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203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203페이지입니다.

종로 청계 관광특구
광화문 빌딩부터 숭인동 사거리까지 서린·관철·관수·장사·예지동 전역, 신문로 1가 일부, 종로 1~6가 일부, 창신동 일부를 아우르고 있는 종로청계관광특구는 세련된 고층 빌딩숲과 절묘하게 어우러진 조선시대 궁궐들인 경복궁, 창덕궁, 창경궁, 덕수궁, 운현궁과 종묘 등을 함께 만날 수 있다. 또한 옛 왕조의 문화재를 비롯하여 많은 박물관이 있으며, 인사동 전통문화의 거리, 관철동 젊음의 거리, 귀금속 거리, 세운전자상가, 조명 상가, 광장시장, 문구 상가 등의 특색을 갖춘 각양각색의 거리 덕분에 볼거리가 넘쳐난다.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들에게도 유명한 곳으로 언론사와 관공서, 서점 등이 밀집해 문화를 가장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공간이며 청계천을 따라 걷는 산책 코스도 잘 갖춰져 있다. 종로 일대의 특화된 거리를 따라 무려 1만 4,000여 개의 상점들이 즐비해 있고 의류와 신발 같은 패션 관련 물품은 물론이고 귀금속, 전자, 문구, 액세서리 등 품목도 다양하다. 옛 모습을 간직한 좁다란 골목들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롭지만 종로와 청계천 일대에서 상시로 열리는 여러 축제와 행사도 즐겁다.
서울특별시 종로구 무교로 37 (서린동)

월미 관광특구
달의 꼬리를 닮았다 하여 이름 붙여진 월미도는 러일 전쟁, 병인양요 및 인천상륙작전 등 근대역사의 주무대이자 인천을 대표하는 유원지이다. 주변에 카페촌, 식당, 숙박시설, 테마 공원까지 여행에 필요한 시설이 모두 모여 있어 데이트와 가족 나들이 코스로 인기가 많다. 월미도에는 우리 선조들의 이민사를 살펴볼 수 있는 한국이민사박물관도 자리하고 있다. 유원시설이 있어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장소이기도 하다. 월미관광특구는 인천의 구도심 지역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근대 역사와 문화를 엿볼 수 있는 곳이다. 인천 앞바다와 접한 항구를 통해 근대 문물이 유입된 까닭에 개항기의 역사가 담긴 근대 건축물과 근대 문화유산도 풍부하다. 월미관광특구에 개항장에 포함되는 차이나타운은 한국으로 건너와 살아가는 중국인들의 과거와 현재를 엿볼 수 있는 곳으로 다양한 중국 식당과 근대박물관, 전시관 등이 있다. 매년 봄 자유공원 문화관광축제와 송월동 동화마을 축제가 열린다.
인천광역시 제물포구 월미문화로 81
용두산 자갈치 관광특구
용두산 자갈치 관광특구는 역사와 문화를 가득 품고 있는 매력적인 문화관광지역으로 어묵, 씨앗호떡, 비빔당면, 팥죽, 팥빙수 등 맛있는 길거리 음식과 함께 보수동 책방골목, 40계단 골목, 국제시장 등 스토리를 가진 곳으로 역사의 숨결을 느껴볼 수 있는 원도심 대표 관광지역이다. 관광특구에는 남항과 영도를 조망할 수 있는 용두산공원 전망대, 쇼핑의 중심지 광복동, 각종 해산물과 먹거리가 가득한 자갈치시장, 다양한 쇼핑을 즐길 수 있는 국제시장, 향토 먹거리와 쇼핑을 즐길 수 있는 부평동 깡통 야시장, 영도대교, 보수동 책방골목, 부산근대역사관 등 원도심의 역사 문화자원을 풍부하게 간직한 곳으로 연중 이벤트, 축제, 쇼핑이 가능한 도심형 관광지로 국내외 관광객이 끊이지 않는 명실상부한 관광지역이다. 영도대교 도개 복원은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차별화된 볼거리로 새로운 관광명소로 부각되고 있으며, 부평동 깡통 야시장과 국제시장의 글로벌복합문화공간 개장 등 전통시장의 끊임없는 변신과 부산국제영화제, 부산자갈치축제, 부산 크리스마스트리 축제 등은 새로운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가득한 관광특구이다.
부산광역시 중구 자갈치해안로 52

경광서원
금계리 동편 사천 위에는 예로부터 ‘유정사’라는 절이 있었으며, 선조 1년(1568)에 사림에 의해 경광서원이 세워졌다. 이후 현종 3년(1662)에는 이름을 ‘경광정사’로 바꾸고, 백죽당 배상지와 용재 이종준 두 선생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인조 27년(1649)에는 ‘춘파이사’를 창건하여 용재 이종준과 경당 장흥효 두 선생을 모셨다. 숙종 12년(1687)에는 서원으로 승격되어 경당 선생의 위패를 경광정사로 옮기고, 백죽당과 용재 두 선생과 함께 제향 하였다.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873년 단소를 마련하여 향사를 이어왔다. 이후 1978년에 현재의 모습으로 복설 되어, 매년 9월 중정일에 제향을 올리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3길 131-24

경양서원
김천시 구성면에 위치한 경양서원은 송오 여응구와 그의 아들 감호 여대로 부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 하기 위해 지은 서원이다. 서원 건물 오른쪽에 사당이 있는데 철폐 이후에 다시 지은 것으로, 옛날과 같이 두 분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여응구는 1572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성균관 학론을 지냈으며, 여대로는 1583년 별시 문과에 급제하여 군수에 이르고 임진왜란 때 창의지사였다. 경양서원의 정확한 창건 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94년 「금릉군지」에는 조선 숙종 때 창건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1868년 서원 철폐령이 내려지자 사당 건물은 철거하고 강당은 그대로 둔 채 현판을 ‘경양서원’에서 ‘경양서당’으로 변경하였다. 이는 서원 철폐령을 피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기와집 건물이며, 강당 건물의 기둥은 대추나무와 밤나무를 사용하고 있다. 이곳에는 「송오문집」과 「감호문집」 판목이 보존되어 있다.
경상북도 김천시 구성면 광명3길 105

고산서원(안동)
이 서원은 18세기 유학자인 문경공 대산 이상정선생을 추모하는 고산서원이다. 1789년(정조 13)에 사림의 공의로 건립되었다. 선생은 25세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쳐 공조참의에 제수되었으나 사퇴하고 퇴계의 학통을 계승하여 성리학을 연구하는 한편 후진을 양성하였으며 선생의 문인록에 등재된 제자만도 273인이나 된다. 1882년(고종 19) 이조판서에 증직 되고 1910년 문경공이란 시호가 내려졌다. 문집 27 책이 있고 이기휘편, 제양록, 퇴계서절요, 사례상변통고, 병명발휘 등 많은 저술을 남겼다. 전체적으로 규모가 크고 격식을 갖추었으며. 특히 앙지재와 백승각의 양 끝은 개방된 마루를 두어 주변 경관을 음미하도록 꾸며져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남후면 암산1길 53-1

제주도 관광특구
한반도의 남서해상에 위치하는 제주도는 특별자치도로 지정된 국내 최대의 관광 지역이다. 전 지역이 관광특구로 지정될 만큼 발길 닿는 곳마다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 펼쳐진다. 내외국인을 합쳐 한 해 약 1,5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다녀갈 정도로 매력적인 이 섬의 크기는 남북으로 31㎞, 동서로 73㎞에 이른다. 유네스코 3관왕(세계자연유산, 세계지질공원, 생물권보전지역) 지역이며, 세계7대자연경관 지역으로 지정된 제주도는 온대 지방의 특징을 가진 한반도의 육지와는 다른 기후대에 자리했다. 덕분에 아열대에서 아한대에 이르는 제주만의 식생을 보유했다. 제주도의 색다른 자연은 이 섬을 찾은 여행자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섬 한가운데 우뚝 솟은 한라산과 산기슭에 솟아 오른 크고 작은 오름이 만들어 내는 풍경, 해안에 펼쳐진 주상절리는 화산섬 제주도를 대표하는 풍경이다. 바다에서 한라산을 향해 오르다 만나는 중산간 지역은 자연이 주는 선물이다. 제주세계자연유산센터가 있는 거문오름을 찾아 중산간의 자연을 탐방하는 것도 좋다. 제주의 방언과 생활풍습도 이색적이다. 해안선을 따라 이어진 182㎞의 일주도로는 자동차는 물론 스쿠터나 자전거를 타고 달리면 좋다. 도보길인 ‘제주올레’를 따라가면 걸어서 제주도를 한 바퀴 돌 수 있다.제주도는 ‘국제관광도시’ ‘국제자유도시’ 라는 이름에 걸맞게 관광은 물론 정치·경제에서도 육지의 자치구들보다 자유롭고 다양한 정책을 펼치고 있어 외국인들에게도 인기 있다. * 제주도 관광특구 현황 1) 범위 : 제주특별자치도 전역(부속 도서 제외) 2) 면적 : 1,809.56k㎡ 3) 관광특구 지정일 : 1994년 8월 31일 * 제주도 관광특구 시설 현황 한라산, 오름, 해안일주도로, 중산간 지역, 제주올레 도보길, 해수욕장, 박물관, 갤러리, 중문 관광 단지 등
제주특별자치도

고산서원(울진)
고산서원은 경상북도 울진군 구미마을에 있었던 조선시대 문신 임유후, 김시습, 오도일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1628년 임유후가 이곳에 내려와 고산에 정자를 짓고 20여 년간 제자를 가르치고 학문을 연구하였다. 그의 사후 제자들이 임유후를 추모하기 위해 고산사를 건립하였다. 그 뒤 이곳의 현령으로 부임한 오도일은 김시습이 자주 다녀간 행곡리주천대에 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동봉별묘를 세우고 구암사라 하였다. 오도일이 죽은 뒤 1715년 고산이라는 사액을 받고 고산서원으로 승격되어 임유후, 김시습, 오도일을 합향하게 되었다. 고산서원은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하던 중에 훼철되었고 그 후에 다시 복원되지는 못했다. 위패는 땅에다 묻었으며 현재 서원터에는 유허비만 남아있다. 이 서원이 훼철되기 전 경내 건물로는 고산사, 강당, 신문, 동재, 서재 등이 있었다.
경상북도 울진군 근남면 주천대길 27-6
곤산서원
곤산서원은 칠곡군 약목면에 있는 서원으로, 1773년에 묘우로 건립된 뒤 1784년에 신우덕과 신익황을 봉안하고 서원으로 승격되어 강학을 한 곳이다. 그러나 1868년에 훼철되어 빈터로 남아 있다가 2004년, 이 터에 다시 곤산서원이 복원되었다. 이 지역은 평산 신씨 집성촌으로 시조는 태조 왕건을 구해내기도 했던 장군 신숭겸이다. 곤산서원은 그의 후손들을 모시는 서원이다. 배향된 대표 인물인 신우덕은 조선 개국공신 신효창의 후손이며 증공조참의 신계의 아들이다. 20대에 여헌 장현광의 문하에서 천인성명의 학문을 연구하였고, 여러 차례 향시에 합격하였으나 과거를 포기하고 향리에 은거하면서 학문에 전념하고 예법과 덕행을 함양하였다. 곤산서원은 경도사, 영모재, 외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도사에는 곤산서원에 배향된 신우덕과 신익황을 모시고 있다. 영모재는 신우덕의 후손들을 봉안하고 있어 강당보다는 재실의 기능을 하고 있다.
경상북도 칠곡군 약목면 신유로 60

관란서원
경산시 용성면에 위치한 관란서원은 조선 후기 학자 이언적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660년 지방유림들의 공의로 이언적의 도덕과 학문을 추앙하여 창건하고 위패를 모셨고, 그 뒤 1715년과 1743년에 묘우를 중수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다. 1869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서당으로 명칭을 변경하여 유생들의 학문을 닦는 곳으로만 사용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강당과 2동 5칸의 고사, 대문 등이 있다. 강당은 중앙에 마루가 있고, 양쪽에는 협실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되었다. 고사의 1동은 향례 때에 제수를 마련하여 두는 곳이며, 또 1동은 제구를 보관하기도 하였다.
경상북도 경산시 용성면 서원천로 268-21

광남서원
광남서원은 조선 초의 문신 황보인(1387~1453)과 그의 아들 황보석, 황보흠을 배향하기 위하여 1791년(정조 15) 지방 유림들과 후손들이 세운 세덕사가 시초이다. 이후 1831년(순조 31) 임금으로부터 사액서원으로 승격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따라 철폐되었다가, 1900년에 다시 복원하였다. 황보인은 사간원 정언, 집현전 학사, 형조 참의, 강원도 관찰사, 병조판서를 거쳐 영의정을 지냈으며 이후 단종을 보좌하다 1453년 계유정란 때 역모죄로 몰려 살해되었고, 단종 복위와 함께 신원이 회복되어 충정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현존하는 경내의 건물로는 사당인 충정묘, 강당인 숭의당,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으며 서원 뒤쪽에 유허비가 있다. 영천 황보씨 문중에서 운영과 관리를 맡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중정일에 제사를 지낸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구룡포읍 정동길77번길 11-2

구강서원
익재 이제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영정과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이제현은 고려 후기의 학자이며 정치가이다. 학자로서 이제현은 뛰어난 유학자로 성리학을 수용·발전시키는데 매우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문학 부문에서도 그는 대가를 이루었다. 많은 시문을 남겼고, 고려의 한문학을 발전시켜 한 단계 높게 끌어올렸다. 한편 사학(史學)에도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의 저술로 현존하는 것은 『익재난고』10권과 『역옹패설』2권이다. 구강서원은 원래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이제현의 영당(影堂)으로 세운 것을, 숙종 12년(1686)에 서원으로 다시 세웠다. 하지만 고종 8년(1871)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고, 1904년 지방 유림이 복원하였다. 서원 배치는 공간을 田자형으로 나누어 토담을 둘렀다. 그 왼쪽에는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을 같은 선상에 배치하였고, 오른쪽에는 고사와 경각을 두었다. 경각 안에는 익재영정과 익재집 책판을 보존하고 있다. 성현에 대한 제사와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왔으며,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낸다. (출처: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경주시 안강읍 구강길 68-6

정읍 내장산 관광특구
정읍 시내에서 약 11㎞ 떨어진 내장산은 활엽수의 타들어 가는 듯한 붉은 단풍이 아름다워 대한민국 단풍 명소 1위로 손꼽히는 곳이다. 내장산은 산 안에 숨겨진 것이 무궁무진하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으로 조선시대부터 호남의 금강이라 불렸다. 내장산 관광특구에는 내장산을 포함하여 내장사, 케이블카, 전망대, 내장산 단풍 터널, 붉게 물든 단풍이 비치는 경관이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호수 위의 우화정이 있다. 내장산공용터미널 근처에는 식당과 모텔 및 펜션이 모여있어 관광객의 편의를 돕는다. 내장산은 해발 763m의 신선봉을 주봉으로 9개의 봉우리가 말발굽처럼 둘러선 모양이 신비감을 자아낸다. 전국 8경의 하나로 꼽힐 만큼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하며 금선폭포, 도덕폭포 등을 품은 금선계곡과 백암계곡 등이 유명하다. 10개가 넘는 등산 코스는 1.5~14㎞까지 다양한 코스가 있어 체력이나 취향에 따라 선택적인 트레킹이 가능하다. 등산이 어렵다면 평지로 이어지는 3.6㎞의 자연관찰로를 탐방해도 좋다. 매표소에서 케이블카를 타고 전망대까지 쉽게 갈 수도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내장동

구만서원
구만서원은 1676년에 사림에서 건립하였다. 금인, 남몽오, 박선장, 권호신 등 4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묘호를 기영사(耆英祠)라 하다가 1766년에 구만서원으로 승격한 뒤, 1868년에 흥선대원군의 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67년에 지방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었다. 전체적인 배치는 사당인 상현사와 강당이 좌우로 배치되어 있는데, 주위에는 방형의 판축담장을 두른 후 전면에는 사주문을 세웠으며 두 공간 사이에는 일각문을 세웠다. 경내에는 상현사, 강당인 흥교당, 출입문인 신문, 관리인의 거주지로 쓰이는 주소 등이 있다. 4현의 위패가 봉안된 상현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기와로 된 맞배지붕 건물이다. 흥교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기와로 된 팔작지붕 건물인데, 가운데의 마루를 중심으로 양쪽에 방이 1칸씩 있다.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구만서원길 5
유성 관광특구
유성 관광특구는 1994년 8월 31일, 대전 유성구에 지정된 관광특구이다. 주요 시설로는 유성온천, 대덕연구단지, 엑스포과학공원, 국립중앙과학관, 그리고 다양한 박물관, 미술관, 종합 유원시설 등이 있다. 특구 내에는 온천수 원탕이 자리하고 있으며, 수량이 늘 풍부해 물을 섞거나 온도를 높이는 과정 없이도 질 좋은 온천수를 그대로 제공하고 있다. 유성온천은 효능이 뛰어난 것으로 유명해 삼국시대부터 병을 치료하고 휴양하는 장소로 사랑받아 왔으며, 현재도 중장년층의 건강 여행지로 손꼽힌다. 유성 관광특구 내에는 이 온천수를 사용하는 호텔과 대중 온천탕이 많고, 관광 휴양지답게 다양한 음식점도 즐비해 먹거리가 풍부하다. 인근에는 계룡산국립공원이 있어 산행 후 온천욕을 즐기기에 좋고, 엑스포과학공원을 비롯한 과학 관련 박물관과 전시관이 많아 어린이를 동반한 가족 단위 여행객에게도 인기 있는 관광지이다.
대전광역시 유성구 대덕대로 480

구양서원
구양서원은 1914년 처음 백산 변경회와 봉은 변극태 선생을 봉향하는 사당을 건립하고 세덕사라 이름 지었다. 1924년 후손들에 의해 묘우, 강당, 서재 등을 신축하고 사림의 뜻에 따라 구양이사로 승격됐다. 1984년에는 후손 변교우가 자비로 중수할 때 규모를 확장하여 묘우, 전사청, 동재, 서재, 삼문, 문루, 기타 부속건물을 신축했다. 이후 서원으로 승격하여 대은 변안렬 선생을 주벽으로 삼고 변경회, 변극태 선생을 배향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로는 사당인 숭절사, 정당인 염수당과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다. 대은 변안렬 선생은 고려 말 홍건적을 평정했고, 1380년 도체찰사로 운봉, 인월 등의 지역에서 왜구를 대파해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 고려 말 새 왕조에 항거하다가 1390년 유배지인 한양에서 타계했다.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산정길 202-17

아산시 온천 관광특구
아산시 온천 지구는 온양온천을 비롯해 도고온천과 아산온천을 포함하는 아산시 관내 주요 온천지구이다. 이들 온천 지구는 2004년에 경부고속철도 천안아산(온양온천) 역, 2008년 수도권 전철 온양온천역이 개통됨에 따라 접근이 편리해지고 물놀이 시설 등 연계 관광시설이 확충되면서 관광객 수가 증가했다. 아산시가지에 위치한 온양온천은 삼국시대인 1,300여 년 전부터 이용되었다고 전해지며, 조선시대에는 병을 치료하거나 휴양을 원하는 왕들에게 대대로 사랑을 받았다. 온양온천은 알칼리성으로 37~54℃의 수온을 유지하며 수질이 좋고 수량도 풍부하다. 온양온천에는 과거 신혼여행지로 각광받았던 만큼 호텔과 온천장, 식당 등 200여 개에 달하는 숙박 시설과 편의 시설이 발달하여 휴양하기에 적합하다. 보양 온천으로 이름난 도고온천은 온천 치료시설도 갖추고 있다. 또한 물놀이 시설도 운영되고 있어 가족 단위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2007년에 도고온천역 일대 장항선이 직선화되면서 남은 옛 철길에서는 레일바이크를 즐길 수 있다. 아산온천에는 다양한 물놀이 시설을 갖춘 테마 온천이 자리하고 있다. 물이 부드럽고 규산, 나트륨, 칼슘 등의 광물질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신진대사를 촉진해 소화기 기능을 개선한다고 전해진다. 이곳은 현대적인 시설의 콘도와 여관을 두루 갖추고 있으며 골프장과 워터파크, 실외 온천풀 등을 구비하고 있어 온천욕과 함께 다양한 레저를 즐길 수 있다.
충청남도 아산시

귀산서원
1786년(정조 10)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서유(徐愈)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귀산서사(龜山書社)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839년(헌종 5)에 ‘구산’이라고 사액 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1848년에 서일원(徐一元)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83년 지방 유림에 의해 복원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매년 2월 상정(上丁)과 8월 상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현곡면 구산서원길 71-12

근성서원
1812년(순조 12) 의성군 안평면 하평리에 조선 개국공신인 김인찬[金仁贊]의 유덕을 추모하기 위해 이곡서원[尼谷書院]으로 창건하였고, 의성군 비안면으로 이건 했다가 대원군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훼철되었다. 그 뒤 1926년에 현 위치에 복설, 근성[芹城]으로 서원명을 고쳤다. 경내의 건물은 사우와 강당, 전사청, 내외삼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담장을 둘렀다. 서원의 경내는 매우 경사져서 강당과 사당의 고저차가 많이 난다. 구성은 외삼문을 들어서면 숭의당[崇義堂]이라고 현판을 단 강당이 전면으로 보이고, 강당 뒤쪽으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사당영역에 이른다. 한편 강당 우측방 입구 위에는 양직재[養直齋]라는 현판이 걸려있다. 사당에는 원훈사[元勳祠]라는 현판이 걸려있으며, 사당영역의 담장 밖 우측에 전사청이 자리하고 있으며, 동서재는 따로 없다.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긴대골길 10

근암서원
근암서원은 조선시대 명현인 우암 홍언충, 한음 이덕형, 사담 김홍민, 목재 홍여하, 활재 이구, 식산 이만부, 청대 권상일 등 칠현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1544년(중종 39)에 근암서당으로 설립되었다가 이후 1669년(현종 10)에 근암서원으로 개칭하였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으며, 1982년 지역의 유림과 배향인물의 후손들에 의해 사당과 강당이 중건된 바 있다. 2011년 지역 유림과 시민들의 염원을 담다 사당, 강당, 동재, 서재 등 모두 10동의 건물이 근암서원의 옛 모습으로 복설되었다.
경상북도 문경시 산북면 금천로 351-5

금곡서원
금곡서원은 1568년(선조 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치암[恥菴] 박충좌[朴忠佐] 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봉안하였다. 그 뒤 박눌[朴訥]과 박손경[朴孫慶]을 추가로 배향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84년 유림에 의해 회산사[晦山祠] 터에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문면 금당실길 174

금산서원
금산서원은 1707년(숙종 33년)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허진수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허진수는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천품이 온화하고 재기가 뛰어난 영재였으나 벼슬을 단념하고 도산서원에 들어가 학문에 전념하였다. 1574년(선조 7년) 나라에서 그의 학행을 가상히 여겨 통정대부의 품계를 내렸으며, 만년에는 고향에서 정자를 짓고 후진양성에 진력하니 이때부터 그곳을 금곡이라 불렀다. 금산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년)에 훼철되었다가 1909년 유림에 의해 사당을 중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경모사, 4칸의 수덕헌, 3칸의 동재, 외문, 4칸의 고사 등이 있다. 사당인 경모사에는 허진수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수덕헌은 강당으로서 방과 마루로 되어 있는데, 방은 헌관 및 별유사, 재석실로 사용하며, 마루는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신문은 향사 때 재원의 출입문으로만 사용하고 있으며, 동재는 재원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고사는 서원을 관리하는 고자가 사용하는 곳이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신창길191번길 25-12

금호서원(경산)
경산 금호서원은 문경공 허조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1922년부터는 허후와 허조를 함께 배향하고 있다. ‘준도문’이라 편액 한 외삼문을 들어서면 정면 하여 강당인 수교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마당의 좌측에는 평기와를 얹은 4칸 규모의 맞배기와집인 성경재를 두었다. 성경재와 마주 보는 마당 우측의 경사진 대지 위에는 사당이 배치되어 있는데, 사당의 주위에는 방형의 토석담을 둘러 별도의 공간을 이루게 하였으며 담의 정면에는 3칸 규모의 평대문인 내삼문을 세웠다.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가마실길2길 32-1

금호서원
금호서원은 동계 이운룡 장군과 향산 백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이운룡(1562∼1610)은 선조 18년(1585)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임진왜란 때 많은 공을 세워 경상우수사 겸 3도 수군통제사에 이르렀다. 이 서원은 원래 이운룡의 출생지인 매전면 온막리에 상충사를 세우면서 유래되었다. 순조 14년(1814)에 이서면 금촌리로 옮겼으나 고종 5년(184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고 남은 강당을 지금 있는 자리에 이전하면서 효충사라 이름을 바꾸었다. 그 뒤 1947년에는 서원을 고쳐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 배치는 외삼문인 시덕문을 들어서면 강당과 동재·서재가 있고, 강당의 뒤쪽에 내삼문이 있으며 그 안쪽으로 현충사가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삼성산길 10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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