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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196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196페이지입니다.

반구서원
역사관광울산광역시

반구서원

반구 서원은 ‘언양읍지’에 의하면 1712년(숙종 38)에 세웠다고 한다. 건립 주체 사림은 이위, 김영하(英夏), 김지(志), 박문상(朴文祥) 등이며, 착공 1년 만에 완공하고 1713(숙종 39)에 위의 3 선현을 봉안하였다. 선현 중 정몽주와 이언적은 울산의 구강서원에 이미 봉안되었거니와, 정구를 봉안한 것은 그가 퇴계 문인이면서 언양과 그리 멀지 않은 성주 출신이라는 데서 근거를 찾은 것으로 보인다. 시경(詩經)의 반구 서원은 구강서원과는 달리 사액되지 못하였다. 이것은 언양 사림이 중앙의 정치세력과 연결하여 사액 운동을 벌일 수 있는 정치적, 경제적 실력이 부족했음을 의미한다. 그 후 1871(고종 8) 흥선대원군의 명으로 서원은 문을 닫게 되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안길 299

석계서원
역사관광울산광역시

석계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석계서원은 충숙공 이예 선생을 배향하기 위하여 세운 것으로 울산에서 보기 드문 조선시대에 건축된 서원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강당에 해당하는 경수당과 출입문에 해당하는 필동문이 있고 서원에 딸린 정자로서 재천정이 있다. 경수당 뒤쪽에 사당터가 있는 것으로 보아 전체적인 배치 형태는 강당 뒤쪽에 사당이 위치하는 전학후묘다. 건축적 특징을 보면 경수당은 툇마루에 덧붙인 쪽마루 형태의 진입부가 특이하고 장초석 등의 세부 수법이 주목할 만하다. 재천정은 후면부에서 진입하는 방식으로, 경주 안강의 옥산서원 곁에 있는 독락당과 유사하다. 이곳은 울주 역사문화체험 프로그램의 한 장소이기도 하다. 주변 관광지는 회야댐 생태공원, 외고산 옹기마을, 대운산 자연휴양림, 두현저수지가 있다.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 대복동천로 160-12

용연서원
역사관광울산광역시

용연서원

용연서원은 학성이씨 시조인 학파 이예를 배향하는 곳이다. 이예는 현재 외교부에서 ‘우리 외교를 빛낸 인물’로 고려의 서희와 더불어 충숙공 이예를 선정하여 기념하고 있다고 한다. 추인문 안 쪽의 건물들은 용연서원 본관과 국가민속문화제 제37호 ‘학성 이천기 일가묘 출토복식’ 유품을 볼 수 있는 용현서원의 서재인 ‘온고재’와 조선 최초 통신사 충숙공 이예 선생의 홍보관으로 조성되어 있다. 현재는 학성이씨 월진문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울산광역시 남구 이휴정길 20

태화어울마당
역사관광울산광역시

태화어울마당

일본왜성 인근의 태화서원은 2019년 4월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한 월성 이씨 종중의 서원이다. 이전 전 중구 문화의 거리에 위치한 울산도호부 도총소 건물을 태화서원으로 사용하였었다. 도총소는 무관들이 회의를 하던 곳이다. 울산도호부 도총소는 정조 21년(1797년)에 세워졌으며 구한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울산 행정체계가 바뀔 때마다 상부 면사무소, 울산 면사무소로 바뀌었다. 당초 1951년 태화서원 창립 당시에는 배향 선조가 시조 휘 이알평, 중시조 휘 이거명, 열헌공 휘 이핵, 동암공 휘 이진, 익재공 휘 이제현, 백사공 휘 이항복 6현(賢)이었으나 감실이 좁고 울산의 또다른 경주이씨 사당인 운강사에 모신 열헌공 휘 이핵, 동암공 휘 이진, 익재공 휘 이제현 3현(賢)과 중첩되어 오랜기간 공론을 거쳐 2016년도에 3현(賢)은 철향하고 현재에는 시조이신 은열왕 휘 이알평, 중시조 휘 이거명, 백사공 휘 이항복 3현(賢)을 배향하고 제향하고 있다. 옛 태화서원의 도총소 건물은 공연과 전시, 문화강좌가 열리는 복합문화공간 태화어울마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울산광역시 중구 문화의거리 38 (옥교동)

학산서원
역사관광울산광역시

학산서원

1851년(철종31) 봄에 사림(士林)과 후손들의 공의(公議)로 양산시 용당동 후록에 건립하였다. 그해 9월에 완공하고 울산박씨 시조이신 휘 윤웅 흥여백 시호장무공(諱 允雄 興麗伯 諡號莊武公)을 주변에 봉안하고 여말(麗末) 충의 충청감사 휘 추 사은선생(諱 諏 沙隱先生)을 배향하고 매년 9월 중정에 향중사람들과 자손들이 향사하였다. 이곳은 지역 주민들에게 중요한 교육적 역할을 하며, 울산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중요한 지점이다.

울산광역시 중구 신기16길 15

기천서원지
역사관광경기도

기천서원지

기천서원은 조선전기의 문신 김안국(1478-1543)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설립된 서원으로, 문화재자료 제75호로 지정된 여주시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사립학교이자 향촌 자치운영기구이다. 본래 1580년(선조 13) 김안국의 위패를 모시기 위해 마암에 마암서원으로 세워졌다가 임진왜란 때 소실되자 1608년(선조 41) 현재 위치로 이전해 복원하였다. 이후 조선 중종대부터 효종대까지 이름난 현인인 이언적·홍인우·이원익·정엽·이식·홍명구·홍명하까지 총 8명을 함께 배향하였다. 1625년(인조 3)에 기천서원으로 임금으로부터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었으나,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1937년 유림들이 사당으로 고쳐 모현사라 불렀고, 1979년 사당을 새로 지어 옛 모습을 복원하면서 다시 기천서원이라 불리게 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강당 없이 사당, 동재, 서재, 삼문 등이 있고 서원 옆에 모현사가 있다. 지금은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 분향하는 제사의 기능만이 남아있으며, 현재 상시 개방되고 있지 않다. 인근에 신륵사, 명성황후 생가, 영녕릉(세종대왕•효종대왕릉), 황포돛배, 파사성, 이포캠핑장 등이 있어 함께 둘러볼만하다.

경기도 여주시 금사면 뒷머리길 11

노강서원
역사관광경기도

노강서원

노강서원은 1689년(숙종 15)에 인현왕후의 폐위가 부당하다고 간언 하다 죽음을 당한 정재 박태보(朴泰輔, 1654~1689)의 뜻을 기리고 지방 교육의 장으로 삼기 위하여 1695년(숙종 21)에 서울 노량진에 건립하였다. 조윤벽 등의 간청으로 1697년(숙종 23)에 숙종이 ‘노강’이라고 이름을 지어 새긴 현판을 내렸다. 이후 1754년(영조 30)에 다시 지었으며, 대원군의 서원 철폐 조치 이후에 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이다. 박태보는 박세당의 둘째 아들로 1677년(숙종 3)에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관직 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1689년(숙종 15)에 인현왕후 민 씨의 폐위를 반대하다가 진도로 유배 가던 중, 노량진에서 3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694년(숙종 20)에 모든 죄를 사면받고 그의 충절과 학문이 높이 평가되어 영의정의 벼슬과 문열(文烈)의 시호가 내려졌으며 그를 추모하는 뜻에서 이 서원을 건립하였다. 노량진 노강서원은 6·25 전란으로 소실되어 1969년에 의정부시 장암동으로 옮기면서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봉안했던 청절사의 터에 다시 지은 것이다. (출처 : 의정부시 문화관광)

경기도 의정부시 동일로122번길 153

매산서원
역사관광경기도

매산서원

매산서원은 삼우당[三憂堂] 문익점[文益漸]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세조 때에 경상남도 거창과 산청 지방 유림의 공의[公議]로 건립되었다. 그 후 목은 이색과의 친분을 감안하여 추향하고 매산[梅山]이라는 이름으로 사액받았다. 그러다가 병자호란 때 후손인 문겸[文謙]이 지금의 위치로 이건하여 춘추로 제향해 왔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1868년 훼철되었다. 이후 삼우당의 후손으로 여주경찰서장에 취임한 문광규[文光圭]가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8년에 한차례 더 보수하였고 1987년에는 서원내의 사당을 헐고 다시 지었다. (출처 : 여주시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경기도 여주시 능서면 능서로 94-8

문헌서원(오산)
역사관광경기도

문헌서원(오산)

문헌서원은 고려시대의 문신 최충(984~1068년)과 그의 아들인 최유선, 최유길 선생을 모신 곳이다. 황해도 해주에 있던 사액서원으로, 사액은 1550년 조선 명종이 윤허하였다. 1945년 해방되기 전까지 긴 세월 동안 해주 문헌서원에서 제례를 봉행하며 이어왔으나 애석하게도 남북이 분단되어 찾아갈 수 없게 되었다. 분단 이후 남한의 20만 후손들이 대종회를 중심으로 1991년 경기도 오산시 내삼미동 753-2 일대에 영정각과 서원을 건립하여 문헌공 최충 선생과 그의 두 아들 최유선, 최유길의 영정을 다시 모셨다. 이후 매년 4월에 제례를 지내 왔으나 오산시의 도시계획에 의해 영정각만 남게 되었다. 그 외 부지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문헌공원으로 조성되어 사용하고 있다. 제례는 종전대로 해주 최씨 후손들이 매년 4월 제4토요일에 봉행하고 있다.

경기도 오산시 수청로 79-20 (내삼미동)

설봉서원
역사관광경기도

설봉서원

설봉서원은 조선중기 1564년(명종19)에 이천부사 정현이 설립한 서원으로, 이천시를 대표하는 조선시대 사립학교이자 향촌 자치운영기구이다. 최초의 사액서원인 백운동서원(소수서원) 보다 21년 늦은 기호지방 최초의 서원으로 출발하여 1593년(선조26) 관으로 이전되었다가 대원군의 서원 철폐 조치로 1871년 훼철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던 중 이천시에서 전국기초지방자치단체로는 처음으로 예산을 지원, 이천의 4대 문중과 함께 2007년 현재의 모습으로 복원하여 지금이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당인 상현사, 명교당, 동재, 서재, 내삼문, 양현문, 양사재(관리사무실), 전사청, 협문 등이 있고, 복천 서희, 율정 이관의, 모재 김안국, 소요재 최숙정, 해화당 서선 성생을 배향하고 있다. 교육적 기능은 사라지고 제사의 가능만 남아 개방, 운영하지 않는 다른 서원과는 달리 월~토요일까지 상시 개방하며 일반인 및 학생 및 다문화, 외국인, 기관 및 사회단체 등을 대상으로 다양한 무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인성 및 전통 예절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설봉산 자락의 설봉공원 일원에 위치해 있어 공원 내 이천시립박물관, 이천시립월전미술관을 비롯 설봉국제조각공원, 문학동산, 설봉저수지 등을 함께 연계 방문할만하다.

경기도 이천시 경충대로2709번길 276 (관고동)

역사관광경기도

소산서원

소산서원은 시흥시 신천동에 있는 조선 세종 때의 명재상 문효공 하연을 모신 곳이다. 입구에는 한자로 소산서원이라고 쓴 비석이 세워져 있으며 이곳으로 들어가면 효자정각이 있는데, 효자정각은 하연의 셋째 아들인 하우명 선생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정각이다. 홍살문을 지내면 소산서원 앞에는 소산서원기실비가 있다. 이 비석에는 하연 선생의 일대기와 소산서원에 대한 기록이 적혀 있는데 내용을 보면 하연은 정몽주의 문인으로 21살에 벼슬에 올라 이조판서, 대제학,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 등의 벼슬을 두루 거친 인물로 황희, 허조와 함께 조선 세종 때의 명재상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서원 좌우측에는 소래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는데 등산로를 조금 오르다 보면 우측에 하연선생의 묘가 있다. 소산서원 내에 있는 숭덕재에는 문화해설사가 상주해 있어 원하면 해설을 들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차 한잔도 대접받을 수 있으니 소산서원 문화 기행을 한 후에 소래산 등산로를 산책하는 것도 좋다.

경기도 시흥시 소산서원길 20 (신천동)

수곡서원
역사관광경기도

수곡서원

조선 전기의 문신으로 무오사화 때 피화 당한 권경우, 권경유 형제의 위패가 모셔진 사당이다. 의친왕 이강(李堈)이 친필로 현판을 써 주었으며, 1926년에 중수하고 1976년에 신문(神門)을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祠宇)·신문·동서협문·강당 등이 있다.

경기도 양평군 지평면 수곡안말길 41-1

안곡서원
역사관광경기도

안곡서원

안곡서원은 현종 7년(1666년)에 남양 현감으로 부임한 민시중이 지방유림의 의견에 따라 기묘사화로 귀양을 간 박세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안곡사가 있던 곳이다. 이후 현종 9년(1668년)에 박세희의 큰형으로 향리에 은거하며 학문을 닦고 효행을 실천하여 존경을 받았던 박세훈을 사당에 모셨으며, 1697년에는 영의정을 지낸 홍섬을 추가로 모셨다. 안곡사는 경종1년(1721년) [안곡서원]이라는 사액을 받으며 서원이 되었다가 고종8년(1871년)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가 남양지역 유림들이 1976년에 다시 지었다. 안곡서원의 건물은 홍살문, 강당, 내삼문, 사당로 구성된다. 강당은 팔작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안곡서원중건기] 등의 현판이 걸려있다. 사당은 맞배지붕에 정면 3칸, 측면 2.5칸으로 박세희를 주벽으로 양쪽으로 박세훈, 홍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서원 밖 바로 앞에 현재 450년이 훌쩍 넘은 높이 32m의 은행나무가 서있는데, 이 나무는 안곡서원과 함께 고락을 함께 해왔다. 안곡서원은 1976년 사우가 중건된 이후부터 오늘날까지 서신면에 거주하는 상주 박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음력 9월 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경기도 화성시 서신면 제부로 860-36

역사관광경기도

옥병서원

옥병서원은 포천군 창수면 주원리에 있는 박순(朴淳)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창건한 조선 후기 서원이다. 박순의 자는 화숙, 호는 사암, 본관은 충주이다. 명종 8년(1553년) 정시 문과에 급제하여 요직을 두루 거치면서 대사헌, 대사간, 우의정, 좌의정, 영의정에 올랐으며, 선조가 ‘송균절조수월정신’이라고 극찬할 정도로 청렴하고도 강직하였다. 효종 9년(1658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박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숙종 24년(1698년)에 이의건과 김수항을 추가 배향하였으며 1713년에 ‘옥병’이라고 사액되었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로 훼철되어, 위패는 서원 터에 매안하고 단을 설치하여 향사를 지내왔다. 1926년에 김성대·이화보·윤봉양을 추가로 제향 하였고 1978년에 이명우를 회장으로 한 옥병서원 복원 추진회를 결성하여 1980년에 복원하였다. 경내 건물로는 6칸의 숭현각, 신문, 동서 협문, 박순 묘 및 신도비 등이 있다. 사우인 숭현각에는 박순을 주벽으로 이의건· 김수항·김성대·윤봉양·이화보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옥병서원에서는 매년 3월 15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선현의 향사와 향촌 교화가 서원 본래의 사명이듯이 옥병서원 역시 제향을 통하여 지역의 전통과 예절 교육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

경기도 포천시 창수면 옥수로327번길 195

역사관광경기도

운계서원(양평)

1594년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조욱(趙昱)과 조성(趙晟)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1713년에 ‘운계(雲谿)’라고 사액되었다. 1714년에 신변(申抃)·조형생(趙亨生)·조문형(趙門衡)을 추가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왔다. 1871년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로 훼철되어 위패를 서원터에 매안(埋安)하고 향사만 지내왔다. 그 뒤 1932년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내 건물로는 6칸의 사우(祠宇), 6칸의 강당, 신문(神門), 동서 협문(夾門) 등이 있다. 사우에는 조욱을 주벽(主壁)으로 조성·조형생·신변·조문형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경기도 양평군 용문면 용문산로192번길 16-21

임장서원
역사관광경기도

임장서원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 학문연구와 선현제향을 위하여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교육기관인 동시에 향촌자치운영기구였다. 임장서원은 조선 중기 중종 때 임계중[任繼重]이 정계를 은퇴하고 낙향하여 학문 연구에 전념하기 위해 건립한 무이정사[武夷精舍]를 모태로 하여 창건되었다. 이후 1700년에 주자서원[朱子書院] 창건하여 주자의 위패를 모셨다. 현재의 서원 건물은 1995년부터 1998년 사이에 재건된 것으로 서원은 남향하여 삼문(三門)이 있고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사우형식을 갖춘 목조 맞배지붕의 대성전이 있다. (출처 : 연천군청 문화관광 홈페이지)

경기도 연천군 연천읍 동막로25번길 170

충렬서원
역사관광경기도

충렬서원

충렬서원은 선조 9년(1576)에 지방 유림들이 뜻을 모아 정몽주[鄭夢周, 1337~1392]와 조광조[趙光祖, 1482~1520]의 학문과 덕행, 충성스러운 절개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충렬사[忠烈祠]에서 시작되었다. 충렬사는 정몽주와 조광조의 묘소 중간 지역인 죽전에 창건하였다.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된 후 선조 38년(1605) 경기도관찰사 이정구, 용인현감 정종선 등이 정몽주의 묘가 있는 모현읍에 옮겨 중건을 시작하였다. 1608년에 사당 3칸, 동재와 서재 각 2칸, 문루 3칸 규모로 완성하고 문루 위에는 강당을 지었다. 이 때 조광조의 위패는 새로 창건된 심곡서원으로 옮겨졌다. 광해군 즉위년(1608년)에 충렬서원으로 사액(임금이 사당, 서원 등에 이름을 지어서 새긴 현판을 내리는 일)되었고, 이후 정몽주의 손자 정보와 병자호란 때의 충신인 이시직을 추가로 모셨다. 고종 8년(1871)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11년 사당이 중건되었고, 1956년에 강당을 복원하였으며 1972년 전체를 보완·신축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사당 중앙에는 정몽주의 위패와 영정을 봉안하고, 좌·우 위에 정보와 이시직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모현읍 충렬로 9-19

강한사
역사관광경기도

강한사

강한사는 조선 중기 학자이며 정치가인 송시열(1607년-1689년)의 뜻을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이다. 송시열은 생전에 영의정까지 지낸 인물로 경기도 여주에 머물 때마다, 영릉(효종의 능)을 바라보며 효종의 북벌 정책에 대한 대의를 주장하였다고 한다. 이후에 정조가 영릉에 행차하다가, 이 이야기를 듣고 김양행에게 송시열의 사당을 짓게 하였고, 송시열을 높여 ‘대로’의 명칭을 붙여 사당을 ‘대로사’라 하였다. 그 뒤 1873년 10월 고종에 의해 ‘강한사’로 이름이 바뀌면서 현재에는 대로사 또는 강한사라 불리고 있다. 사당은 고종의 서원철폐(1871년 전국의 47개소 서원(사우 포함)만 남기고 모두 없앰)에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 강한사는 크게 사당과 강당 영역으로 구성되어있다. 사당의 규모는 앞면 3칸, 옆면 2칸의 크기이며,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강당의 규모는 정면 5칸, 옆면 3칸의 팔작지붕을 하고 있다. 이외에도 재실인 추양재, 대로사비각, 홍살문 등으로 구성되어있다. 강한사의 사당은 특이하게도 서향을 하고 있는데 이는 영릉을 바라보기 위한 것으로, 임금과 신하 사이의 의리를 보여 주는 것이라 전하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경기도 여주시 청심로 113 (하동)

대포서원(김포)
역사관광경기도

대포서원(김포)

대포서원은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야산에 위치하였으며, 조선 전기의 대학자이자 문신인 눌재 양성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양성지는 공조판서, 대사헌을 거쳐 홍문관 대제학 등을 역임한 당애 최고의 문장가이자 사상가로 세종부터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섬기며 경륜 있는 정치가로 활약하였다. 조선 시대 책 동문선, 고려사, 고려사절요, 동국통감 등의 편찬에 기여했으며, 지리와 지도 전문가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고, 홍문관과 규장각의 설치를 주장하기도 했다. 양성지는 1482년에 68세를 일기로 통진현 대포곡에 묻혔다. 1973년 양촌면 대포리에 있는 양성지의 묘소 밑에 사우를 창건하였으며, 그곳 지명을 따서 대포서원이라 했다. 서원은 강학 공간인 동재와 서재, 제향 공간인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는 전형적인 전학 후묘의 구조이다. 매년 4월 25일 이곳에서는 양성지를 기리는 대제가 치러진다.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 황금로23번길 30-32

구은사
역사관광강원특별자치도

구은사

철원군 근남면 사곡2리에 위치하는 구은사는 서기 1455년 단종 때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에 비분을 품고 산간으로 은거하여 불사이군의 지조로 일생을 마친 아홉 선비(김시습, 조상치, 박도, 박재, 박규손, 박효손, 박천손, 박인손, 박계손)의 충절을 모신 사당이다. 아홉 선비는 근남면 육단리, 잠곡리, 사곡리 등의 산간 계곡에 초막을 치고 은거하면서 권농에 힘쓰는 한편 사곡리 속계천(束溪川)변 행화정에 모여 바둑을 두면서 세상사를 논했는데 그 후 시운이 맞지 않아 각처로 뿔뿔이 흩어져 버리니 조선 인조 9년(서기 1631년)에 이르러 이지연 선생 등 여러 선비들이 뜻을 모아 사당을 짓고 매년 봄가을 추모제를 지냈다. 서기 1865년 대원군의 서원철폐령 때는 철폐의 비운을 맞았으나 1921년 사당을 재건하고 6·25전쟁으로 다시 황폐화된 것을 지방유지들의 도움으로 1977년 중건(重建)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근남면 호국로 7003-23

노동서원
역사관광강원특별자치도

노동서원

노동서원(魯東書院)은 우리나라 사학의 원조인 최충(崔冲)의 영정과 위패, 그리고 그의 아들인 최유선(崔惟善)을 봉안하고 있다. 최충의 12대 손인 최변이 이곳에 낙향하여 자손들이 번창하자 선생의 영정을 모신 영당을 지었다가 후에 노동서원이라 개칭되었다. 서원에 봉안된 두 영정은 강원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노동서원은 유교적 전통문화 계승과 발전을 위한 행사의 장으로도 쓰이며 특히 인근 초·중·고 학생들의 유적순례지로서 좋은 장소가 되고 있다. 본 서원은 원래 홍천군 북방면 노일리에 있던 것을 수호(守護)의 어려움으로 인 하여 1932년 5월에 이곳으로 옮겼으며 6·25 동란에 소실된 동재와 서재 일부를 개축하고 수차례에 걸쳐 중수하였다. 또한 정례행사인 제향을 유림행사로서 받들며 연 1회 봉제사를 올린다.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서면 팔봉산로 1198-2

동명서원
역사관광강원특별자치도

동명서원

조산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서원으로 1628년 지방 유림의 공의로 조인벽의 충절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충현사를 설립해 위패를 모시고 동명서원이라 하였다. 양렬공 조인벽은 태조 이성계의 간곡한 요청에도 불구하고 불사이군(두 임금을 섬기지 않는다)의 의리를 지키며 양양에서 은거하며 유생들을 교육했던 사람이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전란으로 전소되어 1787년 경상북도 봉화로 옮겨서 복원하였다. 그 후로도 철폐와 복원을 반복하다 1974년부터 서원 복원 추진 위원회가 구성되어 복원을 추진, 1982년에 완공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충현사, 6칸의 재실, 신문, 동·서 협문 등이 있으며 사우인 충현사에는 조인벽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재실은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제향 때 제관들의 숙소 등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곳에서는 매년 춘향제를 올리고 있으며 서원 입구에서는 붉은색의 홍살 문과 함께 양렬공 조인벽의 신도비를 볼 수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양양읍 서원길 44-9

산양서원
역사관광강원특별자치도

산양서원

산양서원은 조선 시대 문신 황희(黃喜)를 제향 하기 위해 세운 소동사(召東祠)가 발전한 것으로, 1857년(철종 8년)에 건립되었다. 황희는 1423년(세종 5년) 강원도 관찰사로 부임하였으며, 당시 이 지방에 흉년이 들자 관고(官庫)를 열어 백성을 구제하였다. 이에 삼척 지방 주민들은 그의 은혜를 기려 돌을 쌓아 대(臺)를 만들고 ‘소공대(召公臺)’라 불렀다. 1516년(중종 11년)에는 4대손 황맹헌이 이곳에 비석을 세웠고, 풍우로 무너진 것을 1578년(선조 11년) 6대손 황정식이 다시 세웠다. 이후 1824년(순조 24년)에 지역 사림(士林)에 의해 소동사가 건립되었고, 이것이 이후 서원으로 확장되어 현재의 산양서원으로 발전하였다.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원덕읍 산양서원1길 24

송담서원(대구)
역사관광대구광역시

송담서원(대구)

송담서원은 대암 박성을 기리기 위하여 지방 유림들이 공의하여 17세기 후반에 세워진 서원이다. 자료에 간략한 내력만 확인되며, 현재 남아 있는 건축물 역시 현대에 복원된 외삼문과 강당, 비각 등이 전부이다. 넓은 대지 위에 토석담장을 두른 방형의 공간을 구획하고 정면에 출입문인 덕양문을 세웠다. 삼문을 지나면 강당인 경의당이 있다. 경의당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팔작지붕이다. 대청을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들인 중당 협실형으로, 전면에는 반 칸의 툇간을 두었다.

대구광역시 달성군 구지면 구지서로 53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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