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98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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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로서원
고로서원은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호계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세운 정분(鄭苯)과 정지산(鄭之産)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1924년에 제각(祭閣)인 경모재(敬慕齋)를 축성하였고, 1931년에 대대적인 중수를 하였다. 이때 우연히 부여의 외산(外山)에서 정분의 영정을 발견하자 이를 모사하여 사당에 모시게 되었다. 1982년 정분의 충과 정지산의 효를 기린다는 의미에서 후손들이 충효사라고 명명하였으며, 1994년에 공주 유림과 후손들이 사우와 삼문을 세워 고로서원(古老書院)이라 명하고 정분을 주향으로, 정지산을 종향으로 모시게 되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구조이고, 30칸의 담장이 둘러져 있다. 지금은 사곡면의 진주정 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고로사라는 절을 개조하여 재실로 이용하고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사곡면 능계길 60-67

금곡서원
만치당 김수남(1576∼1636)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김수남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임진왜란 때 조정을 따라 강화도로 피난하였으나 그곳에 적군이 침입하자 순절하였다. 이 서원은 숙종 13년(1687) 가야곡면 조정리에 송시열, 송준길이 세웠는데 숙종 16년(1690)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정조 5년(1781)에는 매죽헌 성삼문과 송재 조계명의 위패를 추가로 모셨다. 그 뒤 고종 5년(1868)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철거되자 제단을 마련해 모시다가 1977년 사우를 세워 오늘에 이르고 있다.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우에서는 해마다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왕릉로 170-35
노강서원(논산)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노강서원은 1675년(숙종 원년)에 윤황의 학문과 덕을 추모하기 위해 김수항 등이 세운 서원이다. 1682년(숙종 8)에 사액서원으로 승격되면서 윤황 외에도 윤문거를 추가로 모셨고, 1723년에는 윤선거와 윤증을 추가하여 모두 4인의 위패를 모셨다. 노강서원의 구조는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을 남북의 일직선상에 놓고 강당 앞쪽으로 유생들의 거처인 동재·서재를 대칭이 되도록 배치하였다. 강당은 앞면 5칸, 옆면 3칸 규모로 현존하는 서원의 강당 중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노강서원은 창건 이후로 단 한 차례도 옮겨 짓지 않은 상태의 수수하고 검소한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서 17세기 말 서원 건축의 시대적 특징을 오롯이 지녔다고 평가된다. 또한 옛적 질서에 충실한 전학후묘 형식의 건축 양식을 지니고 있어서 기호 지역 서원 건축이 지닌 배치의 특성을 잘 보여주고 있어 역사적·학술적 가치가 높다.
충청남도 논산시 광석면 오강길 56-5

도강영당
부여동헌 옆에 있는 홍가신·허목·채제공의 영정을 봉안하고 제사를 모시는 곳이다. 이 건물은 원래 조선말 부여현의 관아 건물이던 것을 1971년 신축하여 이들을 모신 것이다.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의 영당은 앞면 1칸을 개방하여 참배 공간을 마련하고 뒤쪽은 통 칸으로 3인의 영정을 모셨다. 홍가신은 조선 중기의 문신으로 명종 22년 문과에 급제하여 강화부사, 형조참판, 강화도 관찰사 등을 지냈다. 선조 37년에는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공으로 청난공신 1등에 책록, 이듬해 영원군에 봉해졌다. 후에 벼슬이 형조판서에 이르렀다. 허목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과거를 거치지 않고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까지 벼슬이 이르렀다. 그림, 글씨, 문장에도 능하였으며 특히 전서에 뛰어나 동방 제1인자라는 찬사를 받았다. 채제공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1735년 과거에 급제한 뒤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다. 영조의 세자 폐위 문제를 죽음을 무릅쓰고 막았는데 이에 따라 영조의 신임을 얻게 되었다. 그 후 병조, 예조, 호조판서 등을 거쳐 영의정, 좌의정으로 행정의 최고 책임을 맡기도 하였다. 수원성 건설에도 참여하였으며 경종 내 실록, 영종 실록, 국조보감의 편찬 작업에도 참여하였다. 동강영당 주변으로 부여동헌을 비롯하여 부여관북리유적, 부여객사, 사비도성가상체험관이 있어 연계 방문하기 좋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부소로 15

동곡서원
고려 공민왕 때 회양(淮陽) 부사(府使)를 지낸 조신(趙愼)을 추모·제향 하기 위하여 조선 철종 때 지방 유림의 공론으로 창건하여 위패(位牌)를 모신 서원이다. 조신은 이방원의 어릴 적 스승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박팽년·유성원 등의 학자를 길러냈다. 동곡서원은 조선 철종(재위 1849∼1863) 때 지역 유림들이 지었으나, 고종 5년(186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30년에 복원하였다. 건물 배치는 ‘ㅁ’자형으로 되어 있는데, 바깥채는 전학당이라 하고 안채는 화수루라고 부른다. 주변 관광 명소는 낭산사, 간곡서원, 칠원서원, 대조사(부여), 부여 가림성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세도면 동사리

동절사
남면 동절사는 1962년에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내곡리에 있는 사우로 임진왜란 때 수원성에서 왜병과 싸우다 순절하여 병조판서에 증직된 이지시, 이지례 형제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사당은 야산 중턱에 북쪽을 향하여 지어졌다. 입구는 사괴석(벽이나 돌담을 쌓는 데 쓰는 육면체의 돌) 담장으로 둘러 있고 덤벙주춧돌 (둥글넓적한 자연석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놓은 주춧돌) 위에 네모기둥을 세워 만든 솟을삼문형의 외삼문이 있다.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정면 2칸, 측면 2칸으로 된 사우가 나타나는데, 측면 2칸 중 전면 1칸에는 툇마루를, 후면 1칸에는 우물마루를 깔고 2인의 위패를 안치하고 있다.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을 이루고 있으나 현재 매우 심하게 변형되었다. 주변 관광 명소는 세양사, 홍산객사, 아홉 살이 관광, 보부상, 홍산동헌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남면 내곡리
명탄서원
1490년(성종 21)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명성(李明誠)과 이명덕(李明德)의 충절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연기군 금남면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창건과 동시에 ‘명탄(鳴灘)’이라고 사액되어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731년(영조 7)에 현재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그 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으며, 광복 후 1955년 후손들이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8칸의 재실 겸 강당, 6칸의 수호사, 중앙의 신문(神門)과 양옆 협문으로 된 정문 등이 있다. 사우에는 이명성과 이명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재실 겸 강당은 유생들의 회합과 제향시 제관들의 숙소로, 수호사는 제구의 보관 및 관리인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매년 3월 5일과 9월 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7 변(籩) 7(豆)이다. 재산으로는 논 1,800여 평, 대지 1,300여 평 등이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명탄서원길 48
반산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반산서원은 부여군 임천면에 있는 조선 후기의 조박을 주향으로 조견소와 조성복을 배향하는 서원이다. 반산서원의 옛 명칭은 퇴수서원으로, 서원에 배향된 충간공 조성복의 호가 퇴수재였던 것에서 연유한 것이다. 지역의 유림들이 1757년(영조 33) 세도면 동사리에 조성복의 호를 따서 퇴수서원을 세웠다. 그 후 1868년에 흥선대원군이 내린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57년 다시 세웠다. 이때 조성복의 조부 조현소와 증조부 조박의 위패를 함께 모셨고, 1969년에는 규모를 늘려 지금의 자리로 옮기면서 조박을 주향 인물로 모셨다. 이처럼 추배과정에서 주향이 바뀌게 된 것은 추배된 인물인 조박은 조성복의 증조이고, 조견소는 조성복의 조가 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서원의 명칭도 주향이 바뀌면서 조성복의 호에서 연유한 퇴수서원이라 할 수 없게 되어, 이건 후 서원의 명칭을 건립한 곳의 지명이었던 반산에서 연유하여 반산서원이라 하게 되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충절로1001번길 28

봉곡서원
봉곡서원은 논산시 남부에 위치한 서원이다. 이 서원은 1712년(숙종 38) 현재 논산시에 속한 여산 공촌면 장항리에 창건하였으며, 1868년(고종 5)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폐되었다. 그 후 1899년 돈암서원 유림의 주도하에 여산향교 유림과 여산부사 윤기진 및 후손의 협력으로 봉곡서원지에 제단을 설치하여 봉곡단소로 운영되다 유림 출연금과 정부 지원으로 1966년에 현 위치에 서원을 건립하였다. 서원 건물은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1단의 장방형 기단 위에 주초석을 놓고 원주를 세운 맞배지붕으로 겹처마 건물이다. 1992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논산시 향토문화유적으로 지정되었다. 봉곡서원은 국도 1호선에서 황화로를 통해 방문할 수 있으며, 고속도로는 호남고속도로 지선 논산 IC와 논산천안고속도로 연무 IC가 가깝다. 주변에는 육군훈련소, 논산선샤인랜드, 연무안심시장 등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연무읍 황화로 290

부산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부산서원은 부여군 규암면 진변리에 있는 조선 후기 김집과 이경여를 추모하기 위해 숙종 45년에 창건한 서원이다. 같은 해에 부산이라고 사액되었으며,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에 훼철되었다. 그 뒤 군수 정연달을 중심으로 한 지방 유림에 의해 1980년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중앙의 신문과 양쪽 협문으로 된 삼문 등이 있다. 매년 9월 18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유물로는 이경여에게 보내온 효종의 비답을 송시열 글씨로 새긴 부산각서석이 있다. 부산서원은 백마강가의 우뚝 솟은 부산을 뒤에 두고 구릉지에 서원을 배치하였으며 전학 후묘의 건물 배치이다. 이곳에는 부여 동매가 한 그루 심어져 있는데 백강 이강여가 청나라 선양에 억류되었다 귀국할 때 가져와 심었다고 한다. 인근에 자온대,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 군창지, 고란사 유람선이 있어 연계 관광을 할 수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규암면 진변로136번길 11-5

세양사
세양사는 부여군 충화면 지석리에 있는 여산송씨 지산공파 문중 사우로 조선 중기의 문신인 화강 송영귀와 신임 송윤헌을 배향하는 사당이다. 사당의 건축 시기는 1958년으로 상량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1도 주 5량 집 구조이며, 지붕은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삼문이며, 3량의 가주 구조를 가진 홑처마 맞배집이다. 사당은 신축 당시의 건축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고 사당 건축물로써의 격식이 잘 나타나고 있다. 사당 전면 하단에 있는 낙육재는 신암 송윤선이 수학하던 곳으로 전해 오고 있으며 현재의 낙육재는 1980년에 지은 건물이다. 주변으로 동절사, 복금저수지, 오덕사, 송정저수지, 부여 청소년 수련원, 서동요 테마파크가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충화면 칠선로 47

송곡서원(서산)
서산 정 씨 시조인 정신보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정신 보는 원래 중국 송나라 사람으로 나라가 망하자, 고려로 망명한 후 서산에 정착하여 살았다. 숙종 20년(1694)에 세운 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8년(1871)에 해체되었다가 1910년 유양목 등 유림이 복원하였다. 경내에는 선현의 제사를 지내는 사당과 기숙사인 동재, 서재, 출입문 등이 있다. 사당은 정신보와 추가로 모신 8분의 유학자(정인경, 유방택, 윤황, 유백유, 유박순, 유윤, 김적, 김위재)를 포함하여 총 9명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건물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꾸몄다. 이 서원은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던 기능은 없어지고, 지금은 해마다 2월과 8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충청남도 서산시 인지면 무학로 1353-9

왕의영당
조선 초기의 문신 김문기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사당이다. 김문기는 충북 옥천에서 태어나 세종 8년 문과에 급제한 후 벼슬이 이조판서에 이르렀다. 1456년 성삼문, 박팽년 등과 함께 단종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자 고문에 굴하지 않고 처형되었다. 경내 입구 오른쪽에는 충의 공백촌김문기선생묘정비가 세워져 있고, 여기에서 9단의 층계석을 오르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외삼문이 나타난다. 외삼문은 솟을삼문형이며 상량문이 있다. 외삼문으로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2칸의 평면으로 된 사당을 볼 수 있다. 측면 2칸 중 앞면 1칸은 개방된 툇간이고 뒷면 1칸은 간통으로 영정을 안치하고 있다. 1 고주 5량 집으로 지붕은 겹처마 맞배지붕이다. 왕의영당 인근에 서동요 테마공원, 반산서원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양화면 초왕리

용문서원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공자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용문서원은 충남 공주시내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이 서원은 1663년(현종 4) 이유태가 공주 중동(지금의 상왕동)으로 이주한 뒤 후학을 양성하기 위하여 세운 사립 교육기관으로서 이곳에서 수백 명의 문인을 육성하였다고 한다. 원래 명칭은 용문서재이며, 지금의 용문서원은 1977년 국가의 지원을 받아 고택과 함께 복원한 것이다. 사우 6칸, 신문 1칸, 좌우 협문 각 1칸, 장서각 6칸, 동재 6칸, 유물 전시관 8칸, 강당 8칸, 고사 1칸, 대문 3칸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용문서원을 중심으로 왼쪽에 고택이 있다. 현재 사단법인 이초려기념사업회(초려는 이유태의 호)에서 소유하고 있으며, 이유태의 문중인 경주이씨 문헌공파 종가에서 관리한다. 이곳은 공주 이유태 유허지라 하여 2004년에 충청남도 문화유산 자료로 지정되었고, 이곳에서 발견된 이유태 관련 유물들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공주대학교 박물관에서 소장하고 있다.
충청남도 공주시 중동골길 54-12

의열사 (부여)
의열사는 이 고장 충신인 백제의 성충·흥수·계백과 고려 후기의 충신 이존오를 위해 부여현감 홍가신이 세운 사당이다. 후에 조선 선조(재위 1567∼1608) 때 선비 정택뢰, 인조 (재위 1623∼1649) 때 문신 황일호(1588∼1641)를 추가로 모셔 현재는 6명을 모시고 있는데, 해마다 봄·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조선 선조 8년(1575)에 처음 지어 인조 19년(1641)에 새로 고쳐지었으며, 고종 3년(1866)에 헐렸다가 그 뒤 다시 지었다. 지금 있는 건물은 원래 용정리의 망월산에 있던 것을 1971년 현 남령공원으로 옮긴 것이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은 옆에서 보았을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주변에는 그 외에도 부여향교, 국립부여박물관, 부여 관북리 유적, 부여 쌍북리 요지, 부소산성 등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동남리 산3

창강서원
창강서원은 추포 황신(1560∼1617)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황신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성혼과 이이의 가르침을 받았다. 알성문과에 장원급제하여 여러 벼슬자리를 거쳤는데, 임진왜란 때에는 절충장군 자리에 오르기도 하였으며 죽은 뒤에 우의정의 직함을 받기도 했다. 인조 7년(1629)에 세운 이 서원은 숙종 8년(1682) 임금으로부터 ‘창강’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 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66년에 지금 있는 자리로 이전·복원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제사 지내는 사당과 배움의 공간인 강당,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다. 사당은 앞면 3칸·옆면 2칸의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 보름날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삼충로서원북길 13-2

창렬사
부여군 구룡면에 있는 사우로 삼학사라고 불리는 조선 중기 충신 윤집·오달제·홍익한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숙종 43년(1717)에 건립하였고 경종 1년(1721)에 창열사란 현판을 임금이 내렸다.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에도 훼손되지 않았다. 사당 건물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의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내삼문을 거쳐 아래로 내려가면 강당 건물이 있고 그 앞에는 근래 지은 외삼문이 있다. 병자호란 때인 인조 14년 조선을 속국으로 하려는 모욕적인 문서를 가져온 청나라 사신을 살려 보내지 말자고 주장하였으나, 이듬해 남한산성에서 삼전도의 굴욕을 겪으며 모욕적인 화의를 하게 되었고 그 이후 삼학사는 청나라에 잡혀가게 되었다. 청 태종이 직접 이들의 심문에 참여하여 설득과 회유를 하였으나 심한 고문을 견디면서 끝까지 척화를 주장하다가 결국 중국 선양에서 처형되었다. 그러나 청 태종도 이들의 기개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으며 후대인들도 이들을 삼학사라고 부르고 높은 충절과 고귀한 죽음을 기렸다. 주변 관광 명소는 부여 금사리 성당, 청일사, 홍산향교, 부여 상천지가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구룡면 금사리

청일사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과 단종의 폐위로 홍산에 은거했던 우옹(迂翁) 김효종((金孝宗), 1414∼1493)의 뜻을 기리기 위해 광해군 13년(1621)에 세운 사우이다. 김시습은 조선 전기 학자이며 우리나라 최초의 한문소설인 『금오신화』를 지은 인물이다. 지금 있는 청일사는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잠시 폐쇄되었다가 1970년에 다시 세운 것이다. 청일사의 전체적인 배치는 자연 지형을 따라 언덕 위에 사당을 세우고 그 앞에 4개의 기둥으로 된 문이 자리하며, 문을 지나 계단 아래쪽으로 좌우에 청풍각과 수직사가 배치되어 있다. 인근에 홍산향교, 홍산객사, 홍산동헌, 홍산관광농원이 있어 연계해서 둘러보기 좋다.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 홍내로29번길 35-4

칠산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칠산서원은 부여군 임천면 칠산리에 있는 시남 유계(1607∼1664)를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유계는 조선 중기 문신으로 예에 관해 정통한 학자이다. 김장생의 제자이며 충청도 유림의 오현 중 한 사람으로 불린다. 이 서원은 숙종 13년(1687)에 세워 숙종 23년(1697)에 임금으로부터 칠산이라는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그 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67년에 복원하였다. 서원 경내에는 제사 공간인 사당과 공부하는 공간으로 강당, 장판각 등이 있다. 서적을 보관하는 장판각에는 저서인 가례원류의 책판과 시남집의 목판 원본을 보관하고 있다. 해마다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칠산서원 인근에는 간곡서원, 동곡서원, 반산서원, 퇴수서원, 부여 대조사가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부흥로171번길 73

퇴수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퇴수서원은 부여군 임천면 만사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으로, 풍양 조씨 3인(석곡 조박, 성강 조견소, 퇴수재 조성복)을 제향하고 있다. 조박은 선조 39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국정을 수행하는 최고의 관료 집단인 당상관 중에 통정대부를 지냈다. 조견소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관직이 금구 현령에 이르렀으나 사직하고 학문과 후학을 가르치는 데 전념했다. 조성복은 벼슬이 대사간에 이르렀으나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이들에 의해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음을 맞았다. 퇴수서원은 영조 33년 세도면 동사리에 처음 지었는데, 처음에는 조성복의 위패만을 모셨다. 그 뒤 1957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기면서 조박과 조견소를 함께 모시기 시작했다. 서원 인근에 반원서원, 간곡서원, 임천향교가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충절로1001번길 24

행림서원
행림서원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으로 만죽헌 서익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서익은 선조 2년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이 의주 목사까지 올랐으나, 탄핵을 받은 이이와 정철을 변호하여 파직되어 고향으로 돌아왔다. 이 서원은 고종 4년에 지었는데 서원 앞에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어 행림서원이라 이름 짓고, 산노리 효암서원에서 분향하던 서익 선생을 옮겨 모셨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다가 1926년에 다시 짓고, 이소 선생을 추가로 모셨다. 사당은 앞면 3칸, 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경내에는 서익 선생의 묘정비가 있으며,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올리고 있다. 주변 관광 명소는 반야사, 탑정 저수지, 효암서원, 둥구리 농촌체험휴양마을 등이 있다.
충청남도 논산시 가야곡면 육곡길 27-1

휴정서원
휴정서원은 숙종 25년(1699)에 연산에 건립되었으며, 유무를 주향으로 하고 유문원, 이항길, 김정망, 권수 등 4인을 추배 하였다. 고종 8년(1871) 전국적인 서원 훼철령으로 철폐되었고, 1919년에 다시 복원되었다. 그 후 탑정저수지가 완공되면서 서원이 수몰되자 1944년 현재의 위치에 단소를 설치하였다가 1984년 사우를 복원하였으며, 1985년 구봉 송익필을 주향으로 하고 김공휘, 김호, 이항길, 유무, 김상연, 김진일, 김우택 등 8위의 위패를 봉안했다.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길 87

계산서원
공의로 김지대(1190~1266)의 충효를 기리기 위해 현재의 경상남도 밀양군 청도면 두곡리에 남계서원을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사당의 명칭을 충효사라 하고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을 담당하다가, 고종 51년(1868)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위패는 뒷산에 묻고 단을 세워 향사하다가, 1907년에는 후손들이 강당인 쌍수당을 중건하기도 하였다. 그 뒤 전라북도 무장향교 관내 유생들이 발의하여 1982년 현재의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고, 명칭을 계산서원이라 하였다. 서원 내에는 사당인 상충사 3칸, 강당인 경의당 4칸, 감모재 5칸, 내삼문, 정문인 쌍수문, 고직사 등이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상하면 상라길 117

관곡서원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매봉 밑자락에 있는 관곡서원은 1820년(순조 20)에 지방 유림들이 최윤덕, 이형남, 이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가 1958년 후손에 의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가 있다. 매년 3월 중정과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관곡서원에는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 [관곡서원 소장 전적 및 고문서]를 소장하고 있는데, 이는 서원 관계 자료가 희귀한 편이어서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관곡서원 인근에 덕재산(487.1m)의 옥녀봉, 매봉이 있어 서원을 둘러본 후 가벼운 산행을 즐기기 좋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관기1길 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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