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204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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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안보온천 관광특구
수안보온천 관광특구는 전통의 온천 휴양지다. 우리나라 최초의 자연 용출 온천수로서 3만 년 전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며 그 효능 역시 잘 알려져 있다. 지하 250m에서 용출되는 온천은 약알칼리성이다. 충주시가 직접 관리하는 온천수에는 인체에 유익한 원적외선뿐 아니라 각종 광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인지 예부터 수안보온천은 질병을 치료하고 휴양할 목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수안보온천의 중심지에 물탕공원이 자리하고 있다. 공원에는 온천수가 흐르는 나지막한 물길이 있다. 수안보온천을 이용하는 여행자들은 대부분 수안보온천 지역 내에 있는 호텔과 모텔 등의 숙박 시설을 이용하면서 온천욕을 즐긴다. 인근에 월악산, 충주호, 송계계곡 등 둘러볼 만한 자연 자원이 많다.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주정산로 12

기양서당
기봉 유복기(1555∼1617) 선생과 회헌 유의손(1398∼1450) 선생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원래 후손들의 글공부를 위해 서당으로 세웠던 것인데 후손들이 서원으로 바꾸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임하댐 건설로 1988년 현재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유의손 선생은 조선 전기 학자로 여러 벼슬을 거치고 문장에도 뛰어났다고 하며, 유복기 선생은 조선 중기 학자로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도 활약했던 분이다. 사당인 추원사는 앞면 3칸·옆면 2칸 크기로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사람 인[人] 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이다. 강당 건물인 역락당은 앞면 5칸·옆면 2칸 크기이며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여덟 팔[八] 자 모양과 비슷한 팔작지붕으로 지었다. 경관이 좋은 데에 자리 잡고 있는 건물로 전주 유 씨 집안의 중심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용계로 1698

기천서원
예천군 용궁면에 있는 기천 서원은 1665년(현종 6)에 고려 인물인 안준을 비롯하여 이문흥, 문근, 문관, 이구 등 5위의 위패를 봉안하기 위하여 기천 정사를 세웠다. 이후 1692년(숙종 18)에는 용궁 월오리로 1차 이건 하였으며, 1703년 (숙종 29)에는 향내 유림의 합의에 따라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712년(숙종 38) 현 위치인 용궁면 월오리 오룡곡으로 옮겨 재건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28년 설단하고 제향하였다. 경내에는 명교당과 1928년 복원된 상절사, 내삼문이 있다. 매년 봄, 가을로 향사를 지내다가, 현재는 음력 9월 20일에 한 번 제사를 지낸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나산길 35-9

나산서원
경주시 양남면 나산리 큰 마을에 있는 나산서원은 조선 전기의 문신 백촌 김문기를 배향하는 곳으로 일명 나산사라고도 한다. 김문기 선생과 나산리 입향조 김제학 선생의 후손들이 매년 향례를 올리는 이 서원은 경주 최남단에 위치하며 해안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설립된 서원이다. 나산리 입구 마을회관에서 서원까지 걷다 보면 안동 장씨 양반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나산서원은 대지 800평에 묘우 1동 3칸, 강당 1동 4칸, 동재 1동 3칸, 서재 1동 3칸, 전사청 1동 3칸, 외삼문 1동, 내삼문 2동, 관리사 등을 갖춘 전형적인 조선시대 서원 건축양식을 따르고 있다. 1780년(정조 4)에 세웠으나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 때 훼철되었다가, 1936년에 중건하였다. 매년 3월 중해일에 향사를 치른다. 김문기는 1399년(정종 1)에 태어났으며 본관은 김녕, 자는 여공이다. 1426년(세종 8)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예문관검열, 정언, 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456년(세조 2) 성삼문, 박팽년 등이 주동한 단종 복위에 가담했다가 발각되어 처형되었다. 1778년(정조 2) 의정부 좌찬성에 추증되었으며 1791년 단종의 무덤인 장릉의 충신단에 배향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나산1길 27
속리산 관광특구
충청북도에는 수안보온천, 단양, 속리산 등 3곳의 관광특구가 있다. 그중 속리산 관광특구는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사내리, 상판리, 중판리, 갈목리 일원으로 총면적이 43,745,528㎡에 이르며 1997년 1월 18일에 지정되었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휴양시설이 조화를 이루는 곳이다. 해발 1058m의 속리산은 한국8경 중 하나인 명산으로 높고 깊은 봉우리와 계곡이 절경을 이룬다. 법주사에서 시작해 속리산의 절경을 감상할 수 있는 다양한 등산 코스가 있다. 또, 속리산에는 하늘다람쥐, 망개나무 등 희귀 동식물이 서식하고 있어 자연 자원의 보고로 불린다. 속리산국립공원 주변으로 다양한 숙박 시설을 포함한 관광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속리산 천왕봉과 문장대, 법주사, 서원계곡, 만수계곡을 비롯해 삼년산성, 솔향공원 등을 둘러볼 곳이 많다. 속리산국립공원은 계절에 따라 속리축전, 속리산단풍가요제, 속리산등반축제 등 다양한 축제가 열리며 특히 단풍이 절경을 이루는 가을에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속리산 관광특구는 동서를 연결하는 당진~영덕 간 고속도로가 지나고, 청주국제공항에서 30분 남짓한 거리에 있어 접근성도 좋다. 덕분에 내국인뿐 아니라 중국이나 타이완, 싱가포르 등에서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의 접근이 편리하다.
충청북도 보은군 속리산면 법주사로 405

낙봉서원
구미시 해평면에 있는 낙봉서원은 1646년(인조 24) 유림의 뜻으로 세워진 조선 시대의 지방 교육기관으로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였다. 1787년(정조 11)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1931년에 지방 유림의 발의로 복원된 이래 제향을 지내오다가, 1977년 묘우를 다시 세우고 김숙자, 김취성, 박운, 김취문, 고응척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경내에는 사우인 상덕묘, 강당인 집의당, 동재인 세심재, 서재인 정교당, 그리고 신문과 양정문 등이 있다. 이 중 집의당은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1칸짜리 방이 1개씩 있는 구조의 공간으로 서원의 여러 행사 장소로도 이용된다. 예전에 유생들이 거처하며 학문을 닦던 거경재와 명성재는 지금은 향사 때 제수를 마련하는 공간으로 사용되며 매년 3월 두 번째 정일에 향사를 지낸다.
경상북도 구미시 해평면 낙성1길 84-7

낙암서원
상주시 중동면에 있는 낙암서원은 1745년(영조 21)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김담수, 김정룡, 김정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된 서원이다.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으며, 그 뒤 묘우 자리에 단소를 만들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강당과 1칸의 장판각이 있으며, 동재·서재와 전사청 등은 그 터만 남아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던 곳이다. 장판각은 문집의 판각을 보관하는 곳인데, 현재 판각은 없고 판각된 문집만 몇 권 남아 있으며 매년 한 차례의 향사를 지낸다.
경상북도 상주시 중동면 대바위길 183-13

남강서원(청도)
남강서원은 청도군 각북면 남산리에 있는 서원이다. 1864년 조선시대 학자인 박한주와 박수춘을 배향하기 위해 사림의 건의로 창건되었다. 1868년 훼철되었으나 밀양 박씨 국담 공파 사우당 문중의 기부금으로 2000년에 건립하였다. 문중에서 매년 3월과 8월 향사를 지내며 관리하고 있다. 전면에 세운 산형 대문을 들어서면 마당을 사이에 두고 팔작 기와집인 강당이 있고, 양 측면에는 동재와 서재를 배치하였다. 강당 뒤의 경사진 대지 위에는 사당인 양현사가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남산1길 62
남계서원
군위군 군위읍 대북리에 있는 남계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 류성룡(1542~1607년)과 이호민(1553~1634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기 위해 1581년(선조 14) 3월에 창건되었다. 류성룡이 1583년(선조 16) 경상도 관찰사로 있을 때 남계서당을 건립하였는데, 1607년 세상을 떠난 뒤 1621년(광해군 13) 후학들이 중수하고 서애의 위패를 모셨으며, 남계서원으로 승격시켰다. 이후 1787년(정조 11)에 이호민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전국의 서원을 일제히 정리하고 철폐함에 위패는 하회로 옮겨 모시고 서당으로 격하되었으며 6.25 사변으로 소실되었다. 1990년에 유림의 의해 복원하기로 결의하여 1991년에 복원되었다.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 대북길 9
남곡서원
고려 보문각 대제학과 판도판서의 관직에 오른 영천이씨 영양군 6세 남곡공 휘 석지와 그의 자제인 집현전 제학과 한성부윤이셨던 장자 휘 안우, 직제학 겸 병조판서이신 차자 휘 아직, 이조 정랑이 신 삼자 휘 안유, 군기사부정 휘 현실, 휘 안실 등 6위를 배향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첫 일요일 영천이 씨 남곡공파 후손들이 참 석하여 제사를 올린다. 대강당은 남곡공과 다섯 아드님을 경모하고 학업을 연수하는 곳으로 ‘남곡서원’이라는 현판을 달았으며 서원으로 들어가는 문은 협문과 대문이 있으며 이름을 ‘歸堂門(귀당문)’이라 하였다. 경내에는 남곡공의 사적비와 비각, 제학공의 유적비와 비각, 두문동 72현의 행적을 새긴 와비와 창건기문, 남곡서원 표지석 등이 세워져 있다. 사당인 효충사는 5위의 위패를 종 향하였고 신삼문(神三門)을 지어 ‘향례문(享禮門)’이라 하였으며 평소 출입하는 ‘숭의문(숭의문)’과 협문을 세웠다. (출처: 군위군 홈페이지)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미성3길 66-7

노봉서원
노봉서원은 조선 단종(재위 1452∼1468) 때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절을 지키다 순절한 죽림 권산해(∼1456)의 절의를 본받고 후진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권산해는 조선 전기의 의인이다. 세조 원년(1455) 수양대군이 단종의 왕위를 빼앗자 두 임금 섬기기를 거부하며 낙향했다. 그 뒤 사육신과 더불어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고 순절했다. 노봉서원은 정조 18년(1794)에 세웠으나, 고종 3년(1866)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고, 이후 1921년 지방 유림들의 지원으로 다시 세웠다. 건물은 내신마을의 옛 신당초등학교 옆 노사봉 아래에 서쪽을 바라보고 있으며, 5동의 건물로 1곽을 이루고 있다. 사주문을 들어서면 교육을 위한 강당인 몽양재가 있고, 뒤쪽으로 전사청이 있다. 그 오른쪽에 있는 내삼문을 들어서면 제사를 지내기 위한 사당인 숭의사가 있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막돌쌓기한 기단 위에 자연석으로 주춧돌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워 지붕을 받치도록 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인데, 앞면만 둥근기둥을 쓰고 나머지는 네모기둥을 사용하였다.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읍 내신2길 301

노계서원
노계서원은 조선 후기 풍기 지역 사림들이 진중길을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노계사에서 유래한다. 노계서원 경내에는 상현사·강당·행정·전사청 등이 남아 있다. 사당인 상현사는 진중길과 한산두의 위패를 모셔둔 곳이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강학 공간인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반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평면은 중앙에 마루를 깔고,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형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사청의 북쪽 방은 앞쪽은 창고로 활용되고, 뒤쪽은 화장실로 사용되고 있다. 행정은 진중길이 옛 봉황대[鳳凰臺] 자리에 은행나무를 심고 세운 정자이다. 후에 후손들이 중건·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 봉현면 노좌로29번길 28

단구서원
단구서원은 문희공 이세기 선생을 주벽으로 하고, 문효공 이천 선생, 송와공 이종윤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원래 송와공을 제향 하는 모현서당이 철종 13년(1862)에 건립되었는데,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어 1983년에 단구서원을 창건하였다. 이세기는 고려 충렬왕 때 명신으로 문장에 능하였으며, 밀직부사, 예문관대제학, 동지춘추관사, 검교정승 등을 역임하였다. 이천은 이세기의 장자이며, 고려 충렬왕 25년(1299)에 국자시 장원하였고, 충혜왕 4년(1343)에 첨의평리상의 동지공거를 겸하였다. 충목왕 즉위에 원나라 사신으로 다녀와서 판밀직사사 겸 서연관이 되고, 곧 정당문학에 올랐다. 충목왕 원년(1345)에 첨의참리, 문하시랑, 동평장사, 예문관대제학을 지낸 뒤 월성군에 봉해졌다. 이종윤은 이세기의 6세손이다. 세종 13년(1431) 경주 월남리에서 출생하였고,ㅡ 세조 13년(1467)에 문과급제하여 영창전참봉이 되었다. 내자시주부, 예조좌랑, 정랑으로 승진하였다. 성종 13년(1482)에 사간원헌납, 사헌부장령, 제용감 첨정, 봉상시 부정 등을 역임하고 시강원보덕이 되었다. 성종 20년 사헌부장령 집의를 지냈으며, 성종 21년(1490)에 제주목사로 교육을 장려하고 풍속을 순화하며 선정을 베풀었다. 과만에 제주민의 유임상소로 연임중 제주관아에서 연산 원년(1495)에 65세러 별세하였다.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단구서원길 8-3

덕강서원
영천 덕강서원은 영천의 청주 양씨 입향조인 양효지를 배향하는 서원이다. 1621년(광해군 13) 사림의 공의에 의해 창건되었으며,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22년 후학과 사림에서 사당인 경절사를 창건하고 덕강 서원을 복설 하였다. 1998년 후손들이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외삼문, 동재, 서재, 강당, 사당이 있다. 강당 뒤편에 사당이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 형식을 띠고 있다. 사당인 경절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겹처마의 맞배지붕집이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 건물 중앙 2칸에 마루가 있고 양 옆에 방이 있다. 동재와 서재는 각각 강당 앞에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신화로 933-16

덕림서원
덕림서원은 1740년(영조 16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오방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오방우(1313~1393)는 고려 말기의 문신으로, 고려 충목왕 때 예부시에 급제하고 공민왕 때 오도안렴사를 지낸 해주오씨 장기 입향조이다. 덕림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년)에 훼철되었으며, 그 뒤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경내에 현존하는 건물은 사당인 정헌묘, 강당, 동재, 서재가 있다. 사당에는 오방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사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된다. 신문은 향사 때 제관의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읍내길13번길 47

덕산서원(영주)
덕산서원은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에 있는 서원으로, 최효원과 최장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했다. 1894년(고종 31)에 금릉과 선산 지역 유림들의 공론으로 최효원(1742∼1795)과 최장간(1763∼1812) 2인을 향사하기 위해 덕산서원을 세우기로 결의하였지만 창건하던 중에 동학농민전쟁이 일어나 이를 피해 현재 위치로 이건 하였다. 1972년 영주와 봉화 유림들의 동의를 얻어 영주시 부석면 상석리에 건립하였고, 1977년에 중건하였다. 매년 음력 3월 15일에 향사를 봉행하고 있다. 최효원은 숙종 때 가선대부호조참판(嘉善大夫戶曹參判)에, 최장간은 영조 때 가선대부호조참판 동지중추부사(嘉善大夫戶曹參判 同知中樞府事)에 추증된 인물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부석면 감산길46번길 13-5

덕암서원(성주)
이 서원은 경산이씨(京山李氏)의 3현(賢) 삼익재(三益齋) 이천배(李天培)·백천(白川) 이천봉(李天封)·학가재(學稼齋) 이주(李)를 존모(尊慕)하여 현종 13년(1672)에 사림에서 덕암사(德巖祠)를 건립한 것에서 연유한다.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고종 13년(1876) 덕암서당(德巖書堂)으로 중건하였다. 지금의 서원 명칭은 1998년 정부와 경상북도의 지원을 받아 묘우(廟宇), 내삼문, 동·서재 등을 건립하여 이듬해에 개칭한 것이다. 서원에 제향 된 이천배와 이천봉은 형제 사이로 함께 한강(寒岡) 정구(鄭逑)로부터 가르침을 받았는데, 이천봉은 정묘호란(丁卯胡亂)이 일어나자 성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다. 이주는 여헌(旅軒) 장현광(張顯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백인당을 세워 후진교육에 힘쓰는 한편 동규(洞規)·향약(鄕約)을 정비하기도 하였다. 서원의 배치구성은 토석담을 두른 장방형 곽 전면에 서원을 출입하는 대문에 해당하는 솟을삼문인 건명문(建明門)이 있고, 북쪽에 강당과 그 앞으로 동·서재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서당 뒤편에는 별도의 곽 내에 내삼문과 사당이 자리 잡고 있다. 강당은 정면 5칸·측면 3칸의 규모에 중앙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 2통 칸 온돌방, 우측에 온돌방 1칸을 둔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 구조로 되어 있다. 동·서재는 정면 3칸·측면 1칸의 규모에 중당협실형(中堂夾室形)이며, 사당(祠堂)은 정면 3칸·측면 1칸 반의 규모로 되어 있다. (출처: 성주군 문화관광)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유월3길 29-72

덕양서원(의성)
덕양서원은 1625년(인조 3) 백촌 김문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다. 김문기는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형조참판·공조판서 등을 역임하였고, 1456년(세조 2) 사육신에 연루되어 처형되었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48년 지방의 유학자들에 의해 복원되었다. 경내의 대표적인 건물로는 상충사, 경의당 등이 있다. 상충사에는 김문기의 위패를 모시고 있고, 경의당은 유학을 공부하는 강당이다. 중앙에 마루를 두고 양쪽으로 온돌방을 배치한 형태로 유림들이 모임을 갖는 장소로 사용되었다. 이 외에도 제관이 출입하는 신문과 제사 음식을 준비하는 전사청, 숙소로 사용되는 동재·서재와 관리인이 생활하는 주소 등이 있다. 서원에서는 해마다 봄에 향사(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옥매길 101

덕천서원(성주)
덕천서원은 1794년 김관석, 김천택, 김주, 김즙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된 서원으로 의성 김씨 집성촌인 윤동 마을에 위치하고 있다. 의성 김씨 4인에 대한 배향 및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어 복원되지 못하였으나 이후 복원을 시작해 2019년에 완성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 신문 ,중정당, 양진헌, 험효료, 전사청, 고사 등이 갖추어져 있었다.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륜리

도계서원
봉화군 봉화읍 도촌리에 있었던 조선 시대 서원인 도계서원은 1610년(광해군 2) 지방 유림의 공의로 단종에 대한 절의를 지켰던 충절 이수형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되었다. 이후 이유, 이보흠, 이여빈 등 충절의 본보기가 되었던 인물들을 추가로 모시고 제사를 지냈다. 경내에는 묘우인 견일사, 강당인 공극루, 동재, 주소 등이 있었으나,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으며, 강당인 10칸의 공극루만 남아 있는 상태이다. 도계서원 옆에는 존재하는 공북헌은 도촌 이수형(1435~1527)이 조선 단종 3년 수양대군이 왕위를 뺴앗자 관직을 관두고 고향에 칩거하기 위해 지은 집이다. 툇마루를 벽으로 길게 막아 문을 열면 오직 북쪽만을 내다볼 수 있도록 지어졌으며, 이는 단종의 능이 있는 영월에 북쪽 방향이기 때문으로 단종에 대한 충정을 담은 것으로 해석된다.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사제길 12
김천 도동서원
도동서원은 충간공 이숭원을 제향하기 위해 1648년 건립됐으며 이후 이숙기, 이호민, 이숙함, 이후백을 배향한 연안이씨의 문중서원이다. 이후 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는데 1918년 도동서원 옛 강당터에 명례당을 재건하여 현재까지 이르고 있다. 현재는 강당인 명례당 한 채와 외문만 남아있다. 충간공 이숭원은 병조판서, 이숙기는 호조판서, 이호민은 이조좌랑을 거쳐 예조판서와 좌찬성, 이숙함은 이조참판, 이후백은 양관 대제학과 호조판서를 지냈다.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상좌원3길

도안서원
조선시대 학자 김우태와 김시태를 배향하기 위해 1783년(정조 7년) 공성면 도곡리에 도안서당으로 창건되었다. 이후 인근 산현리로 옮겨 세우며 도안사로 바꾸었고, 1870년(고종 7년)에 서원훼철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100여 년간 복원되지 못하다가 후손 김규호 씨의 의해 1999년에 복원추진위원회가 결성되고, 이듬해인 2000년에 청도 김 씨 집성촌인 화동면 판곡리 원통산 아래에 자리를 잡아 강당과 묘우를 새로 지어 복원하였다. 묘우와 강당은 일자형으로 좌묘우학 형태이며, 강당 앞에는 서원중건비가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화동면 판곡1길 37

도암서원(고령)
김면 장군 유적지 내에 위치한 도암서원은 김면 장군을 배향하기 위해 세운 조선 후기 서원이다. 1666년에 건립된 도암서원은 초기에는 대가야읍 연조리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 후 1789년에 쌍림면 고곡리의 현재 위치로 이건 하였으나, 이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 그 후 1907년 지방 유림들이 도암서당 유계를 조직하여 해마다 곡식을 내어 김면의 묘사를 지냈으나 1910년 이후 없어졌다. 문중에서 1975년 도암재를 건립하여 문중의 재실로 사용하다가 2002년 고령 내 유림들이 발의하여 이 건물을 도암서원으로 복원하였다. 김면 장군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조종도, 문위 등과 거창, 고령 등지에서 의병을 규합하여 적군 10만과 우지에서 대치하여 적을 격퇴하고 무계에서 승전하였다. 그 공으로 합천 군수로 임명되었으며 의병대장의 칭호를 받았다.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칠등길 138

도연서원
고성군의 도연서원은 허기, 허천수, 허재의 뜻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조선 숙종 13년(1687)에 세웠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폐쇄되었다가 1920년에 다시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강당, 사당인 추원사, 돈화실, 명성실, 내삼문, 외삼문인 일원문이 있다. 강당은 앞면 5칸, 옆면 3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강당 뒤쪽 높은 곳에 있는 추원사는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돈화실과 명성실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에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정문인 일원문은 앞면 3칸 솟을대문으로 가운데 1칸을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그 윗부분에 난간을 설치한 누대를 둔 것이 특이하다. 이 서원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고성군 마암면 도전4길 15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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