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93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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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향교
홍주향교는 고려시대에 건립되었다고 전해지지만, 구체적인 근거가 확인되지는 않아 처음 지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홍주향교의 보수내역은 19세기 후반부터 확인 가능하다. 1871년(고종 8년)에 향교의 대성전을 중수하였고, 1880년에는 동서무와 중삼문이 신설되었다. 1893년에는 대성전이 중수되었고, 1914년에는 대성전과 후원이 수선되었으며, 1924년에는 문묘 전부가 보수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58년, 1972년, 1995년에 중개수가 있었다. 향교의 건물은 낮은 구릉지에 앞에 명륜당을, 뒤에는 대성전을 정남향으로 배치한 전학후묘식 형식을 따르고 있다. 명륜당 전면 좌우에 있던 동재, 서재는 일제 때 훼철되었고, 전사청만 남아있다. 대성전은 전면 3칸, 측면 3칸인데 전면 1칸은 툇칸으로 개방하였으며, 경내에는 동무, 서무, 제기고 등이 남아있다. 특히 축문을 태우는 망료대, 어둠을 밝히는 청료대, 손을 씻는 관수대 등 유교 건축의 석물이 남아있다. 에 의하면 홍주향교에는 조선전기에 종6품의 교수가 파견되었고, 조선중기에 제독관제도가 실시될 때에는 6품의 문관으로 제독관이 파견되었다 한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충서로1575번길 93
무장향교
무장향교는 1420년(세종 2) 지금의 자리인 무장면 교흥리에 창건되었다. 1600년(선조 33)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의 내외 3문을 지금의 자리에 중건하였고, 1840년(헌종 6) 명륜당이 불에 타 1842년(헌종 8) 봄에 중건하였으며, 1852년(철종 3) 동재가 불에 타 이듬해 재건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재, 서재, 홍살문 등이다. 무장향교는 무장을 대표하는 조선 시대 지방 교육 기관이자 선현을 제향하는 공간으로, 현재 무장 지역의 효자, 효부 등에 대한 포상을 행하고 있다. 특히 명륜학원을 운영하여 무장면 전통문화와 예절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며, 현대인들이 잊어버리기 쉬운 옛 성현의 가르침과 숭고한 향교 정신을 계승, 발전시키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무장면 교흥교촌길 9
여산향교
여신향교는 조선 태종 3년(1403)에 창건되었다. 그 후 선조 때 일어난 임진왜란 당시에 불에 타 버렸으나 이곳 유림들에 의해 후에 다시 중건되었다. 여산향교와 같은 중설위(中設位)로 대성전에는 중국의 다섯 성인과 10명의 철인, 그리고 6명의 현인을 배향하고 우리나라의 18현인을 역시 배향하고 있다. 향교의 가장 윗부분에는 3칸으로 된 대성전이 있으며, 그 아래 왼편으로 서무가 있고, 오른편으로는 동무가 각각 3칸의 건물로 되어 있다. 내삼문 아래에는 정면 5칸의 명륜당이 있으며, 오른쪽에 동재, 왼편에는 서재가 각각 정면 3칸을 이루고 있다. 또 이들 건물 아래로 사마재와 양사재 그리고 전사청(典祀廳)이 각각 정면 3칸을 이루고 있다. 여산향교 대성전은 1984년 4월 1일에 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제83호로 지정되었다. 대성전의 규모는 앞면 3칸 반이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이다. 지붕 옆면에는 바람막이 방풍판을 달았다. 대성전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조선시대 때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 기능이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여산면 여산교동길 23-2
용안향교
용안향교는 전라북도 익산시 용안면 교동리에 있는 조선 시대 지방교육기관이다. 1391년에 현재의 용안향교가 있는 곳에서 약 600m쯤 떨어진 현재의 용안면 중신리에 처음 세워졌던 것을 1416년(태종 16) 현재의 자리로 이건 하였다. 1592년(선조 25) 중건하였으며 1927년 화재로 대성전만 남고 모든 건물이 소실되어 1961년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을 비롯하여 여러 부속 건물을 다시 지었고, 1966년 대성전을 보수하였다. 현대 사회에 접어들면서 성균관을 위시하여 전국의 유림(儒林)들이 나서서 향교 역할을 이어가야 한다는 취지에서 전국 시군은 향교를 중심으로 주변의 초·중고등학교 학생들의 체험 교육과 인성 예절 교육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용안면 용안교동1길 34-11
임실향교
임실향교는 1413년에 창건된 것으로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 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임진왜란 때 일부 소실되었다가 김성근 등이 대성전을 중수하고, 원세철이 명륜당을 보수하였다. 또한 그 뒤 대성전과 서재와 동재, 교궁을 중수하고, 후에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임실향교는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공자에게 지내는 제사인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이 향교는 현재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임실향교에 있는 명륜당의 현판은 명나라 주지번의 글씨를 집자한 것이라고 하며, 외삼문과 명륜당, 동재와 서재 사이는 마당이 있어 여러 교육의 장으로 활용할 수 있다. 명륜당 옆으로는 수령 약 700년인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으며, 보호수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임실읍 봉황7길 23

구례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구례향교는 중종 13년(1518년)에 구례군 백련리 서북쪽에 세웠는데, 향사(享祀) 때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숙종 30년(1704년)에 이곳 봉서리로 옮겨왔다. 대성전, 내삼문, 동재·서재, 명륜당, 외삼문 등이 남동향으로 향교의 일반적 배치인 전학후묘를 따르고 있다. 외삼문 밖에 이곳을 지날 때에는 누구든지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하마비와 홍살문이 있으며, 외삼문 밖에는 연못이 있다.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현재는 봄, 가을에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구례향교는 구례 구청에서 약 1㎞ 도보 약 18분 거리에 떨어져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구례군 구례읍 향교길 36
남평향교
남평 향교는 세종 2년(1420) 남평헌 동문 밖 동쪽 4리에 세워졌다가 중종 29년(1534)에 남문 밖 1리 월연대 아래인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 후 명종 원년(1546)에 중수하고 다시 임진왜란으로 불탔으나 선조 33년(1600) 재건하였다. 건물의 배치는 전학후묘의 경사지 건축으로 좌향은 남향이며 대성전과 명륜당의 중심축에서 우측으로 약간 벗어나 정면 3칸, 측면 1칸, 맞배지붕의 외삼문이 있다. 각 건물을 보면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으로 막들 허튼층 쌓기의 낮은 기단을 놓고 덤벙 주춧돌 위에 원형 기둥을 올려놓았다. 평면은 좌우 툇간을 방으로 사용하고 나머지 전체는 우물마루로 되어 있다. 홀처마의 맞배지붕으로 북향의 전면을 개방된 상태로 출입하고 있다. 남평은 ‘낮은들’, ‘쪽들’로 물이 풍부한 넓은 들을 뜻하며 고려시대 남평군으로 조선시대에 남평현으로 읍치가 있던 곳이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나주시 남평읍 남평향교길 45-12
담양향교
담양향교가 세워진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고려 충혜왕(재위1330∼1331, 1339∼1344) 때 지어졌다는 설이 있으나 본격적으로 건물이 지어진 것은 태조 7년(1398)에 대성전이 세워지면서부터라고 전한다. 숙종 원년(1674)에 다시 짓고, 영조 23년(1747)에 고쳤으며, 순조(재위 1800∼1834) 때 수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 등이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홈페이지)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담양읍 향교길 19

여수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여수향교는 광무 1년(1897) 대성전과 동재·서재만 갖춘 규모로 지었다. 1934년에는 명륜당 등의 교육 공간을 새로 지었다. 향교 안에는 학생들의 교육 장소인 명륜당과 기숙사인 동재·서재가 있으며, 내삼문을 지나면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명륜당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대성전은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신 건물로, 옆면 지붕선이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처음에는 앞면 3칸·옆면 3칸 규모였으나 1949년에 앞면 5칸으로 늘려 지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출처: 국가유산청)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여수시 군자길 46 (군자동)
영광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고려 공민왕(재위 1351∼1374) 때 지어진 영광향교는 선조 15년(1582)에 수리되었다. 임진왜란(1592) 때 불타 없어진 것을 다시 복원하였으며, 현재의 건물들은 조선 후기에 지어진 것으로 보인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동무·서무·명륜당·동재·서재 등이 있다. 앞쪽에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제사공간을 두고, 뒤쪽에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배움의 공간을 두고 있어, 향교 배치의 일반적 형식인 전묘후학을 따르고 있다. 전해오는 말에 의하면 정종 2년(1400)에 불에 탄 서울 문묘를 복원할 때 이 향교의 배치를 참고하였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에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제사만 지낸다. (출처 : 국가유산청)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영광군 영광읍 향교길 32

옥과향교
옥과향교는 1392년 창건하였다고 하나 확실치 않다. 창건 당시 오산면 연화리 부근 황산에 있었으나 1649년 율정으로 옮겼다. 영조 31년(1755) 설산 아래인 지금의 자리로 옮겼고 정조 20년(1796)과 1898년에 중수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3칸의 대성전, 5칸의 명륜당, 각 3칸의 동재와 서재, 3칸의 육영재, 3칸의 전사실, 1칸의 장판고, 제기고, 고사, 내삼문, 외삼문, 고직사 등이 있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경장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가을에 석전제를 지낸다. 곡성에는 곡성향교와 옥과향교 이렇게 두 개의 향교가 있다. 옥과향교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장으로는 판본 30종 128책, 사본 10종 10책 등이 있다. 전남 과학대학에서 약 150m 거리에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곡성군 옥과면 옥과7길 13
완도향교
완도향교는 광무 1년(1897)에 향토 유사 김광선이 향교 건립을 추진하여 지었다. 1896년에 완도가 설군 되고, 그해 5월 15일에 군민대회가 열려 향교의 설립과 양사재의 설치가 결의되었다. 군 초창기에는 재정의 곤란으로 착수할 수 없었으나 당시 탁지부와 제도의 도움으로 건설하게 되었다. 1903년에는 유생의 강학을 위한 양사재를 군수의 도움으로 건설하고, 향안을 작성하였다. 1934년 향교 중수, 1942년 대성전과 명륜당, 그리고 1947년 동재를 중수하였다. 건물 배치는 전학후묘 형식을 따르고 있다. 3층 계단식으로 맨 아래에는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 그다음에 학생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맨 위쪽에는 제사를 지내는 공간인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은 새로 벌목한 목재를 사용하여 짓고, 동재는 고금에서, 사재는 신지에서, 명륜당은 노화에서 가져온 목재를 사용하여 각각 지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명륜당은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으로 지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완도군 완도읍 죽청길 94-73
지도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지도향교는 조선 후기 행정 개편으로 건양 원년(1896) 지도군을 새로 설치하면서 1군 1 향교 원칙에 따라 지은 향교이다. 이후 1947∼1948년 명륜당을 다시 지었고, 1966년 대성전 수리, 1968년 명륜당을 수리하여 지금과 같은 규모를 갖추고 있다. 봉정산의 완만한 경사지를 2단으로 하여 앞쪽에 교육 공간을 두고, 뒤쪽에 제사 공간을 두는 전학 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대성전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로, 안쪽에는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학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강당인 명륜당은 앞면 4칸·옆면 2칸 반으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그 외 건물로는 양사재와 내삼문, 외문 등이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출처 : 국가유산청)
전남광주통합특별시 신안군 지도읍 서촌길 54-11

창평향교
창평 향교는 조선시대에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설립 연대는 미상이며,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그 뒤 중건하였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대성전과 명륜당이 있으며, 대성전에는 5성, 송조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받아 교관 1인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소장 전적은 중 ‘유안’, ‘향중삼규’, ‘존성계속수안’, ‘현후사마선생안’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이곳에서 차량 이동 10분 거리에 창평 슬로시티가 있어 슬로시티 내의 한옥과 남극루를 방문할 수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담양군 고서면 교촌길 43-11
연기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고려·조선시대의 국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연기향교의 처음 위치는 연기리 서쪽이었는데 이후 1649년 연기현의 남쪽으로 옮겼다가, 1684년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고, 여러 차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른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제기고, 전사청, 내삼문, 동협문 등이 있다. 대성전은 제사를 지내는 공간으로 공자를 비롯하여 여러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고, 명륜당은 교생들이 학문을 배우고 토론하던 장소이다. 연기향교에는 지방관의 공적, 흥선대원군이 세운 척화비도 세워져 있다. 현재 향교의 운영은 전교 1명과 장의 수명이 담당하고 있으며 봄·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향교 유생들의 명부와 향교 교육 관련 규정인 절목, 그리고 17세기 연기의 향안과 향약 자료 등이 보존되어 있어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세종특별자치시 연기면 교촌3길 13

개령향교
개령향교는 1473년(성종 4)에 관학산 밑에 처음 지었는데 광해군(재위 1608~1623) 때 동쪽으로 옮겼다가 1837년(헌종 3)에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겨 지은 것이다. 일제강점기에 폐교되어 금산향교에 합쳐졌다가 1946년 복원하였고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정문인 외삼문을 들어서면 앞쪽에 교육 공간인 명륜당이 있고 그 뒤에 있는 내삼문을 통해 들어서면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배치하였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앞면 4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짠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경상북도 김천시 개령면 동부1길 78-27

경산향교
향교는 공자와 여러 성현께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기관이다. 경산향교는 고려 공민왕 2년(1390) 옥곡동에 처음 세웠으나,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져 여러 차례 다시 세웠는데 조선 숙종 7년(1681) 신교동을 거쳐, 현재의 위치로 이건 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향교에 모시던 위패가 위험해지자 향교의 종이었던 강개명이 성암산 동굴로 옮겨 놓아 무사했다고 한다. 제사 공간인 대성전을 앞에 두고 교육 공간인 명륜당을 뒤쪽에 둔 전묘후학의 배치 형태를 따르고 있다. 조선시대에는 나라에서 토지와 노비·책 등을 지원받아 학생을 가르쳤으나, 지금은 교육 기능은 없어지고 제사 기능만 남아 있다.
경상북도 경산시 향교길 14-19 (중방동)

김산향교
김산향교는 공자와 여러 유교 성현에게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을 대산으로 교육과 교화를 하기 위해 나라에서 세운 교육 기관이다. 이곳에는 원래 고산사라는 사찰이 있었는데, 관아에서 향교를 짓기 위해 그 절을 허물고 향교를 세웠다고 전해진다. 1592년 임진왜란 때에 불타 없어진 것을 1634년(인조 12)에 조마면 출신 진사 강설·강여구 부자가 다시 세웠다. 건물은 외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내삼문, 동무, 대성전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성전에는 공자, 안자 등의 신주를 모시고 있다. 1895년(고종 32)에 을미사면과 단발령에 분노한 유생들이 1896년(고종 33)에 전국적인 의병 봉기를 일으켰는데, 김산향교는 이때 김산 의병을 일으킨 중심적 역할을 하였다.
경상북도 김천시 김산향교1길 2-19 (교동)

문경향교
문경향교는 조선 태조 1년(1392) 처음 지은 것으로 보이며 임진왜란으로 불타 없어진 것을 후 다시 세운 것이다. 뒤로 높아지는 지형에 대지를 3단으로 마련하고 앞쪽에는 교육 공간을, 뒤쪽에는 제사 공간을 배치하였다. 정문격인 외삼문을 통과하여 교육 장소인 명륜당을 지나면 앞면 3칸·옆면 2칸의 대성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대성전은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성현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깔끔하게 단장되어 있다.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으로 소박한데 전체적으로 장식적인 요소가 거의 없는 간결한 모습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향교길 68

봉화향교
봉화군 봉성면에 위치한 봉화향교는 조선 세종 때 처음 지어졌으며, 1579년에 다시 지었다. 그 후 여러 차례 보수를 하였고, 1950년에는 학교로 사용하다가 폐지했다. 이때 크게 훼손되어 1975년에 군수 권명흠이 보수했다.정문인 사주문을 들어가면 휴식공간인 누각이 있다. 그 뒤로는 유생들이 공부하는 명륜당이 있으며, 양 옆에는 유생들의 거처인 동·서재가 마주 보고 있다. 명륜당 뒤 왼쪽에는 내삼문과 그 안에 사당인 대성전이 있다. 대성전은 앞면 3칸, 옆면 3칸 규모로 공자의 제자와 조선시대 여러 성현들을 모시고 있다. 전체적으로 공부하는 곳이 앞쪽에, 제사 지내는 곳이 뒤쪽에 위치한 전학후묘의 건물배치이다.
경상북도 봉화군 봉성면 향교길 11-10

비안향교
비안향교는 조선 태조 7년(1398) 처음 지었으며, 임진왜란 때 불타 없어졌다. 광해군 2년(1610) 지금 있는 자리에 복원하여 1898년, 1924년, 1935년에 각각 수리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이 지역 사람인 손복이 향교의 위패를 산중 굴속에 숨겨 무사히 피해를 면했다고 전한다. 지금 남아 있는 건물로는 제사 공간인 대성전과 동무·서무, 교육 기능을 수행하는 강당인 명륜당, 삼문 등이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비롯한 그 제자와 우리나라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동쪽 높은 대지에 대성전을 두고 그 아래 명륜당을 세워 전학후묘의 배치를 하고 있다. 대성전 앞에는 동무와 서무가 서로 마주 보고 있다. 이 밖에도 광풍루, 교직사, 화장실, 연못 등이 갖추어져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안계면 교화길 65-14
성주향교
성주향교는 전면에서 볼 때 명륜당이 좌측에 자리하고, 우측에 대성전이 위치하는 좌묘후학의 배치법을 지니고 있다. 대성전과 명륜당은 조선 태조 7년(1398)에 서울의 문묘와 지방 향교가 세워질 때 창건되었다고 전해지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다. 성주향교 대성전은 우리나라 향교 가운데 서울의 문묘, 익산향교 대성전, 대구향교 대성전과 함께 보기 드물게 다포양식으로 지어졌으며, 조선중기의 수법들이 잘 보존되고 있다. 특히 다포건축이면서 천장을 설치하지 않았고, 다포이면서도 유교건축에 맞게 내부구성을 매우 간략하게 처리한 점 등은 주목된다. 명륜당은 전면 퇴칸을 두고 가운데 마루가 깔린 전형적인 중당협실형의 평면구성이다. 온돌방 상부는 다락을 설치하여 수장공간으로 활용한 듯하며 창호의 구성에서 고식들이 남아있다. 좌측 온돌방 측면에 문틀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지붕은 맞배로 처리하였다.
경상북도 성주군 성주읍 예산2길 36-12

안동향교
안동향교는 6.25 전쟁 때 창건 연대나 향교와 관련된 수많은 기록문서들이 모두 불타 문헌상으로는 고증이 불가능하다. 다만 고려시대의 웅부(雄府)요 조선 개국 이후 많은 인물이 배출된 점으로 미루어 상당히 이른 시기에 개교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고려 말 공민왕이 안동부로 몽진(蒙塵)했을 때 이미 향교가 있었다는 「고려사절요」의 기록이 남아있다. 안동향교는 당초 안동시 명륜동 현 안동시청사 구내에 있었으나 6·25 전쟁 때 소실된 이후 1987년 현 위치에 복원했다. 조선시대의 안동향교는 대설(大設) 규모로 설치되어 있었고, 이는 1987년 복원 시에도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현재 대성전에는 송조 사현과 동국십팔현을 봉안하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향교길 65

영덕향교
영덕향교는 고려시대에 설립했다. 설립 당시에는 대성전과 동서무, 행랑, 담으로 이루어졌다. 조선 선조 때 누각인 태화루가 건립되었고, 숙종 45년(1706)에는 경각, 전사청, 주방, 별고, 하인청 등이 건립되었다. 현재는 대성전과 명륜당, 태화루, 동재, 서재, 그리고 관리사가 남아있다. 「영영승람」에 의하면 1950년 전쟁으로 건물이 소진되기 전까지는 대성전, 명륜당, 양호루, 동재실, 전사청, 하인청, 주사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영덕향교의 배위와 제의의 절차는 영해향교의 배위와 제의의 절차와 대동소이하다. 영덕군과 영덕향교에서는 우리의 옛 가례를 바탕으로 현대적 운치를 가미한 전통혼례 지원사업을 마련하여 군내 거주자 또는 출향인들을 대상으로 연중 희망신청을 받아 전통혼례를 대행해 오고 있다. 전통혼례는 영덕향교 명륜당에서 향교임원들의 진행으로 초례상 준비 및 가마타기, 혼례청 불 밝히기 등 전안례와 교배례, 합근례 순으로 1시간 정도 소요되는데 잔치를 북돋우고 뜻깊은 혼례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혼례청을 울려 줄 풍물놀이도 곁들여 흥겹게 펼쳐진다. 특히 혼례장소는 물론 신랑신부 대례복, 대례상차림, 꽃가마 등 일체의 소품을 무상으로 지원받게 되며,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특별한 혼례를 치를 수 있다.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개서길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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