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국 관광지 206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206페이지입니다.

송곡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송곡서원

영천시 청통면 애련리에 있는 송곡서원은 1702년(숙종 28)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유방선과 곽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진 서원이다. 처음에는 묘우 경현원에 위패를 모신 후 그 뒤 원호를 송곡으로 고치고 1712년(숙종 38) 이현보, 심지원을 모셨다. 이후 이보흠과 윤봉오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훌륭한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여 오던 중,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으며, 1965년 유림의 공의로 복원하여 유방선과 이보흠만 배향하였다. 경내 건물로는 3칸의 사우, 신문, 동서 협문, 강당, 서재, 대문과 사당 옆에는 태재유선생신도비도가 있으며 매년 3월 상정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청통면 애련길 174

송록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송록서원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에 위치한 송록서원은 1868년(고종 5)에 훼철된 송천서원과 반천서원, 백록이사 등에 봉안되었던 진일재, 류승조 선생을 비롯한 10분의 위패를 모셨던 곳으로 140여 년 만에 복설 되었다. 봉안위의 유덕을 추모하고 높은 학문과 충효사상을 계승 및 발전시키기 위해 이 서원을 세웠다.

경상북도 봉화군 봉화읍 봉화로 1001-28

송학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송학서원

송학서원은 숙종 연간(1674~1720)에 건립되었다. 이황(1501~1570), 김성일(538~1593), 장현광(1554~1637)을 배향하고 있다. 송학서원은 제향 공간인 사당, 강학 공간인 강당과 동재·서재 및 외삼문으로 이루어져 있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중앙 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둔 중당협실을 구성하고 있다. 송학서원 현판이 있다. 동재·서재는 건물 양식이 동일하다. 정면 4칸, 측면 2칸 규모이다. 정면에 툇마루가 있다. 사당인 존덕사는 이황, 김성일, 장현광의 위폐를 배향하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1칸 규모이다.

경상북도 청송군 안덕면 석정길 53

신천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신천서원

신천서원은 조선 전기의 공신 맹암 김영렬(?~1404)의 가르침을 잇고 후손을 가르치기 위해 1945년에 세웠다. 김영렬은 정종 2년(1400) 제2차 왕자의 난을 평정하고 태종을 왕위에 오르게 한 공으로 태종 1년(1401) 좌명공신 3등에 오른다. 태종 4년(1404) 참판승추부사로 있을 때 왜선 1척을 싸워 빼앗고 왜병을 포로로 잡은 공을 세웠다. 후에 우의정에 증직 되었다. 신천서원은 왕신평야가 내려다 보이는 솔 숲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입구에는 신도비(神道碑)가 있다. 사주문으로 들어서면 오른쪽에는 전사청인 사주각(祀厨閣)이 있고, 정면에는 교육공간인 강당이 있다. 강당 뒤로는 내삼문인 남덕문(覽德門)을 지나, 제사를 지내는 사당인 경훈사(景勳祠)가 있다. 경훈사에는 태종의 글씨인 단서(丹書)와 김영렬 선생의 영정을 모시고 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예천읍 왕신1리길 151

암포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암포서원

암포서원은 본래 선조를 제사하기 위한 사당과 교육을 겸한 서당으로 출발하였으나, 1569년 (선조 2) 국학의 제도에 따라 선현을 제사하고 유생들을 교육하면서 건물의 중건과 함께 그 명칭을 서원으로 변경하였다. 1871년(고종 8) 음력 3월 20일 서원철폐령으로 전국에 사액서원 47개소만 남기고 통폐합할 때 훼철되었다. 1960년 5월 29일 정면 4칸, 측면 2칸의 한옥으로 복원하였으며, 복원된 건물이 퇴락하여 사당은 문화재적 가치 보존을 위해 존치하기로 했다. 그 외 건물은 경내에 이전 중건하였으며, 2007년 5월 13일 성주향교 유림 및 각 문중 대표 주관으로 낙성고유식을 거행하였다. 건물의 공간적인 구성은 풍수지리학적 지형·지세에 따라 서원의 우측으로 사당을 배치하였으며, 서원ㆍ사당ㆍ단목ㆍ단정 등이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월항면 안포길 89

양산서원
역사관광대구광역시

양산서원

1786년( 정조 10) 지방교육을 담당하고 성현을 받들기 위하여 창건하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모든 건물이 훼철되었다. 이후 1897년(광무 1) 강당을 현재의 규모로 중건하였고 1989년 다시 중수하였다. 당시 강당 뒤쪽에 건립한 장판각에는 홍노의 ‘경재선생실기 (敬齋先生實記)’ 목판과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 홍여하 (洪汝河)가 수찬한 ‘휘찬려사 (彙簒麗史)’ 목판이 보관되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출처 : 군위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대구광역시 군위군 부계면 남산4길 32

양천서원
역사관광대구광역시

양천서원

고려시대의 문신이자 서예가인 홍관 (洪灌,?~1126년)과 홍언박 (洪彦博, 1309~1363년), 조선 중기의 문신 홍위 (洪瑋, 1559~?)를 배향하고 있으며, 남양 홍씨 문중에서 소유와 관리를 맡고 있다. 1786년(정조 10)에 창건하여 남양 홍씨 후손들이 제사를 담당하여 오다가 1868 년( 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1926년 이 지역에 오랫동안 세거해 온 남양 홍씨 후손들에 의하여 복설 되었다. (출처 : 군위군 문화관광)

대구광역시 군위군 군위읍 내외량길 243-55

연계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연계서원

연계서원은 송계 한덕련(1881~1956) 선생이 배향되어 있는 서원이다. 한덕련 선생의 본관은 청주이며 호는 송계다. 조선조말엽인 고종 18년 당시 신녕현(현 영천시 신녕면)의 교전리에서 태어났다. 한일병합 후 어지러운 세상을 피하여 군위군 고로면에 소재한 화산의 산중으로 들어가서 후진양성에 전념하였다. 그러나 일본인들의 방해로 계속 머무르지 못하고 다시 군위군 산성면과 영천군(현 영천시)임고면의 매호리 등지로 다니면서 후학을 가르치다 만년에 신녕의 연정리로 와서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하였다. 연계서원 경내의 건물로는 묘우인 경덕사, 3칸의 사우, 각 3칸의 순리재와 구시재의 재사, 강당인 심락당 등이 있다. 사우에는 한덕련 선생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으며, 순리재와 구시재는 각종 유림의 회합과 학문 강론 및 숙소 등의 용도로 사용하고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신녕면 연정큰길 67

연악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연악서원

연악서원은 상주시 지천동에 위치한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박언성, 김언건(1511~1571), 강응철(1562~1635), 김각(1536~1610), 조광벽(1566~1642), 강용량(1608~1676)을 배향하기 위하여 건립하였다. 박언성은 12세에 할머니 상을 당하여 3년상을 마쳤고,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하여 벼슬도 사양할 정도로 효자였다. 김언건은 1624년(인조 2) 효행으로 읍민이 정표할 것을 청하여 감찰로 증직 되었다. 강응철은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모집하여 상주를 지켰고, 광해군의 폭정에 분개하여 은퇴하고 독서와 저술로 일생을 보냈다. 김각은 김언건의 아들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상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전과를 올렸다. 조광벽은 류성룡(1542~1607)의 문인으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창의 하여 공훈을 세웠다. 강용량은 강응철의 아들이다. 병자호란 이후 의리를 지켜 공조참의에 증직 되었다. 연악서원의 사당 창덕사는 정면 3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1987년 서원을 복원하며 지은 건물이다. 박언성, 김언건, 강응철, 김각, 조광벽, 강용량의 위패가 있다. 묘우 정면은 현재 경지로 활용되고 있다. 묘정으로 출입하는 삼문은 솟을대문이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으로, 가운데 2칸을 어칸으로 하여 우물마루를 시공하였고, 전면에 빗살 사분합문을 두었다. 지천서당의 편액도 함께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연악서원이 훼철되고 복원할 때 재원의 부족으로 강당을 신축하지 못하고 지천서당의 건물을 함께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경상북도 상주시 지천1길 49

오계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오계서원

오계서원은 1570년(선조 3)에 이덕홍(李德弘)이 학문 연마와 심신수련을 위해 건립한 「오계정사」의 후신이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으로 인하여 소실(燒失)되었으나, 1595년(선조 28)에 쌍계(雙溪) 언덕으로 이건(移建) 하였고, 1636년(인조 14)에 홍수로 유실되는 등, 여러 차례 이건과 중건을 거쳤다. 사림의 공론으로 1665년(현종 6) 10월 2일에 도존사(道存祠)를 建立하고 이덕홍(李德弘)의 위패를 봉안한 후 1691년(숙종 17) 오계서원으로 승격되었다. 1699년과 1707년의 대홍수로 물길이 바뀌어 서원이 침수 피해가 있자 1711년(숙종 37)에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으며, 1724년(경종 4)에 그의 장자 이시(李蒔)를 배향하였다. 1871년(고종 8)에 훼철되었다가 1919년에 복향하였고 1978년에 道存祠를 재건하였다.

경상북도 영주시 평은면 천본리 55-1

오산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오산서원

영주시에 위치한 오산서원은 순조 34년(1834) 오산서원을 창건 하고 지방유림의 공의로 김난상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하여 위패를 모셨다. 묘호를 경현사라 하고, 강당을 명교당이라 하였다. 기문은 이휘녕이 짓고, 봉안문은 유태좌가 지었으며, 상향문은 이광정이 지었다. 서원이 승격할 때 고유문은 김희주가 지었다. 오산서원은 선현배향과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경 훼철된 뒤 복원하지 못하였다. 지금은 서원자리에 김난상의 정자인 매양정과 김난상의 신도비, 사당이 세워져 있으며, 사당안에는 오산이사, 경현사, 오산서원 현판이 보관되어 있다.

경상북도 영주시 대동로103번길 31-32 (가흥동)

오암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오암서원

오암서원은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남은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1714년(숙종 40)에 사림이 오암에 운암서원을 세워 최항경(1560~1638)을 제향 하다가 1741년(영조 17)에 서원 정리령으로 훼철되었다. 이후 1781년(정조 5) 사림의 공론으로 복원하여 ‘오암서원’이라 편액 하였다. 1782년(정조 6)에 죽헌정사 자리에 오암서원을 세우고 최항경의 두 아들 최은(583~1656)과 최린(1597~1644)을 추배 하였다. 이후 1865년(고종 2)에 다시 훼철되었다가, 1918년에 후손들이 서원이 있던 터에 서당을 세웠고, 1977년에 중수하였다. 1985년에 후손들이 대강당과 광영루를 지었다. 2002년에는 후손 최창곤이 효덕사를 건립하였고, 2009년에 정부의 지원으로 오암정을 세웠다. 건물의 규모는 정면 5칸, 측면 1칸 반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구조는 중앙에 3칸 대청을 중심으로 양측 칸에 1칸 반씩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이다. 사당인 효덕사는 3칸의 맞배지붕집 구조이다. 재사는 서원 밖에 동향하여 위치하고 있으며, 재사의 우측에 오암정이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참별로 1

오천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오천서원

오천서원은 포항시 남구에 있는 서원으로, 고려 시대 문신 정습명과 정몽주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1588년 지방 유림의 공의로 정습명과 정몽주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2년 현 위치에 중건되었다. 1613년 ‘오천’이라고 사액되었으며, 1740년에 정사도와 정철을 추가로 배향하였다. 이후 1868년에 훼철되어 위패를 땅에 묻고 단을 만들어 향사하다가 1975년에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사우, 강당, 동재, 서재, 내삼문, 외삼문, 전사청 등이 들어서 있다. 사우 상경사는 3칸 규모의 건물로 정몽주, 정사도, 정철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강당 명륜당은 중앙의 마루와 양옆의 협실로 이루어져 있다.

경상북도 포항시 남구 오천읍 서원재로166번길 32-49

상주 옥동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상주 옥동서원

옥동서원은 황희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서 1518년에 창건된 서원으로 원래는 백화서당이었다. 이후 1580년에 백옥동에 영당을 새로이 건립하여 황희의 신주를 모시고 봄, 가을로 향사를 지내왔으며 1714년에 서원으로 승격이 되면서 현재의 위치로 옮겨 지었다. 이때 전식(1563~1642)을 추배하였으며 1786년에는 황효헌(1491~1532)과 황뉴(1578~1626)를 추가로 배향하였다. 1715년에는 경덕사와 강당을 지었고 1789년에 조정으로부터 옥동서원이라는 사액을 받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살아남은 전국 47개 서원중 하나로 특히 황희를 모신 서원 중에 훼손되지 않고 원래의 모습을 잘 보존하고 있는 서원으로는 이곳이 유일하다. 현재 옥동서원에서는 황희의 영정 3점과 방촌선생문집, 반간집, 황씨세보, 장계이고, 만오집 등 총 5종 241책의 책판을 비롯하여 각종 고문서 300여건과 현판 11개 등의 많은 기록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1984년 12월 19일 경상북도 기념물 제52호로 지정되었다가 2015년 11월 10일 대한민국 사적 제532 호로 승격되어 재지정 되었으며 문화재청에서 시행하는 ‘지역 문화재 활용사업, 향교, 서원 문화재 활용’으로 아이들과 성인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경상북도 상주시 모동면 수봉2길 29

옥성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옥성서원

상주시 외남면에 있는 옥성서원은 상주목사 신잠에 의해 세워진 18 서당 중 하나인 수양서당이 그 모태이며 1631년에 서당을 서원으로 승격하여 옥성서원이 되었다.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 조선시대의 사립 지방 교육기관이다. 본래 수양산(서산) 아래에 세워져 김득배, 신잠, 김범, 이전, 이준을 배향하고 제사를 지냈는데 1648년 수해로 서산이 무너져 서원이 묻혀버렸다. 이후 1692년 조금 떨어진 북쪽으로 이건 하였으나, 1868년에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된 뒤 그 자리에 단소를 설치하고 계속 향사를 지내오다가 1977년에 복원되었다. 경내에는 강학 공간인 명륜당과 사당인 경덕사가 있고 매년 3월 중정에 향사를 지낸다.

경상북도 상주시 외남면 옥성수자동길 40-11

옥천서원(예천)
역사관광경상북도

옥천서원(예천)

옥천서원은 1667년(현종 8)에 임춘[林椿]을 향사하기 위해 옥천정사[玉川精舍]로 건립하였으며, 1711년(숙종 37) 유림에서 5동을 건립하고 반유[潘濡], 태두남[太斗南], 송복기[宋福基] 등 3현을 추배 하여 4현[四賢]을 배향하여 서원으로 승원 되었다. 1868년(고종 5)에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된 것을 1920년 상현사, 명교당을 복원하였고, 1989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 하였다.

경상북도 예천군 감천면 덕율1길 15-21

완담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완담서원

1568년(선조 1)에 삼수 정귀령과 그의 두 아들 정옹, 정사를 기리기 위하여 풍양면 삼수정 곁에 사당인 삼수사를 건립하여 향사를 올렸다. 그 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사당이 소실되어 버렸다. 임란이 끝난 후 1606년(선조 39)에 삼수의 묘소가 있는 예천군 지보면 마산리 완담에서 유림과 자손들이 완담향사로 재건하고 상덕사 사당을 세워, 정환과 정광필을 추향 하여 오위를 제향 하였다. 그러다가 97년간의 세월이 흐른 1764년(영조 40)에 정영후와 정영방 두 사람을 더 추향 하게 되었다. 1868년(고종 5)에 서원훼철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98년에 유림과 자손들이 힘을 규합하여 완담향사를 다시 복원해 완담서원이 되었다. 현재 삼수정 아래에는 4세 7현 사적비가 세워져 있다. 삼수정은 삼수 정귀령이 1425년(세종 7)에 세운 정자로 낙동강을 바라보는 언덕에 위치해 있으며 옆에는 예부터 학자나 벼슬을 상징하는 600년 회화나무가 있다.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마산길 313

용강서원(청도)
역사관광경상북도

용강서원(청도)

용강서원은 청도에 정착해 온 밀양박씨 문중의 그 현조인 충숙공 박익과 임진왜란 당시의 14의사를 제향 하기 위해 1780년에 건립한 서원이다. 고려 때 예부시랑, 중서령 등의 벼슬을 지내고 여러 번 왜구와 여진을 토벌하는 공을 세웠던 박익 선생은 조선이 개국되자 벼슬을 사양하고 두문동에 들어가 은거하며 여생을 보냈다. 14의사는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켜 밀양, 청도, 경산 등지에서 크게 활약한 밀양 박씨 가문의 14분으로 모두 부자, 형제, 사촌 등의 친척들이다. 이들 가운데 11분은 선무원종공신 1·2·3등에 각각 봉해지고 한 분은 병자호란 때 1등 공신이 되었는데, 다른 가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매우 희귀한 경우이다. 서원의 전체적인 배치는 외삼문, 강당, 내삼문, 여충사를 동일 축선 상에 배치하였다. 강당의 우측에는 임진왜란 14의사를 모신 충렬사가 별도의 공간을 이룬다. 강당의 좌측에는 용강재와 주사를, 우측에는 보인당을 각각 배치하였다. 강당은 정면 5칸, 측면 1.5칸 규모의 팔작 기와집이다. 평면 구성은 중앙의 3통칸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각각 1칸 온돌방을 둔 중당 협실형으로 전면에는 반 칸 규모의 툇간마루를 설치하였다. 담장 밖 우측 입구에는 방형의 토석 담장을 두른 별도의 공간 안에 14의사 묘정 비각이 있다. 14의사 묘정비는 고종 13년(1876) 세운 것으로 임진왜란 당시 상황을 상세하게 적어두고 있다. 국가가 위기에 처했을 때 취한 밀양 박씨의 위국충절은 후대인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모산길 45-4

우곡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우곡서원

우곡서원은 의성군 의성읍 업리에 있는 서원으로 1818년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고려 말의 학자 오국화를 추모하기 위하여 위패를 모셨다. 선현 배향과 지방 교육의 일익을 담당하여 오던 중 1868년에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1980년에 복원하였다. 경내의 건물로는 숭절사, 숭의당, 신문, 동재, 와 서재, 전사청, 정문, 주소 등이 있다. 사우인 숭절사에는 오국화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숭의당은 서원의 강당으로 중앙의 마루와 양쪽 협실로 되어 있고 원내의 여러 행사와 유림의 회합 및 학문 강론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신문은 향사 때 제관의 출입문으로 사용하고 있고, 전사청은 제수를 마련하는 곳으로 사용하고 있다. 동재는 재원 숙소로 그리고 서재는 유생들이 모여 공부하는 장소로 사용하고 있다.

경상북도 의성군 의성읍 북부길 355-22

운계서원(영덕)
역사관광경상북도

운계서원(영덕)

운계서원은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리에 있는 조선 후기의 서원이다. 1824년(순조 24) 영해도호부 유림들에 의해 건립되었으며, 조선시대 영해박씨 가문의 박제상, 박세통, 박응천을 제향하고 있다. 운계서원이 처음 건립된 곳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영리의 보곡이었다. 거무역리에서 북쪽으로 2㎞가량 떨어진 보곡에는 박세통, 박홍무, 박감의 묘소가 있다. 이에 1818년(순조 18) 영해박씨 후손들이 선조의 세덕을 기리는 사당을 세웠는데, 이것이 운계서원의 모체가 되었다. 이후 도내 유림들이 발의하여, 1824년 기존의 건물을 주사로 쓰고, 마을의 가옥을 개조해 강당으로 만든 후 박제상, 박세통, 박응천 3인의 위패를 봉안하였다. 처음 건립 때는 서원이 아니라 ‘운계정사’라고 불렀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887년 후손들이 이곳에다 재실인 추원재를 지었다. 1987년 현재 자리에 사당과 봉송정을 갖춘 운계서원을 새로 건립하였다. 철폐되기 전 운계서원은 묘호가 ‘상현사’, 사호는 ‘운계사’인 3칸의 사당을 비롯하여 8칸의 강당, 3칸의 외삼문, 10칸의 주사로 구성되어 있었다. 현재는 사당과 봉송정만 남아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홑처마 팔작지붕 기와집이며, 봉송정은 2칸 규모의 사각 정자이다. 사당 옆에는 ‘삼대시중신도비(三代侍中神道碑)’가 세워져 있다. 매년 음력 10월 7일에 운계서원에서 향사를 지낸다.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2길 22

역사관광경상북도

운곡서원

경주시 강동면 청수골에 있는 운곡서원은 안동권씨 시조인 고려 공신 태사 권행과 조선시대 참판 권산해, 군수 권덕린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한 조선시대 서원이다. 서원은 훌륭한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며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위해 설립된 고려, 조선시대의 사립 지방 교육기관을 말한다. 1868년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이후에 휴허지에 단을 설치하고 재사와 전사청을 지어 제향하고, 1976년 신라 밀곡사 터로 추정되는 이곳에 복원하였다. 묘우인 경덕사와 강당인 정의당, 동재와 서재 및 외삼문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매년 음력 3월 초정일에 향사를 지낸다. 운곡서원에서 약 50m 떨어진 동쪽 계곡의 용추대 위에는 정자 유연정이 있다. 안동권씨 종중에서 조상들을 추모하기 위해 지은 정자로, 주위 자연경관과 멋진 조화를 이루고 있으며, 이곳 수령 380여 년 된 은행나무는 경상북도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으며 그 수형이 곧고 화려하여 가을이면 이를 보기 위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경주 단풍 명소이다.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 사라길 79-13

운산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운산서원

운산서원은 담암(淡庵) 백문보(白文寶), 성헌(性軒) 백현룡(白見龍)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기록에는 건립 당시에 영해지방에서 드문 41칸의 대규모였으며, 서원으로서의 면모를 고루 갖추었다고 한다.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폐원되었다가, 1899년에 서원 유지(遺址)에 서당(書堂)을 건립하여 1950년대까지 사설교육의 명맥을 유지하였다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길 110-10

운양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운양서원

운양서원은 조선시대 향촌의 자치 규약인 향약을 처음으로 실행한 인물인 원정 여희림(1481~1553)의 위패를 봉안한 서원으로 1868년에 서원이 훼철되었다가, 1874년 사림의 힘으로 다시 세워졌다. 이전에는 연봉산 밑에 자리 잡았기에 연봉서원, 천곡서원이라고 불렸으나, 명덕사에 위패를 모시게 된 후 운양서원으로 불리게 된다. 경내의 건물은 크게 두 개의 영역으로 구분되어 배치되어 있다. 정문인 유의문, 강당인 거인당과 동서재 등이 튼 ‘ㅁ’ 자로 배치되어 있고, 이들 영역의 동쪽으로 명덕사와 내삼문으로 구성된 사당 영역이 병렬로 배치되어 있다.

경상북도 성주군 벽진면 운정길 167

원계서원
역사관광경상북도

원계서원

김천 부곡동 산 중턱에 있는 원계서원은 근대 유학자이자 파리장서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 송준필 선생이 활동한 서원이다. 송준필은 파리장서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뒤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해 1933년 부곡동 음지마을로 은거했다. 이곳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1942년 원계정사를 세웠다. 송준필이 운영한 원계정사는 일제 강점기뿐 아니라 현대에까지 경상도 지역의 근대유학 형성 및 계승에 크게 기여한 곳이다. 선생이 별세한 후 제자들과 유림들이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1968년 원계서원을 지었다. 강당의 이름은 정학당이라 했으며, 이듬해 서원 뒤편의 옛 원계정사 터에 사당을 지어 숭덕사라 이름 짓고 1971년에 이곳에 송준필의 위패를 봉안했다. 또 그 해 동재인 일성재와 서재 제양당, 문루인 직방문을 지었다. 숭덕사의 현판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이다.

경상북도 김천시 음지마길 40-5 (부곡동)

광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