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200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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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천서원(남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남원시 주생면 영천리에 있는 유천서원은 1830년(순조 30) 지방 유림들에 의해 창건되었다. 이곳은 방사량을 중심으로 방귀온, 안탁, 방응현, 안창국 등 지역 유림의 존경을 받는 5현을 봉안하여 오현사라고도 부른다. 1868년(고종 5)에는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되었고, 지금은 그 자리에 후손들이 ‘오현서원유허비’를 세워 조상들의 유덕을 기리고 있는데, 유허비 경내에는 유천서원의 담장, 강당, 고직사(사당) 등의 흔적만 남아있다. 1984년에는 가치를 인정받아 전라북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주변에는 사계정사, 구천사, 요천생태습지공원, 대곡리암각화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주생면 유매길 37
유천서원(부안)
유천서원은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 영전리에 있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이다. 1711년(숙종 37)에 건립되어 허진동을 배향하였고, 이듬해에 김택삼을 모셨다. 1768년(영조 44)에는 김횡과 김명 형제를 추배 하였다. 1865년(고종 2) 전국적인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유허비와 터만 남아 있던 것을 1999년 10월에 후손들이 복원하였다. 외삼문(外三門)과 사당 건물 1동으로 복원되어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외삼문 중앙에 ‘유천서원’ 편액이 걸려 있다. 주차장에서 계단을 오르면 외삼문이 나오는데, 외삼문 앞 동편에 2000년에 세운 유천서원 복설 기적비가 서 있고, 기적비 동편 앞으로 옛 서원 건물 주춧돌 및 석재 등이 남아 있다. 관리자에 의하면 본래 서원 부지는 남-북으로는 마을 회관에서 서원으로 올라가는 길로 들어서서 왼편으로 난 길 위쪽부터 복원된 서원 자리까지이며, 동-서로는 서원으로 오르는 길 좌우, 지금 집들이 들어선 영역을 포함해 복원된 서원의 동편 밭까지였다고 한다. 주차장 자리에 본래 관리사가 있었고, 지금 주춧돌이 있는 부근이 본래 서원 자리였다. 서원 뒤로는 대나무들이 울창하였다. 새로 복원하면서 관리사를 지금의 자리[서원 서편]로 옮기고 그 자리에 주차장을 만들었으며, 서원은 뒤쪽으로 올려 지었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보안면 영전길 89-38
율산서원(김제)
김제시에 위치한 율산서원은 구한말 호남의 유학자 금재 최병식 선생의 학문과 덕망을 숭모하고자 1984년에 건립된 서원이다. 1997년 부지를 확장하여 중건하고 단청 및 조경공사를 했다. 매년 음력 10월에는 지역 유림 인사와 강학 회원이 참석하여 제사를 지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김제시 명덕1길 240-8 (명덕동)
정산사
정산사는 창녕조씨의 사우로, 조선 전기의 문신인 조서와 조선 후기의 학자인 조의기, 효자 조언징을 기리는 조선후기 사당이다. 월산마을에서 검암마을로 들어가는 마을 앞 동쪽 길가에 자리 잡고 있다. 조언징은 어려서부터 지성으로 부모에게 효도하여 당대의 사표가 되었다. 1797년(정조 21)에 창건하여 유창, 유한량, 조서를 향사하였으며, 1868년(고종 5)에 철폐되었다가 1900년(고종 37)에 다시 단을 세웠다. 1976년에 중건하면서 유창과 유한량은 조산사를 세워 따로 배향하였고, 조의기와 조언징을 추배 하였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이며, 강당, 명덕재, 내삼문, 장서고, 수직사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향사일은 음력 9월 5일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월암안길 8
지선당
지선당은 반남 박씨 문중의 재각이고 서당이다. 조선 중기 박지영의 뜻을 따라 그의 후손들이 세웠다. 박지영의 조상들은 원래 금산에 살았으나, 임진왜란(1592) 때 난을 피하여 내금 마을에 들어와 살면서 후손들의 교육에 힘쓰면서부터 이 지방에 후손들이 거주하게 되었다. 지선당은 입동향조(入銅鄕祖)인 지영의 뜻을 기리고, 문중의 자제들과 이 지방의 후학들을 교육시키기 위해 지영의 후손들이 창건하였으나, 그 창건 연대는 확실히 알 수 없다. 다만 당내에 걸려있는 박상탁(朴相卓)의 지선당기가 숭정3임진(崇禎三壬辰)에 쓰였던 것으로 보아 1772년(영조 48)에 건립된 것이 아닌가 추정된다. 지선당에서 1816(순조 16) 문과에 급제한 후 사간, 동부승지, 우.좌승지를 거쳐 공조참판에 이른 정재영(丁載榮), 그리고 1840년(현종 6) 진사시에 합격한 박제대(朴齊大)를 비롯하여 5 진사가 배출되었다고 하나 나머지 4진사의 인명은 확인할 수 없다. 정면 4칸, 측면 2칸의 기와로된 팔작지붕 건물이며, 당내에는 지선당기(朴相卓 記) 첨종서(僉宗序/朴東后記) 방명록 등의 편액이 걸려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동향면 내금2길 70
창주서원
창주서원은 선조 12년(1579)에 남원시 금지면에 고룡서원으로 지었으나 선조 33년(1600) 나라에서 ‘창주’라는 현판을 내려 창주서원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고종 때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쇄되었으나, 1959년 지금 있는 자리에 복원하였다. 현재 서원에는 사당인 명덕사와 내삼문, 강당, 고직사 등의 건물이 있다. 명덕사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 자 모양과 비슷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안에는 노진의 위패를 모시고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 20일에 제사를 지낸다. 강당은 옆면에서 볼 때 지붕선이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춘향로 64
천곡서원
완주군 화산면 종리 천곡마을에 위치하고 있는 천곡서원은 1941년에 세워진 것으로, 조선 중기 문인 거창현감을 지낸 숙계 임윤성을 배향하는 곳이다. 본래 사당을 지어 조선 중기의 문신 구영과 임윤성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었으나 사당이 소실되어 모두 백현서원으로 옮겼다. 1941년 서원을 다시 지었으며, 임윤성의 후손들이 뜻을 모아 임윤성의 위패를 다시 옮겨와 봉안하였다. 경내에는 강당과 사당, 기념비 등이 있는데, 사당은 전면 3칸, 측면 1칸의 규모이고 강당은 전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이다. 진주임씨 문중의 임윤성 후손들과 지역 유림들은 해마다 음력 2월 15일에 제사를 지낸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화산면 화산남로 52-32
청계서원(부안)
부안군 상서면 감교리에 있는 청계서원은 조선 후기에 건립된 서원이다. 1707년(숙종 33)에 창건하였으나 1865년(고종 2)에 흥선 대원군의 전국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어 ‘청계사지(淸溪祠址)’라는 유적비만 남아 있었는데, 2009년에 그 후손들이 복원하였다. 청계서원은 도봉 송세정과 석호 이승간, 충렬공 나덕헌 등 세 명을 배향한 곳이다. 외삼문(外三門)과 사당으로 구성되어 있다. ‘청계서원’ 편액이 걸려 있는 외삼문을 지나면 ‘청계사’라는 편액이 걸린 사우 한 채가 나타난다. 사우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도봉 송세정은 1470년(성종 1) 부안 옹중 태생으로 1497년(연산 3)에 사마시에 합격하였다. 효성이 지극해 1543년(중종 38)에 정려가 내려졌으며, 부안읍 연곡리 정문에 ‘백원문(百源門)’이라는 효자문이 세워졌다. 석호 이승간은 1483년(성종 14)에 부안읍 석제에서 태어났는데, 효자로 소문나 정려가 내려졌으며 「삼강록(三綱錄)」에 수록되었다. 유일로 천거되어 선공감 직장에 제수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충렬공 나덕헌은 나주 출신으로 진사 나사침의 아들이다. 1602년(선조 35) 무과에 급제하였고, 1609년(광해 1)에 부안 현감으로 부임하여 선정을 베풀어 청계서원에 배향되었다. 이후 길주 목사, 삼도 통제사 등을 역임하였다. 길주 목사로 있을 때 이괄의 난을 평정하여 진무원종공신 1등에 봉해졌다.
전북특별자치도 부안군 상서면 구청등길 49
청하서원
조선 순조 때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수홍·정곤·박동현·박동립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구이면 학천리에 학천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현 소재지에 청하서원을 창건하고 박동립과 박동현의 위패를 옮겨와 봉안함과 동시에 유조를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 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나 이듬해 유림에 의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향사를 지내왔다. 현재는 청하서원의 사우 안에는 김장생·박동립·유조·박동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는데, 매월 3월 초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전주시 완산구 중인1길 272
치동서원
치동서원은 군산시 옥구읍 소재지, 옥구저수지 인근에 위치한 서원이다. 이 서원은 1926년에 세워진 치동묘가 그 모태로, 1983년에 지금의 위치로 옮겨오면서 서원으로 다시 건립되었다. 이곳에는 중국 제나라 왕족으로 나라가 망하자 신하 500여 명을 데리고 서해를 건너 지금의 군산 어청도에 와서 절의를 지키기 위해 끝내 자결했다는 설이 있는 전횡(기원전 250~202)과 고려 말기 문장과 절의로 유명했던 담양 전씨의 중시조인 전야은, 전뢰은, 전경은이 봉안되어 있다. 그리하여 매해 봄과 가을마다 이들에게 제사를 올리고 있다. 공간 구성은 강당, 동재, 서재의 강학 공간과 삼양사, 치동묘의 제향 공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강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로 낮은 시멘트 기단 위에 팔작지붕을 올린 건물이다. 삼양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 건물로 시멘트 기단 위에 맞배지붕을 올린 건물이다.
전북특별자치도 군산시 옥구읍 오곡길 29-13

풍계서원
매계서원은 황희, 오상덕, 황위 등 청렴과 절개, 학문으로 이름을 남긴 인물들을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다. 황희는 청백리로 널리 알려진 인물로, 개경 출신이지만 선조들이 남원 출신이며 본인도 세자 책봉 문제로 남원에 유배되어 광통루를 짓고 은거하였다. 그의 자형 오상덕은 고려 말 충신으로, 이성계의 즉위를 반대하고 두문동에 은둔하였다. 황위는 임진왜란 당시 순국한 황진의 후손으로 과거에 급제해 관직에 올랐으며, 시문과 교육에 열정적이었다. 매계서원은 이처럼 역사적 인물들의 삶과 정신을 기리고 있는 남원의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대강면 대강산촌길 35-18
학정서원
학정서원은 1656년(효종 7) 지금의 오수면 주천리에 창건되었다. 그 뒤 1840(헌종 6)년 지금의 청웅면 구고리 원동에 이건 하였으며 ‘하정서원’이라는 사액을 예조에 청원하였으나 같은 해 김천일의 원호(院號)가 다른 곳에 사액되어 중복할 수 없으므로 사액서원의 예로 향사토록 하고 관제물물목(官祭物物目)을 봉하여 현감 제주(縣監祭主)로 향사하라는 하교가 내려졌다. 1859년(철종 10) 절요(節要)를 마련 매년 3월 3일 향사하게 되었다. 1868년(고종 5)에 이르러 대원군의 전국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그 뒤 단(壇)을 세워 1년에 한 번 제사를 모신다. 이 서원에는 김천일(金千鎰)을 주벽으로 박번(朴蕃), 박훈(朴薰), 홍붕(洪鵬), 이흥산(李興算), 조평(趙平), 김원근(金元根)을 배향하였다. 1995년 지방지치단체의 지원으로 군비보조와 유림 및 후손들에 의하여 일차적으로 사우 3칸, 내삼문 3칸이 복원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청웅면 구고8길 35-3

학천서원
학천서원은 완주군 구이면 원기리에 있는 서원이다. 고려 말 조선 초 문신 정수홍을 주벽으로, 조선 전기 문신 정곤, 병자호란 때 창의한 정달서, 조선 전기 문신 정임, 조선 후기 효자 정사협을 배향하고 있다. 학천서원은 본래 이 지역에서 대대로 살아온 동래 정씨의 가묘로 건립되었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내려지자 모두 헐어냈다가 1896년 복원하였으며 1990년에는 강당을 재증축하였다. 사당인 학천사는 전면 세 칸, 측면 한 칸 규모이고 강당은 전면 네 칸, 측면 두 칸으로 되어 있다. 외삼문 옆에는 학천서원묘정비가 세워져 있다. 학천서원 인근에는 전북도립미술관, 모악산관광단지, 송학사, 구이저수지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구이면 상학길 50-8
현동사
익산시 삼기면 기산리 현동마을 입구에 있는 사당이다. 건립 연대는 정확하지 않다. 연안이씨 문중의 가묘로, 중시조 이숭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건립 당시에는 부조묘(나라에 큰 공을 세운 사람의 위패를 모시기 위하여 임금의 명으로 세운 묘)와 어서각(임금이 직접 쓴 글을 보관하기 위하여 세운 집), 영당까지 있었으나 현재 부조묘는 정면 3칸의 사당과 정문 1칸이 남아 있고, 영당은 그 터만 남아 있다. 어서각의 경우 전국적으로 남아 있는 곳이 많지 않은데, 전라북도에서는 장수군 번안면 어서각과 현동사 내에 있는 어서각 두 곳뿐이다. ‘연안이씨 어서각’이라고도 불리는 이 어서각에는 조선 초기 문신이 충간공 이숭원이 임금에게 하사 받은 영정과 어서, 교지, 이숭원 백패와 홍패, 공신록권, 공신회맹록 등 역사적 유물을 보관해 왔던 곳이다. 이 중 교지 18매와 성종이 내린 공신록권 1축, 공신회맹록 1권이 보물로 지정되어 충간공보물박물관으로 이전하였으며, 어서각은 정면 3칸으로 재건하였다. 충간공보물박물관은 현동사 바로 옆에 있어 연계하여 둘러볼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삼기면 현동1길 3
현주서원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현주서원은 임실군 지사면 현계리에 있는 서원이다. 1704년(숙종 30)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능간과 정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뒤 1707년에 김복흥, 변유, 정견을 추가 배향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듬해 유림에 의하여 제단을 마련하고 향사를 지내오다가 광복 이후에 복원되었다. 경내의 건물로는 3칸의 사우, 3칸의 강당, 내신문 등이 있다. 이 서원에서는 매년 2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임실군 지사면 계산4길 89
호산서원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호산서원은 삼례읍 소재지 남쪽 만경강변에 위치한 서원이다. 이 서원은 언제 건립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의해 철거되었다. 그 후 일제강점기에 재건되었으나 6.25 전쟁 때 일부가 불에 타 1958년에 다시 세워 지금에 이르고 이고 있다. 현재 경내에는 산문, 사당, 강당 등이 있으며, 해마다 음력 2월 말에 제사를 지낸다. 이곳은 만경강과 함께 비비정, 만경강철교, 비비정 예술열차(옛 만경강철교), 호남평야가 보이는 경관이 아름답다. 그리고 전라선 철도 삼례역과 멀지 않아 대중교통도 편리하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삼례읍 비비정길 73-16
호암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호암서원은 조선 후기의 서원으로 조선 태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서를 주벽으로 하여 심구령, 안성, 소연, 소산복, 이당 등 6현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이서는 본관은 홍성, 호는 송강이다. 고려 충숙왕 때인 1332년에 태어나 1357년(공민왕 6) 문과에 급제하였다. 조선이 건국한 뒤인 1394년(태조 3)에는 대사헌이 되었으며, 태종이 즉위하자 시랑 찬성사에 이어 우의정으로 부원군에 진봉 되었다. 고명사로 명을 다녀온 후 영의정까지 올랐다. 시호는 문간공이다. 경내에는 사당을 비롯해 강당, 전사청, 외삼문, 내삼문 등으로 이뤄져 있으며, 매년 3월 초엿샛날에 이곳의 성현들을 위한 향사를 지내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덕과면 덕과도촌길 67-8

현곡정사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공자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현곡정사는 고창시가지 서부의 고창IC 인근에 위치한 고건물이자 서원이다. 현곡정사는 현곡 유영선(1893~1961)이 그의 스승 간재 전우(1841~1922)가 1년 정도 강학 활동을 하던 자리에서 다시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924년에 건립하였다. 이 건물은 장대석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방주를 세워 지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옆면에서 볼 때 팔자형 팔작지붕이다. 평면은 마루방, 방, 대청, 건넌방 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건넌방 뒤에는 작은 골방이 있다. 현곡정사는 이러한 가치를 인정받아 1974년에 전북특별자치도의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그리고 현곡정사를 기반으로 1955년에는 이곳에 전우와 유영선을 모시는 서원이 건립되었는데, 이것이 화강서원이다. 그리고 그다음 해 용암사를 세워 현재에 이르고 있다. 주변에는 고창 고인돌 유적 및 공원, 고창읍성, 석탄정 등이 있어 연계하여 관광할 수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고창읍 주곡1길 68-34

화동서원
화동서원은 광산김씨의 사우로 원래 1796년(정조 20) 시조 신라왕자 흥광의 유허인 전라남도 담양군 대전면 평장리(현 광주광역시 평장동)에 종사당이라 이름하고 김양감을 봉안 향사하다가 조령으로 훼철되었다. 김승길, 김오행은 장성 경현사에 배향괴었다가 일제의 강압으로 사우가 훼철되었다가 1957년에 현 위치에 사우를 창건하고 김양감, 김인우, 김승길, 김오행을 향사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대산면 교동길 24

화산서원(완주)
화산서원은 1624년(인조 2년) 전주시 중화산동에 창건되었고, 1662년(현종 3년)에 사액되어 송시열이 묘정비를 찬하고 송준길이 글씨를 썼다. 1869년(고종 6년)에 훼철되었다가 1988년에 전라북도 유림들과 옥천 경암공파 자손들의 협조로 완주군 소양면 신원리에 중건이 추진되었다. 사우는 전면 3칸, 측면 1칸이며, 강당은 전면 4칸, 측면 3칸의 구조를 갖추고 있다. 전주시 중화산동에 위치한 묘정비는 전북 문화유산 제4호로 지정되어 있다. 화산서원에서는 예조참판과 의정부 우좌찬성 등을 역임한 인물과, 전라감사로 좌천된 뒤에도 학문 진흥에 힘쓴 송인수를 제향하고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완주군 소양면 소양신원길 186
화산서원(익산)
화산서원은 전라북도 익산시 금마면 용순리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사계(沙溪) 김장생(金長生),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 월주(月州) 소두산(蘇斗山), 인산(仁山) 소휘면(蘇輝冕), 죽유(竹牖) 황자후(黃自厚)를 배향한 익산의 대표적인 서원이다. 1654년(효종 5) 창건되고 1662년(현종 3) 사액되었으며 1868년(고종 5) 훼철되었다. 1937년 강당과 원직사가 세워지고, 1966년 사당이 건립되고 담장을 쌓았으며, 2002년 대대적으로 중건되었다. 조선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과 병자호란 이후 대명 의리를 주장하며 서인을 이끌었던 송시열을 모시는 서원으로, 원생이 30명이나 되는 명망 있는 서원이었다. ‘좌창평 우익산’이라고 할 정도로 양반 고을인 익산에서 유림들의 대표적인 집합체이기도 하였다. 사당, 강당, 원직사 등이 구비되어 있었으며. 위토와 노비도 상당하였으나 1868년 서원이 훼철되면서 사우와 강당이 헐리고 서원답은 익산향교에 귀속되었다. 흥선대원군 실권 이후 설단하여 향사를 지내다가 1937년 강당과 원직사(院直舍)가 세워지고 약간의 위토가 마련되었다. 1966년 팔봉면의 유생 황상규(黃祥圭) 등의 노력으로 정면 3칸의 사당이 건립되고 사당 주위에 담장을 둘렀다. 이때 익산 출신의 소두산, 소휘면, 황자후가 추가로 배향되었다. 화산서원은 강당과 사당이 잘 보존되어 있다. 외삼문과 내삼문, 팔작지붕 형태의 강당 정면 4칸과 측면 2칸, 맞배지붕 형태의 사당 정면 3칸과 측면 3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경내에는 화산서원비(華山書院碑), 화산서원 중건비(華山書院重建碑), 화산서원 계생비(華山書院繫牲碑), 군수황종석 영세불망비(郡守黃鍾奭永世不忘碑)가 세워져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금마면 용순신기길 44-76
화산서원(장수)
화산서원은 절의와 우국충절을 보인 선현들을 선양하고자 전국 각처 유림의 호응을 얻어 1961년 창건되었다. 이 사우는 화산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300m정도 떨어진 백화산 능선의 서쪽 사면에 있다. 진덕문을 들어서면 정면 4칸, 측면 2칸 맞배지붕으로 된 화산사가 있다. 화산서원에는 파은 박수기, 문간공 눌재 박상, 충암 김정, 안재 박지견, 문충공 사암 박순, 육류정 박지효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사당 뒤에는 박지견의 묘가 있다.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계남면 화산길 24-21
화산서원(진안)
진안군에 위치한 화산서원은 방촌 황희의 영정을 안치하고, 그와 그의 자손인 황보신, 황발 등을 배향하고 있는 장수 황씨의 사당이자 사원이다. 황희는 고려말, 조선초의 문신으로 명재상으로 알려진 사람이다. 화산서원은 서원의 강당에 있는 현판들의 기록에 의하면, 1922년에 서원으로 승격되고 1970(경술)년 2월에 중수되었다. 서원은 평평한 대지 위에 긴 네모꼴의 담으로 둘러 싸여 있는데, 담 안은 남북의 두 구역으로 나뉘어 뒷부분 뒷담 쪽 중앙에 남향의 사당이 있고, 그 앞 왼쪽 가, 앞부분 동쪽 가에 서향의 강당이 있으며, 양쪽은 내삼문으로 연결된다. 사당은 전면 3칸, 측면 2칸 맞배지붕의 와가로서 정면 중앙에 화산서원의 현판이 붙어 있고, 방에는 황희의 영정과 위패, 황보신과 황징의 위패 등이 모셔져 있는데, 황희의 영정은 지방 유형 문화재 129호로 지정되었다.
전북특별자치도 진안군 안천면 백삼로 30-1
환봉서원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제사를 지내고 지역민을 교육하기 위하여 설립한 조선시대 지방의 사립 교육기관이다. 환봉서원은 임진왜란, 정유왜란을 진압하기 위해 명나라의 구원군 철기 2만을 거느리고 원정하여 혁혁한 전공을 세운 총독장 천만리를 주향하고, 함께 원정 온 상과 희의 두 아들을 아울러 배향하고 있다. 천만리 장군은 조선 선조 때 우리나라에 귀화한 중국인으로, 아호는 사암이고 일찍이 무예에 능하여 특히 활쏘기의 명수였다. 오늘날 천씨들은 이곳을 본관으로 삼는다.
전북특별자치도 남원시 금지면 금지순환길 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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