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197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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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서원(동해)
1705년(숙종 31)에 최찬규, 최찬기 등이 지방유림과 협력하여 이세필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하여 생사당과 흥학비각을 세우고 용산사라 하였다. 이세필이 죽은 이듬해인 1719년(숙종 45)에 위패를 모시고 용산서원으로 개편하였다. 1784년(정조 8)에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789년에 박문수·이태좌·이형좌 등이 중건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다. 그 뒤 1956년에 최만희·홍질현 등이 중심이 되어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고, 이이와 송시열을 추가 배향하였다. 1984년에 다시 이이와 송시열의 위패는 훼철하고 이세필만 단독 배향하고 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각 4칸의 동재와 서재, 신문, 고사 등이 있다. 사우에는 이세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동재와 서재는 유림의 회합과 학문 강론 및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고사는 서원의 관리인이 기거하는 곳이다. 현재는 감성 아뜰리에, 용산서원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문화체험, 인문학 특강, 효행길 산책 등을 운영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효자로 583
철원충렬사지
철원충렬사지는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에 있는 충렬공 홍명구(1596~1637)와 충장공 유림(1581~1643)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자 터이다. 1650년(효종 1) 지방 유림의 공의로 충렬공 홍명구(洪命耉)를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병자호란 때 당시 평안도 관찰사였던 홍명구는 평양을 거쳐 서울로 침입한 적병을 추격하던 중 금화에 이르러 지방의 의병들과 힘을 합하여 싸우다가 순절하였다. 이에 주민들은 숭덕비를 세워 그의 충절을 기리고 명복을 빌어 왔으며 1652년 의열(義烈)이라 사액되었다. 1940년에 김화 지역 유림의 합의로 당시 홍명구와 같이 전쟁에 참여했다가 전사한 병마절도사였던 충장공 유림을 이곳에 합사 하였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여 이 일대가 격전지가 되면서 소실되었으나 1975년 9월 30일 철원군 근남면 육단리 245번지 전수흘 소유지에 새로운 사당이 건립됐으며 1988년 충렬사 사적비가 건립되었다. 남북 관계가 정착되면서 민통선 안에 있던 김화읍 읍내리 일대가 개방되면서 1999년 원래의 충렬사 터에 충렬사가 완공되었다. 1997년에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철원충렬사지에는 홍명구와 유림의 비석과 금표가 남아 있어 그들의 업적과 정신을 알 수 있다. 충렬사의 제향은 해마다 음력 2월과 8월에 행해진다.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김화읍 생창길 603
포충사(철원)
포충사는 광해군 11년에 여진족 건주위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하여 조선 원군의 좌영장으로 출정하여 3,000여 병력으로 6만의 적군과 접전 최후까지 용전분투, 40세를 일기로 장렬히 전사한 충무공 김응하 장군의 무훈과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현종 7년에 건립된 사당이다. 원래 강원특별자치도 철원읍 화전리 역촌동에 있었으나, 6·25 전란으로 파괴되고 군부통제 지역에 속하여 1990년에 현 위치인 철원읍 화지리 산 1-1번지 곡암산 기슭에 건립하였다. 조선 현종 7년에 부(府)의 남4리 화전리 일봉산 기슭(역촌동)에 30간 규모의 사우를 건립하고, 현종 9년 포충사로 사액을 하였다. 현종 10년 명나라 신종이 김장군을 요동백으로 추봉하고 우리 조정에서는 동년 6월 묘정비를 제작하였으며, 숙종 9년 송시열이 글을 짓고, 박태웅이 글씨를 쓰고, 영의정 김수항(金壽恒)이 전서로 제목을 붙여 제작한 요동백 김응하장군묘정비를 사내에 건립하였다.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철원읍 금학로425번길 32

검암서원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에 있는 조선 후기 조헌을 비롯한 9인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조헌은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유학자이며 의병장이다. 어려운 가정 형편 속에서도 열심히 공부하여 성균관에 입학하여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많은 관직을 거쳤으나 직언을 하여 왕의 노여움을 사기도 하였고 임진왜란 때는 의병과 함께 나라를 위해 싸우기도 하였으며 금산전투에서 왜군과 싸우다 전사한 인물이다. 조선 현종 2년(1661) 지방 유림의 공의로 조헌을 주향하고 별좌 한일휴, 참봉 신지익, 찰방 송국헌, 의민공 연최적, 부사 지여해, 사우당 이동형, 도사 변상회, 병암 신영식, 범촌 박문고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해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철폐되었다가 광복 뒤 지방 유림이 관계 기관의 도움을 받아 1958년에 복원하였으며, 1960년에 중수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중앙의 신문과 양옆의 협문 등이 있다. 사우에는 조헌을 주벽으로 10인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3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병암리 215-2
계담서원
계담서원은 순흥 안 씨 선조들을 제향 하는 곳으로 괴산군 감물면 계담마을 중심에 위치해 있다. 1824년(순조 24)에 조선 중기의 문신 안명세 선생을 모시는 계담사로 마을 뒷산에 창건했다. 그 후 1865년(고종 2)에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91년에 순흥 안 씨 양도공파 종회 안동준 회장과 안병태 선생 등이 인근 지역의 유림과 전교에게 계담사 자리에 고려의 문신 문정공 안축을 주벽으로 조선 세종조 명신 안문숙공과 중종조 안한림공, 선조조 안사촌공, 선조조 안세마공의 5위 사당을 준공하고 앞 층계에 내삼문을 세우고 그 안에 묘우로 세덕사를 건립하여 계담서원을 복원하여 지금에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계담서원은 강서당(학습실)과 학구당(도서관)이 갖춰져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계담서원 내 홍살문을 지나면 좌측에 도서관으로 이용하는 학구당이 있다. 2만 5천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으며 인근 주민들이 언제나 대여 및 열람할 수 있다. 강의실로 쓰이는 강서당에서는 교양과 전통예절, 역사문화, 서예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지금까지 수많은 수강생과 졸업생을 배출해 낸 교육의 장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감물면 이담리

구계서원
청주 구계서원은 조선 후기 선현의 학덕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647년 지방 유림이 괴산군 청안면 석곡리에 선현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으며 이준경, 서사원, 박지화, 이득윤, 이당의 위패를 모셨다. 선현의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이곳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헐어서 치워졌다. 광복 후 1955년에 지방 유림이 뜻을 모아서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고 1982년에 낡고 헌 것을 다시 손대어 고쳤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으로 된 사우(祠宇), 5칸의 재실(齋室), 신문(神門), 동·서 협문(挾門), 기념비 등이 있다. 사우에는 중앙에 위치한 이준경의 위패를 중심으로 서사원, 박지화, 이득윤, 이당의 위패가 나란히 봉안되어 있으며, 재실은 춘추 제향 시 제관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매년 음력 3월 17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안뜸로47번길 28

국계서원
1701년(숙종 27) 내수읍 국동리 국동 마을에 박증영, 변경복, 이덕수, 이수언을 봉향하고 설립한 서원이다. 입구에 들어서 돌계단을 오르면 언덕 위에 담장을 두르고 있는 곳이 사당이다. 1871년(고종 8)에 철폐된 것을 1960년 지금의 자리에 다시 세웠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1960년에 중건하고, 1972년에 중수한 것으로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홑처마 팔작지붕 목조 기와집이다. 내부는 마루방에 쌍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았으며 ‘국계사’라는 편액을 걸었다. 마당 앞에는 ‘사현문’이라고 편액한 솟을 대문을 세우고 주위에 담장을 둘렀다. 사당 앞에는 ‘국계서원’이라고 편액한 강당이 있다. 마을 들녘 나지막한 언덕에 잘 정비되어 있으며 홍살문 대신 작은 울타리 대문이 찾는 이를 맞이하는 곳이다. 1960년에 다시 세운 곳이라 옛 흔적을 찾기는 어려우나 재정비한 한옥의 아름다움과 조상을 모시는 이곳 사람들의 마음이 어우러져있는 곳이다. 강당을 지나 돌계단을 오르면 제사를 지내는 사당이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비중리
금화서원
금화서원은 보은군 금적산 북쪽 기슭에 있는 서원이다. 1814년(순조14)에 최덕진이 선조들인 삼지(三地) 최운(崔澐)과 계당(溪堂) 최흥림(崔興霖)의 사묘 건립을 발의하고 지역유림 강재문 외 105인의 찬동을 받아 감사에게 건의하여 승인을 받아 1815년에 창건하여 5현의 위패를 봉안하고 제향과 후진 양성을 하여 오다가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 의하여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 1917년 다시 지방 유림들의 주선으로 복건하여 5현을 봉안하여 매년 음력 9월 초 정일에 년 1회 제향을 봉행하고 있으며, 제품(祭品)은 2변(籩) 2두(豆)이고, 건물은 전면 3칸, 측면 2칸 팔작지붕의 사우와 강당 그리고 5칸의 관리사가 있다.
충청북도 보은군 삼승면 선곡리

기암서원
청주의 기암서원은 조선 후기의 청백리 강백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699년(숙종 25)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강백년의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오창면 기암리에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으며, 1706년에 오숙을 추가 배향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84년 후손들에 의하여 현재의 위치에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기암서원 경내로 들어가기 전 학문이 뛰어나고 효성이 지극한 척토민 오정근의 효자각을 볼 수 있으며 효자각 내에는 ‘군신천재우 충효일생심’이라는 정조의 어필을 보관하고 있다. 기암서원 왼편에는 임동철이 글을 짓고 서예가 김동연이 쓴 조선시대 문신 경산 오익환 유허비도 볼 수 있다. 유허비는 선현의 자취가 있는 곳을 후세에 알리거나 이를 계기로 추모하기 위해 세운 비이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우, 정문, 재실 등이 있고, 정문 밖에 중건 기념비가 있다. 사우의 중앙에는 강백년을 주벽으로 봉안하고, 그 옆에 오숙을 배향하였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3월 7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유물로는 『창건록』 1권과 『원지』 1권 등이 있다. 고즈넉한 향토 유적이며 역사의 흔적을 알 수 있는 다양한 문화재들이 있는 숨은 명소이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갈산3길 15

덕천서원(청주)
1672년 (현종 13년)에 병조참의(戶曹參議)를 지낸 몽암(夢菴) 유희령(柳希齡, 1480~1552), 숙옹(塾翁) 유흥룡(柳興龍, 1577~1656), 묵재(黙齋) 우신언(禹愼言, 1482~1547), 유항(柳巷) 정응창(鄭應昌, 1547~1622)의 위폐를 봉안하기 위하여 세운 진주유씨(晉州柳氏) 집안의 사당이다. 1699년(숙종 25년)부터 향사하다가 1868년(고종 5년) 서원철폐령(書院撤廢令)으로 철폐되었다. 지금의 사당은 1971년에 중건하고 1987년에 보수한 건물로 정면 3칸, 측면 2칸 겹처마 팔작지붕의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칸 마루방에 중앙에 쌍문을 좌우에 쪽문을 달고 앞퇴를 두었으며, ‘덕천서원(德川書院)’이라는 현판을 걸었고, 마당 앞에 솟을대문을 세우고 자연석과 흙으로 담장을 쌓았으며 오른쪽에는 덕천사비(德川祠碑)와 왼쪽에는 거북 대좌 위에 덕천서원묘정비(德川書院廟庭碑)라고 쓰여 있는 비신(碑身)이 있다. 2015년 4월 17일 청주시의 향토유적 제27호로 지정되었다. (출처 : 청주시 문화관광)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노동리

묵정서원
청주 묵정서원은 조선 후기의 서원으로 1695년(숙종 21) 지방 유림의 공의로 신식(申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에 ‘쌍천서원’으로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였으며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철폐되었다가 1942년 유림과 후손이 협력하여 현재의 위치에 복원하고 명칭을 ‘묵정서원’으로 개칭하였으며, 신덕린, 신포시, 신장, 신용, 신집을 추가 배향하였다. 묵정사로도 불린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와 5칸의 재실, 중앙의 신문과 양쪽 협문으로 된 정문 등이 있다. 사우에는 신덕린을 주벽으로 하여 6명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재실은 제향 때 제관들의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매년 3월 16일 향사를 지내고 있으며, 유물로는 신식이 명신들의 찬시를 모은 찬졸재 시집 4책 등이 있다. 바로 옆으로는 조선 전기 문신인 신숙주의 영정을 모신 묵정영당(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길 71-29)이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

백록서원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에 있는 서원으로 조선 후기 권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신 곳이다. 숙종 36년(1710)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창건하였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에 허물고 치워졌다. 광복 후 유림과 후손들이 협력하여 복원하였으며 1965년에 보수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목조 기와집으로 된 사우와 정문, 중앙의 신문과 좌우 협문으로 된 삼문 등이 있다. 사우에는 권상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매년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환희3길 38-20

송천서원
송천 서원은 목련산에 위치한 서원으로 조선 후기 김사렴 등 7인의 선현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한 서원이다. 1695년(숙종 21)에 옥산면 환희리 송천마을에 김사렴, 최유경, 이정간, 박광우, 이지충, 조강, 이대건을 배향하고 후진을 교육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1723년(경종 3)에 이제신을 추향 하고, 영조대에 최석정과 이인혁을 추향 하고, 1798년(정조 22)에 이효석, 남구만, 박문수, 이종성 등을 추가 배향하였다. 서원철폐령으로 1871년(고종 8)에 철폐되었는데, 1975년에 지방 유림의 복원계획에 의해 현재 위치에 복원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5칸의 사우, 중앙의 모현문, 양 옆의 협문으로 된 삼문 등이 있다. 매년 음력 3월 20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오창양지길 22-13

문효영당
청주시 우록리에 있는 문효 영당은 1708년(숙종 34)에 문효공 영의정 경재 하연과 정교 부인 성산 이 씨 부부 영정을 봉안한 진주 하 씨 집안의 사당으로 일명 타진당이라 한다. 하연은 조선 전기의 학자로 정몽주의 가르침을 받았다. 21세에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여러 벼슬을 거쳐 영의정까지 올랐다. 이곳에 봉안된 영정은 1467년(세종 13) 하우명이 그린 하연의 초상화와 성산 이 씨의 초상화를 1641년(인조 19)에 본떠서 그린 것을 경상도 합천의 타진당에서 영조 25년(1749)에 다시 본떠 그려 고친 것이다. 하연은 관복을 입고 부인은 대례복 차림을 한 모습을 그렸으며 보기 드물게 부인과 나란히 모셔져 있는 게 특징이다. 매년 음력 2월과 8월 중정일에 제사를 드리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영당은 1943년에 중건하고 1978년에 보수한 것으로 정면 2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맞배지붕 목조기와집이다. 내부는 통간 마루방에 2개의 쌍문을 달고 앞마루를 놓았다. 1989년에 솟을대문을 세우고 담장을 둘렀다.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현도면 우록4길 70-5

운곡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운곡서원은 청주시 상당구 운동동에 있으며 마을 가운데 자리하고 있다. 이곳은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된 전라북도 남원의 어은사에서 모시던 월성군 이청과 광주의 두암 서원에 배향된 이감, 이흘, 이필경 등 경주 이 씨 인물들을 제향 하기 위하여 1944년에 경주 이 씨 국당공파 문중과 청주의 유림들이 세운 사우이다. 1976년에 이종문을 추가로 배향하여 함께 제향하고 있다. 서원은 산록 하단부 경사면에 자리 잡고 있어 삼문과 사당을 축대로 쌓아 축조하였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겹처마 맞배지붕으로 풍판을 달았다. 장대석 기단 위에 평면을 내진과 외진으로 구분하였으며 내진에 3개의 분합문을 달았다. 단청은 검소한 느낌을 주는 긋기단청으로 하였다. 사당 입구에는 삼문을 세웠고, 삼문 밖에는 재실이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목련로214번길 37-3

죽계서원(청주)
죽계 서원은 738년(영조 14) 지방 유림의 공의로 안평대군, 화의군, 한남군, 영풍군 등 세종대왕의 아들들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이곳 역시 대부분의 서원처럼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다가 광복 후 1960년 지방 유림의 노력으로 다시 건립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중앙의 신문과 양옆 협문으로 된 정문 등이 있다. 사우에는 안평대군을 주벽으로 화의군, 한남군, 영풍군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3월 말 정과 9월 말 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용계4길 8-12

청주 체화당사 및 사적비
청주 체화당사 및 사적비는 청주시 남일면에 자리하고 있으며 조선 선조 때의 사대부인 교하 노씨 4형제를 배향하는 사당이다. 송헌 계원, 국헌 준원, 매헌 종원, 죽헌 일원은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기로 이름이 난 사람들로 당시 영상 류성룡이 영남에 갔다가 상경하는 도중에 이에 대해 듣고 가산리로 이들 형제를 찾아가 실상을 보고는 감탄하여 며칠 머물렀다 한다. 귀임 후 선조가 늦은 사유를 묻자 보고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아뢰니, 선조가 친히 쓴 ‘체화당’이라는 편액을 하사하고 지방관에게 명하여 쌀을 포상하였다. 임진왜란으로 편액과 당사가 불탔으나, 1701년에 후손들이 남일면 가산리에 사당을 세우고 '체화당사' 라고 명명하였다. 그러나 고종 때 철폐되어, 그 후 1967년에 후손들이 현 위치에 사당을 재건하고 사적비도 옮겨 다시 건립하였다. 사당 앞에는 이우겸이 짓고 성영이 써서 1719년에 세운 체화당 사적비가 있다. 청주 신송서원과 마주보고 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신송리
충용사
충용사는 의당 박세화를 봉안한 사당이다. 박세화는 한일한방의 비보에 접하고 비분을 참지 못하여 자결한 순국열사이다. 1962년 3월 1일 대한민국 건국공로훈장 단장이 추서 되었고, 충용사에는 회당 윤응선, 직당 신현국, 명와 정규해를 추배하고 있다. 1964년 당시의 음성군수 유용기가 지방유림들의 협조를 얻어 사우를 건립하였다. 사우는 정면 4간,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으로 충용사라 현액하였고, 솟을삼문이 있는데 광제문이라 하였으며 토석혼축의 담장이 설치되어 있다. 충용사 담장 옆에는 의당 박세화 순도비가 세워져 있다.
충청북도 음성군 음성읍 용광로114번길 113
태교사
음성 태교 사는 조선 영조 20년(1744)에 주응동이 안성에 거주하는 김문웅으로부터 주자의 영정을 기증받아 주 씨 문중에 문곡영당이라 칭하는 사당을 창건하고 서원을 개원하였으나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원되었다가 1893년 재건되어 사당 명칭도 태교사라 하였다. 태교사의 건물의 구조를 보면 사당, 강당인 재실, 삼문으로 되어 있는데 외부와의 경계를 구획한 홍살문을 지나서 전면에 강당이 재실이 있고 그 뒤에 따로 담장을 돌리고 솟을삼문 형식의 삼문을 설치하였으며 삼문을 지나 사당이 배치되어 있는데 전체적으로 강당이 앞이 놓이고 사당이 뒤에 놓이는 전당 후묘 식의 배치법을 따르고 있다. 태교사 건물의 평면 구성을 보면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팔작 기와지붕의 건물로 내부는 통간으로 하여 장마루를 깔았고 사당 안에는 주자의 영정이 봉안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홑처마 팔작 기와지붕으로 되어 있으며 정면 4칸 중 양 끝 칸은 온돌방으로 구획하고 중앙 2칸은 대청으로 하고 있다. 삼문은 맞배지붕으로 된 솟을삼문의 형식이다.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원중로399번길 316
하강서원
하강 서원은 조선 후기 문신 홍이상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1786년 창건하였다.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조선시대의 사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홍이상은 식년문과에 장원하여 예조와 호조 좌랑과 직제학, 이조참의를 역임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서경까지 왕을 호종하였으며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와 대사성에 올랐다. 이후 성혼을 변호하다 파천 되기도 하였으며 광해군 때는 부제학, 개성유수 등을 지냈다.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되었다가, 1907년 서원터에 하강 단소를 만들고 제사를 지내왔으며, 1974년 복원하였다. 하강 서원은 가공된 장대석으로 축조한 기단 위에 세운 겹처마 팔작지붕의 5량 집이다. 위패를 봉안한 제각은 솟을삼문에 팔작지붕으로 앞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를 보인다. 풍산 홍씨 문중에서 건립하여 봉사하고 있고, 홍이상 1인의 위패만을 모시고 있기에 사우라 할 수 있으며, 충주시의 대표적 문화 유적으로서 가치가 있다. 내부는 전화 문의를 하거나 행사 시에 관람할 수 있다.
충청북도 충주시 금가면 김생로 1455-54
화암서원(괴산)
화암서원은 1622년(광해군 14) 지방유림에 의해 이황·이문건·노수신·김제갑의 위패를 모시고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였다. 1738년(영조 14)에 허후·전유형·박세무·이신의를 추가 배향하였으며, 그 뒤 박지겸·허조·유근을 추가 배향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책임을 다해왔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56년 박동찬을 중심으로 한 지방유림이 복원하여 2004년 현재 위치로 이전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사당인 모현사, 강학공간인 강당, 내삼문인 진성문, 외삼문인 신세지문, 재실 등이 있다. 사당에는 이황을 주벽으로 10현의 위패가 좌우에 배향되어 있으며, 정문 밖에 있는 재실은 유생들의 학문 토론장소와 향사를 지내는 제관들의 숙소로 사용되고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9월 중정에 향사를 지낸다.
충청북도 괴산군 괴산읍 괴강로 313
화양서원
화양서원은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靑川面) 화양리에 있는 서원이다. 이곳은 우암 송시열이 은거하였던 곳에 세워진 서원으로써 조선시대 학자들의 결집장소였으며, 만동묘는 임진왜란 때 조선에 원군을 보내준 중국 명나라 황제 신종(神宗), 의종(毅宗)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1999년 국가지정문화재(사적) 지정 후 2002~2004년까지 유지가 남아있는 건물 8동을 복원 정비하였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리

간곡서원
간곡서원은 영조 16년(1740)에 건립되어 고종 5년(1868)에 훼철되었다가 1971년에 복구되었다. 이곳은 노곡 유동수(1579∼1654)를 배향하고 있다. 유동수는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인조 24년(1646)에 노성현감으로 재직 시 토호가 일으킨 반란을 진압한 공을 세운 적이 있다. 간곡서원지, 노곡유적, 모현계안, 복설록, 심원록 등의 서적이 보관되어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283번길 31-4
검계서원
검계서원은 고려말 4대 왕을 보필한 충신 문효공 전신이 낙향하여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서원 안에는 양현사와 천안 전 씨 시조 단소 및 재실, 양현사의 뒤쪽에는 천안 전 씨의 시조묘가 있고, 그 앞으로 좌우에 전신의 부친인 전승과 전신의 단소가 있으며 그 옆으로 설단비가 서 있다. 단소 아래는 전 씨 시조 사당인 충훈사와 양현사가 나란히 자리 잡고 있으며, 각각의 사우 앞에는 삼문이 설치되어 있다. 양현 사는 고려 후기의 문신인 문효공 전신(1276~1339)과 조선 중기의 문인이자 천안 전 씨 전득 중의 사위인 이협(1583~1665)의 위패를 모시는 사당이다. 매년 음력으로 3월 10일에는 지역 유림들과 후손들이 모여 선현들의 얼을 선양하고 전통문화의 계승발전을 위한 제향을 올리고 있다. 또한 천안시의 보호수인 300년 된 모과나무가 있으며 주변에는 영산홍 꽃이 만발하며 아름다운 경치를 자랑한다.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풍세면 금호1길 1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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