적인 양식으로 보아 통일신라 중기인 8세기 후반의 우수한 석등이라 할 수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백암리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
문화관광강원특별자치도

양양 진전사지 도의선사탑

멀리 동해가 내다보이는 진전사터 안의 작은 언덕 위에 서 있는 탑으로, 진전사를 창건한 도의선사의 묘탑으로 추정된다. 도의는 선덕왕 5년(784)에 당에서 유학하고 헌덕왕 13년(821)에 귀국하여 선종을 펼치려 하였으나, 당시는 교종만을 중요시하던 때라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이 절로 들어와 수도하다가 입적하였다. 이 탑은 일반적인 다른 탑과는 달리 8각형의 탑신(塔身)을 하고 있으면서도, 그 아랫부분이 석탑에서와 같은 2단의 4각 기단(基壇)을 하고 있어 보는 이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2단으로 이루어진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 모양을 새기고, 그 위로 탑신을 괴기 위한 8각의 돌을 두었는데, 옆면에는 연꽃을 조각하여 둘렀다. 8각의 기와집 모양을 한 탑신은 몸돌의 한쪽 면에만 문짝 모양의 조각을 하였을 뿐 다른 장식은 하지 않았다. 지붕돌은 밑면이 거의 수평을 이루고 있으며, 낙수면은 서서히 내려오다 끝에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위로 살짝 들려 있다. 석탑을 보고 있는 듯한 기단의 구조는 다른 곳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다. 도의선사의 묘탑으로 볼 때 우리나라 석조부도의 첫 출발점이 되며, 세워진 시기는 9세기 중반쯤이 아닐까 한다. 전체적으로 단단하고 치밀하게 돌을 다듬은 데서 오는 단정함이 느껴지며, 장식을 자제하면서 간결하게 새긴 조각들은 명쾌하다. (출처 : 국가유산청)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화채봉길 368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문화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 쌍봉사 철감선사탑

쌍봉사 철감선사탑은 쌍봉사에 세워져 있는 통일신라시대 승려 철감선사 도윤의 유골을 봉안한 불탑이다. 철감선사는 통일 신라시대의 승려로, 28세 때 중국 당나라로 들어가 불교를 공부하였다. 문성왕 9년(847) 범일국사와 함께 돌아와 풍악산에 머무르면서 도를 닦았으며, 경문왕대에 이곳 화순지역의 아름다운 산수에 이끌려 절을 짓게 되는데, ‘쌍봉’인 그의 호를 따서 ‘쌍봉사’라 이름하였다. 경문왕 8년(868) 71세로 이 절에서 입적하니, 왕은 ‘철감’이라는 시호를 내리어 탑과 비를 세우도록 하였다. 탑은 신라 탑의 전형적인 양식인 8각 원당형으로 이루어져 있지만, 그 세부 조각이 섬세하고 아름다울 뿐 아니라, 짜 맞춘 수법이 목조 건물의 수법을 그대로 구현한 형태이다. 화강암으로 조성된 승탑은 받침돌 위에 몸돌과 지붕돌을 놓은 모습이다. 대부분 잘 남아 있으나 아쉽게도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없어진 상태이다. 탑의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기단은 밑돌, 가운데 돌, 윗돌의 세 부분으로 갖추어져 있으며, 특히 밑돌과 윗돌의 장식이 눈에 띄게 화려하다. 2단으로 마련된 밑돌은 마치 여덟 마리의 사자가 구름 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저마다 다른 자세를 취하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앞을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 흥미롭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화순군 이양면 쌍산의로 459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문화관광강원특별자치도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진전사의 옛터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진전사는 통일신라시대에 도의국사가 창건한 절이라 전하는데, 터 주변에서 ‘진전[陳田]’이라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탑은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은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날아갈 듯한 옷을 입은 천인상[天人像]이 있으며, 위층 기단에는 구름위에 앉아 무기를 들고 있는 웅건한 모습의 8부신중[八部神衆]이 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1층 몸돌에는 각기 다양한 모습의 불상 조각들이 있다.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려져 있어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3층 지붕돌 꼭대기에는 받침돌만 남아있을 뿐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 지붕돌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경쾌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기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과 1층 몸돌의 세련된 불상 조각은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화채봉길 313

역사관광경기도

행주서원

행주서원은 임진왜란 때 행주산성에서 왜군과 싸워 큰 공을 세운 권율 장군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1842년(현종 8)에 건립된 서원이다. 조선 후기에 헌종은 고양 서삼릉에 행차할 때마다 임진왜란 때 공적이 높은 권율 장군의 제향을 지낼 건물이 없음을 안타깝게 여기다가 왕명을 내려 행주대첩이 일어났던 산성의 아래쪽 한강가에 사당을 짓게 하고 기공사라 하였다. 권율 장군은 1582년(선조 15)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임진왜란 때 전라도 관찰사가 되었다. 1593년(선조 26)에 전라도 병력을 인솔하여 행주산성에 주둔하던 중 왜군 3만 명과 싸워 2만 4천 명을 사살하는 행주대첩 전과를 올려 그 공로로 도원수가 되었다. 왜군이 철수한 선조 37년에 노환으로 관직을 사임하고 고향에 돌아가 세상을 떠났다. 죽은 후 선무공신 1등에 영의정의 벼슬을 받았고, 시호를 충장공이라 하였다. 행주서원은 미리 예약을 한 후에 서원 안을 둘러볼 수 있고, 평상시에는 바깥에서 담장 너머로만 볼 수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산성로 127-17 (행주외동)

고양향교
역사관광경기도

고양향교

고양향교는 조선 숙종이 왕위에 있던 시기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한국전쟁 때 불타버린 명륜당, 전사청, 외삼문은 1984년에 새로 지었다. 대자산 동쪽 기슭에 자리한 고양향교는 홍살문을 시작으로 하여 명륜당 등의 한옥 건물과 담장, 굴뚝, 기와 등이 어우러져 전통의 건축미가 잘 남아 있는 문화유산이다. 앞의 외삼문 쪽에는 공부하는 장소를 두고, 뒤의 내삼문 안에는 제사를 지내는 장소를 두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었다. 건물들을 비스듬히 배치하여 배수와 통풍, 경관 등을 세밀하게 고려하였다. 매년 음력 8월 27일, 공자를 비롯한 성현의 가르침과 그 학덕을 기리고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대양로285번길 33-13 (고양동)

역사관광서울특별시

서울 의릉(경종·선의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조선 20대 경종(재위 1720~1724)과 그의 비인 선의왕후의 어씨의 무덤이다. 경종은 희빈 장씨의 소생으로 어렸을 때부터 몸이 약하여 왕위에 오른 지 4년 만에 세상을 떠났다. 일반적으로 쌍릉은 좌·우로 조성하지만 이 무덤은 앞·뒤로 무덤을 조성한 상하이봉릉(上下異封陵)이다. 이처럼 앞·뒤로 만든 것은 풍수지리설에 의한 것으로 효종과 인선왕후의 무덤인 영릉에서 처음 나타났다. 왕릉에는 무덤 둘레에 병 풍석을 세우지 않고 대신 무덤 주위에 12칸의 난간석을 설치했는데, 난간석의 기둥에는 십이간지가 방위에 따라 문자로 새겨져 있다. 난간석 밖으로 망주석·장명등·문무석과 말·양·호랑이가 있다. 무덤의 석물 배치와 양식은 명릉과 같이 규모가 작고 간소한 후릉제도를 택하였다. 왕비릉의 석물 배치는 왕릉과 같으나 무덤 뒤에 담을 두르지 않았다.

서울특별시 성북구 화랑로32길 146-20 (석관동)

산청 법계사 삼층석탑
문화관광경상남도

산청 법계사 삼층석탑

지리산 천왕봉 동쪽 중턱에 자리 잡은 법계사는 544년에 연기조사가 세운 절이라 전한다. 한국전쟁 당시의 화재로 토굴만으로 명맥을 이어오다가 최근에 법당을 지으면서 사찰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법당 왼쪽에 위치한 이 탑은 바위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탑신부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었으며, 몸돌 각 모서리에는 기둥을 넓게 새겼다. 각 층의 지붕돌은 두터운 편이며,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3단이다. 탑의 머리장식 부분에는 포탄 모양의 돌이 얹혀있는데, 나중에 보충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처럼 바위를 기단(基壇)으로 이용한 탑은 신라 이후로 유행하였는데, 이 탑처럼 아래 기단부를 간략하게 처리한 경우는 드물다. 양식이 간략화되고 투박한 느낌을 주고 있어서 전형적인 신라 석탑 양식에서 벗어난 고려 시대의 석탑으로 추정된다.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대로 320-292

정취암
사찰경상남도

정취암

대성산의 기암절벽에 자리한 정취암은 의상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정취암 탱화가 유명한 사찰로 상서로운 기운이 가히 금강에 버금간다 하여 예로부터 소금강이라 일컬었다. 신라 신문왕 6년 동해에서 아미타불이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비추니 한 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고 하며 이때 의상대사께서 두 줄기 서광을 쫓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세우고 대성산에는 정취사를 창건하였다. 정취암은 고려 공민왕 때 중수하고 조선 효종 때 소실되었다가 봉성당 치헌선사가 중건하면서 관음상을 조성하였다. 1987년 도영당은 원통보전공사를 완공하고 대웅전을 개칭하여 석가모니 본존불과 관세음 보살상, 대세지보살상을 봉안하였다. 1995년에 응진정에 16나한상과 탱화를 봉안하고 1996년 산신각을 중수하여 산신탱화를 봉안하였으며 탱화는 경상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인근에 둔철생태공원과 선유동계곡 등 아름다운 자연관광지가 있는 지역이다.

경상남도 산청군 신등면 둔철산로 675-87

산청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
문화관광경상남도

산청 단속사지 동 삼층석탑

단속사 옛터의 금당터 앞에는 동서로 두 탑이 서 있는데, 그중 동쪽에 세워진 것이 이 탑으로, 2단의 기단에 3층의 탑신을 올린 전형적인 신라시대 석탑의 모습이다. 기단의 아래층은 ‘ㄴ’자 모양의 돌을 이용해 바닥돌과 동시에 만들어졌다. 그 위로 기단을 한 층 더 올린 후 몸돌과 지붕돌을 교대로 쌓아 탑신을 올려놓았다. 꼭대기에는 네모난 받침돌 위로 머리장식의 일부가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상·하의 비례가 적당하고, 위로 오를수록 탑신의 크기가 균형을 이루도록 구성되어 있어 그 모습이 아름답게 보인다. 함께 세워져 있는 서탑과 비교할 때 그 규모와 수법이 거의 동일하여 같은 시대의 작품임을 알 수 있다. 쌍탑의 배치와 더불어 주목되는 작품으로 통일신라 후기의 조성 기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단속사지에는 신라시대의 유명한 화가 솔거가 그린 유마상이 있었다고 전하는데, 지금은 알 수가 없으며, 동 삼층석탑은 신라 중기 이후의 전형적인 신라 양식을 갖추고 있다. 특히 기단부가 상·하 2층이며, 하층의 탱주가 2주이고, 상층의 탱주가 1주인 점은 신라 중대 이후의 석탑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호암로673번길 12-1

덕산사(산청)
역사관광경상남도

덕산사(산청)

덕산사는 657년 무염(無染) 국사가 창건하였다. 본래 덕산사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었으나 1609년에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고 수백 년 동안 절터만 남아 있었는데 1959년 원경스님이 절을 다시 세우며 내원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이후 2020년 10월 내원사 대웅전의 위치 고증을 위한 시굴 조사에서 덕산사라는 사찰명이 새겨진 기와 파편이 발견되어 내원사가 덕산사 터에 지어진 것을 확인하였고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2021년 3월 원래 이름인 덕산사로 사찰 명칭이 변경되었다. 덕산사는 장당골과 내원골이 합쳐지는 위치에 자리하여 사찰 어디에서나 계곡의 물소리를 들을 수 있어 사찰이 물 위에 떠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으며 흐린 날에는 계곡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가 신비감을 더해준다.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대하내원로 256

삼장사지 삼층석탑
문화관광경상남도

삼장사지 삼층석탑

산청 삼장사지 삼층석탑은 삼장사의 옛터에 남아 있는 탑으로, 무너져 흩어져 있던 것을 일부 수습하여 세워 놓았다. 삼장사는 절이름의 유래나 역사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밭으로 변한 주변에 건물의 기단을 비롯한 여러 석조물이 남아있어 절터였음을 말해주고 있다. 탑은 전체의 무게를 받쳐주는 2층 기단 위로, 3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으로, 원래는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기단은 아래위층 모두 각 면의 모서리와 가운데마다 기둥모양을 본떠 새겼다. 탑신의 몸돌은 모서리에만 기둥조각을 해두었을 뿐 다른 꾸밈은 보이지 않는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씩의 받침을 두었으며, 수평을 이루는 처마선은 양끝에서 살짝씩만 들려 있다. 5층 석탑으로 추측되어 통일신라의 석탑으로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며, 세부 수법에서 지붕돌의 밑면받침이 4단으로 줄어드는 등 간략화되고 약해진 모습들이 보이고 있어, 통일신라 후기인 9세기 이후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경상남도 산청군 삼장면 평촌리

도천서원
역사관광경상남도

도천서원

도천서원은 문익점(1329∼1398) 선생이 태어난 곳으로 나라에서 선생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문익점 선생은 고려 말기의 학자이다 문신으로 우리나라에 목화를 처음 들여온 것으로 유명하다. 서원은 조선 세조 7년(1461)에 세웠으며, 조선 정조 11년(1787)에 ‘도천서원’이라는 현판을 받았다. 고종 8년(1871)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75년에 사당인 삼우사를 짓고 서원으로 복원되었다. 서원 내의 신안사재는 조선 명종 6년(1551)에 지은 것이며, 현재 건물은 조선 순조 4년(1804)에 다시 지어진 것이다. 서원의 전체적인 배치는 공부하는 공간인 강당과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앞쪽에,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삼우사가 뒤쪽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되어있다. 또한 출입구인 내삼문과 외삼문이 있으며, 제사 때 관리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신안사재가 있다. 신안사재는 앞면 4칸, 옆면 2칸으로 지붕옆면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건물의 양쪽 끝 한 칸씩 넓은 마루를 두었다.

경상남도 산청군 신안면 문익점로 34-32

자연관광경상남도

산천재 남명매

지리산 천왕봉 아래 산청군 시천면 사리에 있는 산천재의 뜰에는 남명 조식(曺植, 1501~1572) 선생이 61세이던 명종 16년(1561)에 손수 심은 매화나무가 있다. 산천재는 선생이 학문을 닦고 연구하던 곳으로 명종 16년(1561)에 세웠고, 순조 18년(1818)에 고쳐졌다. 규모는 앞면 2칸, 옆면 2칸이다. 남명 선생은 영남의 퇴계 이황과 쌍벽을 이룰 만큼 호남 학파의 수장이다. 평생 벼슬에 나가지 않았지만 죽어서 사간원(司諫院)과 대사간(大司諫)에 이어 영의정에 추서된 위인이다. 선생은 1501년(연산 7년)에 경상도 삼가현에서 태어나 벼슬길에 나아간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이주하였다가 그 후 의령, 김해, 삼가 등지에서 거주하였다. 선생은 61세가 되던 해에 산청의 덕산으로 이주해 그곳에 서실을 짓고 산천재라 이름하였다.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남명로 310-8

남양주 사릉(정순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역사관광경기도

남양주 사릉(정순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릉은 조선 6대 단종의 왕비 정순왕후 송 씨의 능이다. 1521년(중종 16) 정순왕후가 노산군부인(魯山君夫人)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대군부인의 예로 장례를 치렀다. 묘는 단종의 누나 경혜공주의 시댁 해주 정 씨의 집안 묘역인 지금의 자리에 조성하였고, 해주 정 씨 집안에서 제사도 지내주었다. 1698년(숙종 24) 정순왕후로 복위되면서 능의 이름을 사릉이라 하고 묘를 왕릉 제도에 맞게 다시 조성하였다. 이때 사릉 주변에 있던 해주 정 씨 묘역을 옮기자는 의견이 있었으나, 숙종의 명으로 묘들을 그대로 두어 현재까지 남아있게 되었다. 사릉의 능침 봉분은 병풍석과 난간석을 생략하였고, 봉분 주변에는 문석인, 석마, 장명등, 석상(혼유석), 망주석을 세웠고, 석양과 석호는 1쌍씩 배치하였다. 능침 아래에는 정자각, 비각, 수라간, 수복방, 홍살문 등이 있고, 비각 안에는 ‘조선국 정순왕후 사릉(朝鮮國 定順王后 思陵)’이라고 새겨진 표석이 있다.

경기도 남양주시 진건읍 사릉로 180

파주 장릉(인조·인열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역사관광경기도

파주 장릉(인조·인열왕후) [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주 장릉은 조선 16대 인조(재위 1623~1649)와 첫 번째 왕비 인열왕후 한씨(1594~1636)의 능이다. 장릉은 같은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의 형식으로 앞에서 바라보았을 때 왼쪽에 인조, 오른쪽에 인열왕후를 모셨다. 장릉은 1635년(인조 13) 인열왕후가 먼저 세상을 떠나자, 다음 해 파주 운천리에 조성되었다. 이때 인조는 자신의 능 자리를 미리 만들었고, 1649년 인조가 세상을 떠나자 쌍릉의 형태로 인조의 능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장릉이 풍수상 불길하고, 화재가 자주 일어나며 뱀의 피해가 잦자 1731년(영조 7) 현재의 자리로 옮겼다. 옮기면서 능의 형식을 쌍릉에서 세종의 영릉(英陵)의 예에 따라 합장릉으로 바꾸었다. 현재 장릉 능침 석물은 옛 장릉의 석물과 옮긴 후 새로 만든 석물이 같이 있어 17세기와 18세기의 왕릉 석물의 형태를 볼 수 있다.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장릉로 90

지리산 천왕봉
자연관광경상남도

지리산 천왕봉

천왕봉(1,915.4m)은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자 남한에서 한라산(1,950m) 다음으로 높은 봉우리다. 거대한 바위가 하늘을 받치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서쪽 암벽에는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라는 의미의 [천주]라는 음각 글자가 있다. 1982년 경상남도가 정상에 표지석(높이 1.5m)을 세웠으며 이후 이 비석은 천왕봉을 찾는 이들의 기원과 바람을 담게 되었다. 천왕봉의 일출은 굉장히 아름다워 산청 9경의 제1경과 지리산 8경의 제1경으로 꼽힐 정도이다. 고도가 높은 만큼 항상 구름에 감싸여 있어 천왕봉에서 일출을 볼 수 있는 확률은 낮은데, 여러 번 도전해서라도 그 광경을 꼭 한번 보고 싶다는 이들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산청군 시천면 중산리에서 시작하는 산행 코스는 천왕봉을 유일하게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는 최단 등반 코스이다. 중산 두류 생태탐방로를 따라 걸으면 계곡 가득 쏟아져 내려오는 시원한 물소리와 푸른 수목을 즐기며 등반을 시작할 수 있다. 지리산 국립공원 중산리 탐방안내소 앞에 중산리계곡을 따라 시작하는 코스도 있다. [하늘을 오르는 문]이라는 뜻의 통천문과 망바위를 지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이라는 법계사를 만날 수 있다. 열심히 올라가 [하늘을 여는 문]이라는 뜻의 개선문을 지나면 마침내 눈앞에 끝없이 펼쳐진 산의 바다와 손 닿을 듯이 가까운 하늘이 있는 천왕봉 정상이 반긴다.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지리산대로

용두암해수랜드
테마파크제주특별자치도

용두암해수랜드

용두암해수랜드는 제주시 해안도로와 용두암 인근에 있는 사우나이다. 야자수로 조경을 둘러 남국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해수랜드는 넓은 규모의 사우나 종합시설과 정원 내 전통불한증막, 대형폭포, 이벤트 광장인 낙원의 쉼터, 주차장 등의 시설을 갖춘 대형 목욕 업장이다. 단순히 몸을 씻어내는 목욕이 아니라 휴식과 즐거움이 있는 여가공간을 만들어가고 있다. 각종 미네랄이 풍부한 청정 바닷물을 이용하는 해수사우나와 찜질방에서 피로를 풀 수 있고, 해수랜드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닷가 절경이 몸과 마음을 즐겁게 한다.

제주특별자치도 제주시 서해안로 630

생초국제조각공원
문화관광경상남도

생초국제조각공원

선사시대에 만들어진 생초고분군과 어외산성에 연접한 생초국제조각공원은 최근에 발굴한 가야시대 고분군 2기와 국내외 현대조각품 20여 점이 어울려 고대와 현대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특색 있는 문화예술공원이다. 이곳에 설치된 조각품들은 1999년, 2003년, 2005년 산청국제현대조각심포지엄에 참여한 세계적인 조각가들이 만든 작품이다. 생초국제조각공원은 생초면 면소재지와 고읍뜰, 경호강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알맞은 위치에 있으며, 가까운 곳에 민물고기 요리로 잘 알려진 식당들이 많이 있어 산청의 향토 음식을 맛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경상남도 산청군 생초면 산수로 10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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