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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201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201페이지입니다.

가산서원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가산서원

가산서원은 고려 후기 문신 익재 이제현(1287∼1367)과 이제현의 8대손인 조선 중기 문신이자 학자 백사 이항복(1556~1618) 등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연산군 4년(1498) 이제현의 5대손인 장수 현감 이재인(1415~?)이 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성군 삼계면 주산리 백산촌에 집을 짓고 은거하면서 익재의 영정을 모셨고, 1559년 후손 이대정이 사우 백산사를 지어 익재의 제사를 모셨다. 세월이 흘러 사우가 퇴락하자 영조 42년(1766) 후손 이언경이 낭월산 남쪽 기슭의 현 위치(장성군 삼서면 홍정리 가산마을)로 사당을 옮겨 가산서원이라 하고 이항복을 추배하였다. 고종 5년(1868) 훼철되어 영정만 모시는 영당으로 남았다가 1960년 중건하였다. 1998년 장성향교의 발의로 이재인을 추배하고, 해마다 음력 8월 10일에 향사를 올린다. 익재영정이 보관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성군 삼서면 영장로 2015

강덕사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덕사

강덕사는 강덕서원이라고도 한다. 조선 헌종 12년(1846)에 후손들의 협력으로 시조 장경공 최사전을 비롯하여 최표, 최부, 최극충을 배향하고 있다. 최사전은 어려서부터 무술에 정통하여 여러 대에 걸쳐 임금을 섬기던 중 고려 인종 때 이자겸의 난을 평정하여 나라를 보존시켜 강진의 명예를 드높인 인물이다. 경내에는 외삼문, 내삼문, 강덕서원, 효인재, 강덕사 묘정비, 위패를 모시는 강덕사, 관세위, 망예위 등이 현존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15일과 10월 15일에 제를 올리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군동면 호라길 199-39

강성서원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성서원

인조 21년(1643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문익점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월천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뒤 숙종 18년에는 문위세를 추가 배향하였다. 문위세는 문익점의 9대손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공을 세웠고 정유재란 때 많은 왜적을 물리쳤다. 정조 9년에 강성(江城)이라는 사액을 받아 서원으로 승격되었고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많은 학자들을 배출하였다. 고종 5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로 인하여 훼철되었으나 1905년 유림들에 의하여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주요 건물로는 숭덕사, 강수당, 준소, 원직사 등이 있다. 숭덕사의 중앙에는 문익점의 위패가, 왼쪽에는 문위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수당은 서원의 강당으로 중앙에는 마루가 있고 양쪽에는 협실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학문의 토론 장소로 사용된다. 준소는 전사청과 같이 향례 때 제수를 마련하여 두는 곳이며 오른쪽 협실은 임원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흥군 유치면 유치로 70

겸천서원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겸천서원

겸천서원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주암면 죽림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조유(趙瑜)·조숭문(趙崇文)·조철산((趙哲山) 등 옥천조씨 3세를 배향했다. 순천을 관향으로 하는 단종의 충신인 김종서(金宗瑞)·박중림(朴仲林)·박팽년(朴彭年)도 함께 배향되었다. 겸천서원은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이 일직선상으로 배치되었고, 주위에 고직사, 유사방 건물이 있다. 주변과 경내에는 영모재, 조유의 효자정려비각, 조숭문과 조철산의 충신정려각, 입구의 문 ‘경재문(景梓門)’, ‘경장각’, 경장각창건기적비 ‘계해’, 겸천서원중건기적비, 모선헌성비 ‘병오’ 등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주암면 죽림리

경현서원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경현서원

경현서원은 나주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조선 유학을 대변하는 많은 인물을 배향한 곳으로 나주 최초의 사액서원이다. 이곳은 16~17세기 나주지역의 을미옥사의 발생 원인과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적으로 1583년(선조 16) 지방 유림이 김굉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금성산 아래에 사당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고 1589년(선조 22) 정여창, 조광조, 이언적, 이황 4위를 함께 배향하여 오현서원이 되었다. 정유재란 때 소실되었다가 목장흠과 지방 유림들이 합력하여 중건하였으며, 이듬해인 1609년(광해군 1)에 김선 등의 상소로 [경현]이라고 사액되었다. 1693년(숙종 19)에는 기대승과 김성일을 추가 배향하여 모두 7위를 모시게 되었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77년 유림이 이곳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신문, 동·서 협문, 4칸의 강당, 외삼문, 4칸의 고사 등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노안면 영평리

계송서원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계송서원

계송서원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계송리에 위치한 서원이다. 1966년 향내 유림의 발의로 하동 정간, 미산 정례손 등의 절개와 의리를 추모하기 위하여 현 소재지에 사우를 창건하고, 처음 이를 도내사라하고 제향(각종 제사 의식) 해 오다가 후에 계송서원이라 개액하였다. 향사는 음력 2월 20일과 8월 20일에 모신다. 주변 관광지로는 우산근린공원, 영광예술의 전당, 영광 스포티움, 영광향교, 물무산 등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영광읍 청보리로3길 31

경주시 관광특구
문화관광경상북도

경주시 관광특구

경주는 국내 최대의 관광도시로, 그 자체가 거대한 야외 박물관이라 할 만큼 곳곳에 문화재가 산재해 있다. 걸어 다니는 모든 길이 유적지이고 보이는 모든 경치가 살아있는 역사이며, 만나는 모든 것이 문화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한국의 대표 역사 문화 도시다. 이러한 이유로 1994년 경주시 일대 시내, 보문지구, 불국지구 등이 관광특구로 지정되었다. 관광특구 내에는 문화재로 지정된 명소가 300여 개에 이르고, 그중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것도 많다. 관광특구 내 주요 명소로는 불국사, 석굴암, 대릉원 등이 있으며, 경주세계문화 엑스포공원, 경주월드, 신라밀레니엄파크 등의 레저 시설 또한 갖추고 있다.

경상북도 경주시 경감로 614 (천군동)

곡수서원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수서원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조례동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조선 명종 때의 진사 정소를 추모하고자 숙종 38년(1712)에 순천유림인 조구년, 유책, 임진상 등이 발론하여, 정소의 형 정자와 지우인 조대성을 함께 배향하는 사우로 정소의 유지인 청사헌 자리에 건립하였다. 원래 이름은 정소의 호를 따서 청사사라 하였으며 현 순천시 저전동의 청사헌 자리에 있었다. 1868년의 서월철폐령으로 훼철되어 향사가 중단되었다가 1958년에 향교의 유림대표 조창렬 등과 연일 정씨 정운호 등 후손들이 협력하여 현 위치인 조례동에 사우를 재건하면서 이름을 곡수서원이라 개칭하였다. 청사사우 때와는 달리 재건된 후에는 정소와 조대성만을 향사하고 있다. 곡수서원 앞에 네모난 형태의 아름다운 연못이 조성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순광로 105-17

군자서원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군자서원

군자서원은 1820년에 도내 유림과 후손들의 발의로 삼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양산김씨의 사우이다. 강진에 처음 입향한 분은 강진읍 송현에 거주한 김자정이며, 그의 아들 김명규가 작천으로 이거 하였다. 창건 이후 향사의 예로 제향 되었으며, 1824년 강당을 신축하였으나 1880년 훼철당하였다. 1962년 신실 및 내삼문 강당을 재건하고, 1993 외삼문을 신축하였으며, 2009년에 서원으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작천면 행정길 65-1

금산원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금산원

금산원은 1842년에 창건한 언양 김 씨 원사로 감성재라 하고 위열 김취려를 주벽으로 김자수와 김성진을 배향, 삼위를 모셨다. 운영이 어려운 나주의 정열사를 1940년 경 이곳으로 옮겨 정렬사로 개명하고 김천일을 주벽으로 김자수, 김상건 삼위를 배향했다. 그 뒤 1964년 정렬사가 다시 나주로 옮겨지자 김취려를 주벽으로 모시고 김자수, 김천일, 김성진, 김상건 오위를 향사하면서 금산원으로 액호를 바꾸고 건물이 퇴락됨에 따라 1981년 2차례 중수하였다. 건물은 4동으로 강당, 신실, 내삼문, 외삼문이 있다. 김취려는 고려의 명장으로 박달제 등에서 거란군을 물리쳐 영남의 지킨 공훈을 남겼으며 현 국무총리격인 문화시중을 역임했고, 김자수는 문과에 급제 홍문관 응교 및 강진현감과 강원감사직을 끝으로 창평의 월봉산에 상월정을 건립 후학을 양성했다. 김천일는 나주에서 태어나고 이항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1592년(선조 25) 의병을 일으켜 창의사의 군호를 받았다. 진주성에서 아들 상건과 함께 순절하였다. 김성진은 유년부터 문학적 재능이 뛰어났으며 임란이 일어나자 4종 형인 김천일 막하에서 아들 전, 홍과 함께 군량미를 조달 보급하였다. 김상건은 김천일 장남으로 임란 때 종군하여 진주산성 싸움에서 부자가 같이 순절하니 충효의 가문을 이루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군동면 동관덕길 81

남강서원(강진)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남강서원(강진)

남강서원은 남강사라고도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 우암 송시열(1607~1689)과 중국 송나라의 유학자로 주자학을 집대성한 주자(1130~1200), 송시열의 문인인 손재 박광일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남강서원의 유래는 송시열이 기사환국으로 인해 숙종 15년(1689)에 제주도로 유배 가게 되었는데 그때 강진의 성자포(현 남포)에서 제주도로 가는 배를 타려다 폭풍을 만나는 바람에 잠시 근처의 만덕산 백련사에 머물며 유생들에게 강론을 하였다고 한다. 그를 기념하기 위해 순조 3년(1803)에 세운 것이 바로 남강서원이다. 당시 강진의 향유들이 도관찰사였던 한용구의 승인을 얻어 정읍 노암서원에 모셔져 있던 송시열의 영정을 백련사로 옮겨 봉안하고, 영당의 액호를 남강이라 하였는데 백련사의 영당이 남강서원의 전신이다. 헌종 4년(1838) 향림들의 발의로 사당에 주자를 정위봉향 하였으며, 1901년 현재의 위치에 신단을 설단 하여 주자와 송시열을 향사하는 한편 어필각을 건립하였고, 후에 박광일을 추배 하였다. 남강서원 왼편에 구 어필각이 있고, 그 앞으로 새로운 어필각이 신축되었다. 어필각에는 유형문화유산인 강진남강사주자갈필목판일괄이 소장되어 있다. 주자갈필목판은 순조 9년(1809)에 송시열이 제주로 유배 갈 때 배를 탔었던 성자포 앞바다로 떠내려 온 궤 안에 있던 것이라 한다. 당시 강진 현감이 이 궤를 감영으로 옮기려 했으나 궤를 수송하던 사람과 말이 남강사(남강서원) 앞에서 전복하여 더 이상 옮길 수 없게 되자 그 목판을 서원에 소장하게 된 것이라 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강진읍 향교로 128-2

녹동서원(영암)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녹동서원(영암)

녹동서원은 인조 8년(1630)년에 ‘존양사(存養祠)’라는 이름으로 창건되어, 숙종 39년(1713)에 ‘녹동’이란 사액을 받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 서원에는 창건당시 연촌 최덕지(1384∼1455)만을 모시고 있었으나, 그 뒤 최덕지의 손자인 산당 최충성(1458∼1491), 문곡 김수항(1629∼1689), 농암 김창협(1651∼1708) 등을 차례로 모셨다. 녹동서원에는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영암녹동서원소장목판및고문서류’가 보관되어 있다. 대표적인 고문서로는 원생들의 명단을 적은 「서원청금안」25책, 「서원서재유안」2책, 「심원록」5책, 「합경재보노안」3책 등을 비롯하여 통문, 완의, 노비기증문서 등의 낱장 문서가 있다. 또한 목판으로는 「연촌유사」, 「문곡집」, 「산당집」등 모셔진 인물들의 문집 목판과 인근지역의 인물의 「석천집」 등이 있다. 이 유물들은 녹동서원의 연혁, 조직과 운영, 경제기반, 유생들의 명단 등 종합적이고 다각적인 매우 귀중한 자료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암군 영암읍 낭산로 10-41

단양 관광특구
테마파크충청북도

단양 관광특구

관광특구란 관광여건을 집중적으로 조성시키기 위한 관광진흥법에 의해 지정된 지역으로 2023년 4월기준 13개 시도에 34개의 관광특구가 지정되어 있다. 단양관광특구는 2005년 12월 30일에 단양군 단양읍 매포읍 일원 2개읍 5개리, 총면적 4,448,737㎡이 지정되었다. 소백산 국립공원, 도담삼봉, 사인암 관광지, 고수동굴, 활공장, 유람선 선착장, 불교천태중앙박물관, 대성산 자연휴양림 등이 관광특구 안에 포함되어 있다. 단양 8경으로 유명한 단양은 유람선을 타고 도담삼봉과 구담봉, 옥순봉 등 충주호반의 절경을 유유자적 관람할 수 있다. 굽이도는 물길과 함께 사인암, 상선암 등의 선경을 감상하다 보면 신선놀음을 하는 듯 한가로운 기분도 만끽할 수 있다. 소백산 국립공원은 한반도 중심에 우뚝 솟아 백두대간의 장대함과 신비로움을 엿볼 수 있는 명산이다. 소백산의 주봉인 비로봉을 비롯해 여러 봉우리를 따라 걷는 종주 코스는 많은 등산객이 사랑하는 트레킹 코스다. 가족 단위의 여행객이라면 다리안관광지, 천동관광지, 온달관광지 등의 유원지에서 여유로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자연을 만끽하는 캠핑, 드라마 촬영지에서의 추억 만들기 등 특별한 재미가 가득한 공간이다.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단양 관광특구에서는 꽃과 자연, 단양의 역사를 알 수 있는 특별한 행사가 열린다. 5월의 소백산철쭉제, 10월의 온달문화축제이다. 축제시기에 단양을 찾으면 활기찬 단양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다. 또, 단양읍의 도전, 별곡, 상진, 고수리 일대에는 관광객을 위한 숙박 시설과 각종 편의시설이 들어서 있어 관광 도시로서 면모를 갖추고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단양읍 고수동굴길 3-11

대계서원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대계서원

문강공 은봉 안방준(1573~1654)은 호남을 대표하는 유학자로서, 20세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박광전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고,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에도 격문을 띄워 근왕의 의기를 높이 세웠다. 대계서원은 효종 8년(1657) 지방유림의 공의로 안방준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러나 이 서원은 중앙의 정치적 변화에 따라 훼철과 복설이 거듭되었으니, 숙종 17년(1691)에 안방준사우에 대한 훼철이 결정되어 이듬해 능주의 도산사와 함께 훼철되었으며, 그 뒤 1695년(숙종 21)에 이르러 복설되었다. 숙종 30년(1704) ‘대계[大溪]’라고 사액되어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며, 정조 4년(1780) 화재로 전소된 것을 1784년에 중건하였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어 복원되지 못하였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보성군 보성읍 동암2길 100

덕양서원(고흥)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덕양서원(고흥)

희빈 장 씨의 아들인 경종이 왕위에 오르는 것을 반대하였다가 신임사화 때 사사된 좌의정 이건명을 주향으로 하는 서원이다. 영조 1년(1725년) 이건명의 넋을 기리고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고, 1768년에 송연악·박유석 등을 비롯한 사림에서 주창하여 유허비를 세웠다. 이건명은 시문과 서예에 조예가 깊었으며, 특히 송설체가 뛰어났다. 그의 저술서로는 한포재집이 있다.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883년에 중건되었다. 그 뒤 유허비가 퇴락하자 1928년 이건명의 후손인 이정호와 관내 사림에서 협력하여 비각을 다시 세우고 서원을 중건하였다. 매년 음력 8월 19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약 300m 거리에 덕흥항이 있으며, 1.4㎞ 도보 약 5분 거리에 덕흥천문대가 있다. 차량 이용 약 3분, 2.1㎞거리에 덕흥 해변이 있어 같이 방문하여도 좋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고흥군 동일면 성두구룡길 132

명곡서원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명곡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명곡서원은 해주 최 씨 문중을 중심으로 세워진 서원으로 당초 장흥에 있었으나 1984년 군동 신기마을로 옮겨왔다. 성재 최충, 송탄 최유선, 동산 최자, 강호 최만리, 호은 최우 등 5위의 성현이 모셔져 있다. 건물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집이며 신실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으로 명곡사란 액자가 걸려있다. 부속건물로 내삼문, 문간채, 고직사 등이 있다. 신기마을은 주변에 해주 최 씨 후손들이 학습하던 강당이 보존되어 있고 해주 최씨의 세거 마을이다. 인근에 동양 최대 아미타불 불상을 볼 수는 남미륵사가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군동면 신기길 63

묘장영당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묘장영당

영광 묘장영당은 1616(광해군 8)년에 조선조 개국공신인 이천우의 영정을 봉안하였는데, 이천우는 전라도의 왜구토벌에 공을 세웠고 그 후손이 담양에서 영광으로 이거 하면서 향내 유림들과 함께 영당을 건립한 것이다. 조선후기 훼철 이후 강당은 서당으로 기능했으며, 1928년에 발의하여 1934년에 신실을 중건하였다. 건물 배치에 있어 중심축을 설정해 짜임새 있는 건축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며, 각 건물의 구조도 무리 없이 안정된 형태를 취하고 있다. 중건 이후의 보존관리 및 상태도 양호하며, 관련 자료도 잘 보존되어 오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묘량면 동삼로1길 21

무령서원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무령서원

무령서원은 영조 24년(1748년) 본향유림의 발론으로 고려조의 명신 문안공 김심언 등 영광김씨 선조 8위를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숭의문, 무령서원, 태충문, 기천사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다. 영광읍 동부면 기천에 사우를 창건하고 ‘기천사’라 하여 제향해 오다가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1898년 유허비를 세우고, 광무 7년(1903년) 단을 만들어 봉향하다가 순종 후 1933년 사림의 재론으로 현 소재지에 이건하여 ‘무령서원’이라 개액하였다. 그 후 다시 본서원은 정부당국의 보조로 광복 후 1975년 개수를 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훼철된 뒤 세운 유허비의 비문이 당대 학자 송사 기우만의 문집에서 확인되며, 중수 시의 상량문이 전해지고 있는 등 기천사와 무령서원의 역사성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어 향촌사회사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문화재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영광읍 와룡로2길 16

미강서원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미강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미강서원은 조선시대 학자인 매곡 배숙(1516~1589)의 학덕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후 서원철폐령 등의 두 차례 철거에도 불구하고 다시 현재 위치에 재건됨으로써 산수에 노닐면서 도의를 추구했던 배숙의 인문정신을 음미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사적 의의가 있다. 입구에서 돌계단을 올라 척강문을 지나면 미강서원이라는 현판이 달린 강당이 자리한다. 강당을 돌아 내삼문을 지나면 배숙을 배향하는 명덕사가 있고, 명덕사 왼쪽에 배숙의 묘가 있다. 주변에 볼거리로 순천시 가을철 대표 축제인 ‘순천만 갈대제’가 순천습지와 순천만 인근지역 일원에서 개최한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순천시 해룡면 해광로 175

박산서원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박산서원

강진에 있는 박산서원은 1590년(선조 23) 강진읍 월남마을에 청연 이후백(1520-1578)을 제향 하기 위해 ‘서봉서원’이라는 명칭으로 창건했다가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1924년 호남 사림들의 발의로 현 박산으로 옮겨 복설하고 액호도 ‘박산서원’이라 개칭하였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강진군 작천면 박산죽현길 107-56

방산서원(구례)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방산서원(구례)

조선 성종조의 문신인 추계 윤효손(1431~1503)을 기리기 위하여 숙종 28년(1702) 건립하였다. 윤효손은 경국대전, 오례의주, 성종실록 등을 편찬하고 경상도 관찰사, 한성부윤, 대사헌, 성균관동지사, 좌우참찬 등을 지낸 인물이다. 1740년 무렵 구례군 중방리의 입향조인 벽송 윤위를 추배 하여 주벽에 모셨고, 이후 최연, 이경석, 최언수 등을 추배 하여 5위를 봉향하였다. 고종 2년(1865) 서원철폐령으로 인해 철폐되었다가 1985년 중건하여 윤효손을 모셨고, 1994년부터는 윤위와 이경석을 함께 모셨다. 서원의 역내에는 사당(모덕사), 동재, 서재, 외삼문(경앙문), 내삼문(거인문) 등의 건물이 있다. 사당 뒤 언덕에 보호수로 지정받은 팽나무가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산동면 둔사길 36-13

봉암서원 (장성)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봉암서원 (장성)

1697년(숙종 23)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망암 변이중의 덕행과 업적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1707년에 변경윤을, 영조 4년(1728)에 윤진, 변휴를 추가 배향하여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고종 5년(1868)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었다가 1974년 유림에 의하여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종앙사, 내삼문, 7칸의 성경당, 4칸의 훈덕재, 4칸의 경의재, 외삼문 등이 있다. 1982년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1984년 2월 준공 때 변윤중을 추가 배향하였다. 망암 변이중은 임진왜란 때 화차 300대를 자비로 제작하여 그중 40대를 행주산성에 보내 행주대첩의 승리를 이루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으며, 경주 탈환전과 해상에서도 사용하였다고 한다. 봉암서원에 인접하여 변이중 유물전시관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장성군 장성읍 화차길 159

사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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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산사

사산사는 1670년(현종 9년)에 서원으로 창건하였다. 1700년(숙종 26년)에 사우로 중건하고, 함평이씨 시조 함풍군 언, 전라좌수사 춘수, 효우당 접의 삼위를 초향 했다. 1778년(정조 2년)에 함성군 장양공 종생, 기성군 긍 이위를 추가 배향하고 향사우로 봉향하였다. 1868년(고종 5년)에 국령으로 사우를 훼철하였고, 1872년(고종 9년)에 사당 내 유허비와 제단을 세우고 제사를 지냈다. 1902년(광무 6년)에 영풍문회에서 1906년에 단문과 담장을 축조하고 제전을 마련했으며, 1910년에 사우를 복원했다. 1936년에 현재 사우로 중건하여 참판공 종수와 현령공 주 이위를 추가로 배향했다. 1988년에 신실 단청과 내외삼문 및 담장 일부를 준공하였고, 1990년 경행당(강당)을 준공했다. 매년 양력 3월 마지막 토요일에 제향을 올린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함평군 나산면 사산길 38-35

설재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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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재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설재서원은 설재 정가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으로 정가신은 고려 문신으로 과거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자리를 거쳤으며 뛰어난 문장가이다. 숙종 14년 노안면 금안동에 세운 설재서원은 숙종 38년에 향사우로 승격되었다. 경종 3년에 영안마을로 이전하면서 강당인 영모재를 세웠고 이곳에는 현재 9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데, 숙종 19년(1693)에 효자 정려를 받은 정식, 경종 3년(1723)에 신장과 정심을, 1953년에 정상, 정여린, 정란, 1988년에 정초, 정눌의 위패를 추가하였다. 서원의 면적은 207평(684㎡)이며 건물의 구성은 사당, 강당, 내삼문으로 되어 있고, 외삼문 대신 4각 대문이 강당 측면에 건립되어 있다. 내삼문 좌우로 담장을 설치하여 제향 구역인 사당과 강당구역으로 분리시켰다. 강당인 영모재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인데 중앙으로 2칸의 대청을 두고, 그 양측으로 온돌방을 꾸몄다.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의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노안면 영안길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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