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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관광지 205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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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정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도정서원

도정서원은 1640년에 건립하였으며, 조선 중기의 문신 정탁(1526~1605)과 그의 셋째 아들 정윤목(1571~1629)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사당 ‘향현사’로부터 비롯되었다. 1697년(숙종 23)에 지역 사림과 후손들의 정성을 모아 강당채를 건립하여 도정서원으로 승격하였다. 1866년(고종 3)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일부분이 훼철되었으나, 1997년 동재, 서재, 전사청, 누각을 새로 지어 복원하였다. 서원 내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이며 강당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지붕의 건물로 전면에 난간을 둘러 누각 형식으로 지었다. 서원 앞에 있는 읍호정은 1601(선조 34)년에 건립한 정자로 가파른 경사면을 깎아 내성천 바로 앞에 세워져 있다. 현재 이곳은 약포선생 종중이 소유 관리하고 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호명면 강변로 417

동락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동락서원

동락서원은 조선 인조 때의 학자 여헌 장현광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위패를 모신 서원으로 낙동강변 언덕 위에 위치해 있다. 장현광은 인조 때 의정부 우참찬을 역임한 문관으로 학문과 후학 양성에 힘썼으며, 1636년 병자호란 때는 의병을 일으키고 군량미를 모아 전장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동락서원이란 동방의 이락이라는 뜻으로 이락이 주자학의 상징인 것처럼, 동락서원이 조선 성리학의 근원이자 상징이 되기를 바라는 뜻이 담겨 있다. 선생이 서거하자 1655년 장현광 선생의 제자들이 선생이 학문을 가르쳤던 부지암정사에 묘우를 지어 서원 체제를 갖추고 위판을 봉안해 부지암서원이라 개칭했다. 이후 1676년에 나라에서 동락서원의 현판을 받고 사액서원이 되었다. 1871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거되었다가, 1932년 묘우를 복원하고 1971년 서원 건물 전체를 다시 세워 지금의 모습을 갖췄다. 경내의 건물로는 묘우인 경덕묘, 강당인 중정당, 동재 윤회재, 서재 근집재, 외삼문인 준도문이 있다. 이중 중정당은 중앙에 마루를 두고 양쪽에 방을 두었는데 마루를 회합장소로 썼다고 한다. 준도문 바로 앞에 400여 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는데 장현광 선생이 직접 심은 나무로 알려져 있으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다.

경상북도 구미시 임수동

역사관광경상북도

동산서당(경산)

동산서당은 고려 후기 문신 정연을 추모하기 위해 1814년에 동산사로 처음 건립되었다.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으며, 1938년 후손들에 의해 현재의 위치로 이건 및 동산서당으로 재건되었다. 1988년 사당인 상례사가 건립되었다. 동산서당의 중심 건물은 서당과 사당인 상례사이다. 사주문을 지나면 서당이 동향하여 위치해 있다. 서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기와 건물이다. 시멘트 몰탈로 마감된 낮은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기둥을 세웠다. 기둥은 전면에만 둥근기둥을 사용하였다. 평면은 중앙의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2칸의 온돌방을 두고 우측에는 1칸의 온돌방을 두었다. 건물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을 설치하고, 나머지 3면에는 쪽마루를 둘렀다. 가구 형식은 종량 위에 키가 큰 마룻대공을 세워 마룻대와 장혀를 받게 한 5량가이다.

경상북도 경산시 남천면 남천로 780-15

매림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매림서원

매림서원은 1707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조선시대 의학자인 곽수강과 학자 오선기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워진 서원이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었으나, 그 뒤 1981년에 복원하여 오늘의 모습에 이르고 있다. 매림서원은 크게 사당, 강당,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등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입구에 풍방루를 비롯하여 서원 내에 비각과 육각형의 정자가 배치되어 있다. 전체적으로 볼 때, 입구를 들어서면 서당이 있고 서당의 양쪽에 동재·서재가, 뒤쪽에 사당이 위치한다. 사당인 숭경사는 강당의 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단층 맞배지붕 건물이다.

경상북도 고령군 쌍림면 송림리

무원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무원서원

무원서원은 문효공 경재 하연과 정경부인 성주 이씨의 부부 영정을 봉안하고 있는 서원이다. 서원은 1630년(인조 8)에 영천 유림에 의해 창건되었으나 1868년 흥선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지금으로부터 대략 70년쯤 전에 복원하였다. 전면에 강당이 있고 뒤편에 사당이 있는 전학후묘의 배치형태를 가지고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의 겹처마 맞배지붕 건물이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민도리 양식으로 팔작지붕 홑처마 건물이다. 가운데 2칸에 마루를 두고 양 옆에 방을 둔 일반적인 평면 형식이다. 강당과 사당은 별도의 담장을 형성하여 일곽을 이루고 있는데, 강당의 영역 앞에 동재와 서재를 별도의 영역을 따로 구성하여 배치하고 있다. 동·서재 앞에 외삼문이 있다. 동재와 서재는 정면 3칸, 측면 1칸으로 우진각 지붕이다. 홑처마에 민도리 양식을 하고 있다. 무원서원은 현존하는 건축물로는 사당인 숙청각과 강당, 동재, 서재, 문간채 등 5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재의 경우 관리자가 거주하기 위하여 편의상 입식 구조로 변경하였다. 무원서원은 사당과 강당 및 동·서재, 내외삼문 등 서원의 격식을 갖춘 서원이나 강당만을 따로 공간 구성한 수법이 일반적인 것은 아니다.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치산효령로 152-26

문곡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문곡서원

문곡서원은 고려 때의 충신 산화 이견간을 주벽으로 하여 이대와 이군상을 봉향한 서원이다. 1750년(영조 26)에 사림이 건의하여 문곡사로 건립하였고,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문곡서당으로 이어 오다가 1983년에 후손들이 문곡서원으로 복원하였다. 본당과 동재인 근독재, 서재인 존성재, 대문간이 열린 口자형을 취하고 있다. 본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중앙 대청 2칸을 중심으로 양측에 1칸 반의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이다. 본당의 좌측 후면의 별도 곽내에 사당인 현덕사가 있는데,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다포 맞배집 구조이다. 문곡서원의 왼쪽 뒷마당에는 산화 이견간의 신도비가 있다. 이견간은 원나라에 사신으로 갔을 때 두견시를 잘 지어 산화 선생이라고 불릴 만큼 문장이 뛰어났으며, 또 유학의 도를 좇아 학문을 익히고 바른 성품을 지녔다고 알려져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초전면 월곡2길 13

문산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문산서원

문산서원은 세덕사에서 노수함과 노경필, 노경필 등 경주 안강 노씨를 모시고 있다. 1792년(정조 16) 창건되었으며, 1868년(고종 5) 서원 훼철령에 따라 훼철되었다. 이후 1986년 현 위치에 중건되었다. 외삼문인 상지문을 들어서면 정면으로 문산서원 현판을 단 4칸의 이학당이 보인다. 그 양옆으로 각각 역락재와 시습재가 자리 잡고 있으며, 별도로 배향 인물을 모시는 사당인 세덕사가 있다. 마당 한쪽에 문산서원 사적비와 문산서원 기공비가 늘어서 있다. 매년 음력 10월 중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북도 구미시 선산읍 유학길 334-32

문양서원
역사관광대구광역시

문양서원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창평리에 있는 문양서원은 1793년(정조 17) 이언을 모시기 위하여 건립되었으며,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72년에 복원되었다. 오랫동안 이 지역에서 세력을 형성해 온 흥양 이씨 문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사당인 경현사와 강당, 외삼문인 회진문, 동재 등 총 4동의 건물로 구성되어 있으나, 서재의 경우 시멘트로 수리·보수되어 과거의 구조 형식을 알 수 없다. 서원에 배향된 인물인 이언은 1458년(세조 4) 남원진병마절제사와 남원도호부사를 역임하고, 1461년(세조 7) 중추우부사로 전주부윤에 제수되었다. 그 뒤 1464년(세조 10)에는 청백리에 녹선 되었다.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남방길 37

반암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반암서원

반암서원은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반성리 원전마을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이다. 반암서원은 정종의 별묘(別廟)였다. 처음에 정구는 1777년 정충사(靖忠祠)에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와 함께 모셔져 있었으나 1794년 정충사에서 다른 분을 추향 하게 되어 그해 9월에 이곳으로 이봉(移封)하면서 반암서원이라 현판(懸板)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서원이 철폐(撤廢)되었으며, 이후 반암서당으로 현판하였다가 건물이 노후하여 1994년에 확대 개축하였다. 서원에는 강당인 반암서당과 뒤쪽에 사당인 세덕사가 있어 전학 후묘(前學後墓)의 배치를 이루고 있다. 사당인 세덕사(世德詞)는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 맞배지붕 형식이다. 전면에 반 칸의 툇간을 구성하여 의례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으며 사당으로서는 보기 드문 다포 형식을 보인다. 어칸에는 2구의 간포, 좌우 협칸에는 1구의 간포를 얹었다. 강당인 숭덕재(崇德齋)는 전체 5칸 중 중앙 2칸에 마루를 두고 좌·우로 온돌방을 설치하였다. 무익공(無翼工) 형식의 건물로 3량 구조이나 방 전면에 툇간을 구성하기 위해 중간에 사잇기둥을 놓았다.

경상북도 고령군 덕곡면 원앞길 7

역사관광경상북도

방산서원(영주)

영주시 이산면 용상리에 있는 방산서원은 1633년(인조 11)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옥천전씨 가문의 현조인 전희철(1425~1521), 전익희(1598~1659), 전명룡(1606~1667)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38년에 복원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다. 경내 건물로는 경절사, 망일당, 휴계재, 주소 등이 있다. 사우인 경절사에는 전희철을 주벽으로 좌우에 전익희와 전명룡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강당인 망일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는데 원내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 장소로 사용되고 있다. 서원 주변에는 옥천전씨 가문과 관련된 유적들이 분포하고 있다. 먼저 서원의 아래에는 칠성루 및 휴계재사가 있고 왼쪽으로 2001년에 건립된 ‘설월당전선생신도비’가 있으며 이 밖에 전희철을 비롯해 옥천전씨 선조들의 묘소가 주변에 분포하고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 이산면 영봉로329번길 143-5

봉강서원
역사관광대구광역시

봉강서원

목화를 전래한 고려시대의 문신 문익점(文益漸, 1329~1398), 물레를 고안한 문래(文來), 직조법을 발명한 문영 (文英)등을 배향하고 있다. 1861년 창건하였으며, 1960년 현재의 서원터에 문중의 후손들이 신실인 경현사, 삼문, 강당, 외삼문인 상의문, 충선공 유허비각 등을 중수하였다. 남평문씨(南平文氏) 종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으며, 해마다 음력 3월 중정(中丁)에 제사를 지낸다. (출처: 군위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대구광역시 군위군 우보면 화계봉산길 795

봉강서원(상주)
역사관광경상북도

봉강서원(상주)

1817년(순조 17) 강세백(姜世白)이 고려절신인 강회중(姜淮仲)과 갑자사화 피화인강형(姜詗을 배향한 경덕사(敬德祠)를 봉대(鳳臺)에 창건하였으며, 이후 현 위치로 이건 하였다. 1868년(고종 5) 서원훼철령으로 훼철하였으나, 1976년 옥동서원의 발의로 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990년 중건하였으며, 1998년 경덕사(景德祠)를 중건하였다. 매년 3월 중정(中丁)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신봉1길 26 (신봉동)

봉덕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봉덕서원

서원은 조선 중기 이후에 학문을 연구하고 제사를 지내기 위하여 지역 사림에 의해 설립된 사설 교육 기관이다. 봉덕서원은 조선시대의 문신 괴은 박두극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강당 내부에는 ‘봉덕재상량문’과 ‘봉덕재기’, ‘봉덕서원’이라는 현판이 있고 상량문에 의하면 1911년에 건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서원의 배치는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을 일직선으로 배치하였고, 대문을 들어서면 강당이 있고 그 뒤에 사당인 영모사를 둔 전학 후묘의 배치 형태를 이루고 있으며 밀양 박씨 문중에서 운영 및 관리를 맡고 있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장기면 방산로407번길 44

봉산리사(봉화)
역사관광경상북도

봉산리사(봉화)

조선 중기 문신인 김종걸(1628∼1708) 선생을 추모하기 위해 사림들이 세운 건물이다. 선생은 학문과 덕행에서 뿐 아니라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님이 병들자 소태산에 올라가 7일 동안 금식 기도를 드렸다. 그 후 약을 구하러 가는 길에 호랑이가 나타나 인도하여 명약을 구해 부모님의 병을 낫게 했다는 일화가 전하고 있다. 그는 죽은 뒤에 이조 참판으로 추대되었다. 정조 17년(1793)에 세운 이 사당은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 5년(1868) 폐쇄되었다가 1925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제관실(祭官室)이 딸린 문간채와 一자형의 본채가 어우러져 전체적으로 ㅁ자형을 이루고 있다. 앞쪽에는 선생의 위패를 모신 사당이 자리 잡고 있으며 봄, 가을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예봉로 1840

북산서원
역사관광대구광역시

북산서원

절강 장씨의 시조인 장해빈을 봉향하기 위해 세워진 서원으로 1684년 창건되었다. 장해빈은 중국 항주의 조강현 출신으로 조선 선조 정유재란 때 장수로 와서 귀화한 뒤 군위에 정착했다. 군위에 정착하여 살아온 절강 장씨 문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다. 1868년(고종 5)에 흥선대원군의 서원 훼철령으로 훼철되었으나 1959년 중건하여 북산서원으로 승격되었다. 서원은 강당과 2개의 사당이 병렬로 위치하고 있으며 현존하는 건물로는 경화사, 사당, 강당, 외삼문, 서재 등 총 6동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 대북길 207-3

분강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분강서원

이 서원은 1613년(광해군 5)에 지방유림의 공의로 이현보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향현사를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그 후 1700년(숙종 26)에 서원으로 개편하여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고종 5)년에 훼철되었으며, 1967년 옛터 서쪽에 복원하고 영정을 봉안하고 석채례를 행했다. 1976년 안동댐 건설로 수몰되게 되어 운곡에 도곡재사 옛터에 서원과 종가를 이건 하였다가 2006년 농암유적지 정비사업의 일환으로 지금의 자리에 옮겨 오늘에 이르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길 162-133

빙계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빙계서원

빙계서원은 조선 명종 11년(1566)에 회당 신원록이 창건하여 모재 김안국을 봉향하였다. 창건시에는 의성읍 장천(현 남대천 상류)에 위치하여 선조 9년(1576) 장천서원으로 사액을 받았다. 이후 임진왜란으로 소실되자 7년 뒤인 1600년(선조 33) 유림에서 현재 위치로 옮기기로 결정하고, 이듬해 원묘를 준공하고 원액을 ‘빙계[氷溪]’로 고쳤다. 이때 이언적을 김안국과 함께 제향 하였으며, 1689년(숙종 15)에는 향리의 선비들이 진소하여 의성과 관련이 깊은 유성룡, 김성일, 장현광 등을 추향하게 되었다. 고종 때 훼철된 후 빈터만 남아 있다가, 유교문화권 관광개발사업으로 2006년에 복원되었다.

경상북도 의성군 춘산면 빙계계곡길 80

사빈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사빈서원

사빈서원은 조선 시대의 학자 청계 김진과 그의 다섯 아들을 기리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김진(1500~1580)은 조선 중기의 선비로 어려서부터 재능이 뛰어났고, 이름난 유학자를 찾아가 가르침을 받아 견문을 넓히기도 했다. 중종 20년(1525) 생원시에 합격한 후 평생 학문에만 전념하며 후배 양성에 힘썼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나라에서 이조판서 직함을 내렸다. 김진의 다섯 아들 김극일, 김수일, 김명일, 김성일, 김복일이 모두 과거에 합격하였고, 후손들이 대대로 번성하면서 의성 김 씨는 안동 지역의 대표적인 명문 사족이 되었다. 사빈서원은 숙종 11년(1685) 김진과 다섯 아들의 위패를 모신 사당인 경덕사로 시작하여 숙종 35년(1709)에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고종 5년(1868)에 서원철폐령으로 헐렸다가 고종 19년(1882) 임하면 사의리에 모임 공간으로 이용할 수 있는 강당과 제사 준비를 위한 주사 건물만 다시 세웠다. 이후 임하댐이 건설되면서 1987년 임하리로 옮겼던 것을 2005년에 중창 사업 계획에 따라 현재 위치로 이건 하면서 여러 건물들을 복원하였다. 사빈서원 안에는 강당인 흥교당과 주사 외에도 사당인 경덕사, 기숙사인 동·서재, 문루, 전사청 등의 건물이 있다. 강당과 주사 건물은 안동지방 사림들의 건축 양식을 따르고 있는 전통기와집으로 그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다. 서원에서는 해마다 3월과 9월에 제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북도 안동시 임하면 천전광산길 53

사양서당강당
역사관광경상북도

사양서당강당

사양서당강당은 본래 조선 시대 서원으로, 1651년(효종 2) 유학자 한강 정구(1543~1620)가 일생 동안 학업을 닦던 사수동에 창건된 후 1694년(숙종 20)에 지천면 신리 섬마 마을로 옮겨 한강 선생을 주벽으로 석담 이윤우를 배향하고 송암 이원경을 별사에 모셨다. 창건 당시에는 강당 외에 묘우와 강당, 폄우제, 정완재, 봉하문, 양현청, 주고 등이 있었으나 1868년(고종 5)의 서원 철폐령에 의해 헐리고 지금은 강당인 경회당과 솟을대문, 변소만 남아있다. 강당인 경회당은 경상북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사양서당강당은 방형의 평탄한 대지에 강당과 솟을대문을 二자형으로 배치하고 주위에 토담을 쌓았다. 강당인 경회당은 조선 후기에 지은 이익공계 건물로, 정면 5칸, 측면 1칸 반의 규모이다. 평면은 가운데 3칸의 넓은 대청을 두고 그 좌우에 온돌방을 둔 형태이다. 대청과 온돌방 앞에는 개방된 반칸 폭의 툇마루를 꾸몄다. 지붕은 박공지붕에 한식 기와를 덮었다. 솟을대문은 정면 5칸, 측면 1칸의 규모로 가운데 있는 대문간의 지붕을 솟을지붕으로 지었다.

경상북도 칠곡군 지천면 신동서원길 15-10

봉화삼계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봉화삼계서원

과거 닭실마을로 오르는 초입 부분 우측 편에 자리하고 있는 삼계서원은 조선 중종 때 명신 충재 권벌(1478∼1548)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당시 안동부사였던 김우옹이 조선 선조 21년(1588)에 건립하였다고 한다. 권벌은 연산군 2년(1496)에 진사가 되고 중종 2년(1507)에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냈다. 명종 2년(1547)에 양재역벽서사건에 연루되어 평안도 삭주에 유배되었으며, 이듬해에 그곳에서 죽었다. 조선 선조 31년(1601)에 한강 정구가 사당을 충정공사, 당호를 정일당, 동재를 사무사, 서재를 무불경, 정문을 환성문, 문루를 관물루라 각각 명명하였다. 그리고 현종 1년(1660)에 삼계서원으로 사액받았다. 고종 5년(1868)의 서원철폐령에 따라 충정공사, 환성문, 관물루가 훼철되었다가 1951년에 복원하였다. 서원의 배치는 앞에는 공부하는 공간을 두고, 뒤에는 제사 지내는 사당을 배치한 전학후묘의 형식이다. 서원 출입은 전면에 자리하고 있는 중층의 관물루 아래에 설치된 환성문으로 들 수 있도록 하였으며 문을 들어서면 전면에 강당이 자리하고 전면 좌우에 동·서재가 있다. 강당 우측으로 돌아들면 토담장으로 공간이 구획된 제향공간인 사당(충정공사)이 자리하고 있으며 서재 좌측 편에 서원을 관리하는 관리사가 대문채를 두고 위치하고 있다. 동재 전면 우측에는 1906년 사림에서 세웠다는 신도비와 비각이 자리하고 있으며 서원 좌측에 관리사가 있다. 봉화 삼계서원은 정연한 전학후묘의 배치법을 지니고 있으며 공간의 위계성이 돋보인다. 관물루와 사당은 복원된 건물로 당시의 모습은 지니지 못하고 있으나 동재와 서재에서 당시의 모습을 부분적이나마 찾을 수 있다. 또한 닭실마을과 연계되는 삼계서원의 위치와 충재선생의 인물사적 측면과 더불어 고려할 때 가치 있는 자료로 평가된다.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생기마1길 24

섬계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섬계서원

섬계서원은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섬계서원은 단종 복위를 꾀하다 순절한 충의공[忠毅公] 백촌[白村] 김문기[金文起]의 충절을 숙모[肅慕]하고 현창 하고자 창건했다. 지금은 조룡리로 바뀐 섬계리는 김문기를 중시조로 하는 김녕 김씨 집성촌이다. 경내는 강당과 사당 구역으로 대별되며 경내로 진입할수록 표고가 높아져 산으로 닿는다. 중심 건물에 해당하는 경의재는 석축 기단 위에 섰으며 정면 4칸, 측면 2칸 반의 단층 겹처마 팔작지붕 구조이다. 가운데 2칸은 대청이며 내진주[內陣柱]가 있고, 양쪽 협간은 온돌방으로 구성했다. 세충사와 동별묘는 그 동편에 위치한다.

경상북도 김천시 대덕면 조룡길 512-5

소양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소양서원

소양서원은 문경시 가은읍 전곡리 마을 중간쯤 전망이 아주 좋은 곳에 뒷산을 등지고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으며, 강학과 제향공간이 각기 별도의 곽을 이루며 앞뒤로 배치하고 있다. 고종 8년(1987) 서원 훼철 당시 사당만 철거되고 강당과 동재는 존치되었으며, 강당은 당시의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 있다. 강당의 천장은 양측 청방 간 상부의 종보와 종보사이에 종보폭으로 길게 설치하였으며, 반자꾸밈은 반자대를 도리방향으로 길게 걸치고, 그 사이에 반자판을 끼워 독특한 천장 구성을 이루고 있는 등 건축적 가치를 살필 수 있다. 또한 16세기 가은 인근 지역에서 출생하여 각각 예조좌랑, 형조좌랑 등 중앙관직에 나아가 활동하다가 만년에는 고향으로 돌아와 지역 발전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 나암 정언신, 인백당 김낙춘, 고산 남영, 가은 심대부 및 가은 이심 5인을 배향하고 있어 역사적으로도 주목되는 서원이다.

경상북도 문경시 가은읍 소양서원길 8

소천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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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천서원

이 서원은 전원발[全元發]을 봉향하기 위해 위패를 모시고 1701년(숙종 27)에 건립하였다.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오다가 1869년(고종 6)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서원이 훼철되었고 1918년 중건되었다가 1968년 복원되었다. 서원은 소천마을 북서쪽 금천변 산 밑에 자리 잡고 있다. 건물은 외삼문, 강당, 내삼문, 사당이 동일축선상에 배치되어 있다. 강당인 전교당[典敎堂]은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팔작지붕 기와집이고, 사당은 숭덕사[崇德祠]이며 정면 3칸, 측면 1칸 반의 맞배지붕 기와집이다. 그 이외에 소천서원과 관련된 소천재[蘇川齋]와 청원정[淸遠亭] 등의 건물이 주변에 위치하고 있다. 소천재는 재실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이고, 청원정은 정자건물로 경관이 뛰어나다.

경상북도 예천군 용궁면 외무길 30-24

속수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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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수서원

속수서원은 신우, 손중돈, 김우굉, 조정, 조익 등 다섯 선현을 배향하고 있는 서원이다. 속수서원의 내력은 서원 경내에 세워진 속수서원 사적비를 통해 살펴볼 수 있다. 1509년(중종 4) 구서당 마을에 세워진 생사당(백성이 감사나 수령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생전부터 모시던 사당)에서 비롯되었다. 생사당은 손중돈이 상주 목사로 재임하면서 베푼 선정을 잊을 못하는 마을 백성들이 건립하였다. 「가규 선생 문집」, 「속수 서원 추향 시 고유문」에는 덕과 충효가 있고 유교적 교화 등이 사표가 될 만하므로 사당을 짓고 배향한 것이라 기록하고 있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소실된 것을 1656년(효종 7) 중건하고 경현사로 개칭하였다. 이때부터 손중돈과 함께 신우를 배향하였다. 1703년(숙종 29) 현재 장소로 이건하여 와 속수서원으로 개칭하였다. 1730년에 김우굉과 조정을 추향 하였고, 1826년에 조익을 추향 하였다. 1868년 서원 철폐령에 의해 서원은 없어지고 매판소만 남아 있던 것을 1972년 세 문중 후손인 조성학, 신기성, 김영해 등을 주축으로 매판소 앞에 명륜당을 건립하였다. 1983년 봄부터 단소향사를 지내고, 사적비를 세웠다. 1988년 경현사를 복원하여 다섯 선현을 제향하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단밀면 주속길 1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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