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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194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194페이지입니다.

역사관광경상북도

영양향교

영양향교는 조선 숙종 3년(1677)에 건립되었으나 모든 건물들이 조선 후기 건축 양식으로 되어 있다. 대성전과 명륜당은 처음 건립할 때 세웠고, 이후 육영루, 동·서무, 동·서재 등을 차례로 건립하였으나 부분적으로 철거되었다가 현재는 대성전, 명륜당, 신문(내삼문) 등이 남아 있다.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의 규모이고,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곳 대성전에서는 매년 봄, 가을에 중국과 우리나라 명현에게 제를 올린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되어 있다. 명륜당의 현판은 고려말 명필인 한수(韓修)가 쓴 것이다.

경상북도 영양군 일월면 향교길 22-16

예천향교
역사관광경상북도

예천향교

예천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 예천읍 현산에 처음 건립되었고, 태종 18년(1418) 군수 김겸이 현재 위치로 옮겨지었다. 이후 효종 7년(1656), 효종 9년(1658) 등 여러 차례 다시 고쳐지었다. 오늘날 대창중·고등학교 동쪽에 위치해 있다. 처음 세워진 당시에는 풍영루, 전곡청, 동무, 서무, 동재, 서재, 이층 문루 등 9개 동의 건물이 있었으나 지금은 제사공간인 대성전과 교육공간인 명륜당, 음식을 준비하는 공간인 주사, 향교의 대문격인 외삼문과 대성전 앞의 내삼문 등이 남아 있다. 2005년에 동무와 서무에 해당되는 일신재(日新齋)와 직방재(直方齋)를 복원하였는데, 일신재에는 제복(宫服)을, 직방재에는 제기(祭器)를 보관하고 있다. 외삼문으로 들어서서 계단을 오르면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인 명륜당이 있고, 명륜당 뒤쪽에 위치한 내삼문으로 들어서면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인 대성전이 별도의 공간을 이루고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한 25위의 성현을 모신 곳으로, 지금까지도 매년 봄과 가을에 석전제를 올리고 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대창학교길 35

용궁향교
역사관광경상북도

용궁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선 태조 7년(1398)에 지금의 위치에서 동쪽으로 100m 지점에 세웠으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36년(1603)에 대성전과 명륜당을, 인조 14년(1636)에 세심루를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른다. 출입문인 외삼문, 휴식공간인 세심루,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 사당인 대성전 등이 일직선으로 서있다. 또한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 후묘의 형태로 되어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용궁향교길 59

의흥향교
역사관광대구광역시

의흥향교

군위군 의흥군에 있는 의흥향교는 1398년(태조 7) 조선 인종 때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조선시대의 국립교육기관이다. 임진왜란 때 건물은 모두 소실되었으나, 이곳 유림 손돈암이 위패를 선암산으로 피난시켜 병화를 면하였고 이에 경상북도에서 오직 이 향교만이 당초 그대로의 위패를 보존하고 있다. 1601년(선조 34)에 중건하고 1641년(인조 19)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면서 이때 대성전이 세워졌다. 1950년 6·25 사변으로 삼성재, 노사 등이 소실되었으며, 1968년에 광풍루를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5성, 송조 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대성전과 광풍루, 사물재, 신문 등이 있다.

대구광역시 군위군 의흥면 읍내길 89-5

인동향교
역사관광경상북도

인동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인동향교는 고려 공양왕 2년에 처음 지은 것으로 보이며, 그 뒤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지었다. 조선 인조 12년(1634)에 인의동으로 옮겨 세웠으며 1988년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내삼문·명륜당·외삼문 등이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북도 구미시 수출대로 333 (임수동)

자인향교
역사관광경상북도

자인향교

자인향교는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지어진 조선 시대 경상도 자인현에 건립된 공립 교육 기관이다. 조선 명종(재위 1545∼1567) 때 다시 지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광해군 7년(1615)에 도천산 아래로 옮겼다가 영조 4년(1728)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1900년과 1922년에 대성전을 수리하였고, 1924년에 명륜당을, 1926년에 다시 대성전을 수리하였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은 대성전, 명륜당, 모성루, 동재 등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중심으로 그의 제자와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경상북도 경산시 자인면 교촌길9길 14

지례향교대성전
역사관광경상북도

지례향교대성전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지례향교대성전은 조선 세종 8년(1426)에 처음 지었고 임진왜란(1592) 때 불탄 것을 숙종 16년(1690)에 다시 지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대성전은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이다. 안에는 묵판음화[墨版陰畵]의 공자 영정이 보관되고 있었는데, 1978년 도난당하였고 지금 있는 공자상은 이것을 대체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경상북도 김천시 지례면 향교길 84

진보향교
역사관광경상북도

진보향교

청송군에 위치한 진보향교는 조선 태종 4년인 1404년 창건했다고 알려진다. 향교 건립 이후 1694년 광덕사 기슭으로 이건했다가 1882년에는 구읍으로, 1886년이 되어서야 현재의 위치에 터를 잡고 이전 개축되었다. 전학후묘(前學後廟) 형태로 강학 공간이 전면에, 제향 공간이 후면에 자리 잡고 있다. 외삼문을 지나면 명륜당이 위치하고 있으며, 명륜당 뒤로는 기숙사에 해당하는 동·서재가 위치하고 있다. 제향 공간의 중심 건물인 대성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로 기둥과 전면 벽체 구성 수법이 건축학적으로 높은 가치를 가진다.

경상북도 청송군 진보면 신한2길 63

청송향교
역사관광경상북도

청송향교

청송향교는 1426년(세종 8)에 청송지군사로 재임 중이던 정지아가 굴동에 창건하였다. 그 후 수차의 국난으로 소실되어 1606년(선조 39)에 부임한 이영도가 재임 5년간 국동에 대성전을 중창하였으며, 1629년(인조 7)에 부사 이구징이 재임 3년간 동·서무, 강당, 주사를 보축·중수하였다가 16936년(숙종 19)에 부임한 부사 이문징이 교궁의 지세가 맞지 않는다 하여 임 4년간에 현 위치인 방광산하 월막동으로 대성전 및 부수 건물을 이건 하였다. 이처럼 많은 건축적 변화를 가지고 있는 향교이다. 대성전은 상부가구나 살미의 모습에서 1600~1700년대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대성문은 건축 년대는 알 수 없고 작은 규모이지만 구조적으로 세밀하게 배려되어 있으며 특색 있는 모습으로 건축적 가치가 있다고 보인다. 향교 건물의 구성은 배향공간인 대성전을 중심으로 앞쪽 좌·우로 동·서무가 있고, 우측으로 교육공간인 명륜당과 좌우로 동·서재가 있으며, 입구에 청아루가 각각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의 위패를 정위로 하여, 그의 학통을 계승한 중국 5성과 송조 2현 및 동국 18현의 위패가 모셔져 있으며, 매년 음력 9월 상정일에 지역 유림들이 모여 이곳에서 석전대제를 올리고 있다.

경상북도 청송군 청송읍 중앙로 259-30

풍기향교
역사관광경상북도

풍기향교

풍기향교는 군서쪽 8리에 있던 것을 중종 37년(1542)에 주세붕이 이곳으로 옮겨 지은 후 숙종 18년(1692)에 다시 옛터로 옮겼다가 영조 11년(1735)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남아있는 건물로는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 향교를 관리하던 교직사,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 사당인 대성전과 동·서무 등이 있다. 특히 대성전과 동·서무의 벽과 창호가 특이해 고풍스럽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다른 향교에 비해 많은 전적을 보관하고 있으며, 특히 이 지방 향토사연구의 귀중한 자료를 많이 제공하고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금계로 104

하양향교
역사관광경상북도

하양향교

1985년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하양향교는 정확한 건립 시기가 전해지지 않는다. 다만, 조선 전기 정승을 지낸 허조가 배출되었고 현의 서쪽 3리에 향교가 있다고 한 기록 등을 미루어 볼 때, 고려 후기 또는 조선 전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임진왜란으로 하양현이 쇠퇴하면서 향교가 퇴락하였다가, 1608년 새롭게 중수된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도 명륜당 중건과 묘우 및 당재 보수 등 여러 차례의 중수가 행해졌다. 하양향교는 입구에서부터 외삼문, 명륜당, 내삼문, 대성전이 일직선으로 배치되어 있는 전형적인 전학후묘 구조이다. 경내에는 전사청, 기물고, 관리사 등이 남아 있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의 첫 번째 정일에 거행한다. 이 외에도 하양 지역 유림 및 어르신을 모시는 기로연 행사를 정기적으로 개최하고 있으며, 지역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인성교육 등을 통해 전통문화의 계승, 발전을 이루고자 한다.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 교리길20길 12-5

역사관광경상북도

함창향교

함창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원래 있던 자리와 처음 지은 연대는 알 수 없다. 함창읍지에 구향교동에 있던 객관[客館]에서 남국난 이후의 현지로 이건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1970년 10월에 성균관대학교 교육연구원에서 전국 향교 실태 조사를 실시, 1398년(태조 7년)에 건립했고 1417년(태종 17년)에 지금 자리로 이건 했다고 보고되었다. 건물 배치는 앞에 교육 공간을 두고 뒤에 제사 공간을 배치한 전학후묘[前學後廟]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정문인 외삼문을 지나면 안마당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있고, 뒤쪽 높은 곳에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을 두었다. 도유사 1명, 장의 약간 명을 두어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례와 음력 2월과 8월의 상정일[上丁日]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소설위 향교로서는 규모가 잘 갖추어진 향교로 그 형태가 잘 보존되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무운로 1557-4

흥해향교
역사관광경상북도

흥해향교

흥해향교는 1398년(태조 7)에 훌륭한 학자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950년 6·25 전쟁 때 대성전과 동무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소실되었고, 기문마저 없어져 중수 기록을 알 수 없다. 1953년에 명륜당과 수복실을 신축하였고, 1970년에 대성전의 기와 잇기 작업과 1971년에 대성전의 단청 보수, 1975년에 동재 보수를 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맞배지붕 겹처마의 대성전, 우진각지붕 홑집의 명륜당, 동무와 서무, 수복실, 사주문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 2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흥해향교 뒤편 구릉지에는 향교 창건 시 함께 조성한 이팝나무가 상수리나무와 섞여 군락을 이루고 있으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경상북도 포항시 북구 흥해읍 동해대로1530번길 1-3

신녕향교
역사관광경상북도

신녕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신녕향교는 지은 시기를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조선 선조 25년(1592)에 불이 나서 없어졌다. 광해군 7년(1615)에 처음 세웠던 곳에서 500m 떨어진 지점에 다시 지었는데, 숙종 12년(1686)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지었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는 곳이다. 앞면 3칸의 규모이며, 동무·서무가 없이 우리나라 성현들도 모두 대성전에 모셨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큰골길 30-7

거창향교
역사관광경상남도

거창향교

1415년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되었다. 이후 대성전을 설립하고 1572년에 현감 서의가 중건하였으며, 1574년에는 현감 장문한이 명륜당을 건립하였다. 그 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23년에 대성전을 중건하고 1714년에는 현감 김시빈이 대성전 앞에 춘풍루를 건립하였다. 1748년에 도유사 김천분이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고 1809년에 도유사 이상조가 중건하였다. 1840년에 도유사 이준옥과 재임 변윤석, 어재의 등이 협의하여 동재와 서재를 중수하였으며, 1799년에는 부사 이성이 동무(東廡)와 서무(西廡)를 중수하였다. 그 뒤 1948년 군정법령에 의해 향교의 재산이 향교재단으로 귀속되고 1950년의 농지개혁법으로 전답이 분배되어 계속 황폐해지다가 1974년 향교직제에 따라 중건 및 보수가 시작되어 1976년 전면 복원되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에서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고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성산길 34

고성향교
역사관광경상남도

고성향교

고성향교는 1398년에 처음 건립되어, 지역의 인재 양성과 문화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여 왔다. 향교의 공간은 교육과 제례의 두 영역으로 나뉜다. 유생이 학문을 연마하는 명륜당과 일상생활을 하는 동재, 서재는 교육 기능을 담당하고, 공자와 저명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는 대성전 및 동, 서무는 제례 기능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 고성 향교의 건물 배치는 교육공간을 앞쪽에, 제례 공간을 뒤쪽에 두는 향교 건물 배치의 일반적 형태인 전학후묘의 일직선 배치 양식이다. 대성전, 내삼문, 명륜당, 풍화루를 잇는 중심축은 일직선이지만 동서무가 대성전 양측면에 너무 인접되어 있고, 동재는 명륜당의 동쪽 측면에 위치하고 서재는 절반정도가 명륜당의 서쪽 측면에 인접하여 전형적인 향교 배치 격식에서 벗어나 있다. 유교의 교육 이념을 담고 있는 명륜당은 일반적으로 일자형인데 비해, 이곳 명륜당은 보기 드문 ㄷ자형의 평면구조이다. 향교의 정문인 풍화루는 유생들의 여가 및 여름철의 교육 공간이자 손님을 접대하는 곳이다.

경상남도 고성군 고성읍 교사3길 41

곤양향교
역사관광경상남도

곤양향교

곤양향교의 창건연대는 명확하게 전해지고 있지 않으나 곤양군이 세종 원년(1419)에 군으로 승격되었음을 상기할 때 향교도 세종시대에 창건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후 중종(中宗) 25년(1530)에 펴낸 「신증동국여지승람」곤양군조에 의하면 "관원은 군수·훈도 각 1인씩이다."라는 기록을 보아도 능히 알 수 있는 일이다. 어득강이 곤양군수로 부임한 후 그의 많은 업적 가운데 특히 향학에 힘써 많은 유생)을 길러 내었다 한다. 그 후 명종 1년(1546)에 군수 노진이 부임해 와서 처음으로 정동)에 터를 잡아 문묘를 지었다 하였으므로 이 향교 역시 전학후묘형의 소설위 향교임을 알 수 있다. 현종 4년(1663)에는 군수 박영계가 범동으로 옮겼고, 순조 7년(1807)에는 군수 신오가 부임해 와 다시 지금의 자리로 옮겨서 대성전, 대성문,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등 9동의 건물을 세웠다. 그러나 특이하게도 대성전 좌우에 동·서 양무가 없고, 대성전의 위치 또한 명륜당 뒤의 오른쪽에 비스듬하게 세워져 있어 두 영역이 완전히 분리된 배치를 보이고 있다.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가 앞에 있고, 사당인 대성전과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그 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여러 차례 중수를 거듭해 왔으며, 문묘의 위차위패를 모시는 순서)나 향사 등은 모두 사천향교와 같다.

경상남도 사천시 곤양면 향교길 43-31

산청 단성향교
역사관광경상남도

산청 단성향교

단성향교는 1127년에 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서쪽 산기슭으로 옮겼다가 1752년에 현 위치인 교동으로 옮겨지었다고 전한다. 경사지에 위치하여 앞쪽에는 공부하는 공간인 명륜당이, 뒤쪽에는 사당인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정문인 관선문을 들어서면 누각형식의 명륜당이 있는데, 대청 아래를 통하여 들어가도록 되어있다. 명륜당 밑을 통하여 내삼문과 대성전의 지붕이 겹쳐서 보인다. 강당인 명륜당은 1725년 중건된 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이루어졌다. 누각형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정문을 평대문으로 처리하였으며, 대문의 양 옆으로는 긴 행랑채를 이루고 있다. 명륜당의 뒤쪽 좌우에 학생들의 생활공간인 동재와 서재를 배치하였다. 일반적인 향교와 달리 양재가 명륜당보다 안쪽에 배치되었기 때문에, 뒤쪽에 있는 내삼문 쪽이 앞면이 되고 앞쪽의 대문 쪽은 뒷면이 된다. 따라서 대청과 마루는 양재가 있는 내삼문쪽으로 개방되는 특이한 구조를 보이고 있다. 단성향교는 건물의 배치나 형태에 있어서 경남지역의 다른 향교보다 독특한 구성을 하고 있는 향교이다.

경상남도 산청군 단성면 교동길 13-15

마산향교
역사관광경상남도

마산향교

마산향교는 창원특례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교동리에 있으며 1414년(태종 14) 진해현이 설치되면서 진해향교로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방화로 소실되었다. 인조 때 재건하였으나 1920년 일제의 강압으로 철폐되었으나 1990년에 창원군 향교로 복원되었고 현재의 건물도 재건되었다. 입구의 외삼문은 맞배지붕을 올린 솟을삼문이며 학문을 강의하는 명륜당은 정면 5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성전은 정면 3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공자를 포함한 5성과 중국과 우리나라 20현을 향사하고 있다. 향교의 바깥에는 하마비가 있고, 1990년에 세워진 문선왕 신위 매안비가 있다. 마산향교 건물의 배치는 풍화루, 명륜당, 대성전을 일직선으로 연결하는 일반적인 전학후묘의 구조를 갖추고 있으며 각 건물은 대성전으로 이르면서 대지가 한 층씩 상승하도록 기획하여 문묘의 신위에 대한 위엄을 중시한 배려를 엿보게 한다. 마산 향교의 건물들은 여러 차례의 중수와 재건을 거듭하면서 고유의 격식은 일부 훼손되었다.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동면 교동1길 86

밀양향교
역사관광경상남도

밀양향교

밀양향교는 조선시대 공익 교육기관으로 서기 1100년경에 창건되었다고 전하고 있는데, 밀양 손씨 집성마을로 전통가옥이 밀집해 있는 교동마을 뒤 경사지에 위치하고 있다. 1602년 현재의 위치에 부사 최기가 중건하였고 대성전은 1821년 부사 이현시가 중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건물의 구성은 대성전, 동무,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등이 있고 건물 배치 형식은 경사지에 이축선, 좌묘우학, 병렬형 배치이다. 문묘부의 중심축과 교당부의 중심축이 완전하게 평행하지는 않지만 대성전과 내삼문을 잇는 중심축에 양재가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대성전은 공자를 주향으로 하고 사성과 송조를 배향하였고 동서 양무에 춘추로 석존을 봉행하고 있다.

경상남도 밀양시 밀양향교3길 19

사천향교
역사관광경상남도

사천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선 세종 3년(1421)에 세워 유교를 공부했던 곳이다. 세종 22년(1440)에 향교 관계자들의 거처인 치성재, 학생들의 거처인 동·서재, 공부하는 장소인 명륜당, 휴식공간인 풍화루를 새로 지으면서 이름을 ‘수학원학사서재’로 바꾸었다. 현종 5년(1664)에 안혜원이 유교진흥을 위해 성현들을 모시는 대성전을 세우면서 비로소 교육과 제사를 겸했던 향교의 체제를 갖추게 되었다. 여러 차례 보수했으며 현재는 동재를 없애고 풍화루를 폐쇄했으며, 외삼문을 통해 출입하게 하고 있다.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앞에, 사당인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로 향교의 일반적인 배치를 따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경상남도 사천시 사천읍 사천향교로 25

역사관광경상남도

산청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선 세종 22년(1440)에 처음 지어진 후 전쟁으로 여러 차례 불탄 것을 영조 31년(1755)에 원래의 위치인 이곳에 다시 짓고 그 후 여러 차례 보수했다. 건물의 배치는 앞쪽에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가 있고 뒤쪽에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과 사당인 대성전이 위치하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그러나 특이한 것은 내삼문의 계단이 직선이 아닌 ㄴ자로 되어있고, 명륜당 뒤의 대성전도 약간 비틀어져 위치하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이곳은 여러 가지 제사기구, 술잔, 선비옷 등의 유물들이 보관되어 있어 당시의 생활양식을 잘 알 수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경상남도 산청군 산청읍 중앙로59번길 20-5

삼가향교
역사관광경상남도

삼가향교

삼가향교는 조선 세종 때에 세웠다고 하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광해군 4년(1612)에 다시 지었다. 1826년 정우용이 대성전을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이때 풍화루와 흥학당을 중수하였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 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전체적인 건물배치는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이 앞에 있고 제사를 지내는 곳인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기록상에는 원래 동·서재와 사당인 동·서무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향교가 교육의 기능을 잃어버리면서 철거된 것으로 보인다. 현재는 출입문이자 휴식공간이었던 풍화루, 명륜당, 사당 출입문인 내삼문, 대성전만 남아 일직선으로 되어 있다. 향교 동쪽 담장에는 책을 보관하는 전사청, 관리사, 사당, 재실 등의 건물이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삼가면 소오2길 18-5

안의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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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의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조선 성종 4년(1473) 현감 최영이 세웠으며, 정유재란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영조 12년(1736)에 다시 짓고 그 뒤 여러 차례 수리가 있었다. 건물은 출입문인 재천루,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 학생들의 거처였던 회우재·출숙재, 사당인 대성전 등이 있다. 건물의 배치는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인데 이것은 평지에 세워진 향교의 일반적인 전묘후학 배치와는 어긋난다. 따라서, 이것을 보안하기 위해 대성전의 기단과 층계를 높이 쌓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다른 향교에 비해 많은 전적을 보관하고 있으며, 특히 이 지방 향토사연구의 귀중한 자료를 많이 제공하고 있다.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향교길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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