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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199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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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산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구산서원

전라북도 진안군에 위치한 구산서원은 1828년(순조 28)에 송보산(宋寶山)을 배향하기 위해 창건되었다가 16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1949년에 다시 설단(設壇)되어 봉사하다가 1967년에 이르러 중건되었고 1967년에 진안유림의 발의로 김문기(金文起)와 송림(宋琳)이 추향 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구산서원은 진안 서남쪽 섬진강과 세동천이 만나 크게 만곡을 이루는 강변 옆에 자리하고 있다. 조선시대 후진양성을 담당하던 구산서원과 손현배향을 하던 구산사가 함께 자리하였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마령면 임진로 2361-82

남고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남고서원

일재 이항·건재 김천일을 비롯하여 김점·김복억·김승적·소산복을 기리고 있는 서원이다. 이항(1499∼1576)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성리학에 조예가 깊은 학자이다. 김천일(1537∼1593)은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을 무찌른 장수이다. 이 서원은 선조 10년(1577)에 이항과 김천일을 추모하기 위해 세웠고 숙종 11년(1685) 임금으로부터 ‘남고’라는 이름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광무 3년(1899)에 다시 지었는데 이때 김점·김복억·김승적이 추가로 배향되었으며, 1913년에는 새로 소산복의 위패를 모시게 되었다. 서원 경내에는 사우와 강수재, 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다. 사우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안쪽은 중앙에 이항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그 좌우에 나머지 인물들의 위패가 있다. 이곳에서는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강당인 강수재는 앞면 4칸·옆면 3칸의 규모이고,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가운데 2칸은 대청이고, 좌우에 방을 배치하였다. (출처: 국가유산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북면 보림1길 392

남산서원(김제)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남산서원(김제)

김제시 성덕면 묘라리 소재에 위치한 남산서원은 조선시대에 설립된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병자호란 때 척화파(斥和派)로 활약한 유지화(柳志和)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1574년(선조 7)에 창건하였다. 그 후 순조 때 남궁제(南宮濟)를 배향했다. 1870년(고종 7)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가 1970년에 다시 중건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 사우인 경의사, 산문인 경의문 등이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경의사 중앙에는 유지화와 남궁제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성덕면 만경로 600-92

덕암서원(임실)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덕암서원(임실)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임실군 지사면에 있는 덕암서원은 1863년에 건립되었으며, 포은 정몽주를 주벽으로 최양을 배향하다가 1821년(순조 21) 정지년을 추배 하였으며, 1829년(순조 29)에 이르러 박종수를 다시 추배 하였다. 그 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전국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1965년 복설 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강당·정문·중문·고사 등이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집이고,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집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원산3길 1-22

청련암(단양)
역사관광충청북도

청련암(단양)

청련암은 충청북도 단양군에 있는 암자로, 고려 후기 승려 나옹선사가 창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어 빈 절로 내려오던 것을 1710년 인근 대흥사의 승려들이 중창하여 선실을 세우고 청련암이라 하였으며, 1741년 장마 비로 떠내려가자 마을 사람들의 시주를 얻어 1746년 중건하였다. 그 뒤, 불에 타 소실되었고 1954년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극락전과 칠성각이 있으며, 문화재로는 단양 청련암 목조보살좌상이 있다. 또한 경내에 단양팔경의 하나인 사인암이 있다.

충청북도 단양군 대강면 사인암2길 42

도동서원(고창)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도동서원(고창)

도동서원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에 위치해 있다. 도동서원은 도동사라고도 불리며, 고창군의 향토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도동서원은 1928년에 지역의 유림들이 나라에 충성을 하고 절의를 도모하고자 방호정사 안쪽에 지은 사당이다. 방호정사는 한말의 수남 고석진(1856~1924)이 후학을 가르치던 곳이다. 도동서원(도동사)에는 조선의 독립을 위해 순절한 의병 대장 면암 최익현(1833~1906)과 수남 고석진(1856~1924), 송천 고예진, 송제 고용진 등이 위패가 안치되어 있다. 이들은 최익현을 따라 항일 의병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1919년에 한국의 독립 청원서를 파리 강화 회의에 보냈으며, 이로 말미암아 일제의 탄압을 받은 분들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 가평1길 64

동죽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동죽서원

정암 조광조를 중심으로 덕촌 최희정을 기리고 있는 서원으로 1960년 지방 유림이 지었다. 조광조(1482∼1519)는 조선 전기의 문신이며 성리학자이다. 김종직의 학통을 이어 사림파의 중심이 되었으며 급진적인 개혁을 실행하였다. 이를 반대하는 훈구세력의 모함으로 유배되어 기묘사화(1519) 때 희생되었다. 최희정은 조광조의 가르침을 받았고 조선 중종 11년(1516) 무과에 급제하였다. 이때 함경도에 여진족이 침입하자 조광조가 추천하여 적을 크게 물리쳤다. 중종은 그 공로로 현재 서원이 있는 땅을 하사하였다고 한다.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덕천면 학전길 32-57

만화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만화서원

제주고씨 고인상이 선조 문충공 고경을 주벽으로, 문영공 고용현과 화당 고만욱을 추배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고창군 신림면 무림리 만화마을에 위치해 있다. 문충공파 파조 고경은 고려말의 문신으로 호는 휴옹, 시호은 문충 또는 문영으로 이부상서 백연의 아들로 다섯 살에 시를 지었고 열두 살에 논어를 외우니 당시에 옥산의 신동이라 하였다. 충렬왕 18년(1292) 16세에 친명으로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등이 공을 스스의 예로 존경하고 충효가 동방의 으뜸이 된다 하였다. 또한, 고용현은 고려 후기의 충신이며 고만욱은 고인상의 부친으로, 부모상을 당했을 때 예를 극진히 하였다고 한다. 만화서원의 사당은 3칸, 강당은 4칸으로 모두 팔작지붕이며 동재는 4칸, 서재는 3칸이다. 그 외에 외삼문 1동이 있다. 문충고파 고씨 후손들은 전라북도 옥구군 옥산면의 염의원과 이곳 만화서원에서 공을 주벽으로 모시고 매년 제향을 올리고 있다. 만화서원은 고려 후기의 제주고씨 고경과 고용현의 충신으로서의 성격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 만화길 50

매계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매계서원

매계서원은 1781년 남원시 오수면에 설립된 서원으로 선현의 위패를 모시고 유교 교육을 실천했던 전통 교육공간이다. 향교와 서원은 고려와 조선 시대 지방 교육기관으로 제사를 겸한 학문 교육과 덕목 함양에 중점을 두었다. 매계서원은 순조 때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가 1868년 철폐되었고 1993년 남원 유림에 의해 복원되었다. 서원에서는 성현의 인품을 본받고 사서오경과 성리학 중심의 교육을 통해 도덕적 완성과 올바른 관리 양성을 목표로 하였다. 향교와 달리 정치에서 물러난 유학자들이 설립한 경우가 많아 학문의 깊이와 인간 완성을 강조하는 특색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사매면 세동길 13-7

문창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문창서원

문창서원은 옥구향교 구내에 위치해 있다. 자천대와 마주 보는 곳에 담장으로 둘러싸인 정면 3칸 규모의 건물이다. 당나라에서 돌아왔을 때 세상의 인심이 어지럽고 어수선하자, 자천대에 올라 책을 읽으며 근심과 걱정을 달랬다고 하는 최치원 선생을 모신 사당인데 시호인 문창후를 서원명으로 쓴 것이다. 현재 걸려있는 문창서원이라는 편액은 신해년 박정희 대통령이 썼다고 한다. 문창서원은 숙종 때 건립되었다가 1868년 훼철되었다가 근래에 재건립한 서원으로, 서원 건축물 자체의 건축적 가치는 높지 않다. 그러나 최치원의 시호인 문창후를 서원명으로 사용하여 군산 지역에서 최치원과 관련된 여러 유적 중 하나로서의 의의를 갖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구읍 광월길 33-50

반곡서원(완주)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반곡서원(완주)

반곡서원은 수선리 산정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한 서원이다. 이 지방에 살고 있던 담양국씨들이 선조들의 절의와 효행의 높은 뜻을 기리기 위하여 1871년(고종 8년) 2월에 세워 1995년에 중건하였다. 반곡서원 입구에는 반곡사 중건기념비가 세워져 있고, 그 뒤로 반곡서원으로 들어가는 충효문이 있다. 경내에는 사당과 강당 외에 내삼문과 외삼문이 있고, 교직사 1동이 있다. 반곡서원의 사당은 전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강당은 전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현재 국유, 국함, 국침, 국명 등의 위패를 모시고,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향사를 시행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비봉면 반곡서원길 52-29

백산서원(김제)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백산서원(김제)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백산서원은 1928년 일제강점기에 창건된 이후 현재까지 이어져 오고 있으며, 조선 선조 때의 문신 청곡 윤찬을 비롯하여 구봉 윤여임, 죽계 백선남, 죽음 윤자선, 담재 윤자민 등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백산사는 정면 3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무인 및 무관들이 모여서 강의를 하던 강당은 정면 5칸이다. 내삼문과 외삼문은 모두 3칸이다. 사당의 기둥은 백두산에서 베어 낸 나무를 바다를 통하여 옮겨 왔다고 한다. 전체적으로 색이 바랬으나, 상당히 큰 규모의 사원이다. 파평 윤씨 백산사 종중에서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백산면 하서3길 84

백산서원(익산)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백산서원(익산)

백산서원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동향의 맞배지붕 형식 사당이다. 1915년 만포 정제호와 모은 정동식의 후손들이 선조들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웠다. 익산의 연일정씨 가묘로 출발하였으나, 연재 송병선을 주벽으로 모시고 안양 정흥식을 추배 하면서 익산의 대표적인 충절 사당이 되었다. 송병선은 송시열의 후손으로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자결하였고,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 되었다. 정제호는 본관은 연일이며,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지평 벼슬을 지냈다. 1895년 을미사변이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다가 차령에서 말에 떨어져 회복되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정흥식은 정제호의 조카이며, 면암 최익현의 문인이다. 정동식은 1876년 무과에 급제하여 훈련원첨정 벼슬을 지냈다. 1910년 일제에 의해 나라가 강제로 병합되자 일본에 대한 포고문과 대한제국 국민들에게 보내는 토적문을 남기고 전주 공북루에 올라가 목을 매 자결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수여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동서로3길 15

백현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백현서원

백현서원은 1668년(현종 9)에 조선 중기의 문신 구영과 임윤성을 제향 하기 위하여 창건하였으나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그 뒤 1903년에 이르러 다시 세워졌다. 전라북도 완주군 화산면 종리에 천곡서원이 창건되면서 진주임씨 후손들이 임윤성의 위패를 모셔갔기 때문에 현재는 구영의 위패만을 봉안하여 제향하고 있다. 1961년에는 정부의 보조금을 지원받아 백현서원을 중건하였다. 사당인 백현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이며, 강당인 정안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구조이다. 능성구씨 문중이 매년 음력 2월 중정에 백현서원에서 향사를 지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고산면 눈기러기로 66-73

봉강서원(완주)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봉강서원(완주)

봉강서원은 1754년(영조 30년) 용진면 모란동에 임금으로부터 ‘모란서원’이라는 이름을 받아 세워졌던 것을 1852년(철종 3년) 지금의 위치에 건물을 옮겨 이름도 ‘봉강’으로 고쳤다. 그 뒤 대원군의 철폐령에 따라 1869년 헐어졌다가 1899년 사액서원 복귀에 따라 다시 세워졌다. 서원에는 태조 이성계의 넷째 아들 이방간을 중심으로 하여 전라도 관찰사를 지낸 충간공국헌 이헌구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있고, 제사는 2월과 8월 두 차례에 나누어 지내오고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고 강당은 민가의 모습이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봉동읍 봉강구만길 29

사동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사동서원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사동서원은 장수군 산서면 사상리에 있는 서원이다. 이 사우는 조선 1847년(헌종 13) 창건되었다가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전국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던 것을 1957년 복설 한 것이다. 처음에는 이 지역에 거주하던 김해 김 씨의 선조 가운데 김준손, 김기손, 김일손, 김대유, 김치삼, 김정택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복설 하면서 김극일을 추배 하고, 확실한 연대는 알 수 없지만 김종직을 추배하고 김극일을 주벽으로 하였다. 현재의 사동서원 건물은 1986년 중건하였으며, 사당 3칸, 강당 5칸, 내삼문과 외삼문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산서면 사창길 35

옥산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옥산서원

의촌 김남식과 시은 김이성·인일정 김성은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고 이를 계승하고자 세운 서원이다. 김남식은 김집 선생의 문인으로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 굴욕적인 화의를 맺었다는 소식을 듣고 통곡하며 돌아와 계령산 밑에 살며 집 이름을 대명유계라 하였다. 김이성은 김남식의 아들로 송시열 선생의 문인이며 효성이 지극하였다고 전한다. 김성은은 김이성의 증손으로 황의찬 문하에서 수학하였고『동국문헌록』등의 저술이 있다. 옥산서원은 크게 세 영역으로 구분된다. 중심 영역에는 사우와 내삼문, 강당인 옥산정사가 일렬로 배치되어 있으며, 강당 동쪽에는 고직사가 자리 잡고 있다. 또 강당 남서쪽에는 인일정의 영당과 삼강문이 있는데, 각각 삼문과 담장을 갖추어 별도의 영역을 이루고 있다. 사우는 1956년 다시 지은 것으로 중앙에는 김남식을 모시고 있으며, 좌우에는 김이성과 김성은을 모시고 있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강당인 옥산정사는 정조 10년(1786) 개축한 것으로 1987년 복원하였다. 규모는 앞면 6칸·옆면 3칸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인일정 영당은 앞면 3칸·옆면 2칸으로 맞배지붕이다. 삼강문은 1948년 다시 지었는데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누각 형식으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출처: 국가유산청)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소성면 애당모촌길 9

옥천사(진안)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옥천사(진안)

옥천사는 창녕 성씨 집안의 사당으로 사당과 강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사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의 팔작지붕이며, 강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의 우진각 지붕이다. 옥천사는 하양지 마을 중앙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다. 정면에 문이 있으며, 주위에 담장을 둘렀다. 주벽으로 성여완(成汝完)을 모시고 있으며, 성석린(成石璘)과 성계종(成繼宗)을 모시고 있다. 사우 앞에는 강당이 있고 창령 성씨 문중에서 관리한다. 매년 음력 3월 10일에 향사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동향면 하양지1길 14-2

용계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용계서원

1701년(숙종27) 향현사(鄕賢祠)의 서원으로 창건하여 관곡 최서림(崔瑞琳)을 향사하고 1750년(영조26) 동곡 김정호(金挺昊), 백계 은정화(殷鼎和)를, 1757년(영조33)에는 오천 한백유(韓伯愈), 안식와 김습(金習), 유종흥(柳宗興)을 추배하였다. 1868년(고종5) 정부의 영에 의해 헐렸으나 1910년에 다시 세웠다. 주벽에 모셔진 최서림은 신독재(愼獨齋) 김집(金集, 1574~1656)의 문인으로 1662년(숙종3)에 진사시에 합격했으나 과거에 뜻을 두지 않았다. 1694년(숙종20) 공능참봉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고 후진 교육에 힘쓴 인물이다. (출처: 정읍시 문화관광)

전북특별자치도 정읍시 칠보면 동편길 41-3

용장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용장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용장서원은 고려 충신 양능양을 기리기 위한 서원이며 고려 원종 때 삼별초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용성군에 봉해진 양주운과 고려말 대사성을 지낸 김구용 조선 임진왜란 때 공신 양대박을 봉안하고 있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에 크게 이바지하여 수많은 인재를 배출하였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후에 지방유림에 의해 다시 세워졌으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서원 건물로는 사당만 남아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생면 상동길 7-1

용호서원(남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용호서원(남원)

용호서원은 육모정 근처에 위치해 있다. 용호서원은 1927년 원동향약계에 소속된 유림의 선비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서원이다. 설립 당시에는 송나라의 유학자인 주자(朱子)의 영정을 봉안하고 주자를 배향하였으나 이후 한말의 우국지사 연재 송병선을 비롯하여 남원 지역에서 후학을 양성하고 덕행을 펼쳤던 영송 김재홍(金在洪), 입헌 김종가(金種嘉)로 배향 인물이 바뀌었다. 서원 건물들은 1974년 보수되었으며, 현재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맞배지붕 사우(祠宇)인 경양사, 동재·서재 건물인 목간당(木澗堂)과 수성재(須成齋) 그리고 솟을 삼문의 대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천면 정령치로 271

운곡서원(고창)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운곡서원(고창)

운곡습지 탐방로를 이용하여 방문할 수 있는 운곡서원은 운곡습지 친환경 주차장에 주차를 한 후 탐방열차를 탑승하여 종점에서 내리면 된다. 운곡서원은 본래 선산김씨 사우로 중국의 주희와 김제·김주·김숙자·김종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러다 자영산과 운곡이라는 지명이 주자가 강학하던 곳과 비슷하다 하여 당산에 세운 서원을 자손이 세거 하는 운곡으로 이건 하면서 주자의 위패까지 모시게 되었다. 고종 5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었다가 유림들과 후손들에 의하여 1905년 복설 되었고, 1924년에 복원되었다. 1981년 아산호가 축조되는 바람에 운곡리가 수몰되어 버려 운곡서운은 수몰되지 않고 남았으나 자손들은 떠나고 서원만 남아 있다. 운곡서원에는 주자학을 이어 온 집이라는 의미로 ‘신안구가’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이 편액의 한자는 추사 김정희의 글씨라고 알려져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아산면 운곡서원길 337

월강서원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월강서원

월강서원은 조선후기 백장 등 4인의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826년(순조 26)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백장, 송보산, 김남택, 최경회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 위패를 모셨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유림과 후손에 의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춘추로 향사를 지내오다가 그 뒤 1948년에 복원하였다. 1974년에는 백여옥, 김남중, 송수산을 추가 배향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4칸의 강당, 고사, 행랑, 대문 등이 있다. 사우에는 백장을 주벽으로 하여 좌우에 송보산, 백여옥, 김남중, 최경회, 김남택, 송수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된 강당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의 토론장소로 사용된다. 행랑은 공부하는 유생이 거처하는 곳으로 사용하며, 고사는 관리자가 거처하는 곳이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과 9월 1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장계면 도장골길 37-8

월암서원(고창)
역사관광전북특별자치도

월암서원(고창)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공자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고창공설운동장과 웰파크시티 사이에 위치한 월암서원은 조선 중기의 학자인 문정공 조광조(1482~1520) 등을 배향한 서원으로, 1946년 지방 유림에 의해 건립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은 정면 3칸에 맞배지붕을 한 사우가 있고, 신문 3칸, 강당 4칸, 동재 4칸, 서재 3칸, 교직사 3칸으로 이뤄져 있다. 이 서원은 조광조 등 조선시대 사림의 정신이 현대까지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는데 그 의의가 있다. 주변에는 웰파크시티 외에 방장산, 방장산자연휴양림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고, 고창시가지와도 가까운 편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길 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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