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관광지 20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20페이지입니다.

금강사(강릉)
금강사는 소금강 무릉계곡에 정각 스님이 1964년 창건한 절로서 기암괴석이 아름답고, 시냇물이 맑은 주변의 경관으로 인해 이 일대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필수 코스로 자리 잡은 절이다. 특히 금강사의 맞은편에는 천여 명의 군사가 앉아서 점심을 먹었다는 전설이 깃든 식당암이 있고, 봉우리 3개가 기이하게 솟아있는 삼선봉을 만나볼 수 있어 소금강 탐방로를 찾는 관광객들이 꼭 머무는 곳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소금강 주차장에서 금강사, 구룡폭포, 만물상, 노인봉, 진고개에 이르는 등산코스가 유명하며, 사찰 주변에는 월정사, 상원사, 연곡해수욕장, 주문진 해수욕장, 경포도립공원 등이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연곡면 소금강길 670

상원사(오대산)
상원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인 월정사의 말사로, 월정사 인근에 위치한 천년 고찰이다.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세운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실제로는 성덕왕이 705년에 절을 중창하며 진여원이라 불렀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문수보살상을 모신 사찰로, 세조가 피부병을 고치기 위해 방문했다가 병을 나았다는 일화로도 유명하다. 현재의 사찰은 1946년 화재 이후 재건된 것으로, 영산전을 제외하면 오래된 건물은 남아 있지 않다. 국보 동종, 문수동자상, 문수보살상, 세조의 친필 중창권선문 등 귀중한 문화유산을 소장하고 있으며, 월정사에서 시작되는 9㎞ 선재길을 따라 방문하기에 적합하다.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1211-50

월정사·월정사 전나무숲
월정사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에 자장율사에 의해 산 전체가 불교성지인 오대산에 창건된 사찰이다. 조계종 제4교구 본사로 60여 개의 사찰과 8여 개의 암자를 거느리고 있으며 국보 팔각 9층석탑, 보물인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목조문수동자좌상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월정사 일주문에서 금강교까지 약 1㎞에는 1,700여 그루의 전나무가 있는 전나무숲이 펼쳐진다. 전나무숲은 사계절 모두 방문객에게 사랑받는 천년 고찰 월정사의 대표 관광명소로 월정사에 방문한다면 꼭 들러봐야 할 곳이라 할 수 있다. 월정사에서는 속세를 떠나 산속에서 지친 몸과 마음을 재충전할 수 있는 템플스테이를 휴식형과 체험형으로 나누어 운영하고 있다. 템플스테이 외에도 일반 대중들의 행자생활 체험을 위한 월정사 출가학교가 있다. 또, 오대산 자연명상마을, 줄여서 옴뷔(OMV; Odaesan Meditation Village)는 축구장 14배에 달하는 약 9만 9170㎡ 규모로 숙박시설, 문화체험시설, 식당, 정원과 숲길 등을 갖춰 일과 경쟁에서 지친 사람들에게 자연의 휴식처에서 명상을 통해 심신을 회복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이 외에도 삶에 지친 현대인을 위한 명상요가학교도 운영 중이다.
강원특별자치도 평창군 진부면 오대산로 374-8

낙산사
낙산사는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을 대표하는 관광명소이자 역사적 가치가 큰 명승지다. 신라 문무왕 11년(671)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고찰로 강화 보문사, 남해 보리암과 더불어 한국 3대 관음성지로 꼽힌다. 동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풍광이 아름다운 낙산사는 관동팔경(강원특별자치도 영동의 여덟 군데 명승지) 중 한 곳으로, 예로부터 수많은 고전과 시문에 그 아름다움이 전해지고 있다. 낙산사는 여러 번의 중건과 복원을 거친 역사적인 사찰로 여러 문화유산을 보유하고 있다. 16m 높이의 해수관음상, 해안 절벽 위에 지은 정자이자 동해안 일출 명소인 의상대, 바다를 굽어보는 암자인 홍련암, 조선 시대에 지었으나 고려 시대 양식을 이어받은 양양 낙산사 칠층석탑(보물), 부처의 진신사리를 비롯한 사리장엄구가 발견된 양양 낙산사 해수관음공중사리탑·비 및 사리장엄구 유물 등이 잘 알려져 있다. 2005년에 큰 산불이 나 보물로 지정되어 있던 동종을 비롯해 20여 채의 전각이 소실된 바 있지만 현재는 모두 복원되어 옛 모습을 되찾았다. ◎ 한류의 매력을 만나는 여행 정보 - 리노가 걸었던 ‘꿈이 이루어지는 길’을 걸으며 수많은 돌탑 위에 작은 돌 하나를 얹고 소원을 빌어 보는 것을 추천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

매월대폭포
매월대폭포는 철원군 복계산 매월대 정상에서 동쪽으로 1㎞ 정도 위치에 있는 폭포이다. 철원 9경 중 하나이자, 철원의 3대 폭포에 속한다. 청석골에서 매월대에 이르는 계곡은 여름철 피서지로 유명하다. 매월대는 조선 시대 단종의 폐위에 반대하며 낙향했던 매월당 김시습(1435~1493)이 이 지역에 은거하고 난 후 절벽의 이름을 매월대(梅月臺)라고 불렀다. 매월대폭포 역시 김시습의 호를 따 매월대폭포라 칭하며, 다른 이름으로 선암폭포라고도 불린다.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근남면 잠곡리 222-5

구미정
강원도 정선 봉산리에 있는 구미정은 조선 숙종 때 공조 참의를 역임한 수고당 이자선생이 관직을 사직하고 정선에 내려와 은거 생활 중 지은 정자이다. 남한강 상류인 골지천의 넓은 암석 위에 세워진 정자로, 이 정자를 중심으로 주위에 아홉 가지 뛰어난 자연경관을 한눈에 볼 수 있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붙었다. 구미정은 조선시대부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아 온 명승지로, 현재는 강원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정자 주변으로는 소나무 숲과 야영장이 있어 여름에 피서지로도 인기가 많다. 구미정에서 바라볼 수 있는 아홉 가지 아름다운 경관은 다음과 같다. 1) 어량 : 개울에서 물고기가 위로 올라가기 위해 비상할 때 물 위에 통발을 놓아 잡는 물막이인데, 물고기 잡는 장면을 의미한다. 2) 전주 : 주위의 밭두렁이 그림보다 아름답다는 뜻으로 전원경치를 의미한다. 3) 반서 : 주위에 있는 바위들이 섬같이 아름답다는 뜻으로 암석의 경치를 의미한다 4) 층대 : 주위 곳곳에 층층 쌓아 올린 듯한 절벽의 아름다움으로 절벽의 경치를 의미한다. 5) 석지 : 정자 뒤편에 위치한 연못이 바위가 뚫려 생긴 것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연못의 경치를 의미한다. 6) 평암 : 바위 한 개의 넓이가 100평 이상 되고 평평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넓은 바위의 경치를 의미한다. 7) 등담 : 정자에 등불을 밝혀 연못에 비치는 경치로 밤의 경치를 의미한다. 8) 취벽 : 정자 앞 석벽 사이에 있는 쉼터의 경치로 산벽의 경치를 의미한다. 9) 열수 : 구미정 주변 암벽에 줄지어 있는 듯이 뚫려 있는 바위구멍의 아름다움으로 바위구멍의 경치를 의미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임계면 봉산리

아우라지
평창군 도암면에서 발원하여 구절리를 따라 흘러내린 송천과 삼척의 하장면에서 발원하여 임계 쪽을 흘러 온 골지천이 합류하는 곳으로 두 물줄기가 어우러진다 해서 아우라지라고 한다. 여름 장마 때 풍수적으로 양수인 송천 쪽 물이 많으면 대홍수가 나고 음수인 골지천 쪽 물이 많으면 장마가 그친다는 얘기가 전해지는데, 무엇보다 강원도 무형문화유산인 정선아리랑의 노랫가락으로 더욱 유명한 곳이다. (출처 : 국민고향정선 홈페이지)
강원특별자치도 정선군 여량면 아우라지길 69

삼척 준경묘
준경묘는 삼척시 미로면 활기리 능곡에 위치하고 있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5대 조상인 이양무 장군의 묘이다. 아들 이안사와 함께 완산(현재 전주)의 호족 세력으로, 당시 완산주의 지주사와 갈등을 빚으면서 삼척 미로면 활기리로 이주하여 살다가 삼척에 묘지를 두었다. 이안사가 함경도로 이주하며 이양무의 묘는 수백 년 동안 잊혔다. 조선이 건국된 뒤 태조를 비롯한 조선의 임금들은 조상의 무덤을 찾으려고 매우 애썼다. 이곳이 5대조의 무덤이 있는 곳이라 삼척군(三陟郡)을 삼척부(三陟府)로 승격시키는 등 조선 초기부터 능(陵)이라고 불렀지만, 진위가 분명하지 않다. 1899년(광무 3) 영경묘와 함께 묘소를 수축하여 제각과 비각 등을 건축하고 준경묘로 추존하였다. 묘 앞의 제각, 재실과 목조대왕 구거유지비 그리고 이양무 장군 부인의 무덤인 영경묘와 함께 2012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삼척 준경묘와 영경묘는 남한 지역에서 유일한 조선 왕실 선대의 능묘로서 중요한 역사적, 학술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 매년 4월 20일 전주 이 씨 대종 종약원 주관으로 제향을 올린다. 이 일대는 오래된 금강소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찬 솔숲이 있는데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에서 가장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될 정도로 원시림의 경관을 지니고 있다. 산림욕을 하며 산책하기 좋은 명소로 알려져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삼척시 미로면 준경길 333-360

영금정
속초시 동명동 속초등대 밑의 바닷가에 크고 넓은 바위들이 깔려있는 곳이 영금정이다. 지명의 유래는 파도가 바위에 부딪치면 신묘한 율곡이 들려 이 소리를 신령한 ‘거문고’ 소리와 같다고 하여 영금정이라 불린다. 시내에서 가까운 거리에 위치하고 있고, 경치가 빼어나 사시사철 속초시민이 피서와 낚시를 즐기는 곳이다. 현재는 속초시에서 영금정 일대를 관광지로 개발하여, 남쪽 방파제 부근으로 실제 정자를 하나 만들어 놓았다. 이 정자는 영금정 바위 위에 세워진 해상 정자로 50m 정도의 다리를 건너 들어갈 수 있다. 해상 정자에서 바다를 바라보는 느낌은 방파제와는 또 다른 시원한 느낌을 주지만, 정자 자체는 콘크리트 정자여서 아쉬움이 남는다. 대개 해돋이 정자라고 부르는데, 정자 현판에는 영금정(靈琴亭)이라는 글을 써 놓았다.
강원특별자치도 속초시 영금정로 43 (동명동)

춘천향교
향교는 훌륭한 유학자를 제사하고 지방민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나라에서 지은 교육기관이다. 처음 지은 연대는 전하지 않고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 27년(1594)에 다시 지었다. 그 후 여러 차례의 수리가 있었으며, 한국전쟁으로 불탄 것을 1960년에 복원하였다. 지금 남아있는 건물은 대성전과 명륜당·장수루·동재·서재·동무·서무·내삼문 등이다. 대성전은 사당으로 공자를 비롯하여 중국과 우리나라 유학자의 위패를 모시고 있다. 명륜당은 학생들이 모여서 공부하는 강당으로 교화의 원천이 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는 나라로부터 토지와 책·노비 등을 지급받아 운영하였다. 갑오개혁(1894) 이후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지금은 제사의 기능만 남아있다. ‘수춘향약’, ‘향중좌목’, ‘향안’ 등 이 지방 향토사연구에 귀중한 책들을 소장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삭주로 21 (교동)

원주향교
원주향교는 고려 말에 창건되었으나 임진왜란 때 불에 타고, 1603년에 다시 건립하여 많은 선비와 학자를 길러냈다. 한국전쟁 중에 크게 파손되었던 것을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1985년 1월 17일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제98호로 지정되었다가 2022년 11월 25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199호로 승격되었다. 원주향교 건물은 전학후묘로 배치되었으며, 제향공간인 대성전에는 공자(孔子)를 정위로 안자(顔子), 증자(曾子), 자사(子思), 맹자(孟子)의 4성과 송조 2현 주희(朱熹), 정호(程顥), 우리나라 18현 총 25위(位)를 봉안하고 있다. 또한 위패를 모시기 위해 세운 동무(東廡)와 서무(西廡)가 있으며, 강학공간인 유생들이 공부하던 명륜당, 유생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동재(東齋)와 서재(西齋)를 두었다. 원주향교에서는 제향사업인 석전대제(춘·추), 운곡제, 송곡제, 삼토제를 주관하고 있고, 문화행사 및 교육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원주시 향교길 37-1 (명륜동)

고석정국민관광지
고석정(孤石亭)은 철원 9경 중 하나이며 철원 제일의 명승지이다. 한탄강 중류의 현무암 협곡과 강 한가운데 솟은 고석바위, 절벽 위의 정자를 중심으로 조성된 국민관광지이기도 하다. 고석은 약 1억 1천만 년 전 지하에서 형성된 화강암 기반암으로, 이후 현무암 용암에 덮였다가 한탄강의 침식으로 다시 드러난 지질명소이다. 강 양쪽에서는 현무암 주상절리와 수직 절벽, 화강암 바위가 어우러진 독특한 경관을 살펴볼 수 있다. 고석정은 신라 진평왕과 고려 충숙왕이 머물렀다는 기록이 전하며, 조선시대 임꺽정의 활동 무대로도 알려져 있다. 현재의 누각은 한국전쟁과 수해를 거쳐 다시 세운 것이다. 관광지에는 철의삼각전적관과 잔디광장, 산책로, 편의시설이 마련되어 있으며,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고석바위와 한탄강 협곡을 가까이에서 감상할 수 있다. 인근의 직탕폭포와 순담을 함께 둘러보기 좋다.
강원특별자치도 철원군 동송읍 태봉로 1825

영월향교
영월향교는 조선 시대인 1398년(태조 7년)에 창건된 지방 교육기관이다. 조선 시대에는 지방민의 교육과 교화를 담당하는 국립 교육기관으로 기능하였다. 1950년 한국전쟁 당시 대성전을 제외한 모든 건물이 소실되었으나 이후 여러 차례 중수와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영월향교는 전학후묘 형식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앞에, 제향 공간인 대성전이 뒤에 있다. 명륜당은 유생들이 학문을 닦던 공간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이다. 현존하는 건물로는 대성전, 명륜당, 동무, 서무, 동재, 서재, 풍화루 등이 있다. 대성전은 유교의 성현들을 모시는 곳으로 정면 5칸, 측면 3칸의 겹처마 팔작지붕 건물이다. 대성전에는 공자, 안자, 증자, 자사자, 맹자 등 중국의 오성, 공문십철, 송조 육현과 우리나라 십팔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 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교육하였다. 갑오경장 이후 교육 기능은 사라지고 현재는 석전과 분향을 통해 유교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영월향교길 64

영월 정양산성(왕검성)
영월읍 정양산에 있는 삼국시대의 산성이다. 남한강에 돌출된 정양산의 자연지형을 잘 이용하여 돌로 쌓았으며, 삼국이 한강 유역을 놓고 다투던 5세기 말부터 6세기 초에 처음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후 조선 전기까지 계속 사용되었다. 충주의 중원고구려비, 단양의 온달산성과 더불어 중부지방에 소재한 고구려의 문화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봉황산 줄기 끝 해발 550m 지점, 가파른 산봉우리에 있어 산성으로서의 입지조건이 매우 좋다. 성의 전체적인 평면 모습은 서북쪽을 향하여 넓은 사다리꼴을 이루고 있다. 이 성은 내성과 외성으로 크게 구분되는데, 내성의 둘레는 1,060m, 외성의 둘레는 570m로서 성벽의 총 연장은 1,630m에 달한다. 우리나라의 고대 산성 중에서 성벽 규모만으로 볼 때 최대로 꼽히고 있는 보은의 삼년산성과도 견줄만하다. 외성은 고려 시대 이후 내성의 수용력을 증대시키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서 많은 부분을 천연의 절벽을 성벽으로 삼고, 필요한 부분에 인공의 성벽을 축조하는 등 응급적인 상황에서 축조되는 중세적 특징을 보여준다. 정양산성은 한강 상류지역에서 가장 중요한 산성일 뿐만 아니라 성벽과 문터, 곡성과 치성, 그리고 후대의 외성과 차단벽을 갖춘 유일한 산성으로 보존상태도 양호하여 역사적으로나 학술적으로 가치가 높다. 이 산성에서는 남한강을 따라 영월로 들어오는 적의 동태를 손쉽게 알 수 있다. 그뿐만 아니라 지리적으로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어 삼국의 영토 확장에 각축장이 되기도 했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중앙로 628

영월 청령포
청령포는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상류에 있는 이곳은 왕위를 빼앗기고 영월로 유배된 단종이 머무르던 곳이다. 조선 제6대 왕인 단종은 숙부인 수양대군에게 왕위를 선위하고 상왕으로 있다가 그다음 해인 1456년 성삼문 등 사육신들의 상왕복위의 움직임이 사전에 누설됨으로써 상왕은 노산군으로 강봉 되었다. 이후 첨지 중추원사 어득해가 거느리는 군졸 50인의 호위를 받으며 원주, 주천을 거쳐 이곳 청령포에 유배되었다. 청령포는 동, 남, 북 삼면이 물로 둘러싸이고 서쪽으로는 육육봉이라 불리는 험준한 암벽이 솟아있어 나룻배를 이용하지 않고는 밖으로 출입할 수 없는 곳이었으며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 생활을 했고, 당시에는 이곳에 거처할 수 있는 집이 있어 호장 엄흥도는 남몰래 밤이면 이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전한다. (출처 : 영월군 문화관광 홈페이지)
강원 영월군 남면 광천리

장수대
인제 장수대는 내설악 한계리에서 옥녀탕과 하늘벽을 지나 대승령 등산로의 기점 부근에 있는 산장이다. 이곳은 6.25전쟁 중 설악산 전투에서 산화한 장병들의 넋을 달래고 설악 전투의 대승을 기념하기 위하여 지어진 건물로, 현재는 한계령과 하늘벽 설악산 대승폭포를 찾는 관광객 및 등산객의 휴식처 및 산장으로 애용되고 있다. 기암괴석과 낙락장송이 우거진 곳에 있는 이곳은 인근에 대승폭포, 옥녀탕, 가마탕, 한계산성 등 유명 관광지가 많다. 따로 이곳만 찾는 관광객도 있을 정도로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장수대 코스의 하이라이트는 단연코 대승폭포이다. 개성 박연폭포, 금강산 구룡 폭포와 더불어 우리나라 3대 폭포 중 하나로 꼽을 만큼 절경을 자랑한다.
강원특별자치도 인제군 북면 한계리
강릉향교
강릉향교는 문헌에 기록으로 남아 있는 우리나라 최초의 향교이고, 조선시대 향교에서 모셨던 성현과 선현들의 위패를 지금까지 모시는 유일한 향교이다. 주요 건물 중에서 강릉향교 대성전, 강릉향교 명륜당, 강릉향교 동무, 서무, 전랑 등이 보물로 지정되었다. 그중 맨 앞쪽에 자리한 명륜당은 1413년 ‘남루’라는 누각으로 처음 세워져 중수를 거듭했다. 이 누각이 교육 공간인 명륜당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대대적인 중수를 마친 1644년 이후부터였다. 현재는 전면 11칸, 측면 2칸 규모의 건물로서 우리나라 향교의 명륜당 가운데 가장 크다. 처음 창건된 시기는 확실하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고려 말기에 현유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중등교육과 지방민의 교화를 위해 창건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뒤 소실되었다가 1313년에 강원도 안무 사인 김승인이 화부산 아래에 설립하였는데, 1411년에 다시 소실되자 강릉 대도판관 이맹상이 유지 68인과 발의하여 1413년에 중건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 전적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으나, 현재는 교육적 기능은 없어지고 봄,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고 초하루,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으며,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명륜로 29
강릉 임영관 삼문
강릉 임영관 삼문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용강동에 있는 문 중 하나로, 1962년에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강릉의 자랑이자 명소로 자리 잡았다. 옛 명칭은 ‘강릉 객사문’이었는데, 2010년 4월부터 ‘임영관 삼 문’이라 부르게 되었다. 임영관 삼 문은 단층의 맞배지붕으로, 3칸 2호의 장중한 형태를 갖춘 우수한 팔각 문이다. 건립되었던 연대는 분명하지 않으나 그 건축 방식으로 보아서 조선 초기의 것으로 추정된다. 비록 규모는 작지만, 한국 목조 건축사상 뛰어난 구조와 아름다움을 갖추고 있는 선조들이 물려준 아름다운 유산이다. (출처 : 강릉시 문화관광 홈페이지)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임영로131번길 6

강릉 경포대
강릉 경포대는 강릉을 대표하는 명승지 중 하나로, 국가지정문화재 보물 제2046호로 지정되어 있다. 고려시대의 문화를 보여주고 있는 관동팔경의 하나이며, 경포 호수 북쪽 언덕에 있는 누각이다. 고려 충숙왕 13년에 창건한 후 한차례 이건과 수차례 중수 기록이 대부분 자세히 남아있으며, 특히 창건 이전의 기록도 남아있어 시대별 변화과정을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정자이다. 이름인 ‘경포대’ 전자체 현판은 유한지의 글씨이고, 해서체 현판은 이익회의 글씨이다. 경포대 내부에는 숙종의 직접 지은 ‘어제시’와 율곡 이이가 10세에 지었다는 ‘경포대부’를 비롯해, 조하망의 상량문 등 수많은 명사와 시인 묵객의 글이 게시되어 있다. 누각 주위에는 소나무와 상수리나무들이 알맞게 우거져 운치 있는 경관을 이루고 있다. 경포 8 경과 경포월삼은 천하의 장관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경포대 주변 관광지로는 오래된 소나무 숲과 벚나무가 어우러진 경포호가 위치하고 있으며, 경포호를 동해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해안사주는 경포해수욕장을 이루고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경포로 365

송담서원(강릉)
강릉에 위치한 송담서원은 문성공(文成公) 율곡 이이를 제향 하는 서원으로, 창건당시는 구정면 학산리 왕고개에 있었으며, 서원의 이름도 석천서원(石川書院)이었다. 학산리에서의 창건은 인조 2년(1624)에 강원감사 윤안성(尹安性), 강릉부사 강주(姜紬)와 지방민인 김몽호(金夢虎), 이상필(李尙馝)등이 주동이 되어 세웠고, 효종 3년(1652) 강원감사 김익희(金益熙)와 강릉부사 이만영(李晩榮)등이 협의하여 현재의 위치로 옮겨지었다. 이때의 건물 규모는 사당(祠堂) 6칸, 월랑(月廊) 7칸, 동·서재(東·西齋) 각 3칸, 강당 10칸, 광제루(光霽樓) 3칸, 서고(書庫) 2칸 등으로 구성되었다. 현종 1년(1660)에 송담서원(松潭書院)이라 사액(賜額)을 받았고 묘정비(廟庭碑)는 1726년에 영의정 정호(鄭澔)가 글을 짓고 우의정 민진원(閔鎭遠) 이 글을 썼다. 순조 4년(1804) 큰 산불로 서원 건물 대부분이 소실되었고, 그 뒤 지방유림들이 일부 중건하였으나 고종 8년(1871) 서원 철폐령에 의해 철거되었다. 고종 42년(1905) 지방유림의 모금으로 사당을 다시 짓고 매년 음력 2월 중정일(中丁日)에 제례를 올리고 있다. 1971년 송담사 6칸이 건립된 것을 비롯하여 이후 동·서재, 삼문 등을 복원하였다. 현 건물의 구조는 ‘송담사(松潭祠)’라는 현판이 걸려있는 사당과 대문(大門), 중문(中門). 재실(齋室), 묘정비(廟庭碑)가 있으며 재실에 걸려있는 ‘송담재(松潭齋)’는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의 글씨이다. (출처 : 강릉시청)
강원특별자치도 강릉시 강동면 송담서원길 27-7

두타산성
두타산은 동해시 삼화동과 삼척시 하장면 및 미로면의 분기점이 되는 산으로, 동해와 불과 30리 거리에 있어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는 명소이다. 산이름인 ‘두타’는 ‘속세의 번뇌를 버리고 불도 수행을 닦는다’는 뜻이다. 두타산성과 4㎞ 거리를 두고 청옥산과 함께 이어져있으며, 두 산을 연계하여 종주 산행이 가능하다. 두타산성은 동해시 서쪽 먼 곳에 우뚝 솟아 있으며, 과거 봄가을로 기우제를 지내기도 하였으며, 산세가 웅장하고 산림이 우거져 곳곳에 사찰과 유적지, 명승지가 많은 산성이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삼화로 538 (삼화동)

만경대
동해 시청에서 동쪽으로 1㎞쯤 떨어진 동해안에 있는 만경대는 삼척 김 씨 김훈이 만든 정자이며, 그동안 풍파로 폐허가 된 것을 60년 전에 삼척 김 씨들이 다시 세웠다. 정자에 올라 동쪽을 바라보면 망망대해가 파도치는 모습이 눈앞에 보인다. 공의 자는 원충, 호는 신당이며 신당 공 훈은 성품이 영매하여 청렴하고 곧은 지조로 관리로 일하다가 1613년(광해군 5년)에 향리에 돌아와 동 회리(신당촌)에 살면서 만경대를 창건하고 풍광을 즐기면서 갈매기를 벗 삼아 낚시로 세월을 보냈다. 동쪽은 끝없는 동해바다이고 북쪽은 긴 해변 푸른 소나무가 10리가량 펼쳐지며 서쪽으로는 장엄한 두타산 경관이 뒤뜰과 함께 눈앞에 펼쳐지고 높은 벼랑 아래 전천강이 유유히 동해로 흐르니, 만경대는 삼척의 죽서루와 쌍벽을 이루어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1660년(현종 원년) 문신이자 학자인 미수 허목(1595~1682)이 주변 경관에 감탄하여 만경이라 하였는데 그 후부터 만경대라 불렀다 한다. 1786년(정조 20) 부사 유한 전이 시를 읊어 현판으로 남겼고 1872년(고종 9) 중수하였을 때 공조판서 김원식이 상량문을 짓고 한성부윤 이남식이 해상 명구라는 현판을 남겼다.
강원특별자치도 동해시 공단12로 77 (구호동)
![영월 장릉(단종) [유네스코 세계유산]](https://tong.visitkorea.or.kr/cms/resource/15/4041415_image2_1.png)
영월 장릉(단종) [유네스코 세계유산]
장릉은 조선 6대 단종(재위 1452~1455)의 능이다. 단종이 1457년(세조 3) 노산군(魯山君)의 신분으로 세상을 떠나자 영월호장 엄흥도(嚴興道)가 단종의 시신을 몰래 거두어 현재의 자리에 가매장하였다. 이후 1516년(중종 11) 묘를 찾아 봉분을 만들었고, 1580년(선조 13)에 석물을 세운 후 제사를 지냈다. 1698년(숙종 24) 단종으로 왕의 신분이 회복되어 능의 이름을 장릉이라 하고,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조성하였다. 장릉은 일반적인 조선왕릉과 다르게 단종의 충신들을 위한 건조물이 있다. 장릉 입구에는 노산군묘을 찾아 제사를 올린 영월군수 박충원(朴忠元)의 뜻을 기린 낙촌비각(駱村碑閣), 재실 옆에는 단종의 시신을 거두어 묘를 만든 엄흥도의 정려각(旌閭閣), 단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종친, 충신, 환관, 궁녀, 노비 등 268명의 위패를 모신 장판옥(藏版屋)과 이들에게 제사를 올리는 배식단(配食壇)이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영월군 영월읍 단종로 190

낙산사 의상대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서 홍련암의 관음굴로 가는 바닷가 절벽 위에 자리한 정자다. 의상대의 ‘대’란 주변 경치를 감상하기 위해 지은 집을 말한다. 의상대에서 바라보는 동해와 해안 절경이 빼어나 양양 8경에 이름을 올렸고, 낙산사에서 반드시 들려야 할 곳으로 손꼽힌다. 송강 정철의 「관동별곡」에서 소개한 관동팔경(강원도 영동의 여덟 군데 명승지) 중 하나로, 동해안 일출이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양양 낙산사 의상대와 홍련암」이라는 이름으로 명승에 지정되어 있다. 낙산사 의상대는 의상대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1925년에 지은 정자다. 의상대사는 신라 문무왕 11년(671)에 낙산사를 창건한 고승으로, 절 곳곳에 그와 관련한 전설이 전해진다. 중국 당나라에서 돌아온 의상대사가 낙산사를 지을 때 지금 의상대가 있는 자리에서 산세를 살피고 좌선 수행을 했다고 알려져 있다. 현재의 의상대는 1995년에 육각정으로 복원된 모습이다.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강현면 낙산사로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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