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국 관광지 182페이지

총 12,602개의 관광지 중 182페이지입니다.

윌리엄해밀턴쇼 동상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윌리엄해밀턴쇼 동상

이곳은 미국 선교사 윌리엄 얼 쇼(William Earl Shaw, 서위렴)의 아들로 평양에서 태어나 한국인 친구들과 자라난 윌리엄 해밀턴 쇼(William Hamilton Shaw, 서위렴 2세)가 목숨을 바쳐 한국을 사랑한 이야기가 서려있는 곳이다. 그는 한국 선교사로 일하기 위해 하버드에서 박사 학위 과정을 밟던 중 한국 전쟁이 일어난 소식을 듣자 자기 가족들의 안위와 젊은 자신의 빛나는 미래를 뒤로 하고 해군 대위로 자원 참전하였다. 인천상륙작전 시 정보장교로서 작전 성공에 기여하였으며, 서울 탈환 부대를 이끌며 진격하던 중 1950년 9월 22일 서울 은평구 녹번동에서 기관총으로 중무장한 북한군의 공격을 받고 28세 일기로 전사하였다.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를 우리 정부로부터 을지무공훈장을, 미국 정부로부터는 은성무공훈장을 각각 추서 받았으며, 2023년 윌리엄 해밀턴 쇼 대위는 한국전쟁 시 군목으로 참여한 그의 아버지 윌리엄 얼 쇼(목원대학교의 전신인 ‘감리교대전신학원’의 창립이사이자 신약학 교수)와 함께 ‘한·미 참전용사 10대 영웅’으로 선정되었다. 숭고한 희생을 널리 전하고자 조형물을 건립하였다.

서울특별시 은평구 녹번동

성재 이시영선생 동상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성재 이시영선생 동상

성재이시영선생동상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몸을 바치신 김구선생동상과 함께 남산공원 백범광장 내에 세워져 있다. 성재 이시영 선생은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전 재산을 바쳐 투신한 명문가의 다섯째 아들로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지냈다. 일제에 국권을 빼앗긴 당시, 형 건영, 석영, 철영, 회영, 동생 호영과 함께 6형제가 전 재산을 바쳐 독립운동에 투신한 명문가 출신으로,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했다. 선생은 일찍이 관직 생활을 시작하였고 1910년 일제에 의하여 국권이 피탈당하자 형제, 가족과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그곳에서 경학사와 신흥무관학교를 설립하여 교육을 진흥하고 수많은 독립군을 양성하여 청산리 전투를 승리로 이끄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 1919년 상해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법무총장, 재무총장으로 재직하며 1945년 해방 시까지 임시정부를 끝까지 지켰다. 광복 후 환국하여 신흥무관학교의 건학이념을 계승하고 인재를 양성하기 위하여 1947년 성재학원 신흥대학(현 경희대)을 설립하였다. 1948년 7월 제헌국회에서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에 당선되었으나 독재 정권에 항의하며 1951년 5월 ‘국민에게 고함’이라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부통령직을 사임하였으며, 1953년 피난지인 부산 동래에서 서거하셨다.

서울특별시 중구 회현동1가

송재서재필선생상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송재서재필선생상

전남 보성 출신 개화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인 서재필 선생을 기리기 위하여 서대문독립공원 내에 건립된 동상이다. 송재 서재필 선생은 1896년 4월 7일 한국 최초의 민간신문인 '독립신문'을 발간하였다. 윤치호, 이상재 등의 협력을 얻어 독립협회를 창립하여 종래 중국을 사대하던 상징인 영은문을 헐고 그 자리에 국민의 성금을 모아 한국독립의 상징으로서 독립문을 세웠으며, 종래의 모화관을 개수하여 독립관으로 고치고 독립협회의 집회장소와 사무실로 사용하였다. 또한, 토론회를 통해 시민들을 모아 나라의 독립과 개혁에 대한 토론을 시키고 만민공동회를 조직하여 러시아의 부산 절영도 조차[租借] 요구를 반대하는 등 국민의 독립사상과 민권사상을 크게 신장시켰다. 1919년 3.1 운동 이후 임시정부가 워싱턴에 구미위원회를 설치하자 그 위원장을 맡아 독립운동을 위한 외교활동을 전개하였고 전 재산을 독립운동의 경비에 바치는 등 조국의 독립을 위하여 헌신하셨으나 1951년 1월 5일 미국에서 87세의 생을 마감하였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통일로 251 (현저동)

순국선열추념탑
역사관광서울특별시

순국선열추념탑

일제가 우리나라의 국권을 침탈하고 지배하던 일제강점기에 수많은 애국선열들이 목숨을 걸고 일어나 항일 의병전쟁, 안중근, 강우규, 이봉창, 윤봉길 같은 의열투쟁, 3·1 독립운동, 봉오동전투, 청산리전투 같은 독립군전투, 대한민국임시정부, 광복군 등에 참여하여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싸우다가 순국하거나 혹은 일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순국선열유족회는 이들을 기리기 위하여 1992년 8월 15일 순국선열추념탑을 세웠다. 독립운동의 역정이 조각되어 있으며 중앙에 새겨진 태극기상은 우리 민족의 드높은 독립의지를 상징하고 있다.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현저동

안중근의사 동상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안중근의사 동상

안중근의사 동상은 독립운동에 투신하여 순국하신 안중근의사의 숭고한 뜻을 기리고 그 애국정신을 후세에 널리 전하기 위하여 2010년 10월 22일 재건립되었으며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직후 태극기를 꺼내든 당당하고 떳떳한 모습으로 안중근의사 기념관의 입구에 위치한다. 안중근의사는 우리나라를 식민지화한 민족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항일 독립운동의 핵심 인물로 현재 그의 동상과 기념관이 위치한 장소는 일제 식민 통치의 상징물이었던 남산 조선신궁이 건립되었던 곳으로 항일운동의 역사에서 상징성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서울특별시 중구 남대문로5가

우남 이승만박사 동상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우남 이승만박사 동상

우남 이승만 박사 동상은 배재고등학교 내 자리한 동상으로 이승만 박사의 독립운동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1984년 건립되었으며 높이 3m, 폭은 1m이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였던 우남 이승만은 현재 동상이 위치한 배재고의 전신인 배재학당에 입학 후 신학문을 배워 개화기 언론과 독립협회의 개혁 운동을 주도하다가 옥고를 치렀다. 석방 후 미국으로 건너가 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해외에서 조국 광복을 위한 외교와 민족교육 및 홍보활동을 펼쳤다. 광복 후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과 함께 초대 대통령을 지냈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고덕로 227 (고덕동)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유관순열사상

천안 아우내 장터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중에서 순국한 유관순 열사를 기리기 위해 1973년 어린이대공원 내 방문자센터 뒤편 계단 위에 유관순 열사 동상이 세워졌다. 이 석조 동상은 태극기를 등 뒤로 휘날리며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는 모습을 형상화하였으며 작지만 역동적인 조형미로 강한 인상을 준다. 검은 좌대에는 ‘순국처녀 류관순’이라는 문구가 간결하게 새겨져 있어 그녀의 굳센 기개를 상징한다.

서울특별시 광진구 능동로 216 (능동)

의열사(용산)
역사관광서울특별시

의열사(용산)

의열사는 효창공원 내에 묘역이 있는 애국 선열들의 영정을 모신 사당으로, 대한민국 임시정부 주석 김구, 임시정부 요인(임정 의정원 초대 의장 이동녕, 군무부장 조성환, 비서장 차이석), 3의사(이봉창, 윤봉길, 백정기 선생) 등 7인의 영정이 모셔져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60주년인 1979년 4월 13일 합동 추모제전을 봉행하였으며, 해마다 임시정부 수립 기념일에 연례적으로 제전을 봉행해 오고 있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원로 177-18

불바라기약수터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불바라기약수터

불바라기 약수터는 폭포 길이 30m에 달하는 청룡, 황룡폭포 두 폭포가 있는 아름답고 인적이 드문 청정지역이다. 폭포 중간에서 샘솟는 신비스러운 약수로서 철분 등 몸에 좋은 물질을 많이 함유한 탄산수로서 위장병, 피부병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과거 양양지방은 철이 풍부한 고장으로 유명했으며, 이곳 미천 계곡 곳곳에서 철을 이용하여 농기구 등을 제작하던 대장간이 많아 불바닥을 이루었다 하며, 불바닥이 변천하여 불바라기로 전해진다.

강원특별자치도 양양군 서면 미천리

이봉창 의사 동상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이봉창 의사 동상

효창공원 안에 위치한 이봉창 의사 동상은 의사의 숭고한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기리고자 동아일보사의 후원을 받아 건립한 동상이다. 이봉창 의사는 서울 용산구에서 태어나 용산 문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이후 용산역 전철수로 일하다 조선인으로서 받는 차별을 경험하고, 1925년 일본으로 건너갔으나 그곳에서도 조선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을 받았다. 1930년 12월 상해로 건너간 후, 이듬해 1월 김구선생을 만나 독립투쟁에 투신할 것을 맹약하고 한인애국단에 가입하여 일왕 처단 거사를 계획하였다. 1931년 1월 8일 일본 경시청 앞에서 일왕 히로히토를 겨냥해 수류탄을 던졌으나 명중시키지 못하고 현장에서 바로 체포되었다. 1932년 10월 10일 일본 이치가야 형무소에서 32세의 나이로 순국, 이후 1946년 국민장이 거행되었고 효창원에 안장되었다. 효창공원에는 의열사 등 대한민국의 독립을 위해 힘쓴 분들을 위한 공간이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효창원로 177-18 (효창동)

이원등 상사상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이원등 상사상

한강의 노들섬에 있는 이원등상사상은 거룩한 전우애와 희생정신을 보여준 이원등 상사의 정신을 본받기 위해 세운 동상이다.이원등 상사는 1966년 2월 4일 공수특전단 고공 침투 낙하 조장으로 고공강하 훈련 중 동료의 낙하산이 기능 고장을 일으키자, 전우의 낙하산을 개방시켜주고 자신은 한강에 추락하여 순직하였다. 그의 거룩한 전우애와 희생정신을 길이 본받기 위하여 육군에서 1966년 2월 16일 이원등상사 기념사업위원회를 구성하여 전 장병의 정성어린 성금으로 동상을 세웠다. 이후 오랜 세월 속에 훼손된 동상을 특수전부대 전 장병의 뜻을 모아 1998년 6월 5일 새롭게 단장하였다. 노들섬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라이브하우스, 노들서가, 노들갤러리, 노들라운지, 다목적홀 등의 많은 즐길거리가 있다.

서울특별시 용산구 양녕로 446 (이촌동)

이탈리아 의무부대 6·25전쟁 참전기념비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이탈리아 의무부대 6·25전쟁 참전기념비

6·25전쟁 당시 이탈리아는 UN의 비회원국이었지만 국제적십자연맹의 구조 도움 호소로 1951년 10월 16일 의무장교 6명, 행정관 2명, 약제사 1명, 군목 1명, 간호사 6명, 하사관 6명, 사병 45명 등 67명을 우리나라에 파견, 서울우신초등학교에 의무부대를 주둔시켰다. 이탈리아 의무부대는 전사상자뿐 아니라 민간이 치료까지 담당하여 1955년 1월 30일까지 군인과 우리 국민 등 23만 명을 치료하였고, 특히 민간인 기생충 박멸에 심혈을 기울였으며, 1952년 9월 17일 영등포 열차 사고 때에는 신속하게 조치하여 인명 피해를 최소화하였다. 1989년 6월 2일 주한 이탈리아 대사 그라치엘라 심볼로띠가 이탈리아 의무부대의 숭고한 헌신을 기리기 위해 당시 주둔지였던 서울우신초등학교 교사 벽면에 기념표석을 설치하였으나, 1999년 7월 말 등 건물이 철거되자 대한민국 국가보훈부의 지원으로 1999년 8월 10일 현 위지에 비를 세워 이전 설치하였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신길로 190 (신길동)

일성이준열사동상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일성이준열사동상

일성이준열사동상은 이준 열사의 애국 항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장충단 공원 내에 건립되었다. 이준 열사는 1859년 함남 북청 출신으로 독립협회에 가입하여 1898년 11월의 만민공동회에서 가두연설을 하는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1904년 대한보안회를 조직하여 일본의 황무지 개간권 획득을 저지하는 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일진회에 대항하여 공진회를 조직하고 친일적인 대신들을 규탄했으며 애국계몽 운동에 힘썼다. 1907년 광무황제로부터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개최되는 만국평화회의에 참석하라는 밀령을 받고 이상설, 이위종과 함께 헤이그에 도착하여 황제의 친서를 전달했으나 일제의 방해로 회의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자 일제의 한국 침략을 폭로하고 을사늑약이 무효임을 선언하는 공고사를 공개하여 세계 언론의 여론을 환기했다. 그러나 각국의 언론들이 협조적인 데 비해 열강들이 냉담한 반응을 보이자 이에 분개한 열사는 연일 통탄하다가 순국하였다.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57-8 (장충동2가)

대구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
문화관광대구광역시

대구 평화시장 닭똥집 골목

대구는 양념통닭과 간장치킨의 발상지고 치맥을 축제로 승화시킨 치맥페스티벌의 중심지이며 서민들의 애환과 함께 성장해온 전국 유일의 닭똥집골목인 대구평화시장닭똥집골목은 50여년의 역사를 지닌 곳이다. 1972년 삼아통닭은 넉넉잖은 형편의 인력시장 노동자들에게 장사를 하다가 남은 닭똥집을 튀겨 막걸리 안주로 내어 주었는데 반응이 좋아 정식 메뉴가 되었다. 가난한 노동자들을 위로하기 위해 만들었던 음식이 닭똥집 골목 역사의 첫 출발이었다. 삼아통닭 닭똥집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주변의 음식점들이 모두 닭똥집을 파는 가게로 변하게 되어 닭똥집 골목이 형성 되었고 이를 원조골목이라고 부른다. 90년대 들어오면서 당시 근처에 마땅히 갈 곳이 없던 대학생들은 재래시장의 선술집 분위기와 저렴한 가격, 푸짐한 인심을 즐기며 이곳을 찾아 청춘의 추억을 쌓았고 골목의 인기가 높아지자 주변 골목도 닭똥집 가게들로 채워졌다. 2000년대 들어오면서 간장똥집, 마늘똥집 등 새로운 감각의 닭똥집 전문점이 생겨나기 시작하면서 동성로만 찾았던 젊은이들의 모임 장소로 유명해 지게 되었다. 젊은층이 많이 찾으면서 그들의 입맛에 오징어똥집, 새우똥집, 문어똥집 등 다양한 퓨젼요리가 판매되었다. 이렇게 이어져 온 닭똥집골목은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의 장소, 젊은이들에게는 가성비가 좋고 맛있는 음식이 즐비한 젊음의 거리, 관광객들에게는 닭똥집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경험하게되는 곳으로 꼭 한번은 방문해야 할 대구를 대표하는 먹거리 골목이다. 동대구역이 인접하여 접근성이 매우 뛰어나며, 주변으로 금호강변에 동촌유원지를 비롯해 기상대 기념공원 등이 있어 휴식공간도 같이 즐길 수 있으니 시장에 들러 특별한 오감을 즐겨보자.

대구광역시 동구 아양로9길 6

존비코올터장군상
문화관광서울특별시

존비코올터장군상

서울 어린이대공원 후문 입구 을지문덕장군 동상 맞은편에 있는 존 비 코올터 장군 동상이다. 6·25 전쟁이 끝난 후 초토화된 우리나라의 재건에 힘쓴 공로로 1959년 10월 이태원에 동상을 건립했다. 이후 1977년 서울 어린이대공원으로 이전하였다. 6.25전쟁에서 위기일발의 포항 전투에서 미 제8군 부사령관이었던 존 비 코올터 장군(1891~1983)은 1950년 전쟁 발발 당시 제1군단의 지휘를 맡아 8군의 일부로 활동을 재개하여 북한의 전진을 정지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9월 북한에 대해 반격을 위한 지원부대를 통솔했다. 1952년부터 1958년까지 퇴역 이후 국제 유엔 한국 재건단의 단장으로 한국의 재건을 위한 2억 달러 이상의 지출에 대한 감독했다.

서울특별시 광진구 천호대로 662 (능동)

한강방어 백골부대 전적비
문화관광서울특별시

한강방어 백골부대 전적비

한강방어선 전투는 6·25전쟁 초기 6월 28일부터 7월 4일까지 국군 3개 사단이 한강에 방어선을 구축하여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한 전투이다. 당시 서울 삼각지에 주둔해 있던 제18보병연대(백골부대)는 6·25전쟁이 발발하자 2대대와 3대대를 동두천 일대에 투입하고, 1대대는 삼각이 일대에 배치하였다. 그러던 중 6월 28일 새벽, 한강인도교가 폭파되면서 1대대의 지휘체계가 분산되자 당시 3중대장 김상덕 중위를 삼각지에 진지를 구축하여 시가전을 전재했다. 하지만 수적 열세에 밀려 영등포 일대로 이동하여 한강방어선에 진지를 구축하고 전투를 수행했다. 제18보병연대는 열악한 장비와 병력에도 불구하고 북한군과 접전을 벌여 7일 동안 단독으로 영등포를 방어하였다. 한강방어 작전의 성공으로 국군은 전쟁 초기 피해를 수습하여 장비와 병력을 재편성할 수 있었으며, 미 지상군의 참전할 수 있는 시간을 확보하여 반격의 발판을 마련하였다. 백골부대 장병들의 이러한 희생과 공헌을 기리기 위해 50여 년이 지난 2003년 10월 1일, 백골전우회에서 양화인공폭포공원 내에 이 비를 세웠으나, 월드컵대교가 건설되면서 2020년 6월, 6·25전쟁 당시 백골부대 장병들이 사수하였던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여의동로 지하343 (여의도동)

역사관광서울특별시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는 세계평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위해 제출되었던 서한을 기념하는 비이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한국 유림은 파리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한국의 독립을 호소하는 서한을 제출해 독립 의지를 세계만방에 떨친 공헌을 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대통령희사금과 국민의 성금 등으로 서울 중구 장충단공원에 비를 건립하였다. 세계평화회의에 제출된 서한은 [파리장서]로서 일제의 한국 주권 찬탈 과정을 폭로하고 식민 지배의 불법성과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주장하여 한국의 모든 계층과 사회 집단이 독립을 열망하고 있음을 국내외에 널리 알렸던 서한이다. 곽종석, 김복한을 비롯하여 유림 대표 137명이 연서한 이 장서를 김창숙이 상해로 가져가도록 하였고 이를 다시 김규식을 통하여 파리 강화회의에 제출되었다. 또한, 각국 대표와 외국 공관과 국내 각지의 향교에도 배포되었다. 일본은 [파리장서] 운동에 참여한 유림을 체포 투옥하는 등 가혹하게 탄압하였으며(제1차 유림단 사건), 이 사건을 계기로 유림계는 한 말 구국운동의 전통을 계승하여 독립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장충단공원에 처음 기념비가 세워진 이후 1977년 경상남도 거창, 1997년 대구 월곡역사공원, 2008년 전라북도 정읍사공원, 2014년 경상북도 봉화군 송록서원 등 곳곳에도 기념비가 세워지게 되었다.

서울특별시 중구 동호로 257-8 (장충동2가)

해공신익희선생동상
문화관광서울특별시

해공신익희선생동상

독립운동가로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과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해공 신익희 선생의 공적을 기려 강동구청 주관으로 천호동에 동상을 건립하였다. 해공 신익희선생은 1894년 경기 광주 출신으로 1910년 한성관립외국어학교 졸업 후, 1912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에 입학하여 유학생 통합단체인 학우회를 조직하고 기관지 학지광을 발간하며 민족정신과 독립사상을 고취하였다. 1913년 귀국하여 고향에 동명강습소를 열어 신문화와 개화사상을 보급하였으며, 1919년 독립선언문을 배포하며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그 해 일경의 체포령을 피해 상해로 망명, 임시정부 수립에 참여하여 내무차장, 국무원비서장, 외무총장 서리, 내무부장 등을 역임하시고 조국의 광복을 맞아 귀국하였다. 귀국 후 민주당 최고위원 및 국회의장을 역임하고 1956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이다 유세 가던 중 열차에서 뇌내출혈로 서거하였다.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3동 448-49호 (천호동 마을마당 내)

해병대 104고지 전적비
역사관광서울특별시

해병대 104고지 전적비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에 서울 서쪽 관문인 104고지 탈환 작전 중 전사한 해병대 장병들을 추모하기 위해 해병대 사령부에서 1982년 9월 28일 이 비를 세웠다. 인천상륙작전의 성공으로 해병은 서울 탈환을 목적으로 계속 진격하던 중 1950년 9월 21일 서울의 서쪽 관문인 104고지에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104고지 점령은 서울시민 구출의 선도를 여는 계기가 되기 때문에 해병은 결사적 반격을 가했다. 그러나 북한군은 완강히 저항했고 3주간의 끝없는 혈전으로 한 개 중대 중 26명만 생존하는 처절한 혈전 끝에 고지를 탈환했다. 적은 104고지 일대를 요새화하여 난공불락을 호언하며 서울 사수의 최후방어선으로 확보 중에 있었으나 인천상륙작전을 성공한 한미해병대는 공격을 계속했다. 해병 제1대대가 104고지를 조기에 탈취 역사적인 수도탈환작전에 결정적인 기여를 함으로써 상승해병의 위용을 만천하에 떨쳤다. (출처 : 국가보훈부)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연희동

호국무공수훈자공적비
문화관광서울특별시

호국무공수훈자공적비

6.25 전쟁에서 나라를 지키고 베트남전에서 세계평화를 위해 용전분투한 무공수훈자들의 업적과 숭고한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성동구 및 무공수훈자회 성동구지회의 정성과 의지를 모아 6.25 전쟁 60주년이 되는 2010년에 건립되었다. 공적비는 원형좌대의 계단 위에 제1 탑(공적비명), 제2 탑(무공수훈자명단 279명), 제3 탑(취지문, 후원기관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규격은 가로 6.8m, 세로 6.8m, 높이 5m이다.

서울특별시 성동구 용답동

호국충혼위령비
역사관광서울특별시

호국충혼위령비

서울 지하철 9호선 개화역에서 도보로 약 15분 거리에 개화산호국공원이 있다. 이 공원 안에는 6·25 전쟁 당시 전사한 장병들의 넋을 기리는 호국충혼위령비가 위치해 있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무력 남침으로 조국이 위기에 처하자, 육군 제1사단 11·12·15 연대 소속 장병 1,100여 명은 김포지구로 후퇴하였다. 이들은 6월 26일부터 30일까지 개화산에서 최후의 방어진을 구축하고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전투 중 본부와 통신이 두절되고 탄약과 보급이 끊기면서 병력과 화력에서 밀려 모두 전사하였다. 이 비극적인 전투에서 장병들은 개화산 골짜기에서 끝까지 저항하며 산화하였다. 그들의 희생을 기리기 위해 1994년 개화산에 위령비가 세워졌다. 위령비는 높이 4.7m이며, 팔각형 비석 받침은 가지런히 모은 두 손과 연꽃을 형상화한 구조이다. 비석 좌측에는 전사자 1,100여 명의 이름이, 우측에는 참전유공자·무공수훈자·생존자 이름이 새겨져 있다. 매년 6월 28일에는 이곳에서 위령제가 거행된다.

서울특별시 강서구 개화동로13길 56-33

자연관광강원특별자치도

삼봉약수

홍천군 내면 광원리에 있는 약수터 물로 2011년 1월 13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홍천군·양양군·인제군의 경계를 이루는 백두대간의 남쪽에 있으며 가칠봉·응복산·사삼봉 등 세 봉우리를 연결한 중심에 위치하고 있다. 1987년에는 한국의 명수 100선에 선정되었다. 가칠봉 삼봉약수로도 알려져 있으며 조선시대에는 실론약수로 불렸다. 홍천 9경 가운데 제9경에 해당하는 곳이다. 세 봉우리의 정기를 받은 삼봉약수는 톡 쏘는 텁텁함과 상쾌함을 선사하는 무색의 투명한 탄산수가 나온다. 이는 토양에 흡수된 물이 암설층을 통과하면서 탄산과 철분을 함유하였기 때문이다. 약수에는 철분, 불소, 탄산 이온, 망간 등이 들어있어 위장병, 피부병, 신장병, 신경쇠약 등에 효험이 있다고 널리 알려져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다. 삼봉약수는 오대산에서 뻗어 내린 산줄기에 위치하는데 이 일대는 전나무·분비나무·주목 등의 침엽수와 박달나무 등의 활엽수가 조화를 이루는 삼림지대이다. 약수터가 자리한 계곡은 1962년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열목어가 서식할 정도로 깨끗하고 차가운 수질을 자랑한다. 삼봉약수가 있는 삼봉자연휴양림은 가을에는 주변 숲이 단풍으로 물들어 풍광이 아름답고 수려하다. 삼봉약수터 근처에는 단종의 외조부인 권전의 사당을 비롯하여, 부부의 애틋한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는 홍천 은행나무 숲이 있다.

강원특별자치도 홍천군 내면 삼봉휴양길 276

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
자연관광경상북도

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

운주산승마자연휴양림은 국내 최초 산림욕과 승마를 동시에 즐길 수 있는 휴양림이다. 울창한 소나무 숲 속에 아름답게 꾸며진 휴양림은 숲속의 집, 산림문화휴양관, 야영장, 다목적구장, 포레스트캠프, 야외 물놀이장 등의 휴양림지구와 실내·외승마장, 산악승마로, 외승로 등의 다양한 승마체험을 할 수 있는 승마체험지구로 구성되어 있어 산림휴양과 레저를 동시에 즐길 수 있다.

경상북도 영천시 임고면 승마휴양림길 105

가래실문화마을(별별미술마을)
문화관광경상북도

가래실문화마을(별별미술마을)

영천 가래실 문화마을은 ‘별별미술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지붕 없는 미술관이라고 불릴 만큼 마을 전체가 벽화와 멋진 조형물들로 가득 꾸며져 있어서 마치 야외 미술관에 온 듯한 기분이다. 영천이 별의 도시라는 타이틀에 맞게 별을 주제로 한 작품들도 많다. 별별미술마을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11 마을미술프로젝트 공모사업에 선정된 곳이다. 마을미술프로젝트는 지역의 정체성을 문화콘텐츠로 발굴하여 이를 예술로 승화시켜 문화예술향유 증진과 지역을 활성화하는 사업으로 이번 영천에 조성된「행복프로젝트-신몽유도원도」가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영천시 화산면 가상리~화산리~귀호리 일원으로 마을 곳곳에 45점의 다채로운 작품들을 설치하여 평범하던 지역을 대규모 미술 마을로 바꾸어 놓았다.

경상북도 영천시 화산면 가래실로 364

광고