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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19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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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향교
역사관광경상남도

양산향교

양산향교는 조선 태종 6년(1406)에 창건하였으며, 훌륭한 유학자를 기리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었다. 1864년에 크게 수리했는데 「양산교지」에 의하면 별 차이가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1909년 신교육 실시에 발맞추어 이곳에 원명학교를 유림대표들이 설립하여 젊은 청년들을 교육했고, 그 뒤 다시 양산공립보통학교로 바꾸어 사용하다가 양산고등 공민학교와 기술학교로 사용하기도 했다. 건물의 배치는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가 앞쪽 평지에 있고, 제사 지내는 곳인 대성전과 동·서무가 뒤쪽 경사지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향교는 본래 건물이 지어진 형식과 규모에 따라 대설위, 중설위, 소설위의 3등급으로 나누어진다. 따라서 이 향교의 출입문인 외삼문이 누각형태로 지어지고 명륜당과 대성전의 규모가 비교적 크다는 점으로 보아 중설위에 해당되었을 것으로 본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양산시 교동1길 10 (교동)

의령향교
역사관광경상남도

의령향교

의령향교가 세워진 시기는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원래 의령읍 동동에 있던 것을 조선 선조 15년(1582년) 현감 이함이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고 한다. 그 후 여러 차례 보수했다. 각 건물들은 급경사지에 세워졌는데 여러 개의 가파른 계단을 통해 서로 연결되고 있다.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가 앞쪽에 자리하고 있고, 사당인 대성전이 뒤쪽에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로 이루어져 있다. 대정선의 좌우 공간에 동·서무를 세울 수 있었음에도 세우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경상남도 의령군 의령읍 의병로15길 30

진주향교
역사관광경상남도

진주향교

진주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 지내며 지방 백성들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기 위해 지은 국립지방교육기관이다. 언제 지었는지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고려 성종 6년(987) 지금의 의곡사 계곡에 향학당으로 처음 세워진 후 조선 태조 7년(1398) 문묘를 지으면서 향교로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명종 13년(1558) 현 위치로 옮겨졌으며, 교관과 교수 등은 성균관으로부터 직접 파견되었다. 임진왜란(1592) 때 불에 타 없어졌다가 여러 차례의 공사를 거치면서 원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동서방향의 급경사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명륜당을 비롯한 교육공간이 앞에 있고 대성전을 중심으로 하는 제사공간이 뒤에 위치한 전학 후묘의 배치형식을 하고 있다. 또한 대성전을 중심으로 하여 건물들이 일직선 위에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다. 현재 대성전, 동무와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와 서재, 풍화루 그밖에 부속건물이 있다.

경상남도 진주시 향교로 99-3

창원향교
역사관광경상남도

창원향교

창원 향교의 최초 창건은 조선 전기 태종 때인 것으로 추정되며 1748년(영조 25)에 태을산 아래의 남향으로 바라보이는 곳에 터를 정하고 부사 이윤덕이 공론을 모아 1749년 정월에 옮겨 세웠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다. 대성전은 경상남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며 소장 전적 가운데 , , , 등은 이 지방의 향토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의안로59번길 6

초계향교
역사관광경상남도

초계향교

초계향교는 조선 인조 6년(1628)에 세워졌으며, 1800년대 초반에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 그 밖의 자세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남아있는 건물은 출입문인 풍화루,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과 동·서재, 사당인 대성전과 동·서무 등이 있다. 건물의 배치는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초계면 교촌3길 18-4

통영향교
역사관광경상남도

통영향교

통영향교는 1900년 진남군이 고성현에서 분리됨에 따라 이 고장 유림들이 지방민들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1901년 고성향교에서 분리하여 창건한 교육기관이다. 죽림마을의 평지에 세워진 통영향교는 대성전, 동무, 서무, 명륜당, 동재, 서재, 풍화루, 제기고, 내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고, 앞쪽에는 학교, 뒤쪽에는 문묘를 배치하는 전학후묘의 형태이며, 대성전과 명륜당을 연결하는 중심축의 연장선상에서 풍화루는 약간 비틀어 배치하였다. 대성전에는 공자를 위시한 오성의 위패를, 동서 양무에는 우리나라의 18현을 모시고 있다. 명륜당은 삼강오륜과 윤리규범의 덕목을 강의하던 강당이며, 동서 양재는 학생을 가르치던 교실이었고, 갑오개혁 이후 신학제 실시에 따라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과 가을 석전제만 봉행하고 있다.

경상남도 통영시 광도면 향교길 82

역사관광경상남도

함양향교

함양향교는 덕곡 조승숙 선생의 명륜당 문기에 의하면 조선 태조의 문묘 창설 당시인 태조 7년(1398)경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 선조 30년(1597) 정유재란 때 왜군에 의해 소실된 것을 후에 대성전을 중수하고, 동재, 서재와 문루를 건립하였다. 건물구성은 대성전, 동무, 서무, 내삼문, 명륜당, 동재, 서재, 태극루, 전사제기고 등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건물 배치 형식은 경사지에 일축 선상으로 전학후묘의 직렬형 배치를 하였다. 대성전을 중심으로 한 축과 명륜당을 중심으로 한 축이 꺾여져 있다. 문묘부에는 중국 5성과 우리나라의 18현을 모시고 있다. 함양읍 북쪽 산록 원교 마을 내에 있어 접근이 용이하여 많은 탐방객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는 곳이다.

경상남도 함양군 함양읍 원교길 50

합천향교
역사관광경상남도

합천향교

합천향교는 조선 세종 때에 유학자의 위패를 봉안 및 배향하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다. 1881년(고종 18)에 수해로 인해 합천군청이 야로면으로 이전되자 향교도 같이 이건되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출입문인 영귀루, 공부하는 곳인 명륜당, 사당인 대성전과 동·서무가 있다. 대성전에는 5성, 10철, 송조 6현, 우리 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배치는 명륜당이 앞에 있고 대성전이 뒤에 있는 전학후묘형이다 경내에는 이 고장 출신으로 임진왜란 때 목숨을 걸고 향교를 지킨 정씨 부인의 사당이 있으며 명륜당 대청에는 각종 현판들이 걸려있어 향교에 관한 좋은 연구자료가 된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 등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쳤으나 갑오개혁(1894) 이후 제사만 지내고 있다.

경상남도 합천군 야로면 향교길 17-3

도봉서원(서울)
역사관광서울특별시

도봉서원(서울)

도봉서원은 조선 전·후기의 가장 대표적인 성리학자인 조광조와 송시열을 배향(配享,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냄)한 사액서원(賜額書院, 조선시대 국왕으로부터 편액·서적·토지·노비 등을 하사 받아 그 권위를 인정받은 서원)으로 백사 이항복 등 저명한 시인 묵객들이 시문을 남긴 오늘날 서울 지역 내 가장 대표적인 서원이다. 비록 1871년 서원철폐령에 의해 훼철되어 유적의 대부분이 멸실되었으나 서울 지역 내 다른 서원과 달리 사당의 기단과 옛 사료상의 도봉서원 유적으로 소개된 각석군(刻石群)이 서원 터 앞 계곡에 대부분 원형대로 남아 있어 유적의 경계를 비교적 명확히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들 유적들을 차치하고서라도 각종 문헌이나 시에서 오랫동안 경치가 아름다운 것으로 손꼽히던 경승지(景勝地)에도 해당하므로 보존가치가 크다. (출처 : 국가유산청)

서울특별시 도봉구 도봉산길 89 (도봉동)

고산서당
역사관광대구광역시

고산서당

고산서당은 처음에 서재(書齋)로 건립되었다가 서원과 서당으로 이름을 바꾸면서 이 지역의 대표적인 유학 교육 기관이자 선현을 제향(祭享)하는 공간으로 중요한 역할을 해 온 곳이다. 건립된 시기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퇴계 이황(退溪 李滉, 1501~1570)과 우복 정경세(愚伏 鄭經世, 1563~1633)가 이곳에서 강론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50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인다. ‘고산(孤山)’이라는 이름도 퇴계에게 요청하여 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 서당은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재건되는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강학 공간으로써의 역할을 해오다가 숙종 16년(1690)부터 퇴계와 우복을 배향하는 서원이 되었다. 이후 영조 10년(1734)에는 강당과 동재·서재를 새로 지어 서원으로서의 완전한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그러나 서원 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다가 고종 16년(1879)에 강당만 재건되면서 고산서당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1964년에 강당 건물을 중수하였고, 2020년에는 사당과 삼문, 담장을 세워 옛 서원의 모습을 다시 갖추고, 동고 서사선(東皐 徐思選)을 함께 배향하게 되었으나 2021년 12월 20일에 화재가 일어나 강당이 불에 타고 말았다. 사당 담장 안에 세워져 있는 강학(講學) 유허비(遺墟碑)와 강당 뒤편의 두 그루 정자나무는 이 서당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다. (출처 : 행복수성 문화관광)

대구광역시 수성구 성동로37길 39-3

낙동서원
역사관광대구광역시

낙동서원

낙동서원은 현재 대구광역시 달서구 월곡역사공원에 자리하고 있다. 단양우씨의 현조인 우현보(禹玄寶)와 임진왜란 때 의병장 우배선(禹拜善)을 향사하기 위해 덕동서원이라는 명칭으로 1708년(숙종 34년)에 건립되었다.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건물도 없어졌으나 1965년 단양우씨 판서공파 17대손인 우종식, 우종묵 형제가 사비로 다시 건립하여 낙동서원으로 명칭을 변경한 후 향내 유림에 헌납하였다. 현재는 우현보와 우배선 외에 우탁(禹倬), 신현(申賢), 우길생(禹吉生)을 함께 모시고 있다. 그중 우탁은 본래 예안의 역동서원에서 향사하였으나 역동서원이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자 낙동서원에서 다시 모신 것이다. 서원은 사당인 계현사와 강당인 정교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3칸의 강당에는 ‘낙동서원’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으며, 동쪽 재실은 처인헌, 서쪽 재실은 지경재라 당호를 붙이고 편액을 걸었다. 전면으로 돌출된 부분은 2칸의 누마루이고 나머지 2칸은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을 중심으로 동쪽과 서쪽에 재실을 배치한 조선시대 일반 서원의 강학 공간 배치와 달리 낙동서원은 ‘ㄱ’ 자형의 건물 안에 강당과 두 개의 재실을 배치한 것이 특징이다. 매년 음력 3월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송현로7길 32

덕산서원(대구)
역사관광대구광역시

덕산서원(대구)

이 서원은 조선조 초기 문신으로 대쪽 같은 절개를 지켰던 남은(南隱) 서섭(徐涉)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첨모재(瞻慕齋)를 1993년 서원으로 복설(復設) 한 것이다. 서섭은 달성서 씨 판서공파 파조(派祖)로 세종 때 대과에 급제한 후 단종 때 이조판서를 지낸 인물인데 세조의 왕위 찬탈로 관직을 사직하고 낙향하여 남애(南涯)라는 호를 남은(南隱)으로 고치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은둔하였다. 그리하여 후손들도 그에 대해 알려진 바가 없어 잘 모르다가 80여 년 전 그가 살았던 낡은 집을 헐다가 천장 속에서 발견된 함에서 그의 행장과 유고를 발견하여 그의 충절이 널리 알려졌다. 이에 1926년 후손들이 묘소가 있는 황금동 근처에 첨모재를 세우고 1954년 중수할 때 신도비를 세웠다. 서원의 정당은 4칸으로 강당은 충정당(忠正堂)이다. 동재는 3칸으로 구인재(求仁齋)이고 서재 또한 3칸으로 존성재(存誠齋)이다. 사당은 경의사(景義祠)로 강당의 뒤편에 자리하고 있다. 강당의 서쪽 벽 위에 이수락(李壽洛)의 덕산서원기(德山書院記)가 편액 되어 있고 기둥에는 주련이 걸려 있다. 대문인 외삼문은 숭절문(崇節門)이고 내삼문은 유현문(維賢門)이다. 정당의 동편에 남은 서선생신도비(南隱 徐先生神道碑)와 비각(碑閣)이 있고 강당의 남쪽에 덕산서원 사적비가 있다. (출처 : 행복수성 문화관광)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46길 5-3

매양서원
역사관광대구광역시

매양서원

1705년(숙종 31)에 송원기(1548∼1615)를 향사하기 위해 건립된 서원이다. 후대에 그의 후손인 송명기, 송이석 부자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이후 복건과 소실되기를 반복하다 2006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매양서원은 주향인 송원기의 입묘를 계기로 칠곡에 이주, 정착하여 세거해온 야로 송 씨 문중의 성장 과정을 잘 보여준다. 조선 후기 칠곡지역의 대표적인 문중서원 중 하나이다. 서원은 전체 영역이 축대 위에 형성되어 있다. 전면에 계단을 배치한 양정문을 정문으로 하여 강당인 구인당을 배치하고, 강당의 북동쪽에 단을 높여 별도의 담장과 내삼문을 갖춘 사우인 상현사를 배치한 병렬형 배치를 보여준다. 외삼문에는 양정문, 강당에는 매양서원, 사당에는 상현사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대구광역시 북구 매천로37길 48

백원서원
역사관광대구광역시

백원서원

백원서원은 효자로 이름이 났던 전귀당(全歸堂) 서시립(徐時立)(1578~1665)을 제향 하는 서원이다. 서시립의 자는 입지(立支), 호는 전귀당이며, 달성서씨 감찰공파 파조인 서근중의 6세손이다. 서시립의 호 전귀당은 임진왜란 이후 오봉 이호민이 왕자 태실사(胎室使)로 대구지역에 들렀다가 서시립의 효행을 듣고 지어준 호이다. 온전한 몸으로 태어나 온전하게 돌아간다는 의미이다. 백원서원은 동·서재 없이 강당과 사우인 경덕사(景德祠)와 서시립의 어머니인 강씨 부인의 효행을 기록한 효행비각이 있다. 강당은 전귀당인데 정면 4칸·측면 1.5칸의 규모에 겹처마 팔작지붕의 건물이다. 정면에서 마주 보았을 때 좌측에서부터 2칸 방·2칸 대청·한 칸 방으로 구성되었으며, 전면으로 반 칸 툇간이 있다.

대구광역시 동구 도평로51길 18

봉산서원(대구)
역사관광대구광역시

봉산서원(대구)

조선 영조 11년(1735년)에 후손들이 손린(孫遴) 선생의 사당을 지음으로써 시작되어 조선 순조 3년(1803년)에 봉산서원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나 1864년 서원 훼철령으로 서원은 없어지고 1967년에 다시 강당을 지어 경모재(敬慕齋)라고 하였다. 그리고 1996년에 후손들의 노력으로 강당인 지행당(砥行堂), 동재 자리에 사당인 봉암사(鳳岩祠)와 서재인 송독재(誦讀齋)를 세우고 손린 선생을 기리는 유허비도 세웠다. 2009년에는 지행당이 낡아서 크게 수리였으며 건물의 배치와 크기를 보면 지행문이라고 쓴 외삼문인 솟을대문을 들어서면 오른편에 문탄 손선생유허비가 서 있고 맞은편에 강당이 있다. 이 강당에는 봉산서원과 지행당이라는 두 개의 현판이 붙어 있다. (출처 : 행복수성 문화관광)

대구광역시 수성구 수성로12길 70

오천서원
역사관광대구광역시

오천서원

오천서원(梧川書院)은 1744년(영조 20)에 양희지(楊凞止)[1439~1504]를 기리기 위하여 창건된 서원이다. 오천서원에 배향된 양희지는 본관은 중화(中和), 자는 가행(可行), 호는 대봉(大峰)이다. 연산군 즉위 후 직제학과 부승지를 거쳐 1500년에 부총관을 거쳐 대사헌에 올랐다. 1502년 동지중추부사(中樞府使)가 되고, 겸세자우부빈객, 동지성균사와 한성부우윤(漢城府右尹)을 역임하였다. 저서로 『대봉집』이 있다. 오천서원은 파동 끝자락 골짜기 안 야산의 남쪽 사면에 좌묘우학(左廟右學)[사당이 동쪽 강당이 서쪽] 형태로 배치되어 있다. 이는 땅의 형편을 고려한 배치이다. 서원을 마주 보고 섰을 때 좌측이 강당 영역이며 우측이 사당 영역이다. 강당과 사당은 각각 흙돌담으로 경계를 이루며 사당 영역이 강당 영역보다는 지대가 한 단 정도 더 높다. 출입문은 남쪽으로 각각 1개씩 있으며, 별도로 강당과 사당의 경계 담에 두 영역을 직접 잇는 작은 문을 두고 있다.

대구광역시 수성구 파동로2안길 20

용강서원
역사관광대구광역시

용강서원

대구 달서구 와룡산 선원공원 초입에 위치한 용강서원은 상무헌 허득량(許得良)과 낙암 허복량(許復良)을 모신 재실이다. 조선 영조(1630년경) 용강서원(龍岡書院)으로 건축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 철폐 시 훼철되었다. 1920년에 중창하여 용강사(龍岡祠)라 부르고 1986년에 복원하여 위 허득량(許得良)과 허복량(許復良) 양위를 배향하고, 9대 조인 고려문하시중(高麗門下侍中) 시춘목(諡忠穆) 허유전(許有全)을 정위(正位)에 추배 하였다. 경내에는 사우인 충렬사를 비롯하여 강당인 숭현당이 전학 후묘의 형식에 따라 배치되어 있고 재실인 용강재가 강당의 동쪽에 위치하고 있다. 경내에 충목공비원정비, 세거장비등이 있으며 뜰 안에는 큰 향나무가 두 그루 서 있고 울타리는 막돌 담장이다. 울타리 안 밖으로 여름이면 배롱나무가 장관이라 고졸한 서원의 풍경과 더없이 잘 어울린다.

대구광역시 달서구 선원로33길 101

청호서원
역사관광대구광역시

청호서원

이 서원은 조선조 대학자였던 모당(募堂) 손처눌(孫處訥)(1553~1634), 사월당 류시번(柳時藩), 양계(暘溪) 정호인(鄭好仁), 모당의 6대 조인 격재(格齋) 손조서(孫肇瑞) 네 분을 추모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모당 손처눌의 자는 기도(幾道)이며, 한강(寒岡) 정구문하(鄭逑門下)에서 사사(師事)하여 학행과 효우로 스승에게 인정받았으며,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때 의병대장으로 활동하였다. 난리(亂離) 중 부모상(父母喪)을 당하였으며, 이를 옳게 못 모신 것을 한탄하면서 임진왜란이 평정되자 종신여모(終身廬慕)한다는 뜻에서 자기 거처를 영모당(永慕堂)이라 하였다. 난(難) 후 그는 후진 양성에 전념하여 영모당은 언제나 문전성시(門前盛市)를 이루었고 '영모당통강제자록(永慕堂通講諸子錄)'에는 제자 202명의 명단이 적혀 있어 당시의 규모를 짐작하게 한다. 마을 앞에 청호지(靑湖池)를 만들어 영농에도 힘썼으며, 조정에서의 논공행상도 사양하였으며 다만 대구향교의 최고 책임자인 도유사(都有司)를 12년간 맡았다. 손조서는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대과에 급제하여 집현전 한림학사로서 필재(畢齋)와 도의지교(道義之交)를 맺고 단종 때 봉산군수(鳳山郡守)로 있다가 단종의 참사 소식을 듣고 불사이군(不事二君)이라 하여 벼슬을 버리고 고향(밀양)으로 내려가 후학 교육에 전념하였다. 청호서원 역시 1864년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1947년경 강당만 세웠다가 1968년 화재로 소실되었으며, 현재의 건물은 1969년 강당과 위패를 모신 상인사(尙仁祠)를 중건한 것이다. 서원 입구에 모당선생 유허비(遺墟碑)도 세웠다. (출처 : 행복수성 문화관광)

대구광역시 수성구 청호로 250-11

화암서원(대구)
역사관광대구광역시

화암서원(대구)

대구 북구에 위치한 화암서원은 고려 말 고려에 절의를 지킨 선정 백인관을 추모하기 위하여 창건한 서원이다. 백인관은 자는 사달, 호는 선정, 본관은 수원이며, 수원백씨 대구 노곡동 입향조이다. 백인관은 고려 말의 유학자였던 목은 이색, 포은 정몽주, 야은 길재 등과 교유하였던 학자이다. 고려 말 나라가 문란해지자 부모를 모시고 본향인 수원으로 귀향하였다. 조선 개국 후 태종이 세 번이나 불렀으나 끝내 출사 하지 않고 금오산으로 이주하였다가 이후 다시 길지를 찾아 대구 노곡동에 들어와 살았다고 한다. 화암서원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주심포 팔작지붕 양식의 건물이다. 화암서원 경내의 건물로는 사당 건물인 숭의사와 강당인 경선재가 있고, 동재인 수덕재, 서재인 박학재, 내삼문인 진도문, 외삼문인 모송문 등이 있다.

대구광역시 북구 노곡로3길 16-5 (노곡동)

충렬사(강화)
역사관광인천광역시

충렬사(강화)

인천시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충렬사는 병자호란과 신미양요 때 나라를 지키다 순절한 우의정 김상용을 비롯한 충신 28명의 위패가 봉안돼 있다. 1641년(인조 19)에 건립돼 현충사라 불리다 1658년(효종 9)에 국왕으로부터 충렬사란 이름을 받아 강화유수 허휘가 충렬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우의정 김상용은 1636년 병자호란 때 왕실의 신주를 받들고 빈궁, 원손을 수행해 강화도로 피난했다가 이듬해 성이 함락되자 성의 남문루에 있던 화약고에 불을 지르고 순절하였다. 충렬사를 건립할 당시에는 모두 7명을 배향하였으나, 이후 황선신과 강흥업이 추향되어 9명의 위패가 모셔졌다. 그 후 충렬사 비기가 건립되었다. 신미양요 당시 미군에 맞서 싸운 충신까지 배향하게 되면서 현재는 모두 28명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충절인의 넋을 달래고, 국가에 대한 충절을 장려한다는 의미를 지녔기 때문에 충렬사는 국가의 특별한 보호와 지원을 받았다. 1871년(고종 8) 흥선대원군이 서원, 사우를페쇄할 때도 그 대상에서 제외되어 존속되었다. 현재는 충렬사유지재단에서 관리하고 있다. 충렬사는 교육 공간인 명륜당과 동재, 서재는 없어지고, 지금까지 남은 건물로는 한식 목조 맞배지붕으로 된 14평의 사당과 16평의 수직방, 14평의 전사청, 비각, 외삼문 등이 있으며 1977년 보수하여 지금에 이른다.

인천광역시 강화군 선원면 충렬사로 232

운암서원(광주)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운암서원(광주)

운암서원은 1708년 지역 유림들의 청원으로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에 건립된 서원이다. 조선 중기의 학자 해광(海狂) 송제민(宋齊民)이 배향되어 있다. 그 후 1709년(숙종 35)에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하였던 제봉(霽峯) 고경명(高敬命)의 사촌동생이자 조선 선조 때의 유생인 창랑(滄浪) 고경리(高敬履)를 추배 하였다. 서원에는 그 외에도 송타(宋柁), 권필(權鞸), 신필(申鞸), 신한주(申漢柱) 등을 추배 하였다. 운암서원에는 송제민의 문집을 간행하기 위하여 제작된 ‘해광집(海狂集)’ 목판이 보관되어 있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북구 무등로 1040

유애서원
역사관광전남광주통합특별시

유애서원

유애서원은 조선 중기의 문신 이신의(1551~1627)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어졌다. 이곳은 인조반정 때에 낙남한 이신의의 후손이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되었는데, 감이 많이 나는 곳이라 하여 ‘감낭징이’라고 하였다가 ‘시리’라 부르게 되었다. 광주유림회의 주관으로 매년 봄 이곳에서 제사를 지낸다. 이신의는 임진왜란 때 경기도 고양에서 의병 3백여 명과 함께 왜군을 물리치는 공을 세웠으며, 광해군 때는 죽음을 무릅쓰고 인목대비의 유폐를 반대하는 항소를 올렸다가 변방의 회령으로 유배되기도 하였다. 이신의는 당대 충의와 절의로 이름 높은 선비였으며, 여러 고을의 목민관으로 애민정신을 실천하였다. 광주목사와 형조참판을 지냈으며, 문정이란 시호를 하사 받았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 광산구 용아로 460 (흑석동)

남간정사
역사관광대전광역시

남간정사

낮은 야산 기슭 숲이 우거진 골짜기에 자리하고 있는 남간정사는 조선 중기의 대학자인 우암 송시열이 지은 것이다. 우암은 소제동에 살 때 서재를 짓고 능인암이라 하여 학문을 연마하였다. 숙종 9년(1683년) 능인암 아래에 이 건물을 지었는데, 많은 제자를 기르고 그의 학문을 대성한 유서 깊은 곳이다. 앞면 4칸, 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 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2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왼편은 앞뒤 통칸의 온돌방을 들였다. 오른편 뒤쪽 1칸은 방으로 하고 앞쪽 1칸은 마루보다 높은 누를 만들어 아래에 아궁이를 설치하였다. 계곡의 샘에서 내려오는 물이 대청 밑을 통하여 연못으로 흘러가도록 하였는데, 이는 우리나라 조경사에서도 매우 중요하고 독특한 양식이다. 건물 앞에는 잘 가꾸어진 넓은 연못이 있어 운치를 더하고 있다. 남간정사 오른쪽에는 일제강점기에 소제동에서 옮겨 지은 기국정이, 뒤편 언덕에는 후대에 지은 사당인 남간사가 있다. 송시열과 관련된 건물이 한 곳에 모여 있어 조선시대 건축 연구에도 좋은 자료가 되고 있다.

대전광역시 동구 충정로 53

도산서원(대전)
역사관광대전광역시

도산서원(대전)

도산서원(대전)은 조선 후기 인물 만회 권득기와 그의 아들 탄옹 권시를 추모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권득기는 예조좌랑을 지낸 뒤 도학을 공부한 인물이다. 권시도 학문이 뛰어나 여러 버슬을 지낸 후 낙향하여 고향인 이곳에서 학문에 힘썼다. 이 서원은 1693년(숙종 19)에 유림들이 뜻을 모아 세운 것으로, 1711년(숙종 37)에 나라에서 내린 현판을 받아 사액서원이 되었다. 사당 3칸, 묘문 3칸, 강당 4칸, 서재 3칸, 남재 4칸, 전사청 3칸 등 모두 23칸 규모를 가진 서원이었다고 하는데,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 그 뒤 1921년 단을 만들고 제사를 지냈으며, 1968년과 1973년 두 차례에 걸쳐 안동 권씨 문중에서 복원하였다. 그리하여 문화재적 가치를 인정받아 1989년 3월 18일에 대전광역시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지금은 음력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한 안내원이 상주하며 관광객을 맞고 있으며 전통 민화를 체험하는 도산의 화공, 유생교육을 체험하는 유생의 하루, 예술 공연을 진행하는 도산 와유회, 도산서원에 대해 자세히 공부하는 도슨트 심화교육 프로그램 등이 진행되고 있다.

대전광역시 서구 남선로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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